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그림 읽기
2014.5.23. 두 아이―함께 그리기


  맨 처음에 누가 먼저 그렸는지 모른다. 아무튼, 커다란 종이에 누군가 먼저 금을 그었다. 그러고 나서 무늬를 하나 넣었고, 천천히 빛깔을 입힌다. 어떤 그림이 될는지 모른다. 어떤 빛이 흐를는지 모른다. 세 사람이 하나씩 그리고 덧바르면서 그림 하나 태어난다. 함께 그리는 그림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 작은 탐닉 시리즈 1
고경원 지음 / 갤리온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176



고양이를 부르는 사진

―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

 고경원 글·사진

 갤리온 펴냄, 2007.1.24.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봅니다.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잘 알아봅니다.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 마음이 움직입니다.


  숲을 좋아하는 사람은 숲으로 갑니다. 숲을 좋아하는 사람은 숲하고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더라도 숲바람을 느낍니다. 언제나 숲노래를 부르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로 갑니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하고 무척 멀리 떨어진 데에서 일하더라도 문득문득 바다내음을 맡습니다. 늘 바다노래를 부르면서 활짝 웃습니다.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엇을 볼까요? 길고양이를 볼 테지요.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로 갈까요? 길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갈 테지요.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도시 한복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움직이다가도 문득문득 ‘길고양이가 야옹 하고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고경원 님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갤리온,2007)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고경원 님은 “길고양이를 찍으러 다니다 보면 낯선 골목길로 들어가게 되기 일쑤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참말 이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경원 님이 들어가는 ‘낯선 골목길’이란 ‘사람 눈길’로 보았을 때에 낯선 골목길이요, 고양이한테는 낯익은 길이거나 골목이요, 고양이로서는 아늑하거나 포근한 쉼터이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여느 사람한테는 낯선 골목길이, 여느 길고양이한테는 ‘사람한테 치이지 않으면서 느긋하게 쉬는 한편 다른 고양이와 어울리는 터’가 되거든요.


  길고양이를 오래도록 지켜본 고경원 님은 “어미 고양이는 새끼의 몸에 어떤 무늬가 나오든 관심이 없다(2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도 이와 똑같습니다. 어버이는 아기가 어떤 키와 몸무게로 태어나도 다 좋습니다. 어버이는 아기가 어떤 몸으로 태어나도 다 반깁니다. 가시내이든 머스마이든 아랑곳할 일이 없어요. 오직 ‘우리 아이’라고 느끼며 기쁩니다.


  고양이와 사람만 이와 같지 않아요. 새와 물고기도 그렇지요. 온갖 짐승은 다 이와 같아요. 어느 어버이가 아기한테 ‘너 말야, 100억쯤 손에 쥐고 태어나야지?’ 하고 묻겠어요. 안 따집니다. 오로지 사랑으로 아기를 바라보며, 오직 사랑스러운 눈길과 손길로 아기를 쓰다듬습니다.


  길고양이를 사진으로 찍든, 골목개를 사진으로 담든, 우리들은 사랑 하나로 바라볼 노릇입니다. 사랑이 아닌 다른 눈길로 길고양이나 골목개를 바라본다면, 고양이와 개는 사람 눈치를 슬금슬금 보다가 꽁지를 빼겠지요.


  고경원 님은 길고양이를 아끼는 이웃을 만나기도 합니다. “아주머니는 흰 고양이를 ‘고비’라 부르고, 카오스 무늬 고양이는 ‘부비’라고 부른다(42쪽).” 하는 이야기처럼, 길고양이를 아끼는 이웃은 이녁 나름대로 길고양이한테 사랑스러운 이름을 붙여서 살갑게 부릅니다. 아주머니한테는 길고양이도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아주머니한테는 길고양이도 사람과 똑같이 반가운 님이자 벗입니다.


  그런데, 길고양이는 왜 길고양이일까요. 우리한테 언제부터 고양이가 길고양이가 되었을까요.


  예부터 한겨레는 고양이를 따로 집에서 기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람 손길을 반기는 고양이가 있을 때에는 집에서 곧잘 먹이를 줍니다. 사람 사는 집과 가까이 지내는 고양이한테는 ‘집고양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사람 사는 집에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고양이한테는 ‘들고양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도둑고양이’라는 이름은 언제 생겼을까요? 궁금한 이름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하면 이 말이 생긴 때를 헤아릴 수 있어요. 왜냐하면, 지난날 여느 시골에는 ‘도둑고양이’가 있기 어렵습니다. 그렇겠지요?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여느 시골집에는 고양이가 훔쳐서 먹을 만한 먹이가 없습니다. 흙을 일구는 시골사람은 풀과 열매와 곡식을 먹는데, 고양이가 이런 먹을거리를 훔칠 일은 아예 없다시피 해요. 고양이는 쥐를 먹으려고 사람이 사는 집에 가까이 오기만 했겠지요. 그러면, 물고기라든지 ‘고기’ 냄새가 나는 먹이는 어느 집에 있었을까요? 틀림없이 부잣집에 있었겠지요. 여느 시골집에서 지내는 흙지기로서는 고양이가 안쓰러워도 따로 먹이를 챙겨서 건네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먹는 밥이랑 국을 건넬 뿐입니다. 아마, 지난날 ‘시골고양이’는 사람하고 똑같은 밥이랑 국을 먹으면서, 곧잘 쥐나 개구리나 새를 잡아서 먹었겠지요. 그리고, 부잣집에 살그마니 기어들어 ‘고깃살’을 낼름 먹곤 했겠지요. 부잣집에서는 ‘도둑고양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합니다.


  고양이 이름을 더 헤아린다면,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 한복판에서는 ‘길고양이’입니다. 그렇지만, 서울이나 부산이라 하더라도 작은 집이 다닥다닥 붙은 골목동네에서는 ‘골목고양이’입니다. 골목에서 지내니 골목고양이예요. 바닷마을에서 지내는 고양이라면 ‘바다고양이’가 될 테고, 섬에서 지내는 고양이라면 ‘섬고양이’가 될 테지요.


  동네에서 동네사람처럼 지내는 고양이는 ‘동네고양이’예요. 도시에서는 동네고양이입니다. 시골에서는 마을이기에, 시골에서 마을사람처럼 수수하게 지내는 고양이는 ‘마을고양이’입니다.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시골마을에도 마을고양이가 여럿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라든지 햇볕이 뜨거운 날에는 우리 집 처마 밑이나 평상 밑이나 자전거 밑으로 살그마니 기어들어 옹크리면서 쉬곤 합니다.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를 쓴 고경원 님은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었지만, 고양이가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을 때까지는 참고 기다리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159쪽).” 하고 말합니다. 고양이가 즐겁게 살 수 있는 터전은 어떤 빛일까요. 아마, 고양이만 즐겁게 살 수 있는 터전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고양이가 즐겁게 살 수 있는 터전은, 개한테도 비둘기한테도 참새한테도 직박구리한테도 오소리한테도 족제비한테도, 그리고 사람한테도 즐겁게 살 수 있는 터전이리라 생각해요. 다 함께 즐겁게 살아갈 만한 터전에서 우리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아갈 만하리라 느낍니다.


  사회도 문화도 정치도 경제도 아름답게 거듭나기를 빕니다. 사회와 문화와 정치와 경제 모두 아름답게 거듭나도록 저마다 즐겁게 땀흘리면서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저마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빛을 찾아서 즐겁게 바라볼 수 있기를 빕니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이웃을 빙그레 웃음지으면서 마주하고, 살뜰히 어깨동무하는 손길로 사진을 찍으면 아주 고운 숨결이 흐르리라 봅니다.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는 길고양이를 노래하는 자그마한 책인데, 길고양이가 ‘길’에서 삶을 누리는 고양이임을 한결 또렷하게 느낄 만한 ‘길빛’이 흐르는 사진으로 조금 더 가다듬으면 더 좋겠습니다. 4347.6.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이올린 값은 얼마인가?



  두 아이가 바라 마지 않던 바이올린을 두 대 장만한다. 두 아이 이빨을 고치려고 일산에 있는 어린이치과에 들러서 이틀을 쉬고는 아이들 이모와 어울려 놀다가, 문득 ‘바이올린 악기점’ 푯말이 보여, 아무 생각이 없이 찾아가 보았다. 어딘가 스쳐 지나갈 적에 바이올린을 보기는 보았을 테지만, 막상 눈앞에 가까이 두고 바이올린을 찬찬히 들여다본 적은 없다고 느낀다. 구경이라도 해야겠다고, 악기 값이 얼마쯤 되는지 말을 여쭈어야 한다고 느낀다.


  악기점 앞에 선다. 아이들은 바이올린을 알아챈다. “어, 바이올린이다! 바이올린이야! 보라야, 저기 봐, 바이올린이야!” 일곱 살 아이가 네 살 동생을 불러 바이올린 앞에 선다. 누나처럼 바이올린을 알아본 네 살 아이는 누나랑 함께 “바이올린! 바이올린!” 하고 노래를 부른다.


  얘들아, 악기 값을 아직 여쭙지도 않았는데 노래부터 부르니? 곁님은 아이들 노래를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리코더 값을 여쭙는다. 작은 리코더 하나 1만 원, 소금 하나도 1만 원, 이렇게 두 개를 장만하기로 한다. 그러고 나서 바이올린 값을 여쭌다. 어른이 쓸 악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쓸 악기라고 말하니, 그러면 새 것으로 하지 말고 헌 것으로 하면 된다고 한다. 아이들이 쓸 작은 바이올린으로 헌 것은 9만 원이면 된다고 하는데, 두 아이한테 두 개를 한다면 1만 원을 에누리해 주겠다고 한다.


  아직 마음이 서지 않은 채 악기점 앞에서 생각에 잠긴다. 바이올린 한 대를 장만하자면 30∼40만 원은 가볍게 들여야 하지 않느냐 하고 지레 생각하던 일을 떠올린다. ‘그만 한 값은 아니었구나’ 하고 느끼며 생각을 다잡는다. 바이올린 두 대에 17만 원이면 무척 눅은 값이겠다고 느낀다. 그래, 이 바이올린을 우리 집으로 가지고 갈까 하고 생각하는데, 악기점 아주머니가 예비 줄과 새 활을 덤으로 주시겠다고 한다. 악보책까지 하나 덤으로 받는다. 여러모로 선물을 잔뜩 받는다. 악보받침대까지 둘 장만한다. 곁님과 나는 손이 넷이지만, 이 모두를 들기에는 벅차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데, 아이들이 제 바이올린은 저희가 들겠다고 나선다. 아이들은 참말 저희 바이올린을 들고 한 시간 넘게 씩씩하게 걸어다닌다. 지치고 힘든 티를 보이면서도 바이올린을 놓지 않고 다부지게 걷는다.


  새삼스레 생각한다. 바이올린 값은 얼마인가? 바이올린 한 대를 아이한테 장만해 주면서 어버이는 돈을 얼마쯤 썼는가? 바이올린이라든지 다른 악기를 장만해서 아이한테 선물하는 돈은 우리 삶을 어떻게 가꾸거나 살찌우는가? 4347.6.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산들보라가 바이올린 켤 적에


  누나 먼저 동생 먼저 할 것 없이 바이올린을 꺼낸다. 서로 똑같이 바이올린을 꺼낸다. 네 살 아이는 누구한테서 바이올린을 배울까. 아직 손끝으로 바이올린 줄을 누를 만한 길이나 힘이 안 되기에, 그저 한손으로 바이올린 목을 쥐고는 활만 슥슥 삭삭 켠다. 그런데, 네 살 산들보라는 많이 해 본 솜씨라는듯이 바이올린 활을 놀린다. 어쩌면 산들보라는 예전에 바이올린꾼으로 노래를 나누어 주던 사람으로 살다가 우리한테 왔는지 모른다. 처음 활을 켜면서 줄을 한 가닥 두 가닥 끊는다. 괜찮아, 괜찮아, 다 끊어도 돼. 네 마음으로 와닿는 소리를 듣고, 네 온몸으로 퍼지는 노래를 들어 보렴. 4347.6.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 우리말 지킴이 최종규와 어린이가 함께 읽는 철수와영희 우리말 시리즈 1
최종규 지음, 강우근 그림 / 철수와영희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전라도닷컴> 2014년 4월에 실린 책소개를 보면,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읽고 써 준 느낌글이 있다. 이 느낌글을 쓰신 분은 광주 노대동에서 '책문화공간 봄'을 꾸리신다고 한다. 아름다운 곳을 열어 가꾸시기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아름다운 눈길로 읽어 주신 뒤에, 느낌글도 아름답게 써 주셨구나 싶다.


그런데,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에서 '나물, 남새, 푸성귀' 이야기를 본문과 부록에서 다르게 적었고, 이 대목을 눈밝은 독자가 알려주어서1쇄로 찍은 책 가운데 책방에 배본한 책을 모두 회수하고, 창고에 있던 책도 모두 그러모아서, '본문에 잘못 적은 대목'을 바로잡아서 새로 찍었다. 그리고, 본문을 바로잡은 책은 어느덧 모두 팔렸고, 즐겁게 2쇄를 찍는다. 2쇄를 찍을 수 있도록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장만해서 읽어 준 모든 분들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금 올린다. 앞으로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2권도 펴낼 수 있기를 꿈꾼다. 이 책을 10쇄쯤 찍으면 아마 2권도 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본문에서 딱 한 쪽을 바로잡느라 책을 모두 회수하는 일이란 출판사에 크게 피해를 입힌 일이다. 작가로서 몹시 미안하다. 무엇보다, 본문에서 딱 한 쪽이라 하더라도, 한 쪽에 적힌 한 줄을 제대로 살피지 못해, 본문을 바로잡지 못한 책을 일찍 사들여서 읽은 분들한테 더없이 미안하다.


눈밝은 독자가 있어 고맙다. 그리고, 마음밝은 독자가 있어 사랑스럽다. 나도 앞으로, 생각밝은 작가가 되어 하루하루 새 글을 일구어 새로운 책을 아름답게 펴내자고 다짐한다. <전라도닷컴> 2014년 4월호에 실렸던 정봉남 님 느낌글을 한 글자씩 차근차근 옮겨 본다. 나도 느낌글을 쓸 적에 이렇게 마음밝은 아름다운 글로 쓰자고 새롭게 생각한다.


..


흙에서 자라고 꽃처럼 피어나는 우리말 이야기

― 최종규 씨가 펴낸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전라도닷컴 2014년 4월호 / 글쓴이 : 정봉남)



  바야흐로 봄이라 섬진강을 따라가며 꽃마중을 했다. 살랑이는 바람과 찰랑이는 물결과 그 위를 어룽어룽 놀다 가는 햇살이 고왔다. 아련한 노란 빛의 산수유가, 솔숲 아래 갓 피어난 연분홍 진달래가, 흰 꽃으로 뒤덮인 매화 그늘이 적이 그윽하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마음 깊숙이 봄빛이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하늘빛, 물빛, 꽃빛이 모두 고와서 마음이 절로 노래를 불렀다.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나뭇잎에 들어가서 풀빛이 되고, 봉오리에 들어가서 꽃빛이 되고, 열매 속에 들어가서 빨강이 되어요.” “노란 빛깔 민들레꽃, 하얀 빛깔 냉이꽃, 보라 빛깔 분꽃, 분홍 빛깔 살구꽃…….” 노랫말을 가만가만 톺아보는 사이에 마음은 시나브로 맑고 환해졌다.



  우리말의 뿌리와 결과 너비를 찬찬히 살펴보게 되는



  신기하게 몸에 스미는 기운에 따라 마음이 거듭난다. 따순 햇볕 누리면서 마음을 따순 기운으로 덥히면 따순 볕과 함께 따순 마음이 된다. 따순 마음이 되면서 따순 말을 꺼낸다. 따순 말을 주고받으며 따순 생각을 길어올린다. 따순 생각이 밑바탕 되어 따순 사랑을 일군다. 이렇게 어느 말이든 저마다 그 삶에서 빚어진 느낌과 생각과 뜻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말은 생각을 담아서 주고받는 그릇이고, 살아오면서 스스로 만들어 낸 마음의 집이기도 하다.


  봄날 꺼내든 책은 ‘우리말 지킴이’로 잘 알려진 최종규 씨가 쓰고 강우근 씨가 그림을 그린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다. “나는 아이들한테 ‘국어사전 말풀이’를 가르치지 않아요. 가만히 마음소리에 귀를 기울인 다음, 마음으로 느끼는 이야기로 말을 들려줍니다. 꽃을 생각하는 동안 내 마음속에 어여쁜 꽃말이 자랍니다. 꽃을 헤아리면서 내 가슴속에 즐거운 꽃그림이 태어납니다. 꽃을 이야기하니 어느새 내 꿈속에 즐거운 이야기 한 자락이 피어납니다.”


  ‘바람 따라 흐르는 말’, ‘불씨로 타오르는 말’, ‘흙에서 일구는 구수한 말’, ‘풀벌레 노래하는 맑은 말’ 같은 주제로 말을 나누고 이백 여 개의 우리말 속에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를테면 ‘물과 같이 맑은 말’에는 김·냇물·눈먹기·보라·샘·시내·실비·아지랑이, ‘동무들과 아끼는 말’에는 길동무·너나들이·얘기동무·어깨동무, ‘숲에서 가꾸는 푸른 말’에는 멧자락·삶터·온누리·우듬지·푸르다,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말’에는 곁·동냥·한뎃잠·한솥밥, ‘일하며 웃음 짓는 말’에는 두레·심부름·울력·일터·품앗이 같은 말 속에 숨은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다.


  마치 조약돌을 어루만지고 도른도른 흘러가는 시냇물을 만난 기분도 들고, 고물고물 새싹 돋는 봄의 흙 기운같이 말랑하고 푸근한 책이다.


  고흥 동백마을에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꾸리고 있는 최종규 씨는 헌책방 책삶을 북돋우려고 《헌책방에서 보낸 1년》, 《모든 책은 헌책이다》 같은 책을 썼으며, 《사진책과 함께 살기》,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 《뿌리깊은 글쓰기》, 《생각하는 글쓰기》 등의 책도 펴낸 이다.

  생각을 넓히고 슬기를 빛낼 때 비로소 ‘말’도 배우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삶의 본질과 닿아 있다. 말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겪은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 고스란히 담긴 넋을 배우기 때문이다. 좋은 말을 통해 좋은 마음을 일구고 좋은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말갛게 비쳐진다. 흙에서 자라고 꽃처럼 피어나는 우리말 이야기, 우리말의 뿌리와 결과 너비를 찬찬히 살펴보기에 참 좋다.



  나물과 남새와 푸성귀, 채소와 야채의 차이



  그예 숲의 덤불과 언덕에는 쑥과 냉이가 쑥쑥 돋았다. 잠깐 쪼그려 앉아 캤는데도 쑥이 두 손 가득 넘친다. 봄나들이 잘 하면 눈도 즐겁고 입도 즐겁다. “이렇게 쑥쑥 자라니 쑥이라고 했겠지? 옛날 어른들 말도 잘 만드셨네” 하고 웃다가 쑥이라는 말은 누가 처음으로 썼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수수께끼 같은 말의 뿌리를 누구라서 알 수 있을까. 사람들 스스로 살아가면서 저절로 빚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단군신화에 쑥이 나오는 걸로 보면, 어림잡아도 오천 해 가까이 써 왔구나 헤아리니 와아! 우리가 날마다 쓰는 말의 뿌리, 그 오래되고 깊은 역사가 순간 가슴에 또렷하게 안겨 온다. 대단하다.


  새로운 사실도 알았다. 나물과 남새와 푸성귀, 채소와 야채의 차이다. 들이나 숲에서 스스로 씨앗을 내며 자라는 풀을 사람들이 얻어먹으려 하면 ‘나물’이라 하고, 사람들이 밭에 따로 심어서 거두는 풀을 ‘남새’라 하고, 나물과 남새를 아울러 ‘푸성귀’라고 한다. 우리 겨레는 예로부터 흙을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왔기에 이처럼 풀을 가리키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 ‘채소’는 남새를 가리키는 중국말이고, ‘야채’는 푸성귀를 가리키는 일본말이라는 것이다.


  흔히 그리고 자주 쓰는 말에도 우리말의 생채기들이 보인다. 우리 몸에는 우리 겨레의 유전 정보가 들어 있듯이, 우리말에는 마음 정보가 들어 있다. 이천 년 동안 중국 한자말에 짓밟히고, 백 년 동안 일본 한자말과 미국말에 할퀴어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버린 우리말의 처지가 자못 안타깝다. 남의 말을 함부로 끌어들여 뒤섞어 쓰면 겨레의 삶으로 빚어낸 삶과 마음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우리의 삶에서 스스로 움이 돋고 싹이 나고 가지가 자라난 말을 온전히 배우고, 느낌과 생각과 뜻과 얼을 담아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말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그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고 나면, 스스로 어버이 되어 새로운 아이를 낳아 다시 말을 물려준다. 따뜻한 말 한 마디로 마음을 어루만지고 따스한 기운이 스며들게 할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거친 말의 덤불을 헤치고 나와 흙과 물과 바람의 기운으로 마음이 거듭날 것이라고 믿는다. 수많은 숨결이 섞여 이루어지는 흙, 수많은 목숨을 살리는 흙처럼 우리도 이제 삶에서 배우고 삶에서 움튼 말을 건네주어야겠다.


  오늘 하루 내 입술을 떠난 말은 어디에 어떻게 씨를 내렸을까. 쏟은 말들을 소쿠리에 담듯 건져 보면 오늘 하루는 나에게 어떤 삶이었는지, 마음속으로 어떤 사랑을 품는 하루였는지, 마음밭에 어떤 꿈을 심는 하루였는지 헤아려 볼 수 있지 않을까.


(글쓴이 정봉남 님은 아이 책을 읽는 어른으로, 작고 소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눈밝게 들여다볼 줄 알며 직접 가꾸고 짓는 ‘핸드메이드’의 삶을 사랑합니다. 현재 광주 노대동의 책문화공간 ‘봄’의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