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오던 날 (사진책도서관 2014.8.2.)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태풍이 오는 날 아침, 마을방송과 면사무소 방송으로 ‘바깥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이야기가 흐른다. 그러나 나는 우리 도서관에 안 갈 수 없다.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큰비가 내리니, 물이 새는 곳을 살피러 가야 한다. 물이 새는 데에 통을 받쳐야 하고, 물이 흐른 곳을 걸레로 닦아 치워야 한다. 안 그러면 책이 다치는걸.


  작은아이를 안는다. 큰아이한테 비옷을 입힌다. 우산을 받고 천천히 걷는다. 큰아이는 아버지 옷자락을 붙잡고 걷는다. “예전에 바람이 세게 불어 날아간 적 있어요.” 아니야, 날아간 적은 없어. 날아갈 뻔했지. 바람이 드세니 우산살이 휘어진다. 그래도 씩씩하게 도서관까지 왔다.


  물이 가장 많이 새는 곳을 둘러본다. 생각보다 많이 새지는 않았다. 걸레로 물을 훔쳐서 바깥에 대고 짠다. 다른 물 새는 두 군데를 살피며 걸레질을 한다.


  한참 땀을 내면서 걸레질을 한 뒤, 책꽂이 자리를 옮긴다. 통나무로 짠 책꽂이는 바닥에 댔어도 물 기운이 위로 올라가지 않으나, 합판으로 짠 책꽂이는 바닥에 닿으면 물 기운이 위로 올라가서 곰팡이가 핀다. 어떤 나무로 책꽂이를 짜느냐에 따라 참으로 다르다. 합판 책꽂이를 버릴 수 없는 노릇이다. 그동안 합판 책꽂이는 니스를 두껍게 발라서 쓰자고 생각했는데, 니스를 발랐어도 니스 위로 곰팡이가 올라오기도 한다. 그런데, 요즈음 새로 한 가지를 알아차렸다. 합판 책꽂이라 하더라도 바닥에서 퍽 높이 떼어 놓으면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 그래, 바닥에서 올라오는 축축한 기운에 곧바로 닿지 않으면 되는구나.


  안 쓰는 걸상이 많다. 이곳이 폐교가 되면서 교무실에 있던 안 쓰는 쇠걸상이 잔뜩 있다. 쇠걸상에 합판 책꽂이를 올리기로 한다. 이렇게 하면 제법 쓸 만하겠지.


  한국말사전을 엮을 때에 쓰는 책들을 찬찬히 살피면서 갈무리하다가 재미있는 책을 본다. 문세영 님이 한국말 책임편집을 했다는 《만주어자통》(박문서각,1936)과 《국어소사전》(동아교육출판사,1943)이다. 《만주어자통》은 1930∼40년대에 만주말을 익히도록 삼은 도움책이고, 《국어소사전》은 ‘일본사람이 일본말 익히도록 돕는 책’이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인데, ‘國語’는 ‘한국말’을 가리키지 않는다. ‘국어’는 ‘일본말’을 가리키는 한자말이다. 중국은 중국말을 ‘中國語’라 한다. 지난날 조선(해방되기 앞서까지 이 나라 이름)에서는 ‘조선말’이나 ‘조선어’라 했다. 그러니, 해방 뒤 오늘날 이 나라에서는 ‘한국말’이나 ‘한국어’라고 써야 올바르다. 또는 ‘한글’이라는 글이름을 빌어 ‘한말’이라 해야 맞다.


  일본사람이 일본말을 익히도록 엮은 작은 《국어소사전》을 살피면, 오늘날 한국에서 많이 쓰는 ‘일본 한자말’ 모습을 낱낱이 읽을 수 있기도 하다. 이런 자료 하나하나가 모여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엮는 밑힘이 된다. 이런 알뜰한 자료를 이 나라 어느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이런 사전이나 책을 갖춘 도서관이 이 나라에 몇 군데나 있을까. 지난 2003년에 보리출판사를 그만두면서 《보리 국어사전》 만드는 일도 그때에 끝맺었고, 그 뒤로 한국말사전 엮는 일에서 오래도록 손을 놓았으나, 이제부터 다시금 기운을 내어 ‘새 한국말사전 엮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 알뜰한 책들을 그대로 묻어 놓을 수 없는 노릇이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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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83) 하면


“좋다! 하면, 마루카미산에 성을 쌓는다!”

《이와아키 히토시/서현아 옮김-칠석의 나라 1》(학산문화사,2014) 9쪽


 하면

→ 그러하면

→ 그러하다면

→ 그러면

 …



  ‘하면’은 외따로 쓸 수 없는 낱말입니다. ‘이리하면’이나 ‘그리하면’을 줄여 ‘하면’만 쓸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여’와 ‘해서’에다가 ‘하면’까지, 요즈음 사람들은 한국말을 아무렇게나 씁니다. 앞말을 똑 잘라서 글 첫머리에 외따로 쓸 수 없는 말을 요즈음 사람들은 자꾸 글멋을 부리듯이 씁니다.


  “하면 하고 말면 말지”와 같은 관용구는 있습니다. “쟤는 던졌다 하면 들어가”와 같이 ‘하면’을 쓰기도 하지만, 이때에는 움직씨인 ‘하다’입니다.


  말법과 말투를 무너뜨리는 일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말을 가꾸고 글을 북돋우는 넋이 자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8.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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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버섯 책읽기



  버섯한테 붙인 이름이 ‘달걀버섯’이면, 이 버섯을 먹기 앞서부터 달걀을 먹은 셈일까. 사람들이 버섯을 처음 먹은 때는 언제일까. 사람 눈에 버섯이 뜨여서 하나씩 즐겁게 따서 먹은 때는 언제일까.


  숲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버섯을 으레 만난다. 나무와 수풀을 가만히 살피는 사람은 버섯을 쉽게 알아본다. 그렇지만, 나무를 바라보지 않고 수풀을 둘러보지 않는 사람은 버섯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나뭇잎 모양이든 숲풀이나 숲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숲에 깃든다고 해서 모두 숲을 느끼지 않는다. 숲을 온마음으로 안을 적에 비로소 숲을 느낀다. 도시에서도 이와 같다. 도시와 내가 너무 동떨어졌다 싶으면, 도시에서 으레 길을 헤맨다. 도시를 온마음으로 안을 적에는 골목과 거리를 아주 환하게 읽고 길을 잘 찾는다.


  달걀버섯을 바라본다. 갓 돋을 무렵에 보면 달걀 모양이 또렷하다는데, 활짝 펴진 모습인 달걀버섯을 바라본다. 이름을 알지 못하고 빛깔이 고운 모습만 보았을 적에는 선뜻 다가서지 않았다. 여러 날 달걀버섯을 바라보기만 하고 둘레에 이름을 여쭙지 않은 탓에, 이레쯤 뒤 누군가 이 버섯을 캐 갔다. 골짝마실을 아이들과 다니면서 이레 가까이 달걀버섯을 바라보면서 ‘이곳은 너희 보금자리로구나’ 하고 생각했고, 버섯한테 인사하며 즐거웠다.


  누군가 캐 갔어도 다시 이 자리에서 돋을까. 이 둘레에 골고루 퍼졌을까. 앞으로 얼마든지 만날 수 있겠지. 갓 돋은 멋진 모습도 만나고 싶다. 4347.8.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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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4-08-08 23:20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비가 와서인지 집근처 산에도 버섯들이 참 많이 자랐어요. 예전 버섯 책들을 읽긴했지만, 어떤 버섯인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노란색 버섯을 보면서 조카는 형광색 버섯이라 하고 신랑은 호박 버섯이라고 하고 그냥 자기들 좋을대로 붙여서 부르네요. ㅎㅎ

파란놀 2014-08-09 00:11   좋아요 0 | URL
이름은 우리가 스스로 붙이면 돼요.
어떤 이름이든
스스로 잘 알아보면 되고,
맛난 버섯이라면 즐겁게 따서 먹고요~ ^^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새싹


  나무로 우거진 숲속은 온통 숲빛이다. 참말 그렇지. 숲이니 숲빛이지. 그런데, 요즈음 이 나라에서는 숲이 숲빛을 건사하기 어렵다. 자꾸 숲 한복판에 찻길을 내려 하고, 관광지를 꾸미려 하며, 돼지우리나 닭우리 따위를 숲에 지으려 한다. 포근하면서 조용한 숲을 만나기란 나날이 힘든 일이 되고 만다.

  나무로 우거진 숲에는 온통 가랑잎밭이다. 가랑잎으로 밭을 이룬다. 가랑잎이 잔뜩 내려앉은 흙땅을 밟으면 발바닥이 간질간질 즐겁다. 땅다운 땅, ‘참땅’을 디디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해마다 나뭇잎이 엄청나게 떨어져서 땅을 뒤덮으면, 이 잎은 고스란히 이곳에서 삭으면서 새로운 흙이 된다. 새로운 흙이 되는 잎은 숲을 더욱 살찌우고, 한결 살아난 숲흙은 새로운 풀이나 나무가 자랄 밑바탕이 된다.

  아무도 숲에 거름을 주지 않는다. 아무도 숲에 비료나 농약을 주지 않는다. 아무도 숲에 이것도 저것도 주지 않는다. 숲은 아무 도움이나 손길이 없이 푸르게 우거진 빛을 이룬다. 숲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다면, 논과 밭에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슬기롭게 알아차릴 수 있겠지. 숲을 살뜰히 마주할 수 있으면, 우리 보금자리를 어떻게 가꿀 때에 아름다운가를 느낄 수 있겠지. 4347.8.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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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짝물에 떠내려 가는 가랑잎



  나뭇잎이 나뭇가지에 떨어질 적에 ‘톡’ 소리가 난다. 바람을 타고 살랑 설렁 하면서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툭’ 소리가 난다. 날마다 톡툭 소리를 듣다 보니 어디에서 뭔 소리가 들리면 이 소리가 나뭇잎 소리인지 풋감 떨어지는 소리인지 새가 똥을 누고 날아가려는 소리인지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애벌레나 열매 따먹으며 내는 소리인지 헤아려 본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개구리가 폴짝 뛰면서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풀벌레가 펄쩍펄쩍 뛰면서 풀잎을 오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매미가 우는 소리라야 귀에 닿지 않는다. 사마귀가 메뚜기를 잡아먹는 소리도, 잠자리가 거미줄에 걸리는 소리도, 실잠자리가 한여름에 갑작스레 봉오리를 틔우는 장미나무 가지 끝에 살포시 내려앉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골짜기에 온몸을 담가 물빛을 느끼다가 가랑잎 하나를 만난다. 골짜기에 그늘을 드리워 주는 나무는 틈틈이 잎을 떨군다. 톡톡 툭툭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우렁찬 골짝물 소리에 가랑잎 소리가 묻힐 듯하지만, 참말 하나도 안 묻힌다. 톡 소리를 내며 떨어지려는 나뭇잎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저 나무에 닿기에 가랑잎이 골짝물을 타고 흐를 적에 가만히 지켜볼 수 있을까.


  한여름에도 누렇게 빛이 바랜 잎을 본다. 그래, 가을에는 노오란 잎을 보지 않는다. 여름에도 보고 봄에도 본다. 4347.8.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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