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12.11.

인천 동구 송림3동.

 

 인천 동구 송림3동은 '동부동'과 '서부동'이 있었단다. 나는 이렇게 갈렸을 적 너무 어렸으니 두 갈래가 어찌 다른가를 모른다. 다만, 오늘에 이르러 골목집 문간에 조그맣게 붙은 쇠딱지나 문패에 남은 글월 한두 마디를 살피면서, 그무렵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고 그림을 그려 본다. 송림3동이라 하는 골목동네를 천천히 거닐자면, 하루 내내 또는 이틀 내내 걸어도 송림3동 모든 집 앞을 다 지나갈 수 없다. 참 넓고 깊다. 그러니 동부동이랑 서부동으로 나눌 만하다. 그러면, 오늘날 송림3동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환하게 훑으면서 이곳을 돌아다니려는 '마실꾼'들은 송림3동 발자국을 어떤 이야기로 되새길까. 역사는 역사책에 없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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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6] 사회읽기
― 남북녘 ‘미사일’ 또는 ‘로켓’ 또는 ‘우주선’

 


  나는 신문을 읽지 않습니다. 나는 방송을 보지 않습니다. 우리 시골마을에는 신문이 안 들어오고, 우리 시골집에는 텔레비전을 안 놓습니다. 무언가 읽어야겠으면 내 마음 따사로이 이끄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무언가 보아야겠다면 아이들과 함께 들길마실이나 멧골마실이나 바다마실을 합니다. 시골마을 벗어나 이웃마을, 이를테면 서울이나 부산이나 인천 같은 도시로 마실을 한다든지, 시골집을 떠나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음성이나 일산으로 마실을 할 적에 비로소 신문이든 방송이든 마주합니다.


  사람들은 으레 묻습니다. 신문 안 읽고 방송 안 보면 사회 굴러가는 흐름을 어찌 아느냐고. 오늘날 같은 사회에서 신문이랑 방송 없이 지내면 바보가 되지 않느냐고.


  나는 빙긋빙긋 웃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신문에 어떤 기사가 실리나요? 방송에 어떤 사람들이 나오나요? 신문에 실린 기사 가운데 하루 지난 뒤에도 떠오르는 기사가 있나요? 방송에 나온 연속극이나 새소식이나 연예인 수다 가운데 며칠 지나서 또렷이 되새기는 모습이 있나요? 아니, 아침에 읽은 신문글이 저녁이 되면 덧없는 지식조각이 되지 않나요? 아니, 저녁에 본 방송은 이듬날 되면 고스란히 옛 것이 되거나 낡은 것 되어 새로운 방송이 자꾸자꾸 더 낯간지럽게 흐르지 않나요?


  신문을 펴면 첫 쪽부터 언제나 정치꾼 얼굴이 큼지막하게 나옵니다. 그런 다음 미국 이야기가 몇 가지 나오고, 주식시세표가 나오며, 운동경기 이야기가 나오다가는 연예인 이야기 얼마쯤 나온 뒤, 누가 죽고 다쳤다느니, 누가 돈을 떼어먹었거나 누군가를 괴롭힌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문은 이와 같습니다. 신문은 우리 삶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방송도 엇비슷해요. 방송은 여기에 몇 가지 곁들이는데, 이른바 대중노래라든지 연속극이라든지 때때로 영화라든지 다큐멘타리라든지 나오기도 하지만, 한결같이 시청율 노리는 낯뜨거운 이야기가 그득그득합니다.


  신문을 읽는 사람이 외레 사회를 모르는 채 바보가 되지 않나요? 방송을 보는 사람이 오히려 사회와 멀어진 채 멍청이가 되지 않나요? 신문에는 ‘노동자가 왜 파업까지 하게 되는가’ 하는 대목을 밑뿌리 낱낱이 캐며 밝히지 않아요. 택시회사 일꾼이 사납금 때문에 얼마나 애먹는지, 택시회사는 사납금 제도로 돈을 얼마나 벌어들이는지, 이런저런 속깊은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아요. 방송 새소식에서도 이와 같아요. 정치꾼 이야기를 할 적에도, 두 군데 커다란 정당 사람들 목소리만 담지, 정치를 아름다이 일구려 힘쓰는 사람들 이야기에는 귀퉁이 한쪽 자리조차 안 주기 일쑤예요.


  무엇보다, 신문이랑 방송은 온통 서울 이야기입니다. 부산이나 대구나 광주나 인천 이야기조차 ‘지방 소식’으로 다룰 뿐이에요. 작은도시 이야기는 끼어들 자리마저 없고, 시골 이야기는 아예 나오지 않아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신문이나 방송을 들출 일이 없어요.


  사회를 읽고 싶으면 사회를 읽으면 됩니다. 나 스스로 사회와 부대끼면서 내 눈썰미와 마음그릇으로 사회를 돌아보면 됩니다. 사회읽기란 나와 이웃이 지내는 마을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바라보는 일이에요.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이나 논문이나 잡지로는 사회읽기에 한 가지 도움조차 주지 못해요. 내가 사회에 있을 때에 사회를 읽고, 내가 사회를 생각할 때에 사회를 읽어요.


  고흥 시골집을 떠나 인천으로 이틀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순천 기차역에 내려 김밥 두 줄을 사는데, 분식집 텔레비전에서 ‘북녘에서 로켓을 쏘았다. 북녘 가난한 주민 삶은 걱정하지 않는다. 로켓 개발비로 쓸 돈을 민생 살리는 데에 써라. 남녘 안보를 어지럽히는 나쁜 짓이다.’와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김밥 두 줄 받고 5500원을 치릅니다. 가방에 김밥통을 담습니다. 순천 버스역까지 천천히 걸어갑니다. 고흥으로 들어가는 시외버스를 탑니다. 시외버스는 국도를 달려 고흥으로 접어들고, 고흥 읍내에서 내리니 아주 한갓집니다. 짐이 많아 군내버스 말고 택시를 탑니다. 억새풀 흐드러지고 갈대밭 어여쁜 시골길 지나 우리 마을 어귀에 닿습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지개를 켭니다. 아이들 모두 잠든 깊은 밤에는 홀로 마당으로 내려와 까만 하늘을 새삼스레 올려다봅니다. 쏟아지는 별을 가득 안습니다.


  남녘 대통령과 정치꾼과 기자와 지식인이 ‘걱정해 주는 북녘 민생’이란 무엇일까요. 남녘 대통령과 정치꾼과 기자와 지식인은 ‘남녘 민생 걱정’을 얼마나 하며 살까요. 남녘땅 고흥 나로섬에 지은 우주기지에서 ‘우주선에 붙일 로켓 추진장치’를 쏘려고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돈을 쏟아부었지만, 끝내 로켓 추진장치를 못 쏘고 끝났어요. 몇 조인지 몇 십 조인지 알 수 없는 돈을 우주개발 하겠다면서 쓴 남녘이에요.


  얼추 10조라고 쳐 보아요. 10조 원이라는 돈을 남녘 ‘민생’을 살펴 보듬는 데에 썼다고 하면, 우리들 남녘살이는 어떠한 모습으로 거듭날까요. 이른바 ‘4대강 살리기’를 ‘남녘사람 삶 살리기’를 하는 쪽으로 가닥잡았다면 우리들 남녘살이는 어떠한 빛깔로 환하게 빛날까요.


  이렇게 하니 잘못이고 저렇게 하니 글러먹는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사회를 어떻게 읽겠느냐는 소리입니다. 남녘 과학자와 공무원이 ‘러시아 기술자’ 아닌 ‘북녘 기술자’를 받아들였으면, 한결 적은 돈을 들여 더 빨리 ‘로켓 추진 장치 쏘는 일’도 ‘뜻을 이루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는 동안 남북교류라든지 남북협력이라든지 남북통일이라든지, 더 따사롭고 슬기로우며 즐겁게 이루는 길을 걸었겠지요. 남녘과 북녘이 따사로이 손을 잡으면 국방비에 터무니없는 돈을 들일 까닭이 없고, 이 국방비는 ‘대학 무상교육’이라든지 ‘병원 무상시설’이라든지 ‘출판 무상지원’처럼, 교육과 복지와 문화를 북돋우는 아름다운 꿈을 이루는 멋스러운 길이 되리라 느껴요. 사회를 읽으려면, 신문이나 방송이라 하는 ‘안경’을 벗고, ‘내 눈’으로 내 삶을 사랑하면서 눈빛을 맑게 트면 돼요. 4345.12.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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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고아원 세계사 시인선 122
최문자 지음 / 세계사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아이들 손에 나뭇잎 하나
[시를 노래하는 시 37] 최문자, 《나무고아원》

 


- 책이름 : 나무고아원
- 글 : 최문자
- 펴낸곳 : 세계사 (2003.11.7.)
- 책값 : 5500원

 


  숲에서는 언제나 노래가 울립니다. 숲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숲이 들려주는 노래를 언제나 듣습니다. 그러나, 숲에 깃든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음을 살며시 열어 숲이랑 하나가 되려는 몸짓이 아닐 적에는 숲노래를 못 알아채거나 못 느껴요. 숲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지내더라도 숲이랑 한마음이 되며 살아갈 적에는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숲노래를 고이 들으며 숲넋을 가슴 깊이 아로새깁니다.


  꽃밭 앞에 섰어도 꽃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에 있지만, 아스팔트땅 한켠에서 씩씩하게 새잎 틔우며 자라는 조그마한 들풀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꽃밭을 가득 채운 꽃마다 향긋하게 나누어 주는 꽃내음을 못 맡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 북적거리는 도시 한복판에 있지만, 매캐한 바람 부는 도시로 가늘게 풍기는 먼먼 꽃내음을 헤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얼크러지면서 아이들 맑은 눈빛을 읽으며 빙그레 웃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그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집어넣을 뿐, 막상 아이들과 기쁘게 이야기꽃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방긋방긋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뛰노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온갖 값진 장난감을 사다 주면서 혼자 놀라고 내버려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 막다른 집에서 꽤 오래 산 적이 있다. / 헐어빠진 나무대문들을 / 희망처럼 보이게 하려고 / 페인트로 파랗게 칠을 했었다. / 대문의 나무결은 숨을 그치고 / 그날부터 파랗게 죽어갔다 ..  (파란 대문에 관한 기억)


  꽃이 피고 집니다. 나무가 천천히 자랍니다. 꽃이 피고 지는 흐름을 살피며 삶을 헤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무가 천천히 자라는 결을 느끼며 나뭇가지를 따사로이 쓰다듬는 사람이 있습니다. 꽃망울마다 서린 밝고 푸른 기운을 손가락으로 살살 어루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랑잎 하나 천천히 주워 잎줄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무가 떨군 씨앗을 고개 숙여 살펴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막 뿌리를 내린 한살박이 새 어린나무랑 두살박이 새 어린나무를 알아보고는 귀엽다고 톡톡 간질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 길거리를 거닐기는 하지만, 길거리에 심긴 채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를 알아채지 않고 갈 길만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뭇가지에 줄을 꽉 동여매어 걸개천을 내거는 동안 나뭇가지가 얼마나 아파 하는가를 안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무는 사람과 똑같이 숨을 쉽니다. 나무는 사람과 똑같이 자랍니다. 나무는 사람과 똑같이 씨앗을 내어 새 숨결을 키웁니다. 나무는 사람과 똑같이 나뭇가지 잘릴 적에 아픈 소리를 냅니다. 나무는 사람과 똑같이 찬바람과 비바람을 맞으며 춥다고 노래합니다.


  나무 곁에 서요. 나무 곁에 서서 귀를 살며시 대요. 나뭇줄기를 타고 오르는 숨소리를 들어요. 맨 밑바닥 뿌리부터 맨 꼭대기 잎사귀까지 흐르는 숨결을 느껴요. 햇살이 살찌우는 나뭇잎 하나 살살 쓸어요. 나무가 선 자리에는 어떤 흙이 있는지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냄새를 맡아요.


.. 원주, K시인을 따라 / 옻나무밭에 갔었다. / 심장은 놔두고 / 밑둥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 수십 번 더 그어진 칼금 / 저건 숲이 아니다 ..  (옻나무밭)


  감나무 한 그루 마당에 있으면 겨우내 달콤한 감알 실컷 즐길 수 있도록 선물해 줍니다. 매화나무 한 그루 마당에 있으면 봄내 환한 꽃잔치를 베풀다가는, 여름내 달콤하게 즐길 동그랗고 노오란 열매를 선물해 줍니다. 능금나무가, 배나무가, 복숭아나무가, 살구나무가. 탱자나무가, 석류나무가, 포도나무가, 사람들 살림집마다 한두 그루쯤 자랄 때에는 얼마나 환하며 고울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사람들 살림집이 아파트 아닌, 너나없이 마당 있어 흙내음 물씬 나는 보금자리라면 얼마나 빛나며 예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한국땅은 그렇게 좁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은 누구나 마당 있는 살림집을 누릴 만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몽땅 도시로 몰리도록 내모니까, 도시에는 땅뙈기가 비좁다고 여겨 2층 3층 20층 30층 쑥쑥 올리기만 합니다. 아파트 한 채에 5억이니 15억이니 떠들지만, 20억이 되건 30억이 되건 마당 한 뼘조차 없다면, 이러한 곳을 ‘집’이라 할 만한지 궁금해요. 흙이 없고 밭이 없어 마당이랑 꽃자리가 없다면, 이러한 곳을 집이라고 일컬을 수 없지 않나 싶어요.


  누구라도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야지 싶어요. 돈이 많은 사람만 마당 있는 집을 누릴 수 없어요. 돈이 적은 사람도 마당 있는 집을 누려야지 싶어요. 마당 한켠에는 열매 알차게 맺는 나무 몇 그루 자라고, 마당 두켠에는 여러 푸성귀 푸르게 자라며, 마당 세켠에는 장독 놓을 겨를 있는 한편, 마당 네켠에는 샘터 조그맣게 있어, 아이들 여름내 물놀이 즐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 그들은 원래 강남 먹자골목에 살고 있었다. / 먹어본 기억이 깔린 유년의 골목 / 감각의 그 길을 그들은 추억한다 ..  (K게이트)


  사람이 숨을 쉬고 나무가 숨을 쉽니다. 사람이 숨을 쉬고 풀이 숨을 쉽니다. 사람이 숨을 쉬고 꽃이 숨을 쉽니다.


  자동차들이 배기가스를 내뱉으면 사람도 나무도 풀도 꽃도 캑캑거립니다. 공장들이 매연을 내뱉으면 사람도 나무도 풀도 꽃도 코며 입이며 귀며 갑갑히 막힙니다. 발전소가 춤을 추고 골프장이 노래하면 사람도 나무도 풀도 꽃도 시들시들해지고 맙니다. 고속도로가 가로지르고 철길이 뒤덮이면 사람도 나무도 풀도 꽃도 꽁꽁 얽매인 채 뛰놀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무엇을 하며 살아가나요. 우리들은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나요.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물려주며 무엇을 사랑하도록 이끄는가요.


  내 아이한테 나무 한 그루 베풀지 못한다면 어른 구실이란 무엇일까 아리송합니다. 이웃 아이한테 나무 한 그루 나누어 주지 못한다면 어른 노릇이란 무엇일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숲이 없으면 시골이 아니요, 숲이 있는 시골이 없으면 도시는 살아내지 못합니다. 숲이 있는 시골이 있어야 도시도 살아납니다. 숲이 있는 시골에서 먹을거리를 거두어야 비로소 도시에서 일자리 얻어 돈을 버는 사람들 먹을거리가 나옵니다.


.. 깊은 산에 다녀온 날은 / 머리를 감아도 감아도 풀냄새가 났습니다 ..  (당신의 풀)


  아무개가 대통령이 된다 해서 도시사람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아요. 시골에 숲이 있어야 도시사람 살림살이가 나아져요. 저무개가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가 된들, 도시사람 살림살이가 좋아지지 않아요. 도시에도 곳곳에 숲이 있어 도시사람 마음과 몸을 쉴 틈이 있어야, 도시사람 누구나 살림을 펼 수 있어요. 그무개가 판사가 되든 검사가 되든 의사가 되든 대수롭지 않아요. 병원은 없어도 되고 극장은 없어도 되며 구청이나 시청 건물을 높게 새로 지을 까닭이 없어요. 숲을 넓혀야 하고, 숲을 아껴야 하며, 숲을 보살펴야 해요.


  고속도로 넓힌다며 숲을 밀 때에는 사람 스스로 사람 목숨을 끊는 셈입니다. 더 빨리 달릴 기찻길 놓는다며 숲을 무너뜨릴 때에는 사람 스스로 사람 목숨을 꺾는 셈입니다.


  공장을 지어 공산품을 내놓고 이웃나라에 팔아치워야 경제성장율이 올라간다 하는데, 경제성장율이 올라 보았자 사람들 살림을 넉넉히 채우지 못해요. 숲이 있어 싱그러운 먹을거리를 얻어야지요. 숲이 있어 맑은 바람을 마셔야지요. 숲이 있어 시원한 시냇물을 먹어야지요. 숲이 있어 나무그늘 누리고, 숲이 있어 열매를 즐겨야지요.


.. 지금쫌 / 노을 아래 있겠다. / 그 버려졌던 아이들 / 절뚝거리는 은행나무 / 포크레인에 하반신 찍힌 느티나무 / 왼팔 잘린 버즘나무 / 길바닥에서 주워다 기른 / 신갈나무, 팥배나무, 홍단풍 ..  (나무고아원 1)


  최문자 님 시집 《나무고아원》(세계사,2003)을 읽습니다. 외톨뱅이로 태어나는 나무는 없지만, 도시사람은 나무를 외톨뱅이 되도록 닦달합니다. 외돌토리가 되고픈 나무는 없지만, 도시사람은 나무를 외돌토리가 되도록 들볶습니다.


  나무를 껴안지 않으며 살아가는 도시사람은 나무가 얼마나 아파 하거나 슬퍼 하는가를 못 느낍니다. 나무를 곁에 두며 살아가지 않는 도시사람은 나무가 얼마나 사랑스럽거나 믿음직한가를 모릅니다.


  나무를 볼 줄 모르기에 나무를 노래하지 못하는 도시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시골사람은 나무를 노래할까요. 시골 군·읍·면에서 펼치는 교육이나 문화 정책을 들여다보면, 시골에서 태어난 아이를 하루빨리 도시로 보내어 돈 더 잘 벌 만한 회사원이 되도록 길들이려 할 뿐, 시골아이 스스로 나무를 아끼거나 사랑할 숲아이가 되도록 가르치거나 이끌지 않아요.


  시골아이가 시골아이답게 숲아이로 크지 못합니다. 도시아이 또한 도시아이답게 씩씩한 숲사랑을 키우지 못합니다.


.. 개발한답시고 / 생땅 갈아엎을 때 / 풀들은 뼈도 못 추리고 / 인부들은 아이 밴 나무까지 / 아스팔트 바닥으로 휙휙 집어던졌다. / 터져버린 살, 꽃, 태아 / 삐약거리는 진달래 죽지 않는 나무는 / 결코 살고 싶지 않은 곳으로 / 손목 잡혀 왔다 ..  (나무고아원 2)


  아이들 손에 손전화라 하는 기계를 쥐어 줄 때에, 이 아이들은 무엇을 바라볼까요. 아이들 손에 교과서와 참고서를 쥐어 줄 때에, 이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할까요. 아이들 손에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쥐어 줄 때에, 아이들 손에 자동차와 아파트 열쇠를 쥐어 줄 때에, 또 아이들 손에 극장표와 도서상품권을 쥐어 줄 때에, 이 아이들은 어떤 삶을 누릴까요.


  아이들 손에 나뭇잎 하나 들리기를 꿈꿉니다. 아이들 손에 나뭇가지 하나 들리기를 꿈꿉니다. 아이들 손에 나뭇줄기 따사로운 기운 스미기를 꿈꿉니다. 아이들 손에 푸른 잎사귀 푸른 기운 감돌기를 꿈꿉니다. 아이들 손에 싱그러이 노래하는 숲속 작은 새들 이야기 한 자락 내려앉을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5.12.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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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을 산다

 


  국어사전을 산다. 늘 곁에 두고 읽는다. 국어사전은 벌써 수백 질 갖추었다. 천 가지 남짓 온갖 갈래사전을 나란히 두기도 한다. 한국말을 다루는 여러 가지 자료를 함께 놓기도 한다. 한겨레이기에 누구나 한국말을 쓰며 살아간다지만, 막상 한겨레 스스로 한국말을 알뜰살뜰 갈무리하면서 찬찬히 돌아본 지는 아직 백 해가 채 안 된다. 유럽 나라들은 일찍부터 저희 겨레 말글을 찬찬히 살피거나 다루면서 저마다 온갖 사전을 빚는데, 우리 나라는 아직까지도 우리 말글을 찬찬히 살피지 않을 뿐더러 슬기롭게 다루지도 못한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우두머리와 나라일을 이끈다는 지식인이나 권력자 또한 우리 말글을 곰곰이 헤아리거나 알차게 가다듬지 않는다. 지난날에는 한문을 내세워 권력을 누렸고, 오늘날에는 영어를 앞장세워 권력을 잇는다.


  그러고 보면, 권력만 따지기 때문에 한겨레는 스스로 한국말을 안 아끼거나 안 사랑하거나 안 돌볼는지 모른다. 권력을 따지지 않는다면, 이웃끼리 서로 돕거나 아끼며 살아간다면, 동무와 살붙이를 내 몸처럼 돌보며 지낸다면, 한겨레가 북돋우는 한국말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울 수 있겠지.


  국어사전을 산다. 한글학회에서 엮은 국어사전을 1947년 것부터 1957년 것과 1960∼70년대 것, 1980년대 것, 1990년대 것, …… 이것저것 다 다르게 갖출 뿐 아니라, 여러 국어학자가 저마다 엮은 국어사전에다가, 국립국어원이 1999년에 엮은 국어사전까지 갖춘다. 두툼한 국어사전 한 질을 갖추자면 20∼30만 원쯤 들곤 한다. 적잖은 돈이 들지만, 애써 품과 돈을 팔아 국어사전을 산다. 셈틀을 켜서 인터넷으로 살펴도 되지만, 굳이 국어사전을 산다. 국립국어원 국어사전에는 잘못된 풀이와 올바르지 못한 올림말이 퍽 많다지만, 나 스스로 내 말을 한결 살찌우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글을 한껏 북돋우고 싶다. 국어사전을 산다. 말을 살리는 곳간인 국어사전이요, 말을 새롭게 길어올리는 우물과 같은 국어사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머리와 가슴과 눈과 손 모두 살가운 말빛이 되기를 꿈꾼다. ‘걸어다니는 국어사전’이 되는 일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렇지만, 내가 바라기로는 ‘걸어다니는 국어사전’보다는 ‘푸르게 빛나고 환하게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싱그러이 말하고 곱게 글을 쓸 줄 아는 길이 즐겁다. 늘 쓰는 말로 가장 즐거운 하루를 빚고 싶다. 아이들과 언제나 주고받는 말로 가장 재미난 삶을 일구고 싶다. 4345.12.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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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풀씨 반기는 책읽기

 


  억새 풀씨 팔랑팔랑 나부낀다. 이틀에 걸친 인천마실을 마치고 고흥집으로 돌아오는 시골길에 억새 풀씨가 나를 반긴다. 너희 참으로 곱구나. 너희 참으로 가볍구나. 너희 참으로 환하구나. 다른 곳은 온통 눈밭 되어 새하얀데 우리 고흥은 너희를 비롯한 풀과 나무가 푸르거나 누렇게 빛나면서 숲을 이루는구나. 따스한 고흥은 따스한 사랑 되어 따스한 사람들 가슴에 따스한 이야기로 아로새겨질까. 나도 너희 손길을 받아들여 따스한 말로 따스한 아이들이랑 따스한 보금자리를 일구는 따스한 살림을 아껴야겠다.


  아이들 조잘조잘 노래하며 아버지를 반기는 집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을 하나하나 안고 부대끼며 놀면서 밥을 먹인다. 빨래를 걷어서 갠다. 큰아이가 옷가지를 날라 준다. 나는 옷가지를 옷장에 차곡차곡 놓는다. 아이들은 졸린 눈이지만 더 뛰고 더 놀며 더 왁자지껄 웃으려 한다. 그래, 마음껏 더 놀아라. 신나게 놀며 하루를 누려라. 그러다 코코 곯아떨어지면서 새날을 또 맞이해야지. 4345.12.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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