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622) 가족 3


우리 가족은 아빠, 엄마, 나 이렇게 세 식구입니다

《나카가와 치히로/홍성민 옮김-천사는 어떻게 키워요?》(동쪽나라,2005) 22쪽


 우리 가족은

→ 우리 집은

→ 우리 집안은

→ 우리는

 …



  보기글은 여러모로 안타깝습니다. 짧은 글월 첫머리에 ‘가족’이라 적은 뒤, 짧은 글월 끝자락에 ‘식구’라 적습니다.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일까요? 앞뒤에 적은 한자말을 바꿔서 “우리 식구는 아빠, 엄마, 나 이렇게 세 가족입니다”라 적을 수도 있으리라 느껴요. 이렇게 적으나 저렇게 적으나 똑같습니다. 둘 모두 똑같이 알량합니다.


  우리 집에 몇 사람이 있는가 말하려 하면 “우리 집”이라 하면 됩니다. 우리 집안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 밝히려 하면 “우리 집안”이라 하면 됩니다. 우리는 누구인지, 내 곁에 누가 있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누가 있는지, 이 집에서 함께 지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려면 “우리는”이라 하면 됩니다. 4347.8.17.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 집은 아버지, 어머니, 나 이렇게 셋입니다


‘아빠, 엄마’는 아기가 쓰는 말입니다. 예닐곱 살 즈음 되면, 좀 늦다면 여덟아홉 살 즈음이라면, ‘아버지, 어머니’로 바로잡을 말입니다. 아기처럼 귀여움을 떨면서 가끔 이런 말을 쓸 수 있으나, 여느 때에는 ‘아버지, 어머니’로 알맞게 쓸 노릇입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20) 쾌적


쾌적한 환경을 찾아서

《서한태-쾌적한 환경을 찾아서》(도요새,2014) 책이름


 쾌적한 환경

→ 맑고 좋은 삶터

→ 시원하며 아름다운 터

→ 좋은 터전

→ 아름다운 마을

 …



  한자말 ‘쾌적(快適)하다’는 “상쾌하고 즐겁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한국말사전을 뒤적여 ‘상쾌(爽快)하다’를 찾아보면, “느낌이 시원하고 산뜻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쾌적하다’는 “시원하고 산뜻하며 즐겁다”를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환경(環境)’은 한자말입니다. 이 낱말은 “(1) 생물에게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 (2) 생활하는 주위의 상태”를 뜻한다고 합니다. “교육 환경”이나 “환경을 보호하다”나 “환경 파괴”나 “환경 미화” 같은 자리에서 씁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시원하고 산뜻하며 즐겁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아마 누구라도 ‘좋다’고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좋으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환경을 보호”한다고 할 적에는 무엇을 지킨다는 뜻일까요? 틀림없이 “숲을 지킨다”고 하겠지요. “환경 파괴”란 바로 “숲을 무너뜨린다”는 소리입니다. “환경 미화”일 때에는 무엇을 뜻할까요? 이때에는 “마을을 깨끗하게 한다”거나 “삶터를 깨끗하게 치운다”는 뜻이에요.


 쾌적한 공기

→ 산뜻한 바람

→ 상큼한 바람

→ 시원하고 즐거운 바람

 바닷물은 한 길 깊이까지 들여다보일 정도로 깨끗하고 쾌적하였다

→ 바닷물은 한 길 깊이까지 들여다보일 만큼 깨끗하고 산뜻했다

→ 바닷물은 한 길 깊이까지 들여다보일 만큼 깨끗하고 좋았다


  “쾌적한 환경”이란 “좋은 터전”을 이야기합니다. “아름다운 마을”이나 “푸른 숲”을 가리킵니다. 한자말을 빌어 그냥 “快適한 環境”이라 적을 수 있지만, 마을과 숲과 보금자리만 아름답거나 깨끗하거나 즐겁게 가꿀 뿐 아니라, 삶과 넋과 말을 아름답거나 깨끗하거나 즐겁게 가꾸려 한다면, 이제는 한결 깊고 넓게 살필 수 있기를 바라요. 책이름으로 삼을 말이라면, 《쾌적한 환경을 찾아서》보다는 《아름다운 숲을 찾아서》나 《푸른 마을을 찾아서》처럼 붙일 때에 더없이 즐거우면서 산뜻하게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4347.8.16.흙.ㅎㄲㅅㄱ



 쾌적(快適)하다 : 기분이 상쾌하고 즐겁다

   - 쾌적한 공기 /

     바닷물은 한 길 깊이까지 들여다보일 정도로 깨끗하고 쾌적하였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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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660) 가족 1


예전엔 옆집 굴뚝에 연기가 안 오르면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보리 한 됫박이나마 나누어 먹던 게 사람답게 살던 우리의 모습이었다. 오른 방세를 마련 못해 일가족이 함께 세상을 등지는 마당에 ‘수출이 안 된다, 경제 위기다’ 하며 노동자가 목쉬게 부르짖는 최소한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골프장이나 넓힐 궁리를 한다면 그건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또 하나의 입덧》(따님,1990) 80쪽


 일가족이 함께 세상을 등지는 마당에

→ 한집이 함께 이 땅을 등지는 마당에

→ 한집안이 함께 이 땅을 등지는 마당에

→ 온 집이 함께 이 땅을 등지는 마당에

→ 온 식구가 함께 이 땅을 등지는 마당에

 …



  한국말사전에서 ‘일가족(一家族)’이라는 한자말을 찾아보니, “한집안의 가족”을 뜻한다고 나옵니다. 한국말 ‘한집안’을 찾아봅니다. “한집에서 사는 가족”이라고 풀이합니다. 다시 한자말 ‘가족(家族)’을 찾아보니,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라 풀이합니다. 여러모로 궁금합니다. ‘한집안’이라는 한국말이 ‘가족’을 뜻한다고 하는데, ‘일가족’은 “한집안의 가족”이라 풀이하면 어떻게 될까요? “가족의 가족”이 한자말 ‘일가족’인 꼴입니다.


 일가족 여섯이 한자리에 모이다

→ 한집 여섯이 한자리에 모이다

→ 한집안 여섯이 한자리에 모이다

 일가족을 이끌고 피난을 가다

→ 한집안을 이끌고 싸움통을 벗어나다

→ 한집을 이끌고 싸움통을 떠나다


  한국말사전을 더 살펴봅니다. 설마 ‘한가족(한 + 家族)’ 같은 낱말도 실었을까 궁금합니다. 이 낱말은 안 실립니다. 이제 곰곰이 생각을 기울입니다. 예부터 한국말은 ‘한집안’입니다. ‘가족’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예부터 한겨레는 ‘식구’라는 말을 곧잘 썼습니다. ‘食口’도 한자로 지은 낱말인데, 이 낱말을 한자로 적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말밑은 한자이지만, 한자말로 여기지 않고 한국말에 녹아든 낱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한식구’라는 말을 예부터 참 흔히 써요. 그런데, 한국말사전에는 ‘한식구’도 안 실립니다.


 가족을 부양하다

→ 식구를 먹여살리다

→ 한집을 먹여살리다

 열흘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 열흘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 열흘 만에 한집 품으로 돌아왔다

 모처럼 식구가 한자리에 모인 가족적 분위기

→ 모처럼 식구가 한자리에 모인 따스한 느낌

→ 모처럼 한집이 한자리에 모인 도란도란 즐거움

→ 모처럼 한집안이 한자리에 모인 사랑스러움

 이러한 작은 일은 가족적으로 해결해도 된다

→ 이러한 작은 일은 식구끼리 풀어도 된다

→ 이러한 작은 일은 우리끼리 풀어도 된다


  시골에서 할매와 할배가 으리 ‘지비(집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녁’을 가리킬 적에 곧잘 이런 말을 씁니다. ‘집’이라는 낱말로 ‘사람’을 가리킵니다. ‘식구’는 어느새 한국말로 녹아든 낱말이지만, 훨씬 먼 옛날부터 한겨레가 쓰던 낱말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한집’입니다.


  ‘집’이라는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아도, ‘집’은 “사람이 지내는 곳”을 가리킬 뿐 아니라, “집안”을 가리키고, “사람”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한국말사전은 “‘사람’을 가리키는 ‘집’”이 가시내(여자, 어머니, 아내)이기만 한 줄 잘못 풀이하지만, 예부터 ‘집’은 한집안 사람 누구나 다 가리켰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오늘날 문명사회에서나 ‘사내가 바깥에서 일자리를 얻어 돈을 벌’지, 예전 시골살이에서는 가시내도 사내도 ‘마을에 머물고 집에서 살면서 일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니, ‘집사람’이든 ‘집’이든 사내와 가시내를 따로 가르는 낱말이 아닙니다. 집에 있는 사람이기에 모두 ‘집사람’이요, 짤막하게 ‘집’이라 했으며, 시골에서는 아직까지도 ‘지비(집이)’라는 대이름씨를 씁니다.


  한국말은 ‘집·집안·한집·한집안·온 집(온집)·온 집안(온집안)’입니다. 한자말은 ‘식구·가족’입니다. 한자말 가운데 ‘식구’는 한국 한자말이요, ‘가족’은 일본 한자말입니다. 말뿌리는 이렇습니다. 4336.5.10.흙/4347.8.1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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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옆집 굴뚝에 연기가 안 오르면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보리 한 됫박이나마 나누어 먹으며 사람답게 살던 우리 모습이었다. 오른 집삯을 마련 못해 한집이 함께 이 땅을 등지는 마당에 ‘수출이 안 된다, 경제 위기다’ 하며 노동자가 목 쉬게 부르짖는 아주 마땅한 외침을 못 들은 척하고 골프장이나 넓힐 생각을 한다면 이는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나누어 먹던 게”는 “나누어 먹던”으로 다듬고, “우리의 모습”은 “우리 모습”으로 다듬으며, ‘방세(房貰)’는 ‘방삯’이나 ‘집삯’으로 다듬습니다. “세상(世上)을 등지는”은 “이 땅을 등지는”이나 “스스로 숨을 끊는”으로 손보고, “최소한(最小限)의 정당(正當)한 요구(要求)를 묵살(默殺)하고”는 “아주 마땅한 외침을 못 들은 척하고”나 “아주 마땅한 소리에 귀를 닫고”나 “아주 마땅한 얘기에 등을 돌리고”로 손봅니다. ‘궁리(窮理)’는 ‘생각’으로 손질하고, ‘그건’은 ‘이는’으로 손질합니다.



 일가족(一家族) : 한집안의 가족. 또는 온 가족

   - 일가족 여섯이 한자리에 모이다 / 일가족을 이끌고 피난을 가다

 가족(家族) :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 가족을 부양하다 / 잃어버렸던 아이가 열흘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

     모처럼 식구가 한자리에 모인 가족적 분위기 /

     이러한 작은 일은 가족적으로 해결해도 된다

 한집안

  (1) 한집에서 사는 가족

  (2) 일가 친척

 한집

  (1) 같은 집

  (2) = 한집안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21) 가족 2


내일은 가족 신문 만드는 날 / 어떤 사진 가져갈까 / 사진첩 들춰 봅니다

《김미혜-아빠를 딱 하루만》(창비,2008) 40쪽


 가족 신문

→ 우리 집 신문



  ‘가족’은 한국말이 아닐 뿐더러, 한국 한자말이 아닙니다만,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이 낱말을 무척 자주 씁니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어느 회사에서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이름을 널리 앞세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말마디에서는 ‘-의’를 붙인 ‘하나의’도 얄궂습니다.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또 다른 식구”나 “또 다른 이웃”이나 “또 다른 한집”이나 “또 다른 한집안”처럼 고쳐써야 올발라요.


  학교에서는 “한집안 이야기를 담은 신문”을 만들도록 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생각에 젖습니다. 학교에서 이런 신문에 붙이는 이름이 ‘가족 신문’이라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한국말하고 영 동떨어집니다. 곧, 한국말을 집이나 학교에서 제대로 못 배운 아이들이 회사에 들어가거나 사회에서 일자리를 얻으면서, “또 하나의 가족” 과 같은 엉성한 말을 다시금 퍼뜨리는 노릇을 합니다.


  집에서는 “우리 집 신문”을 만듭니다. 마을에서는 “우리 마을 신문”을 만듭니다. 학교에서는 “우리 학교 신문”을 만듭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신문”을 만듭니다. 4347.8.1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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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은 우리 집 신문 만드는 날 / 어떤 사진 가져갈까 / 사진첩 들춰 봅니다


‘내일(來日)’은 그대로 둘 만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이튿날’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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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55) -의 : 천사의 밥


다음은 천사의 밥을 챙길 차례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무엇을 먹을까요? 장미색 구름? 밤하늘의 별? 꽃에 있는 꿀?

《나카가와 치히로/홍성민 옮김-천사는 어떻게 키워요?》(동쪽나라,2005) 20쪽


 천사의 밥을 챙길 차례

→ 천사가 먹을 밥을 챙길 때

→ 천사한테 밥을 챙길 때

→ 천사 밥을 챙길 때

→ 천사한테 밥을 줄 때

 …



  천사도 밥을 먹는다면 “천사가 먹을 밥”이나 “천사 밥”을 챙기면 됩니다. 개한테 주는 밥을 ‘개밥’이라 하니, 천사가 먹을 밥도 ‘천사밥’처럼 쓸 수 있어요.


  보기글을 살피면 “꽃에 있는 꿀”이라 말합니다. “꽃의 꿀”처럼 ‘-의’를 넣지 않아요. 그런데 “밤하늘의 별”처럼 적고 마는군요. “밤하늘에 뜬 별”이나 “밤하늘 별”로 바로잡아야겠습니다. 보기글을 더 살피면 “장미색 구름”이라고만 적었어요. 이 대목에도 토씨 ‘-의’를 안 붙였습니다. 글흐름을 잘 살피고, 글빛을 찬찬히 헤아리기를 바랍니다. 4347.8.17.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다음은 천사가 먹을 밥을 챙길 때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무엇을 먹을까요? 장미빛 구름? 밤하늘 별? 꽃에 있는 꿀?


“챙길 차례(次例)”는 그대로 둘 만하지만, “챙길 때”로 손볼 수 있습니다. ‘장미색(-色)’은 ‘장미빛’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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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가야산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63
배창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시를 말하는 시 75



시골에 없는 시골 아이

― 겨울 가야산

 배창환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06.11.20.



  아이들이 마당에서 물총놀이를 하기 좋도록 바깥에서 고무통에 물을 받으려고 하다가 개구리를 한 마리 만납니다. 너는 어떤 개구리이니? 너는 처음 보는 개구리로구나. 개구리는 어기적어기적 바깥수도 담을 타고 풀숲으로 숨습니다. 귀여운 녀석이네 하고 한참 쳐다봅니다.


  풀밭에서는 풀밭에서 나고 자라는 온갖 이웃을 만납니다. 이를테면, 풀벌레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벌과 나비가 있습니다. 그리고, 개구리와 뱀이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풀밭에 작은 새가 둥지를 틀어 살기도 했다지요. 오늘날에는 풀밭에 섣불리 둥지를 틀어서 사는 새가 매우 드뭅니다. 새들도 알리라 느껴요. 사람들이 툭하면 농약을 뿌려대고, 기계를 돌려 풀을 깎으며, 조그마한 터라도 밭으로 삼으려 하니까요.



.. 그 골짜기, 오늘 비까번쩍 자가용들 줄지어 들어와, 화염방사기 같은 걸로 개가죽 그슬어놓고 소주 먹는 저 사람들은, 그 옛날 뉘집 뉘집 자손들일까 ..  (그 골짜기)



  지구별에 있는 여러 이웃은 저마다 삶이 있습니다. 서로 알맞게 어우러집니다. 누군가를 해코지하려는 이웃은 없습니다. 다만, 벌레와 짐승은 서로 먹고 먹히는 사슬처럼 이어집니다. 사람도 무엇인가 자꾸 먹고 누면서 살아야 하는 얼거리입니다. 우리들이 밥을 안 먹어도 되고, 똥오줌을 안 누어도 된다면, 지구별을 벗어나 드넓은 우주로 거침없이 돌아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밥을 먹어야 하며, 똥오줌을 누어야 한다면 지구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우주에서 밥을 어떻게 찾겠어요. 우주에서 똥오줌을 어떻게 누겠어요. 우리는 이 작은 지구별에서 살아갈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작은 지구별에서 태어나 살면서 꿈을 꾸고 사랑을 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누구나 알 텐데, 꿈을 꾸는 동안에는 배고프지 않으며 똥오줌이 마렵지 않습니다. 사랑을 나누는 동안에도 배고프지 않으며 똥오줌이 마렵지 않습니다. 꿈을 꾸지 않거나 사랑을 나누지 않을 때에는, 배고픔과 똥오줌이 잇달아 찾아옵니다. 꿈을 꾸거나 사랑을 나눌 적에는 마음 깊이 끝없는 힘과 슬기가 샘솟고, 꿈을 안 꾸거나 사랑을 안 나누면 늘 쳇바퀴처럼 빙글빙글 똑같은 일을 되풀이합니다.



.. 그 겨울에 눈은 함작, 내렸다 / 도심 빌딩 그늘에 숨은 중앙초등학교 뒤편 담장, 새로 선 포장마차 한 대 / 이름도 좋구나, 이판사판 / 포장 불빛으로 모여든 하루살이 인생들은 자기 일처럼 신이 났다 ..  (이판사판의 추억)



  학교에 가려고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예방주사를 맞으려고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학원에 다니다가 대학교에 들어가려고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 돈을 잘 벌도록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어느 만큼 나이를 먹으면 짝꿍을 찾아 예식장에서 시집장가를 가면서 돈을 거두어들여야 하도록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짝꿍을 찾아 시집장가를 간 뒤 어느 만큼 지나면 아이를 낳도록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자가용을 장만하거나 아파트를 마련하도록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왜 태어났을까요. 우리들은 왜 태어났을까요. 아이들은 왜 살아갈까요. 어른들은 왜 살아가나요.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이 나라에는 끔찍한 입시지옥이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부터 이 나라를 꽁꽁 휘감는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학교가 아름다운 배움터 구실을 안 하고 입시지옥 구실을 하는 이 나라 얼거리를 차근차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틀림없이 경제개발에 현대문명이 환하게 빛난다지만, 따돌림받거나 괴로운 이웃이 대단히 많습니다. 주머니와 은행계좌에 돈이 엄청나게 쌓이지만, 이 돈을 이웃과 나누려 하지 않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 자루에 든 좁쌀이 와르르 쏟아지는 것처럼 / 어둠의 현이 심금을 울리는 장중한 악음처럼 /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저 함성처럼 ..  (촛불시위)



  살아가는 뜻을 생각하지 않을 때에는 죽음이 찾아옵니다. 살아가는 뜻을 생각할 때에는 사랑이 싹을 틔워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살아가는 뜻을 생각하지 않기에 ‘죽을 걱정’에 사로잡혀 자꾸 돈을 더 움켜쥐기만 합니다. 살아가는 뜻을 생각하기에 ‘사랑을 나누는 기쁨’에 웃음꽃을 피우고 춤노래로 하루하루 즐겁습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어른한테 삶이란 무엇이고, 아이한테 삶이란 무엇일까요. 지구별에서 저마다 다르게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한테 삶이란 어떤 꿈이나 사랑일까요.



.. 면 소재지서 10리, 20리 산골에 숨은 / 달창 선학 용암 아이들은 면 소재지 중학교에 오고 / 면 소재지 수촌리 석지 원정 아이들이나 / 읍내 쪽으로 붙은 봉계 소바우 대바우 와룡 아이들은 / 읍내 중학교 가고 // 읍내 성산 경산 예산리 아이들은 / 대구 나가고 ..  (썰물)



  배창환 님 시집 《겨울 가야산》(실천문학사,2006)을 읽습니다. 배창환 님은 여러모로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저리구나 싶습니다. 시집 첫머리에 술 마시는 이야기가 잔뜩 나옵니다. 술집을 돌면서 아픔과 슬픔을 오래도록 삭히시는구나 싶습니다.


  술도 얼마든지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동안 술을 마실 일은 없겠지요? 시골마을 작은 학교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술이 떠오르지는 않겠지요?


  아이들은 술을 안 마십니다. 아이들은 괴롭고 고단해도 술을 안 마십니다. 참으로 대견하고 씩씩합니다. 어른들은 괴롭고 고단하면 술을 마십니다. 왜 그럴까요? 어른들은 왜 이렇게 힘이 없고 슬기가 없을까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해 보셔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어른 스스로 꿈을 새롭게 키우고 사랑을 새삼스레 그려요. 우리가 나아갈 곳은 술집이 아닙니다. 우리가 나아갈 곳은 새로운 삶입니다.



.. 흙을 덥썩 안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 흙이 길러낸 아들딸들을 가르치고 있다 // 흙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라고 / 흙에서 멀리 떠나는 길만이 희망이라고 // 흙의 종아리에 매질하고 있다 / 흙의 가슴에 꽝꽝 못질하고 있다 ..  (흙)



  사랑이 자라서 노래가 됩니다. 꿈이 자라서 삶이 됩니다. 사랑을 가꾸어 노래를 부릅니다. 꿈을 키워서 삶을 누립니다.


  지난날에는 시골에서 사랑을 돌본 사람들 누구나 언제 어디에서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시인이나 소설가는 없어도 시골사람 누구나 시인이 되어 노래를 불렀고, 시골사람 모두 소설가가 되어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지난날에는 시골에서 사랑을 가꾼 사람들 누구나 언제 어디에서나 춤을 추고 놀이를 즐겼습니다. 절기마다 철마다 때마다 크고작은 잔치를 마련하던 한겨레입니다. 이웃과 이웃은 서로 돕고 아끼는 사랑이요 너나들이였습니다. 스포츠나 영화나 섹스 따위가 없어도 누구나 즐겁게 어깨동무를 하고 두레를 했습니다.



.. ―선생님, 그땐 다들 힘들었어요 / 아이가 다섯 살이나 된 아이가 말했다 / ―오냐오냐, 내 다 안다 ..  (내 생애의 별들)



  오늘날 시골에 ‘시골 아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시골에 ‘시골 어른’이 없습니다. 노래하고 노는 시골 아이가 오늘날 시골에 없습니다. 춤추고 일하는 시골 어른이 오늘날 시골에 없습니다. 오늘날 시골에는 농약과 비닐과 기계와 비료와 새마을운동만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도시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참다운 ‘도시 아이’나 아름다운 ‘도시 어른’이 있을까요? 4347.8.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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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안 보여주는 영화 보기



  곰곰이 헤아려 본다. 한국과 일본, 또는 한국과 베트남, 또는 한국과 러시아, 또는 한국과 네덜란드, 이렇게 오가지 못하거나 오가지 않던 때에는 서로 어떤 마음이 되어 사귈 수 있었을까.


  한국에 있는 극장에 걸리지 않았고, 한국에 디브이디도 나오지 않은 영화 〈아킬레스와 거북이〉를 고맙게 얻어서 보다가 곰곰이 생각한다. 엉터리 그림을 그려서 파는 어른이 있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꿈을 키우는 아이가 있다. 예술이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일까. 돈이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일까. 삶을 이루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에 있는 극장에서는 어떤 영화가 벌써 천만 사람이 넘게 보았다고 왁자지껄한 듯하다. 참말 왁자지껄한 듯하다. 아마 한국사람은 으레 그 영화 이야기를 앞으로도 하리라. 한국에 있는 극장에 걸린 적이 없고, 디브이디도 없는 영화를 어느 누가 찾아서 볼까.


  영화를 본다. 책을 읽는다. 아이 눈망울을 바라본다. 아이가 자면서 내는 가느다란 숨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하루를 누리면서 살아가는가. 우리는 저마다 누구하고 이웃이 되어 무엇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가. 나한테 찾아오는 일은 나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4347.8.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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