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허물



   매미가 허물을 벗는다. 그런데, 매미 허물은 나뭇줄기에 달라붙은 채 안 떨어진다. 마치 매미가 나뭇줄기에 착 달라붙어서 꼼짝하지 않는 모양새 같다.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난 매미는 위로 올라가서 노래를 한다. 노래를 하다가 문득 노래를 멈추더니 찍 하고 물똥을 싼다. 매미가 싼 아주 조그마한 물똥이 내 왼팔뚝에 떨어진다. 그냥 노래하렴. 나는 네 노래를 들으면서 네 허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어 나무 곁에 섰단다. 4347.8.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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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문동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이들과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갔다. 큰아이가 노는 동안 초등학교 가장자리에 있는 풀밭을 거닌다. 풀밭 한쪽에 조그맣게 깎은 향나무가 있는데, 향나무 한복판에 맥문동이 올라온다. 옅은보라 고운 꽃을 활짝 터뜨린다.


  이 옆을 지나가면서 옅은보라 고운 꽃이 맥문동인 줄 알아볼 사람은 얼마나 될까. 꽃대가 오르지 않고 꽃이 피지 않고 풀잎만 있을 적에 맥문동이로구나 하고 알아차릴 사람은 몇이나 될까. 시골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른과 아이는 풀꽃 한 송이를 얼마나 아끼거나 사랑할까. 맥문동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남아라. 살아남자. 도시에서는 네 뿌리를 말리거나 볶아서 대단히 값진 약으로 쓴다는데, 시골에서 네가 잡풀 소리를 안 듣고 살아남을 수 있기를 빈다. 4347.8.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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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소재지 놀이터 방가지똥 책읽기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면소재지 놀이터로 나들이를 간다. 그런데 작은아이가 면소재지에 닿을 무렵 잠든다. 이런. 조금 더 참으면 누나하고 신나게 놀 수 있었을 텐데. 큰아이 혼자 씩씩하게 면소재지 초등학교 놀이터에서 뛰논다. 함께 시소를 타다가 문득 무언가 하나를 알아본다. 굵고 하얀 모래를 잔뜩 뿌린 놀이터 한켠에 방가지똥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퍽 높게 올려 곧 꽃을 피우려 한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면서 뜨거운 이곳에서 너희는 어쩜 이렇게 씩씩하게 꽃까지 피우려 하니. 대단하구나.


  마침 초등학교는 방학이다. 방학이니 이렇게 풀이 자라도 그대로 두리라 느낀다. 방학이 끝나면 초등학교 교사나 교장은 이 ‘꼴’이 못마땅해서 풀을 모조리 뽑으라고 시킬 테지. 방가지똥아, 얼른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어 너희 아이들을 멀리멀리 날리렴. 4347.8.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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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한테 재미있으면 다 돼



  소꿉놀이를 한다면서 벼리랑 보라가 작은 이불을 들고 마루로 나와서 펼친다. 바닥에 이불을 펼치고 온갖 장난감을 늘어놓는다. 장난감으로 놀다가, 어느새 종이접기책을 꺼내어 종이를 접는다. 그림책도 읽는다. 아이들은 갖고 논 뒤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는다. 그러니, 아이들이 어디에서건 한번 놀면 온통 뒤죽박죽 발을 디딜 틈이 없다. 발을 디딜 틈이 없이 놀면서 이불까지 바닥에 깔아 놓으니, 이불을 밟고 미끄러지기 일쑤이다.


  그래 그래 다 좋아. 너희한테 재미있으면 다 돼. 그런데 말야, 발을 디딜 틈은 좀 마련하면서 놀지 않겠니? 4347.8.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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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95) 신산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그와 가족의 삶이 앞으로 얼마나 신산해질 것인지 알지 못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삼인,2008) 34쪽


 얼마나 신산해질 것인지

→ 얼마나 힘들어질는지

→ 얼마나 고달파질는지

→ 얼마나 괴로워질는지

 …



  한자말 ‘신산’은 모두 다섯 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신통한 계책”을 뜻하는 ‘神算’과 “신묘”를 뜻한다는 ‘新山’는 한국말사전에서 털어내야 합니다. ‘신묘’ 또한 ‘신산’과 함께 ‘새무덤’이나 ‘새뫼’로 고쳐 주어야 알맞습니다. 한의학 낱말은 한의학사전으로 옮겨 줍니다.


  신을 모셨으니 ‘神山’입니다. 말 그대로이니, 이 낱말은 털어내지 않을 때가 나을는지 모릅니다만, 쓰일 일이 없다면 이 낱말도 털어낼 때가 한결 낫다고 느낍니다. 신을 모신 산이라면 “거룩한 산”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선용의 신산에 젖은 얼굴 → 괴로움에 젖은 선용이 얼굴

 여간 신산한 것이 아니었다 → 웬만큼 쓰디쓰지 않았다


  힘든 삶을 빗대어 “맵고(辛) 시다(酸)”는 뜻으로 ‘신산’을 쓸 수도 있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힘든 삶을 빗대기에는 “맵고 신 삶”이라 하거나 “쓰디쓴 삶”이라 할 때가 훨씬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힘든 그대로 “힘든 삶”이라 하거나, 고단한 삶 그대로 “고단한 삶”이라 하고, 괴로운 삶 그대로 “괴로운 삶”이라 하면 됩니다.


 쓰디쓴 세상살이에 젖은 얼굴

 기숙사 삶은 웬만큼 맵디맵지 않았다


  한국말사전을 뒤적이면 ‘쓰디쓰다’와 ‘맵디맵다’가 나란히 실립니다. 이 두 낱말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때와 곳에 맞추어 알뜰히 넣어 줍니다. 낱말 하나를 바꾸어 ‘쓰고맵다’라 하든지 ‘맵고쓰다’라 해도 어울립니다. 4342.1.28.물/4347.8.1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버지가 안 계셔서 그와 식구들 삶이 앞으로 얼마나 고달플는지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부재(不在)로 인(因)해”는 “아버지가 안 계시기 때문에”나 “아버지가 안 계셔서”로 다듬습니다. “가족(家族)의 삶이”는 “식구들 삶이”로 손보거나 뒷말과 아울러 “식구들 앞날이”로 손봅니다.



 신산(辛酸)

  (1) 맛이 맵고 심

  (2) 세상살이가 힘들고 고생스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선용의 신산에 젖은 얼굴 / 기숙사 생활이 여간 신산한 것이 아니었다

 신산(神山)

  (1) 신을 모신 산

  (2) 선인(仙人)이 산다는 산

 신산(神散) : [한의학] 정신이 흐려지거나 아찔하여지는 증상

 신산(神算) : 신통한 계책

 신산(新山) = 신묘(新墓)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000) 천착


그들은 결과보다 과정에 천착하고 있다

《이지누-잃어버린 풍경 1》(호미,2005) 8쪽


 결과보다 과정에 천착하고 있다

→ 결과보다 과정을 파고든다

→ 열매보다 줄기에 마음을 쓴다

→ 마지막보다 흐름에 마음을 둔다

 …



  “뒤틀려서 난잡하다”나 “상스럽고 더럽다”는 뜻으로 ‘舛錯’이라는 한자말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곰곰이 따지면, 이런 한자말은 먼 옛날 양반이나 권력자가 중국을 섬기며 받아들인 중국말에서 비롯했으리라 느낍니다. 우리가 쓸 한국말이 아닙니다. “구멍을 뚫음”을 뜻한다는 ‘穿鑿’ 같은 한자말은 얼마나 쓸 만할까요? ‘구멍뚫이’나 ‘구멍뚫기’라 하면 될 노릇입니다. ‘파고들다’라 하면 넉넉합니다.


 세밀한 관찰과 천착을 거듭하다

→ 꼼꼼히 살피고 거듭 파고들다

 우리 것에 대한 천착을 계속하다

→ 우리 것을 꾸준하게 파고든다


  한국말을 알맞고 쉽게 쓰기를 바랍니다. 한국말을 슬기롭고 아름답게 쓰기를 바랍니다. 한국말 한 마디에 사랑을 담아 오롯하게 쓰기를 바라고, 한국말 두 마디에 꿈을 실어 따사롭게 쓰기를 바랍니다. 4338.11.17.나무/4347.8.1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들은 마지막보다 흐름에 마음을 둔다


‘결과(結果)’와 ‘과정(過程)’은 그대로 둘 만합니다. 그러나, ‘마지막·마무리·열매’와 ‘흐름·지나온 길·줄기’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하고 있다”는 “-한다”로 손봅니다.



 천착(舛錯)하다

  (1) 심정이 뒤틀려서 난잡하다

   - 순제는 그 말이 천착하고 귀에 거슬려서 모욕이나 당한 듯이 

  (2) 생김새나 행동이 상스럽고 더럽다

   - 가장 비열한 수단, 가장 천착한 방법으로 

 천착(穿鑿)

  (1) 구멍을 뚫음

  (2) 어떤 원인이나 내용 따위를 따지고 파고들어 알려고 하거나 연구함

   - 세밀한 관찰과 천착을 거듭하다 / 우리 것에 대한 천착을 계속하다

  (3) 억지로 이치에 닿지 아니한 말을 함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279) 피력


그러한 만남에 대한 조망과 문제를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윤신향-윤이상, 경계선상의 음악》(한길사,2005) 36쪽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 이렇게 말한다

→ 이와 같이 이야기한다

→ 이처럼 들려준다

 …



  ‘피력’이라는 한자말을 생각해 봅니다. “털어놓고 말함”을 뜻한다고 하는데, 이 낱말을 쓰는 분 가운데 이 말뜻을 제대로 알면서 쓰는 분은 얼마쯤 될까요. 이 낱말을 듣는 분 가운데 이 말뜻을 환히 아는 분은 또 얼마쯤 될까요.


  ‘말하다’나 ‘이야기하다’ 한 마디면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보기글에서는 ‘들려주다’라는 말을 넣어도 어울립니다. 말뜻 그대로 ‘털어놓다’로 써야 하는 자리였다면 ‘털어놓다’라든지 ‘숨김없이 말하다’처럼 적으면 되고요.


  말이든 글이든,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이 눈길과 높낮이에서만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말썽이 나지 싶습니다. 말이나 글은, 듣거나 읽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펼치잖아요. 말을 하는 이와 글을 쓰는 몇몇 사람만 알고, 둘레에서 듣거나 읽는 이는 못 알아듣는다면, 또는 엉뚱하게 받아들인다면 어찌 될까요.


  한국말사전 보기글에 실린 “수상 소감의 피력”은 “상 받은 느낌을 말함”으로 손질하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다”는 “내 생각을 말하다”로 손질합니다. 4340.5.9.물/4347.8.1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러한 만남을 어떻게 보고 생각할는지를 놓고 이렇게 말한다


“만남에 대(對)한 조망(眺望)과 문제(問題)”란 무엇을 말할까요. “만남을 바라보는 눈길”쯤 될까요. 곰곰이 헤아려 보니, “만남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가”를 가리키는구나 싶습니다. “다음과 같이”는 “이렇게”로 손봅니다.



 피력(披瀝) : 생각하는 것을 털어놓고 말함

   - 수상 소감의 피력 /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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