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마리 책읽기

 


  꽃마리가 꽃마리인 줄 몰랐다. 참 오래도록 꽃마리라는 풀이름을 모르며 살았다.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꽃마리를 꽃마리인 줄 모르면서 즐겁게 뜯어서 먹었다. 우리 집 마당에서건, 대문 앞에서건, 밭둑에서건, 이웃집 논둑에서건, 참 흔하게 피고 지는 이 들꽃이 무엇인가를 몰랐지만, 잎사귀 싱그럽기에 아이들과 함께 뜯어서 먹었다.


  네 이름은 꽃마리라고 누군가 붙였구나. 왜 꽃마리일까. 꽃마리라는 이름에는 어떤 넋이 깃들었을까. 먼먼 옛날, 긴긴 겨울 견디며 새봄 맞이했을 적에, 들판에 푸릇푸릇 어여쁜 기운을 봄까지꽃이랑 별꽃이랑 냉이랑 나란히 퍼뜨리는 너를 바라보던 누군가 꽃마리라는 이름을 떠올렸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느 들풀이지만, 봄까지꽃 별꽃 꽃다지 꽃마리, 너희는 풀이름에 ‘꽃’을 하나씩 붙이는구나. 너희 꽃송이는 아이들 거스러기 크기만 하다 싶은데, 아이들 새끼손톱보다 훨씬 작은데, 이 작은 꽃망울로 봄을 부르고, 봄내음 퍼뜨리며, 봄맛을 나누어 주는구나.


  네 잎사귀를 먹으며 하루를 빛낸다. 네 잎사귀를 만지며 하루가 기쁘다. 네 꽃대와 꽃송이까지 봄나물로 즐기며 하루하루 고맙다. 4346.3.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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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6 07:49   좋아요 0 | URL
봄까지꽃 별꽃 꽃다지 꽃마리 삼지닥꽃..오늘 외우고 다닐 봄꽃 이름들.
함께살기님,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3-03-26 08:48   좋아요 0 | URL
외우지는 마시고 마음에 잘 담아 주셔요.
올봄에 즐기고
다음봄에 또 즐기고 하다 보면
저절로 스며들 이름이 되리라 생각해요~

북극곰 2013-03-26 09:57   좋아요 0 | URL
실제로는 이렇게 작은 꽃이었군요.
<꽃이 핀다>(보림)라는 그림책에서 보고는 색이 참 이쁘다 했거든요.
이름도 참 이쁘죠?

파란놀 2013-03-26 10:14   좋아요 0 | URL
우리 집 아이가 손에 쥔 모습 찍으면
얼마나 작은지 느낄 수 있을 텐데,
다음에는 그 모습 하나 담아야겠어요.

이름도 모양도... 또 맛까지!
참 좋답니다 ^^;;;;
 

꽃다지 책읽기

 


  땅바닥에 엎드리면 볼 수 있는 꽃다지. 뻣뻣하게 지나가면 볼 수 없는 꽃다지. 자전거로 휭 하고 달려도 볼 수 없는 꽃다지. 자가용을 쌩 몰아도 볼 수 없는 꽃다지. 그런데,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는 군내버스 타고 지나가면서도 꽃다지 내음을 맡고, 냉이 내음을 맡는구나.


  하기는. 나도 이웃 자가용 얻어타고 길을 달리다가도 매화내음을 느끼고 살구내음을 느끼기도 한다. 기차를 타고 지나가다가도 능금내음이랑 복숭아내음을 느끼며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기도 한다.


  마음이 있으면 느끼고, 느낄 수 있으면 보며, 바라보면 사랑이 샘솟는다. 꽃다지야, 너는 참 곱게 땅바닥에 붙어서 자라며 노랗게 노랗게 노랗게 꽃을 피우는구나. 네 꽃송이는 나비와 벌과 벌레한테 어울리겠지. 작은 나비와 벌과 벌레는 네 꽃가루 먹으면서 예쁜 숨결 잇겠지. 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한다지만, 네 꽃가루가 바람 따라 들판에 날리면, 사람들 살결에도 보드라이 스며들겠지. 4346.3.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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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색 책읽기

 


  금탑절을 거닐다가 현호색을 만난다. 디디고 오르는 돌 곁에 조그맣고 앙증맞게 피었다. 흙길에 돌을 놓아 디디고 오르도록 했기에 현호색이 씨앗을 퍼뜨려 이렇게 피어나는구나 싶다. 돌 아닌 시멘트로 디딤돌을 삼았다면, 흙과 돌로 이루어진 거님길이 아니라 쇠붙이 난간이나 계단을 만들었다면, 현호색뿐 아니라 다른 들풀도 이곳에 뿌리를 못 내렸겠지.


  파르스름한 꽃송이를 바라본다. 괴불주머니도 현호색과 같은 주머니가 달렸는데, 왜 현호색은 현호색이고 괴불주머니는 괴불주머니일까. 곰곰이 살피면, 현호색이랑 괴불주머니는 잎사귀 모양이 다르다. 나중에 꽃이 지고 씨앗을 맺을 때에도 씨방 모양이 다를까.


  현호색 푸른 잎사귀 몇 뜯어서 맛을 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다른 들꽃처럼 수없이 퍼지면서 흐드러지는 들꽃이 되지는 못한다고 느껴, 풀맛 보고픈 마음을 누른다. 예쁜 꽃송이 이루는 현호색은 잎사귀와 꽃송이가 어떤 맛일까. 오늘날은 시골이 파헤쳐지고 숲과 멧골이 무너지거나 구멍 뚫리기 일쑤라, 현호색 같은 들꽃은 보금자리를 쉬 빼앗긴다. 봄날 멧길 오르면 어렵잖이 볼 수 있는 들꽃 가운데 하나가 현호색이라고는 하나, 참말 ‘어렵잖이 볼 수 있다’고 쉬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사람들이 걱정하거나 말거나 현호색은 피고 질 테지.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현호색은 저들 깜냥껏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으며 어린 아기꽃 이듬해에 피어나도록 힘쓸 테지. 아주 조그마한 꽃송이 몇이지만, 둘레를 환하게 밝힌다. 냉이꽃도, 꽃마리도, 꽃다지도, 광대나물도, 모두 조그마한 꽃송이인데, 이 작은 꽃송이로 봄들판 어여삐 밝힌다. 그래, 네 잎사귀 맛을 못 보더라도, 네 맑은 꽃빛으로 사람들 가슴을 넉넉히 채워 주는구나. 4346.3.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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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208) -화化 10 : 무화 1

 

생명은 항상 앞으로 나아가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의 성취를 모두 무화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자크 브로스/양영란 옮김-식물의 역사와 신화》(갈라파고스,2005) 31쪽

 

  ‘생명(生命)’ 같은 낱말은 그대로 쓸 수 있겠지요. 그러나 글흐름을 살피면서 ‘목숨’이나 ‘숨결’로 손질할 수 있어요. ‘항상(恒常)’은 ‘늘’이나 ‘언제나’로 고쳐 줍니다. ‘한결같이’나 ‘꾸준히’나 ‘지며리’로 고쳐도 됩니다. ‘경우(境遇)’는 ‘때’로 다듬고, “과거(過去)의 성취(成就)를”은 “지난날에 이룬”이나 “그동안 이루어낸”으로 다듬습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이면, ‘무화(無化)’라는 한자말은 안 나옵니다. 글을 쓰는 분들이 곧잘 이 한자말을 쓰지만, 국어사전에까지는 안 싣는 한자말, 그러니까 중국말이거나 일본말인 바깥말입니다. 설마 싶어, ‘無化’와 짝을 이룰 ‘有化’가 국어사전에 실렸을까 찾아보니 ‘유화’도 국어사전에 없습니다.


  참 마땅한 일일 테지요. 이런 바깥말을 한국말사전에 담아야 할 까닭이 없어요. 이런 바깥말을 한국사람이 쓸 까닭이 없어요.


  한자 ‘무(無)’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봅니다. 한국말 아닌 한자 ‘무’인데, 이 낱말은 국어사전에 나옵니다. “없거나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하고 “지금까지 애쓴 것이 무가 되어 버렸다” 같은 보기글이 실립니다.

 

 모두 무화하는
→ 모두 없이 하는
→ 모두 없애는
→ 모두 없던 셈 치는
→ 모두 떨구어 내는
→ 모두 털어 버리는
 …

 

  생각을 기울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란, “아무것이 없는데 무언가 새로 만들다”입니다. 또는 “맨땅에서 무언가 만들다”예요. “지금까지 애쓴 것이 무가 되어 버렸다”란, “이제까지 애쓴 것이 도루묵이 되어 버렸다”입니다. 또는 “여태까지 애쓴 것이 사라져 버렸다”예요.


  있던 것을 없던 것으로 돌린다는 뜻입니다. 있었는데 모두 없앤다는 소리입니다. 털어 버린다고, 떨구어 낸다고, 씻어 낸다고, 비워 버린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4338.8.1.달./4346.3.25.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목숨은 늘 앞으로 나아가며, 때에 따라서는 지난날 이룬 모두를 없애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

 

 '-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179) -화化 179 : 무화 2

 

나아가서 부주의 때문에 그의 삶은 무화無化된다고까지 저는 말하죠
《브뤼노 몽생종/임희근 옮김-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포노,2013) 48쪽

 

  “부주의(不注意) 때문에”는 “작은 잘못 때문에”나 “잔잘못 때문에”나 “마음을 잘못 쓰는 바람에”로 손봅니다. “그의 삶은”은 “그 사람 삶은”으로 손질합니다.

 

 그의 삶은 무화無化된다고까지
→ 그 사람 삶은 사라진다고까지
→ 그 사람 삶은 없어진다고까지
→ 그 사람 삶은 빈털털이가 된다고까지
→ 그 사람 삶은 텅 비어 버린다고까지
 …

 

  ‘무화’라는 한자말 뒤에 ‘無化’를 덧달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더 잘 알아볼까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무화’라는 한자말을 안 쓸 노릇이지 싶어요.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만하도록 글을 쓸 일이요, 가장 쉬우면서 바른 말마디로, 가장 환하면서 또렷한 말투로 가다듬어야지 싶어요.


  뜻과 느낌을 살려서 “송두리째 사라진다고까지”나 “통째로 날아간다고까지”나 “모두 허물어진다고까지”처럼 적을 수 있어요. “깡그리 없어진다고까지”나 “잿더미가 된다고까지”처럼 적어도 됩니다. 4346.3.25.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나아가서 작은 잘못 때문에 그 사람 삶은 모두 허물어진다고까지 저는 말하죠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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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85) 제일착

 

하지만 따끈따끈한 새책을 제일착으로 볼 수 있는 사서의 특권은 육체적 고통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사서가 말하는 사서》(부키,2012) 77쪽

 

  ‘하지만’은 ‘그렇지만’이나 ‘그러나’로 다듬고, “사서의 특권(特權)은”은 “사서가 누리는 권리는”이나 “사서만 누리는 권리는”이나 “사서한테만 있는 권리는”으로 다듬습니다. “육체적(肉體的) 고통(苦痛)을 버틸”은 “몸이 힘들어도 버틸”이나 “고된 일을 버틸”이나 “힘겨운 몸을 버틸”로 손봅니다.


  한자말 ‘제일착(第一着)’은 “가장 먼저 도착하거나 착수함”을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가장 먼저 닿다”나 “가장 먼저 하다”로 적으면 됩니다.

 

 새책을 제일착으로 볼 수 있는
→ 새책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 새책을 맨 먼저 볼 수 있는
→ 새책을 누구보다 먼저 볼 수 있는
 …

 

  ‘제일착’ 같은 한자말을 쓰려 한다면, ‘제이착’이나 ‘제삼착’ 같은 한자말을 쓰겠지요. 쉽게 생각하면서 쉽게 쓰는 길을 찾아보셔요. 첫째로 닿다, 둘째로 닿다, 셋째로 닿다, 이렇게 쓰면 돼요. 바르게 헤아리면서 바르게 쓰는 결을 살펴보셔요. 첫째로 하다, 둘째로 하다, 셋째로 하다, 이처럼 쓰면 됩니다. 한국사람 한국말을 슬기롭게 씁니다. 4346.3.25.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렇지만 따끈따끈한 새책을 누구보다 먼저 볼 수 있는 남다른 즐거움은 고된 일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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