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글 읽기
2013.9.21. 큰아이―마루에 엎드려서

 


  깍두기공책 펼쳐 마루에 엎드려 글을 적는다. 아버지가 쓴 글월을 또박또박 옮겨 그리려고 한다. 아버지는 늘 다른 글을 적어서 보여준다. 아이는 늘 다른 글을 구경하며 그린다. 이렇게 옮겨쓰기를 하면 아이는 한글을 익히기 수월하지 않다. 나로서는 아직 놀이로 생각하기도 하고, 아이한테 한 줄짜리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생각이 있기도 한데, 아이가 한글을 살뜰히 익히기를 바란다면, 앞으로는 글놀이도 좀 다르거나 깊이 생각해야겠다고 느낀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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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창
신현림 지음 / 창비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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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49

 


내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
― 나의 아름다운 창
 신현림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8.2.20. 12000원


 

  내 두 눈은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봅니다. 내가 바라보는 내 모습도 아름답고, 내가 바라보는 우리 집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하늘과 내가 바라보는 들판 모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가을 접어든 시골마을에서 쑥꽃을 구경합니다. 올해에도 지난해에도 그러께에도, 나는 우리 집 풀밭에서 쑥꽃을 구경하며 가을내음 맡습니다. 푸르던 들판이 누르스름하게 바뀌는 빛깔을 바라볼 적에도 가을내음 맡는데, 개구리 노랫소리 차츰 수그러들면서 풀벌레 노랫소리 높아지는 풀소리 듣는 동안에도 가을내음 맡습니다. 여름부터 꾸준하게 떨어지던 후박나무 가랑잎이 차츰 줄면서 겨울 앞두고 짙푸르게 빛나는 반짝반짝 새로운 잎사귀를 볼 적에도 가을내음 맡습니다. 후박나무와 함께 한겨울 짙푸른 잎사귀로 나는 동백나무를 함께 보면서도 가을내음 맡아요.


  어느덧 하얀 꽃송이 모두 떨구며 씨앗을 맺는 부추풀을 보면서 가을내음 맡습니다. 짙붉게 익는 초피나무 열매를 보면서 가을내음 마십니다. 제비 떠난 쓸쓸한 제비집 둘레에서 바지런히 집을 짓는 말벌 무리를 바라보며 가을빛 헤아립니다. 막바지 날개춤 반짝이는 잠자리떼를 보며 가을물결 돌아봅니다. 가을은 마을에도 있고 우리 집에도 있습니다. 가을은 손으로 빨래하는 대야에도 있고,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리며 물을 만지는 개수대에도 있습니다.


  시를 쓰다가 사진을 함께 찍으면서, 시와 사진을 나란히 노래하는 신현림 님이 한창 사진을 배우던 무렵에 이녁이 서양사진 즐긴 이야기를 갈무리한 책 《나의 아름다운 창》(창작과비평사,1998)을 가을날 읽습니다. 신현림 님은 “사진은 세계를 보는 안목을 높여 주고 정신의 해방감을 준다(6쪽).” 하고 말합니다. 참말 신현림 님 스스로 온누리 바라보는 눈썰미를 높이면서 이녁 넋을 살찌우니까 사진을 찍으려 했겠지요. 사진을 찍는 한편, 사진을 읽으려고 했겠지요.

 

 

 

 


  사진을 찍고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진가는 파인더라는 작은 창을 통해 세상을 보고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세계를 발견한다(17쪽).” 하고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작은 창을 바라보며 너른 창을 느껴요. 작은 창에서 너른 창을 깨달아요. 작은 창 곁에서 너른 창을 배웁니다.


  연필을 내려놓아요. 사진기를 내려놓아요. 붓도 내려놓고 손전화도 내려놓아요. 가을날 가을길 천천히 거닐어요. 혼자 걸어도 좋고 아이와 걸어도 좋아요. 동무나 이웃을 불러 함께 걸어도 즐겁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워도 흐뭇하고, 아무 말을 않고 고요하게 걸어도 사랑스럽습니다.


  가을빛과 가을내음을 가을길에서 느껴요. 가을숲으로 접어들어 가을바람 마셔요. 가을나무 곁에서 가을잎을 쓰다듬어요. 먼저 마음으로 느끼고, 차츰 몸으로 받아들여요. 먼저 눈으로 바라보고, 이윽고 코와 귀와 입으로 마주해요.


  가을날 풀벌레는 몸빛을 바꿉니다. 여름날 풀벌레는 아주 맑은 풀빛인데, 가을날 풀벌레는 아주 짙은 흙빛입니다. 가을이 되며 누르스름하게 시드는 풀잎에 맞추어 풀벌레 몸빛이 시나브로 달라져요. 이런 숲빛을 느낄 수 있다면, “모든 풍경은 나를 흥분시키며 황홀하게 타오른다. 내가 머문 길 속의 풍경과 하나 되는 바로 그 순간 생의 보람을 느낀다(24쪽).”와 같은 노래를 활짝 웃으며 읽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자, 이제 발걸음을 가만히 멈추어 볼까요. 신현림 님이 우리를 부르는군요. “쉬잇, 또다른 근사한 사진 속에서 바람소리가 들린다. 나무가 흐느끼고 풀과 꽃들이 춤을 춘다. 이 사진을 보니 오늘 하루는 재수가 좋을 것 같다(39쪽).” 하고 나긋나긋 속삭이는군요.


  숲에서 바람소리를 듣듯이, 사진에서 바람소리를 들어요. 숲에서 나무내음을 맡듯이, 사진에서 나무내음을 맡아요. 숲에서 하늘 바라보며 두 팔을 치켜들고 기지개를 켜듯이, 사진에서 하늘빛을 살피고 하늘숨을 쉬면서 두 팔을 치켜들며 기지개를 켜요.


  사진은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도시 한복판에서 찍는 사진이라 하더라도, 이 사진은 어디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시골 흙일꾼도 흙밥을 먹고, 대통령도 흙밥을 먹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논밭에서 안 거둔 곡식이나 열매를 먹지 않아요. 국회의원 나으리는 흙 아닌 시멘트땅이나 아스팔트땅에서 거둔 곡식이나 열매를 먹지 않아요. 모든 사람 누구나 흙당에서 거둔 곡식이나 열매를 먹습니다. 고기를 즐겨먹는다 하더라도, 소나 돼지나 닭 또한 흙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먹이를 얻어요. 흙맛을 모르고는 밥맛을 모르는 셈이요, 숲바람을 마시지 않고는 삶을 살찌우는 바람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모르는 셈입니다.


  곧, “자연이 망가지면 더이상 아름다운 사진도 없고 행복한 삶도 없다(43쪽).”고 할 만합니다. 숲이 숲답지 않다면 사진이 사진답지 않습니다. 숲을 망가뜨리는 권력자 놀음놀이 속내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사진에 깃드는 이야기를 읽지 못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숲을 아끼며 보살피는 흙일꾼 손길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사진에 감도는 사랑과 꿈을 읽지 못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어요.


  어른도 아이도 “가장 가치 있다고 믿는 일에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삶은 무의미하다. 자신을 걸 목표가 있는 자는 행복하다. 그것이 곧 희망이고 사랑이므로(50쪽).”라 말해야 하리라 느낍니다. 어른도 가장 뜻있는 일을 해야 아름답습니다. 아이도 가장 뜻있도록 즐겁게 놀이를 해야 아름답습니다. 뜻없고 값없는 일을 해서는 안 아름답고 안 즐거워요. 뜻없고 값없는 놀이란 있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즐기는 놀이 가운데 뜻없거나 값없다 할 만한 놀이가 있을까요?


  사진은 어디에서 찍을 수 있을까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사진은 어디에서 찍을 때에, 찍는 사람이나 찍히는 사람이나 서로 웃으며 즐거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따뜻한 햇볕 아래 들길을 걸으면서 살아 있는 나를 느끼고 싶다. 그리고 당신들에게 들국화 한 다발씩 선물하고 싶다(78쪽).” 하는 말처럼, 따뜻하게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찍는 이와 찍히는 이 모두 즐겁겠지요. 시원하게 바람이 부는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찍는 이와 찍히는 이 모두 기쁘겠지요.

 


  마음과 몸을 즐겁게 가다듬을 적에 사진이 즐겁습니다. 삶터와 마을과 숲을 아름답게 가꿀 적에 사진이 아름답습니다.


  그나저나, 신현림 님은 《나의 아름다운 창》이라는 책에서 서양사진만 이야기하는데, 일본사진이나 한국사진을 따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사진책도 찬찬히 쓰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이름난 사진작가 작품만 다루지 말고, 이름 안 난 사진작가 작품도 다룰 수 있으면 어떠할까 싶어요. 아마, 신현림 님으로서는 이름난 서양사진만 다루려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해요. 신현림 님 스스로 즐긴 사진을 이야기하려고 《나의 아름다운 창》이라는 책을 썼을 테지요.


  그렇지만 말예요, “공장 굴뚝에서 토해내는 연기며, 온 도로를 메우며 치달리는 자동차며, 농토에 살포되는 농약이며, 미친 듯한 쓰레기며 생활하수며 폐수며 백화점을 메운 외제 상품들, 무슨 욕설처럼 떠 있는 흐린 하늘이 그렇다.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 세대는 바람난 세상을 보며 무엇을 느낄까? 나름대로 열심히 살겠지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사는가? 일상이 자동화되어 인생이 무엇이고 왜 사는가를 자문할 새도 없이 점점 돈 버는 기계로 늙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246쪽)?” 하고 이야기하는 자리에 걸맞다 싶은 사진은 《나의 아름다운 창》이라는 책에서 몇 가지 못 다루었구나 싶어요. 어느 사진을 바라보거나 읽더라도 이렇게 ‘말할’ 수는 있어요. 그러니까, 서양사진을 굳이 들추지 않고, 신현림 님이 찍은 사진만 가만히 보여주면서 얼마든지 ‘신현림 님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즐겁고 기쁘며 신나고 아름답게 펼쳐 보일 수 있어요.


  애써 다른 작가 사진을 들추지 않아도 돼요. 신현림 님이 즐겁게 찍은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 사진을 곱게 보여주면서, 예쁘며 고운 글도 함께 보여주셔요. 신현림 눈으로 바라본 아름다운 이야기를 신현림 님 손으로 빚은 아름다운 싯노래로 보드라이 들려주셔요. 4346.9.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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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26] 날마다 자라는 호박
― 대문으로 넘어온 넝쿨

 


  씨앗은 바람 따라 멀리까지 날아갑니다. 넝쿨은 울타리나 나무를 타고 이웃집으로 넘어갑니다. 내가 뿌리지 않은 씨앗이지만, 풀씨가 우리 집으로 깃듭니다. 내가 심지 않은 감나무라 하더라도, 이웃집 감나무가 우리 집 울타리 너머로 살며시 가지를 뻗을 수 있습니다. 울타리 밑에 심은 호박은 울타리를 따라 씩씩하게 자라는데, 이웃집 울타리 안쪽에서만 자라지 않아요. 넝쿨심 얼마나 좋은지, 햇볕 먹으며 줄기 죽죽 뻗어 십 미터 이십 미터 삼십 미터 사십 미터까지 거침없이 잇닿습니다.

  우리 집과 돌울타리로 맞닿은 이웃 밭자락에서 울타리 따라 자라던 호박넝쿨 하나, 지난해에도 그러께에도 올해에도 우리 집 가까이로 넘어옵니다. 지난해까지는 넝쿨 끄트머리를 잘라서 우리 집 대문 언저리에서 더 뻗지 않더니, 올해에는 우리 집 대문까지 야무지게 넘어옵니다.


  호박넝쿨이 대문 위쪽 감싸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합니다. 옳거니, 아주 잘 되었네. 우리 식구들 먹을 호박도 얻고, 우리 집 대문도 무척 볼 만하게 되는걸. 대문은 파란 빛깔이지만, 마당은 온통 풀빛을 이루는 우리 풀집에 걸맞는 모습이 되는구나.


  대문을 드나들면서 호박이 날마다 자라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굵직하게 자라며 묵직한 호박알을 날마다 쓰다듬고, 곁에서 새로 알이 굵는 조그마한 호박알도 날마다 쓰다듬습니다. 너희는 어쩜 이렇게 알뜰히 맺니. 너희는 어쩜 이렇게 한꺼번에 안 맺고 하나씩 차근차근 맺으면서 우리 식구들 고운 밥이 꾸준히 되어 주니. 4346.9.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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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꽃 생각

 


  쑥꽃을 처음 안 때가 2010년이었지 싶다. 이때까지는 쑥꽃 곁을 지나면서도 쑥꽃인 줄 몰랐으리라 생각한다. 틀림없이 곁에 쑥꽃이 있었을 테고, 코앞에서 쳐다보았을 텐데, 쑥꽃이건 들꽃이건 풀꽃이건 아무런 생각이 마음속에서 안 일어났으리라 느낀다.


  누군가한테서 ‘쑥꽃’이라는 낱말을 듣고, 나 스스로 “쑥도 풀이니까, 틀림없이 꽃이 피겠지. 그러면 쑥꽃은 어떤 모양새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비로소 쑥꽃을 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마음을 먹고도 좀처럼 쑥꽃을 못 보았다. 못 알아보기도 했고, 쑥꽃을 보려고 몇 군데 쑥풀 돋은 자리를 눈여겨보았으나, 시골사람 누구나 풀씨 번지는 일을 달가이 여기지 않았다. 쑥이고 무엇이고 모조리 베어 없애기 바빴다.


  ‘우리 보금자리 시골집’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쑥꽃을 본다. 우리 집에서 자라는 쑥풀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 풀을 베건 뜯건 우리 몫이다. 풀을 먹건 놔두건 우리 삶이다. 우리 집 쑥은 싱그럽게 돋아나고, 씩씩하게 자라서, 곱게 꽃을 피운다.


  사람들은 동백꽃이나 장미꽃쯤 되어야 쳐다볼 만한 꽃이라 여기고, 봄날 유채꽃이나 자운영꽃쯤 되어야 예쁜 꽃이라 여긴다. 여름날 찔레꽃이나 딸기꽃을 못 알아보는 사람이 많으며, 붓꽃이랑 창포꽃을 가릴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그런데, 모든 나무에는 꽃이 피고, 모든 풀에는 꽃이 달린다. 모든 나무와 풀은 씨앗을 맺어 새롭게 자라난다. 쑥꽃을 볼 적마다 오랜 나날 수없이 이어지며 푸른 숨결 베푼 이야기를 읽는다. 4346.9.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요 사진은

'쑥꽃 몽우리'입니다.

곧 터지려고 하는 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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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생각
― 사진 여덟 (4346.9.23.달.ㅎㄲㅅㄱ)

 


살림돈 모자라
필름사진기 더는 못 찍겠다고
이제 그만두어야겠다고
앞으로 살림돈 넉넉히 벌면
그때에 다시
필름사진기 손에 쥐어
필름 척척 감아
천천히 천천히
한 장씩 담자 생각하면서,

 

지난 몇 해 사이에 찍었지만
아이들과 살아가며
집일 하느라 바쁜 나머지
미처 긁지 못한 필름을
뒤늦게 긁는데,

 

빛을 제대로 못 맞추어
조금 허옇게 되거나
조금 까맣게 된 사진
드문드문 보이지만,
빛을 사랑스럽게 맞추었을 뿐 아니라
느낌도 생각도 이야기도
모두 곱게 여민
사진을 보다가,
한참 보다가,

 

디지털사진기를 쓰면서도
필름사진기를 왜 내려놓지 않았는가 하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디지털사진기를 흑백 설정 해 놓고
얼마든지 흑백 느낌 살릴 수 있겠지.
그러나,
필름을 찾을 때까지 가슴으로 설레고,
필름을 찾으며 가슴이 두근거리며,
스캐너 돌리며 가슴이 떨리는 빛은,
필름사진기에만 있다.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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