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Kitchien 5
조주희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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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04

 


먼 데서 찾아온 사랑
― 키친 5
 조주희 글·그림
 마녀의책장 펴냄,2011.4.29./1만 원

 


  곁에 있을 적에는 모르다가, 떠나고 보니 안다고들 말하는데요, 곁에 있을 적에도 모르지는 않았으리라 느껴요.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가슴 깊이 알아채면서 그리움을 빚는구나 싶어요. 그래서, 사랑은 먼 데까지 찾아갑니다. 사랑이기에 먼 데를 가까운 곳처럼 드나듭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먼 데까지 찾아가지 않습니다. 사랑이기에 먼 데를 그리 어렵지 않게 드나듭니다.


- “서울서 오셨소? 먼 데서 왔수.” “오래 걸렸지. 이제야 짐을 모두 내려놨으니까.” (13쪽)


  곁에 두지 않으면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늘 함께 어울리지 않으면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어린 날 어렴풋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하고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붙어서 움직이는 일이 마땅하다고 퍽 어렴풋하게 생각했습니다. 공동육아라든지 어린이집이라든지, 또 초등학교라든지, 중·고등학교와 학원이라든지, 아이들을 넣을 ‘시설’과 ‘학교’가 많아요. 아이들을 이런 곳 저런 데에 넣으며 무언가 ‘가르치’는 일이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다만, 아이 낳은 어버이는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지 궁금해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아무것 안 가르치면서, 시설과 학교가 ‘가르치기’를 몽땅 도맡아야 하는지 궁금해요.


- ‘여긴 너무 조용해서 귀가 아프다. 엄마는 왜 이런 곳에 사는 걸까. 퇴근하는 아빠와, 엄마, 나,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던, 하늘을 붕 날아오를 만큼 따뜻했던 기억들이, 이곳에선 거짓말처럼 얼어붙는다.’ (50∼51쪽)


  어버이가 아이를 낳을 때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싶어 아이를 낳습니다. 사랑하고 싶어 짝꿍을 사귑니다. 사랑하고 싶어 동무랑 손을 잡고 걷습니다. 사랑하고 싶어 삶을 누립니다. 사랑하고 싶어 책을 읽고, 사랑하고 싶어 노래를 부릅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먼 데서 찾아오지 않아요. 사랑이 아니라면 곁에서 함께 어울리지 않아요. 사랑이 아니라면 한솥밥을 먹지 않아요. 사랑이 아니라면 눈빛 마주하며 환하게 웃지 않아요.


  사랑이기에 흐드러지게 춤을 춥니다. 사랑이기에 글월 하나 띄웁니다. 사랑이기에 소근소근 속삭입니다. 사랑이기에 씨앗 한 알 심습니다. 사랑이기에 풀잎 살며시 쓰다듬으며, 너 참 예쁘네, 하고 말을 겁니다.


- “너 이런 것도 만드니? 남편이 케이크도 안 사다 줘? 그런 거지?” “하하하. 처음 해 봤는데 역시 좀 엉망이네. 살짝 타기까지 했어.” (71∼72쪽)


  아이를 사랑한다면, 텔레비전을 보지 말아요.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 얼굴을 바라봐요. 아이를 사랑한다면, 회사에 가지 말고 학교에 아이를 넣지 말아요. 어버이와 아이가 따사로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함께 밥을 짓고 함께 집살림 꾸리며 함께 논밭 일구어요. 아이한테 어버이 삶을 보여주면서 아이가 제 삶을 씩씩하게 보듬을 수 있게끔 도와주셔요. 어버이로서 아이하고 누릴 애틋한 사랑을 생각하며 보금자리 어여삐 여미어요.


  사랑이 왜 먼 데에서 찾아오는지 생각해요. 사랑이 왜 늘 곁에서 맑게 빛날까 하고 생각해요. 사랑이 왜 샘물처럼 노상 싱그럽게 솟아나는지 생각해요. 사랑이 왜 밤하늘 밝히는 별처럼 반짝반짝 아름다운지 생각해요.


- “집에 가면, 밥이 차려져 있다는 게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 그걸 모르고 이제껏 밖으로만 돌았구나.” (152쪽)


  조주희 님 만화책 《키친》(마녀의책장,2011)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키친》 다섯째 권에서는 먼 데서 찾아오는 사랑과 늘 곁에 있는 사랑을 ‘밥’ 하나 사이에 두고 살며시 풀어냅니다. 참말, 사랑은 먼 데에서 찾아오지요. 참으로, 사랑은 곁에 늘 있지요. 먼 데서 찾아오는 사랑을 가슴으로 받아들여 꽃이 피고, 늘 곁에 있는 사랑한테 따순 손길 내밀며 열매가 맺어요.


  아침저녁으로 짓는 밥이 사랑입니다. 하루하루 누리는 삶이 사랑입니다. 잠자리 이불 여미는 손길이 사랑입니다. 들길을 천천히 거닐며 겨울날 멧새 먹이를 가만히 떠올리는 마음그릇이 사랑입니다.


  깊은 밤 지나 새벽이 밝습니다. 작은아이 먼저 칭얼거려 밤오줌 누이니, 큰아이 덩달아 칭얼거려 밤오줌 누여 달라 합니다. 너희가 앞으로 몇 살까지 이렇게 밤칭얼노래 부르려나. 너희 아버지는 너희 삶을 글로도 옮기고 사진으로도 적바림하며 마음밭에도 아로새기거든. 앞으로 잘 지켜보겠어. 이제 너희 아버지도 기지개 켜고 너희 곁에 다시 누워야겠다. 4346.1.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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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1-1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가면, 밥이 차려져 있다는 게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 그걸 모르고 이제껏 밖으로만 돌았구나.” (152쪽)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워서인지 집이 있어 따뜻하게 지내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어디선 본 글이 생각나네요. 대문을 쾅쾅 두들길 수 있는 나의 집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는 그런 글이에요.(제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ㅋ)

작은 일도 살펴보면 감사할 게 아주 많은 세상입니다. ^^

파란놀 2013-01-19 08:30   좋아요 0 | URL
작은 일을 고마워 한다기보다,
모든 일이 나한테 즐겁고 고마운 삶이로구나 ... 하고 생각해요~ ^^

그러니까, 오늘도 고맙고
내 둘레 모든 벗님들 참말 고맙구나 싶어요~
 

모든 책은 이야기이다

 


  모든 책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책은 나한테 반가운 이야기일 테고, 어느 책은 나한테 낯선 이야기일 테며, 어느 책은 나한테 새로운 이야기일 테지요. 어느 책은 나한테 싫은 이야기일 테고, 어느 책은 나한테 놀라운 이야기일 테며, 어느 책은 나한테 동떨어진 이야기일 테지요.


  모든 사진은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없이 사진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야기 있을 때에 비로소 사진입니다. 모든 글은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없이 쓸 수 있는 글은 없습니다. 이야기 있기에 글맛이 살고 글멋이 납니다.


  그러니까, 모든 노래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려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모든 춤은 이야기요, 모든 그림은 이야기입니다. 춤사위에 이야기 한 자락 담고, 그림 한 칸에 이야기 두 자락 담아요.


  이야기를 부르는 사람입니다. 이야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이야기를 빚는 사람입니다. 내가 엮어 나누려는 이야기가 책 하나를 징검돌 삼아 천천히 퍼집니다. 내가 일구어 북돋우고픈 이야기가 책 하나에 사랑씨앗으로 담겨 찬찬히 자랍니다.


  이야기를 읽으려고 책을 읽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려고 책을 씁니다. 이야기를 누리려고 책을 장만합니다. 이야기 꽃잔치 열고 싶어 책방을 꾸리고 도서관을 세우며 책마실을 다닙니다. 4346.1.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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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09. 알아볼 수 있는 책이란 - 헌책방 대성서점 2013.1.17.

 


  쪽종이에 책이름을 몇 가지 적은 다음 헌책방 문을 열고 들어와서 “이 책 있어요?” 하고 여쭙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쪽종이에 적은 책이름으로는 책을 못 찾습니다. 쪽종이에 책이름 적은 분으로서는 그 책을 꼭 만나서 읽고 싶을지라도, 그처럼 바라는 책을 그날 그곳에서 찾으려 하는 마음은, 복권에 뽑히기를 비는 마음하고 같습니다. 곧, 하늘에서 ‘책이 떨어지기를 바라’서야 책이 떨어질까요. 스스로 책시렁을 살피고, 스스로 책탑을 옮기면서, 차근차근 책을 살피고 헤아리며 만나야 책을 알아채어 장만할 수 있습니다.


  새책방에 찾아갈 적에도 쪽종이를 들고 찾아가면, 이녁이 바라는 책은 거의 못 찾기 마련입니다. 아마, 인터넷책방이라면 이럭저럭 찾아볼 만하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나날이 인터넷책방으로 옮길 테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차츰 ‘꼭 읽어야겠다 여긴 책’만 읽고, 마음을 살찌우거나 생각을 북돋우거나 사랑을 일깨우는 책은 못 만나면서 살아갈 테지요.


  알아볼 수 있는 책이란, 마음을 기울여 살피는 책입니다. 알아보는 책이란, 사랑을 쏟아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알아보아 즐기는 책이란, 생각을 빛내면서 삶을 읽도록 돕는 책입니다.


  잘 보일 만한 자리에 알뜰히 꽂혔으나 안 알아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안 보일 만한 자리에 듬성듬성 꽂혔으나 이내 알아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이 어두워서 못 알아보지 않습니다. 눈이 밝아서 잘 알아보지 않습니다. 책을 마주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집니다. 책을 사귀려는 마음씨에 따라 달라집니다. 책하고 어깨동무하려는 마음결에 따라 달라집니다.


  좋아해 봐요. 사랑해 봐요. 즐겁게 웃어 봐요. 환하게 노래해 봐요. 그러면, 책이 나한테 찾아와요. 내 곁에서 빙글빙글 웃고 춤추는 책들이 내 품에 포옥 안겨요. 4346.1.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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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버스 라디오

 


  충북 청주에서 전남 순천까지 달리는 시외버스가 하루에 두 차례 있다. 아침 아홉 시와 낮 두 시 사십 분. 청주에서 일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가려고 인터넷으로 시외버스를 살핀 때는 낮 두 시 사십이 분. 아차, 하루 두 차례 있는 시외버스를 놓치네. 청주부터 순천까지 달리는 시외버스는 세 시간이면 된다는데, 청주에서 전주로 달리고, 전주에서 다시 순천으로 달리니, 자그마치 여섯 시간 반 길이 된다. 세 시간 반 이나 빙 돌아서 순천에 닿는다.


  전주로 달리는 청주 시외버스는 라디오 소리 크게 울린다. 청주 시내를 지나 유성과 대전을 거쳐 전주에 닿는다. 라디오 소리에 귀가 멍할 듯하다. 졸린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린다. 저 소리에 끄달리지 말고, 내가 바라는 생각을 불러들이자. 시골집에서 뛰놀 아이들을 생각한다. 서재도서관을 생각한다. 내 둘레 좋은 이웃들을 생각한다.


  순천으로 달리는 전주 시외버스는 텔레비전 소리 크게 퍼진다. 라디오보다 더 센 텔레비전이로구나. 눈을 뜰 수 없구나. 귀도 닫고 눈도 닫자. 머리도 닫자. 다시 내 마음 추스르자. 밤바람과 밤별과 밤구름을 떠올리자.


  시외버스는 전주를 벗어나 남원을 지나고, 곡성과 구례를 거친다. 이제 숲길을 달린다. 문득, 도시를 다 벗어났다고 깨닫는다. 안경을 끼고 창밖을 바라본다. 어슴푸레하게 멧자락이 보인다. 아직 달은 안 보이지만, 섬진강 모습이 거뭇거뭇 보인다. 지리산 옆을 달릴 적에는 지리산 꼭대기에 켜진 불빛 보인다. 저 불빛은 무얼까. 지리산 산장인가.


  숲길을 달리니, 시외버스 텔레비전 소리가 퍼지건 말건 하나도 안 들린다. 숲이란, 이렇게 상큼하구나. 숲이란, 이처럼 어여쁘구나.


  저녁 아홉 시가 되어 시외버스가 순천에 닿는다. 드디어 고흥 가는 마지막 시외버스에 오른다. 그런데, 고흥 들어가는 시외버스에 타는 젊은 사내와 가시내가 스마트폰으로 연속극을 켠다. 너희들, 시외버스에서 연속극 보고프면, 귀에다가 소리통 꽂아야 하지 않겠어? 한숨을 쉬다가, 천천히 숨을 고른다. 바르게 앉아서 눈을 감고, 한 시간 반 뒤 만날 우리 아이들을 생각한다. 이제 잠자리에 들었을까, 아직 안 자며 졸린 눈 비비며 아버지 돌아오기를 기다릴까. 고흥 읍내에 닿으면 무얼 사서 들어갈까. 열 시 넘어 읍내에 닿을 테니 물고기는 못 살 테고, 어떤 과일 장만해서 들어가 볼까.


  고요히 생각에 젖다가 눈을 뜨니 읍내에 거의 다 온다. 주섬주섬 짐을 꾸린다. 여섯 시간 반 동안 시외버스를 탔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코가 막히고 눈이 핑 돈다. 읍내이기는 하더라도, 고흥에 내리면서 천천히 코와 눈과 머리가 풀린다. 우리 집이 시골 아니었으면 내가 어찌 살았을까 싶고, 내 갈 곳 시골 아니라면 내가 마음을 어떻게 다스렸을까 싶다.


  택시를 타고 마을 어귀에 내린다. 별이 쏟아진다. 눈물이 핑 돈다. 좋은 밤이구나. 좋은 하늘이구나. 늦은 저녁 마을에 불 켜진 딱 한 곳 우리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 소리 마당에서도 들린다. 4346.1.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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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벽화 높새바람 3
김해원 지음, 전상용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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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28

 


아이들이 빚은 그림
― 고래 벽화
 김해원 글
 바람의아이들 펴냄,2004.4.14./6800원

 


  아이들은 그림을 그립니다. 따로 그림쟁이라는 이름이 붙거나 예술쟁이라는 이름을 누리려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은 없으나, 아이들은 즐겁게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종이에도 그림을 그리지만, 손바닥에도 그림을 그리고, 팔뚝이나 볼에도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벽에도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세금고지서나 책에도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방바닥에도 그림을 그리며, 밥상이나 책상에도 그림을 그려요. 그리고, 흙바닥이나 모랫바닥에도 그림을 그리지요.


.. 원시 시대 고래 벽화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마을에 짜하게 퍼졌다. 덕수 삼촌마저도 자신이 대단한 일이라도 한 양 떠들며 다녔으니 못 들은 사람이 없었을 거다. 저녁 때까지 마을 사람들은 너나없이 땅끝교회 뒷산에 올라 우리 비밀 본부를 보고 왔다 ..  (50쪽)


  그리고 싶어 그리는 그림입니다. 곧, 부르고 싶어 부르는 노래입니다. 노래꾼이 되려고 노래를 부른다면 몹시 슬픕니다. 그러니까, 글꾼이 되고 싶어 글을 쓴다면 얼마나 서글플까요. 사진꾼이 되려고 사진을 찍는다든지, 정치꾼이 되려고 정치를 하면 얼마나 안쓰러울까요.


  공무원이 되려고 대학교에 들어가서 시험공부 하는 젊은 넋은 매우 딱합니다. 회사원이 되려고 영어를 죽어라 배우며 학원을 다니는 어른 또한 참말 가엾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누리지 않을 때에는 불쌍합니다. 스스로 사랑할 삶을 찾지 않을 때에는 어두운 빛이 드리웁니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사랑스럽게 살아야 사람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꿈을 꾸어야 목숨입니다. 어른이랑 아이는, 따사롭게 눈빛 나누며 이야기를 속삭여야 푸른 숨결 건사합니다.


.. “우, 우리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어. 내,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더 심각해. 어, 어, 어떡하지.” ..  (54쪽)


  2013년을 맞이해 여섯 살이 된 우리 집 큰아이가 글을 씁니다. 재미 삼아서 씁니다. 아이는 제 이름 넉 자 ‘사름벼리’를 예쁘장하게 씁니다. 아버지랑 어머니한테 이런 글 저런 글 써 달라고 종이를 들고 달려옵니다. 아이는 그림책이나 이런저런 종이를 들고는 무슨 글이 적혔는지 묻습니다.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먼저 글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이가 궁금해 할 때에만 알려줍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우리 아이가 즐겁게 뛰놀고픈 이 나이에 즐겁게 뛰놀기를 바랍니다. 한창 개구지게 놀다가 살며시 쉴 적에 그림책도 들추고 글놀이도 하면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릴 적에 딱히 이렇게 그리라 저렇게 그리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그리고픈 이야기를 종이에 한 가득 담습니다. 나는 나대로 아이 곁에서 내고 그리고픈 이야기를 종이에 한 가득 담아요.


  아이 그림이 예술품이 되어야 할 까닭 없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다가 살며시 찍는 사진이 예술품이 되어야 할 일 없습니다. 그림은 즐거운 이야기 담는 그릇입니다. 사진은 재미난 삶 담는 접시입니다.


  그림에 점수를 매길 일 없고, 글씨쓰기에 점수를 붙여야 할 까닭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이한테 시험을 치르도록 할 일이 없으며, 아이가 시험에 빠져야 할 까닭이 없어요.


.. 우리 사총사는 가짜 벽화를 진짜 벽화인 줄 알고 좋아하는 어른들이 좀 우스웠다. 애들만 보면 뭐든지 가르치려 드는 잘난 어른들이 속아 넘어가는 것을 보니 솔직하게 말해 기분이 좋았다. 그렇다고 진실을 묻어 둘 수는 없었다 ..  (59쪽)


  김해원 님이 쓴 창작동화 《고래 벽화》(바람의아이들,2004)를 읽습니다. 어느 시골마을, 아마 ‘땅끝교회’라는 이름이 나오니, 전라남도 해남을 헤아리며 쓴 창작동화로구나 싶은데,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읽으면서, 이 창작동화를 아이들하고 왜 읽어야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골마을에 뭔가 남다른 일(사건)이 생기고, 시골마을 어른들이 돈에 눈이 먼 일 때문에 다툼(사고)이 벌어지며, 마지막에 아이들이 참을 털어놓으며 어영부영 마무리됩니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말썽쟁이 아이들더러 학교 벽그림을 그리라고 이야기한다는데, 한편으로는 있을 법하구나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애써 창작해서 동화로 써서 읽히면서 어떤 빛과 꿈을 나눌 만한지 잘 모르겠어요.


  거짓말을 하던 아이들은 스스로 부끄러운 줄 모르면서, 어른들만 거짓스러운 이름값에 얽매인다고 눈을 흘기는 줄거리를 보여주어야 하니까, 이 동화책을 읽혀야 할까요. 시골마을 아이들이 깊은 멧골에 ‘놀이터(아지트)’를 꾸려서 재미나게 노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어, 이 동화책을 읽혀야 할까요.


  글쎄, 우리 식구는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데, 이 시골마을 둘레 아이들 가운데 깊은 멧골에 깃들며 노는 아이는 아직 못 봅니다. 시골 아이들도 학원 가랴 바쁘고, 면내나 읍내 쏘다니느라 바쁘며,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보느라 바빠요. 가난한 집 아이들은 어버이 일 거드느라 바쁘고, 학교 언저리와 집 둘레에서 하루를 보내곤 합니다.


  어쩌면, 시골 아이조차 시골스러운 꿈과 사랑을 빚지 못하는 슬픈 한국 사회에서, 시골 아이들부터 기운을 차려 숲을 누비고 들을 달리기를 비는 마음으로 창작동화 하나 내놓았을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고래 벽그림’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왜 이런 그림을 그려야 할까요. 아이들은 어떤 그림을 즐겁게 누리면서 아이들 생각과 마음을 살찌우는가요. 어디서 본 대로 따라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아이들 나름대로 아이들 마음자리를 빛내는 그림을 그리는 길을 보여주는 창작동화로 거듭날 수는 없을까요.


.. 교장 선생님은 우리에게 벽화를 그리라는 벌을 주고는 낡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 문을 나갔다. 교장 선생님은 가면서 여전히 벽 앞에서 서 있느 우리에게 “어여 가!”라며 손까지 흔들었다 ..  (95쪽)


  시골 초등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칩니다. 시골 초등학교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도시 전문가’가 만들어서 ‘도시 이야기’를 배우도록 이끕니다. 시골 아이가 시골을 사랑하면서 시골에서 보금자리를 일구도록 돕는 교과서는 아직 없고, 시골학교 교사 또한 시골 아이가 시골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랑을 들려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시골 아이는 어떤 어른을 바라보며 삶을 배울 만할까요. 시골 아이는 ‘시골 사람’으로 자라야 할까요, ‘도시 사람’으로 자라야 할까요. 아니, 시골 아이는 ‘사람다운 삶’과 ‘사람다운 숨결’을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듣고 보고 느끼면서 하루를 빛낼 수 있을까요.


  요즈음에도 시골 교사나 교장 가운데 ‘낡은 자전거’를 끄는 분이 있을까 궁금하지만, 아이들더러 학교 벽에 그림을 그리라 할 만한 분이라면 ‘낡은 자전거’를 끌 테지요. 그렇지만, 책을 덮으면서도 한숨은 자꾸 나옵니다. 글쓴이는 충청도에서 태어났고, 동화책 사이사이 ‘충청도 고장말(사투리)’로 보이는 말씨가 더러 나오지만, 주인공 아이들도 웬만한 어른들도 고장말을 안 씁니다. 아무래도 요새 아이들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 익숙해서 서울말(표준말)을 쓴달 수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골 아이들은 저희끼리 어울리면, 또 시골 어른들도 이녁끼리 어울리면, 다 고장말을 써요. 여러모로 아쉽고 쓸쓸합니다.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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