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가는 길에는



  아이들과 골짝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우리 집 아이들은 골짜기를 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나무를 안다. 우리 집 아이들은 풀벌레를 알고, 멧새를 알며, 개구리를 안다. 그런데, 우리 집 아이들은 야구나 축구나 농구나 배구를 모른다. 우리 집 아이들은 연속극을 모르고, 코미디 방송을 모른다. 이런 것들을 본 적이 없으니 알 길이 없고, 이런 것들을 마주한 적이 없으니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이 없다.


  어버이가 야구를 좋아하거나 연속극을 좋아한다면 으레 이런 것을 보리라. 그러면, 아이들도 으레 야구나 연속극을 만날 테니, 차츰 눈여겨볼 테지. 아이들은 이런 것을 좋아할 수 있으나 안 좋아할 수 있다.


  아이들이 그림책을 본다. 아이들은 어버이인 내가 고르고 장만한 그림책을 본다. 어버이로서 내가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그림책을 골라서 장만했으면, 아이들은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빛이 서린 그림책을 읽는다. 어버이라 하지만 그림책을 찬찬히 살피기보다 ‘추천도서’라든지 ‘책방에서 잘 보이는 데 놓은 책’만 덥석덥석 사서 갖춘다면, 아이들은 또 이 그림책들만 만난다.


  자동차가 수없이 밀려다니는 도시에서 살림을 꾸리면, 아이들은 이런 모습에 익숙하다. 자동차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시골에서 살림을 꾸리면, 아이들은 찻길에서도 한복판을 거침없이 달리면서 논다.


  우리는 어떤 삶으로 가는 길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사랑하고픈 길을 걷는가.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으로 가는 길이 될까. 우리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어떤 빛을 물려받으면서 저희 삶을 사랑하는 하루를 누릴까. 4347.8.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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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목소리 - 누치두 다카라 - 생명은 귀한 것 평화징검돌 1
마루키 도시 글, 마루키 이리 그림, 신명직 옮김 / 평화를품은책(꿈교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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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8



평화를 부르는 목소리는 평화

― 오키나와의 목소리

 마루키 도시·마루키 이리 글·그림

 신명직 옮김

 꿈교출판사 펴냄, 2013.10.8.



  전쟁을 저지르는 이들은 언제나 똑같은 말을 읊습니다. 바로 ‘평화를 지키려는 뜻’이었다고. 그런데, 전쟁무기는 전쟁을 부를 뿐, 평화를 부른 적이 없습니다. 전쟁무기를 손에 쥐어 저쪽 나라를 쳐부수면, 저쪽 나라는 어느새 더 커다란 전쟁무기를 챙겨서 우리한테 들어옵니다. 그동안 받은 아픔을 곱배기로 돌려주려 하지요. 그러면, 우리 쪽에서는 저쪽보다 더 엄청난 전쟁무기를 갖추어 다시 쳐부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쪽은 아예 우리를 싹쓸이하듯이 없애려고 아주 무시무시한 전쟁무기를 만듭니다.


  핵무기는 저쪽 나라를 ‘나쁜 놈’으로 삼아 싹쓸이를 하듯이 죽여서 없애려고 하는 전쟁무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총과 칼도 저쪽을 나쁜 놈으로 여겨 얼른 죽여서 없애려고 하는 전쟁무기입니다.


  전쟁무기이기에 전쟁을 부릅니다. ‘평화무기’란 없습니다. 평화를 이루도록 하는 힘은 사랑입니다. 평화는 언제나 사랑으로만 이루고, 사랑으로 이루는 평화는 아름다운 꿈을 키웁니다.



.. 푸르고 푸른 바다였습니다. 무지개처럼 빛나는 바다였지요. 햇빛이 밝게 내리쬐고, 수많은 물고기들이 헤엄쳐 놀고 있었습니다 … 오키나와는 고구마랑 쌀이 나고, 사탕수수에서 설탕이 나고, 바나나랑 파파야, 귤도 나는 풍요로운 섬이었습니다. 쯔루와 사부로는 아단나무 잎으로 팔랑개비를 만들거나, 예쁜 조가비를 주우며 아침부터 밤까지 뛰어놀았습니다 ..  (2∼4쪽)





  전쟁은 언제나 사랑을 억누릅니다. 사랑을 억누르는 전쟁에는 아름다움도 꿈도 없습니다. 전쟁무기를 갖춘 군대는 전쟁훈련만 합니다. 씨앗을 심어 곡식이나 열매를 거두려 하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를 갖춘 군대는 더 많은 무기를 갖추려고만 합니다. 풀을 베어 실을 얻어 옷을 짜려 하지 않습니다. 나무를 돌보아 우람하게 자라면 고맙게 몇 그루 얻어 집을 지으려 하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으로만 나아가고, 군대는 전쟁훈련만 하며, 전쟁무기와 군부대는 언제나 평화를 짓밟고 사랑을 억누릅니다.


  지구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전쟁훈련을 하는 군부대에서는 폭력이 일어납니다. 사람을 사랑이 아닌 신분과 계급으로 나누어 다루니, 으레 폭력이 일어날밖에 없습니다. 전쟁훈련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면 뒤처질 텐데, 군부대에서 뒤처지는 젊은이는 따돌림을 받고 주먹질을 받으며 거친 말에 마음이 다칩니다. 군부대는 전쟁을 꾀해 저쪽 나라를 모두 죽이는 훈련을 받는 터라, 전쟁훈련을 제대로 따라오도록 모든 젊은이를 다그칩니다. 바보로 만들고, 노예로 삼으며, 기계처럼 부립니다. 군부대에 끌려가는 젊은이는 모두 소모품입니다. 군부대에서는 젊은 사내를 소모품으로 부리려고 성접대를 하고, 성접대를 하는 동안 술집과 사창가가 늘어나며, 전쟁이 터지면 성노예(위안부)를 만들거나 강간을 저지릅니다. 지구별에서 불거지는 모든 성폭력과 강간은 군부대 때문에, 전쟁 때문에 일어납니다.



.. 포격이 잠잠해지고, 잠시 조용해졌을 때였습니다. 일본군 3명이 들어와 소리쳤습니다. “일본군이 오키나와를 지킨다. 일본군이 일본을 지킨다. 너희들은 나가라! 안 나가면 죽인다.” 모두들 너무 무서워 무덤을 뛰쳐나왔습니다 … 구씨 성을 가진 사람이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내도, 다섯 아이도 모두 죽었습니다. 단지 조선사람이기 때문에, 스파이가 되기 쉽다는 이유였습니다. 다른 섬사람들도 일본군을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없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  (17∼19쪽)





  마루키 도시 님과 마루키 이리 님이 함께 빚은 그림책 《오키나와의 목소리》(꿈교출판사,2013)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한국에 2013년에 처음 나오는데, 일본에서는 1984년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두 사람은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전쟁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아픈 나날을 보냈고, 언제나 ‘전쟁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를 그림에 담아 이웃한테 보여주었습니다. 일본이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짓을 부끄럽게 여길 뿐 아니라, 일본 군인과 정치꾼이 하지 않는 ‘뉘우침’을 보여주고, 일본 군인과 정치꾼이 죽이거나 괴롭힌 ‘일본 나라 수수하고 작은 사람들’ 이야기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서는 이웃나라 사람을 수없이 죽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전쟁 미치광이 일본’에 힘을 보태지 않는 제 나라 사람(일본사람)도 군인과 정치꾼이 수없이 죽였습니다. ‘전쟁 부역자인 작고 수수한 사람들’조차 ‘전쟁 부역을 하지 않는 작고 수수한 이웃’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가까운 한국전쟁을 헤아려 보면, 군인과 경찰과 정치꾼이 아닌 ‘수수한 마을사람’끼리 네 편과 내 편으로 갈라져서 서로 괴롭히는 끔찍한 짓이 벌어졌습니다. 전쟁도 싸움도 다툼도 미움도 모르던 사람들이, 정치권력자가 만든 군부대와 전쟁무기 때문에 애꿎게 소용돌이에 휩싸였어요. 전쟁을 거스르고 평화로 나아갔어야 하는데, 무서운 정치권력자 주먹과 군홧발 때문에 덜덜 떨다가 그만 작고 수수한 사람 스스로 ‘전쟁 부역자’가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남녘에서 죽인 북녘사람은 누구일까요? 한국전쟁 때 북녘에서 죽인 남녘사람은 누구인가요? 한겨레는 두 나라로 쪼개진 채 이웃과 동무를 이웃이나 동무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한겨레는 한 나라 아닌 두 나라로 갈라진 채 서로서로 바보가 되는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군부대와 전쟁무기를 놓지 않는 남·북녘 두 나라에는 따돌림이 판칩니다. 어리석은 제국주의 전쟁놀이를 뉘우치지 않는 일본 사회와 정치와 교육에서도 따돌림이 판치지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왜 따돌릴까요? 바로 전쟁과 군부대 때문입니다. 사회와 나라와 정치와 교육과 문화가 온통 군국주의로 치달으니, 학교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이웃이나 동무로 여기지 않아요. 이러한 얼거리는 한국도 똑같기에, 한국에서 따돌림이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 “누나, 배고파.” 사부로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조명탄이 어두운 밤하늘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쯔루는 굴러다니는 사탕수숫대를 주워 들고 고구마밭으로 뛰어들어가, 있는 힘껏 흙을 파헤쳤습니다. 고구마 두세 개를 찾아 재빨리 돌아왔습니다. 옷으로 흙을 털어낸 다음, 사부로에게 먹이고 자기도 먹었습니다. 발밑에 고여 있던 물을 마셨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은 피가 섞인 흙탕물이었습니다 ..  (27쪽)



  평화로운 나라에서는 언제나 사랑스러운 바람이 붑니다. 평화로운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이웃사촌입니다. 서로서로 이웃사촌인 마을에서는 부자와 가난뱅이가 따로 없습니다. 언제나 서로 돕고, 언제나 서로 나누니까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이웃돕기를 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도 이웃돕기를 하지 않습니다. 사랑스러운 마을에서만 이웃을 돕고 두레를 하며 품앗이를 벌입니다. 아름다운 마을에서는 언제나 놀이마당을 이루고 이야기잔치와 춤잔치와 노래잔치를 벌입니다.


  잘 살펴보셔요. 한겨레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겨레에서는 ‘나라(정치 제도)’가 있기 앞서, 어디에서나 작은 마을로 살림살이를 이루었고, 작은 마을에서는 늘 잔치를 열었어요. 큰잔치 작은잔치 늘 잔치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마을잔치’는 거의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는 ‘텔레비전만 보는 시골 할매와 할배’만 있고, 지자체에서는 ‘지역 축제를 돈을 들여서 큼지막하게 벌이려는 관광상품’을 만들 뿐입니다.


  왜 그러겠어요? 평화가 없고, 평화가 없으니 사랑이 없으며, 사랑이 없기에 꿈이 없는 탓입니다.




.. 그때 일본군 한 명이 뛰어들어 왔습니다. 빠방, 빵빵! 하고, 미국 군함에서 일본군을 겨냥해 총을 쏘았습니다. 일본군이 죽었고, 언니 누나들도 죽고 말았습니다. 일본군 또 한 명이 흰 깃발을 흔들며 바다로 기어갔습니다. 그러자 다른 일본군이 뒤에서 그 군인을 쏘았습니다. 가까운 바위 뒤에서 수류탄이 터졌습니다. 선생님과 10명쯤 되는 언니 누나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  (40쪽)



  그림책 《오키나와의 목소리》는 이야기합니다. 오키나와(류우큐우)는 ‘일본땅’이 아닌 오키나와였습니다. 일본 정치권력자는 오키나와를 ‘일본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일본에 깃든 나라이지만 일본 ‘본토’에는 ‘식민지’인 오키나와였습니다. ‘일본이면서 일본이 아니었던 식민지 오키나와’는 197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식민지 굴레와 미군기지 수렁에서 살짝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못합니다. 애꿎게 죽은 사람들은 곳곳에서 아픈 넋으로 바뀌어 나비가 되거나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제주섬 사람들이 애꿎게 죽었습니다. 온 나라 사람들이 애꿎게 죽었습니다. 전라남도 광주에서도, 진도 앞바다에서도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애꿎게 죽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요.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우리는 무엇을 마음에 담고 이웃과 동무를 바라보아야 할까요.


  전쟁무기는 평화를 지켜 주지 않습니다. 군부대는 평화를 부르지 않습니다. 평화는 오직 평화로 지킵니다. 평화를 부르는 목소리는 언제나 사랑 하나입니다. 4347.8.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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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85. 2014.8.3.ㄴ 작은 아이 책돌이



  누나가 신을 벗고 책상에 걸터앉은 모습을 본 산들보라는, 저도 책상에 올라앉아서 책을 보겠단다. 큼지막한 그림책을 책상에 펼친 뒤 엉금엉금 올라간다. 책상 끄트머리에 쪼그려앉는다. 참 용하구나. 네가 이렇게 작은 아이인 터라 그 작은 책상에도 올라가서 쪼그려앉을 수 있네. 몸집 큰 어른은 못 하지만, 작으면서 예쁜 아이들은 이렇게 책상놀이를 할 수 있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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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84. 2014.8.3.ㄱ 긴신 벗고 책상에



  비가 퍼붓는 날 긴신을 신고 도서관에 온다. 신에는 물이 찼고 발은 물에 붓는다. 그래서 맨발로 책상에 걸터앉는다. 신에 찬 물을 빼고 발을 말린다. 느긋하면서 조용한 한때가 흐른다. 고즈넉하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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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시 사외보 <책이 열리는 나무>에 싣는 글입니다.
여름호가 진작에 나왔는데
글은 이제야 올리는군요~

..

말넋 33. 제빛을 읽고 제말을 합니다
― 여름에 먹고 마시는 숨결


  글에 눈을 뜬 일곱 살 아이는 글이 보일 때마다 읽으려고 합니다. 글을 읽는 아이는 그저 읽습니다. 지식이나 사상이나 철학으로 읽지 않습니다. 아이 눈에 보이는 대로 글을 읽습니다. “2시 20분”이라 적힌 글이 있으면 일곱 살 아이는 “두 시 스무 분” 하고 읽습니다. 아마 여느 어른이라면 모두 “두 시 이십 분”이라 읽겠지요. 일곱 살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녔다면, 또 앞으로 학교를 다닌다면, 이렇게 읽을 수 없으리라 느낍니다. 사회에서는 “2시”를 “두 시”로 읽고 “20분”을 “이십 분”으로 읽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때를 가리키는 숫자를 왜 ‘하나 둘 셋’과 ‘일 이 삼’으로 갈라서 읽을까요? 우리는 왜 이처럼 읽을까요?

  요즈음은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중국과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겨레는 예전에 “두 시 스무 분”처럼 읽었고, 돈을 셀 적에도 “1달러”를 “한 달러”로 읽었습니다. “2달러”라면? 마땅히 “두 달러”로 읽었어요. 그렇지만 이제 중국과 일본에서도 “두 시 스무 분”이나 “두 달러”처럼 읽는 사람이 많이 사라졌어요. 왜냐하면 중국에도 일본에도 ‘남녘 연속극과 영화’가 많이 퍼졌어요. 남녘에서 쓰는 말투가 중국과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겨레 말투에 스며듭니다.

  저는 여덟 살에 처음 들어간 학교에서 때를 “두 시 이십 분”처럼 읽도록 가르칠 적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여쭈었습니다. 왜 그렇게 읽느냐고 여쭈었어요. 1980년대 첫무렵입니다. 그무렵 학교에서 교사는 이런 물음을 바보스러운 말로 여겼습니다. 대꾸할 값어치가 없다고 여기며, 시키는 대로 따르라고만 했어요. 오늘날 학교는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초등학교와 유치원에서 아이들한테 숫자읽기를 가르치면서 어떤 낱말과 말투를 보여주거나 알려줄는지 궁금합니다.

  노정임·안경자 님이 쓴 《파브르에게 배우는 식물 이야기》(철수와영희,2014)라는 책을 읽다가 “잎의 모양은 식물마다 다 달라. 우리나라에는 600여 종의 식물이 산다고 알려져 있는데(96쪽).”와 같은 글을 봅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리 어른들 말투가 이렇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잎의 모양은 식물마다 다 달라”처럼 말합니다. 어느새 이런 말투로 딱딱하게 굳습니다. 이러한 글은 틀림없이 한글입니다. 다만, 겉보기로는 한글이요, 속보기로는 한국말은 아니에요.

  한국말로 옳게 쓰거나 말하려면 “잎은 식물마다 모양이 다 달라”처럼 다듬어야 합니다. 토씨 ‘-의’를 넣어 “잎의 모양은”처럼 쓰는 글은 한국말이 아니에요. 여기에서 더 살핀다면, “잎은 풀과 나무마다 모양이 다 달라”처럼 다듬을 만하고, “잎은 풀과 나무마다 다 달라”처럼 더 다듬을 만해요.

  책에 나온 글을 더 들여다보면 “600여 종의 식물이 산다고 알려져 있는데”와 같은 글도 “식물이 600여 종이 산다고”로 다듬어야 알맞습니다. “한 권의 책”이나 “한 잔의 커피”는 한국말이 아니에요. 영어 번역 말투입니다. 한국말로 바르게 가다듬으면 “책 한 권”이고 “커피 한 잔”입니다. “600여 종의 식물”은 한국말이 될 수 없어요. 껍데기만 한글일 뿐입니다. “식물 600여 종”이라 적어야 올발라요. 더 살필 수 있으면 “풀과 나무가 600여 가지”로 다듬고, “풀과 나무가 600가지 남짓”으로 다듬습니다. 이 글월을 통째로 다듬어 “우리나라에는 풀과 나무가 600가지 남짓 있다고 알려졌는데”로 적을 수 있으면, 비로소 옹글다 싶은 한국말이 됩니다.

  유월 문턱에 감꽃을 바라봅니다. 감꽃은 오월에 피고 유월에 집니다. 유월에 지는 감꽃은 칠월에 무르익어요. 팔월에는 감알이 어떤 빛이 될까요? 집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으면 날마다 새롭게 감잎과 감꽃과 감알을 살필 수 있어요. 감을 잎과 꽃과 알로 헤아릴 만합니다. 감나무에서 감알을 하나 톡 따서 먹으면, 단단한 씨앗을 봅니다. 감씨예요. 그러니까, 풀과 나무는 네 가지로 묶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잎과 꽃과 알과 씨예요. 더 들여다보면, 잎이 돋기 앞서 싹이 터요. 싹은 씨앗이 흙에 드리운 뒤 바깥으로 내놓는 첫 잎사귀나 줄기입니다. 나무라면 한해살이 아닌 여러해살이인 터라, 싹이 튼다기보다 눈이 터져요. 나무에 있는 눈은 겨울눈이라고 합니다. 이리하여, 풀이라면 ‘싹·잎·꽃·알·씨’로 흐르는 삶이고, 나무라면 ‘눈·잎·꽃·알·씨’로 흐르는 삶입니다.

  여름이면 우리들은 밭에서 나는 오이를 먹고 토마토를 먹습니다. 매화알도 살구알도 복숭아알도 노르스름하거나 발그스름하게 영급니다. 오얏알은 아예 빨갛디빨갛게, 빨갛다 못해 검붉게 익습니다. 매화알은 으레 푸른 빛깔일 때에 따서 효소를 많이 담지만, 매화알을 매화나무에 그대로 둔 채 바라보면 노르스름하면서 바알간 빛이 도는 열매로 익습니다. 잘 익은 매화알을 먹으면 ‘매화알이 푸를 적에 따서 효소로 담가 먹는 까닭’을 알 수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매화알은 매화알대로 맛이 있어요. 다만, 매화알은 살구맛도 오얏맛도 아닙니다.

  곧, 매화알은 매화빛과 매화내음으로 매화맛입니다. 살구알은 살구빛과 살구내음으로 살구맛입니다. 눈썰미가 밝은 분이라면, 매화잎과 살구잎과 복숭아잎이 어떻게 다른지 쉬 알아챕니다. 능금잎과 배잎이 어떻게 다른지 곧 알아챌 테고요. 눈썰미가 어둡다면 감잎과 모과잎과 뽕잎을 못 알아봐요. 무화과잎을 못 알아보는 분도 있어요. 다 다른 나무에서 다 다른 잎을 알아본다면, 잎빛과 잎무늬와 잎결을 모두 다르게 읽을 수 있어요. 나무마다 다른 빛과 무늬와 결을 읽는다면, 말을 하거나 글을 쓸 적에 ‘오동잎빛’과 ‘마삭줄꽃빛’을 말하거나 ‘능금꽃내음’과 ‘멧딸내음’을 말할 수 있어요. 나무마다 다른 빛과 무늬와 결을 못 읽으면, 숲에서 들려주는 빛을 말이나 글로 담아서 나타내지 못해요.

  그나저나 수박은 언제 익을까요? 참외는 언제 익나요? 모두 여름에 익어요. 비닐집에서 키우면 봄에도 수박과 참외를 맛보는데, 해와 바람과 비를 머금는 수박과 참외는 여름빛이 무르익을 때에 제맛입니다. 여름에 여름을 먹는 제맛을 안다면, ‘제빛’을 찾고 ‘제말’을 하며 ‘제삶’을 가꾸는 ‘제길’을 걷겠지요.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읽는 만큼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사랑하는 만큼 스스로 살아갑니다. 4347.5.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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