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은 고향인가

 


  읍내 저잣거리로 먹을거리를 사러 나가는 길에, 마을 어귀 버스타는곳에서 이웃 할머님을 뵌다.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 마을회관에 선 ‘인천’에서 찾아온 커다란 ‘장례 버스’를 바라보며 말씀을 여쭌다. “마을에 무슨 일이 있나 봐요?” “어, 저기 (집) 허물고 마늘 심은 데 있잖여, 게서 살던 할머님인데 돌아가셔서 장례 치르러 서울서 내려왔지. 혼자 사셨는데 자식들이 다 서울 있으니께 돌볼 수 없어서 서울로 모셔서 지내다가 돌아가셔서 이렇게 왔지.”


  할머니 혼자 남도록 딸과 아들 모두 서울로 갈밖에 없었을까. 살아가지 않는다면 고향이라 할 수 있을까. 살아가지 않고 늙은 어버이만 남기는 데를 고향으로 여길 수 있을까. 죽어서야 겨우 딸과 아들이 찾아오는 이곳을 당신들로서는 고향이라 할 만한가. 아니, 서울로 간 딸과 아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시골로 돌아와서 당신 어머니나 아버지하고 살아갈 꿈을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인가. 아마, 당신들도 서울에서 살다가 죽어야 비로소 고향이라는 데로 돌아오리라. 죽지 않는다면 고향이라는 데로 돌아올 일이 없으리라. 죽고 나면, 서울에 묻을 자리 없고 뼈조각조차 둘 자리 없으니 그제야 비로소 고향으로 오리라.


  그런데, 서울로 간 사람들한테 시골은 고향이 될 수 있을까. 서울로 간 사람한테는 서울이 고향 아닌가.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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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우 교수 사진책 <또다른 고향>을 이야기하려고 살피다가, 이 사진책 <광경>이 있는 줄 깨닫는다. 이 사진책은 사진비평을 얼마나 받았을까. <또다른 고향>이라고 하는 1988년에 나온 사진책은 얼마나 눈길을 받았을까. 디자인학과 교수로 일하는 이가 '사진'으로 바라본 이야기를 사람들은 얼마나 살가이 마주하면서 들여다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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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경
유영우 지음 / 푸른세상 / 2008년 3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3년 01월 26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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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살아가는 마음

 


  아이들이 밤잠을 잘 자다가 꼭 깹니다. 밤오줌을 누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꿈을 꾸다가 깹니다. 이때에 가슴을 잘 토닥이면 다시 새근새근 숨을 고르면서 깊이 잠듭니다. 그러나, 그예 깨어 품에 안거나 무릎잠을 재워야 하곤 합니다.


  아이 하나를 무릎에 누입니다. 아이 하나를 옆에 누입니다. 아이들 곁에 누워 아이들을 품에 안습니다. 아이가 아버지 품에 바싹 달라붙습니다. 아이가 손을 뻗어 아버지 얼굴이나 몸이나 팔이나 허리나 가슴이나 이곳저곳 만지다가 스르르 힘이 빠지며 곯아떨어집니다.


  무릎잠 자던 아이를 살며시 안아 잠자리로 옮기면 내 몸은 홀가분한데, 막상 이렇게 홀가분한 몸이 되고 나면, 밤에 하는 글쓰기가 되레 재미없습니다. 왜 그럴까, 왜 이 홀가분한 몸일 때에 더 바지런히 글쓰기를 하지 못할까, 생각하다가, 방문 조용히 열고 마당으로 내려서서 별을 바라봅니다. 아마, 나는 집일 아무것 안 하고 집식구하고 하나도 안 얽히면서, 어떤 글방 하나 얻어 호젓하게 글쓰기에만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 할 적에는 글쓰기를 못하는 사람 아닌가 싶습니다. 복닥복닥 어수선하고 어지러우며 고단한 나날을 잇는다 하더라도, 아이들 노랫소리랑 웃음소리랑 이야깃소리 들으면서 글빛을 북돋우는 사람이지 싶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내 삶일까요. 어떻게 이러한 내 삶이 되었을까요.


  그런데, 아이들과 살아가며 글을 쓰니, 아이들과 함께 읽을 글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며 글을 엮으니, 앞으로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이 아이들 스스로 글을 읽을 때에는 저희 아버지 글을 가만히 들여다보겠구나 싶습니다. 곧, 내 글은 내 글만이 아니라 아이들 글이요, 내 글에 깃드는 넋은 내 넋만이 아닌 아이들 넋입니다. 내 글은 내 이름으로만 쓰는 글이 아니라, 내 옆지기 이름으로도 함께 쓰는 글이요, 내 어버이와 이웃과 동무 이름이 함께 감돌며 쓰는 글입니다.


  내 벗은 누구인가요. 풀이요, 나무요, 새요, 벌레요, 구름이요, 멧자락이요, 숲이요, 논이요, 바다요, 하늘이요, 해요, 별이요, 달이요, …… 모두모두 벗입니다. 고흥 시골마을에도 살아가는 벗이요, 인천이나 서울에도 살아가는 벗입니다. 벗이 누구인가 하고 생각하기에 글을 쓰는 매무새가 달라지고, 내가 누구하고 살아가는 사람인가 하고 돌아보기에 글뿐 아니라 살림 꾸리는 몸가짐이 바뀝니다. 이제 나는 아이들 곁에 누워 내 손으로 아이들 머리카락 살살 쓸어넘기며 새벽을 맞이해야겠습니다.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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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아닌 '도서정가제'를 놓고 알라딘책방이 시끄럽게 한 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씨가 '진흙탕 말싸움'을 벌인다.

 

왜 알라딘책방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싶다.

그런데, 이번에 알라딘책방 못 잡아먹어 안달을 내며 쓴 글을 살피니,

일본 북오프를 싸잡아 깎아내리는 글을 몇몇 자료를 들추어 쓴다.

그렇구나.

헌책도 헌책방도 알지 못할 뿐더러,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기에,

일본 북오프나 알라딘 중고샵도 똑같이 모를 뿐더러, 사랑하지 않는구나.

 

어느 헌책방은 알라딘 중고샵 때문에 힘들어 하지만,

어느 헌책방은 알라딘 중고샵이 있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책'을 다룰 뿐이기 때문이다.

 

헌책방이 있는 까닭이 있고

새책방이 있는 까닭이 있으며

도서관이 있는 까닭이 있다.

 

매장책방과 인터넷책방은 저마다 길이 다르고,

어린이책전문서점과 인문사회과학책방은 서로 길이 다르다.

 

'도서정가제'가 있기 앞서 '책'이 있었고,

도서정가제 말싸움을 떠나 책이야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책삶하고 등을 지면서 책소비만 하기에

책방도 작가도 출판사도 힘들지만,

정작 책을 '소비'할 뿐 '읽지' 못하는 사람들 스스로도 힘들다.

 

유기농 곡식을 '소비'한대서 몸이 나아지지 않는다.

유기농 곡식을 '즐겁게 먹어'야 몸과 마음이 나아진다.

시골에 '거주'하기만 한대서 마음이 나아지지 않는다.

시골에 '즐겁게 뿌리내려 살아'가야 마음이 나아진다.

 

나는 소비자가 아닌 독자이고,

나는 책을 즐기며 살아가는 시골마을 아이들 아버지이다.

 

한기호 씨는 서울 한복판에서 이곳저곳 취재받고 글 쓰느라

무척 바쁘신 듯하다.

부디 숨 좀 돌리시기를 빈다.

전화기 끄고 사무실에 며칠 말미를 내어

가까운 숲으로,

자가용 말고 시외버스 타고 천천히 나아가서

여러 날 나무와 하늘과 흙과 냇물만 바라보면서

마음을 식힌 다음,

다시 이녁 일터로 돌아와서

'책'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빈다.

 

'책'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어느 실마리 하나 풀거나 맺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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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개기 심부름

 


  여섯 살이 된 큰아이는 무슨 집일을 나누어 할 수 있을까요. 어버이가 맡긴다면 무슨 일이든 할 테지요. 호미를 쥐어 주고는 풀을 뽑으라 하면 풀을 뽑을 테고, 연필을 쥐어 주고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라 하면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쓸 테지요. 빗자루를 주고 방바닥을 쓸라 하면 방바닥을 쓸 테고, 수세미를 쥐어 주고는 설거지를 하라 하면 설거지를 할 테지요.


  일손이 바빠 큰아이를 부릅니다. 방에 옷걸이로 꿰어 널었던 빨래가 다 말라, 큰아이더러 개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나 힘들어서 다 못 해.” 하고 말하는 큰아이한테 “천천히 하면 돼.”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이 곁에 앉아 다른 일을 합니다. “아버지도 같이 개.” 하고 말하는 아이한테, “응, 이것 좀 다 하고.”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리하여, 큰아이가 빨래 개기를 끝까지 거듭니다. 다 갠 빨래 가운데 큰아이 옷가지는 큰아이 스스로 제 자리에 가져다 놓습니다. 올 한 해 무르익어 일곱 살로 접어들 즈음이면, 큰아이는 다 마른 제 옷을 아버지나 어머니 말이 없더라도 스스로 건사할 수 있겠지요. 제 옷을 건사하면서 동생 옷도 말없이 개서 건사해 줄 수 있겠지요. 4346.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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