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말하려면



  골목을 말하려면 골목에서 살아야 합니다. 살지 않으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살지 않더라도 말은 할 수 있어요. 살면서 하는 말은 언제나 ‘삶말’입니다. 살지 않으면서 하는 말은 언제나 ‘나그네 말’이거나 ‘뜨내기 말’입니다.


  나그네라든지 뜨내기라고 해서 ‘나쁘거나 좋다’고 가를 수 없습니다. 그저 나그네이고 뜨내기일 뿐입니다. 삶말이기에 ‘좋거나 나쁘다’고 나눌 수 없어요. 그예 삶말일 뿐입니다.


  바다에서 살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바다를 말할 수 있습니다. 숲에서 살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숲을 말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아이키우기(육아)나 가르치기(교육)를 말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책을 말할 수 있습니다. 영화나 만화를 보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영화나 만화를 말할 수 있습니다. 노래를 듣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노래를 말할 수 있습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밥맛을 말할 수 있습니다. 골짝물을 마시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골짝물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말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어떤 말이든 왜 못 하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를 헤아릴 수 있기를 바라요. 골목을 말하려고 한다면, 부디 골목을 바라보고, 느끼며, 잘 알아차린 뒤에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골목을 스치거나 지나치거나 구경하지 말고, ‘골목 바라보기’를 하면서 ‘골목 느끼기’를 하고는 ‘골목 알기’를 하는 흐름으로 ‘골목 말하기’를 하기를 바라요.


  지식으로 골목을 말하지 않기를 바라요. 밥맛이나 노래나 영화나 책이나 아이키우기나 숲이나 바다를 지식으로 말하면 재미있을까요? 사랑스러울까요? 즐거울까요? 좋을까요? 삶으로 골목을 말하기를 바라요. 밥도 노래도 영화도 책도 아이키우기도 숲도 바다도 삶으로 말하기를 바라요. 인문학이나 인문지식도 아닌 삶으로 말하기를 바라요. 4347.6.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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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꽃내음



올해에도 밤꽃 가득

골골샅샅 가득한 유월

한복판


벼리야, 보라야,

저기 저 숲을 보렴.


자전거를 세우고 밤나무 앞에서

가만히 꽃내음 맡는다

샛노란 밤꽃을 올려다본다


찔레꽃이 질 무렵

감꽃이 지려 하고

감꽃이 질 무렵

아왜나무에 꽃이 피면서

밤꽃이 나란히 꽃송이 벌려

우리더러

숲으로 들어와 놀자고

부르네.



4347.6.1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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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4. 늘 살아서 속삭이는



  사진 한 장을 바라봅니다. 사진에 찍힌 모습은 언제나 ‘어제’입니다. 사진을 찍는 날은 늘 ‘오늘’인데, ‘오늘’이 깃든 사진은 모레가 되거나 글피가 되어도 한결같이 ‘어제’입니다. 그런데, 사진에 깃든 ‘어제’는 열 해가 흐르거나 백 해가 흘러도 똑같은 ‘어제’입니다.


  사람은 몸이 늙습니다. 열 살 어린이가 쉰 해를 더 살면 예순 살이 됩니다. 열 살에 찍은 사진에 깃든 ‘오늘’은 앞으로 열 해가 흐르든 쉰 해가 흐르든 똑같은 ‘어제’로 이어갑니다.


  목숨을 다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로서는 ‘죽은’ 사람이 아직 ‘살아서’ 빙그레 웃거나 즐겁게 노래하던 때에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이 사진은 무엇을 말할까요. 이 사진은 무엇을 보여줄까요. 이 사진은 무엇을 노래할까요.


  오늘 이곳에 없으나 어제 그곳에 있던 사람을 사진으로 만납니다. 오늘 이곳에 없지만 어제 그곳에서 만나며 즐거웠던 사람을 사진으로 마주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찍는’ 사진이기에 앞으로 기나긴 해가 흘러도 반가운 님을 오래도록 한결같이 만납니다. 오늘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품에 안으면서 두고두고 기쁘게 마음에 빛을 껴안습니다.


  사진은 늘 오늘 이곳을 찍습니다. 늘 오늘 이곳을 찍는 사진이라고 할 때에는, 사진 한 장으로 ‘늘 살아서 속삭이는 이야기’를 누린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몇 해가 흐르건, ‘오늘 이곳 이야기’가 언제까지나 싱그러이 흐르면서 사람들한테 아름다운 빛으로 잇고 새로 이으며 거듭 잇는 징검다리 구실을 합니다. 4347.6.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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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책



  언제부터였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내가 처음 책에 눈을 뜬 날부터 내가 손에 쥐고 싶은 책은 언제나 ‘긴 책’이다. 나는 ‘짧은 책’을 바라지 않는다. 아직 책에 눈을 뜨지 못하던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책다운 책’에는 제대로 마음을 두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으로 접어들 무렵 비로소 ‘책다운 책’을 바라볼 수 있었고, 이즈음부터 내 손에는 ‘긴 책’만 깃들도록 하자고 다짐했다.


  어떤 책이 ‘긴 책’일까. 스스로 길게 읽을 수 있는 책이 ‘긴 책’이다. 오늘 읽고 모레 읽을 수 있을 때에 ‘긴 책’이다. 내가 읽은 책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고, 이 아이들은 또 이녁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책이 ‘긴 책’이다.


  ‘긴 책’ 가운데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한테 읽힌 책도 있지만, ‘긴 책’ 가운데에는 고작 백 권 팔렸을까 말까 싶도록 적은 사람한테 읽힌 책도 있다.


  ‘긴 책’은 ‘살아남는 책’이 아니다. ‘긴 책’은 ‘삶을 살리는 숨결’이 깃든 책이다. ‘긴 책’은 돈이 되는 책이 아니다. ‘긴 책’은 사랑을 밝히고 꿈을 노래하는 책이다.


  다시 말하자면, 긴 삶을 바라기에 긴 책을 읽는다. 긴 노래를 부르기에 긴 책을 읽는다. 긴 사랑을 가꾸기에 긴 책을 읽는다. 긴 넋을 건사하고자 긴 책을 읽는다.


  가람이 길게 흐른다. 숲이 길게 뻗는다. 별이 길게 드리운다. 기나긴 온누리에 기나긴 숨결이 감돈다. 4347.6.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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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늘 하루도 진실하게 살자
최진실 지음 / 책이있는마을 / 1998년 7월
평점 :
절판


소개하려는 영화는 디브이디가 없습니다. 아쉽지만, 최진실 님 수필책에 이 글을 걸칩니다...


..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1991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1년에 ‘최진실’이라는 이름은 아주 대단했다. 얼마나 크게 사랑받는 배우였는지 모른다. 나도 이무렵에 배우 최진실 님을 무척 좋아해서, 내 교과서와 참고서를 비닐로 싼 뒤 겉에 최진실 님 사진을 넣곤 했다. 책받침도 최진실 님 사진을 앞뒤로 코팅해서 쓰기도 했다. 그래서 1991년에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라는 영화가 나왔다고 했을 적에 아주 마땅히 극장에 가서 보았다. 이제는 사라진 ‘인천 시민회관’에서 보았는데, 여느 때에 ‘최진실 팬’이라고 하던 동무들은 함께 극장에 가지 않았다. 영화이름으로도 그리 끌리지 않는다 하고, 굳이 극장까지 가느냐고, 몇 해 지나면 텔레비전에서 다 보여줄 텐데 뭐 하러 돈을 들이느냐고도 했다.


  극장에서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보던 1991년 어느 날, 영화가 무엇인지 비로소 느꼈다. 그래, 영화란 이러하기에 영화로구나. 이야기를 담고, 삶을 밝히며, 꿈과 사랑을 보여줄 때에 영화로구나.


  극장에서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내리기 앞서 다시 한 번 찾아가서 이 영화를 다시 본다. 처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을 적에 극장에 온 손님은 모두 열다섯 사람이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러 갔을 적에도 인천 시민회관에 든 손님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만 있었다.


  나중에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보여준 적이 더러 있으나,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는 동무나 이웃은 좀처럼 만나지 못한다. 이 영화를 놓고 이야기꽃을 피울 만한 동무나 이웃이 아직 없다. 이 영화에 나온 이야기는 소설로 나오기도 하고, 이 영화에 나온 ‘스웨덴 입양 어린이(신유숙)’는 어른이 된 뒤 방송에 나오기도 했는데, 이분도 최진실 님도 이제는 저승사람이다.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은 나중에 디브이디가 나올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 삶을 바꾸거나 고치는 힘이 될 수 있을까. 어제도 오늘도 한국은 지구별에서 ‘외국 입양을 많이 시키는 나라’로 다섯손가락 사이에 꼽힌다. 고갱이는 ‘외국 입양’이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얼마나 참답게 사랑받으면서 살아가는가. 한국에서 아이를 낳는 어버이(어른)들은 얼마나 착하게 사랑하면서 꿈을 꾸는가. 4347.6.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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