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가운 상말
 619 : 엄동설한

 

엄동설한의 깊은 밤, 적산가옥 다다미방에서 잠들어야 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인가 봐
《이운진-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창비,2012) 201쪽

 

  “어린 시절(時節)”은 “어린 날”이나 “어릴 적”으로 다듬습니다. 가만히 보니, “어린 시절 이야기”라는 대목에는 토씨 ‘-의’를 넣지 않았으나, 첫머리 “엄동설한의 깊은 밤”에는 ‘-의’를 넣었어요.
  한자말 ‘엄동설한(嚴冬雪寒)’은 “눈 내리는 깊은 겨울의 심한 추위”를 뜻한다고 해요. 한 마디로 하자면 ‘겨울추위’입니다. 겨울에는 눈이 오고 바람이 불면서 추워요. 그러니 ‘겨울추위’입니다.

 

 엄동설한의 깊은 밤
→ 추운 겨울 깊은 밤
→ 춥디추운 겨울 깊은 밤
→ 눈 내리고 추운 깊은 겨울밤
 …

 

  제 말을 하는 사람이 제 넋을 살립니다. 제 넋을 살릴 적에 제 빛이 납니다. 추운 겨울이 어떻게 추운가 하고 생각을 기울이면, 추운 모습을 여러모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눈과 바람이 어떻게 추운가를 떠올리면, 추운 겨울날 삶빛을 저마다 다르면서 재미나게 그릴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며 누리는 겨울 날씨를 곰곰이 헤아리면서 말빛 따사롭게 여밉니다. 4346.12.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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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깊은 밤, 적산가옥 다다미방에서 잠들어야 했던 어린 날 이야기인가 봐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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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 말하기

 


  읽지 않은 책을 말하는 사람이 무척 많다. 비평이나 평론을 하는 사람이라면 너무 바쁜 나머지 미처 읽지 않은 책이라 하더라도 말해야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왜 읽지 않은 책을 말하려 할까. 읽은 책만 말하더라도 책이야기를 미처 못 풀어놓는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백 권을 읽는다면 백 권을 다 말할 수 있을까. 천 권이나 만 권을 읽었으면 천 권이나 만 권을 다 말하는가.


  첫 쪽부터 끝 쪽까지 눈으로 다 훑는다고 해서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느낀다. 첫 쪽부터 끝 쪽까지 다 훑는 일이란 ‘책훑기’이지 ‘책읽기’가 아니다. 책훑기란 책을 살피는 여러 모습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곧, 책훑기를 한대서 책읽기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책훑기를 마친 뒤에라야 책을 말할 수 있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책읽기를 해야 책을 말할 만하다. 책 하나를 빚은 사람들 넋과 꿈과 사랑을 찬찬히 ‘읽은’ 뒤에, 비로소 어느 책 하나를 두고 나 스스로 ‘읽은’ 삶과 꿈과 사랑을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녁 삶결대로 책을 읽는다. 책을 잘 읽거나 못 읽었다고 가를 수 없다. 저마다 이녁 눈길대로 책을 읽을 뿐이다. 그런데, 이 말도 그리 올바르지 않은 듯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녁 삶결대로 책을 ‘훑는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이녁 눈길대로 책을 ‘훑는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 그저 훑기 때문에 책을 말하지 못하고, 그예 훑는 몸가짐으로는 책을 제대로 밝히거나 나누거나 이야기하기 어려운 셈 아닐까.


  이곳저곳에서 ‘책읽기모임’을 하지만, 책읽기모임을 슬기롭고 아름답게 하는 곳은 드물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책읽기모임은 책을 ‘읽고’ 나서 즐거움과 사랑과 꿈을 나누는 모임이 되어야 할 텐데, 하나같이 책을 ‘훑는’ 데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왜 책을 첫 쪽부터 끝 쪽까지 훑으려 하는가. 책을 ‘읽으’면서 이녁 마음을 사로잡거나 파고들거나 북돋우거나 살찌우거나 건드리거나 깨우치거나 이끄는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내 살가운 이웃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함께 느끼고 싶어 ‘읽는’ 책이다. 내 사랑스러운 동무가 즐겁게 살림하는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싶어 ‘읽는’ 책이다. 우리들은 “읽은 책 말하기”를 할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우리들은 “읽은 책 말하기”를 꽃피울 때에 즐거우리라 생각한다. 우리들은 “읽은 책 말하기”를 나누는 책읽기모임 꾸릴 때에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한다. 4346.1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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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 사진을 찍는 넋

 


  사진을 찍는 사람마다 스스로 좋아하거나 즐기면서 찍는 모습, 이른바 ‘사진감’이 있다. 다른 사진감에는 그리 눈길을 두지 않을 테지만, 저마다 좋아하거나 즐기는 모습 앞에서는 시간 흐르는 줄 까맣게 잊고 사진찍기에 흠뻑 젖어든다. 나한테는 ‘헌책방’하고 ‘인천 골목길’과 ‘우리 집 아이들’이 이러한 사진감이 되는데, 문득 한 가지를 깨닫는다. 같은 자리에 서도, 내가 바라보는 헌책방과 내 이웃이나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헌책방은 사뭇 다르다. 내가 바라보는 인천 골목길과 내 이웃이나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인천 골목길은 아주 다르다. 내가 바라보는 우리 집 아이들이랑 내 이웃이나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우리 집 아이들은 너무 다르다.


  곰곰이 돌아보면, 내가 헌책방을 사진으로 찍기로 한 까닭은, 신문기자 때문이다. 신문기자가 헌책방을 취재하며 찍은 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어둡고 지저분하고 퀴퀴하며 낡은 티가 물씬 흐르게 찍어서 신문에 싣곤 한다. 다큐작가라는 이들도 헌책방을 이러한 모양새로 찍고, 책을 좋아한다는 이들도 이러한 모습으로 찍기 일쑤이다. 헌책방에 감도는 책빛과 책넋을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은 채 사진기를 든 탓일 테고, 헌책방에 흐르는 사랑빛과 삶을 살가이 받아먹지 않고서 사진만 찍어댄 탓이리라 느낀다. 그러면, 나는 헌책방을 어찌 바라보는가? 나는 헌책방을 좋거나 나쁘게 바라보지 않는다. 헌책방에서는 그저 아름다운 책을 만날 뿐이고, 헌책방에서는 늘 사랑스러운 책빛을 누릴 뿐이다. 헌책방에서 사진을 찍을 적에는 내 가슴으로 스민 아름다운 책을 살포시 찍으려 하고, 헌책방 이야기를 사진으로 엮을 적에는 마음속에서 샘솟는 사랑을 담고 싶다.


  인천이든 부산이든 서울이든, 골목동네에서 마주하는 골목빛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도 이와 같다. 내 살가운 이웃과 동무가 살아가는 예쁜 보금자리가 골목동네라고 느낀다. 내가 사진으로 담으려는 골목길이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도란도란 꽃피우는 삶빛이다. 삶빛이 사랑빛 되고 사랑빛이 꿈빛 되어 흐르는 재미난 이야기를 사진꽃으로 길어올리고 싶다.


  어떤 마음으로 다가서느냐에 따라 사진이 다르다. 얼굴사진을 찍는 자리에서, 이녁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얼굴사진에 이녁을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난다. 이녁한테서 아무것도 못 느끼면 이녁한테서 아무것도 못 느끼는 마음이 배어난다. 이녁을 제대로 모르는 마음이라면 이녁을 제대로 모르는 마음이 드러난다. 응큼한 속내로 사진을 찍으면 응큼한 속내가 고스란히 사진에 흐르고, 따순 마음으로 사진을 찍으면 따순 마음이 낱낱이 사진에 깃든다.


  아름다운 사진을 이루는 밑바탕이란 아름다운 마음이다. 사랑스러운 사진을 일구는 밑힘이란 아름다운 사랑이다. 멋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면? 아무래도 스스로 멋있게 살아야 멋있는 사진을 찍겠지. 그럴듯한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그럴듯하게 보이는 삶을 누리면 그럴듯한 사진을 빚기만 한다. 마음이 몸가짐 되고, 몸가짐이 사진을 낳는 손길이 된다. 4346.1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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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넋

 


  책을 쓴 사람들 넋을 읽는다. 책을 빚은 사람들 꿈을 읽는다. 책을 다루는 사람들 손길을 읽는다. 책이 되어 준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흐르던 빛을 읽는다. 책마다 곱게 드리우는 무늬를 읽고, 책 하나에 살포시 감도는 이야기를 읽는다.


  책을 읽는 사람은 어떤 마음이 될까.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일굴까. 책을 말하는 사람은 어떤 눈빛이 될까.


  어린이와 함께 읽는 책을 쓰거나 엮거나 다루는 사람은 이 땅 아이들한테 어떤 꿈을 들려주려는 마음일까. 성인잡지를 내거나 성인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이 땅 어른들한테 어떤 노래를 들려주려는 마음일까. 시를 쓰거나 소설을 쓰는 사람은 이 땅 이웃들하고 어떤 사랑을 나누려는 마음일까. 자기계발과 처세를 말하려는 사람은 이 땅에서 나고 자라는 이웃들 앞에서 어떤 빛이 되고 싶은 마음일까.


  어느 책이든 나무가 있기에 태어난다. 이제 나무도 종이도 없이 전자책이 나올 수 있다 하는데, 나무도 종이도 쓰지 않는 책은 참으로 지구별과 숲을 아끼는 넋으로 엮는 책이 될까. 나무도 종이도 쓰지 않는 책이 되면서, 오히려 지구별과 숲하고 더 멀어지는 책으로 나아가지는 않을까. 나무로 된 책이요, 종이로 빚는 책을 엮으면서, 섣불리 아무 글을 쓸 수 없으며, 함부로 아무 책이나 내놓을 수 없는 넋을 잊거나 잃지는 않는가.


  글 한 줄에 아름다운 넋 담으려 한 책은 오래도록 읽힌다. 글 두 줄에 사랑스러운 얼 실으려 한 책은 두고두고 읽힌다. 글 석 줄에 푸른 숨결 얹으려 한 책은 한결같이 읽힌다. 누구나 바람을 마셔야 목숨을 잇듯, 아름다운 넋이 있기에 책을 읽는다. 누구나 물을 들이켜야 목숨을 건사하듯, 사랑스러운 얼 있어 책을 읽는다. 누구나 밥을 먹어야 목숨을 살찌우듯, 푸른 숨결 있는 책을 읽는다. 바람과 같고, 물과 같으며, 밥과 같은 넋으로 책이 태어난다. 4346.1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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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23. 2013.11.1.ㄴ

 


  마당에서 놀던 큰아이가 아주 조그마한 꽃을 딴다. 어디에서 꽃을 땄니? 응, 까마중꽃이네. 이 꽃은 우리한테 맛난 열매가 되어 주는 꽃이잖니. 그래도, 다른 까마중꽃 많이 피니까, 네가 이 흰꽃과 함께 놀 수 있으면, 까마중꽃도 너를 좋아해 줄 테지. 몸으로는 까마중알 먹고 마음으로는 까마중꽃 사랑해 주렴.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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