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른입니까 8] 씨앗읽기
― 씨앗회사와 정치권력 꿍꿍이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으며 생각합니다. 칼을 쥐어 감자나 양파나 무나 푸성귀를 써는 내 마음속에 흐리거나 어두운 빛이 흐르면, 내 손으로 짓는 먹을거리 또한 흐리거나 어두운 기운이 서리는구나 싶습니다. 즐겁게 노래하면서 밥을 짓고 밥상을 차리면, 아무리 아이들이 개구지게 뛰놀며 밥알이나 국을 흘리더라도 따스하며 밝은 기운이 서리는구나 싶어요.


  빨래를 할 적에도 이와 같습니다.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되어 복복 비비고 헹구어야 옷가지마다 따스하며 밝은 기운이 서려요. 아이들을 씻길 적에도 내 마음이 환하고 기뻐야, 아이들 몸을 정갈히 씻길 수 있어요.


  마음이 어두움으로 꽉 찼을 적에는, 아무리 허울좋은 예쁜 말을 내놓으려 하더라도, 어두움이 잔뜩 낀 슬프거나 새된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마음이 밝게 빛날 적에는, 언제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고운 노랫소리가 솔솔 흘러나옵니다.


  씨앗 한 알 손에 쥐어 논과 밭에 심는 사람들 마음은 어떠할까 헤아려 봅니다. 흙을 밟으며 흙을 만지는 마음이 어둡다면, 씨앗에도 어두운 기운이 서리면서 흙에까지 어두운 기운이 퍼질 테지요. 밝은 마음으로 흙을 밟고서 밝은 생각 길어올려 흙을 만지면, 씨앗뿐 아니라 흙에까지 밝은 기운이 이어질 테고요.


  사람들 누구나 먹는 밥은 쌀로 짓습니다. 쌀은 나락 껍질을 벗겨 얻습니다. 나락 껍질을 살짝 벗기면 누런쌀이요, 나락 껍질을 많이 벗겨 알맹이가 하얗게 드러나도록 하면 흰쌀입니다. 나락 껍질, 그러니까 겨를 살짝 벗긴 누런쌀에는 씨눈이 남고, 겨를 벗길 뿐 아니라 하얀 알맹이만 남기려 하면 씨눈이 잘립니다.


  나락이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볍씨입니다. ‘씨가 되는 벼’, 곧 ‘이듬해에 벼를 새로 얻을 씨앗’입니다. 감자알도 이듬해에 심어 새로 거두려 하면 ‘씨감자’를 갈무리합니다. 씨알이 있어야 다시 흙을 일구면서 우리 먹을거리를 얻습니다. 보리도 밀도 수수도 서숙도 모두 ‘먹을 알곡’에서 ‘씨앗으로 삼을 알곡’을 따로 갈무리합니다.


  밥을 먹는다 할 때에는 씨앗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곡식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씨앗을 먹습니다. 풀이 맺는 씨앗, 이른바 곡식은 풀한테 열매입니다. 능금이나 배나 살구처럼 알이 커다랗지 않으나, 풀열매는 곡식이면서 씨앗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풀열매요 곡식인 씨앗은 ‘거두고 심고 거두고 심고’를 되풀이합니다. 거둔 씨앗을 갈무리하고 다시 심어 먹을거리를 얻으며, 새로 심을 씨앗을 둡니다. 백 해 오백 해 천 해 오천 해 만 해를 잇는 씨앗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오늘 먹는 씨앗은, 천 해 앞서 살아가던 옛사람이 거두고 심던 씨앗입니다. 천 해 앞서 살아가던 옛사람이 거두고 심던 씨앗이란, 만 해 앞서 살아가던 옛사람이 거두고 심던 씨앗이에요.


  사람을 낳는 씨앗은 사람 몸에 깃듭니다. 곡식을 낳는 씨앗은 곡식 몸, 곧 줄기와 뿌리와 잎과 꽃에 깃듭니다. 곡식 유전자를 건드려 돈을 벌려고 하는 회사는, 곡식을 이듬해에 심으면 새로 돋지 않도록 가로막습니다. 사람들이 씨앗을 건사해서 심다가는 씨앗회사가 돈을 못 벌 테니까요. 자꾸자꾸 새로 사다 심도록 길들입니다. 처음에는 씨앗값을 눅게 파는 듯하지만, 곰곰이 따지면, 여태까지 어느 흙일꾼도 씨앗값을 돈으로 치른 적 없어요. 씨앗은 돈으로 사고팔 수 없거든요. 씨앗이란 밥이면서 목숨이기에, 스스로 제 땅을 일구어 제 삶을 일구는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심고 거두며 밥을 먹었지, 돈으로 씨앗(곡식)을 내다 팔아 밥을 먹지 않았어요.


  도시가 커지고 시골을 잡아먹으면서, 흙일꾼더러 씨앗(곡식)을 도시로 내다 팔도록 부추깁니다. 흙일꾼 살림집에는 전기나 수도물이 없어도 되었으나, 흙일꾼이 전기와 수도물을 쓰도록 길들입니다. 흙일꾼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도록 하면서, 땅을 팔고 씨앗(곡식)을 팔도록 내몹니다. 흙일꾼 집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도록 가르치자니, 흙일꾼은 자꾸자꾸 땅을 팔고 씨앗(곡식)을 팔아야 합니다. 스스로 지어서 먹던 씨앗은 조금 못생기거나 볼품이 없더라도, 집집마다 가장 맛나고 아름다웠지만, 내다 팔아야 하는 씨앗은 굵직하고 예뻐야 합니다.


  흙일꾼은 나날이 비료와 농약을 써야 합니다. 비료와 농약 없이 흙을 일구던 사람들이지만, 흙일꾼 집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하니, 풀을 뽑거나 거름을 만들 일손이 모자랍니다. 시골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시골을 떠나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노동자가 되고 보니, 이제 시골에는 늙은이만 남느라 비료와 농약 없이는 ‘씨앗(곡식) 내다 팔 길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시골 흙일꾼이 비료와 농약에 길들면서 ‘스스로 씨앗을 건사해 새로 심던 삶’이 무너집니다. 씨앗회사에서 씨앗을 돈 주고 삽니다. 더 굵고 더 예뻐 보이는 열매가 나는 씨앗을 사다 씁니다. 이제 ‘씨앗과 밥이 되는 목숨(씨앗)’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내다 팔기 좋아 보이는 열매’만 바라봅니다.


  시나브로 씨앗회사가 씨앗을 홀로 차지하면서 흙을 망가뜨립니다. 흙이 망가지니 비료를 더 써야 하고, 일손이 모자라니 농약을 더 써야 합니다. 흙은 자꾸자꾸 더 망가지고, 비료와 농약 장사는 더 불티나게 되면서, 씨앗회사는 조금씩 씨앗값을 올리며 떼돈을 법니다. 이동안, 시골 떠나 도시에서 새 보금자리를 튼 아이들이 다시 시골로 돌아오는 일이 없습니다. 도시로 간 시골 아이들이 늙은 어버이 일손을 거들러 시골로 찾아오는 일조차 없습니다.


  처음에는 씨앗 한 알이지만, 바야흐로 흙과 시골과 숲과 사람 모두 뒤흔들며 무너뜨리는 사회·정치·경제·교육 얼거리요, 씨앗회사입니다.


  사회는 돈만 바라보도록 내몹니다. 정치는 시골을 살피지 않습니다. 경제는 무역과 투자와 수출을 외칩니다. 교육은 ‘씨앗 심는 아이’로 이끌지 않습니다. 씨앗회사는 돈을 벌어들여 기쁘고, 정치권력은 값싼 일꾼(회사원과 공장노동자)을 시골에서 끌여들여 도시를 이루고 세금을 더 거두어들이니 기쁩니다. 사회나 정치나 경제나 교육을 받친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톱니바퀴나 쳇바퀴 구실을 합니다. 연봉이 제법 높다거나 연금과 노후를 지켜 준다는 공공기관이라는 이름은 허울입니다. 시골 떠난 아이들이 도시에서 돈을 버는 동안, 시골마을 늙은 어버이는 허리가 휠 뿐더러, 시골마을 흙과 숲은 모두 망가질 뿐 아니라, 시골이나 도시에서 ‘밥(씨앗)을 먹는 사람’들은 ‘아름답지도 좋지도 맛나지도 않은’ 유전자 건드린 곡식을 먹어야 합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나 닭고기는 ‘유전자 건드린 곡식’으로 만든 사료를 먹으며 화학약품으로 만든 항생제를 먹은 돼지와 소와 닭을 잡아서 공장에서 만듭니다. 풀을 먹든 고기를 먹든, 도시와 시골에서는 몸을 망가뜨리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먹을거리로 넘칩니다.


  씨앗 한 알이 우주입니다. 씨앗 한 알이 우주인 줄 깨달은 슬기로운 사람은 숲에 깃들며 손으로 흙을 일굽니다. 씨앗 한 알이 우주인 줄 알아챈 장사꾼은, 씨앗 유전자를 건드려 돈과 권력을 거머쥐며 사람들을 바보로 길들이려고 합니다. 정치권력은 도시사람들이 ‘씨앗 한 알이 우주’인 줄 깨닫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학교에서는 씨앗하고 동떨어진 교과서만 가르칩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영어에 온마음 바치도록 등을 밉니다. 중·고등학교 푸름이한테는 대학바라기만 하도록 짓누르고, 대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일자리 찾는 데에 마음 사로잡히도록 울타리를 쌓습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사람대로 흙을 잊고 씨앗을 잃습니다. 도시사람은 도시사람대로 삶을 잊고 사랑을 잃습니다.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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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도 책 넘기고 싶어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 누나 모두 책을 넘기면서 들여다보니, 가장 어린 산들보라도 책이 보이면 작은 손으로 살짝살짝 넘기고 싶다. 무언가 들여다보는 책일 수 있고, 얇은 종이를 하나하나 건사하며 넘기는 놀이일 수 있다. 아무튼, 산들보라도 아름다운 책에 깃든 아름다운 이야기를 조그맣고 어여쁜 손으로 느끼리라.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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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싣는 책 (도서관일기 2013.1.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글을 쓸 때에는 이야기를 쓴다. 글솜씨나 글재주를 부리려고 글을 쓰지 않는다. 이야기가 있을 때에 글이 된다. 이야기가 있으면 그림도 되고 만화도 되며, 춤과 노래도 된다. 이야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된다. 곧, 이야기를 찍을 때에 사진이요, 이야기를 찍는 사진을 그러모을 때에 사진책이 된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는 이야기를 찍는 사진이 드물다. 겉으로 그럴듯하게 보이는 모습을 찍으려는 사진이 너무 많다. 멋스럽게 찍은 사진에 억지로 이름을 붙이려 하기 일쑤요, 보기 예쁘장하게 찍은 사진에 이래저래 토를 달곤 한다. 이야기를 찍지 못하니까, 어떤 사진장비를 쓰더라도 ‘사진 읽을 맛’이 안 난다. 이야기를 찍지 못하기에, 제아무리 이름값 있거나 사진경력 길다 하더라도 ‘사진 나누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이야기는 삶에서 비롯한다.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이 스스로 사진으로 담는 이야기가 된다. 스스로 살아가는 하루가 스스로 글로 적는 이야기가 되고, 스스로 빚으며 나누는 삶이 스스로 그리는 그림이나 부르는 노래가 된다.


  그러니까, 사진을 좋아해서 사진을 찍고 싶다면, 먼저 ‘내 삶에서 나 스스로 즐길 이야기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이야기를 내 삶에서 찾으면 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은 ‘남이 안 찍는 모습’을 찍는 사진이 아니다. 사진은 ‘내가 찍고 싶은 모습’을 찍는 사진이다. 그러나, 적잖은 이론가나 전문가나 교수나 비평가는 자꾸 ‘자르기’와 ‘빼기’를 말한다. 사진틀에 ‘모든 모습 다 넣으려 하지 말고, 무엇을 빼겠는가를 생각하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왜 ‘내 이야기를 사진에 담으셔요’ 하고는 말을 못하고, 사진틀에 그럴듯한 모습 집어넣거나 빼는 데에 휘둘리도록 내몰까?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틀린대서 글이 엉터리이지 않다. 노래하는 사람이 가락이나 박자를 놓친들 노래가 엉터리이지 않다. 우리는 기계를 바라지 않는다. 맞춤법 기계가 된대서 글이 읽을 만하지 않으며 문학이 되지 않는다. 가락과 박자 잘 맞추는 기계가 된대서 노래가 들을 만하지 않으며 예술이 되지 않는다. 이야기를 담아서 쓰는 글이 되어야 읽을 만하다. 이야기를 실어 부르는 노래가 되어야 들을 만하다. 곧, 이야기를 살포시 싣는 사진이 되어야 사진이요, 이야기 있는 사진을 그러모을 때에 ‘사진책’이라 말할 만하다.


  추운 한겨울, 두 아이 데리고 서재도서관에 들른다. 작은아이가 몹시 졸려 하기에, 새로 장만한 책들을 서재도서관에 내려놓은 다음, 곧장 우체국으로 자전거를 달린다. 서재도서관에 갖다 놓은 책은 다음에 다시 와서 갈무리하면 되지. 그러고 보니, 겨울이 되어 춥다는 핑계로 요새 비질도 거의 안 하며 살았다. 다음에 들르면 비질부터 하고 책 갈무리를 해야겠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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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꾀꼬리와 춤추는 소나무 옛이야기 그림책 5
강소희 글.그림 / 사계절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33

 


한솥밥 살붙이
― 말하는 꾀꼬리와 춤추는 소나무
 강소희 글·그림
 사계절 펴냄,2008.8.28./9800원

 


  작은 보금자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살붙이는 한솥밥을 먹습니다. 솥 하나에서 지은 밥을 밥상 하나에 올려 나란히 둘러앉아 함께 먹습니다. 작은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한논밥’을 먹습니다. 마을을 둘러싼 논뙈기에서 저마다 일군 나락을 거두어 먹고살지요. 작은 나라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한숲바람’을 마십니다. 늘 싱그럽게 푸른 숲에서 맑게 나누어 주는 바람을 서로서로 즐겁게 마시며 살아갑니다.


  지구별 사람들은 ‘한별숨’을 쉰다고 할 만할까요. 넓디넓은 우주를 헤아리고 보면, 지구별 사람들은 ‘이 작은 별을 이루는 흙과 바람과 햇살’을 서로 나누면서 살아가요. 한국에서 미국으로 흐르는 바다요, 한국에서 덴마크로 흐르는 바람입니다. 일본에서 뉴질랜드로 흐르는 바다요, 일본에서 마다가스카르로 흐르는 바람이에요.


  살아가는 터전은 다 다르다지만, 지구별 테두리에서는 하나예요. 먹는 밥이나 마시는 물은 다 다르다지만, 지구별 테두리에서는 하나예요.


.. 그날 밤, 막내가 아버지 술상을 차렸어. 술안주로 오이소박이를 만들었는데 소 대신에 모래를 채워 상에 올렸지. “출출한데 마침 잘 됐구나.” 아버지가 술 한 잔을 단숨에 비우고 오이소박이를 와삭 베어 물었거든. “에퉤퉤! 오이소박이에 웬 모래가 들었냐?” 막내가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에게 말했어. “오이 속은 아시면서 사람 속은 왜 모르세요?” ..  (10쪽)

 


  서울사람은 서울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지 못합니다. 서울에서 흐르는 냇물을 마실 수 없어요. 너무 지저분한걸요. 서울사람은 서울을 떠도는 바람을 마시지 못합니다. 서울에만 고인 바람을 마시다가는 모두 숨이 막혀 죽는걸요. 서울사람은 서울 땅뙈기에서 거두는 밥을 먹지 못합니다. 서울에는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뿐, 곱고 기름지며 정갈한 흙이란 없는걸요.


  제아무리 힘센 정치꾼 있다 하더라도, 정치로 사람을 먹여살리지 못합니다. 풀과 나무와 숲이 사람을 먹여살립니다. 제아무리 으르렁거리는 재벌 우두머리가 있다 하더라도, 경제성장율로 사람을 먹여살리지 못합니다. 냇물과 샘물과 골짝물과 우물물이 사람을 먹여살려요. 이런 복지 저런 정책이 있다 한들, 사람을 먹여살리지 못하지요. 햇살이 드리우고 숲에서 비롯하는 푸른 바람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을 먹여살려요.


  거꾸로, 시골사람은 서울에서 흘러나오는 매캐한 바람을 나누어 받습니다. 서울에서 흘러나오는 지저분한 쓰레기를 시골에서 받아들입니다. 서울에서 버리는 쓰레기를 시골마을 흙과 숲과 바다와 냇물이 천천히 거르고 씻습니다. 서울에서 더럽힌 바람을 시골마을 흙과 숲과 바다와 냇물이 천천히 가다듬고 다독입니다.


.. 막내는 옷 솜을 뜯어 귀를 꽉 틀어막고, 눈을 꼭 감고 냅다 앞으로 달려갔어 ..  (24쪽)

 

 


  대통령 아무개가 있대서 나라를 살찌우지 못해요. 고운 햇살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따사롭게 내리쬐야 나라를 살찌웁니다. 하루라도 해가 뜨지 않으면 어찌 될까요. 하루라도 햇살이 지나치게 내리쬐면 어찌 되나요. 지구별은 햇볕과 햇살과 햇빛에 따라 삶자락이 크게 달라집니다.


  수출과 수입으로 돈을 벌거나 물질문명 받아들인대서 사회를 북돋우지 못해요. 이 나라 이 땅을 흐르는 물이 맑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골프장을 지어야 할 우리들이 아니라, 물을 정갈히 지켜야 할 우리들입니다. 공장이나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나 공항을 자꾸 늘리는 우리들이 아니라, 냇물이 냇물답게 흐르도록 건사해야 할 우리들입니다. 도시를 자꾸 늘리며 아파트 끝없이 짓는 우리들이 아니라, 골골샅샅 어디에서나 샘물을 맛나고 시원하게 마실 수 있어야 할 우리들입니다.


  아이들은 교과서 굴레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푸르며 싱그러운 나이에 대학입시 때문에 목이 매여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풀을 만지고 흙을 밟으며 숲을 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숲이 없어 모랫바람만 분다면, 숲이 없어 매캐한 배기가스와 매연만 마셔야 한다면, 숲이 없어 나뭇잎을 어루만질 수 없다면, 아이들은 모두 숨이 막혀 죽겠지요.


  가만히 돌아보면, 독도는 한국땅도 일본땅도 아닙니다. 독도는 지구별 섬입니다. 소유권이나 영유권을 외치며 군사무기 늘려 서로 아웅다웅 다툴 일이 아닙니다. 평화를 들먹이며 비무장지대에 엄청난 무기를 쏟아붓고는 젊은 사내한테 총을 갖다 안길 일이 아닙니다. 평화를 바라고 문화를 바라며 통일을 바란다면, 전쟁무기는 죄 내려놓아야 마땅합니다. 독도를 둘러싼 바다를 지키고 싶으면, 이 나라를 지키고 싶으면, 이웃나라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으면, 모든 군대를 없애고, 젊은이를 시골로 보내어 흙을 일구도록 북돋울 노릇입니다.


  한국도 일본도 중국도 미국도 러시아도 모두, 젊은이한테 군인옷을 입히지 말아야 해요. 모두모두 낫과 쟁기와 삽을 들릴 노릇이에요. 젊은이들이 제 겨레 제 나라 시골마을 논밭을 일구면서 숲을 지킬 수 있는 슬기를 갖추도록 이끌 노릇이에요. 엄청난 돈을 새 무기 만드느라 쓰지 말고, 어마어마한 돈을 해마다 미사일·잠수함·전투기·탱크 따위 만드는데 쓰지 말며, 세금 없고 전쟁 없으며 경제개발 없는 아름답고 조용한 누리를 이루도록 힘쓸 노릇입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가르칠 한 가지는 사랑입니다. 아이가 어른한테서 물려받을 한 가지는 사랑입니다. 어른이 땀흘리며 애쓸 한 가지는 사랑입니다. 아이가 맑게 웃으며 동무들과 오순도순 나눌 한 가지는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지은 밥을 먹으며 사랑을 누립니다. 사랑으로 지은 옷을 입으며 사랑을 즐깁니다. 사랑으로 지은 집에서 지내며 사랑을 빛내요.


  사랑이 있을 때에 햇살이 따사롭습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숲이 푸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물이 맑습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마을마다 두레와 품앗이로 홀가분합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임금도 신하도 지식인도 전문가도 없을 만합니다. 임금도 신하도 지식인도 전문가도 모두 제 땅을 일구어 제 밥·옷·집을 건사하면 돼요.

 


.. 막내는 가져온 소나무를 마당에 심었어. 소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날마다 춤을 추고, 꾀꼬리는 소나무 가지 끝에 앉아 날마다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었대 ..  (33쪽)


  김소희 님이 빚은 그림책 《말하는 꾀꼬리와 춤추는 소나무》(사계절,2008)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깊은 두멧시골에서 세 아이를 낳아 건사하는 아버지한테 없는 하나는 바로 사랑입니다. 깊은 두멧시골 작은 집으로 들어온 새어머니한테 없는 하나는 바로 사랑이에요. 깊은 두멧시골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한테도 아직 사랑이 싹트지 못합니다. 그러나, 셋째 아이한테 바로 사랑이 있어요. 셋째 아이는 저희 오빠 둘이 미처 사랑을 싹트지 못하고 스러진 모습을 안타까이 바라봅니다. 셋째 아이는 제 아버지가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모습을 슬프게 바라봅니다. 셋째 아이는 새어머니를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새어머니한테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니 서운합니다. 그래서, 셋째 아이는 이녁 삶을 살찌울 오직 한 가지인 사랑을 찾아 씩씩하게 길을 나서요. 삶을 살찌우며 북돋울 사랑을 가로막거나 흔들려는 어두운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기운을 내요. 숨결을 푸르게 건사하도록 이끄는 사랑을 지키고 싶어 두 다리에 더욱 힘을 주어요.


  사랑이 있는 사람만 꾀꼬리를 만납니다. 사랑을 찾는 사람만 소나무를 마주합니다. 사랑을 꿈꾸는 사람만 활짝 웃습니다. 사랑을 꽃피우려는 사람만 숲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어떤 욕심이나 꿍꿍이로는 사람을 살리지 못해요. 어떤 셈속이나 뒷구멍으로는 내 숨결을 다스리지 못해요. 사랑을 들여 지은 곡식으로 삶을 짓습니다. 사랑을 들여 보살피는 집살림으로 한솥밥 먹는 살붙이를 아낍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한솥밥 이웃입니다.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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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놀이 1

 


  이웃한테서 선물받은 스티커책을 아이한테 안 보여주려고 했으나, 큰아이가 용케 찾아낸다. 그러고는 스터커를 하나하나 떼어 어머니와 아버지 손등에 붙이고, 아버지 사진기에 붙이며, 동생 손등에도 붙인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스티커를 벽에다 하나하나 붙인다. 붙일 적에는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고 비빈다. 그래도 뭐, 우리 집이니까. 우리 집이니 네가 그렇게 꾸미렴. 벽종이에 네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스티커도 붙이렴. 나중에 ‘벽이 좀 달리 보이’거든, 그때에는 네가 이 벽에 종이를 새로 붙이고 그림을 그리든 스티커를 더 붙이든 네 마음대로 하렴.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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