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실 떠난다.

충청북도 음성까지 먼 길 ... ㅠ.ㅜ

 

이제 인터넷에 들어올 날은 언제쯤?

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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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책을 따로 안 부쳐도 좋다고 해 주신 두 분을 빼고 ^^;;;;

'사진책 도서관 1평 지킴이

http://blog.aladin.co.kr/hbooks/5137783

모두한테

오늘인지 어제인지 1월 20일 낮에

첫째 아이 태우고 헐떡이며 우체국으로

자전거 몰고 달려가서 책을 부쳤어요.

 

 

숫자를 세어 보니, 이래저래

평생지킴이 다섯 분하고

한평지킴이 스물두 분이네요.

앗... 평생지킴이 한 분한테 책을 안 부쳤네... -_-;;;;;

(이제서야 생각나다니!)

 

 

언제나처럼 봉투에는 손글씨로 주소를 적고

하나하나 봉투에 새 주소 딱지를 풀로 붙이고

테이프로 마감하다 보니,

스물일곱 통을 싸는데

두 시간이 더 걸리는군요 @.@

 

문득, 이오덕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당신 책이 나올 때면

친구와 제자와 선배한테

책을 400~500권씩 손수 봉투질을 하고

주소를 적어 부치셨는데...

아아, 며칠이나 걸려서 400~500권을 부쳤을까요 ㅠ.ㅜ

 

아무쪼록, <뿌리깊은 글쓰기> 받으시는 모든 분들

즐거이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직까지 책방에 배본이 안 되는데... 잉잉잉

책방에 배본 되면

예쁘게 두루두루 알려주셔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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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2-01-29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다운 글과 함께 보내주신 책, 잘 받았습니다~ 잘 읽고 두루두루 알릴게요~~

파란놀 2012-01-29 09:41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
 
Photography Three Landscapes - City Human Nature
구성수 지음 / 푸른세상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구성수 님 예전 사진책을 소개하려 하는데, 이 책은 알라딘에서는 뜨지 않기에 다른 사진책에 이 느낌글을 걸칩니다. 아무쪼록...

 

 


 서울에서 살아가며 사진 찍으면
 [찾아 읽는 사진책 45] 구성수,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것》(사진예술사,1998)

 


 서울에서 살아가기는 재미날까 궁금합니다. 서울에서 살아가면 신날까 궁금합니다. 서울에서 살아가며 하루하루 즐거운지 궁금합니다. 서울에서 살아가며 사귀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기쁠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에서 일거리 얻어 살아가면 뿌듯한지 궁금합니다. 서울에서 보금자리 마련해 살아가면 보람찰까 궁금합니다.

 

 내가 서울에서 살았던 1994∼2003년을 떠올립니다. 사이에 군대에서 보낸 스물여섯 달을 빼면 열 해가 채 안 되고, 2003년 가을부터 2006년 2월까지 서울에서 반, 충청북도에서 반을 살았습니다. 주마다 오락가락 하면서 살았어요. 이동안 내가 서울에서 겪은 삶은 ‘책 만드는 일’과 ‘책방 나들이’와 ‘책방 찾아 골목 곳곳 누빈 일’이었고, 처음에는 ‘신문배달 하느라 골목집을 두루 꿰며 짐자전거로 누빈 일’입니다. 신문사 지국을 옮기면서, 나중에 홀로 자취집을 얻으면서, 이래저래 집 보러 다니며 서울살이를 새로 들여다봅니다. 그러나, 언제나 내가 느끼는 서울은, 서울은 사람이 지나치게 많구나, 예요.

 

 나도 서울에 사람이 지나치게 많게 한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 한 사람부터 서울을 떠나야 서울은 조금이나마 홀가분합니다. 그래, 나는 씩씩하게 서울을 떠납니다. 서울을 떠나며 후련하고 숨통을 틀 만합니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복닥이다 보니까 바람이 매캐하고 자동차가 넘치며 햇살이 따숩지 않아요. 사람들이 지나치게 복닥이니까 무얼 해도 돈벌 자리는 있다지만, 돈을 벌고 쓰는 만큼 사랑을 살가이 나누거나 꿈을 애틋하게 키우는 쪽하고는 자꾸 동떨어져요. 사람을 돈으로 재도록 내몰고, 사람살이가 돈에 따라 휘둘리거나 휩쓸리기 일쑤예요.

 

 서울에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지나치게 많다 보니 어느 사람이든 마음을 착하게 다스리기 어렵습니다. 마음을 착하게 다스리기 어려운 서울이다 보니, 또 너무 많은 사람이 복닥이다 보니, 쓰레기통 하나 변변하게 마련하지 않을 뿐더러, 쓰레기통이 있어도 금세 미어터져요. 서울에는 청소하는 일꾼이 아주 많이 있고, 아주 자주 치우지만, 이러하더라도 쓰레기가 흘러넘쳐요. 서울에도 쓰레기 파묻는 데가 있기는 있을 테지만, 이웃 인천으로 갖다 버리는 부피가 아주 대단해요.

 

 내가 ‘서울’을 사진감으로 삼는다면, 바로 이런 대목을 담고 싶어요. 서울은 쓰레기누리, 쓰레기나라, 쓰레기터라고요.

 

 그런데, 이런 쓰레기더미 서울이지만, 또다른 테두리에서 조그마한 살림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달라요. 하루하루 아파트 재개발로 밀려나지만, 조그마한 살림집 이루는 골목동네에서 예쁜 삶 예쁜 빛 예쁜 넋을 만나곤 해요. 또한, 조그마한 살림집 아닌 커다란 아파트라 하더라도, 이 아파트 안쪽으로 들어가서 이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 ‘집 바깥에서 부대끼는 서울’하고는 또다른 삶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살림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서울’을 사진감으로 삼는다면, 또다른 이 대목을 찍고 싶어요. 서울에도 사랑이 있고, 꿈이 있으며, 이야기가 있어요.

 

 

 어디이든 삶터입니다. 어디에서 살아가든 보금자리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 어루만진다면, 사랑스레 땀흘릴 삶터입니다. 사랑스레 내미는 손길로 어깨동무한다면, 사랑으로 빚는 보금자리입니다.

 

 사진은 참말 달라집니다. 내가 날마다 달라지는 꿈을 꾸면서 땀을 흘리는 동안, 사진은 참말 달라집니다.

 

 사진은 영 제자리걸음입니다. 나 스스로 제자리걸음을 걷는 동안, 내 사진은 그야말로 제자리걸음입니다.

 

 내가 선 자리에서 내 꿈길을 무지개빛으로 아로새기면, 내가 사진기를 손에 쥘 때에 무지개빛 가득한 사진이 태어납니다. 내가 선 자리에서 내 삶길을 무지개빛으로 일구면, 내가 손에 연필을 쥘 때에 무지개빛 그득한 글이 태어납니다.

 

 구성수 님 사진책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것》(사진예술사,1998)을 읽습니다. 구성수 님은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로 입성’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것》 첫머리를 채우는 ‘구성수 사진비평’을 쓴 장준석 님은 “서울 입성 이전과 그 이후 익명성을 담보로 살아가기까지”라는 이름을 붙여, 구성수 님 사진삶을 들려줍니다.

 

 ‘서울 입성’이라니, 참 케케묵은 계급사회 말마디 같습니다. 이씨 임금님들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다스리며 신분과 계급으로 사람들을 나누던 무렵, 서울을 둘러싼 성곽 안쪽으로 들어간다는 뜻이 ‘서울 입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홍제동이나 녹번동만 하더라도 ‘4대문 바깥’, 곧 ‘서울 입성’하고 먼 자리입니다. 이문동이나 휘경동이라면 마땅히 ‘서울 입성’하고 동떨어진 데예요. 강아랫마을 또한 ‘서울 입성’이라 할 수 없는 데예요.

 

 

 그러나저러나, 사람들은 왜 ‘서울 입성’이라는 말을 쓰고, ‘서울로 간다’는 말을 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대구에서는 사진길을 걸을 수 없을까요. 춘천에서는 사진삶을 누릴 수 없을까요. 제주에서는 사진꿈을 키울 수 없을까요. 옥천에서는 사진빛을 나눌 수 없을까요. 수원에서는 사진사랑을 펼칠 수 없을까요.

 

 로버트 프랭크 님은 미국이라는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미국사람들》이라는 사진책을 내놓았습니다. 구성수 님 사진책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적잖이 《미국사람들》 내음을 풍깁니다. 그러나, 로버트 프랭크는 로버트 프랭크요, 구성수는 구성수예요. 저마다 누리는 삶에 따라 사진이 달라져요. 누가 누구를 따를 수 없고, 누가 누구 내음을 풍길 수 없어요.

 

 사진책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금 들여다봅니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나날이란 어떤 빛이 될까요.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길은 어떤 사랑이 될까요. 서울에서 살아가는 나와 너는 어떠한 꿈을 함께 주고받을까요.

 

 서울이든 어디이든, 따분하거나 심심하거나 빛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이든 어디이든, 재미나거나 아름답거나 무지개빛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나오는 사람들도 서울사람이고,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서울사람입니다. (4345.1.20.쇠.ㅎㄲㅅㄱ)


―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것 (구성수 사진,사진예술사 펴냄,1998.2./판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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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고니의 하늘
테지마 케이자부로오 글.그림, 엄혜숙 옮김 / 창비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내리사랑과 치사랑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27] 테지마 케이자부로오(데지마 게이자부로), 《큰고니의 하늘》(창비,2006)


 

 살살 잠들었다 싶은 둘째가 울먹울먹하더니 으앙 하고 울어댑니다. 조금 더 잠들어 주면 얼마나 좋겠니, 삼십 분쯤 시원스레 잠들고 일어나면 얼마나 좋겠니, 한두 시간쯤 느긋하게 잠들고선 깨어나 주면 얼마나 좋겠니, 하고 생각합니다. 어쩜 이렇게 조금 잠든다 싶으면 깨고, 또 잠들었다 싶으면 일어나니.

 

 아침부터 쉴새없이 뛰고 달리고 노래하고 춤추던 첫째가 부엌에서 어머니 부침개 굽는 저녁나절 밥상에 엎드려 스르르 잠든 지 얼마 안 된 무렵, 아버지는 모처럼 두 아이한테서 홀가분하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둘째가 곧바로 깨어나 이 꿈은 물거품이 됩니다.

 

 그러나, 첫째 아이 이맘때에도 비슷했어요. 첫째 아이는 둘째 아이보다 훨씬 엉겨붙거나 달라붙었을 뿐 아니라, 밤새 어머니랑 아버지가 잠들지 못하게 했어요. 둘째 아이는 밤에 오줌을 적게 누고, 꽤 오래 새근새근 잔다고 할 수 있어요.

 

 아이를 안거나 업고서 한동안 돌아다니거나 일을 하면, 팔이며 등떼기이며 허리이며 없는 듯하곤 합니다. 나는 형이랑 둘만 있는 집에서 살았기에 나보다 어린 동생을 업거나 돌보며 지낸 일이 없어요. 어린이가 갓난쟁이를 돌보던 일이 없습니다. 아이들도 어린 동생을 곧잘 업으며 달래거나 어르곤 하는데, 아이들이 제아무리 어린 동생을 잘 업거나 달랠 수 있다 하더라도, 고 작은 몸으로 더 작은 동생을 업거나 안으며 달래면 얼마나 뻑적지근할까요.

 

 두 형제 가운데 동생이었던 나는 어린 나날부터 ‘어린 내가 동생을 업거나 안으며 달래는 일’이란 어떠한 느낌일까 하고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동생을 돌보느라 같이 놀지 못하는 동무라든지, 동생을 끼고 함께 노는 동무를 볼 때에, 또 언젠가 이야기책에서 동생을 업고 돌보는 언니 모습을 읽거나 들으며, 이렇게 동생을 돌보는 언니나 형이나 오빠 노릇이란 어떠한 나날일까 하고 궁금했어요.


.. 넓은 호수의 여기저기에서 반갈아 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오늘은 산에 쌓인 눈이 보통 때보다 더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봄이 아주 가까이 온 것이지요 ..  (4쪽)


 색색 소리내며 잠든 아이를 바라보면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고 예쁩니다. 눈물이 톡 떨어질 만큼 어여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잠든 아이를 한 시간쯤 안은 채 꼼짝을 못할라치면, 어버이 품에서 말고 바닥에서도 고이 잠들어 주면 얼마나 좋겠니, 하고 생각합니다. 사랑스럽고 예쁘지만 힘들기는 힘들거든.

 

 바깥에서 움직일 때에는, 이를테면 시골집에서 음성이나 일산으로 할머니 할아버지 댁을 찾아가는 먼길에서는 아이들을 안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버스나 기차나 전철을 탑니다. 이때에는 몇 시간씩 안거나 업으며 등허리와 다리에 힘이 풀려도 꿋꿋하게 다닙니다. 어디에서 이런 힘이 솟는지 모르나 참 씩씩하게 다녀요. 이러다가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닿아 아이들을 내려놓으면 어느새 눈이 감기거나 풀립니다.


.. 해질녘이 되었습니다. 어두워졌지만 아직 출발하지 못한 여섯 식구가 있습니다. 아이가 병이 나서 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료들이 없는 호수는 조용합니다 ..  (9∼10쪽)


 저녁 열 시가 넘습니다. 둘째를 안고 첫째를 걸리며 동네 한 바퀴를 돕니다. 이 늦은 때에도 잠자리에 들지 않는 두 아이를 달래려고 밖으로 나옵니다. 자, 얘들아, 이렇게 깜깜한 밤이지, 다들 모두 코 자는데 너희는 왜 아직 안 자려 하니, 이제 너희들도 예쁘게 코 자자, 하고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둘째는 오줌기저귀를 한 장 갈고 나서 아버지 무릎에서 꾸벅꾸벅 좁니다. 고개를 까딱까딱 하다가는 아버지 팔에 기대고, 이내 목에 힘이 탁 풀리며 고개를 뒤로 젖힙니다. 둘째 겉바지와 웃옷을 벗기지 않았기에 잠자리에 눕히지 못합니다. 한동안 이렇게 눕히다가 옷을 벗기니 꼼틀 하며 실눈을 뜹니다. 옷을 마저 벗기고는 다시 그대로 무릎에 누인 채로 토닥이고 이불을 덮습니다.

 

 이제 슬슬 첫째 아이도 잠들면 좋겠지만, 첫째 아이는 더 놀 생각인지, 꽤 졸린 모습이지만 잠자리에 들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 그러면 네 마음대로 하렴. 아직 안 자겠다는데 억지로 재울 수야 없지, 우리 네 식구 이듬날 새벽부터 시골버스 타고 읍내에 가서 광주를 거쳐 충청북도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야 하는데, 너 새벽에 두고보렴. 새벽에 못 일어나면 너만 두고 갈 테니. 크.

 

 어쩌면, 새벽에 잠을 못 깨는 두 아이를 하나씩 업거나 안고 길을 나서야 할는지 모르지요. 새벽부터 아이들 칭얼거림을 고스란히 받아들으며 먼길을 가야 할는지 모르지요.

 

 그러나, 어버이라면, 아버지이고 어머니라면, 이와 같은 아이들 매무새를 하나하나 받아들일밖에 없습니다. 잠든 아이는 포근하게 감싸서 재웁니다. 졸린 아이는 토닥거리며 재웁니다. 배고픈 아이는 밥을 차려 먹입니다. 지저분한 아이는 옷을 갈아입히고 씻깁니다. 아이들한테는 어버이 온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 산 위에서 날개를 치는 하얀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식구들이 되돌아온 것입니다 ..  (25쪽)


 테지마 케이자부로오(데지마 게이자부로手島圭三郞) 님 그림책 《큰고니의 하늘》(창비,2006)을 읽습니다. 철을 따라 삶터를 바꾸는 큰고니들이 나누는 사랑을 찬찬히 보여주는 그림과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 이 이야기는 어릴 적부터 곧잘 들었구나, 하고 떠올립니다. 어디에서 들었더라, 내 어릴 적 나한테 그림책은 없었으니까 책으로 읽지는 않았을 테지만, 동화책에서 읽었을까, 텔레비전 만화영화로 보았을까, 아니면 학교에서 선생님한테서 들었을까,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틀림없이 어디에선가 보거나 읽거나 들었을 테지만 제대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마, 일본에서건 한국에서건, 이들 큰고니 식구들 이야기는 차근차근 이어졌을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서양 어느 나라 옛이야기가 개화기라 하는 때에 슬그머니 들어와서 이때부터 두루 알려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일본이든 한국이든 철새가 있어요. 철새를 곁에서 지켜보던 여느 흙일꾼이나 고기잡이가 있었겠지요. 일본이나 한국이나 철새들 가운데 큰고니라든지 다른 철새들이 식구들하고 어떤 사랑을 이루는가를 애틋하게 지켜본 사람이 있었겠지요.


.. 그러자 그때, 북쪽 나라의 추운 하늘에 죽은 아이의 모습이 반짝반짝 빛나며 떠올랐습니다 ..  (37∼38쪽)


 어버이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하던가요. 그러나 이 내리사랑이라는 어버이 사랑이란, 가만히 헤아리면 내 어버이한테서 받은 내리사랑이 나한테서 내 아이한테 이어집니다. 내 어버이는 당신 어버이한테서 내리사랑을 받았을 테며, 내 어버이는 치사랑을 당신 어버이하고 나누었겠지요.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내리사랑을 받고 내 아이한테는 치사랑을 받습니다. 내 아이는 나한테서 내리사랑을 받고 나중에 저희 아이한테서 치사랑을 받겠지요.

 

 곧, 서로서로 사랑입니다. 가고 오는 사랑이 아니라 한결같이 흐르는 사랑입니다. 주고받는 사랑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랑이에요.

 

 어느 큰고니 식구는 철이 바뀌었지만 새 터로 떠나지 않고 아픈 아이하고 남았겠지요. 어느 큰고니는 애틋한 짝꿍이랑 떨어지지 않고 둘이 그대로 남았겠지요. 어느 큰고니 식구는 가슴으로 눈물을 삭이며 떠났겠지요. 어느 큰고니는 애틋한 짝꿍을 뒤로 남기고 홀로 떠났겠지요.

 

 남는대서 더 큰 사랑이 아니에요. 떠났다가 돌아왔대서 더 큰 사랑이 아니에요. 아주 떠난대서 모진 사랑이 아니에요. 모두 같은 사랑입니다. 어버이도 아이도 가슴에 깊이 아로새기는 슬픔과 아픔과 눈물이 얼룩지는 사랑이에요. 어버이도 아이도 가슴으로 얼싸안는 빛나는 사랑입니다.

 

 늦은밤, 아이 손과 얼굴을 씻깁니다. 손톱과 발톱을 깎습니다. 이제 잠자리에 누입니다. 이마와 머리카락을 쓸어넘깁니다. 나는 내 아이들 이마와 머리카락을 쓸어넘깁니다. 나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내 이마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을 테니까, 이 느낌이 내 몸과 마음에 깊이 아로새겨졌겠지요. 나로서는 언제 얼마나 쓸어넘겼을는지 조금도 떠올리지 못하더라도, 몸과 마음으로 깊이 스며든 사랑이 있어 내 아이들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겠지요.

 

 말하지 않아도 사랑이요, 말해도 사랑입니다. 함께 있어도 사랑이며, 떨어져도 사랑입니다. 편지를 띄워도 사랑이고, 아련한 눈빛으로 그려도 사랑이에요. (4345.1.20.쇠.ㅎㄲㅅㄱ)


― 큰고니의 하늘 (테지마 케이자부로오 글·그림,엄혜숙 옮김,창비 펴냄,2006.11.15./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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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00 : 동병상련

 

.. 데어의 글에 웃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실은 동병상련의 웃음이랄까 ..  《폴 콜린스/홍한별 옮김-식스펜스 하우스》(양철북,2011) 83쪽

 

 “데어의 글에”는 “데어가 쓴 글에”나 “데어가 남긴 글에”나 “데어가 책에 적은 글에”로 손질합니다. ‘하지만’은 ‘그러나’나 ‘그렇지만’으로 손보고, ‘실(實)은’은 ‘따지고 보면’이나 ‘알고 보면’이나 ‘가만히 보면’으로 손봅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 :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김을 이르는 말. 《오월춘추》의
   〈합려내전(闔閭內傳)〉에 나온다
   - 그들은 전쟁터에서 동병상련한 사이다 /
     그 당시엔 그와 동병상련할 처지가 아니었다

 

 동병상련의 웃음이랄까
→ 나 또한 아팠기에 짓는 웃음이랄까
→ 아픈 마음에 짓는 웃음이랄까
→ 쓰겁게 짓는 웃음이랄까
→ 쓴웃음이랄까
→ 아픈웃음이랄까
 …

 

 중국 옛글에 나온다고 하는 ‘동병상련’입니다. 곧, 이 말마디 ‘동병상련’은 한국말 아닌 중국말입니다. 예부터 중국과 한국이 가까웠으며, 중국 문화가 한국 문화에 크게 그늘을 드리웠대서 이러한 중국말이 한국말 곳곳에 스며들었다 할 테지만,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한국말로 넋과 얼을 빛내야 알맞아요. 한국사람이 굳이 일본말이나 미국말이나 독일말을 써야 하지 않듯, 애써 중국말을 써야 하지 않아요. 중국 옛책에 나온다는 말을 부러 외우거나 널리 쓸 까닭이 없어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새말을 빚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이를테면, “같은 병을 앓는(同病)” 사람이 “서로 가여이 여긴다(相憐)”는 뜻이라 한다면, “함께 + 앓이”처럼 새말을 빚을 만해요. 내 이웃 아픔을 내가 함께 앓으면서 아픔을 달랜다는 뜻이 돼요. “슬퍼하는 내 오랜 동무하고 함께앓이를 했다”처럼 쓸 수 있어요.

 

 곰곰이 생각하면 ‘어깨동무’라는 낱말에 새로운 뜻을 넣을 수 있습니다. 이 나라 국어사전은 아직까지 ‘어깨동무’라는 낱말뜻으로 “(1) 상대편의 어깨에 서로 팔을 얹어 끼고 나란히 섬 (2) 나이나 키가 비슷한 동무” 두 가지만 싣지만, 사람들은 ‘어깨동무’라는 낱말을 “서로 돕는다”는 자리에서 쓰곤 해요. 그러니까, “어깨동무 (3) 서로 돕는 일”이 되어야 하고, “어깨동무 (4) 아픔을 서로 달래는 일”처럼 될 수 있어요.

 

 전쟁터에서 동병상련한 사이
→ 전쟁터에서 서로를 달래며 살아남은 사이
→ 전쟁터에서 함께 어려움을 이겨낸 사이
 …

 

 “싸움터에서 서로를 달랜” 사이를 가리킬 때에도 “싸움터에서 어깨동무한” 사이라 적을 수 있습니다. 비슷한 뜻과 느낌으로 살린다면, “싸움터에서 서로 어깨를 기댄” 사이라 적어도 돼요. “어깨를 맞댄”이라든지 “어깨를 겯은”이라든지 “어깨를 토닥인”처럼 적을 수 있어요.

 

 이 자리에서는 “함께 아파한”을 넣어도 되고, “함께 눈물웃음 쏟은”을 넣을 수 있으며, “함께 웃고 함께 운”을 넣을 만해요. 하나하나 생각을 기울이면 말문과 말씨와 말길을 차근차근 열 수 있어요.

 

 그와 동병상련할 처지가 아니었다
→ 그와 함께 아파할 처지가 아니었다
→ 그와 같이 아파할 때가 아니었다
 …

 

 “그와 함께 울 겨를이 아니었다”처럼 적어도 어울립니다. 함께 운다고 하는 일은 서로 겪어야 하는 아픔을 서로 달랜다는 뜻이거든요. 함께 아파하기, 함께 울기, 함께 부둥켜안기, 함께 얼싸안기, 이렇게 뜻과 느낌을 곰곰이 헤아립니다. 서로서로 즐거이 나눌 말을 찬찬히 톺아봅니다.

 

 온 마음 기울여 사랑할 말을 찾습니다. 온 넋 담아 아낄 말을 살핍니다. 온 꿈 실어 주고받을 말을 가다듬습니다. (4345.1.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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