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숟가락 1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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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197

 


보면 ‘아는’ 사람
― 은빛 숟가락 1
 오자와 마리 글·그림,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2012.11.19./5000원

 


  언제나처럼 새벽 일찍 아침밥 헤아리며 찬찬히 마련하고, 아침밥이 익는 동안 빨래를 합니다. 빨래를 다 마칠 무렵 아침밥 차리기는 끝내고, 식구들 모두 불러 밥상에 앉혀 밥술을 뜨게 할 즈음, 나는 다 마친 빨래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 빨래를 넙니다.


  이제 겨울에 접어든 시골마을이기에, 햇살이 드리우는 1분과 1초가 아깝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햇살을 받으며, 조금이라도 더 오래 햇살을 누리면서 보송보송 잘 마르기를 빌어요.


  다른 곳은 영 도 밑으로 십 도이니 십오 도이니 하며 오들오들 떠는 날씨라 하는데, 전남 고흥 시골마을은 아직 영 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깊디깊은 한밤에는 영 도 밑으로 살짝 내려가는 듯합니다. 어젯밤 올겨울 들어 고흥에서는 처음으로 얼음을 보았습니다. 그래 봐야 살얼음이라 톡 치면 바스락 부서지지만, 살얼음이라도 한밤에 언 적은 올들어 처음입니다.


  따스한 햇살과 바람과 냇물이란 더없이 고마운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따사로운 햇살을 먹고 따뜻한 바람을 마시며 포근한 냇물을 들이켤 수 있는 삶이란 내 몸과 마음을 한껏 북돋우면서 살찌운다고 느낍니다.


  그렇다고 찬바람 찬물이 싫거나 꺼림칙하지 않아요. 나는 그동안 영 도 밑으로 이삼십 도 가뿐히 내려가는 멧골에서 언물 녹이며 손빨래를 하며 살았고, 손발 꽁꽁 얼어붙는 차가운 방에서 글을 쓰며 지냈어요. 살림돈이 나아져서 따스한 시골에서 살지는 않아요. 아이들이랑 옆지기하고 한결 따사로운 품을 느끼면서 시골숲을 껴안고 싶어 전남 고흥으로 왔어요. 이렇게 따스한 터에 보금자리를 일구고 보니, 햇살과 바람과 물과 흙을 남다르게 돌아볼 수 있어요. 삶도 밥도, 여기에 사랑과 꿈도, 따사로운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일 적에 가없이 맑게 빛나며 곱구나 싶어요.


- “게임은 하루에 1시간만 하고, 둘이 싸우지 말 것. 시라베는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고, 카나데는 거울만 보지 말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것. 냄비에 4일치 카레 만들어 놨으니까, 저녁은 밥만 지으면 될 거야.” (9쪽)
- “이런 설명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 오늘 토당인데.” “토당?” “토끼한테 먹이 주는 당번! 다녀올게!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전해 줘!” (15∼16쪽)
- ‘리츠 오빠, 입시 포기했어? 우리 집이 가난해서 그래? 리츠 오빠는 얼굴이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도 공부도 잘 하는데. 요즘엔 요리까지. 입시를 포기해야만 하다니. 그래선 안 되잖아.’ (110∼11쪽)

 

 


  빨래가 마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를 듣습니다. 밥상을 차려 아이들과 옆지기와 장인 어른을 부릅니다. 밥상 앞에서 수저 부딪는 소리를 듣습니다. 작은아이는 밥먹기보다는 밥놀이를 합니다. 혼자서 숟가락질을 한다면서 국을 뜨지만 몽땅 밥상과 부엌바닥에 쏟습니다. 용케 국을 숟가락로 떠서 입으로 가져가지만, 웃옷에 주르륵 쏟습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처럼 밥먹기보다 밥놀이를 하며 컸어요. 다섯 살 큰아이는 “아버지, 나 혼자서 밥 다 먹었다!” 하고 외칩니다. 그래, 참 잘 했어요. 작은아이도 누나를 따라 아버지를 보며 “엄마!” 하고 외칩니다. 열아홉 달째 되는 작은아이는 아직 말이 더디기에 무엇이든 그예 ‘엄마’ 하고 말합니다. 누나가 “혼자서 밥 다 먹었다!” 하고 외치니, 작은아이도 누나처럼 말하고 싶은가 봐요.


  이제 나는 조금 숨을 돌리고서는 설거지를 해야지요. 설거지를 하고 나서 마당으로 내려와 겨울빨래 어느 만큼 마르는가를 만져야지요. 아침에 넌 빨래를 뒤집어 말리고, 잘 마르는 빨래를 바라보며 얼른 보송보송 되어 주렴 하고 속삭입니다. 어젯밤 빨래한 옷가지를 천천히 개고, 밥을 먹고 나서 또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오늘 내 몫으로 할 일을 어림합니다.


- “아냐, 외모뿐 아니라 성품도 남신이라구!” “얘기해 본 적 없잖아?” “아니, 얘기 안 해 봐도 알아. 보면 안다구.” “그 신념은 뭐냐? 그럼 얘기해서 확인해 봐.” (20∼21쪽)
- “좋겠다. 엄마도 리츠(큰아들)가 만든 군만두 먹고 싶은데.” “퇴원하면 만들어 드릴게요.” “그래, 그럼 리츠가 만든 군만두가 먹고 싶으니까 서둘러서 퇴원해야겠구나.” (44∼45쪽)
- “애당초 우리 회사는 요 2∼3년 사이에 급성장한 거라, 괴로운 시기도 상당히 길었거든.” “그걸 알면 착실하게 공부해야지. 어머니 아버지가 고생하셔서 키운 회사를 물려받을 거 아냐.” “네가 내 엄마냐?” “아. 그럼 네가 우리 집에 올래?” (167쪽)

 


  아이들과 복닥이면 책 하나 손에 쥘 겨를 없습니다. 참 바쁘구나 싶지만, 아이들이 바로 책이라고 느끼면서 내 마음을 다스립니다. 내가 종이책 펼쳐 읽는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살며시 손을 맞잡고 놀면서 ‘몸으로 이야기를 느껴 받아들이’면 한결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삶’을 다룬 종이책을 굳이 안 읽더라도, 내가 오늘 이 시골집 보금자리에서 ‘아이들과 복닥복닥 부대끼면서 놀고 뒹굴고 뛰고 노래하’고 보면, 바로 이러한 삶과 놀이와 하루가 책읽기인 셈이에요. 아니, 이처럼 즐거이 놀자는 뜻을 보여주는 종이책이에요.


  사랑을 읊는 문학책이란, 글로만 누리라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글로 읽는 문학에서 받아들인 아름다운 사랑을, 나 스스로 온몸 부대끼는 삶에서 흐드러지게 맞아들이도록 이끌려는 문학이요 책이로구나 싶어요.


  시를 읽든 수필을 읽든 소설을 읽든 늘 이와 같습니다. 인문책을 읽건 환경책을 읽건 언제나 이와 같아요. 지식으로 살피는 책이 아니에요. 삶을 돌아보도록 이끄는 책이에요. 정보를 얻자는 책이 아니에요. 삶을 사랑하도록 내 마음을 일깨우자는 책이에요.


  아이한테 무언가 가르치는 까닭은 아이들이 반갑고 살가우며 예쁘기 때문이에요. 아이가 커서 지식인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무슨무슨 석·박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아이가 똑똑해진다거나 공부를 잘해 이름난 대학교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아요. 무언가 가르치는 어버이인 내 마음이 흐뭇하고, 무언가 배우는 아이들 마음이 환하게 트이는 모습을 느끼는 기쁨이 사랑스럽기에, 서로서로 가르치며 배울 수 있어요.


  고무줄은 고무줄놀이입니다. 공은 공놀이입니다. 나뭇가지는 막대기놀이입니다. 어떤 체험학습도 체험활동도 아닙니다. 어떤 학습도 교육도 아닙니다.

 


- “괜찮다면 받아. 가다랑어포! 나, 바로 저기 있는 우동가게에서 알바 하는데, 사장님이 튀김조각이나 가다랑어포를 자주 주시거든. 쪄서 말린 가다랑어를 매일 직접 깎아서 만든 거라 맛있어. 참고로 말하자면 오늘은 내가 깎았어.” (23쪽)
- “네 노력은 틀림없이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조바심내지 않아도 돼. 뭐, 엄마는 스타팅멤버로 뽑히길 빌겠지만 말야.” “응. 그래 줘요.” (88∼89쪽)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2)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 줄거리를 살짝 엿보면, 고3 수험생 큰아들, 중1 농구선수 작은아들, 초6 연예인 꿈꾸는 막내딸, 이렇게 세 아이들이 빚는 삶을 보여줍니다. 세 아이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세 아이네 어머니는 몸이 아파 그만 병원에 들어가 오랫동안 지냅니다. 세 아이끼리 작은 집에서 살아가는데, 큰아들이 집살림 도맡아요. 집안일을 도맡는 하루를 누리면서 ‘대학입시보다 동생들 예쁘게 보살피는 삶이 훨씬 보람차고 즐겁다’고 느껴요. 대학교에는 굳이 안 들어가도 되고, ‘살아가는 꿈’은 저 먼 교토 대학교 어느 학과 아닌, 바로 이곳 우리 작은 보금자리 예쁜 동생과 살가운 어머니한테 있다고 느낍니다.


  그동안 오자와 마리 님 다른 만화책, 이를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나 《니코니코 일기》나 《퐁퐁》이나 《민들레 솜털》이나 《이치고다 씨 이야기》를 읽을 적에도 느꼈는데, 이번에 새로 나온 《은빛 숟가락》을 읽을 적에도 ‘오자와 마리 이분은 결 곱고 무늬 환한 사랑이랑 꿈을 만화로 담는 하루를 더없이 즐기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스스로 결 고운 사랑과 무늬 환한 꿈을 즐기지 못한다면, 이 같은 만화를 그리지 못해요.


  만화는 줄거리가 아닙니다. 만화는 그림결이 아닙니다. 만화는 주제가 아닙니다. 만화는 주인공이나 눈부신 그림이 아닙니다. 만화는 사랑과 꿈을 어떤 이야기로 빚어 즐겁게 누리는 삶인가를 보여줄 때에 비로소 ‘만화’라는 이름이 빛납니다.


- ‘두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내일은 좀더 제대로 된 밥을 만들자.’ (34쪽)
- ‘동생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 줄 생각만 늘 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작업은 가끔 밀려오는 잡다한 감정으로부터 날 해방시켜 주었다.’ (80쪽)
- ‘아마, 동생들의 ‘맛있는 표정’에 빠져든 것이 내가 요리를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겠지.“ (96쪽)


  동생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만화에 나오는 큰아들 스스로 환하게 웃을 수 있기에, 즐겁게 ‘살림꾼’이 됩니다. 대학생은 언제라도 될 수 있거든요. 대학교는 언제라도 갈 수 있거든요. 그러나, 열넷 열셋 어린 동생들이 이 나이에 환하게 웃고 떠들며 노래하는 삶을 누리도록 이끄는 ‘집안 기둥’ 노릇은 바로 오늘 아니면 할 수 없어요.


  만화책 큰아들은 ‘대학교에서 배워 스스로 이루고픈 꿈’을 접지 않아요. 살짝 뒤로 미룰 뿐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입시를 새롭게 치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 배고파 우는 아이들한테는 오늘 즐거이 밥을 차려 맛나게 함께 먹을 노릇이에요. 오늘 아버지와 어머니 없이 쓸쓸한 집에서 홀로 카레만 뎁혀 먹어야 하는 동생들한테 그때그때 갓 지은 따끈하고 고소한 밥을 차려 까르르 웃고 떠들며 누리는 밥은, 참말 오늘 이곳에서 내 사랑어린 손길로 지을 노릇이에요.


  어떻게 아느냐고요? 척 보면 척 알아요. 아이들 얼굴을 바라보면 아이들이 즐거운지 슬픈지 기쁜지 놀라는지 알아요. 아이들 눈빛을 바라보면 아이들이 졸린지 신나는지 재미있는지 따분한지 알아요. 아이들 몸짓을 바라보면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픈지 알아요.


  어른끼리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어른도 서로서로 사랑으로 바라보면 척 하고 알아챌 수 있어요. 살가운 꿈길을 떠올리며 따사로이 바라보면 다 함께 씩씩하게 어깨동무하며 일굴 빛나는 열매를 알아볼 수 있어요. 4345.1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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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2-06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으로 살피는 책이 아니에요. 삶을 돌아보도록 이끄는 책이에요."
요즘 저의 책읽기가 그러해요. 삶을 돌아보도록 만들어요.

빨래와 설거지 하시는 님의 아름다운 일상을 엿보고 갑니다.^^

파란놀 2012-12-06 16:05   좋아요 0 | URL
늘 고우면서 즐거운 삶이 되리라 생각해요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만화일까? 예전에 해적판이나 다른 책으로 소개되었을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단편과 장편(또는 중편)이 처음으로 정식판이 나오는 듯하다. 두 가지가 한꺼번에 나온다면, 그만큼 작품성과 깊이가 있다는 뜻이라고 여겨, 단편집부터 장만해서 읽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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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초록빛
하시바 마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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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집살림

 


  여드레만에 고흥집으로 돌아오면서 새삼스레 집일꾼으로 돌아온다. 엊저녁 잠자리에 들기 앞서 누런쌀을 헹구어 불리고, 새벽 일찍 조용히 일어나 미역을 잘라 불린다. 아침이 되어 빨래를 하고, 작은아이 똥바지를 갈아입히며 똥옷 빨래를 한다. 이동안 밥물을 앉혀 보글보글 밥을 끓이고, 이윽고 불린미역에 무와 호박과 감자와 가지를 송송 썰어 참기름을 두르고는 볶는다. 여드레 빨래가 퍽 많아 빨래기계를 빌리려 했더니 빨래감이 넘친다. 한 꾸러미를 빨래기계에서 꺼내어 손으로 빨래한다. 이사이 밥물이 제법 끓기에 불을 줄이며 어느 만큼 익는가를 살핀다. 손으로 빤 옷가지를 마당에 널며 슬슬 녹는 눈을 구경한다. 이제 미역 넣은 냄비에 물을 더 부으며 불을 키운다. 밥냄비를 살핀다. 밥은 거의 다 된다. 어떤 찬거리를 올릴까 생각하는데, 큰아이는 평상에 쌓인 눈을 손가락으로 콕콕 찍으며 눈맛을 본다. 바지런히 사진 몇 장 찍는다. 이제 밥불은 끊다. 미역국에 새우젓이랑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다. 조글조글 끓는 미역국 불을 작게 줄인다. 아이들이랑 조금 어울려 놀다가 미역국 불을 끈다. 조금 뒤 장인 어른이 고단한 몸 일으켜 기지개를 켜면, 오이랑 연뿌리를 숭숭 썰어서 아침 밥상을 차려야지. 일산부터 고흥까지 눈길을 열 시간 달리셨으니 얼마나 고되실까. 장인 어른 일어나실 즈음 빨래기계도 빨래를 마치겠지. 따사로운 햇살 드리우며 온 들판 따사로운 바람 살랑이는 낮 동안 빨래는 모두 잘 마르리라. 4345.1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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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담는 그림

 


  아이들은 종이에도 그림을 그리고, 방바닥이나 벽종이에도 그림을 그립니다. 빈종이에도 그림을 그리고, 뒷종이나 광고종이에도 그림을 그립니다. 때로는 책이나 빛종이에도 그림을 그려요. 손바닥이나 무릎에 그림을 그리고, 무엇보다 모래밭이나 흙땅에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오래도록 건사하는 어딘가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그림을 그린 뒤 곧바로 사라질 만한 데에도 그림을 그립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두고두고 남겨 오래오래 간직하려’는 그림을 그리지는 않거든요.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는 바로 이곳에서 즐거우려’는 마음이거든요.


  따로 ‘그림그리기’를 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놀이’라고 할 테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놀이 테두리를 벗어납니다. 삶이고, 꿈이며, 사랑입니다. 살아가며 꿈을 꾸고 사랑하기에 마음껏 그림을 그립니다.


  마당 한쪽에 흙을 주섬주섬 그러모아 반반하게 다진 다음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그림은 곧 사라집니다. 그러나, 이 그림을 그린 아이 마음에, 또 이 그림을 들여다본 내 마음에, 오래오래 예쁜 자국 아로새깁니다. 4345.1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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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책읽기

 


  집 바깥에서 퍽 오래 돌아다니며 아이가 종이책을 손에 쥔 일이 꼭 한 차례만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본다든지, 이모와 삼촌을 만날 적에는, 굳이 종이책을 손에 쥘 까닭은 없다. 할머니는 할머니책이고 이모는 이모책이 되니까. 사람들과 몸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생각을 주고받는 자리에는 따로 종이책을 곁에 안 두어도 된다. 다만,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는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았다. 아이 눈과 머리를 생각해서 새 그림책 몇 권을 건넨다. 마침 우리 집에 미리 닿은 책꾸러미 있어, 앙증맞은 그림 깃든 그림책을 읽어 보라고 내민다.


  마음에 안 들 만한 그림책을 건넸으면 큰아이는 시큰둥하게 여겼으리라. 큰아이가 졸립기도 하고 고단하기도 하지만, 퍽 마음에 들 만한 그림책이기에, 한동안 그림책을 펼치면서 혼자 조잘조잘 이야기살 입히며 읽는다. 한글은 못 읽지만 그림은 읽을 줄 아니까, 그림 따라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며 읽는다.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니, 아이가 읊는 말이랑 그림책에 적힌 말이랑 얼추 비슷하다. 그림책 그린 이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그림과 글을 잘 엮었구나.


  이제 우리는 우리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모두 달게 잔 다음, 새 아침에 겨울눈이 아직 안 녹았는지 다 녹았는지 살펴보자. 마을 마늘밭을 밤새 포근하게 덮은 흰눈이 얼마나 남는가 살펴보자. 눈밭에서 신나게 뒹굴어 보자. 4345.1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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