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비행기 놀이 5 - 가볍고 빠르게



  일곱 살 사름벼리가 종이비행기를 접을 적에 처음에는 아버지 손을 빌어야 했다. 아버지는 처음에 잘 접어 주다가 아이한테 맡긴다. 아이가 잘 안 된다고 징징거려도 못 본 척했다.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기를 바랐다. 아이는 참 오래도록 끙끙거렸다. 아이가 끙끙거리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무척 아팠다. 그러나, 우리는 시골집에서 살고, 이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도 않기 때문에 시간이 넉넉하다. 한 시간만에 끝내야 한다든지 오늘 끝내야 하지 않다. 여러 날 걸려도 좋다. 한 달이 걸려도 된다. 아이가 스스로 종이비행기를 접을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사름벼리는 끝내 종이비행기를 스스로 접는다. 꽤 오래 걸렸지만 스스로 알아냈다. 보고 또 보고 또 보면서, 접고 또 접으며 또 접은 끝에 드디어 혼자서 접은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마당에서 날리면 더 잘 날겠다고 생각하면서 날린다. 아버지더러 한쪽 끝에 서서 종이비행기를 받은 뒤 되날려 달라고 한다. 그래, 같이 날려 주지. 4347.6.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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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짜릿 저리는 글쓰기



  지난해부터 쓰던 글을 마무리짓는다. 글쓰기는 지난해부터 했지만, 이 책을 쓰려고 스무 해 앞서부터 생각했으니, 꽤 오래된 글이라 할 만하다. 글쓰기를 마친 뒤 차근차근 처음부터 되새겨야 하는데, 아버지가 글쓰기 일을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제때 밥을 챙겨 주지 않았다고 떠올리면서 저녁을 끓인다.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는 냄새와 소리를 들으면서 살짝 틈을 낸다. 이러다가 다시 밥을 끓이고, 다시 글을 조금 건드린 뒤, 마저 밥을 차린 뒤 아이들을 부른다. “자, 이제 아버지는 얼른 마무리를 지어서 보내야 할 글이 있어. 이 일을 마치고 우체국에 다녀와야 하니, 너희끼리 먼저 저녁을 먹으렴. 너희가 밥을 다 먹고 나서 아버지도 일을 끝내고 부지런히 다녀오자.”


  오랜 품을 들여서 마무리짓는 글을 짜릿짜릿 저리다. 가슴이 저린다. 손목도 저리고 온몸이 저리다. 이 글은 앞으로 어떤 옷을 입고 이웃들한테 나누어 줄 책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한 시간 뒤에 우체국이 닫으니 더 기운을 내자. 4347.6.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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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라 - 뉴스타파 최승호 피디의 한국 언론 이야기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3
최승호.지승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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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4



‘권력’이 아닌 ‘사랑’을 말하라

― 정권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라

 최승호·지승호 이야기

 철수와영희 펴냄, 2014.6.23.



  이름이 같은 두 ‘승호’가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승호 님은 최승호 님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조곤조곤 묻고, 최승호 님은 지승호 님이 묻는 말에 따라 생각을 북돋우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정권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라》는 ‘뉴스타파 최승호 피디의 한국 언론 이야기’라고 합니다.


  최승호 님은 문화방송에서 일하다가 ‘잘렸’다고 합니다. 문화방송 사장한테 밉보여서, 또는 이 나라 대통령한테 밉보여서, 또는 이 나라 정치권력한테 밉보여서 문화방송에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방송사 사장한테는 칼자루가 있어서 피디 한 사람을 자를 수 있는 듯합니다. 대통령이나 정치권력자한테는 ‘힘(권력)’이 있어서 피디 한 사람쯤 파리 한 마리로 여길 수 있는 듯합니다.


  틀림없이,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이 적거나 여리거나 없는 사람을 짓밟을 수 있습니다. 어김없이, 힘이 없는 사람은, 힘이 세거나 많거나 큰 사람한테 짓눌릴 수 있습니다. 주리를 틀 수 있겠지요. 목아지를 비틀 수 있겠지요. 그런데, 주리를 틀거나 목아지를 비틀더라도, 옛사람 이야기마따나 해는 다시 떠올라요.



.. 안광한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이 보수·극우 세력들에게 보내는 선물이죠. 자기네들의 생존을 위해서 바치는 전리품이라고 할가요 … MBC라는 공영방송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자기는 오로지 충성만 하겠다는 겁니다. 저는 안 사장이 보수·극우 세력에게 자기 진정성을 내보인 거로 봅니다 … 법원이 방송인은 공정한 방송을 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한 거거든요. 이를 방해하고 막는 시도가 있다면 파업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항거하고 투쟁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거예요 ..  (8, 9, 12쪽)



  피디 한 사람을 쫓아낸대서 ‘거짓말’이 ‘참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서 ㅈㅈㄷ신문이 온갖 ‘말’을 쏟아부을 뿐 아니라, 돈을 들여 방송사를 만들어 온갖 ‘말’을 퍼붓는다 하더라도 ‘거짓말’이 ‘참말’이 되지 않습니다. 정치권력을 거머쥐면서 대통령이 된 사람이 이런저런 말을 읊거나 언론조작을 한다고 하더라도, 참말로 그렇지요. 참말로 ‘거짓말’이 ‘참말’이 되는 일이 없고, ‘참말’이 ‘거짓말’이 될 수 없습니다.


  예부터 시골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요. 콩을 심은 데에서는 콩이 납니다. 팥을 심은 데에서는 팥이 납니다. 사랑을 심은 곳에서는 사랑이 납니다. 미움을 심은 곳에서는 미움이 납니다.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이 사람들을 짓밟거나 짓누르는 ‘씨앗’을 마구잡이로 심습니다. ㅈㅈㄷ신문을 비롯해서 온갖 철부지들이 거짓말이라는 ‘씨앗’을 아무렇게나 심습니다.


  통제와 강압과 차별과 전쟁이라는 씨앗을 심으니, 그네들은 ‘그 씨앗에 따른 열매’를 거둡니다. 거짓말을 심는 기자와 피디와 작가와 학자와 교수와 지식인은 ‘그 씨앗에 따른 열매’를 거두지요.



.. 왜곡된 언론 현실 속에서 국민들에게 제대로 진실이 전달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 번 절감했습니다 … 퇴보의 주체들이 모두 MBC 내부에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김재철 사장, 그 측근들, 하수인들이, 후배들을 잘라내는 인간 백정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데서 날아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같이 ,BC에서 일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말씀을 드리자면, 이분은 자기가 저질러 놓고도 딴 얘기를 해요. 마치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대합니다. 연기를 너무 잘해요 … 언론을 통제의 대상으로 볼 뿐, 언론의 자유를 믿는 집단은 아닌 것 같아요. 대한민국의 보수는 ..  (16, 19, 20쪽)



  최승호 님은 “언론 탓이 크다”고 되풀이해서 말합니다. 《정권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라》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최승호 님은 언론을 밝히려는 일을 하니까, 아무래도 “언론 탓이 크다”고 말할 만합니다. 최승호 님이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했다면, 아마 “교사 탓이 크다”라든지 “학교 탓이 크다”라든지 “교육 탓이 크다”고 말했을 테지요. 최승호 님이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 같은 일을 했다면 “정치 탓이 크다”고 말했을 테지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탓할 것은 한 가지도 없으면서, 어느 것이나 탓할 만합니다. 탓해야 한다면 무엇을 탓해야 하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탓해야 할까요. 나쁜 놈을 탓해야 할까요. 나쁜 제도와 법과 권력을 탓해야 할까요. 전쟁이나 군대나 재벌을 탓해야 할까요. 주한미군을 탓하거나 수구보수 무리를 탓해야 할까요.


  탓해야 할 것은 언제나 한 가지라고 느껴요. 우리 삶이 삶답게 흐르지 못하도록 가로막거나 짓누르는 울타리를 탓해야지 싶어요. 우리 스스로 삶을 삶답게 바라보지 못하도록 목을 죄거나 숨통을 막는 덫을 탓해야지 싶어요.


  그런데, 울타리는 남이 놓지 않습니다. 덫은 남이 놓지 않습니다. 전쟁은 누가 일으킬까요. 군대에는 누가 있을까요. 전쟁무기는 누가 어느 공장에서 만들고 어느 과학자가 어떤 실험실에서 새롭게 뽑아낼까요.


  길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정치권력이 밀양에 송전탑을 박고 싶다면 박으라고 하셔요. 정치권력이 핵발전소를 자꾸 늘리고 싶다 하면 늘리라고 하셔요. 정치권력이 골프장을 또 짓겠다고 하면 또 지으라고 하셔요. 정치권력이 아파트를 새로 짓겠다면 또 지으라고 하셔요. 그리고 떠나요. 정치권력이 있는 곳을 떠나요. 서울을 떠나고 부산을 떠나요. 시골에서도 떠나요. 우리 모두 손을 놓아요. 우리 모두 회사에 나가지 말고 공장에 가지 말아요. 우리 모두 학교에 나가지 말고 유치원에 아이들을 넣지 말아요.


  사람은 며칠 굶는다고 해서 안 죽습니다. 사람은 이레쯤 굶는다고 해서 안 죽습니다. 자, 정치권력 거머쥔 이를 남겨 놓고, 우리들 모두 손을 놓아 보셔요. 지하철과 버스도 멈추게 하고, 수돗물도 전기도 모두 멈추게 해요. 하수시설도 멈추게 하고, 고속도로도 멈추게 해요. 공항도 병원도 모두 멈추게 해요. 그리고 모두 집에서 가만히 쉬어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깊이 생각에 잠겨요. 사흘쯤, 아니 사흘이 아닌 꼭 하루만 이렇게 해도 돼요. 신문도 끊고 방송도 끊으며 인터넷도 끊어요. 모두 다 끊어요.


  그러면 됩니다. 대통령은 대통령 혼자서 밥 해 먹고 똥 누고 하라고 놔두셔요. 대통령은 밥을 스스로 논에 씨앗을 뿌려 풀 뽑고 낫으로 나락을 베어 햇볕에 말리고는 절구로 빻아서 나무를 한 다음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끓여 먹으라고 하셔요. 솥도 손수 쇠를 담금질해서 만들라고 하셔요. 절구도 손수 돌을 깎아서 만들라고 하셔요. 숟가락과 젓가락도 대통령이 손수 만들라고 하셔요. 낫도 손수 만들라고 하고, 옷도 대통령이 손수 모시풀에서 손수 실을 뽑아 물레를 잣고 베틀을 밟아서 바느질로 지어서 입으라고 하셔요. 참말 이렇게 하면 모든 실마리를 풀 수 있습니다.



.. 문제는 종편이 아니라 지상파 공영방송들입니다. 이들이 제대로 보도하면 종편이 힘을 갖기가 어렵죠. 문제는 공영방송이 아무것도 안 한다는 데 있습니다 … 방송이 세상을 보는 데 특별히 도움이 안 되는 거예요.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 요즘 권력자들이 좀 더 뻔뻔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자정 능력을 이미 상실한 건 아닐까 해요 … 정부가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를 하면서 국민들에게 그 의미와 효과를 정직하게 밝히지 않고, 거짓말 홍보를 하고, 꼼수를 쓰면서 강압적으로 추진했다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그렇게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아 놓은 상태에서 세금을 무려 22조나 쓰는 엄청난 사업을 벌였다는 겁니다. 환경은 환경대로 망쳐 버리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을 완전히 붕괴시켰다고 생각하는데요 ..  (25, 30, 49쪽)



  최승호 님은 “언론 탓이 크다”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언론은 잘 하지도 잘못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해야 할 말을 할 뿐입니다. ㅈㅈㄷ신문은 ㅈㅈㄷ신문대로 이녁 밥그릇을 채울 만한 일을 합니다. 사람들은 ㅈㅈㄷ신문이 이녁 밥그릇을 채울 수 있도록 도울 뿐입니다. 문화방송에서 새로운 사장이 되는 이들이 이녁 밥그릇을 지키는 일만 한다잖아요? 그러면 그러라지요. 그렇게 살다가 죽으라지요. 그렇게 살면서 ‘사랑’도 ‘꿈’도 모르는 채, 스스로 쳇바퀴를 도는 철부지 짓이나 하라지요.


  《정권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라》를 읽으면, 최승호 님은 문화방송에서 쫓겨난 일을 슬퍼하지 않습니다. 슬퍼할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최승호 님은 문화방송에 있건 뉴스타파에 있건 ‘할 말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파헤칠 것을 파헤쳐서, 알릴 것을 알리는 사람이 바로 최승호 님이지 싶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 취임 1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기자회견을 안 했잖아요. 그걸 기자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는 아무도 대통령에게 질문을 안 하는 거예요 … 신뢰라는 것은 한순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거든요. 저널리스트에게 신뢰도는 생명과도 같기에 길게 보면서 쌓아가야 합니다. 특종을 하겠답시고, 순간적으로 사람을 현혹해서 자료를 얻고 그걸 근거로 보도하는 기자들은 오래 못 가요 … 진실은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희망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대통령 지지율은 60퍼센트를 넘는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느끼는 희망은 급속하게 줄어드는 것 같고요. 사회가 이렇게 된 데에는 언론의 탓이 큽니다 ..  (59, 78, 86, 99쪽)



  ㅈㅈㄷ신문에 기대는 사람은 스스로 빛을 안 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ㅈㅈㄷ신문에 얽매인 사람은 스스로 사랑을 안 키우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이들도 우리 이웃이니 모른 척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모른 척하지 않아야 한대서 이들만 생각할 까닭은 없어요. 우리는 우리가 나아갈 길로 나아가야지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아야 할 빛을 보고, 우리가 말해야 할 꿈을 말해야지 싶어요.


  우리는 ‘권력’을 말할 까닭이 없습니다. 권력을 비판하건 안 비판하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말해야 할 뿐입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건 나 스스로를 사랑하건 아주 대수롭습니다.


  최승호 님이 뉴스타파에서 할 일은 늘 한 가지예요. 문화방송에서도 늘 한 가지를 할 수 있으면 되었으니, 바로 ‘사랑 말하기’입니다. 삶을 밝히는 사랑을 말하고, 꿈으로 나아가는 사랑을 말하면 됩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ㅈㅈㄷ신문을 만드는 기자도 밥을 먹어야 합니다. 대통령 ㅂㄱㅎ이건 ㅇㅁㅂ이건 바람을 마셔야 삽니다. ㅂㄱㅎ이건 ㅇㅁㅂ이건 똥오줌을 안 누고는 못 살지요.


  정치권력이나 도시나 물질문명은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삶이 대수롭습니다. 사랑이 대수롭고, 서로를 밝히는 꿈을 가꾸는 나날이 대수롭습니다. 오늘까지 씩씩하게 한길을 걸어오셨듯이, 앞으로도 씩씩하게 한길을 걸어가는 최승호 님과 뉴스타파가 되기를 바랍니다. 4347.6.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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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엽서 (사진책도서관 2014.6.25.)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이주에 새로 나올 책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숲속여우비 펴냄)를 도서관 지킴이한테 보내려고 ‘도서관엽서’를 만든다. 하나는 새책을 알리는 엽서이고, 다른 하나는 도서관 소식을 담은 엽서이다. 두 가지를 월요일에 만들어 주문을 넣었고, 오늘 받는다. 그런데, 두 가지 엽서 가운데 도서관 소식을 담은 엽서는 인쇄가 잘못되었다. 사진은 시커멓게 나오고, 글씨가 깨졌다.


  책은 언제 받을 수 있을까. 책을 받으면 곧바로 부치려고 했는데, 도서관엽서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엉망이 되었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쇄소에 ‘잘못 나온 엽서를 찍은 사진’을 보내고 전화를 건다. 인쇄가 잘못되었다고 알린다. 다시 찍어서 받자면 이틀이 걸리겠지. 일을 서둘러서 할 생각은 없지만, 뜻하지 않게 늦춰지는 일은 반갑지 않다. 작은 엽서 한 가지인데, 인쇄소에서 이 작은 엽서 하나라도 알뜰히 살펴서 제대로 찍어 주기를 바란다. 참말 믿고서 일을 맡기지 않았는가. 인쇄소에서는 인쇄를 마친 뒤 결과물을 살피지 않고 그냥 보냈을까?


  우리 집 인쇄기는 잉크가 다 떨어져 집에서 소식지를 뽑아서 보낼 수 없기에 엽서를 만들었는데, 인쇄기 잉크를 새로 갈 돈도 어서 마련해야겠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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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는 마음



  나는 군대라는 곳에서 지난 1995년 11월부터 1997년 12월까지 보냈습니다. 군대로 끌려가기 앞서가 아스라한 옛날 같으면서도, 군대에서 굴러야 했던 나날이 바로 어제인 듯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풀려나와 내 보금자리로 돌아가던 나날도 바로 오늘 아침이나 엊저녁과 같기도 해요. 곰곰이 돌아보면, 어제와 오늘과 모레는 따로 떨어지지 않다고 할 만합니다. 늘 한 갈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군대라는 곳에 있을 적에 곧잘 생각에 젖었습니다. 군대에서 하는 일이란, 총을 손에 쥐고 저 먼 숲을 바라보기, 삽을 손에 쥐고 호루라기를 불 때까지 땅을 파기, 이십 킬로그램이 넘는 짐을 짊어진 채 잠자리에 들 때까지 쉬잖고 걷기, 주는 대로 먹기, 시키는 대로 하기, 웃사람한테서 물려받은 거친 말을 아랫사람한테 물려주기, 1초만에 한 사람씩 쓰러뜨릴 수 있도록 급소를 노려 총을 쏘거나 칼을 찔러서 죽이도록 배우기, 눈앞에 없는 누군가를 나쁜 놈으로 삼아 끝없이 이러한 생각을 머릿속에 집어넣기, 재빠르게 침낭 개고 천막을 펼쳤다가 걷기,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도록 쓰레기 파묻기 따위입니다. 이러다 보니 멍하니 시키는 대로 지내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늘 생각에 잠기든, 두 가지 가운데 하나로 갈밖에 없어요.


  내가 군대라는 데에 끌려가기 앞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을 거쳤을까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군대라는 데에서 풀려나온 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을 거쳐야 하는지 헤아렸습니다.


  나는 군대에 끌려가기 앞서 제대로 생각해야 했습니다. 군대가 없어지도록. 아니, 군대가 없어진다기보다, 온누리에 사랑이 가득할 수 있도록. 온누리에 사랑이 가득하면서 꿈이 흘러넘치고, 모든 사람이 서로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아름다운 빛이 감돌 수 있도록.


  나 스스로 고운 빛을 사랑으로 품지 않았기 때문에 군대에 끌려가는 얼거리를 되풀이하는구나 싶었어요. 1995년 그날과 1997년 그날뿐 아니라, 한국에서는 1950년 그 싸움통에서도,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이 한국으로 쳐들어온 때에도, 한국이 일본으로 쳐들어간 때에도, 중국과 몽골이 한국으로 쳐들어온 때에도, 한국이 중국과 몽골로 쳐들어간 때에도, 한국에서 갈기갈기 찢긴 정치권력이 서로 물어뜯고 할퀴면서 스스로 죽이고 죽던 때에도, 사람들은 스스로 고운 빛을 사랑으로 품지 못한 채 흘렀습니다.


  모두들, ‘왜 이렇게 괴로운 싸움을 안 그치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만 했어요. 싸움통을 끝낼 길을, 다시 말하자면, 싸움통이 아닌 우리가 삶으로 이룰 아름다운 빛을 그리지 못했어요.


  예부터 정치권력을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을 기울이지 못하도록 짓밟았습니다. 신분과 계급을 나누었지요. 예부터 온누리 어느 나라에서나 밥을 굶을 일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먹을거리와 입을거리는 넉넉합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태어나면서, 정치권력은 ‘사람들 사이에서 밥과 옷과 집이 모자라’도록 사회를 바꾸었어요. 일부러 정치권력을 키웁니다. 일부러 궁궐을 짓습니다. 일부러 밥과 옷과 집을 함부로 다룹니다. 이렇게 해야 사람들 사이에서 밥과 옷과 집이 모자라고 말아요. 사람들 사이에서 밥과 옷과 집이 모자라면서, 궁궐이 커지면 어떻게 될까요? 권력과 돈을 거머쥐거나 가로챈 사람들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큰 집과 많은 옷과 배가 터지도록 먹는 밥을 누리면 어떻게 될까요?


  때때로 시골사람들이 어깨동무하면서 들고 일어납니다. 들고 일어나서 권력자를 낫으로 베고 칼로 쑤셔서 죽입니다. 그렇지만 그뿐이에요. 평화와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았어요. 너무 짓밟혀서 괴롭다고 여기느라 ‘앙갚음’을 할 생각뿐입니다. 앙갚음을 하고 난 뒤라도, 군대와 정치조직을 없애어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보금자리를 이루려 하는 길로 나아가야 했을 텐데, 이렇게 나아가지 못한 채, ‘반란군 스스로 새로운 정치조직이 되’고 맙니다.


  군대에서는 언제나 ‘눈앞에 없는 적’을 자꾸 머리와 마음에 만들도록 들들 볶습니다. 군대에서는 늘 사람들을 짓밟으면서 길들입니다. 온갖 주먹다짐과 발길질과 거친 말로 사람을 괴롭힐 뿐 아니라 다치게 하고, 곧잘 죽입니다. 군대에서 누군가 죽음에 이르면 으레 ‘의문사’라는 이름으로 덮어씌웁니다. 군대가 어떤 조직인지를 사람들한테 숨기기만 합니다. 정치조직이 사람들한테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일하고 똑같습니다.


  사람들이 ‘생계에 벅차 생각을 하지 못하거나 잃을 때’에는 정치권력이 신나게 날뜁니다. 사람들이 ‘먹고살기에 바빠 생각을 안 하거나 못 할 때’에는 정치권력이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은 ‘생각을 하’지요. 아무리 사람들이 생각을 잊거나 잃었어도, 이 틈바구니에서 어김없이 생각이 솟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 새로운 무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정치권력은 서로 짭니다. 서로서로 더 새로운 무기를 더 많이 만들려고 하면서, 이러한 데에 모든 돈과 힘과 품을 들이도록 해요.


  한국에서 군대에 쓰는 돈은 어마어마합니다. 지구별에서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무시무시합니다. 그러면 한국에서 군대에 쓰는 돈은 어디로 갈까요? 어떤 사람들 주머니로 가겠지요. 그리고, 어떤 정치권력자한테 빌붙으면서 ‘생계를 잇는 어떤 사람’ 주머니로 갑니다. 한국에서는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이 ‘군대 경제 틀’에서 생계를 잇습니다. 이는 바로 정치권력이 바라는 일이에요. 사람들 스스로 ‘국방산업으로 생계를 이을 때’에는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사람들 스스로 ‘도시 문명사회에서 생계를 이을 때’에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오늘날 한국에서는 ‘학교와 얽힌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교사부터 학교와 얽힌 회사원입니다. 교과서와 참고서를 만드는 사람도 학교와 얽힌 회사원입니다. 학원강사나 과외교사 모두 학교와 얽힌 회사원입니다. 학생한테 손전화 파는 사람도, 학생한테 ‘학교옷’ 파는 사람도, 학생한테 이것저것 팔려는 모든 사람도, ‘학교와 얽힌 회사원’입니다. 학교 앞 분식집과 옷집과 술집도 ‘학교와 얽힌 회사원’이에요.


  군대와 같은 틀로 짠 것이 학교와 회사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회사(하고 공공기관)에 다니지 못하면 돈을 못 벌 만한 얼거리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면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얼거리입니다. 회사에서는 우리들한테 무엇을 시킬까요? 회사에서도 군대와 똑같이 ‘생각을 못 하게 가로막거나 짓밟’습니다. 회사에서 우리한테 바라는 것은 회사에 돈을 끌어모으라는 일입니다. 이것 말고는 바라지 않아요. 학교는 우리한테 무엇을 바랄까요? 이웃과 동무를 밟고 올라서서 더 높은 점수를 따라는 짓입니다. 학교 또한 이것 말고는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군대에 보내는 일과 우리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과 우리 아이들을 회사에 보내는 일은, 밑바탕으로 따지면 모두 똑같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괴롭히는 얼거리가 바로 ‘군대·회사·학교’입니다. 그리고, ‘감옥’은 이 세 가지하고 똑같지요.


  군대에도 회사에도 학교에도 ‘사랑’과 ‘삶’과 ‘꿈’과 ‘평화’가 없습니다. 사랑을 가르치지 않는 군대요 회사이며 학교입니다. 삶과 동떨어지도록 하는 데가 군대이며 회사이고 학교입니다. 꿈과 평화를 바라지 않는 데가 군대이자 회사이고 학교입니다.


  삶과 사랑을 가르치면서 배울 수 없다면, 학교가 학교일 수 없어요. 그러니, 오늘날 한국에서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도 모두 ‘군대’와 같고 ‘감옥’이겠지요. 지구별도 ‘감옥’이라 하지만, 지구별에서 학교와 군대와 회사는 언제나 똑같이 감옥이에요.


  학교를 높은 점수로 마친 아이들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바라보셔요. 높은 점수를 거머쥐는 아이들이 왜 자꾸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살펴보셔요. 아이들이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스스로 죽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자살률’은 한국이 지구별에서 가장 높습니다. 아이들 마음속에 사랑이 자라지 못하니, 죽을밖에 없어요. 아이들 마음속에 꿈이 피어나지 못하니, 죽는 길만 있어요. 아이들 마음속에 평화와 빛이 깃들지 못하니, 그대로 죽고 말아요.


  날마다 수십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죽습니다. 그런데 ‘숫자 통계’는 늘 감춰지고, ‘날마다 죽는 아이들 이야기’는 어떤 신문이나 방송이나 교과서나 책에도 안 나옵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아이들이 날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죽지만, 정치권력은 이를 꽁꽁 감춥니다. 학교에서도 감추고, 어른들 누구나 감춥니다. 왜 감추느냐 하면, 이 사회를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가 그대로 흘러, 사람들이 모두 바보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바보가 되어야, 정치권력은 사람들을 노예로 다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바라는 일은 그야말로 ‘꿈(이상주의)’입니다. 사랑을 바라는 까닭은 삶을 밝히고 싶기 때문입니다. 삶을 밝혀 아름답게 하루를 짓고 싶기에 꿈을 꿉니다. 아름답게 짓는 하루를 누리고 싶은 꿈은 사랑이 있기에 즐겁습니다.


  사람들이 꿈을 꾸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이 사랑으로 꿈을 지어 삶을 가꾸면 어떻게 될까요? 아주 마땅히 ‘눈앞에 안 보이는 적군’이 곧바로 사라집니다. ‘눈앞에 없는 적군이 참말 없다고 알아볼’ 수 있어요. 적군이 없으니 싸울 일이나 전쟁무기를 갖출 일이 없습니다. 군대가 있을 까닭이 없고, 군대가 없으니, 정치권력이나 정치조직 또한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군대도 사회도 정치권력도 없으면, 도시라는 데가 있을 까닭조차 없고, 회사와 학교가 있을 까닭이 없어요.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볼 것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해야 할 참다운 일을 생각하고, 우리가 참답게 가르치고 배울 이야기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이 무엇인가 하면 ‘꿈’이고, 모든 꿈은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온누리에 사랑스러운 빛이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서 자라기를 바라기에 꿈을 꿉니다. 4347.6.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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