도시 창원을 걷다

 


  논이나 밭은 없고 건물과 아파트만 있는 도시 창원을 걷는다. 나무 선 자리보다 찻길이 훨씬 넓은 도시 창원을 걷는다. 도시라면 이처럼 논밭이 없이 건물과 아파트만 있어도 될까. 도시라서 나무보다 자동차 다닐 자리를 더 살펴야 할까.


  초등학교를 바라보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바라본다. 온통 건물이다. 이 건물 짓고 저 건물 올린다. 아이들은 건물과 건물을 오갈 때에 마음을 북돋우거나 열 수 있을까. 운동장을 따라 줄줄이 열매나무 꽃나무 푸른나무 알뜰히 심어 건사할 수는 없을까.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나무타기를 즐기며 두 손과 온 몸뚱이로 나무를 맞아들이도록 이끌 수는 없을까.


  도시에 나무를 심어도 은행나무나 벚나무나 방울나무만 심는다. 도시사람은 능금이 능금나무에서 열리고 포도가 포도나무에서 열리며 귤이 귤나무에서 열리는 줄 얼마나 깨달을까. 능금꽃과 포도꽃과 귤꽃이 얼마나 어여쁘게 빛나는가를 모르고도 능금과 포도와 귤을 먹어도 될까. 예쁜 감꽃을 살그마니 쓰다듬는 손길로 예쁜 감알 우걱 베어 먹으면 한결 맛날 텐데.


  도시에서는 어떤 빛을 느낄까. 도시에서는 어떤 빛깔을 사랑할까. 도시에서는 어떤 빛이 떠오를까. 도시에서는 어떤 빛깔이 환하게 흐드러질까. 아, 아침해가 차츰 밝아지는구나. 눈이 부시는구나. 좋다. 고맙다. 즐겁다. (4345.1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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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와 ‘분홍’과 ‘진달래’
[말사랑·글꽃·삶빛 32] 마음으로 그리는 빛깔

 


  초등학교 다니는 이웃 어린이를 만납니다. 이 아이가 입은 옷이 예쁘기에 슬쩍 묻습니다. “네 옷 참 예쁘구나. 이 옷은 무슨 빛깔이니?” “핑크요.” 이 아이한테 물어도 ‘핑크(pink)’라 하고, 저 아이한테 물어도 ‘핑크’라 합니다. 마침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교사 한 분 옆에 있어 이분한테도 나란히 여쭈는데, 누구한테서나 똑같은 말이 들려옵니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핑크’입니다.


  신문을 펼친다면 어떠할까요. 아마, 신문에 글을 쓰는 이들도 으레 ‘핑크’라 할 테지요. 더러 ‘분홍(粉紅)’을 말하기도 할 테지만, 학교에서도 신문에서도, 또 텔레비전에서도, 나아가 인터넷에서도 한결같이 한 가지 빛깔 ‘핑크’만 말하리라 느껴요. 한국사람은 언제부터 어여쁜 빛깔 한 가지를 ‘핑크’라 일컬었을까요.


  내 어머니는 어여쁜 빛깔을 ‘분홍’이라고 말합니다. 살짝 궁금하지만 여쭐 길은 없는데,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는 무어라 말했을까 헤아려 봅니다.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는, 또 이분을 낳은 어머니는, 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는 …… 이렇게 차근차근 거슬러 옛날 옛적으로 돌이켜보면, 지난날에는 어떤 낱말로 아리따운 빛깔을 가리켰을까요.


  내 어머니도 요즈음에는 ‘핑크’라는 낱말을 들으시고 아실 테지만, 입에서는 ‘분홍’이라는 낱말이 흘러나옵니다. 그러면, 1500년대에는, 500년대에는, 또 단군이 살았다는 얼추 5000해 앞서는, 아름답다고 여기는 빛깔을 어떤 낱말로 나타냈을까요.


  봄이 되면 봄꽃이 핍니다. 봄이라서 봄꽃입니다. 도시에서는 개나리가 맨 먼저 꽃송이를 내밀 텐데, 시골에서는 그 어느 꽃보다 ‘봄까지꽃’이 맨 먼저 고개를 내밉니다. 아이들 새끼손톱보다 훨씬 자그마한 꽃송이를 빛내는 봄까지꽃은 좀처럼 알아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자가용을 타고 달려도, 버스를 타고 움직여도, 이 봄꽃을 못 알아봅니다. 아주 작거든요. 자전거를 타고 달릴 적에도 봄까지꽃을 알아채기는 힘들어요. 밭둑을 걷거나 논둑을 걸을 때에야 비로소, 아하 너 여기에 피었네, 하고 알아채요.


  봄까지꽃이 피고 나서 별꽃이 핍니다. 산수유도 꽃송이를 벌리고 할미꽃도 자그맣게 꽃송이를 내놓습니다. 유채도 갓도 노란 꽃송이를 마음껏 뽐내요. 그나저나 시골사람 아닌 도시사람 가운데 유채풀을 맛나게 먹고 갓풀 또한 맛있게 먹는 줄 얼마나 알려나요. 우리 집 식구들은 봄이 되면 들판마다 흐드러지는 유채랑 갓 뜯어서 먹느라 바지런을 떨어요. 매화가 보얗게 꽃잎을 날리고, 천천히 진달래가 온 멧골을 밝힙니다. 아, 그렇지요. 진달래가 피지요. 그래요, 옛날 옛적 사람들은 풀을 뜯어 지붕에 얹기도 했지만, 풀줄기를 갈무리해 실을 얻고 자아 옷 한 벌을 지었어요. 풀잎에서 푸름을 읽고 하늘에서 파랑을 읽었어요. 옛날 옛적 사람들은 흙을 읽으며 흙빛을 느꼈고, 나무를 어루만지며 나무빛을 살폈어요.


  가을날 감알을 바라보며 싱그러운 ‘감빛’을 생각합니다. 감은 감빛 아니고는 달리 나타낼 빛깔이 없습니다. 그 옛날 ‘주홍’이니 ‘주황’이니 하는 말이 있을 턱 없어요. 감빛이고 대추빛이며 능금빛이요 배빛이에요. 머루빛이고 다래빛이며 박빛이에요. 수세미빛 으아리빛 배추빛 무빛을 누렸어요. 보리를 거두며 보리빛을 말하고, 벼를 낫으로 베며 벼빛을 읊었어요. 하얀 구름 올려다보며 땀을 식힐 적에 구름빛을 헤아리고, 밤늦도록 일손을 놀리며 달빛과 별빛을 받았어요.


  국어사전을 들춘다 하더라도 우리 빛깔을 찾지 못합니다. 국어학자한테 여쭈어도 이 겨레 빛깔을 알아내지 못합니다. 다만, 내 어머니를 떠올리고,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와 어머니와 어머니와 어머니와 …… 흙을 만지고 사랑하고 보살핀 숱한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시나브로 빛깔을 떠올립니다.


  진달래 참 곱구나, 어머나 너 진달래빛 옷을 입었네, 진달래로 물을 들였니, 잇꽃으로 물을 들였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곤조곤 속삭이며 봄날 멧골에서 멧나물을 뜯으셨겠지요. 진달래 꽃잎 몇 뜯어서 입안에 넣고는 살근살근 씹으며 봄맛을 누리셨겠지요. 진달래 꽃송이 하나 귓등에 꽂고는 꽃순이가 되고 꽃돌이가 되어 봄아이가 되며 한껏 흐드러지셨겠지요. (4345.1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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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싯돌

 


  마음속으로는 모두 다 알기에 부싯돌로 건드리면 스스로 터뜨려 맑게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씨앗은 모두 다 몽우리에 건사하니까 꽃으로 환하게 피어났다가 햇살을 먹으며 천천히 꽃송이로 웃어요. 바람이나 빗물이나 햇볕이 꽃을 피우지는 않아요. 풀씨 한 알에 모든 이야기가 담겼기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어요. 사람들 누구나 마음속에 모두 다 건사하기에 자그마한 부싯돌 같은 손길이 깃들면 아름다이 사랑이 피어나고 꿈이 자라나요. (4345.1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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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웃음꽃 바라며
웃음꽃 피우는
어린이

 

사랑을 바라며
사랑을 길어올리는
어른

 

책 하나 쓰고
책 하나 읽어
맑은 숨 이루려는
사람들은
생각을 빛내는 꿈
차근차근
갈무리합니다.

 


4345.8.2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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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은 너희 것이다

 


  이 지구별은 너희 것이다. 이 나라는 너희 것이다. 이 땅은 너희 것이다. 어른들 것은 하나도 없다. 어른이 되어 ‘힘·이름·돈’에 얽매인 사람들은 이 지구별도 이 나라도 이 땅도 가질 수 없다. 힘도 이름도 돈도 살피지 않고 홀가분한 너희가 바로 이 지구별과 이 나라와 이 땅을 가질 수 있다.


  내려놓는대서 가지지 못한다. 풀어놓는대서 얻지 못한다. 내려놓을 것조차 없이 처음부터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는 사람만 가진다. 풀어놓거나 나누어 줄 것조차 없이 처음부터 홀가분한 몸과 마음인 사람만 얻는다.


  어른이란 누구나 아기로 태어나 어린 나날을 보낸다. 곧, 몸은 어른이되 마음은 어린이라면, 이들도 이 지구별을 가진다. 그런데, 마음이 어린이인 사람은 어린이 몸뚱이라 하건 어른 몸뚱이라 하건 굳이 이 지구별을 가질 마음이 없다. 다 같이 누리는 삶터요 서로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삶자리인 줄 몸으로 살가이 느낄 테니까. 달리자, 흙을 박차고 달리자. 마시자, 싱그러운 햇살바람을 마시자. (4345.1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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