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책읽기

 


  아이들 데불고 다니면, 아이들 얼굴 보는 일이 책읽기이지. 읍내에 마실을 가더라도 책 하나 가방에 늘 챙기기는 하지만,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한 쪽이라도 펼칠 수 있는 겨를은 좀처럼 안 난다. 고흥에서 서울까지 네 시간 반 시외버스를 달리는 동안 읽으려고 책 서너 권 챙겼으나, 아이들이 버스에서 한숨조차 안 자면서 이리 구르고 저리 엉기며 노느라 몇 쪽 읽다가 덮는다. 참말, 아이들과 다닐 적에는 아이들 얼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다. 그래, 아이들과 다닐 때에는 아이들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아이들 눈빛과 몸짓과 목소리에서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책을 읽을밖에 없다. 4346.5.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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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아파트

 


  어린이날 맞이해서 고흥에서 일산까지 찾아온다. 내가 혼자 두 아이 데리고 나서는 마실길이다. 옆지기는 해야 할 공부 있어 먼저 일산으로 갔다. 순천 기차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지 않고, 고흥읍에서 시외버스 타고 막바로 서울까지 간다. 먼저 일산으로 간 옆지기 하는 말이, 고흥에서 순천 기차역 가는 동안 길이 너무 구불구불 거칠게 달려서 힘들다 했는데, 그래서 몸이 힘들더라도 읍내에서 서울 가는 시외버스 탄다 했는데, 나도 그 길이 참 내키지 않다. 기차를 탈 때에 버스를 탈 때보다 훨씬 낫지만, 아이들과 시외버스에서 네 시간 반 견디어 보기로 한다.


  네 시간 반 동안 잘 달린 아이들하고 전철을 탄다. 전철에서 용케 자리를 얻는다. 대화역까지 가는 전철 아닌 구파발까지 가는 전철이기 때문일까. 어린이날 맞이해 웬만한 사람들 자가용으로 움직이기 때문인가.


  아이들 몸을 달래 주려고 연신내역에서 내려 한 시간 즈음 쉬고는, 택시를 불러 일산으로 넘어간다. 서울 시내 벗어난 택시가 고양시에 접어들 무렵, 예전에는 논밭 또는 숲이나 멧자락이었을 데를 어마어마하게 파헤치고는 ‘보금자리 주택’이라는 이름 붙는 아파트를 한창 짓는 모습 본다.


  나라에서 짓는 아파트인 ‘보금자리 주택’은 참말 보금자리가 될까. 보금자리라는 이름 붙는 아파트는 앞으로 몇 해쯤 저 자리에 버틸 수 있을까. 쉰 해쯤 안 허물고 버틸 수 있는가.


  온통 아파트 무더기인 일산에 새로운 아파트 무더기 서는구나. 이런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인지 모르겠는데, 아파트를 지어야 해서, 아파트 곁에 새 아파트 자꾸자꾸 세우더라도, 사람들 숨통 트게 숲을 손바닥만큼이라도 남길 수 있기를 빈다. 크고작은 숲 모두 밀어 없애며 아파트만 지어대면 사람들 어찌 사나. 숲 한 뙈기 없는 마을이 어떤 보금자리 될 수 있나. 4346.5.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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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버스

 


멧등성이 구비진 길목에서
군내버스 기다린다.
봄볕 받으며 풀밭에서 뛰놀다가
버스 앞머리 보일 때
아버지가 동생 안고
손을 흔든다.

 

버스 아저씨가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보고도 그냥 지나가려는지
멈추는 듯 다시 달리려는 듯
오락가락하다가 멈춘다.
아버지가 내 손을 잡는다.
“자, 달리자.”

 

저 앞에 선 버스에서
할머니 두 분 내려
우리한테 마주 달려온다.

 

할머니 한 분 가방 받아 주고
할머니 한 분 내 손 잡아 주며
싸게싸게 버스 타자고 재촉한다.

 

“거그 버스 서는 데 아닌디
  아이들 있어 세워 주오.
  거그 말고 저 밑에 다른 데서 타야지,
  거그는 위험해서 안 서요.”

 

아버지는 버스 아저씨한테
꾸지람 듣고
할머니들은 깔깔 웃는다.
 “오늘은 자전거 안 타고
   버스 타고 다니오.”

 

우리 사는 동백마을 보일 즈음
단추를 삐이 누른다.
할머니들 또 웃는다.
 “어메, 저그 집인 줄 아나 보네.
   근디 너무 빨리 눌렀다.
   좀 더 가서 저그서 눌러야 하는디.”

 


4346.4.1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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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맞이해

일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뵈러 왔다.

아침 여덟 시에 아이들 깨워 집을 나서서

저녁 다섯 시 사십 분에 닿다.

 

아이들아, 애 많이 썼다.

잘 놀고 잘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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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마루 책읽기

 


  동생하고 복닥복닥 놀던 큰아이가 갑자기 조용하다. 뭐 하나 궁금해서 슬그머니 들여다본다. 오호라, 혼자서 책을 읽는구나. 무슨 책을 읽나 가만히 어깨너머로 살펴본다. 도라에몽 만화책이네. 그런데 넌 아직 글을 익히지 않아 그림만 보지? 글도 익히면 그 만화책에 담긴 이야기를 더 재미나게 헤아릴 수 있단다.


  그나저나, 이제 환하고 따스한 봄이라 마룻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을 만하구나. 추운 겨울 모두 물러났구나. 꽃샘바람도 꽃샘추위도 모두 가셨구나. 앞으로 가을까지 마룻바닥에서 뒹굴며 놀다가 책도 읽다가 밥도 먹다가, 또 한여름에는 마룻바닥에 이불 한 장 깔고 시원하게 잠들 수 있구나.


  마루에 앉아 바람소리를 함께 듣지. 마루에 앉아 마당을 내다보며 개구리 노랫소리와 제비 춤사위를 즐기지. 마루에 앉아 푸른 잎사귀와 노란 유채꽃망울 바라보지. 종이책도 책이요, 풀꽃도 책이며, 개구리도 책이고, 봄볕도 책이다. 4346.5.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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