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어느 분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고 싶었으나, 댓글을 쓸 수 없어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나서, 문득 이것저것 떠올라, 그 방명록에 남긴 글에 살을 입혀 글 하나를 적어 보았습니다. 책과 삶과 사랑과 이야기를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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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을 넘어서는 책

 


  종이책을 넘어서려는 전자책이 춤을 춥니다. 책과 얽힌 일을 다루는 중앙정부에서는 앞으로 ‘전자책’을 더 크게 북돋우려고 애씁니다. 중앙정부가 아니더라도, 종이책을 내려놓고 ‘책이야기잔치(북콘서트)’라든지 ‘책방송’을 꾀하는 이들이 있어요. 한 사람 두 사람 저마다 손에 쥐고 읽을 때에는 종이책이라지만, 라디오에서 누군가 책을 읽어 주어도 ‘소리책’이에요. 누군가 종이책을 읽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줄 때에도 ‘말책(이야기책)’이 돼요.


  우리 삶 어느 자리에나 책이 있어요.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책만 책일 수 없어요. 문화학자는 어려운 한자말 써서 ‘구비문학’이라고 하지만, 옛사람은 늘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물려주었어요. 종이에 담기는 옛이야기는 모두 입에서 입으로 대물림한 ‘문학’이에요. 곧, 종이책으로 앉히지 않아도 늘 ‘책’이던 이야기요, 이 이야기는 고스란히 삶이에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입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즐거워요. 구름 흐르는 빛을 올려다보며 마음이 트여요. 냇물 소리 듣고 냇물 한 줌 떠 마시면서 온몸이 시원해요. 유채잎 뜯어먹으니 배가 불러요.


  온누리에는 얼마나 많은 ‘책’이 있을까요. 누군가 개구리를 사진으로 찍고, 개구리 한살이를 들여다보고서 글과 사진으로 갈무리해야 책이 되지 않아요. 개구리를 늘 들여다보고, 개구리 노랫소리 즐기며, 개구리하고 논밭에서 뛰놀면 신나는 ‘개구리 책읽기 놀이와 삶’이 돼요. 불교를 다룬 책, 철학을 다룬 책, 인문학자가 주고받은 말 담은 책, 이런 책 저런 책을 읽어야 책이지 않아요. 할머니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김치 담그고 반찬 빚는 솜씨 익힐 때에도 책읽기예요. 아이들과 뒹굴며 함께 놀 때에도 책읽기예요. 한편으로는 책쓰기가 되기도 해요. 밥 한 그릇 지어 식구들과 함께 먹을 때에도 책쓰기가 되고, 아이들한테 자장노래 불러 줄 적에도 책쓰기가 돼요.


  삶이 즐거울 때에 책이 즐겁고, 책이 즐거우면서 삶 또한 즐거웁구나 싶어요.


  여섯 살 된 큰아이한테 오늘 처음으로 ‘외발 샛자전거’를 제 자전거와 자전거수레 사이에 붙이고 면소재지 우체국에 다녀왔어요.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다니다가, 이제 큰아이가 많이 커서 20킬로그램 넘다 보니, 두 아이를 나란히 수레에 못 태우겠더군요.


  일찍 장가간 동무들은 아이들이 어느새 대학생인데, 우리 아이는 큰아이가 여섯 살이랍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늘 들여다보고 함께 복닥이면서, 저 스스로 새롭게 배우고 나눌 수 있어 즐거워요.


  책이라 하면, 나무를 베어 빚은 종이책만 책일 수 없다고 느껴요. 종이책 10만 권을 읽는다 하더라도, 사람책은 거의 안 읽는다면, 사랑스러운 벗책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푸른 나무와 풀과 꽃으로 이루어진 책 또한 못 읽는다거나, 하늘책 별책 달책 구름책 바람책 흙책 물책 …… 온갖 책들을 골고루 사랑하지 못하면, 얼마나 따분하고 아쉬운 나날이 될까요. 온누리 온갖 책 찬찬히 즐기면서 하루하루 누릴 때에 비로소 오롯이 한 사람 되는구나 싶어요.


  눈이 어두워지면서 글을 읽기 어렵다면, 아름다운 노래 들려주는 소리책이 있어요. 이를테면, 제비라든지 귀뚜라미라든지 풀무치라든지 참새라든지. 참새도 노랫소리 참 곱잖아요.


  즐거운 삶책으로 하루하루 아름다운 이야기 여밀 수 있어요. 고운 봄날 천천히 저물어 저녁 다가옵니다. 밥 맛나게 먹어요. 서로서로 기쁘게 노래하고, 살가운 노래 들으며 밥 맛있게 나눠요. 4346.3.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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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855) -의 삶 1 : 거의 마찬가지의 삶을 살았다

 

유대의 엄격한 전통을 좇는 매우 신심 깊은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시내의 다른 사람들과 거의 마찬가지의 삶을 살았다
《캐시 케이서/최재봉 옮김-클레피, 희망의 기록》(푸르메,2006) 22쪽

 

  “유대의 엄격(嚴格)한 전통(傳統)”은 “엄격한 유대 전통”으로 손보면 토씨 ‘-의’가 떨어집니다. 생각을 기울여 보면, “오랫동안 이은 유대겨레 삶”이나 “예부터 이어온 유대겨레 삶”으로 새롭게 적을 수 있어요. “신심(信心) 깊은”은 “믿음 깊은”으로 다듬습니다. ‘대부분(大部分)은’은 ‘거의 모두는’이나 ‘거의 모두’로 손질하고, “시내의 다른 사람들과”는 “시내에서 사는 다른 사람들과”나 “시내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로 손질해 줍니다.

 

 거의 마찬가지의 삶을 살았다
→ 거의 마찬가지 삶을 누렸다
→ 거의 마찬가지 삶을 즐겼다
→ 거의 마찬가지로 살았다
 …

 

  오늘 하루 살아갑니다. 어제 하루 즐거이 누렸습니다. 모레도 글피도 반가이 맞이합니다. 즐기는 삶이고, 누리는 삶입니다. 빛내는 삶이요, 반가운 삶이에요.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스스로 아름답다 여기는 길을 걷습니다. 이러한 삶이든 저러한 삶이든 스스로 생각과 사랑을 보듬는 길을 걷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삶을 꾸립니다. 어머니는 어머니 삶을 일굽니다. 나는 나대로 살아가고, 내 이웃과 벗은 내 이웃과 벗대로 살림을 빚습니다. 삶이요 살림입니다. 살고 살아갑니다. 4339.12.22.쇠./4346.3.8.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오랜 유대겨레 삶을 좇는 매우 믿음 깊은 이들도 있었지만, 거의 모두는 시내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거의 마찬가지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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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65) -의 삶 2 : 걸레의 삶을 산다

 

나는 걸레가 되지 않으려고 / 필사적으로 걸레의 삶을 산다 / 검은 때와 퀴퀴한 냄새를 끌어안고 / 넝마처럼 너덜거리는 어둠의 생을 산다
《이경임-부드러운 감옥》(문학과지성사,1998) 82쪽

 

  ‘필사적(必死的)으로’는 “죽음을 무릅쓰고”나 “죽을힘 다해”나 “죽도록”으로 손볼 낱말입니다. 이 뜻을 살려 “악을 쓰고”나 “악에 받쳐”나 “온힘 다해”나 “모든 힘 쏟아”로 손질할 수 있고, “이를 악물고”라든지 “갖은 힘을 쏟아”라든지 “악착같이”로 다듬어 볼 만합니다. “삶을 산다”나 “생(生)을 산다”라는 말마디는 겹말로 잘못 썼다 할 만하지만, “잠을 잔다”를 헤아리면 이렇게도 쓸 만합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말투도 널리 자리잡을 수 있다고 느껴요. 그러나, 아직은 ‘산다’나 ‘살아간다’라 적거나 ‘삶을 꾸린다’나 ‘삶을 누린다’처럼 다듬어야 알맞습니다.

 

 필사적으로 걸레의 삶을 산다
→ 악을 쓰고 걸레처럼 산다
→ 이를 악물고 걸레마냥 산다
→ 온힘 다해 걸레와 같이 산다
→ 죽도록 걸레 되어 산다
 …

 

  보기글은 시입니다. 싯말 흐름을 살피면 조금 다르게 다듬을 수 있습니다. “-의 삶을 산다” 꼴만 다듬어도 되고, 아예 새롭게 시를 쓴다는 마음으로 “나는 걸레가 되지 않으려고 / 악착같이 걸레가 된다”라든지 “나는 걸레가 되지 않으려고 / 온힘 다해 걸레 되어 산다”라 적을 수 있어요. 걸레가 되지 않으려고 걸레가 된다고 할까요.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바보가 된다고 할까요. 시를 쓴 분 삶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곰곰이 되새기면서, 이 마음을 가장 알맞게 담고 가장 슬기롭게 빛내며 가장 사랑스레 꽃피어날 말마디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의 삶을 산다”에서 ‘삶’만 한자 ‘生’으로 바꾼 다른 대목 “어둠의 생을 산다”도 여러모로 살피며 손질해 봅니다.

 

 넝마처럼 너덜거리는 어둠의 생을 산다
→ 넝마처럼 너덜거리는 어둠을 산다
→ 넝마처럼 너덜거리는 어둠으로 산다
→ 넝마처럼 너덜거리는 어둠 되어 산다
→ 넝마처럼 너덜거리는 어둠과 같이 산다
 …

 

  앞 대목에서 “-을 산다”고 했으니 뒷 대목에서도 “-을 산다”로 마무리지을 수 있어요. 앞 대목을 “-이/가 된다”로 손보면, 뒷 대목에서도 “-이/가 된다” 꼴로 손봅니다. 또는 앞과 뒤를 살짝 달리 적을 수 있어요. 느낌을 살리면서 이야기를 빛내고, 이야기를 밝히면서 말결을 살찌웁니다.


  스스로 빛이 되려고 할 때에 빛나는 말이에요. 스스로 꽃이 되려고 할 적에 꽃과 같이 피어나는 말이에요. 한 마디 두 마디 사랑스럽고 따사로이 보듬기를 빕니다. 4346.3.8.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나는 걸레가 되지 않으려고 / 죽을힘 다해 걸레처럼 산다 / 검은 때와 퀴퀴한 냄새를 끌어안고 / 넝마처럼 너덜거리는 어둠 되어 산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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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놀이 3

 


  작은아이는 뒤에서 자전거 밀고 싶고, 큰아이는 혼자서 달리고 싶고. 두 아이가 마당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논다. 이제부터 날마다 이 모습을 보겠구나. 둘 다 무럭무럭 크렴. 그럼, 다 함께 서로서로 자전거 한 대씩 타면서 이웃마을로 나들이 다닐 테니까. 4346.3.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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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8

 


따뜻하며 좋은 집
― 사이에서
 강태영 사진
 사월의눈 펴냄,2013.1.31./2만 원

 


  내가 먹는 밥은 내 숨결입니다. 봄나물 뜯어서 먹으면 봄나물이 내 숨결 되고, 라면 끓여서 먹으면 라면이 내 숨결 됩니다. 냇물을 떠서 마시면 냇물이 내 숨결로 다시 태어납니다. 가게에서 먹는샘물 사다 마시면 먹는샘물이 내 숨결로 거듭날 테고요.


  사건과 사고 이야기 가득한 신문을 읽는 사람은, 신문에 가득 실린 사건과 사고 이야기가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사건과 사고 이야기 가득한 신문을 읽으며, 이녁 머릿속에는 사건과 사고 생각이 자꾸 맴돌며, 으레 이런 사건과 사고 이야기를 이웃과 동무랑 주고받습니다. 씨앗을 심어 날마다 사랑스레 돌보는 사람은, 씨앗을 심어 날마다 사랑스레 돌본 이야기가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씨앗을 심어 날마다 사랑스레 돌보면서, 이녁 머릿속에 마음속에는 씨앗하고 어우러지는 사랑스러운 이야기 넘실거려, 이녁 이웃과 동무랑 이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비판은 늘 비판을 낳습니다. 비판을 하면서 어떤 정치나 사회나 교육이나 문화를 바꾸지 못합니다. 비판을 할 때에는 비판이 남고 새 비판이 자라며 다른 비판이 불거집니다.


  사랑은 늘 사랑을 낳습니다. 사랑을 하면 정치이든 사회이든 교육이든 문화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헤아릴 뿐,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아요. 곧,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스러운 마음결로 정치를 가끔 헤아리면, 정치가 사랑스레 바뀝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스러운 눈길로 문화를 더러 떠올리면, 문화가 사랑스레 달라져요.


  아픈 이웃한테 찾아가서 아픈 이웃 삶자락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으면 ‘아픈 삶자락 보여주는 사진’을 얻습니다. 살가운 이웃하고 함께 살아가며 살가운 이웃 삶자락을 틈틈이 사진으로 찍으면 ‘살가운 삶자락 나누는 사진’을 얻습니다.

 

 

 

 

 

 


  두멧시골 두멧나라 찾아가서 사진을 찍어야 다큐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이쁘장하고 몸매 늘씬한 아가씨를 만나서 사진을 찍어야 패션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찍을 사진은 ‘사진’일 뿐입니다. 이런 갈래 저런 이름 붙이는 사진이 아닌, 그저 ‘사진’을 찍을 노릇입니다.


  스스로 사랑할 삶을 떠올리며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사랑하고픈 삶을 생각하며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리는 삶을 즐기며 찍는 사진입니다.


  어떤 부자가 돈을 또 얼마나 더 갈무리해서 더 어마어마하게 큰 부자가 되든 말든 나하고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어떤 부자가 천만 원짜리 사진기를 쓴들, 일억 원짜리 사진기를 수십 수백 대 갖춘들, 나하고 얽힐 일 없습니다. 일억 아닌 백억 원짜리 사진기가 그이한테 있다 하더라도, 그이는 나처럼 느긋하고 한갓지게 우리 아이들과 하루 내내 복닥이며 떠들고 웃고 놀면서 사진을 찍지 못해요. 그이는 너무나 커다란 돈을 벌어 요모조모 건사하느라 바쁘거든요.


  내가 쓰는 사진장비는 아주 값쌉니다. 한물 갔다 할 만할 뿐 아니라, 두물 석물 넉물 간 구닥다리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갓 나오는 번쩍거리며 값지거나 값비싸다 하는 사진장비를 바라보면, 기계로 따질 때에는 문득 이런 느낌이 들곤 해요.


  그런데, 나는 열 몇 해째 쓰는 낡은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먹습니다. 나는 웃옷 한 벌 열 몇 해째 손빨래를 하고 마당에 해바라기하며 말려서 새로 입습니다. 큰아이는 다른 이웃 아이가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고, 작은아이는 큰아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습니다. 아주 가끔 아이들한테 새 옷 한 벌 사 주기도 하지만, 이웃한테서 물려받아 입히는 옷이 참 곱고 예뻐요. 아이들은 즐겁게 옷을 받아 입고, 아이들은 스스로 새 웃음꽃과 노래열매 길어올립니다.

 

 

 

 

 

 


  따뜻하며 좋은 집은 ‘내 보금자리’입니다. 내 사랑을 담아 내 손길로 따사로이 돌보는 곳이 내 보금자리입니다.


  부동산은 부동산일 뿐, 보금자리가 못 됩니다. 누구나 ‘집’에서 살기는 하지만, 집을 보금자리로 여기며 누리는 사람이 있고, 집을 부동산으로 삼아 숫자를 따지는 사람이 있어요. 집값이 오르면 내 보금자리가 나아질까요. 집값이 떨어지면 내 보금자리가 서글플까요.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쉰 해 백 해 오백 해를 살아가고 싶어요. 나는 내 보금자리를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우리 아이들은 새로 아이 낳아 물려줄 수 있기를 빌어요. 집값이나 땅값이 오른대서 팔아치우고 다른 데로 갈 마음이 없어요. 언제까지나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가고픈 보금자리예요.


  강태영 님이 즐긴 사진으로 엮은 사진책 《사이에서》(사월의눈,2013)를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여느 책방에서 구경할 수 없고, 인터넷책방에서도 다루지 않습니다. 사진책을 펴낸 분한테 따로 연락을 하거나, 사진책 펴낸 작은 출판사 작은 인터넷집에 들어가서 주문하고 천천히 기다려야 할 뿐 아니라, 편지값까지 치러야 장만할 수 있습니다. 뭘 이렇게 번거롭게 책을 만들어서 파느냐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고작 열 몇 해 앞서까지만 해도, 책은 누구나 이렇게 다루었어요. 고작 열 몇 해 앞서까지만 해도, 책을 가까운 동네책방에 주문해서 여러 날 기다린 다음 받아서 읽었어요. 빨리빨리 읽어치우는 책이 아니라, 느긋하게 오래도록 책상맡에 두면서 아로새기고 되새기고 곱새기고 돋을새기면서 즐길 때에 책이라고 했어요. 예부터 사람들은 책 하나 찬찬히 즐기면서 누렸지, 더 많은 책을 더 빨리 읽어치우지 않았어요. 다섯 수레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하더라도, 오래도록 꾸준하고 한결같이 사랑하는 넋으로 즐기다가 시나브로 다섯 수레 책이 모일 뿐, 처음부터 큰돈으로 왕창 사들이는 책은 아니었어요. 곧, 누군가는 100조 원이니 1조 원이니 하는 큰돈 있는 부자라 하더라도, 이녁 스스로 삶을 즐기거나 누리지 못하면 모든 돈이 부질없어요. 일억 원짜리 사진기가 있다 한들, 당신 아이들 웃음꽃 사진을 한갓지게 담을 겨를이 없으면 무슨 보람 있겠어요. 아이들한테 천 원짜리 과자 한 봉지 사 주려 하더라도 바닥난 살림돈이 떠올라 그냥 물 마시고 밥 먹자고 말하는 살림살이이지만, 함께 놀고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뛰고 함께 별바라기 해바라기 누리는 하루라면 모든 삶이 보람입니다.


  사진책 《사이에서》는 따뜻하며 좋은 집을 이야기합니다. 저마다 누리는 따뜻하며 좋은 집을 노래합니다. 이야기 한 자락이 사진이 됩니다. 이야기 두 자락이 노래가 됩니다. 이야기 석 자락 있으면 사랑이 되겠지요. 이야기 넉 자락 있으면 이제 무엇이 될까요. 삶이 될까요. 꿈이 될까요. 믿음이 될까요. 웃음이 될까요. 나무가 될까요. 숲이 될까요.


  삶을 사랑하면서 꿈을 꾸는 마음 곱게 건사하면서 사진 한 장 즐기는 이웃이 차츰 늘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너와 나 사이에서 이야기 한 꾸러미 자라기를 빕니다. 당신과 우리 사이에서 노래 한 가락 울려퍼지기를 바랍니다. 4346.3.8.쇠.ㅎㄲㅅㄱ


* 사진책 《사이에서》를 사서 읽고 싶으면 *
https://www.facebook.com/aprilsnowpress
honeyshy@gmail.com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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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밭에서 - 가난한 농사꾼의 노래
박형진 지음 / 보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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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시골
[시를 말하는 시 16] 박형진, 《콩밭에서》

 


- 책이름 : 콩밭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노래
- 글 : 박형진
- 펴낸곳 : 보리 (2011.6.27.)
- 책값 : 8000원

 


  시골마을에 집자리 마련해 살아갑니다. 시골마을에 집자리를 마련해 지내면서 처음으로 한 일은 쓰레기 치우기입니다. 도시에서 집자리 알아볼 때에는 처음부터 쓰레기 치우기를 하지 않습니다. 달삯 내고 지내는 곳이건 해마다 집삯 치르는 곳이건, 도시에서는 집임자가 으레 쓰레기를 치워 줍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어느 집이나 쓰레기를 울타리 한켠에서 태우거나 땅에 묻습니다. 비닐, 빈병, 깡통, 시멘트조각, 비닐끈, 비닐봉지, 깨진 그릇, 슬레트지붕 모두 땅에 묻어요.


  예전에는 시골 논밭을 깊이 파면 유물이나 유적이 나오곤 했다지요. 요즈음은 시골 논밭을 깊이 파면 온갖 쓰레기가 나와요. 앞으로 백 해 이백 해 뒤 일이 아닌, 요즈음 모습이에요. 지난날 시골에는 쓰레기라 할 만한 무언가 하나도 없었을 테지만, 나날이 도시 문명과 문화가 시골로 스며들면서 나날이 온갖 쓰레기가 생겨요.


  그러면, 도시에서는 왜 살림집 곁에 쓰레기가 없을까요. 도시에서는 그때그때 쓰레기 치우는 일꾼이 돌아다니니까요. 동네마다 청소 일꾼 다니면서 쓰레기를 거두어요. 그리고, 이 쓰레기를 도시 바깥 시골에 파묻거나 높직하게 쌓지요.


.. 우와― / 산에 저 벚꽃 터지는 것 좀 봐 / 가슴이 활랑거려서 / 아무것도 못 허겄네 ..  (화전)


  물건이 새로 나올 때마다 쓰레기가 잔뜩 나옵니다. 공장에서 물건 하나 만들 적마다 쓰레기가 엄청나게 나옵니다. 사람들은 완제품 하나만 바라보지만, 완제품 하나 가게에 놓일 때까지 지구자원을 쓰고 물과 바람을 더럽히며 땅과 숲을 망가뜨려요. 게다가 공장 물건 하나는 한 번 쓰고 버리거나 몇 번 쓰고 버리기 마련이에요. 과자 한 봉지를 먹어도 쓰레기이고, 과자봉지 담은 비닐봉지 또한 쓰레기입니다. 휴지꾸러미도 쓰레기요 휴지도 쓰레기가 됩니다. 손전화 새로 바꾸면 예전 기계도 쓰레기요, 손전화 싸는 상자도 쓰레기예요. 커피 한 잔 가게에서 산 다음 길거리 거닐며 마시면, 커피 담은 그릇도 쓰레기이지요. 빨대도 쓰레기이고요.


  가을에 씨앗을 거두어 봄에 새로 씨앗을 심을 적에는 쓰레기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시들 풀잎이나 풀줄기는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됩니다. 씨앗이나 푸성귀나 열매를 먹을 적에도 쓰레기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 밥이 되고, 밥을 먹으면 똥으로 나옵니다. 똥은 잘 갈무리하고 삭혀 거름으로 쓰는 흐름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날 우리 시골에서는 어디에나 쓰레기란 없었어요. 시골사람 입는 옷도 쓰레기가 아니에요. 풀에서 얻은 실로 짠 옷이기에, 너덜너덜 해지면 걸레로 쓰다가 거름으로 쓸 수 있어요. 또는 둘둘 말아 무언가 달리 쓸 자리가 있어요. 짚신도 다 닳으면 ‘짚’인 만큼, 흙으로 돌아가 흙을 살찌우는 구실을 해요.


.. 콩 한 말이 눈물 한 말이다 / 우리 아버지의 그 아버지 / 또 그 할머니의 할머니까지 / 콩 한 말이 한숨 한 말이다 ..  (함성)


  스스로 짓고 스스로 일구는 삶일 때에는 모든 살림살이가 사랑스럽습니다. 스스로 짓지 않거나 스스로 일구지 않는 삶일 적에는 이 물건 저 물건 모두 몇 차례 쓰고 나서 쓰레기로 바뀝니다. 사랑스럽지 못해요.


  도시에서는 아이들을 도시사람으로 기릅니다. 시골에서는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어 도시사람 되도록 가르칩니다. 도시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시골사람 되도록 이끄는 일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도 어른들이 아이들을 아름다운 시골사람으로 한삶 누리는 길 보여주거나 어깨동무하지 않아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고 누리고 나누고 빛낼 때에 즐거운 하루가 될까요.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로 가든 시골에 남든 할 아이들은 무엇을 만나고 사귀고 생각하고 찾고 함께할 때에 기쁜 삶이 될까요.


  문학은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즐길 때에 문학일까요. 문학은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며 빚을 때에 문학일까요. 예술은 누가 즐기는가요. 예술은 누가 빚는가요. 문화는 어떤 모습이나요. 문화는 누가 어디에서 이루나요.


.. 쌀을 팔아다 쌀독에 부어주는 일은 / 뭔가 항상 가슴 벅찬 일이다 ..  (쌀)


  콩을 심어 콩잎 돋고 콩줄기 뻗어 콩꽃 피다가는 콩알 맺힙니다. 팥을 심으면 차츰차츰 자라고 크며 팥이 나와요. 벼 씨앗인 볍씨를 심어 벼를 다시 얻습니다. 열매나무는 튼튼하고 우람하게 자라면서 해마다 새로운 씨앗 품은 열매를 환하게 내놓습니다.


  해마다 봄이 오면 봄꽃을 보고 봄내음 맡으며 봄풀을 먹습니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여름나무를 보고 여름맛을 누리며 여름풀을 먹습니다.


  숲에는 쓰레기가 없습니다. 숲에는 나무와 풀과 꽃이 있습니다. 숲에는 문화나 문명이나 예술이나 진보나 교육이나 아무런 도시 것이 없습니다. 숲에는 벌레와 짐승과 냇물과 골짝과 멧자락이 있습니다. 숲에는 책이 없고 책방이 없습니다. 숲에는 빈터와 풀밭이 있습니다. 숲에는 학교가 없고 공무원이나 대통령이 없습니다. 숲에는 소리가 있고 빛깔이 있으며 냄새가 있어요.


.. 처음부터 / 돈이 되지 않을 것을 몰라서였다기보다 / 사랑의 결과를 믿지 않는 / 내 행동의 천박함을 몰랐다 / 경운기는 거침없이 나아간다 간혹 / 돌에 걸려 비척대는 것이 / 양심의 발길질 같아 괴롭기도 하지만 / 다시 여기에 무얼 심겠다고 이러는지 / 갈아 뒤엎어진 흙덩이 사이로 ..  (보리)


  사람은 사람이 살아갈 만한 데에서 살아야 사람빛이 난다고 느낍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아름다이 나눌 사랑을 생각해야 사람내음이 난다고 느낍니다. 사람은 사람답게 눈망을 밝히면서 어깨동무 즐겁게 할 때에 사람맛 소담스럽고 구수한 꿈이 피어난다고 느낍니다.


  하늘과 같은 숨을 마십니다. 풀과 같은 빛을 뿜습니다. 나무와 같은 다리를 돌보며 씩씩하게 걷습니다. 시냇물과 같은 눈길로 산뜻하고 맑게 웃습니다. 꾀꼬리 제비 개구리 박새 방울벌레 귀뚜라미 소쩍새 같은 목소리로 구슬 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구름이 흐르고 해가 뜹니다. 별이 반짝이며 달이 환합니다. 바람은 나뭇잎 간질이며 풀노래 잎노래 들려줍니다. 햇살은 꽃봉오리에 닿아 꽃노래 흐드러집니다. 아이들은 마당을 뒹급니다. 까르르 웃고 떠들며 뛰놉니다. 밥을 짓고 국을 끓입니다. 살아가는 따사로운 내음이 온 집안을 감돕니다.


.. 소나기가 오려면 용이 올랐어 / 칠산 저 먼바다 하늘 맞대인 곳에선 / 검은 구름장 사이로 꼬리만 회오리치듯 ..  (모항 4)


  전라도 시골자락에서 흙을 만지는 박형진 님이 쓴 시집 《콩밭에서》(보리,2011)를 읽습니다. 시골사람 박형진 님이기에 시골살이를 싯노래처럼 엮어 읊습니다. 시골에서 시골일 하면서 아이를 낳아 돌본 삶을 이야기합니다. 시골에서 시골사람 되어 시골살림 꾸린 하루하루를 이야기꽃으로 들려줍니다.


  봄에는 봄노래 부르는 시골살이가 그대로 시로 태어납니다. 여름에 여름밥 먹는 시골살이가 고스란히 시로 거듭납니다. 가을에 가을걷이 바쁜 시골살이가 오롯이 시로 됩니다. 겨울에 겨울나기 누리는 시골살이가 하나둘 시로 영급니다.


.. 쑥이 많아서 우린 그냥 / 쑥구뎅이라 했지 // 사방을 산이 가로 막아서 / 봄이면 햇볕도 애처로운 곳 ..  (모항 8)


  사람들이 저마다 생각을 갈무리해서 시로 쓰기도 합니다. 생각을 쓰거나 나타내는 문학이리라 봅니다. 그리고, 생각이란, 삶에서 비롯합니다. 삶에서 비롯하는 생각이기에, 시에 생각을 그득 담는다 하더라도, 시를 쓴 사람 삶이 낱낱이 드러나요. 삶을 차근차근 풀어서 보여주어도 삶을 느끼고, 생각자락 한껏 드러내어도 삶을 느낍니다.


  전라도 시골살이란 무엇일까요. 아이 여럿 낳아 시골일로 먹여살리고 하루하루 누린 나날이란 무엇일까요. 박형진 님은 어떤 하늘 누리며 지낸 하루였을까요. 박형진 님은 어떤 땅을 어떤 발로 디디고 어떤 손으로 쓰다듬은 삶이었을까요. 개구리 깨어날 철이 다가옵니다. 멧개구리 깨어나 논자락이나 둠벙 물에 알 잔뜩 낳을 철이 가깝습니다. 올해에는 개구리알 얼마나 논에서 새 개구리로 태어날 수 있을까요. 올해에는 새 개구리들 얼마나 자동차나 경운기에 안 밟히고 살아남아 들노래 베풀어 줄까요. 창호종이 바른 나무문 사이로 하얗게 아침햇살 드리웁니다. 이장님 마을방송 흐르고, 오늘도 새롭게 하루 엽니다. 4346.3.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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