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땋기 1

 


  그림책이나 만화책에서 ‘머리 땋은’ 예쁜 언니들 보면 큰아이가 저도 머리를 땋아 달라고 바란다. 아, 영화를 볼 적에도 머리 땋는 예쁜 이모들 나오면 제 머리도 땋고 싶단다. 이리하여, 아이 어머니가 머리를 땋아 준다. 머리끈 담은 그릇을 방바닥에 내린다. 큰아이 머리를 땋는다. 작은아이가 옆에 모로 비스듬히 누워 머리끈 그릇을 갖고 논다. 머리띠 하나 쓰고 싶다기에 머리띠를 씌워 준다. 작은아이야, 너도 머리카락 많이 자라면 머리띠 예쁘게 쓸 수 있단다. 무럭무럭 자라서 둘이 예쁘게 놀자. 4346.1.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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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미요리의 숲》

 


  만화책 《미요리의 숲》을 서재도서관에서 찾아낸다. 아주 뜻밖에 찾아낸다.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얼결에 찾아낸다.


  틀림없이 이 만화책이 나한테 있는데 어디에 꽂았는지 못 찾겠는걸, 하고 한참 생각한 끝에 다시 장만해야겠다 여겼는데, 그만 이 만화책은 품절되어 다시 살 수 없다. 참 갑갑하고 어려운 일이 되었네 싶으나, 어쩌는 수 없다. 서재도서관에서 찾아내든지, 돈을 들여 이래저래 알아보아 헌책으로 사든지 할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한참 여러 날 생각에 잠기더니, 오늘 작은아이와 서재도서관에 찾아갔다가 아주 눈에 잘 뜨이는 곳에서 《미요리의 숲》 1권과 2권을 찾아낸다. 어쩜 이렇게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있었니. 그야말로 코앞에 두고 한참 못 찾았네. 아니, 내가 너를 여러 날 내내 생각했기에 내 앞에 환하게 나타나 주었니.


  나는 ‘숲’이라는 낱말만 들어가도 눈길이 멎는다. 만화책이든 사진책이든 그림책이든 인문책이든 ‘숲’이라는 낱말에 나도 모르게 사로잡힌다. 내가 태어난 곳은 숲이었을까. 오늘을 살아가는 내 몸뚱이를 낳은 내 어버이는 도시에서 나를 낳으셨으나, 내 숨결을 이루는 밑바탕은 숲에서 왔을까.


  나와 옆지기가 낳은 아이들 숨결을 이루는 밑바탕은 무엇일까. 나와 옆지기를 낳은 어버이들 숨결을 이루는 밑바탕은 무엇일까. 이 지구별 사람들이 태어난 밑바탕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전쟁미치광이가 되고, 누군가는 돈미치광이가 되며, 누군가는 권력미치광이가 되기는 한다만, 이 미치광이들 어릴 적이나 갓난쟁이 적을 떠올린다. 어느 미치광이도 처음부터 ‘미친 아이’나 ‘미친 아기’가 아니었다. 모두 사랑스러운 목숨이었고 아름다운 숨결이었다. 미치광이가 되는 까닭이라면, 숲에서 멀어지면서 도시에서 제도권학교 톱니바퀴에 시달리기 때문 아닐까.


  안타깝게도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지고 만 만화책 《미요리의 숲》이지만, 헌책방마실을 할 적에 이 만화책이 보이면, 보이는 대로 더 갖추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스스로 ‘내가 사랑하는 숲’을 이야기할 만한 삶을 누리면서 ‘숲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숲을 사랑한 어느 일본 만화쟁이는 예쁘장한 만화책 두 권을 지구별에 선물했고, 나는 또 나대로 우리 숲을 사랑하면서 내 슬기와 깜냥으로 예쁘장하게 빚어 지구별한테 선물할 책을 이루어야지. 4346.1.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부디 1권 2권 모두 예쁘게 다시 나올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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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웁기에 읽는 책

 


  아름다웁기에 읽는 책이다. 책에 깃든 이야기가 내 생각하고 맞닿는다. 내가 아름답기에 아름다운 책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아직 아름답지 않으나, 스스로 아름다움을 생각하면서 찾기에, 내 마음밭 아름답게 일구는 밑거름 될 만한 책을 만난다.


  아름답지 않으면 읽지 않는다. 달을 읽고 해를 읽는 까닭은 오직 하나이다. 아름다우니까. 구름을 읽고 별을 읽는 까닭은 오로지 하나이다. 아름답잖은가.


  이웃이나 동무를 사귈 적에 꼭 한 가지만을 바라본다. 마음과 생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마음밭 살찌울 책을 장만할 적에 늘 한 가지만을 들여다본다. 이야기와 말빛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들풀을 뜯어 밥상에 올릴 때에 으레 한 가지만을 헤아린다. 나와 식구들이 아름다이 웃으며 먹을 만한가.


  아름답기에 읽고, 아름답고 싶어 읽으며, 아름다운 사랑이랑 꿈을 나누고 싶어 읽는다. 책도 삶도 넋도 말도 다 같이 아름다운 고리 하나로 이어진다. 4346.1.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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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두 아이 재우면서 자장노래를 부른다. 문득문득 깨닫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내가 어릴 적에 개구지게 뛰놀지 않았으면, 오늘 이렇게 자장노래 불러 주기는 어렵겠구나. 아마, 어릴 적에 개구지게 뛰놀지 못한 아이들이 자라 어른 되어 새롭게 아이들을 낳으면, 어릴 적 부른 놀이노래가 거의 없는 나머지, 따로 노래테이프나 노래시디를 사다가 틀겠지. 클래식노래를 튼다든지 무슨무슨 노래를 들려준다든지 하겠지. 생각이 좀 없다면, 텔레비전을 하염없이 켠다든지 아무 만화영화나 틀기만 할 테고.


  내 어린 나날, 내 둘레 어른들 늘 하는 말은 “그렇게 놀고 언제 공부할래?”였다. 그러면, 이런 말 하는 어른이 누구인가 먼저 살핀다. 무서운 어른이면 꽁지 빠져라 내빼고, 좀 살가운 어른이면 입을 비쭉 내밀고는 “쳇, 공부할 때에는 공부한단 말예요!” 하고 쏘아붙이다가는,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 공부 너무 안 하고 놀기만 했나? 공부는 좀 이따가 하지 뭐.’


  이리하여, 나는 어릴 적에 ‘어른들이 바라던 공부’는 퍽 게으르게 했다. 때로는 안 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이 때문만은 아닐 텐데, ‘어른들이 바라던 공부’는 꽤 덜 한 탓에 시험성적이 아주 좋지는 않았다. 인천에서 다닌 학교에서 치면, 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늘 들기는 했지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 마음은 학교 교실에 갇힌 공부보다는, 학교 바깥에서 뒹구는 놀이에 닿았으니까.


  오늘도 작은아이 팔베개를 하며 거의 두 시간 즈음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며 생각한다. 똑같은 노래를 다시 부르기는 싫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자꾸자꾸 새 노래를 부를 테야.


  이 노래 저 노래 부르다가, 어릴 적 부르던 노래가 하나둘 튀어나온다. 아이들과 살아가지 않았다면 까무룩 잊고 말았을 노래가 갑작스레 솟아나온다. 어, 이런 노래도 부르고 살았구나.


  어릴 적 놀며 부르던 노래를 아이들한테 들려주면서, 내 어릴 적 놀이가 떠오른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에 또래 아이들이랑 뒹굴며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떠오르고, 동무들이랑 얼마나 개구지게 복닥였는가 하는 그림이 환하게 떠오른다.


  오늘날 시골에서는 아주 마땅하지만, 우리 두 아이하고 함께 뒹굴 또래 동무는 옆마을에까지 없다. 어쩌다 이웃집(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도시로 떠난 분들이 낳은) 아이들이 놀러온다 하더라도, 이 아이들은 도시에서 어린이집이나 학원이나 텔레비전이나 장난감에 길든 터라, 우리 아이들하고 뒹굴거나 뛰놀거나 노래부르며 놀지 못한다. 서로 안 어울리고, 같이 못 어울린다. 참 재미없는 아이들이다. 면소재지에 가든 읍내에 가든 똑같다. 오늘날 시골 아이들은 참 재미없다. 뭐, 도시 아이들도 참 재미없지. 놀 줄 모르고 노래할 줄 모른다.


  어딘가에는 잘 놀고 잘 노래하는 아이들이 있겠지. 어느 도시에서는 틀림없이, 또 어느 시골에서는 어김없이, 그야말로 골목스럽고 시골스러운 아이가 꼭 있겠지. 날마다 옷 더럽히고 노래부르며 목 쉬는 아이들 반드시 있겠지.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둘레에 맑은 웃음과 노래를 들려줄 수 있겠지. 4346.1.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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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띠
신명희 지음, 한태희 그림 / 초방책방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42

 


나는 우리 아이들 ‘짐승띠’를 모른다
― 열두 띠
 신명희 글,한태희 그림
 초방책방 펴냄,2003.4.8./12000원

 


  나는 어릴 적에 ‘십이지간’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십이지신’이라고도 하는데, 아마 ‘십이지신’을 조금 더 자주 쓰는구나 싶은데, 내가 으레 듣고 늘 쓰던 이름은 ‘십이지간’입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또래 아이들은 이 쉽잖은 한문을 제대로 못 외우곤 합니다. 아이들끼리는 으레 “열두 띠”라 말했고, 아이들은 “띠가 무어니?” 하고 물었습니다.


  어른, 그러니까 나이든 아저씨나 할아버지는 으레 더 어려운 한자말이나 한문으로 묻곤 합니다. 쉬운 한국말로 풀어서 이야기하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참말 쉽게, 쥐·소·범·토끼…… 하고 말하면 될 텐데, 굳이 자·축·인·묘…… 하고들 읊어요. 그래서 우리들은 머리에 꿀밤탑을 늘리며 ‘자·축·인·묘’ 하는 한문을 외우지만, 막상 이 한문이 무슨 짐승을 가리키는가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곤 해요. 그러면 어른들은 또 꿀밤을 날리지요.


  열두 띠는 언제 생겼을까요. 열두 띠는 누가 붙였을까요. 열두 띠 이름을 받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한겨레 옛 문화라고 하지만, 시골에서 흙을 만지던 여느 수수한 사람들도 열두 띠 이름을 얻었을까요.


  열두 띠를 외우며 꿀밤탑을 쌓던 어릴 적부터 ‘왜 열두 띠를 외워야 하나?’ 하고 궁금해 했습니다. 그렇지만, 열두 띠를 왜 외워야 하고, 왜 알아야 하는가를 슬기롭게 이야기한 어른은 없습니다. 열두 띠를 언제부터 누가 어떻게 썼는가 하는 대목도 궁금했으나, 이 대목을 찬찬히 짚은 어른도 없습니다. 예전에는 ‘양반·상놈’으로 신분이랑 계급을 갈랐다 했는데, 양반 아닌 상놈한테도 열두 띠가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냅다 손을 들고는 선생님들한테 여쭈지요. 그러면 선생님들은 누가 그딴 것 물으라 했느냐며 다시 꿀밤을 날리지요.


  천 해 앞서를 헤아려 봅니다. 이천 해 앞서를 그려 봅니다. 만 해 앞서를 돌아봅니다. 이만 해 앞서를 되새겨 봅니다. 지난날 이 땅에서 흙을 갈고 보살피던 옛사람한테는 어떤 이름이 있었을까요. 지난날, 이 땅 어느 곳이나 ‘시골’일 뿐이요, 이 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숲’일 뿐이던 그무렵, 사람들은 ‘띠’를 얼마나 생각하거나 살폈을까요.


  신명희 님 글과 한태희 님 그림으로 이루어진 예쁜 그림책 《열두 띠》(초방책방,2003)를 읽습니다. 열두 띠와 얽힌 이야기를 조곤조곤 잘 풀어냅니다. 띠마다 이러한 넋을 담는구나 싶어 새삼스럽습니다. 나는 어릴 적이든 어른이 된 뒤이든,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 없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띠와 얽혀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다만, 그림책 《열두 띠》에 나오는 ‘띠 풀이’는 흙일꾼 삶하고는 좀 동떨어졌습니다. 시골에서 숲을 아끼고 흙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하고는 살짝 멉니다.


  참말 열두 띠란 무엇일까요. 참말 열두 띠는 언제부터 누가 왜 만들었을까요. 왜 열두 가지 짐승하고 얽힌 띠를 만들었을까요. 열두 띠에 나오는 짐승 가운데 양과 원숭이는 한국땅에서도 살던 짐승일까요. 한겨레는 왜 열두 띠를 오늘날까지 이야기하며 살아갈까요. 열두 가지 띠는 사람을 열두 갈래로 나누어 열두 가지 빛깔로 바라보도록 이끌어 주는가요.


  그러고 보니, 나는 우리 집 두 아이 띠를 잘 모릅니다. 옆지기 띠도 잘 모릅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 띠도, 옆지기 어머니와 아버지 띠도 잘 모르는군요. 때로는 내 띠조차 잊어요.


  새삼스럽기는 한데, 어떤 띠를 빚는다 한다면, 짐승뿐 아니라 새를 놓고도 ‘열두 가지 새띠 이야기’를 빚을 수 있어요. 풀과 나무를 놓고 ‘열두 가지 풀띠 이야기’와 ‘열두 가지 나무띠 이야기’를 빚어도 되겠지요. 아이들 고운 넋을 생각하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내 고운 빛을 나란히 생각합니다. 4346.1.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그림책 읽는 시골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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