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그림 어린이

 


  바퀴 붙은 칠판을 하나 마련한다. 분필과 칠판지우개를 읍내 문방구에서 장만한다. 도서관마실을 하면 사름벼리는 칠판그림 그리며 논다. 널따란 판에 마음껏 그리다가는 슥슥삭삭 지우고는 새로 그릴 수 있다. 종이에 그릴 때하고 분필 쥐어 그릴 때에는 참 다르지? 어디에서든 무엇이든 다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단다. 4346.5.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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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물든 미국말
 (675) 믹스견(Mix犬)

 

순심이는 믹스견이에요. 흔히 똥개라고 하지요
《이효리-가까이》(북하우스,2012) 190쪽

 

  ‘믹스견’이라는 낱말을 처음 마주하면서 뭔 소리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똥개’라고 하는 낱말을 잇달아 들으면서 아하 하고 깨닫습니다. 그렇군요. 국어사전에는 안 실릴 낱말이요 영어사전에도 안 실릴 낱말이라 인터넷으로 살펴봅니다. 인터넷에서는 ‘믹스견(Mix犬)’을 “잡종견, 똥개를 순화하여 부르는 말. 영어의 ‘Mix’와 한자의 개 ‘견(犬)’의 합성어”라고 풀이합니다.

 

 순심이는 믹스견이에요
→ 순심이는 골목개예요
→ 순심이는 마을개예요
→ 순심이는 동네개예요
 …

 

  아마 ‘순종’과 ‘잡종’이라는 낱말 때문에 ‘믹스견’ 같은 낱말을 새삼스레 지으리라 생각합니다. 개라면 다 같은 개인데, 암컷과 수컷이 같은 갈래 아닌 다른 갈래끼리 붙어 낳은 개라서 조금 더 부드럽고 따스하게 가리키려고 이런 낱말을 지었구나 싶어요.


  그런데, ‘피 섞인 개’를 ‘똥개’라고 가리키는 일은 그리 알맞지 않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똥개란 똥을 먹는 개일 뿐, 피가 섞인 개를 가리킬 수 없어요. 게다가 지난날 똥개가 먹던 똥은 나쁜 똥이 아니에요. 시골마을에서 풀을 먹던 시골사람이 눈 풀똥을 먹는 개이니, 하나도 나쁠 개가 아니지요. 흙을 살리고 풀과 나무를 북돋우는 똥은 아주 값진 거름이에요. 똥오줌으로 거름을 내어 흙을 살찌워 씨앗을 심고 거두니,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눈 똥을 다시 먹는 셈입니다. 똥개만 똥을 먹지 않아요.


  곧, ‘믹스견’이라 한다면 ‘똥개’를 조금 더 부드럽게 가리키는 낱말이라고 여길 수 없어요. 한자말 ‘잡종(雜種)’을 부드럽게 가리키자 하는 낱말로 여겨야 할 뿐입니다.


  한국말에는 피 섞인 짐승을 가리키는 낱말이 따로 한 가지 있어요. 바로 ‘튀기’입니다. ‘튀기’는 ‘특이’라는 옛말이 꼴을 달리한 낱말이요, 이 낱말은 “수말과 암소, 수소와 암말 사이에 태어난 짐승”을 가리킨다고 해요. 그래서, 버새나 노새 같은 짐승이 바로 ‘튀기’입니다. 무언가를 깎아내리는 낱말이 아니고, 그저 ‘갈래 다른 짐승이 만나 태어난 짐승’을 가리키는 낱말일 뿐이에요.


  더 따진다면, 짐승을 가리킬 때에 쓰는 낱말이니, 이 낱말을 사람을 가리키는 자리에 쓰면 얄궂을 수 있겠지요. 다만, 누군가를 비아냥거리거나 깎아내리려는 뜻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어요. 왜냐하면, 사람을 가리켜 ‘꽃’이라고도 하고 ‘나무’라고도 합니다. 사내를 가리켜 ‘수컷’이라고도 하고 가시내를 가리켜 ‘암컷’이라고도 해요. ‘새끼’는 짐승이 낳은 어린 목숨을 가리키는 낱말이에요. 그런데 ‘새끼’라는 낱말을 “아이구 귀여운 내 새끼”처럼 쓰기도 해요. 얄궂게 거친 말을 하면서도 쓰지만, 스스로 따사롭고 좋은 마음이라 한다면, 푸나무 가리키는 낱말이든 짐승 가리키는 낱말이든 스스럼없이 즐겁게 쓸 만해요.


  안타깝다면, ‘튀기’라는 낱말, 곧 짐승 가리키는 이 낱말을 한겨레가 사람을 가리키는 자리에서 쓸 적에 얄궂은 마음이 되기 일쑤라, 자칫 이웃을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리는 일이 생기고 말아요.

 

― 골목개, 마을개, 시골개, 동네개, 길개(길강아지)

 

  영어와 한자말 섞은 ‘믹스견’ 같은 낱말을 쓰려 한다면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쯤 곰곰이 생각을 기울이면 더 좋겠어요. 더 부드럽고, 더 알맞으며, 더 쉽고, 더 따사롭게 가리킬 만한 이름 하나 즐겁게 빚도록 마음을 기울이면 한결 나으리라 느껴요.


  길에서 살아가기에 ‘길고양이’이듯, 개한테도 ‘길개’라 할 수 있습니다. ‘길개’라는 낱말 느낌이 썩 내키지 않다면 ‘길강아지’라 할 수 있어요. 골목고양이나 시골고양이나 마을고양이처럼, ‘골목개’나 ‘시골개’나 ‘마을개’ 같은 이름을 써도 잘 어울려요. 굳이 ‘피가 섞였느냐 안 섞였느냐’를 따지려 한다면, 말 그대로 ‘섞이다’라는 낱말을 쓰면 돼요.


  스스로 꾸밈없는 마음 되어 꾸밈없는 말을 나누면 좋겠어요. 스스로 따사로운 마음 되어 따사로운 말을 주고받으면 좋겠어요. 4346.4.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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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17] 나무읽기
― 마을 이루는 바탕이란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늘 한 가지 아쉽다고 여겼습니다. 내 어버이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될 무렵 여러모로 돈을 그러모아 아파트를 마련해서 ‘우리 집’이라고 삼으셨지만, 나는 이 아파트가 참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왜 아파트가 ‘우리 집’이어야 할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 집’이라 한다면, 마당이 있고 꽃밭이 있으며 나무 자랄 흙땅 있어야 한다고 여겼어요. 누가 가르치거나 알려주지 않았지만, ‘우리 집’이라 하면 우리 식구 사랑하면서 아낄 나무와 풀과 꽃이 자랄 흙땅 있어야 비로소 ‘우리 집’이 된다고 느꼈어요.


  국민학교 다니며 동무네 집 놀러갈 적에 언제나 새삼스레 깨달았어요. 아파트 사는 동무네 놀러갈 적에는 따로 느끼지 못했지만, 아파트 아닌 단독주택이라 하는 여느 골목집에서 살아가는 동무네 놀러가고 보면, 아무리 손바닥만큼 작은 마당이라 하더라도, 이 집에서 살아가는 동무는 ‘내 나무’가 있어요.


  그래, 내 나무 한 그루 있구나, 참 좋네, 하고 생각하며 으레 나무줄기 쓰다듬고 우듬지 올려다보곤 했어요. 작은 골목집 작은 골목나무 한 그루인데, 이 나무 한 그루 있기에 이 조그마한 살림집이 환하게 빛나면서 푸르게 따스하구나 하고 느껴요.


  도시 떠나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살아갈 새 터 헤아리면서 나는 다른 무엇보다 ‘나무 심어 돌보기’를 생각했어요. 세 식구 깃든 충청북도 멧골집에서는 살구나무 두 그루 심어 앞으로 이 살구나무 무럭무럭 자라 우리 집이 ‘살구나무 집’ 되기를 꿈꾸었어요. 네 식구 되고 나서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로 옮겨 지내는 오늘날은 우리 집 둘레에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대추나무, 이렇게 세 가지를 두 그루씩 심으며 꿈을 꿉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 스무 살 즈음 될 무렵에는 제법 우람하게 자랄 이 나무들을 바탕으로 우리 조그마한 이 집이 ‘나무 집’ 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해마다 이 나무 저 나무 몇 그루씩 심어 온갖 나무 골고루 어여쁘게 어우러지는 ‘집숲’ 되기를 꿈꿉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마을이라 한다면, 사람들 모여서 살아가기에 마을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집집마다 ‘집나무’를 심어서 돌보고, 마을 테두리에서는 마을사람 모두 보듬을 만한 넓은 멧자락과 숲이 있고 냇물이 흐르며 들판 있을 때에 비로소 마을이라 일컬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모두 똑같아요. 멧자락도 숲도 냇물도 들판도 없이, 시멘트 층집, 그러니까 아파트만 우줄우줄 때려박는 곳을 ‘마을’이나 ‘동네’나 ‘고을’이라고는 가리킬 수 없다고 생각해요. 수천 수만 사람 바글바글거리도록 때려짓는 아파트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지 못하도록 가두는 감옥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게다가, 이런 시멘트감옥 같은 데를 몇 억 원이니 하는 비싼값에 사고팔도록 하니, 더더욱 사람들을 바보로 짓누르는 셈 아닌가 하고 느껴요.


  나무 한 그루 심을 마당 한 뼘 누리지 못하는데 집값이 몇 억이라니요. 들나물 한 포기 뜯어서 먹을 기쁨 즐기지 못하는데 집값이 몇 억이라니요. 봄꽃 여름꽃 가을꽃 겨울꽃 철따라 다 다른 빛깔 맞이하지 못하는데 집값이 몇 억이라니요.


  나무가 자라 집을 지어요. 나무가 자라 바람내음 싱그러워요. 나무가 자라 새가 찾아들고 어여쁜 벌레가 깃들어요. 나무가 자라 열매를 베풀고 꽃을 나누어 줘요. 나무가 자라 그늘이 드리우고 햇살조각 눈부셔요. 나무가 자라 흙이 살아나고, 나무가 자라 아이들이 방긋방긋 웃으며 튼튼하게 함께 자라요.


  우리 집 나무를 떠올리다가 문득 하나 생각합니다. 역사를 밝히는 분들은 한겨레 발자취를 으레 단군 때부터 짚어 반 만 해를 말하는데요, 반 만 해 앞서 이 나라 삶터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사천오백 해 앞서는, 오천 해 앞서는, 오천오백 해 앞서는, 또 육천 해나 칠천 해 앞서는, 구천 해나 일만 해 앞서는, 이 나라 삶터에 어떤 이야기와 숨결과 빛줄기 있었을까요. 단군이라는 님이 있기 앞서, 이 나라 시골마을 사람들은 어떤 삶 누렸을까요. 팔천 해 앞서 이 땅에서 살던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어떤 집을 지으며 어떤 옷을 나누며 살았을까요.


  씨족 우두머리나 제사 지내는 우두머리 아닌 사람들은 삶에서 무엇을 바라보거나 돌보면서 하루를 누렸을까요. 전쟁무기 없던 지난날 사람들은 서로 어떤 하루 맞이하면서 어떤 삶 지었을까요. 갖은 문명과 문화를 누린다는 오늘날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하루 맞아들이며 어떤 삶 짓는가요. 공무원이나 회사원으로서 다달이 어느 만큼 돈을 벌기는 하되, 정작 스스로 하루하루 새 삶을 짓는 길하고는 그만 동떨어지지 않나요. 어른인 한 사람으로서 누리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아이들이 누리도록 하는 삶은 얼마나 빛나는가요. 4346.4.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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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 책읽기

 


  서울에서 스무 해 넘은 아파트 사잇길 걷는다. 지은 지 스무 해 넘다 보니, 처음 지으며 ‘옮겨 박은’ 나무들 모두 스무 해라는 나날을 살아냈다. 스무 해라는 나날은 나무로 치면 손톱 끝 때처럼 아주 짧은 겨를일 뿐이지만, 제법 키 자라고 줄기 굵으며 잎사귀 넓적하고 꽃망울 흐드러진다.


  서울사람은 알까? 저 아파트 한 채 두 채보다 이 아파트 사이사이 자라는 스무 해 넘은 나무들이 훨씬 빛나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줄? 그러나, 나중에 아파트 재개발이니 재건축이니 하는 얘기 나돌면서 이 시멘트집 허물 적에 나무를 제대로 파내어 살뜰히 옮겨 다른 데에서 살릴 만한 건축계획이나 도시계획은 없으리라 느낀다. 내가 몰라서일는지 모르나, 나는 아직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마흔 해 묵은 아파트 나무’라든지 ‘쉰 해 먹은 아파트 나무’를 잘 건사해서 옮겨심어 살렸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


  헌 아파트를 헐고 새 아파트 지을 때에는 언제나 ‘아파트 나무’ 잘라내어 버리기만 한다. 건축설계를 하든 토목공사를 하든, 건축과 토목 일을 하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나무한테 마음을 두지 않고 눈길을 기울이지 않는다. 마흔 해 묵은 나무를 옮겨심으면 아무리 새로 지은 아파트라 하더라도 머잖아 예순 해 살아낸 나무가 되고, 쉰 해 먹은 나무라 하면 일흔 해 살아가는 나무가 될 뿐 아니라, 헐고 새로 지은 아파트를 또 헐 무렵에는 백 해 즈음 살아내는 나무가 된다.


  아직 도시사람은 나무 소담스러운 줄 모르는데, ‘아파트 나무’라 하더라도 백 해를 살아낼 수 있다면, 이제부터 이 나무 때문에 도시는 숲이 될 수 있다. 백 살 넘은 나무가 줄지어 있는 동네라면 이 동네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보금자리 될 만하다.


  오늘날 시골을 둘러보면 안다. 조선 끝무렵, 개화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해방,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 거치며 시골자락 나무들 온갖 뭇칼질에 시달리고 들볶인 나머지, 깊은 멧골에서조차 백 살 넘은 나무 찾아보기 어렵다. 나무를 심어 꽃을 보든 열매를 얻든, 나무 한 그루 적어도 백 살은 살아내고 삼백 살쯤은 숨쉬면서 우리 곁에서 푸르게 뿌리내리도록 북돋아야지 싶다. 집짓는 소나무 되자면 섣불리 가지치기 하지 않으며 곧게 자라도록 돌보아 삼백 살이나 오백 살은 살도록 지켜야 한다. 마을나무 되자면 천 살이나 이천 살쯤은 살아내어 둘레에 풀밭을 마련하거나 평상 하나 놓을 수 있어야 한다.


  나무 한 그루는 오천 살을 살아간다. 오천 살이란 역사학자들 말하는 한겨레 발자국하고 같은 길이가 된다. 반 만 해라는 발자국이 되게 긴 듯 역사학자들 말하지만, 고작 나무 한 그루 살아내는 길이만 할뿐이다. 나무 한 그루는 한겨레 발자국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나라 어디에 한겨레 발자국 고스란히 지켜보며 살아낸 오천 살 먹은 나무 있는가. 천 살 먹은 나무조차 몇 안 된다.


  나무가 오래오래 살아가도록 보살피지 않으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마음밭 얼마나 깊고 그윽할 수 있는가를 잊는다. 나무가 푸르게 뿌리내리도록 마음 쓰지 않으면서, 사람들은 이웃과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씨를 스스로 잃는다. 서울 아파트마을 한복판을 걷다가 생각한다. 고작 스무 해 남짓 살아낸 ‘아파트 나무’라 하더라도, 스무 살 넘은 나무 있는 이 아파트마을은 조금이나마 ‘사람 깃들 만’한 동네가 되겠다고. 4346.4.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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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2 02:06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저도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에는 15년동안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처음 입주했을 때는 너무나 황량했던 곳이 세월이 지나 나무들이 무성해지니 아주 아이들이 뛰어 놀만한 곳이 되었지요. 오히려 지금 사는 이곳이 연말이면 남은 예산을 처리하랴 그러는지 멀쩡한 나무들과 흙길을 파헤쳐 버리고 시멘트길로 만들곤 해서 오히려 전에 살던 아파트 숲길이 오히려 더 그리울 때가 많아요.
방학동 신동아 아파트라면 아직은 아파트 사이 사이길의 나무길들이 괜찮지요?
왜 그리 사람들은 나무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쉽게 버리곤 할까요?
나무가 없어지는 만큼, 사람들의 본성도 그만큼 잃어 버려 갈텐데요..

파란놀 2013-04-22 02:13   좋아요 0 | URL
어릴 적부터 나무를 제대로 못 보고 자란 탓에
나이 들어 어른이 된다 하더라도
나무한테서 푸른 숨결 받아먹지 못하고 말아,
나무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담스러운가를
삶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올해 새로 심은 나무 여섯 그루에
찬찬히 새싹 돋아
날마다 즐겁게 쳐다보고 쓰다듬어 주어요~
 

집꽃 기다리기

 


  마당이 있고, 꽃밭이 있으며, 텃밭이랑 뒷밭이 있으니, 집안에 꽃그릇 따로 없어도 눈이 환하고 즐겁다. 마루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면 온통 푸른 물결이요, 사이사이 꽃봄이 무르익는다. 새봄에는 새봄대로 새 꽃송이 펼쳐지고, 한봄 무르익으면서 한봄에 피어나는 꽃나무 꽃망울 한껏 터질락 말락 한다.


  흙 밟는 마당이 있어, 흙에서 풀이 자란다. 풀 자라는 밭자락 있어, 밭 둘레로 열매나무 쑥쑥 크며 새잎과 새꽃 베푼다. 꽃이 피어나는 시골집에서 꽃 피어나기를 기다리며 봉오리와 꽃망울 찬찬히 지켜보는 맛 남다르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와 함께 꽃몽우리 시나브로 터지려는 모습을 바라본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였다가 천천히 겨울눈 맺더니, 이윽고 겨울눈 열리고 푸른 잎사귀 돋으면서, 마알간 꽃잎 벌어진다. 하루하루 아주 더디 이루어지는 꽃잔치이다.


  시골집은 풀집이면서 꽃집이다. 시골집에서 피어나는 꽃은 시골꽃이면서 집꽃이다. 시골마을은 풀마을이면서 꽃마을이다. 시골마을에서 흐드러지는 꽃은 마을꽃이면서 또 무슨 꽃일까. 우리 집 밭자락에서 자라는 모과나무에 바야흐로 발그락발그락 새 꽃송이 벌어진다. 하루쯤 있으면 활짝 터질까. 이틀쯤 있으면 한꺼번에 꽃잔치일까. 사흘쯤 있으면 우리 집에 모과꽃내음 물씬 감돌까. 4346.4.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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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2 02:09   좋아요 0 | URL
아 모과꽃 몽우리가 이렇게 생겼군요.
어서 활짝 핀 모과꽃을 보고 싶네요. ^^

파란놀 2013-04-22 02:35   좋아요 0 | URL
활짝 핀 데는 사진 찍기 힘든 데만 있어요 ㅠ.ㅜ
하루나 이틀 뒤에는 사진 찍기 좋은 자리에도
활짝 피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