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66] 집짓기

 집을 짓는 일이 ‘집짓기’가 아니게 된 지 하루하루 흐릅니다. 오늘날에는 집짓기를 찾아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이제는 어디에서나 ‘건축’을 하고 ‘건설’을 하며 ‘리빌딩’을 합니다. 집이 집이 아니며, 집을 짓는 삶이 집을 짓는 삶이 아닙니다. 집을 짓지 않기 때문에, 이 땅에서 오래오래 이루어지던 집삶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든 저곳에서든 볼 만하도록 짓는 집조차 아닙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달리 아름다운 삶을 일구는 집은 처음부터 없습니다. 쓰레기가 될 집만 짓는 요즈음 흐름입니다. 집 한 채를 지어 즈믄 해를 버텨야 하지는 않으나, 백 해 뒤에 헐든 이백 해 뒤에 허물든, 집을 허물며 나오는 조각조각으로 새 집을 지을 수 없다면, 이 모든 건축과 건설과 리빌딩은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 될 뿐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백 해 뒤까지 헤아리며 짓는 집이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집을 얻어 살아가는 우리들부터 집을 짓지 않고 돈을 들여 부동산을 장만합니다. 집 아닌 부동산이고, 보금자리 아닌 재산이 되고 맙니다. 한 땀씩 품을 들여 가꾸는 살림살이요, 하나씩 마음을 들여 다스리는 삶터입니다. 학문에 앞서 삶이어야 하고, 돈벌이보다 삶을 살펴야 합니다. 건축학을 배우는 젊은 넋이 아닌 보금자리에 깃들 따순 사람들 고운 사랑을 얼싸안아야 할 푸른 넋이어야 합니다. (4344.8.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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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과 글쓰기 2


 바람 소리에 모든 숲 소리가 잦아든다. 물결치듯 바람이 불고, 소나기 몰아치듯 바람이 분다. 이 바람은 태풍 끝자락이 일으키는 바람일까. 모기장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땀이 식는다. 등줄기가 시원하다. 새 보금자리 알아본다며 엿새 동안 시외버스와 자가용 에어컨 바람에 몸을 맡겼더니 몸이 아주 무너져내렸다. 나는 시골집에서 받아들이는 이 바람이 좋다. 기름을 태워 돌리는 에어컨 바람이 아닌, 멧자락을 타고 부는 이 바람이 좋다. 비가 오더라도 바람을 안은 비가 좋고, 더위를 가시며 잎사귀 나부끼는 소리를 머금는 바람이 좋다. 바람은 눈에 안 보인다고 하지만, 눈으로 보지 않는 사람한테는 먼 옛날부터 살결로 느끼며 마음으로 마주하던 벗님이다. 온누리를 눈으로만 보거나 느낄 수 없다. 코로 맡으며 느낀다. 귀로 들으며 느낀다. 혀로 맛보며 느낀다. 살로 부비며 느낀다. 마음으로 헤아리며 느낀다. 바람은 잘 보인다. 바람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고 느낀다. 찬바람하고도 살고, 더운바람하고도 산다. 산들바람도 맞고, 회오리바람도 맞는다. (4344.8.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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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의 밤 - 푸른문고 14 푸른문고 34
미야자와 겐지 지음, 김유영 옮김, 김주형 그림 / 푸른나무 / 1997년 5월
평점 :
절판




 아픈 눈길로 바라보며 껴안는 동무
 [어린이책 읽는 삶 4]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푸른나무,1997)



- 책이름 : 은하철도의 밤
- 글 : 미야자와 겐지
- 옮긴이 : 김유영
- 그림 : 김주형
- 펴낸곳 : 푸른나무 (1997.5.1.)
- 책값 : 판 끊어짐



 (1) 가난한 삶


 아이들한테 만화영화를 보여주면서 한국말로 나오는 일이 영 달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밖 만화영화에 한국말을 넣을 때 옳거나 바르거나 알맞거나 살갑거나 곱거나 깨끗하다 싶은 한국말로 가다듬거나 추스르는 일은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네 살 아이가 한국말을 익히자면, 함께 만화영화를 볼 때에 한국말로 들어야 더 낫다 여길 만합니다. 그렇지만, 네 살 아이일 때부터 엉터리 한국말을 자꾸 들어야 한다면, 제아무리 아름답다 싶은 만화영화라 할지라도, 이를테면 〈이웃집 토토로〉 같은 만화영화라 하더라도 한국말로는 들려주기 싫습니다. 그냥 일본말로 듣고 느낌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읽도록 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아무나 만나지는 않습니다. 온갖 사람을 스친다 하더라도 아무하고나 사귀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는 우리 아이를 바라보며 귀엽다며 ‘엉터리 말투’로 이야기를 걸곤 합니다. 이럴 때 아버지는 곁에서 아이한테 사잇말을 건넵니다. ‘엉터리 말투’를 걸러서 아이한테 들려줍니다.

 시골집으로 찾아온 택배회사 일꾼이 아이보고 ‘바이바이’라 하건 ‘안녕’이라 하건, 아버지는 아이 곁에 서서 “‘잘 가셔요’라 해야지.” 하고 말합니다. 어른들은 으레 아버지가 이렇게 이르는 말마디가 ‘어른한테 높임말을 쓰도록 하는’ 줄 여기지만, 높임말에 앞서 옳게 말을 해야 하기에 옳게 말하도록 이끌 뿐입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하는 인사라면 “살펴 가셔요.”라 말하도록 합니다.

 우리 두 아이는 아무런 보육시설을 다니지 않습니다. 아무런 보육시설을 다니지 않으니 나라에서 두 아이한테 ‘보육시설 미이용 가구 지원’ 정책에 따라 다달이 십만 원 남짓 줍니다. 두 아이가 보육시설을 다닌다면, 두 아이는 보육시설에 들여야 하는 돈을 몽땅 받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두 아이를 보육시설에 넣는다 할 때에는 돈이 한푼조차 안 들 뿐 아니라, 집에서 아이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힘들이지 않아도 돼요.

 다만, 두 아이를 보육시설에 넣는다면, 두 아이가 날마다 새롭게 크는 모습을 마주할 수 없습니다. 두 아이가 어떤 말을 들으면서 배우는지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두 아이가 어떤 모습과 삶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모습과 삶에 길들거나 익숙해지는가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보육시설에 넣을 두 아이는 어버이가 자가용을 몰고 데려다주고 데리러와야 합니다.


.. 죠바니는 조금 더 먹고 싶었지만 사양했습니다. 언젠가 제과점 유리창에서 과자를 바라보며 침을 삼키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자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 ‘빙산이 흐르는 북쪽 바다에서 자그마한 배를 타고서, 바람이랑 얼어붙는 바다랑 혹독한 추위랑 누군가 열심히 싸우고 있었구나.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 사람들이 정말로 불쌍하구나.’ ..  (106, 127쪽)


 자가용 없는 우리 살림에 읍내나 면내까지 아이들을 데려다주었다가 데리러올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러고 싶지 않습니다. 보육시설이라는 데에서는 아이들 오줌가리기를 하지 않으며, 아이들이 마음껏 놀고 뛰도록 하기보다는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니까 달갑지 않습니다. 이 어린 아이들이 어린 나날부터 영어에 익숙하도록 내몹니다. 이 어린 아이들이 시골 아이라 하든 도시 아이라 하든 도시 자본주의 물질문명에 젖어들도록 이끕니다. 시골 어린이집이라서 논밭에서 일한다거나 멧골짜기를 탄다든지 하지 않아요. 숲을 쏘다닌다든지 나무랑 사귀지 않습니다. 목돈 들여 지은 시설에 갖춘 플라스틱이나 쇠붙이 놀잇감을 갖고 놀 뿐입니다. 여느 보육시설에 아이를 넣는다면, 이때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아이들은 호미이든 낫이든 쟁기이든 손에 쥘 일이 무척 드뭅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치고 흙하고 가까워지기란 참으로 힘듭니다.


.. 죠바니는 표지판과 지도를 비교해 보고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죠바니는 왠지 모르게 옆에 있는 새 사냥꾼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백로를 잡아 보자기로 둘둘 말아 가지고 와서 기뻐하다가, 이까짓 표 한 장에 깜짝 놀라 곁눈질로 보며 나를 부러워 하다니. 아마 저 사람은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이런 표조차 구할 수 없었던 거야.’ 죠바니는 돌아오시지 않는 아버지와, 집에 누워 계신 어머니,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누나와 자기 자신을 생각하자, 그 새 사냥꾼의 처지가 마치 자기 일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죠바니는 처음 보는 그 새 사냥꾼을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표든, 그 무엇이든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118쪽)


 어버이로서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가 굳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애써 안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난하든 가난하지 않든 늘 세 가지 마음밭을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참답게 살아야 합니다. 둘째,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셋째,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세 가지 마음밭을 일구면서 가난하든 가멸차든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 세 가지 마음밭을 일구지 않는다면, 가난하게 살아도 슬프고 가멸차게 살아도 딱하다고 느껴요.

 새옷을 사입지 못하면 어때요. 좋은 이웃이나 동무한테서 헌옷을 얻어 입히면 즐겁습니다. 바깥밥을 사먹이지 못하면 어때요.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읍내 장마당에 다녀오며 집에서 차리는 밥으로 함께 배부르면 넉넉합니다.

 자가용을 타고 멀리멀리 마실을 못 다니면 어때요.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이 손을 잡으며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멧바람을 시원하게 쐬면 됩니다. 멧길을 오르내리다가 멧풀을 조금 뜯어 밥거리를 삼으면 기쁩니다.

 가난하대서 풀을 뜯어먹지 않습니다. 가멸차기에 풀을 안 뜯어먹지 않습니다. 아름답게 살고 싶으니까 멧자락 조그마한 집을 찾아들어 네 식구가 아옹다옹거립니다. 참답게 살고 싶기에 좋은 돈벌이라 하는 일자리는 등을 지면서 복닥거립니다. 착하게 살고 싶어 자전거를 아끼며 사랑합니다.


.. 그러다가 이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행복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앞으로 헤쳐 나갔습니다 … 결국 나는 이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단단히 각오를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지요 ..  (126쪽)


 나는 자전거 한 대만 있으면 좋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고픈 데에는 다 갈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기 힘들다면 버스를 얻어탑니다. 도시에서는 전철도 탑니다. 택시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되도록 버스도 전철도 택시도 타고 싶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네 식구가 나란히 걷고 싶습니다. 네 살 딸아이하고 둘이 돌아다닐 때에는 자전거에 수레를 붙여 함께 다니면 됩니다. 어찌 보면 우리 살림이 가난하기에 이렇게 살아간달 수 있는데, 앞으로 어찌저찌 우리 살림이 가멸차게 되는 날을 맞이하더라도 오늘과 같은 삶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에어컨을 쐬면 몸이 아프지만, 멧바람을 쐬면 몸이 즐겁습니다. 햇볕을 쬘 때에 몸에서 기운이 납니다. 흙을 사랑하는 시골자락에서 흙 밑으로 흐르는 물을 길어올려 마시거나 몸을 씻을 때에 개운합니다. 구름을 이끄는 바람이 고맙습니다. 빗물과 나비와 개구리와 들풀이 반갑습니다.


 (2) 가난한 문학


 미야자와 겐지 님이 쓴 《은하철도의 밤》(푸른나무,1997)을 읽습니다. ‘푸른나무’에서 1997년에 나온 책은 어느새 판이 끊어집니다. 어린이가 함께 읽도록 조금 굵직한 글씨에다가 그림을 곁들인 예쁘장한 《은하철도의 밤》은 헌책방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참 아쉽지만, 이러한 모습이 우리 나라 모습입니다. 숨길 수 없는 모습입니다. 감출 수 없는 삶입니다.


.. “우리들은 이제 그 어떤 슬픔도 없을 거야.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면서 바로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거야.” … “하지만 우리들은 여기에서 내리지 않으면 안 돼. 여기는 천상으로 가는 곳이니까.” “천상에 가지 않아도 되잖아? 우리들은 이 땅에서 천상보다 더 좋은 곳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 “하지만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하느님이 계시잖아?” “그런 하느님은 가짜 신이야.” 두 아이가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고 청년이 타이르듯 가로막았습니다 ..  (123, 157∼158쪽)


 《은하철도의 밤》을 천천히 읽으며 천천히 새깁니다. 내가 내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깊은 밤 까만 하늘 밝은 별 이야기를 글로 쓴다면 이렇게 《은하철도의 밤》을 쓸 수 있을까 하고 곱씹습니다. 미야자와 겐지 님이 사람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일까 헤아립니다. 어떤 목소리로 글을 썼고, 어떤 숨결로 책을 냈으며, 어떤 눈빛으로 이야기를 얻었을까요.

 미야자와 겐지 님이 커다란 도시에서 살았대도 《은하철도의 밤》을 일굴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이제 거의 모든 일본사람이나 한국사람은 도시에서 살아가는데, 더군다나 커다란 도시에서 살아가는데, 오늘날 《은하철도의 밤》은 얼마나 읽히고 어떻게 읽힐까 궁금합니다.

 한낱 독서감상문 숙제를 써야 하기에 읽히는 책이 되나요. 손꼽히는 고전 가운데 하나라 일컬으니까 읽는 책이 되나요.

 책이면 책이지, 독서감상문 숙제는 없습니다. 책이면 책일 뿐, 고전이란 없습니다.

 훌륭한 사람도 없고 거룩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 어머니는 그예 내 어머니입니다. 내 아버지는 그저 내 아버지예요. 어머니는 어머니로 사랑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로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로 살포시 껴안고, 옆지기는 옆지기로 따스히 어깨동무합니다. 함께 살아갈 기쁜 길동무입니다. 그러니까, 삶동무입니다.


.. “그렇지만 참다운 행복은 도대체 뭘까?” … “참다운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제 저런 커다란 어둠 속도 무섭지 않아. 어디까지라도 함께 나아가는 거야.” … 두 별님은 떨어지면서도 단단히 서로의 무릎을 꽉 잡았습니다. 이 쌍둥이 별님은 어디까지라도 함께 떨어지려고 했던 것입니다 ..  (162∼163, 185쪽)


 두 아이한테 아버지가 되어 살아가는 오늘을 돌이키며 다시금 생각합니다. 그래요. 아버지는 아이한테 얼토당토않은 한국말이 흐르는 만화영화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요 며칠 몸이 너무 아파서 아이한테 그림책 한 번 읽어 주지 못하며 지나가는데, 《은하철도의 밤》 같은 작품을 천천히 조곤조곤 읽히면서 한국말을 한국말다이 느끼도록 하고 싶습니다. 잘 옮긴 대목은 그대로 읽고, 아쉽다 싶은 대목은 죽죽 금을 긋고는 새말을 적으면서 천천히 조곤조곤 읽히고 싶어요.

 문학이란 말꽃이거든요. 문학이란 삶말이거든요.

 살아가는 말이 꽃처럼 피면서 문학이 됩니다. 살아숨쉬는 말이 열매를 맺으며 문학으로 빛납니다.

 미야자와 겐지 님 문학은 온누리 가난한 어버이들하고 함께 살아가는 가난한 아이들한테 맑은 빛과 밝은 꿈을 나누고 싶어 《은하철도의 밤》 같은 이야기열매를 빚지 않았겠느냐 생각합니다. 두 아이 아버지는 두 아이한테 빛나는 이야기열매를 사랑스레 들려주면서 내 삶과 아이 삶을 가꾸어야 즐겁고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 “저 거친 세상에서 단 하나 있는 참다운 표를 결코 잃어서는 안 된다 … 자, 돌아가서 쉬어라. 너는 꿈 속에서 결심한 대로 곧장 나아가는 게 좋겠다.” ..  (169쪽)


 8월에 우는 밤녘 풀벌레 소리를 듣습니다. 밤녘에는 자동차 소리가 잦아들기에 풀벌레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립니다. 때때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집 앞 두릅나무 잎사귀를 흔듭니다.

 아, 이 소리들과 함께 우리 살붙이하고 고즈넉하게 살아가는 나날이 가없이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도 모르게 몸과 마음으로 스며드는 멧새 소리와 개구리 소리와 풀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와 도랑물 소리와 벼락 소리와 구름 소리와 뙤약볕 소리를 골고루 맞아들이면서 무럭무럭 자라겠지요.

 몸이 튼튼할 때에는 이 모든 소리와 기운에 힘입어 즐거이 사랑을 나누고, 몸이 여리거나 아플 때에는 이 모든 소리와 기운을 떠올리며 즐거이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빕니다. 튼튼한 몸일 때에도 여리거나 아픈 몸일 때에도, 한결같이 사랑스레 손과 눈과 마음과 꿈을 나누는 목숨붙이로 자라기를 빕니다. (4344.8.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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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이 아프다


 집 곁에 멧자락이 살포시 감싸는 시골집이기에, 아침저녁으로 아이 손을 잡고는 멧길을 오르내릴 만한 살림집을 찾는 일은 어려울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멧자락에서 아이 손을 잡든 혼자 거닐든, 아침저녁으로 두 다리로 천천히 조용히 멧길을 오르내리는 사람은 우리 식구 말고는 없습니다. 이 멧자락에서 멧새 소리를 가만히 귀기울여 듣고, 멧골을 스치는 멧바람이 멧자락 멧나무 잎사귀를 스치는 소리를 즐거이 듣자면 자가용이든 오토바이이든 짐차이든 타서는 안 됩니다. 자동차 엔진은 이 모든 소리를 잡아먹을 뿐 아니라, 자동차 엔진이 타면서 나오는 배기가스와 자동차 바퀴가 긁으며 바스라지는 고무 찌끄레기는 멧자락을 어지럽힙니다.

 좋은 멧골집을 얻기는 틀림없이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도시 한복판에서 벗어나며 이 멧골집으로 들어와 한 해를 살 수 있었듯, 호젓한 멧골자락을 호젓하게 즐기지 못하는 사람으로 둘러싸인 곳이 아니라, 호젓한 멧골자락을 호젓하게 즐기는 우리 살붙이가 느긋하게 머물며 뿌리내릴 시골집을 꼭 찾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만, 이 책들을 함께 짊어지고 들어설 만한 시골집까지는 없겠지요. 어쩔 수 없이 책들은 곰팡이가 덜 피는 도심지 건물로 옮기고, 네 식구 살아갈 보금자리는 멧자락한테 살포시 안긴 곳으로 찾아야겠지요.

 새 보금자리를 찾자며 엿새를 돌아다니면서 몸이 무너져내려 사흘째 골골거립니다. 옆지기는 나흘째 집일을 도맡아 줍니다. 얼른 몸을 추슬러야 할 테지만 띵한 골이 좀처럼 깨어나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야 좋을까를 얼추 헤아렸지만 아직 자리가 나지 않았고, 살림집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 고단한 일을 풀어야 내 몸도 천천히 깨어나면서 힘이 나겠지요. 마냥 드러누울 수만 없어서 몇 시간씩 뻗어 끙끙 앓다가 셈틀을 켜고 글조각을 붙잡지만 이내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잠든 살붙이들 이마를 쓰다듬으며 나부터 기운을 내자고 생각합니다. (4344.8.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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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고 힘들며 어지러워


 엿새를 새 보금자리 찾으러 돌아다닌 탓인지, 토요일에 드디어 시골집으로 돌아온 뒤부터 몸이 아프고 힘들며 어지럽다. 아프고 힘들며 어지러우니 집일을 하지 못한다. 밥하고 빨래하며 쓸고닦는 집일을 옆지기가 한다. 옆지기라고 몸이 썩 좋지는 않을 텐데, 이 시골자락 작은 집에서 숲이 내뿜는 기운을 고이 받아들이면서 천천히 여러 일을 맞아들이지 않나 싶다. 그저 눕거나, 일어나서 움직이더라도 천천히 하느작거린다. 몸무게가 조금 줄어 66킬로그램을 살짝 넘을락 말락 한다. 좀 말랐다고 하던 고등학생 때에 65킬로그램이었는데, 몸이 가벼워진다는 느낌이 아니라 힘이 없다는 느낌일 뿐이다. 첫째를 낳아 백일을 치르며 잠을 거의 못 자던 때에 67킬로그램이었다. 이런 아프고 힘들며 어지러운 몸으로 멀거니 하루를 보낸다. 옆지기가 밥을 차려도 거들지 못한다. 설거지를 하기도 만만하지 않다. 기저귀 빨래랑 수건 빨래 몇 점을 해 보는데, 그럭저럭 할 만하지만 도맡아서 할 기운까지는 안 되리라 느낀다. 저녁을 먹고 나서 곧바로 자리에 드러눕는다. 일곱 시간을 내리 뻗었다가 빗소리가 여러 시간 그치지 않아 어기적거리며 일어나 방에 불을 넣는다. 창문은 옆지기가 일찌감치 닫았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며 어지럽더라도 한두 줄을 끄적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고 여겨 셈틀을 켜지만, 골이 지끈거려 글을 쓰지 못한다. 그래도 버티고 앉는다. 새로 내려는 책 하나에 담을 글을 추스른다. 한창 하다가 더 일하면 머리가 빠개질는지 모른다 싶어 그치기로 한다. 둘째가 태어나기 앞서부터 막 태어나서 두 달을 넘기기까지 이럭저럭 용케 홀로 집일을 도맡으며 살아냈는데, 하루를 곁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자리에 서다 보니, 집일을 도맡을 때보다 집일을 못하면서 골골거릴 때가 훨씬 고단하면서 괴롭구나 하고 느낀다. 늘 그렇겠지. 더 튼튼한 사람은 더 일을 하더라도 금세 기운을 되찾기 마련이지만, 더 여리거나 아픈 사람은 일을 덜 하거나 안 하더라도 기운을 좀처럼 되찾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튼튼한 사람이건 여리거나 아픈 사람이건 밥 한 그릇씩 먹어야 한다. 때로는 여리거나 아픈 사람이 밥을 반 그릇이나 한 그릇 더 먹어야 한다. 여리거나 아파 튼튼한 사람만큼 일몫을 못한다면 일삯을 적게 받을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나라인 이 나라를 헤아려 본다. 참으로 아프고 힘들며 어지럽다 보니까, 성경에 나오는 말마디가 새록새록 아로새겨진다. 일을 더 많이 했대서 일삯을 더 줄 수 없다는 말마디. 일을 더 할 수 없으면서 딸린 식구가 있는 사람한테 외려 더 일삯을 준다는 말마디. 나는 내 아픈 옆지기한테 이제껏 얼마나 사랑을 나누었고, 내 작은 아이들한테 어느 만큼 사랑을 쏟았을까. (4344.8.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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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08 10:11   좋아요 0 | URL
몸살이 나셨군요, 첫째 아이는 괜찮은가요?
무리해서 다니셔서 힘드셨을거예요. 며칠 푹 쉬셔야 할텐데요.
그리고 옆지기님께서도 튼튼해지시면 좋으련만.

모두 건강해지시기 기원합니다.

파란놀 2011-08-08 21:34   좋아요 0 | URL
시골에서 지내니까, 옆지기는 차츰 나아질 수 있을 텐데,
앞으로도 좋은 시골을 잘 찾아서 살아야지요 @.@

카스피 2011-08-09 23:24   좋아요 0 | URL
이런 오랫만에 여행이라 몸살이 나신것 같군요.항상 건강에 유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