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 도화면 시골마을 투표소는

낮에 조용합니다.

왜냐하면... 마을 어르신들은 거의 다

새벽에 하거든요.

우리 집은 두 아이들 밥을 먹이고 빨래하고 한 다음,

면내 택시를 불러 2.1km 떨어진 면소재지 중학교에서

아이들 하나씩 맡아서

투표소에 들어갔어요.

 

자전거 타고 나갔으면

아이들이 다 코 자면서 들어왔을 텐데,

택시를 타고 나갔다가 오니...

집에 와서 다들 뗑깡만 부리는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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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동안 어느새 고래뱃속 생각 그림책 3
이진경 그림, 곽영권 글 / 고래뱃속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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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26

 


푸른 마음이 빚는 푸른 그림
― 그리는 동안 어느새
 이진경 그림,곽영권 글
 아지북스 펴냄,2012.8.27./12000원

 


  생각이 맑은 사람은 말을 맑게 들려줍니다. 손길이 고운 사람은 밥을 곱게 짓습니다. 꿈이 푸른 사람은 하루하루 푸르게 누립니다.


  생각에 따라 말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는 결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손길에 따라 밥과 옷과 집을 알뜰살뜰 가꾸기 마련이요, 스스로 가꾸는 밥과 옷과 집에 따라 삶이 시나브로 거듭납니다. 꿈을 어떻게 꾸느냐에 따라 하루를 새삼스레 누리고, 하루를 어찌 누리는가에 따라 삶은 새롭게 피어나곤 해요.


.. 그림은 그리는 사람 생각이에요. 뭐든지 생각나는 대로 그릴 수가 있어요 ..  (4∼5쪽)

 

 


  그림은 그림을 그리려 하는 사람 생각입니다. 글은 글을 쓰려 하는 사람 생각이겠지요. 그러면,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할까요. 생각은 어디에서 피어날까요. 생각은 어떻게 샘솟고, 생각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즐거이 살아가는 하루가 있어 생각을 즐겁게 추스릅니다. 기쁘게 맞이하는 하루가 있기에 생각을 기쁘게 보듬습니다. 즐겁게 살아가지 못하는 하루라면, 내 생각 또한 즐겁지 못해요. 기쁘게 맞이하는 하루가 못 되면, 내 생각 또한 기쁘지 못해요.


  마음가짐이란 몸가짐이고, 몸가짐이란 삶가짐입니다. 마음밭이 몸밭이며, 몸밭이란 삶밭이에요. 하얀 꽃은 하얀 생각을 하얀 마음 되어 그리는 사람 앞에 나타납니다. 붉은 꽃은 붉은 생각을 붉은 마음 되어 그리는 사람 앞에 나타나요. 푸른 잎사귀는 푸른 생각을 푸른 마음 되어 그리는 사람 앞에 나타나고요.


  가을날 누렇게 익는 곡식은 누런밥 맛나게 먹고프다고 꿈꾸는 사람들이 즐겁게 땀흘리며 거둡니다. 겨울날 텅 빈 논배미와 밭자락은 겨우내 조그마한 보금자리에서 식구들이 알콩달콩 얼크러지며 이야기꽃 빛내며 곱게 쉬고픈 사람들 마음과 같습니다. 봄날 푸릇푸릇 돋는 새싹은, 봄이 되어 개구지게 뛰놀고픈 아이들 마음과 같아요. 그러면, 여름날은 어떤 빛이요 어떤 마음일까요.


.. 마음으로 그리는 사람도 있대요 ..  (13쪽)

 

 


  그림을 마음으로 그리는 사람도 있고, 그림을 마음 없이 그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누구라도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요. 어떤 이는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요. 어떤 이는 아무 생각을 안 하는 손재주로 그림을 그려요. 살가이 꾸는 꿈을 그림 한 자락에 담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예술을 빛내겠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덧바르는 사람이 있어요.


  밥 한 그릇 배부르게 먹기를 바라며 구수하게 밥을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차피 먹는 밥이기에 더 예쁘게 꾸미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부르게 먹거나 끼니를 때우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어요. 감옥이나 수용소에서는 ‘죽지 않을 만큼’ 목숨을 붙이려고 밥을 내주곤 해요. 저마다 삶이 달라 생각이 다르고, 마음 또한 달라요. 삶과 생각과 마음이 다르니, ‘같은 일’을 해도, 드러나는 모습과 빛과 무늬 또한 달라요.


  시골에서는 까만 밤하늘 가득한 별을 누립니다. 시골이거든요. 도시에서는 컴컴한 밤이 없어요. 어디에나 환한 불빛이에요. 두꺼운 천으로 창문을 가려도 집안으로 빛살이 들어와요. 다만, 달빛이나 별빛 아닌 전기불빛이지만요. 그러니까, 이러한 밤빛 또한 저마다 바라는 대로 찾아오는 빛살이에요. 고즈넉한 밤을 누리고 싶은 사람은 시골에서 밤별을 누려요. 물질과 문명을 누리고 싶은 사람은 도시에서 번쩍번쩍 꺼지지 않는 밤빛을 누리겠지요.


  옳고 그름이란 없습니다. 맞거나 틀린다는 울타리는 없습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고 나누는 금은 없어요. 저마다 스스로 즐기는 대로 삶이에요. 누구나 스스로 누리는 대로 이야기예요.


  나는 풀빛이 좋아 풀하고 이웃합니다. 누군가는 꽃빛이 좋아 꽃하고 벗삼습니다. 누군가는 나무빛이 좋아 나무하고 동무하겠지요. 그림빛이란, 스스로 살아내는 어여쁜 마음결 드러나는 빛무늬라고 느껴요.


.. 그림에 마음을 흠뻑 쏟아부으면, 그림이 나를 싣고 어디론가 가고 있어요 ..  (24∼25쪽)

 


  이진경 님 그림과 곽영권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그리는 동안 어느새》(아지북스,2012)를 읽습니다. 그리는 동안 어느새 그림이 돼요. ‘작품’이나 ‘예술’이 아닌 그림이 돼요.


  아이들은 작품을 만들지 않아요. 아이들은 예술쟁이가 아니에요. 그렇다고 아이들은 그림쟁이도 아닙니다. 그저 그림을 즐깁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인 나도 여느 어버이요 아버지이면서 ‘한 사람’입니다. 어떤 쟁이가 아니에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나 스스로 예쁜 사람입니다.


  종이 한 장 방바닥에 펼쳐 빛연필을 손에 쥡니다. 빛연필을 손에 쥐고 빛을 그립니다. 빛이 천천히 이어집니다. 빛깔이 살그마니 잇닿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 마음을 그림으로 싣습니다. 나는 나대로, 또 내 꿈과 사랑과 믿음대로, 내 마음을 그림에 가만가만 담습니다. 4345.12.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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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54) -의 : 네 분의 선생님

 

같이 동참해 주신 네 분의 선생님께도 감사하자
《이상봉-안녕, 하세요!》(공간 루,2011) 157쪽

 

  한자말 ‘동참(同參)’은 “어떤 모임이나 일에 같이 참가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자말 ‘참가(參加)’는 “모임이나 단체 또는 일에 관계하여 들어감”을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같이 동참해 주신”은 겹말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같이해 주신”이나 “같이 애써 주신”이나 “같이 있어 주신”처럼 손질해 줍니다.


  ‘감사(感謝)’는 “(1)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 (2) 고맙게 여김”을 뜻합니다. 한국말은 ‘고마움’입니다. “감사하자”는 “고마워 하자”나 “고맙게 여기자”나 “고맙게 인사하자”로 손봅니다.

 

 네 분의 선생님께도
→ 네 분 선생님께도
→ 네 선생님한테도
→ 선생님 네 분한테도
→ 선생님들한테도
 …

 

  “네 권의 책”이 아닌 “책 네 권”입니다. 한국 말투로는 “선생님 네 분”이에요. “네 분”이라는 말마디를 앞에 놓고 싶다면 “네 분 선생님”이나 “네 선생님”이라 적으면 돼요. 말차례와 말투와 말결을 알뜰살뜰 돌아보며 슬기롭게 말꽃을 피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5.12.19.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같이해 주신 네 선생님한테도 고맙다 말하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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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찬물빨래 돌아오다 (대통령 뽑기 생각)

 


  겨울 찬물빨래가 돌아온다. 십이월 첫머리만 하더라도 찬물에 손을 담글 때에 ‘시리다’고까지 안 느꼈으나, 십이월 한복판으로 접어들어 새 추위가 찾아오니, 이제 찬물에 손을 담그며 살짝 ‘시리다’고 느낀다. 그러나, 새벽부터 밤까지,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씻기고 무얼 하고 걸레 빨고 하면서 손에 물기 마를 새 없기는 늘 마찬가지이다. 바야흐로 손 트고 발 트는 철이 돌아왔구나 싶다.


  겨울 찬물빨래는 여름 찬물빨래보다 훨씬 바쁘고 빠듯하다. 겨울에는 물을 끓여서 빨래를 해야 하기도 하지만, 이보다 해가 어느 만큼 떴고, 바깥바람이 얼마나 포근한가를 살핀다. 바깥바람이 꽁꽁 얼어붙으면 해가 났다 하더라도 내다 널거나 말거나 부질없다. 바깥바람이 차면 빨래가 얼어붙으니 방에 널 때보다 못하다. 바깥바람을 살피며 ‘빨래가 안 얼 만하구나’ 싶으면 바지런히 빨래를 해서 내다 넌다. 으레 저녁나절 잠자리 들기 앞서 빨래를 해서 방에다 넌다. 밤에 아이들 밤오줌 누이려고 잠에서 깼을 때 조금 더 한다.


  새 대통령 뽑는다는 날이 밝는다. 나랑 알고 지내는 이웃 가운데 1번 후보가 훌륭하니 이녁을 뽑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분은 꼭 한 사람 있다. 내 어버이는 아마 1번 후보를 찍으실 듯한데, 이번 선거에서는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말씀이 없다. 내 어버이는 지난번 대통령 뽑을 적에는 아주 마땅히 1번 아니고는 될 수 없다고 말씀했고, 지지난번 대통령 뽑을 적에는 나한테 ‘여행경비’를 줄 테니 대통령 뽑는 그날에 맞추어 외국여행 다녀오라고 말씀했다.


  시골마을 택시 일꾼은 2번 후보를 뽑아야 시골도 나아지고 남북교류도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옆지기 명상모임 이웃들도 2번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인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2002년까지는 2번 후보한테 내 표를 주었다. 1997년 겨울, 군대에서 전역을 앞두고 대통령 뽑기를 할 적에는 중대장과 행정보급관 눈치를 보며 목숨을 걸고 2번 후보한테 내 표를 주었다. 이때 ‘설마 전역이 코앞인 나를 어떻게 해코지하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했다. 마지막휴가를 나온 군대 바깥에서 정권이 바뀐 모습을 보았고, 휴가를 마치고 돌아간 군부대는 생각 밖으로 조용했으나, 눈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서 대대장이 나와 동기들더러 ‘눈 때문에 길이 나쁘니 며칠 쉬다(?) 전역하라’ 했는데, 이 말이 더 무서워 눈밭에서 얼어죽더라도 맨발로 전역하겠다고 외치며 깊은 멧골에서 몇 시간 걸려 허우적허우적 뛰쳐나온 일이 새삼스럽다.


  겨울날 찬물빨래가 돌아오면서 여러 생각이 겹친다. 빨래를 할 적에는 다른 생각을 잊는다. 내 마음을 무척 차분히 다스릴 수 있다. 나는 올 2012년 대통령 뽑기에서 누구한테 내 표를 줄까 생각한다. 나는 2002년이 지나고서 한 표 권리를 쓸 적에 5번이나 7번 후보한테 내 표를 주었다. 올해에도 5번 후보한테 내 표를 줄 생각이다. 5번 후보를 기리거나 떠올리는 이웃은 아직 내 곁에 한 사람뿐이지만, 아줌마 대통령이고 노동자 대통령이고를 떠나, 가장 믿음직하며 씩씩한 ‘심부름꾼’ 노릇을 할 사람은 이녁 하나 아닌가 생각한다.


  내 둘레 사람들이 하나같이 ‘2번 후보한테 표를 주지 않으면 투표를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들려준다. 나는 곰곰이 듣다가 묻는다.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 맞나요? 나는 내가 믿을 만하며, 심부름 잘 하겠구나 싶은 사람한테 표를 주겠어요.’ 이런 말을 듣는 분들은 ‘그래도, 될 사람과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으니, 되어야 할 사람한테 표를 주어야지요.’ 하고 말한다. 그래, 나는 찬찬히 듣다가 ‘나는 5번 후보가 될 만하다고 여겨 5번 후보한테 표를 주어요.’ 하고 말한다. 더 하고픈 말이 있으나, 더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리라 느껴 입을 다문다.


  내 책읽기를 돌아보면 내 삶읽기하고 같다. 나는 아무 책이나 읽지 않는다. 나는 베스트셀러도 스테디셀러도 읽지 않는다. 이른바 ‘한 해 마무리’라 하면서 ‘올 한 해 사랑받은 책 투표’ 같은 무언가 한다 할 적에도, 나는 어느 책에도 내 표를 주지 않는다. 내가 올 한 해 사랑한 책이 ‘한 해 마무리’하는 자리에 끼는 적이 아직 없으니까.


  내 마음을 움직일 만한 책이어야 내가 기꺼이 장만해서 읽는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 내놓은 ‘이럭저럭 읽을 만한 책’이라서 읽지 않는다. 백 해 천 해 두고두고 즐길 만하다 싶을 때에 즐거이 장만해서 읽는다.


  나는 내 온 사랑을 실어 빨래를 하고 밥을 지으며 비질을 한다. 이맛살 찡그리면서 밥·빨래·청소를 할 수 없다.


  나로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리 아랑곳할 일이 없다. 1번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2번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또 5번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내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이 대목을 내 이웃들한테 들려주고 싶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 삶은 달라지지 않아요. 누가 대통령이 된대서 우리 삶이 나빠지지 않아요. 누가 대통령이 되니까 우리 삶이 좋아지지 않아요.


  내 삶은 나 스스로 좋게 가꾸려고 힘쓸 때에 좋아져요. 내 삶은 나 스스로 손을 놓거나 마음을 놓을 때에 나빠져요. 독재자가 대통령이 된대서 나빠지는 내 삶은 아니에요. 제국주의자가 우리 나라를 총칼로 쳐들어온대서 나빠지는 내 삶은 아니에요. 내 삶은 내가 일굴 뿐이에요. 내 삶은 ‘공무원 삶’도 ‘회사원 삶’도 아니에요. 내 이웃인 당신이 공무원이거나 회사원이라 하더라도 다를 구석 없어요. 당신이 살아가는 밑바탕은 ‘사람’이지, 어떤 신분이나 계급이나 직위가 아니에요.


  가슴속을 들여다보셔요. 당신 가슴속에서 어떤 빛이 밝게 비추는가를 들여다보셔요.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시장이든 군수이든 구청장이든 면장이든, 어느 누구한테도 기대지 마셔요. 내 삶은 내가 빚어서 내가 누려요. 아이들을 낳아 보살핀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저희끼리 아이들 삶을 빚어서 누려요. 어버이가 만들어서 나누어 주는 삶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빚는 삶이에요. 내 어버이가 나를 낳기는 하지만, 내 삶을 만들어 줄 수 없어요. 나는 내 어버이 뜻이 아닌 내 뜻에 따라 내 삶을 빚는걸요.


  대통령 뽑는 자리에 다녀올 당신이 신문을 내려놓고 방송은 끄고 인터넷은 좀 닫을 수 있기를 빌어요. 삶을 돌아보아 주셔요. 이런저런 새소식 챙긴다면서 스스로 ‘마음읽기’하고 멀어지지 마셔요. 자, 나랑 같이 손빨래를 해요. 빨래기계 하루쯤 쉬라 하고, 다른 일 모두 잊으며 홀가분하게 ‘우리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요. 나 스스로 어떻게 일굴 때에 아름다울 내 삶인가를 생각해요. 내가 빚을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가 아이들하고 누릴 예쁜 나날은 어떤 그림인지를 생각해요.


 

  저마다 찍고 싶은 사람한테 표를 주면 돼요. 민주주의이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하면 끝이에요. 한 표 권리를 썼으니, 우리는 우리 삶으로 돌아가야지요. 아직 5번 후보가 대통령 된 적 없어 모를 노릇이라고도 하지만, 1번이나 2번 후보가 대통령이 된대서, 이 나라에 골프장이 줄어들지 않더군요. 1번이든 2번이든 한결같이 ‘토목공사 대통령’ 노릇만 하더군요. 핵발전소이든 화력발전소이든, 공해덩어리만 잔뜩 만들 뿐, 슬기로운 길을 걷지 않아요. 1번이든 2번이든 군대를 없애거나 줄이겠다고 밝히지 않아요. 둘 다 전쟁무기 더 많이 만들고 군부대 더 키운다고 하더군요. 1번이고 2번이고 ‘회사원·노동자·공무원’이 일터에서 적게 일하며 집에서 아이들과 더 오래 보내도록 할 마음이 없기도 해요. 어린이집을 더 많이 세운다고 하지만, 우리한테는 어린이집 아닌 ‘일자리 나누기’와 ‘내 집에서 내 식구랑 더 오래 사랑을 빚는 삶’이 즐겁고 아름다울 텐데요.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한들, 국가보안법 없어질 낌새는 없구나 싶어요.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한들, 자유무역협정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경제성장율에 목 매다는 슬픈 모습이 사라질 듯하지 않아요.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한들 새만금이고 4대강이고, 또 끝없는 막개발이고, 고속도로이고 고속철도이고, 이제 그만 때려짓겠다 하는 다짐은 없어요.”

 


  이제 아침이 밝고 햇살 따사롭게 내리쬔다. 아침빨래 바지런히 마치고, 아침밥 맛나게 차려서 먹어야지. 네 식구 손 잡고 시골 들길을 걸어 면소재지 투표하는 데에 가야겠다. 4345.12.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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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93 : 두 줄에서 읽는 얼

 


  우리가 애써 책을 읽어야 한다면 어떤 책을 읽을 때에 ‘즐거울’는지 ‘아름다울’는지 ‘참다울’는지 ‘착할’는지 ‘신날’는지 ‘빛날’는지 ‘거룩할’는지 ‘재미날’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책을 읽어야 한다면, 줄거리를 살펴 독후감이나 서평을 써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곧, 우리가 어버이한테서 새 목숨 선물받아 살아가야 하는 까닭은 ‘어른 되어 일자리 얻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삶을 누리는 까닭을 생각하듯, 책을 읽는 까닭을 헤아려 봅니다.


  밥을 먹어야 한다면 어떤 밥을 먹을 때에 즐거울는지 생각해 봅니다. 밥은 왜 먹을까요. 밥은 왜 지을까요. 밥집은 왜 이다지도 많을까요. 회사원이나 공무원은 왜 바깥 밥집에서 밥을 사다 먹을까요. 학교는 왜 급식을 할까요. 집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왜 도시락을 싸려고 하지 않을까요. 도시락을 싸지 못할 만큼 바쁠까요. 도시락을 쌀 겨를에 ‘생산성 높은’ 다른 일을 해야 할까요. 밥짓기는 ‘생산성 낮은’ 일이라, 돈 몇 푼 치러서 사다 먹거나 급식실 만들어서 밥판에 척척 밥을 올려놓고 먹은 다음 설거지조차 안 해도 그만인 셈일까요.


  내 어릴 적을 돌이켜봅니다. 나와 형과 아버지는 날마다 도시락을 둘씩 싸들고 다녔습니다. 나와 형은 중학생과 고등학생 여섯 해를 도시락 둘 싸들고 다녔고, 집과 일터 사이가 먼 아버지도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날마다 도시락 다섯 통 싸는 일을 해야 했고, 나와 형은 도시락 설거지‘라도’ 했습니다.


  요즈음 여느 어머니(아버지 아닌 어머니)들 얘기를 살짝 엿들으면, 소풍날이나 현장학습날 같은 자리에 김밥을 싸 주거나 김밥을 ‘사 주’거나 하는데, 아이들은 빈 도시락통 아닌 ‘빈 스티로폼 통과 나무젓가락과 비닐봉지’ 따위를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집으로 돌아온다고 해요. 열 번 백 번 천 번,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고이 건사하며 쓰는 도시락통 쓰는 집이 아주 드물다고 합니다.


  우리 식구가 시골집을 떠나 할머니 할아버지 댁까지 기차 타고 찾아갈 적을 떠올립니다. 집에서 바지런히 손을 놀려 도시락을 싸기도 하고, 때때로 김밥집에서 사다 먹기도 합니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면 쓰레기가 안 나오지만, 김밥집에서 사다 먹으면 쓰레기가 한 봉지씩 나옵니다. 독일사람 에냐 리겔 님이 쓰고 한국사람 송순재 님이 옮긴 《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착한책가게,2012)라는 책을 읽으면, “우리는 학생들이 프랑스어 수업시간에 교실에서 역할극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대신, 파리 중앙역에 배낭 하나 메고 내려서 거기에서 리옹까지 혼자서 찾아가는 특명을 수행할 날을 꿈꾸었다. 또한 학생들이 아일랜드에서 도보여행을 할 날도 꿈꾸었다(107쪽).”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참말, 아이들은 교과서를 배울 아이들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고 배우며 받아들일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짓고 생각을 지으며 사랑을 지을 아이들입니다. 체험학습 아닌 ‘삶’을 누릴 아이들이에요. 손수 밥을 짓고, 손수 빨래를 하며, 손수 이야기를 엮을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자전거 타고 집과 학교 사이를 다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스스로 흙을 만져 곡식이랑 푸성귀를 거두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서로 어깨동무하며 고운 노래 부르기를 빌어요. 4345.12.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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