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60] 미리끊기



  ‘미리끊기’라는 말은 내가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안 짓지도 않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미리끊다’라는 말을 아주 익숙하게 들었습니다. 먼저, 버스표를 미리 끊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다음으로 기차표를 미리 끊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 다음으로 극장표를 미리 끊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큰 놀이공원이라든지, 어디에 들어가는 표도 미리 끊어야 한다는 말을 익히 들었습니다. 다만, 둘레 어른들이 “미리 끊어야겠어” 하고 말하면서도 좀처럼 ‘미리끊기’ 같은 낱말은 지어서 쓰지 않았습니다. 나는 딱히 한국말을 아주 사랑하는 티를 내려는 뜻이 아니고, 그냥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다들 표를 미리 끊는다고 말하니까, 내 입에서 저절로’ “미리끊기 했니?”나 “미리끊기 하셨어요?”와 같은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둘레에서 다 잘 알아들었어요. “그래, 미리끊기를 해 두었지” 하는 대꾸를 들었습니다. 때와 곳에 따라서는 ‘미리끊기’뿐 아니라 ‘먼저끊기’를 할 수 있고, ‘나중끊기’를 할 수 있습니다. ‘먼저끊기’란 남보다 먼저 표를 끊을 수 있다는 뜻이요, ‘나중끊기’는 결재는 나중에 하되 자리만 먼저 잡는다는 뜻입니다. ‘미리끊기’는 어떤 날을 앞두고 일찌감치 표를 끊는다는 뜻입니다. 굳이 ‘선불예약’이나 ‘후불예약’처럼 어렵게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4347.8.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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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59] 한가위



  나는 어릴 적부터 ‘한가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 입으로도 ‘한가위’라는 말을 읊었습니다. 그러나, 적잖은 둘레 어른들은 ‘추석(秋夕)’이나 ‘중추절(仲秋節)’ 같은 한자말을 즐겨썼습니다. 올 한가위를 앞두고 기차표를 끊어야겠구나 하고 느껴 ‘한가위 기차표’로 인터넷에서 살피는데, 이렇게 살펴서는 아무것도 못 찾습니다. 왜 이런가 하고 한참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아하 하고 깨닫습니다. ‘추석 기차표’로 말을 고쳐서 살피니, 비로소 기차표를 어떻게 미리 끊을 수 있는지 나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엮은 《표준국어대사전》을 살펴봅니다. 한국말 ‘가위·한가위·가윗날’을 살피니, “= 추석”으로 풀이합니다. 한국말을 다루는 사전에서 뚱딴지처럼 한자말 ‘추석’만 풀이말을 달고, ‘가위·한가위·가윗날’은 풀이말을 안 달아요. 학자와 정부부터 한국말을 알뜰히 여기지 않습니다. 이러니, 공무원도 한국말을 살뜰히 돌보지 않겠지요. 이러니, 작가와 기자도 한국말을 따스히 보듬지 않겠지요. 하기는, 어느 때부터인가 한가위를 앞두고도 ‘한가위’라 하기보다는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이라 말하는 사람도 제법 늘었습니다. 서양 종교를 믿건 안 믿건 대수롭지 않습니다만, 서양에서 ‘가을걷이를 기쁘게 누리며 고마워 하는 날’이란, 한겨레한테는 ‘한가위’입니다. 4347.8.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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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표 끊기



  한가위를 앞두고 기차표를 끊어야 한다고는 생각했는데, 올 한가위를 앞두고 나한테 ‘한가위 기차표 미리 끊으시오’ 하는 알림편지가 안 왔다. 왔는데 설마 광고편지라 여겨 지웠을까? 왜 알림편지가 안 올까 하고 생각하다가 어제 이래저래 알아보니, 한가위 기차표는 벌써 이레 앞서 ‘미리끊기’가 끝났다.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으면서도, 언제나처럼 느긋하게 철도청 누리집에 들어가 본다. 시골에서 살며 기차표를 알아보면, 한가위이든 설이든 으레 자리가 남는다. 서울에서 시골로 가는 기차표는 거의 다 팔리지만, 시골에서 서울 쪽으로 가는 기차표는 널널하다. 우리 식구는 서울로 가지 않으나, 전남 순천역에서 충청도 조치원역에서 내려 음성역으로 갈아타는데, 전라도에서 충청도로 갔다가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돌아오는 기차는 표를 사기 어렵지 않다. 이태 앞서는 조치원에서 음성으로 들어가는 기차표하고 음성에서 조치원으로 나오는 기차표가 하나도 없었지만, 지난해에는 용케 두 자리씩 고맙게 얻었고, 올해에는 마음에 드는 자리를 아무 데나 골라서 잡을 수 있다.


  이제 보름 뒤면 두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기차마실을 갈 수 있겠네. 4347.8.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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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순이 38. 코코 자는 산들보라 (2014.8.12.)



  작은아이가 타는 수레는 큰아이가 타던 수레이다. 큰아이가 처음 이 수레에 타던 때에 아주 즐거워 했고, 낮잠을 웬만하면 안 자려 하던 큰아이는 수레에 타기만 하면 1분만에 잠들곤 했다. 큰아이가 낮잠을 자도록 하려고 언제나 자전거마실을 다녔고, 큰아이는 들바람과 멧바람을 쐬면서 수레에서 낮잠을 잤다. 작은아이도 들바람을 쐬면서 수레에서 낮잠을 잔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어머니 품이요 아버지 품과 같은 수레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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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57. 우리 집 멋지구나 2014.8.16.



  마당에서 물총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생각한다. 마당이 있는 우리 시골집은 얼마나 멋진가. 아이들은 즐겁게 물총에 물을 받아서 깔깔거리며 놀 수 있다. 바람이 싱그럽게 불고, 햇볕은 따스하게 내리쬔다. 나무그늘을 누린다. 풀내음을 맡는다. 멧새가 찾아와서 지저귄다. 풀개구리가 드문드문 울고, 풀벌레가 곧잘 노래한다. 온갖 소리가 흐른다. 이렇게도 놀고 저렇게도 놀면서, 아이들은 하루를 온통 ‘내 것’으로 삼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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