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보이는 책

 


  발걸음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들꽃도 보이고 나무꽃도 보입니다. 잰걸음으로 스쳐서 지나가면 들꽃도 나무꽃도 안 보입니다. 자전거로 씽 하고 달리기만 할 적에도, 자가용으로 씽씽 하고 내달리기만 할 적에도, 들꽃이랑 나무꽃을 못 봅니다.


  멈출 때에 멧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멈출 때에 메뚜기 뜀박질과 방아깨비 방아질을 봅니다. 멈출 때에 하늘빛과 구름빛을 보고, 멈출 때에 빗소리를 듣습니다. 멈출 때에 골목집 담벼락 타고 오르는 덩굴풀에 피어난 조그마한 꽃을 봅니다. 멈출 때에 참새가 뿅뿅뿅 날 듯이 뛰는 모습을 봅니다. 멈출 때에 아이들 까르르 웃으면서 드러나는 앙증맞은 이를 봅니다. 멈출 때에 손에 책을 쥐어 읽습니다.


  그리고, 멈출 때에 비로소 헌책방 조그마한 책시렁에 꽂힌 책이 눈에 들어와, 책이름 하나하나 살피면서, 내 마음속으로 스며들 아름다운 책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알아챕니다. 멈추면 보이는 책이요, 멈추지 않으면 안 보이는 책입니다. 멈추면 책맛을 느끼고, 멈추지 않으면 책맛을 못 느낍니다. 멈추면 책빛이 드리운 결을 바라볼 수 있고, 멈추지 않으면 책빛이 드리운 결을 못 만납니다. 4346.8.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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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다고 하는 집으로 돌아왔다.

월요일에 떠나 토요일 밤에 돌아왔다.

 

잠에 곯아떨어지고

잠에 흐느적거리던 아이들은

아무 말도 없이

집에 닿자마자

다시 쓰러져서 잔다.

 

나도 이것저것 치울 것 치우고

빨래할 것 빨래하고

널 것은 넌 다음

비로소 한숨 돌려

씻은 뒤

잠자리에 들려 한다.

 

참말

시골집이 가장 포근하며 넉넉하다.

밤노래도 사랑스럽고

밤바람도 보드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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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동무놀이 1

 


  시골에서 동무를 만난 사름벼리는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달리기를 한다. 시골로 찾아온 다른 시골마을 동무를 만난 아이도 함께 노래를 부르고 달리기를 한다. 세발자전거에 어린 동생을 태워, 한 아이는 당기고 한 아이는 민다. 4346.8.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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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12. 동무와 달리는 길

 


  경상도 안동으로 나들이를 가서 여섯 살 동무를 만난 아이가 함께 달린다. 동무가 먼저 저 앞서 달린다. 아이가 동무 뒤를 따르다가 멈춘다. 나란히 달리기도 하고, 앞서 달리기도 하면서, 시골마을 감싸는 나무와 풀이 베푸는 푸른 바람을 서로서로 마신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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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오늘은 금요일이라고 한다. 서울에 와서 아이들과 묵을 곳을 찾아보려고 하는데, 여관마다 하는 말이 “오늘은 금요일이 아니라 주말이에요. 금토가 주말이에요.” 하고 말한다. 이런 말조차 안 하는 여관이 꽤 많았지만, 고맙게도 이런 말을 해 주는 데가 있어서 비로소 깨닫는다. 작은아이를 안고 큰아이를 걸리며 잠잘 곳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젊은 사내와 가시내는 서로 손을 잡거나 자가용을 몰면서 여관을 드나든다. 이들은 ‘하룻밤 묵기’ 아닌 ‘한 시간 놀기’를 하고는 만오천 원을 치른다.


  아이들이 새근새근 잘 잔다. 아이들은 앞으로 커서 서울로 볼일을 보러 올 적에 어떻게 잠집을 얻을까. 우리 아이들 커서 스스로 볼일 보러 돌아다닌다고 할 즈음에는 이 아이들 아버지인 나 스스로 돈을 알뜰살뜰 벌어서, 서울에서 우리 식구와 이웃이 느긋하게 쉬면서 하룻밤 묵을 잠집, 영어로 하자면 게스트하우스 하나를 어딘가 한쪽에 마련할 노릇일까 하고 헤아려 본다.


  답답하구나 하고 생각하는 서울에서 밤 두 시 구 분에 매미가 한 마리 운다. 큰아이 여섯째 생일이 지나간다. 4346.8.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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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8-17 12:44   좋아요 0 | URL
날도 더운데 함께살기님도 힘드실테지만 아이 둘이 아빠 잘 따라다니니 예쁘네요. 잠 잘 곳이라도 쉽게 찾아지면 좋으련만, 제 집이 서울이었다면 저희 집으로 오시라 했을텐데요.
사름벼리 생일이군요. 많이 컸어요. 엄마가 더울 때 낳고 몸조리 하느라 애쓰셨겠네요. 엄마도 지금 미국에서 그날 생각하겠어요.

파란놀 2013-08-18 08:34   좋아요 0 | URL
더운 날
서울사람은 서울사람대로
이녁 삶 꾸릴 테지요.

서울이라는 곳은
에어컨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구나 싶기도 해요.

아이들하고 이제 드디어
시골집으로 즐겁게 돌아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