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도서관에 있는 책 (도서관일기 2013.1.8.)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집에서 다 읽은 책을 도서관에 갖다 놓는다. 나는 2007년부터 내 책들로 도서관을 열었기에, 내 책은 ‘먹고 자며 살아가는 집’이랑 ‘사람들 누구나 찾아와서 들락거리며 만지작거릴 수 있는 도서관’ 두 군데에 나누어 둔다. 인천에서는 한 해 반 동안 3층이 도서관이었고 4층이 살림집이었다가, 도서관이랑 살림집 깃든 건물임자가 지나친 구두쇠 짓을 하며 비 새는 건물을 안 고치기에 살림집을 다른 데로 옮겨 지냈다. 인천을 떠나 충북 음성 멧골집에서 지낼 적에는 살림집 바로 앞에 도서관을 놓았다. 다시 새 시골로 옮겨 전남 고흥에 뿌리를 내리면서, 살림집은 마을 한복판에 있고, 도서관은 마을 앞 문닫은 초등학교 건물에 놓는다.


  한 건물에 살림집과 책집이 있으면 책을 한결 잘 돌볼 텐데 하고 꿈꾼다. 시골집과 시골도서관이 가까이 있지만, 천천히 3∼5분쯤 걸어갈 자리에 있으니, 곁에 두고 볼 책을 자꾸 집에 쌓는다. 집에 책이 자꾸 쌓이니, 틈틈이 한짐 가득 꾸려 도서관으로 옮긴다. 집에는 살림살이 빼고 안 두어야 홀가분하다고 느끼지만, 글을 쓰거나 자료를 살피자면 집에 책이 없을 수 없다. 아이들이 들출 그림책이든, 옆지기가 들여다볼 뜨개책을 집에 두면서, 내가 보는 책도 집에 둔다. 조그마한 시골집에 책을 참 많이 둔다.


  내 도서관은 내 서재이다. 곧, 내 도서관에는 내가 읽는 책이 있다. 내가 바라는 책을 내 도서관에 두고, 내가 즐거이 읽으며 널리 나누고픈 책을 놓는다.


  내가 생각하는 도서관은, 사람들 누구나 스스럼없이 찾아가서 저마다 ‘내 서재’를 누릴 수 있는 자리이다. 모든 책을 다 갖추어야 도서관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새로 나오는 책을 빠짐없이 갖추어야 도서관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동네마다 마을마다 작은도서관이 설 수 있기를 빈다. 굳이 새 건물 짓기보다, 사람들이 오래도록 살아가는 동네나 마을에 있는 오래도록 뿌리를 내린 알맞춤한 집을 도서관으로 고쳐서, 자그마한 도서관마다 다 다른 갈래 다 다른 책을 갖추면 즐거우리라 생각한다. 스무 평 또는 마흔 평쯤 되는 작은 집에 한 갈래 책만 갖춘다고 할까. 이쪽 마을 이쪽 집 작은도서관 하나에는 만화책만 있고, 다른 하나에는 그림책만 있으며, 또 다른 하나에는 사진책만 있다. 저쪽 동네 저쪽 집 작은도서관 하나에는 철학책만 있고, 다른 하나에는 소설책만 있으며, 또 다른 하나에는 시집만 있다. 이렇게 해서 시나 군마다 작은도서관을 서른 곳이나 마흔 곳쯤 마련한다. 다 다른 작은도서관은 다 다른 책빛을 누리고픈 사람을 지킴이로 둔다. 여느 살림집을 고쳐서 도서관으로 꾸리는 만큼, 도서관지기는 도서관에서 먹고 지낼 수 있다. 도서관지기는 이녁 집이면서 일터인 도서관을 지키니, 여느 사서하고는 사뭇 다르게 도서관을 일군다.


  이런 내 생각은 꿈일는지 모른다. 그래, 꿈이라 하겠지. 그러니까, 나는 꿈을 꾼다. 그리고, 나부터 내 꿈을 이루고 싶어 내 서재를 내 도서관으로 꾸몄고, 내 도서관은 내가 즐기는 책을 기쁘게 장만해서 한 권 두 권 갖춘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이 들어 ‘서재도서관’을 열며, 서른 해 마흔 해 그러모은 책들로 아름다운 책빛 나누어 줄 수 있을 ‘작은도서관 꿈누리’가 이 땅에 사랑스레 뿌리내릴 나날을 바란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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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비행 - 생계독서가 금정연 매문기
금정연 지음 / 마티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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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22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까닭
― 서서비행
 금정연 글
 마티 펴냄,2012.8.17./13800원

 


  시골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달동네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정치꾼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정치꾼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신문기자는 사건 현장과 사고 현장에 발빠르게 찾아갑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문에는 사건과 사고 이야기가 아주 잘 실립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신문기자는 어느 작가 한 사람을 취재한다고 해서 ‘어느 작가 한 사람이 쓴 글과 책을 두루 읽’지 않아요. 무턱대고 찾아가서 무턱대고 물어 봅니다. 곧, 오늘날 신문에는 ‘어느 작가 한 사람 이야기’가 깊거나 넓거나 알차게 실리지 않습니다.


  나는 신문을 안 읽습니다. 신문을 펼친들 읽을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보나 개혁 쪽 목소리를 담는다 하는 신문이라 하더라도 ‘서울이나 큰도시에서 살아가는 진보나 개혁 쪽 목소리’를 담을 뿐입니다. 나는 잡지를 안 읽습니다. 잡지를 펼친들 읽을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잡지에 글을 싣는 분들은 으레 교수이거나 학자이거나 지식인인데, 이들은 모두 ‘서울이나 큰도시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분이 드물고, 시골사람을 이웃으로 사귀는 분이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곧, 신문도 잡지도 시골마을 시골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아요. 어쩌다 한두 번, 가뭄에 콩 나듯 귀퉁이에 조그맣게 다룰 뿐입니다.


  이제는 이야기하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불거지던 때, 정작 한미자유무역협정 때문에 시골마을이 어떻게 무너지거나 시골사람이 어떻게 힘든가 하는 대목을 옳고 바르며 알차게 담은 신문은 없습니다. 4대강 삽질을 다룬대서, 이 4대강 삽질이 시골마을을 얼마나 망가뜨리고 시골사람을 얼마나 죽이는가를 깊고 넓으며 알맞게 다루는 잡지는 없어요. 왜냐하면, 4대강 언저리 시골에서 살아가며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글로 빚는 분이 아주 드물기 때문입니다.


.. 정작 출간 당시에는 독자들에게 외면당해 생명을 잃은 책이, 희소성으로 인해 뒤늦게 전설의 성배 취급을 받는 일이 이 동네에서는 왕왕 일어나곤 한다 … 하루키는 농담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작품을 사 주는 것은 고맙지만, 프루스트 정도는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 말하자면 K에게는 박노자의 입장에 대해 가타부타할 자신의 입장이랄 게 없었던 것이다 ..  (29, 48, 271쪽)


  나는 퍽 어릴 적부터 ‘아줌마’가 쓰는 글을 좋아했습니다. 예전에는 왜 좋아했는지 잘 몰랐으나, 요즈음은 환하게 깨닫습니다. 아줌마들은 글을 쓸 적에 으레 ‘아이와 복닥이는 하루’ 이야기를 섞어요. 아저씨들은 글을 쓰며 ‘아이와 부대끼는 삶’ 이야기를 거의 못 써요.


  나는 《윤미네 집》이라는 사진책을 볼 적에도 그리 대단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으나, 한국 사회에서는 이만 한 사진책조차 나오기 몹시 어렵기 때문에, 참 훌륭하며 멋스러운 사진책이라고 느낌글을 썼습니다. 왜냐하면, 윤미네 아저씨는 바깥일로 너무 바쁜 나머지 밤늦게 돌아오거나 주말에 겨우 짬을 내어 아이들을 만나요. 하루 스물네 시간 아이들을 만나지 않아요.


  하루 스물네 시간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지만, 늘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기에, 윤미네 아저씨는 윤미가 어릴 적에 ‘매우 재미나며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얼굴 겨우 보는 아버지인 터라, 윤미는 나이를 먹을수록 ‘아버지 사진기를 안 쳐다보’고 싶습니다. 윤미는 아버지하고 얼굴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가끔 얼굴 스치는데 사진으로만 찍히고 싶지 않아요. 생각해 봐요. 사랑하는 짝꿍 둘이 만나는데, 서로 먼 데 떨어져 지낸 터라 얼굴 보기조차 어렵다면, 이렇게 지내다가 겨우 얼굴 한 번 볼 틈이 났을 때에, 서로 무얼 할까요. 사진을 찍을까요? 아니지요. 조금이라도 더 서로를 바라보며 입을 맞추든 이야기꽃을 피우려 하든 하겠지요. 윤미네 아저씨로서는 ‘딸아이가 자라는 동안 꼭 적바림하고 싶은 때’가 있었겠지만, 윤미한테는 ‘아버지하고 새롭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 대목을 미처 짚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윤미네 아저씨 아닌 윤미네 아줌마가 사진기를 손에 쥐어 윤미 사진을 찍는다 할 적에는, “윤미네 집” 이야기가 확 달라집니다. 아저씨들 바깥일 얽매인 삶으로는 도무지 못 담고 도무지 생각 못하며 도무지 깨닫지 못할 깊고 넓으며 아름다운 이야기 그득그득 길어올릴 수 있어요.


.. 나는 알아야 했다. 내가 찾는 게 무엇인지를 말해 줄 책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까닭도, 낯선 도시를 개처럼 돌아다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으니까 … 가을이 언제나 가을인 것처럼, 김훈은 여전히 김훈이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글자들의 행간을 채우는 것은 도저한 허무다 …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사실이다. ‘광고 속 그들’이 노래하는 대한민국은 소비자의 팀일 뿐이다. 적어도 나의 팀이 아니다 ..  (165, 170, 286쪽)


  겨울비가 내립니다.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에 겨울비가 내립니다. 이 한겨울에 우리 식구는 겨울비를 누립니다. 따스한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니 따스한 겨울비를 누립니다. 추운 곳에서 살아가면 겨울눈을 누리겠지요. 멧자락 시골집에서는 펑펑 쏟아지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볼 테고, 도시 한복판이나 한켠에서는 엉금엉금 기어가는 자동차물결을 바라보겠지요.


  삶에 따라 생각이 달라집니다. 숲이 곁에 있는 삶이라면 숲을 생각합니다. 아파트와 공장이 곁에 있는 삶이라면 아파트와 공장을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삶이라면 돈을 생각합니다. 이름값 드날리는 삶이라면 이름값을 생각합니다. 풀밭에서 노래하는 풀벌레를 늘 만나는 삶이라면 풀벌레와 풀노래를 생각합니다. 맑은 냇물이 집 곁에서 흐르는 삶이라면 맑은 냇물을 생각합니다.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아름다운 삶을 부릅니다. 즐겁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즐거운 삶을 부릅니다.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사랑스러운 삶을 부릅니다.


  더 낫거나 더 나쁘다는 삶은 없습니다. 누리고 싶은 삶이 있습니다. 더 기쁘거나 더 슬프다는 삶은 없습니다. 좋아하고 싶은 삶이 있습니다.


.. 그들은 별 생각이 없었거나, 그렇지 않다면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공허한 당위와 텅 빈 대의. 아무려나. K는 상명하달의 관료주의와 권위주의, 거기에 일종의 가족주의가 혼합된 특유의 조직 문화에 진절머리가 나 있던 터였다 … 말하자면 K는 출구 없는 회로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이건 차라리 무척 느린 자살에 가까우니까. 그렇다고 이 모든 일을 당장 그만둘 수는 없다. 지금 당장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것이 바로 K가 ‘만들어 낸’ 현실이었다 … 온몸을 던져서라도 지키고픈 책과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할 수 없는 책에 대한 짐심어린 각자의 이야기들을 듣고 싶은 것이다 ..  (264, 269, 379쪽)


  금정연 님이 쓴 《서서기행》(마티,2012)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책을 말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책이란 삶을 담는 이야기꾸러미인 만큼, ‘삶을 읽는 삶’이요 ‘삶을 말하는 삶’이라고 느낍니다. 곧, 금정연 님으로서는 ‘책을 읽’지만, 늘 ‘삶을 읽’는 나날입니다. 금정연 님으로서는 ‘책을 읽은 느낌을 글로 쓰’지만, ‘삶을 읽은 느낌을 글로 씁’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일이란 삶을 쓰는 일입니다. 누구이든 이녁 삶 아니고는 아무것도 쓸 수 없습니다. 곧, 글쓰기란 삶쓰기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할 적에는 ‘삶을 읽고 삶을 쓴’다고 할밖에 없어요.


  나날이 ‘책 말하는 책’이 자꾸 나오는 까닭은 ‘삶 말하는 삶’이 재미있거나 즐겁거나 좋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책에 얽매이는 삶이 아니라, ‘내 이웃 삶을 좋아하며 마주하는’ 삶입니다. 입으로 말을 주고받아 이야기꽃을 피우듯, 손으로 글을 써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살아가는 모습이 글 한 자락으로 태어납니다. 글 한 자락이 모여 책 한 권으로 태어납니다. 책 한 권을 읽어 새로운 삶을 생각합니다. 새로운 삶을 생각하며 느낌글 하나 갈무리합니다.


  글을 쓰는 까닭이라면 오직 하나 있겠지요. 내가 이렇게 오늘을 살아가니까요. 책을 읽는 까닭이라면 바로 하나 들 만하겠지요. 내가 이렇게 이곳에서 살아가니까요. 삶결이 책결이요, 생각무늬가 글무늬입니다. 삶빛이 책빛이며, 생각자락이 글자락입니다. 4346.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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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1-22 14:35   좋아요 0 | URL
"글을 쓰는 일이란 삶을 쓰는 일입니다."
- 저도 글을 쓰면서 결국 제가 세상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구나, 생각 들어요. ^^

파란놀 2013-01-22 18:30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래서 늘 pek0501 님 삶과 생각을 즐겁게 읽습니다~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81) 용변

 

아가가 엉거주춤 / 용변을 보고 있습니다
《정세훈-부평 4공단 여공》(푸른사상,2012) 108쪽

 

  한국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한국말이지만, 오늘날 한국말은 껍데기는 한국말이라 하더라도, 알맹이는 한국말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지난날에는 중국 사대주의에 찌들면서 한문을 높이 모셨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짓눌리면서 일본말과 한자말과 일본 말투가 파고들었으며, 해방 뒤에는 영어 자본주의가 넘치면서 영어와 번역 말투가 퍼집니다. 세 갈래 거친 물줄기를 떨치면서 오롯이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누리는 사람이 매우 적어요. 그래서 “용변을 보고 있습니다” 같은 말투를 시인조차 제대로 못 느끼면서 쓰고 말아요.


  이 대목에서는 첫째, “보고 있습니다”가 잘못입니다. 한국 말투는 이러하지 않아요. “봅니다”라고만 해야지요. 한국말에는 현재진행형이 없습니다. “본다”나 “봅니다” 한 마디로 모든 때를 가리킵니다. 어떤 이는 “보고 계시다”처럼 적기도 하는데, ‘계시다’라 한대서 높임말이 아니에요. 높임말을 옳게 하자면, “보신다”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둘째, ‘용변’이 잘못입니다. 한자말 ‘용변(用便)’은 “대변이나 소변을 봄”을 가리킨다고 해요. 여기에서 ‘대변(大便)’은 “‘똥’을 점잖게 이르는 말”이라 하고, ‘소변(小便)’은 “‘오줌’을 점잖게 이르는 말”이라 하지요.

 

 용변을 보고 있습니다
→ 똥을 눕니다
→ 오줌을 눕니다
→ 똥오줌을 눕니다
→ 볼일을 봅니다
→ 뒤를 봅니다
 …

 

  똥은 똥이고 오줌은 오줌입니다. 똥이나 오줌을 ‘점잖게’ 말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굳이 점잖게 말하고 싶다면 ‘볼일’이나 ‘뒤’라 말하면 돼요. 더군다나, 아가라 하면 아예 달리 쓰는 말이 있어요. ‘응가’가 있거든요.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합니다. 한국사람이 쓸 한국말은 어떤 빛과 무늬와 결일까 하고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합니다. 내 살가운 이웃과 살가이 나눌 어여쁜 말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합니다.


  수수하게 나누는 말입니다. 즐겁게 주고받는 말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똥’과 ‘오줌’과 ‘볼일’과 ‘뒤’와 ‘응가’ 모두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 쓰는 쉽고 바른 말이 되도록, 우리 어른들이 힘을 기울이기를 빕니다. 4346.1.21.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가가 엉거주춤 / 응가를 눕니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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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동네

 


밥 끓으며
고소한 내음 흐르고.

 

빨래 널며
상큼한 빛깔 퍼지고.

 

아이들과 노래하며
고운 목소리 감돌고.

 

골목마다
작은 집들
복닥복닥
어깨동무하던
어여쁜 날들 이야기는
달이 보고 해가 보아
흙에 깃든다.

 


4345.12.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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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 말은 살짝 적어야겠다 싶어 살짝 적는다. 좀 '센' 말을 적어 보았지만, 알라딘서재에는 올리고 싶지 않다. '내 자유'가 있기에 '다른 사람 자유'를 건드린다든지, '내 권리'가 있대서 '다른 사람 권리'를 밟는 일은 무엇이 될까. 알라딘책방이 도서정가제를 이야기하는 일은 자유요 권리일 테지. 그래, 자유이면서 권리이다.

 

..

 

책값, 글밥

 


  책값 만 원 붙은 책이 있으면, 이 책을 쓴 사람은 으레 글삯으로 10퍼센트인 천 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책을 쓴 사람이 글삯으로 10퍼센트를 받으려면, 이 책은 ‘책에 붙은 값’인 만 원 그대로 팔려야 합니다. 인터넷책방에서 10퍼센트 에누리를 하는데다가 10퍼센트 적립금까지 준다면, 책을 쓴 사람은 글삯 10퍼센트 받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책이 처음 나온 지 한 해 지났대서 인터넷책방에서 20퍼센트 에누리를 한다든지, 책이 처음 나온 지 여러 해 지났대서 인터넷책방에서 30퍼센트 에누리를 하거나, 때로는 50% 에누리까지 한다면, 책을 쓴 사람은 무슨 글밥을 먹을 수 있을까 아리송합니다.


  매장책방이든 인터넷책방이든, 글밥 먹는 글꾼을 애틋하게 사랑한다고 밝히려 한다면, 갓 나온 책이든 열 해나 스무 해쯤 지난 책이든, 출판사에서 책에 붙인 값 그대로 사람들이 사서 읽을 수 있도록 이끌어야 올바르고 아름답습니다. 나온 지 여러 해 지났다고 책값을 마구 후려치는 일을 버젓이 하면서 ‘글밥 먹는 글꾼’ 권리를 지켜 준다는 말을 함부로 읊어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지요.

 .. (......) ..

 

  도서정가제 이야기에 앞서, 아니 도서정가제 이야기를 하자면,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 스스로 어떤 책을 어떻게 읽으려 하는가 하는, 몸가짐과 마음가짐 이야기부터 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책을 책 그대로 마주하면서 삶을 살찌우는 사랑스러운 마음밥으로 아로새기지 못한다면,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못합니다. 글밥 먹는 사람들 삶을 헤아리지 않고 책값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곧, 흙밥 먹는 사람들 삶을 헤아리지 않고 쌀값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기름밥 먹는 사람들 삶을 헤아리지 않고 사회·정치·경제·노동·환경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4346.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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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01-21 10:53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하지만 만원도 부담스러운 저 같은 학생으로서는....

도서관을 애용하면 될 텐데요.
아무래도 도서관에 책이 없다는 건 변명이겠지요.

파란놀 2013-01-21 10:59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 책 없어요 ㅋㅋㅋ
그래서 도서관에 없는 책을 종이에 적어 신청해야지요.
언제 그 책이 들어올는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지만,
그래도 요즘은 옛날과 견줘 많이 나아졌어요.

도서관에 책이 없기에,
저는 스스로 '서재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

oren 2013-01-21 11:34   좋아요 0 | URL
이번 일을 계기로 책값의 본질을 건드리는 얘기들이 좀 더 많이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어요. 함께살기님의 글들을 읽으면서 저도 그런 면에서 공감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파란놀 2013-01-21 14:18   좋아요 0 | URL
무엇이 옳으느니 그르느니 하고 말다툼 하는 일은 누구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책을 읽는 삶, 책을 마주하는 사랑, 책을 나누는 즐거움, 이런저런 샘물 같은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어야지 싶어요.

책은 즐겁게 '선물'할 수 있고, 책은 고맙게 '선물받을' 수 있어요. 책값이란 참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그러나, 이를 어떤 정략이나 책략으로 삼아 무언가 꿍꿍이를 벌인다면... 참 딱한 노릇이지요.

sslmo 2013-01-21 12:46   좋아요 0 | URL
저도 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도서정가제 라는 것이, 책을 사 읽는 독자들을 위한 정가제가 아니지요.

책 표지에 적정가격을 정하여 기록하지 않게 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그 책에 합당한 가격을 자기네들 마음대로 정한다는 의미의 '도서 정가제 프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책값이 얼마, 책에 들어가는 종이값이 얼마, 작가나 역자에게 얼마...가 들어가고 그 남은 금액에서 몇 퍼센트의 이익을 인터넷서점과 출판사가 나눠 먹는다는 의미의 정가제 프리가 아니지요.

'정가제 프리'가 그냥 인터넷에서 책값 10%를 싸게 받는 그것만을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책을 사읽는 독자나, 책을 사읽을 수도 있는 잠재의 독자들이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가격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해서 정해져야 하는 것이지,
그냥 사실은 두루뭉술, 수박겉핥기식으로 호도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파란놀 2013-01-21 14:22   좋아요 0 | URL
값은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붙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이번에 9만 원 넘는 번역책 나왔어요.
이러한 책은 굳이 '시장경제 원리'를 따지지 않아요.

<윤길수 책>이라고 있고, '포노'라는 출판사에서
어느 음악가 전집을 내놓기도 했는데,
이들 책값은 시장원리하고는 살짝 떨어져요.
저도 1인잡지를 내는데,
이런 책에 붙이는 값은
읽을 사람, 글을 쓴 사람, 책을 엮는 사람,
모든 품을 살피면서, 나중에는 책을 파는 일꾼한테까지
즐거운 땀을 베풀어 주어요.

아무튼, 하늘 무서운 줄 모르면서
어떤 권력을 내세우려 하면
다들 스스로 무너지는 줄 참말 모르는구나 싶어요...

북극곰 2013-01-22 09:47   좋아요 0 | URL
저도 상황 파악이 잘 안되어서 관련 서재글들을 읽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얼핏 구간에까지 정가를 왜 적용해야 할까 생각했는데,
내가 읽고 싶은 책이라면 구간이라도 제 값을 주고 살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구간이라는 이유로 또 다른 이유로 가격적으로 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독자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하기가 힘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파란놀 2013-01-22 09:51   좋아요 0 | URL
신간이든 구간이든 '똑같은 책'이니까요.

<태백산맥>이나 <난 쏘 공>처럼 이름난 작품뿐 아니라,
모든 책들이 '구간'이 되어도 언제나 똑같은 '책'으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제도가 도서정가제예요.

책은 책이어야 할 뿐이니까요.
구간이라 하면서 할인율을 왕창 적용하면
작가도 출판사도...
말 그대로 손가락만 빨면서 굶어야 해요...
구간 할인율을 왕창 적용하도록 하자는
인터넷책방 주장은
작가와 출판사를 다 굶겨죽이자는 소리일 뿐이에요.

사실, 구간은 '새로 찍지' 않으면
처음 붙인 책값이라서,
오래도록 천천히 팔리는 책은
몇 해 뒤에는 물건값 오름세와 견주면
퍽 싼값이 된답니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인터넷책방이 구간 책값을 마구 후려치기 하는 바람에,
출판사에서는 '구간 절판'을 시키고
'개정 신판'으로 다시 내놓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