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사랑스레 읽는 책

 


  책을 읽는 우리들은 마음을 사랑스레 읽습니다. 책을 읽는 우리들은 줄거리나 지식이나 정보를 읽지 않습니다. 책을 손에 쥔 우리들은, 저마다 다른 보금자리에서 즐겁게 꿈을 꾸는 이야기를 사랑스레 읽습니다. 책은 곧 마음이거든요. 책을 쓰고 책을 엮는 이들은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갈무리하려고 애써요.


  그러니, 책을 읽을 때에는 ‘책을 쓰고 책을 엮는 사람’이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나누고 싶은 꿈과 이야기를 읽습니다. 책을 쓰는 사람이 뿌린 사랑씨앗을 나누어 받고, 책을 엮는 사람이 보살핀 사랑꽃을 함께 누려서,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어여쁜 사랑숲을 일굽니다. 4346.1.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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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 작품과 사진

 


  사진길을 걷는다고 하는 오늘날 적잖은 이들은 ‘사진쟁이’ 아닌 ‘예술쟁이’로 나아가곤 합니다. 이들은 멋들어진 모습을 찍는다든지, 남들은 아직 안 찍는 모습을 찍는다든지 합니다. 곧, ‘예술이라 할 만한’ ‘작품’을 만들곤 합니다. 멋들어진 모습을 찍는대서 잘못이 아니요, 남들은 아직 안 찍는 모습을 찍는대서 훌륭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멋들어진 모습이란 그저 멋들어진 모습입니다. 사진이 아닙니다. 남들은 아직 안 찍는 모습 또한 그저 남들은 아직 안 찍는 모습입니다.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은 사진일 뿐, 작품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일은 작품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작품은 작품이요, 사진이 아닙니다. 작품을 만들면 작품을 만들 뿐,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저마다 다르게 살아가면서 생각을 빛내고 사랑을 나누는 하루 이야기를 찍어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진이란, 삶이고 생각이며 사랑이요 이야기입니다. 삶이고 생각이며 사랑이요 이야기를 가만히 엮을 때에 알알이 빛나는 사진이 됩니다. 이야기가 드러나서 사진이요, 사랑스러운 이야기이기에 사진이고, 삶이 묻어날 때에 사진입니다.


  작품은 값어치 있는 것입니다. 작품은 돈이고, 이름값이며, 권력입니다.


  사진은 이야기 있는 삶입니다. 사진은 사랑이고, 생각이며, 꿈입니다.


  사진을 하고 싶은 사람은 삶을 누리면 됩니다. 저마다 누리는 삶을 사랑하고 아끼며 좋아하면 저절로 사진이 태어납니다. 내 삶을 내가 사랑하며 즐길 때에 손에 사진기를 쥐면 사진이 태어나고, 내 삶을 내가 좋아하며 누릴 적에 손에 연필을 쥐면 글이 태어나요.


  작품을 만들 때에는 예술쟁이나 작품쟁이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 비로소 사진쟁이입니다. 그러니까, 삶을 누리는 삶빛일 때에 사진빛이에요. 사랑을 나누는 사랑씨앗일 때에 사진씨앗입니다. 꿈을 펼치는 꿈날개일 때에 사진날개예요. 사진을 아름다이 즐기려는 분들이 사진을 스스로 곱게 보살피면서 활짝 웃는 하루를 알뜰살뜰 꾸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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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공장 굴뚝

 


장인어른과 함께
고흥부터 인천까지
자동차로 달린다.

 

순천을 지나 구례로 접어들 무렵
저 앞 봉우리 새하얀
아름다운 숨결 보이기에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아 지리산이로구나.

 

자동차는 임실을 지나고
전주를 거쳐
천안과 평택을 지난다.
어느새 해가 진다.
깜깜한 고속도로를 달린다.
문득문득
우리 곁으로 공장 모습
스쳐 지나간다.
고속도로 옆으로 낀 공장들은
깊어 가는 밤에도 불빛 환하고
깊은 밤까지 허연 연기 뿜는다.

 

달도 별도 볼 수 없는 도시에
공장 굴뚝 허연 연기 솟는다.

 

살짝 눈을 감고
고흥 시골마을 숲을 떠올린다.

 

숲을 바라보는 사람들 마음에
숲기운 어리며
어여쁜 삶 일구는
살가운 사랑으로 자라나다오.
아리따운 말 빛내고
이쁘장한 꿈 보듬는
작은 풀 한 포기
작은 나무 한 그루
이곳 도시에도
힘차게 돋아다오.

 


4345.12.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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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10] 글읽기
― 신문에 ‘사건·사고’ 이야기가 없어야지요

 


  어느 신문이든 펼치면 맨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사고’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정치판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경제판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 노동판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사고’, 사회 언저리에서 불거지는 ‘사건·사고’ 이야기로 가득해요. 여기에 방송 연예인들 ‘사건·사고’가 한몫 단단히 거듭니다.


  어른들 보는 신문이든 아이들 보는 신문이든 서로 매한가지입니다. 도시에서 나오는 신문이든 시골에서 나오는 신문이든 모두 엇비슷해요. 이 나라에서 나오는 신문이란 죄다 ‘사건·사고’만 다루는구나 싶습니다.


  기자들은 ‘사건·사고’를 캐는 사람을 가리키기만 할까 궁금하지만, 오늘날 이 나라에서 기자로 일하는 분들은 ‘사건·사고’ 다루는 울타리를 스스로 벗어나지 않습니다. 신문을 읽거나 방송을 켜거나 인터넷을 여는 여느 사람들 또한 ‘사건·사고’ 이야기에 눈길을 보내고 생각을 기울입니다.


  날마다 온갖 ‘사건·사고’ 이야기가 넘실거립니다. 사람들은 속닥속닥 ‘사건·사고’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는 자꾸 잊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는 차츰 잊습니다. 서로 ‘꿈꾸는’ 이야기는 그예 잊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을 가까이하는 동안 사람들 마음속에는 ‘사건·사고’ 생각이 꾸준히 스며듭니다. 생각밭에도 마음밭에도, 또 지식밭에도 온통 ‘사건·사고’ 이야기를 심습니다. 이리하여, 오늘날 여느 사람들은, 도시에서 지내든 시골에서 지내든 ‘풀·숲·나무’ 이야기를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옆에 ‘풀·숲·나무’가 있어도 못 느끼기 일쑤요, 코앞에서 ‘풀·숲·나무’를 마주하더라도 어떤 내음이요 어떤 빛깔이며 어떤 무늬인가를 알아채지 못해요.


  바람이 불어도 바람내음을 못 맡는 도시사람입니다. 햇살이 드리워도 햇살내음을 안 맡는 시골사람입니다. 들새가 노래해도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에 파묻혀 도시사람은 들새와 벗하지 못합니다. 멧새가 지저귀어도 경운기와 갖가지 기계를 다루느라 시골사람은 멧새와 동무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은가에 따라서, 나한테 찾아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스스로 ‘사건·사고’ 이야기에 젖어들면, 언제나 ‘사건·사고’ 이야기가 나한테 찾아듭니다. 스스로 ‘풀·숲·나무’를 떠올리면 언제나 ‘풀·숲·나무’ 이야기가 나한테 다가와요.


  내 삶에 맞추어 내 생각이 자랍니다. 내 생각에 따라 내 말이 자랍니다. 곧, 내가 쓰는 글이든 이웃이 쓰는 글이든, 저마다 생각을 담는 글이요, 생각이란 삶을 담기 마련이니, ‘삶을 담는 글’입니다. ‘사건·사고’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사건·사고’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을 부릅니다. ‘풀·숲·나무’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풀·숲·나무’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을 부를 테지요.


  온누리를 따뜻하게 어루만지면서 평화와 평등과 민주와 통일이 드리우기를 바란다면, 바로 나부터 내 마음자리에 평화와 평등과 민주와 통일이 싹틀 수 있도록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내 마음자리에 ‘사건·사고’ 이야기가 아닌 ‘풀·숲·나무’ 이야기가 감돌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꿈을 생각하고 사랑을 생각하며 믿음을 생각할 노릇이에요. 꿈을 빚는 이야기를 스스로 쓰고, 사랑을 빚는 이야기를 스스로 읽으며, 믿음을 빚는 이야기를 다 함께 나눌 노릇이지요.


  ‘사건·사고’ 이야기를 자꾸 꺼낼수록, 사람들은 ‘논쟁·투쟁’에 휘둘립니다. ‘풀·숲·나무’ 이야기를 천천히 주고받으면, 사람들은 아름다움과 빛줄기와 따사로움에 시나브로 젖어듭니다.


  신문에 ‘사건·사고’ 이야기만 가득하다면 신문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방송에 ‘사건·사고’ 이야기만 수두룩하다면 텔레비전을 꺼야 합니다. 인터넷에 ‘사건·사고’ 이야기로 빼곡하다면 인터넷 창을 닫아야지요. 겨울숲을 바라보아요. 겨울들을 거닐어요. 겨울바다를 마주해요. 너른 하늘 파랗게 눈부신 숨결을 마셔요. 봄을 기다리는 새싹이 얼어붙은 땅에서 힘껏 솟아나려고 하는 모습을 지켜봐요. 한겨울에 먹이를 찾는 들새와 멧새들 날갯짓을 물끄러미 바라보아요. 마음속에서 사랑이 자라고 꿈이 피어나며 믿음이 솟아나도록, 생각씨앗 한 알을 슬기롭게 다스려요. 내 작은 힘을 모으고 네 작은 힘을 갈무리해서, ‘참신문’을 엮을 수 있기를 빌어요. ‘사건·사고’ 이야기로 넘치는 ‘거짓글’은 이제 그만 쓰고 그만 읽어요. 서로 아름답게 어깨동무하면서 착하게 살림하는 ‘참글’을 쓰고 즐겁게 읽어요.


  글쓰기는 삶쓰기예요. 글읽기는 삶읽기예요. 내가 쓰는 내 삶이 ‘사건·사고’뿐이라면 너무 메말라 답답하지 않겠어요? 내가 쓰는 내 삶이 ‘풀·숲·나무’라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푸르고 싱그러우며 어여쁘겠지요? 서로 사랑할 삶을 읽고, 함께 사랑할 삶을 쓸 때에, 비로소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4346.1.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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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몸

 


  인천으로 사진강의를 떠나야 하는 날이 밝는다. 새벽 세 시부터 짐을 꾸리며 부엌일 몇 가지를 한다. 새벽 다섯 시 이십오 분 즈음 택시 할아버지가 오시기로 했다. 읍내에 가서 순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는 순천 기차역에서 일곱 시 이십사 분 기차를 타야 한다. 바쁘게 움직이는데다가 나 혼자 움직여야 하는 만큼, 오늘은 길에서 오래 보내야 하니, 내 몸한테 이야기를 건다. 집에서 똥을 누고 가면 좋겠네. 새벽 네 시 즈음 아랫배가 슬슬 보글거린다. 뒷간에 간다. 시원하게 똥을 뺀다. 고맙구나. 내 목소리를 들어 주어서.


  서울에서 볼일 마치고 인천으로 와서 여관에 묵는다. 뒹굴뒹굴하면서 아침을 맞이한다. 몇 시쯤 일어나서 골목마실을 하며 혜광학교로 찾아갈까. 가기 앞서 이곳에서 똥을 누고 가면 좋겠네, 하고 또 이야기를 건다. 이윽고 몸이 내 목소리를 받아들여 아랫배가 슬슬 보글보글한다. 고맙네.


  참말, 몸은 내 마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잘 받아들인다. 내 마음이 즐거운 꿈을 몸한테 들려주면, 몸은 즐거운 이야기로 빛난다. 내 마음이 슬프거나 궂거나 얄딱구리한 생각을 몸한테 들려주면, 몸은 이 또한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마음가짐이 몸가짐을 낳는다. 마음씨가 몸씨로 이어진다.


  몸을 다스리는 마음이라면, 하늘을 바라보고도 이야기를 건넬 수 있겠지. 오늘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 주렴. 혜광학교 푸름이들하고 골목마실 해야 하거든, 이 아이들이 골목마실 하면서 사진 찍을 때에 손이 시리지 않도록 날이 살살 풀리면 기쁘겠구나. 내 마음 들어 줄 수 있겠지, 어여쁜 하늘아? 4346.1.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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