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어디까지 아니? -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식물 이야기 탐험하는 고래 1
박연 글.그림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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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53

 


풀숨 싱그럽게 함께 먹어요
― 식물, 어디까지 아니?
 박연 글·그림
 고래가숨쉬는도서관 펴냄, 2013.10.7.

 


  엊그제 문득 한 가지를 느낍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고흥 시골마을 보금자리를 ‘후박나무 집’이라 할 만하구나 하고. 우리 집은 ‘후박나무 집’이 되어, 이웃한테나 동무한테나 아이들한테나 오래오래 이곳을 지키겠구나 하고.


  우리 식구들 심은 후박나무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튼튼히 뿌리를 내립니다. 이 나무는 앞으로 이백 해 사백 해 육백 해 이어가리라 봅니다. 천 해를 넘고 이천 해를 넘게 살 수 있어요.


  우리 마을에 자라는 후박나무 가운데 우리 집 나무가 가장 큽니다. 마당에 후박나무 심어 돌보는 다른 집 있는지 모르겠는데, 처음 이 집에 들어올 적부터 그대로 두었어요. 가지를 치라는 사람 많지만 그대로 두니, 차츰 그늘이 짙고 커집니다. ‘마당을 다 가린다’고 이웃 할매나 할배가 말씀하지만, 한여름에는 시원해서 즐겁고, 한겨울에는 바람을 막으니 고맙습니다. 나무 한 그루는 그냥 나무 한 그루이지 않아요. 빛이 되고 넋이 되어요. 꿈이 되고 사랑이 됩니다.


  마당 한쪽에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를 심었는데 살구나무는 그만 죽고 복숭아나무만 삽니다. 집 뒤꼍에 심은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는 씩씩하게 살아서 겨울을 기다립니다. 집 뒤꼍에는 다른 나무들도 한두 그루씩 차근차근 심어서 돌볼 생각이에요. 뒤꼍으로 가는 길목에는 어린 대추나무 한 그루를 심었어요. 모두들 한 해 두 해 새롭게 자라고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아름답게 자랄 테지요.


  집 둘레에 심은 나무는 열매를 내어주어도 반가우며 고맙지만, 열매가 아닌 나무로 있어 주어도 반가우며 고맙습니다. 후박나무 열매를 우리 식구가 안 먹고 두어도, 마을 텃새와 여름 철새가 찾아와서 따먹습니다. 초피나무 열매도 새들이 즐겁게 따먹어요. 이러면서 새들은 초피나무에 범나비가 낳은 애벌레가 살이 통통하게 오를 무렵 하나둘 잡아먹습니다. 우리 식구가 배추를 심어서 돌보면, 새들은 배추밭으로도 찾아와 배추흰나비 애벌레 잡아먹으려 하겠지요.


.. 아기 피부같이 부드러운 흙 속에서는 봄이면 수많은 생명이 깨어나 기지개를 켠답니다. 꼬물거리는 작은 벌레, 딱딱한 씨앗을 뚫고 힘차게 자라나는 새싹, 그리고 겨울잠에서 깨어나 땅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동물들까지, 봄의 밭에는 싱그러운 생명력이 넘쳐나지요 … 허브는 향기가 있는 식물 전체를 뜻하는 말이에요. 향기가 강한 쑥은 전통적으로 생활 허브로 이용되어 왔어요. 봄에 다 자란 쑥을 베어 말려 두었다가 목욕탕이나 화장실에 걸어 두면 나쁜 냄새를 빨아들이고 쑥향이 은은하게 배어 방향제 대용으로 사용했지요 ..  (8, 42쪽)

 

 


  늦가을에 접어들면 바람이 바뀝니다. 새봄이 찾아오면 바람이 또 바뀌어요.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바다에서 뭍으로 부는 바람이고, 늦가을부터 봄까지는 뭍에서 바다로 부는 바람이에요.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에 태우고 씩씩하게 마실을 다니면서 봄바람과 가을바람 맞습니다. 포근한 날에는 포근한 바람을 누리고, 추운 날에는 추운 바람을 누려요. 더운 날에는 자전거에서 맞이하는 바람이 시원하고, 추운 날에는 입이며 코며 손발이며 꽁꽁 얼어붙으면서 달립니다.


  추운 날에는 멀리 다니지 못하지만, 추운 바람 맞으면서도 작은아이는 자전거수레에서 새근새근 잡니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볼이 빨개지면서도 가을자전거와 겨울자전거를 즐깁니다. 앞으로 한 살 두 살 더 먹어 열 살쯤 되면, 이 아이들은 내 곁에서 저희 자전거를 씩씩하게 달리며 여름과 겨울을 새롭게 맞이할 수 있어요. 아직은 혼자서 바닷가까지 자전거를 달리지 못하지만, 머잖아 아이들은 스스로 자전거 발판을 굴러 바닷가 나들이 다녀오리라 생각해요.


  혼자서 자전거를 달려 들길을 달릴 때쯤,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낄까요.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나란히 자전거를 달려 바닷가에 닿아 서로 물놀이 실컷 누릴 때에,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낄까요. 아이들이 자전거로 멧골 어귀까지 달린 뒤 자전거는 길가에 세우고 숲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가 되면,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낄까요.


  새봄이 되면 제비가 찾아오고, 제비가 찾아올 즈음 개구리가 깨어나며, 개구리가 깨어나는 언저리에 풀벌레 하나둘 고개를 내밉니다. 나무마다 새눈이 트고, 풀마다 새 줄기 쭉쭉 새 잎사귀 푸릇푸릇 내놓습니다. 어른들은 나물 뜯느라 부산하고, 아이들은 두꺼운 옷 훌훌 벗어던지고 뛰노느라 바빠요.


  가을이 저물며 새겨울 되기까지 제비를 비롯한 철새는 따순 나라로 돌아갑니다. 개구리와 뱀은 겨울잠에 듭니다. 다람쥐도 도토리를 여기저기 파묻고는 새근새근 쉬어요. 풀벌레는 알집을 남기거나 가랑잎 사이에 깃듭니다. 바람이 나뭇잎 건드리는 소리만 남습니다. 동백나무와 후박나무와 소나무와 잣나무 들을 빼면, 숲에는 이제 나뭇잎도 거의 안 남아, 겨울바람은 나뭇가지 사이사이를 스칩니다. 스산하고 고즈넉한 바람이 됩니다.


.. 옛날에는 산과 들에서 자라는 약초는 물론이고 들에서 흔하게 나는 나물도 채소로 이용했어요. 우리 나라 산과 들에는 먹을 수 있는 식물이 500여 종이 있고, 그중 20여 종의 나물은 도시 근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답니다. 우리 조상들이 보릿고개나 계속되는 가뭄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산과 들에 맛 좋고 영양이 풍부한 나물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 물과 이산화탄소를 먹고 광합성을 하는 식물은 초식동물이 먹고,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이 먹지요. 그리고 육식동물이 죽으면 버섯이나 곰팡이 같은 분해자들의 먹이가 된답니다. 죽은 생물체의 몸에 붙어 영양소를 얻는 버섯은 생태계의 분해자이자 청소부랍니다. 분해자들은 죽은 생물들을 분해해 물과 이산화탄소로 되돌려 놓는 중요한 역할을 해요. 이런 분해자가 없다면 우리 환경은 썩지 않는 시체들로 넘쳐 나겠지요 ..  (28, 49쪽)

 


  겨울 어귀에 거의 모든 풀이 누렇게 시듭니다. 그렇지만 뿌리는 땅에 튼튼하게 박습니다. 어른 손가락보다 굵게 자란 쑥은 마치 나뭇줄기 같습니다. 쑥꽃이 지며 바싹 말라도 쑥줄기는 쉬 뽑히지 않고 꺾이지 않아요. 고들빼기 줄기도 아주 굵어요. 키가 높이 자라며 숱한 꽃 잔뜩 달더니 어느새 꽃이 지고 씨앗 풀풀 날리고는 바싹 시듭니다.


  우리 집 마당 한쪽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자라면서 고운 잎사귀 내주던 풀이 하나같이 시드는데, 까마중은 아직 새로 꽃을 맺으면서 열매를 베풉니다. 부추도 새로 싹이 트며 보들보들 통통한 잎사귀를 베풉니다. 부추꽃은 벌써 지고 까만 부추씨도 거의 떨어졌는데, 뜻밖에 부추잎은 지치지 않고 푸른 빛으로 맑아요. 십이월에 들어서더라도 고흥에서는 까마중과 부추를 누립니다.


  여기저기 때이른 유채풀이 돋고 갓풀이 돋습니다. 아니, 때이르다기보다 때늦다고 해야 할까요. 겨우내 폭 쉬고 새봄에 돋아야 할 풀이거든요. 논둑을 지나가다가 유채풀 몇 뜯습니다. 집 언저리 갓풀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주까리 열매를 바라보고, 잎이 모두 진 무화과나무에 아직 매달린 열매꽃을 살살 어루만집니다.


  잎사귀 모두 떨군 나무 앞에 섭니다. 가을까지 알뜰히 매달던 잎은 모두 떨어졌지만, 새로운 잎이 돋으려고 아주 조그마한 눈이 올망졸망 있습니다. 이 조그마한 눈에서 잎이 하나씩 둘씩 나올 봄이 되면 다시 푸르게 우거집니다. 나무마다 겨울 이겨낸 눈이 활짝 터지면, 따순 바람을 타고 드넓은 바다 가로질러 이 땅에 찾아올 예쁜 철새들 노래합니다.

 

 


..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 무기질 등이 풍부한 콩은 밭에서 나는 고기라고 불리며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곡식이랍니다. 우리 나라는 콩에 관한 음식이 많기로 유명해요. 다른 나라는 콩을 그냥 섭취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콩을 길러 만든 콩나물, 콩을 발효해서 만든 된장, 청국장 등 여러 가지 콩 음식을 만들어 먹었지요 … 도토리는 또 천연염색 재료로도 쓰여요. 여름에는 주로 잎을, 가을과 겨울에는 열매를 이용해 옷감에 검은색 물을 들이지요. 천연 탈취제로도 쓰이는데, 도토리가 열리는 떡갈나무나 상수리나무 잎을 냉장고에 넣어 두면 냉장고에서 나는 나쁜 냄새를 싹 없애 줘요 ..  (58, 72쪽)


  시골에서 살아가며 틈틈이 만화를 그리는 박연 님이 빚은 그림이야기책 《식물, 어디까지 아니?》(고래가숨쉬는도서관,2013)를 읽습니다. 《식물, 어디까지 아니?》는 열 살 언저리 어린이부터 읽을 수 있습니다. 열 살쯤 되는 어린이부터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밭을 일구는 슬기를 얻을 만합니다. 이 책만 보면서 논을 일구기는 쉽지 않으나, 논을 일구는 슬기는 살짝 엿볼 만해요. 이 책을 곁에 두고 어버이와 이웃 어른한테서 도움을 받으면서 밭을 일구다 보면, 앞으로는 논도 씩씩하게 일굴 수 있어요.


  그림이야기책 《식물, 어디까지 아니?》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너, 손수 흙을 일구어 맛나게 밥 먹고 싶지 않니?”라 할 만합니다. 시골 아지매이자 만화지기인 박연 님은 이녁 스스로 시골집에서 시골빛 일군 즐거움을 조곤조곤 담아서 보여주어요. 어려운 시골일 아닌 즐거운 시골일이요, 손에 흙을 묻히고 이마에 땀방울 흐를 적에 활짝 웃을 만한 일이 벌어지는 기쁨을 살며시 들려줍니다.


  책이름에서는 ‘식물’이라 했지만, 이 책을 들여다보면 ‘풀’이 나오고 ‘나물’이 나옵니다. ‘푸성귀’가 나오고 ‘풀노래’가 흘러요. 풀밭에 깃들어 살아가는 수많은 숨결이 나와요. 사람 또한 풀이 있어 즐겁게 삶을 이룰 수 있구나 하고 알려줍니다. 봄 씨앗 뿌리기, 서로 돕는 풀, 숲이 베푸는 선물인 나물, 삶과 맞닿은 쑥, 숲을 말끔히 치우며 깨끗하게 돌보는 버섯, 밭에서 자라는 넉넉한 밥인 콩, 쓸모 많은 도토리, 오리로 논 일구기, 시골집에서 피어나는 수많은 꽃, 이렇게 아홉 갈래로 나누어 시골 이야기 보여줍니다.

 

 

.. 도토리를 먹고사는 어치는 참나무숲을 만들어 주는 새랍니다. 어치는 겨울에 먹을 도토리를 땅속에 숨겨 두지만 다 찾아 먹지는 못해요. 그래서 어치가 땅속에 숨겨 두고 찾지 못한 도토리는 봄이 되면 싹이 터서 참나무숲을 만드는 것이지요 … 가뭄이 심해 흉년이 들면 산에서 도토리를 주워 식량으로 대신했어요. 흉년에 도토리는 꿀 같은 밤이었기에 꿀밤나무라는 애칭도 얻었지요 ..  (69, 73쪽)


  박연 님은 《식물, 어디까지 아니?》라는 책에서 ‘어린이 여러분, 시골로 오셔요!’ 하고 부르지 않아요. 박연 님이 시골집에 깃들어 시골일 누리는 즐거움을 예쁜 그림과 살가운 글로 속닥속닥 이야기꽃 피우기만 합니다. 흙이 무엇을 하는지, 해는 어떻게 흙을 보듬는지, 흙에서는 어떤 풀과 나무가 자라는지, 흙과 해와 바람과 비는 서로 어떻게 얽히는지, 사람은 이 한복판에서 어떤 삶을 일구며 오늘날까지 살아왔는지, 차근차근 밝힙니다. 책으로 배울 수 있는 흙일은 아니지만, 책에 이야기로 담을 수 있는 흙일이에요.


  흙을 만지고 싶게 이끄는 《식물, 어디까지 아니?》입니다. 풀을 먹고 싶게 돕는 《식물, 어디까지 아니?》예요. 나무를 사랑하고 시골빛 고운 숨결 떠오르게 북돋우는 《식물, 어디까지 아니?》입니다.


  시골에서 서른 해 넘게 즐거이 노래하며 흙을 만졌기에 이만 한 책을 쓰고 그릴 수 있을까요. 시골에서 푸른 숨결 오래오래 마시면서 흙내음 먹었기에 이러한 책을 쓰고 그릴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다’ 하고 말할 수 있을 테지만, 시골에서 오래 지냈대서 이렇게 글과 그림을 곱게 여밀 수 있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시골에서 살지 않더라도 시골빛을 가슴으로 포옥 담으면서 도시에서 텃밭 사랑하는 삶이라면, 도시에서 텃밭조차 돌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마음밭에 푸른 씨앗 심는 삶을 일군다면, 싱그럽고 아름답게 이야기책 일구리라 느끼요.


  착한 마음일 때에 흙을 착하게 만져요. 참다운 마음일 때에 흙을 참답게 보듬어요. 고운 마음일 때에 흙을 곱게 일구어요. 예부터 시골사람이라면 누구나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흙을 마주했어요. 풀 한 포기도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손길로 어루만졌어요. 나무 한 그루를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눈빛으로 바라보았어요.

 


.. 현미란 벼에서 왕겨만 벗겨내고 백미로 만들지 않은 쌀을 말해요. 백미에 비해 저장성이 좋고 영양이 풍부해요. 현미는 호분층이라 불리는 쌀겨와 배아(쌀눈), 배유(백미)로 이뤄져 있어요. 다시 말해 현미는 쌀을 틔우는 생명력이 있는 곡식이지만, 백미는 싹을 틔우지 못하는 죽은 곡식이랍니다 ..  (83쪽)


  풀숨 싱그럽게 함께 먹어요. 너도 나도 없이 둘러앉아요. 할배도 아이도 나란히 앉아서 풀숨을 쉬어요. 다람쥐도 까치도 함께 노래해요. 지렁이도 사마귀도 풀밭에서 함께 어울려요. 자가용은 멈춘 뒤, 신을 벗고 맨발로 풀밭에서 달려요. 하늘 한 번 보고, 구름 한 번 쓰다듬어요. 꽃 한 번 보고, 풀줄기 한 번 쓰다듬어요. 냇물 한 번 보고, 무지개 한 번 쓰다듬어요.


  풀밥 아름답게 함께 누려요. 너랑 나랑 도란도란 앉아서 누려요. 할매도 아이도 손에 손을 잡고 풀밥을 누려요. 새앙쥐하고도 참새하고도 나누면서 누려요. 여치하고 거미하고도 나누면서 누려요. 개미하고도 나누고, 너구리하고도 나누면서 누려요.


  풀하고 인사하고, 풀하고 놀아요. 풀이랑 노래하고, 풀하고 춤추어요. 풀과 함께 꿈꾸고 풀빛으로 사랑해요. 풀숨 쉬는 사람은 어깨동무를 할 뿐, 미움도 싸움도 다툼도 없어요. 풀밥 먹는 사람은 웃음꽃으로 이야기꽃을 피울 뿐, 해코지도 따돌림도 괴롭힘도 없어요. 4346.11.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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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햇살 좋아라

 


  여러 날 제법 춥다가 날이 포근하게 풀린다. 그러나, 이렇게 포근하게 풀린 날씨는 처음 추워지던 날씨하고 비슷하다. 겨울이 되면 제법 춥다 하더라도 조금만 날씨가 풀려도 무척 포근하다고 느끼곤 한다. 이렇게 포근한 날에는 온 집안 문을 활짝 연다.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한다. 이불을 바깥에 널고, 빨아야 할 이불이 있으면 일찌감치 빨래한다.


  잠자리에 쓰는 나무널을 걷어 마당에 널어 말린다. 평상에 햇볕이 드리우면 베개도 꺼내어 널어야지. 겨울날에 찾아드는 따사로우며 맑은 햇살이 아주 좋다. 추운 겨울 사이사이 반짝반찍 빛나는 햇살이란 모든 숨결 푸르게 보듬는 사랑스러운 손길이다. 4346.11.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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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뜻

 


  나는 왜 글을 쓰고 책을 내는가 하고 생각해 본다. 처음 글을 쓰던 날부터 돌이키면, 남들이 쓰는 글은 굳이 내가 쓰지 말자고 여겼다. 남들이 읽는 책은 굳이 나까지 안 읽어도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책은 한 사람만 읽으라고 태어나지 않는다. 적어도 열 사람이나 백 사람, 또는 천 사람이나 만 사람쯤은 읽는다. 남들이 안 읽는 책을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 꼴을 갖추어 태어났으면 나 아닌 많은 사람들이 읽기 마련이다. ‘남들이 읽는 책’이란 ‘남들이 자주 추켜세우거나 알리는 책’이다. 신문이나 잡지나 방송이나 인터넷에 자주 오르내리는 책들이라든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라 할 수 있다. 다만, 어떤 책이든 내가 읽고 싶으면 읽으면 된다. 애써 토를 단다면, 사람들이 많이 읽는대서 나까지 이 물결에 휩쓸릴 까닭이 없다뿐이다.


  남들이 안 쓰는 글이 있을까. 글쓰기에서는 아예 없지 않으리라 본다. 이를테면, 헌책방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없다. 이 나라 골골샅샅 씩씩하게 책살림 일구는 헌책방이 저마다 어떠한 책빛인가를 이야기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없다. 한국말을 슬기롭게 익히도록 길동무 구실을 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없다. 한국말 밝히는 새로운 사전을 엮으면서 한국말 사랑하는 빛을 들려주는 글을 쓰는 사람이 없다.


  집일 도맡으며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삶을 노래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매우 적다. 아예 없지는 않다만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식구들과 시골로 씩씩하게 찾아가서 시골집 얻어 살아가기는 하는데, 돈이 얼마 없어 땅은 하나도 못 사고 집만 덩그러니 장만해서 이렁저렁 살아가는 하루를 글로 쓰는 사람이 대단히 적다.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농약과 비닐과 화학비료와 항생제를 하나도 안 쓰면서 자가용 또한 몰지 않는 삶 이야기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대단히 드물다.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눈 씻고 찾아보아도 좀처럼 안 보인다. 권정생 님이 사셨을 적에는 권정생 님쯤 있었지만, 이제는 더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남들이 안 쓰는 글을 쓴다고 느끼지 않는다. 나는 내가 쓰고픈 글을 쓴다. 나 스스로 내 삶을 밝히고 빛내면서, 내 이웃과 동무한테 웃음노래 들려줄 만한 빛이 되도록 글을 쓰고 싶다. 빛을 살리는 글을 써서 빛을 살찌우는 책을 내놓고 싶다. 빛을 사랑하는 글을 써서 빛을 꿈꾸는 책을 나누고 싶다. 4346.11.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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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80] 곁님

 


  몇 해 동안 ‘옆지기’라는 말을 썼습니다. 요즈음 들어 이 말 ‘옆지기’를 우리 살붙이한테는 쓰기 어렵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수수하고 투박하다 느껴 즐겁게 썼는데, ‘옆’이라는 낱말이 어떤 뜻인지를 살핀다면 한집 살붙이한테는 이 낱말을 안 쓸 때가 나으리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옆’은 나를 한복판에 두고 왼쪽이나 오른쪽 가운데 하나를 가리킬 뿐이에요. ‘옆’과 말뜻이 같은 ‘곁’이라는 낱말이 있어요. 둘은 말뜻은 같아요. 다만 쓰임새가 달라요. ‘옆’은 자리를 가리키는 데에서만 쓰지만, ‘곁’은 내가 가까이에서 돌보거나 아끼는 사람을 가리키는 데에서도 써요. 다시 말하자면, ‘옆지기 = 이웃·동무”입니다. ‘곁지기 = 한솥밥 먹는 살붙이’입니다. 한솥밥을 먹어도 살붙이 아닐 수 있는데, 살붙이 아니면서 한솥밥을 먹는 사이라면 이러한 사람도 ‘곁지기’가 될 테지요.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곁’뿐 아니라 ‘옆’이라는 낱말에도 새로운 느낌과 쓰임새 담을 만해요. ‘곁님’ 못지않게 ‘옆님’이라 쓸 수 있어요. 그런데, 말느낌을 섣불리 넓히면, 길을 가다가 문득 마주친 낯선 사람을 따사롭게 마주할 이름이 없어요. ‘옆님·옆지기’는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웃과 동무를 가리킬 이름이 되고, 보금자리 가꾸어 함께 살아가는 살붙이는 ‘곁님·곁지기’가 되어야 알맞겠다고 느낍니다. 4346.11.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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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비가 올 무렵 피어나는 꽃이기에 제비꽃이라 하는데, 이제 이 나라 날씨가 엉망진창 되면서, 제비꽃은 너무 이른 늦겨울이나 이른봄에 피기까지 한다. 삼월부터 갑자기 포근해지며 제비꽃이 피기도 하는데, 그렇대서 제비가 이 땅에 찾아오지는 않는다. 제비는 사월을 넘겨야 찾아온다. 무엇보다도,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도 제비꽃은 피고 지는데, 제비꽃 피고 지는 도시로 제비가 찾아오지 못한다. 도시에는 제비들 먹이가 없는데 어떻게 오나. 애써 온들 무얼 먹고 사는가. 하늘에서는 제비가 날고, 들에서는 풀벌레가 노래하며, 밭에서는 나비가 춤출 때에 비로소 제비꽃을 실컷 누릴 수 있다. 꽃그릇에 꽃만 심어 놓을 적에도 이럭저럭 꽃을 즐긴다지만, 참다운 꽃놀이요 꽃삶이 되려면, 꽃을 둘러싼 수많은 이웃과 동무를 나란히 살피며 사랑할 수 있는 보금자리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제비도 제비꽃도 이 땅에서 아름답게 사랑받을 수 있는 날을 그린다. 4346.11.3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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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과 개미
모리타 타츠요시 그림, 야자마 요시코 글, 윤태랑 옮김 / 한림출판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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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개불알풀 이야기
야자마 요시코 글.그림, 최종호 옮김, 타다 타에코 감수 / 진선아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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