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돌 쓰기

 


  부엌칼을 갈아서 쓴다는 생각을 한 지 몇 해 안 된다. 이러고도 집살림 맡아서 한다니 참 어설픈 사람인데, 칼이 무디면 무딘 대로 잘 쓰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지난겨울쯤 비로소 숫돌을 하나 장만해서 부엌에 두었는데, 막상 아침저녁으로 칼질을 할 적에 숫돌을 꺼내어 칼을 갈아서 쓰지 못했다. 1∼2분쯤 들여 칼을 갈고서 쓰면 될 노릇이나, 이렇게 마음을 쓰지 못했다.


  어제 아침을 차리며, 이래서는 안 될 노릇이라 생각하며, 아이들이 밥 달라 칭얼거리더라도 칼부터 갈자고 생각한다. 숫돌을 꺼내 개수대에 기대고는 칼을 간다. 낫을 갈듯 칼을 간다. 한 번 갈고서 무를 써니 예전보다 조금 낫다. 무를 썰어 국냄비에 넣은 다음 칼을 또 간다. 감자를 썰고서 다시 한 번 간다. 고구마를 썰어 본다. 그리고 한 차례 더 칼을 간다.


  칼을 갈아서 쓰니 꽤 낫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한다. 누가 잡아가지 않고, 누가 등을 떠밀지 않는다. 느긋하게 칼을 갈면서 밥을 차리자. 4346.7.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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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맡 책읽기 어린이

 


  밥을 다 차려서 아이들 부르면 사름벼리는 느즈막하게 온다. 손에 만화책 하나를 쥔다. 밥상 앞에 앉아도 책을 펼친다. 얘야, 네 아버지가 너한테 무어라 이르든. 밥상맡에서 밥을 어떻게 먹으라 하든. 먹을 때에는 먹고, 놀 때에는 놀며, 읽을 때에는 읽으면 좋겠는데. 4346.7.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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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13. 2013.6.25.

 


  국수를 끓여 내놓는다. 산들보라는 처음에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써서 먹으려고 애쓴다. 이윽고 숟가락에 국수가락 얹기 힘드니 손바닥을 펴서 국수가락 얹는다. 그러고 나서 젓가락질도 쉽잖으니 손가락으로 국수를 떠서 손바닥에 얹는다. 나중에는 그냥 손으로 퍼서 입으로 욱여넣는다. 어느새 바닥까지 삭삭 훑어 다 먹고는 마지막 국물을 후루룩 마신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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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12. 2013.6.29.

 


  마당에 친 천막에서 노는 아이들한테 접시에 네모빵을 담아 건넨다. 딸기잼 든 병과 숟가락도 준다. 큰아이가 네모빵에 딸기잼을 척척 발라 동생 하나 주고 저 하나 먹는다. 또 동생 하나 발라 주고 저 하나 먹는다. 곱게 잘 바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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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4. 우리 집 풀밭 2013.6.30.

 


  풀밭을 바라본다. 제멋대로 자라는 풀이라 여길 수 있는데, 아마 풀은 제멋대로 자란다고 해야 옳다. 왜냐하면 ‘풀 나름대로 제멋’으로 자라니까 제멋대로 자란다. 풀은 사람 눈치를 보지 않는다. 풀은 씨앗이 떨어져 뿌리를 내리는 대로 자란다. 풀은 사람 손길을 보며 자란다. 풀은 씨앗이 떨어져 뿌리를 내리더라도 사람들이 어떤 손길로 저희를 쓰다듬거나 마주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자란다. 우리 집 풀밭은 좀 내버려 두는 풀밭이다. 땅심을 북돋우고 싶기에 한동안 내버려 두는 풀밭이다. 오래도록 농약과 비료에 길든 땅뙈기에 숱한 풀이 나고 자라다가 겨우내 시들어 죽기를 되풀이하면서 차근차근 기운이 살아나기를 바라며 내버려 두는 풀밭이다. 이 풀도 좋고 저 풀도 좋지. 이 풀도 반갑고 저 풀도 고맙지. 다만, 나무한테 가는 길은 낫으로 벤다. 매화나무, 뽕나무, 감나무, 탱자나무, 여기에 올해에 우리가 심은 어린나무로 가는 길만큼은 거님길을 낸다. 매화나무에 노랗게 익는 열매가 얼마나 말랑말랑한가 만져 보려고 풀밭을 낫으로 베면서 지나간다. 큰아이가 따라온다. 우리 집은 워낙 풀밭이니 이제 아이들은 이럭저럭 익숙하다. 늘 맡는 내음을 느끼고, 늘 보는 빛깔을 마주한다. 얘, 사름벼리야, 이 풀이 바로 풀빛이란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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