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신문 읽기 2 : Hello 한미FTA, 광수생각

 


  전남 고흥군 도화면 우체국으로 편지를 부치러 간다. 우체국 일꾼이 우표딱지를 뽑는 동안 우체국 안쪽 홍보종이 꽂힌 자리를 두리번거리다가 〈FTA 소식〉 59호를 본다. 2012년 3월 5일에 나온 이 소식지는 무척 좋은 종이로 만든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한국사람한테 옳게 알리겠다는 뜻으로 적잖은 돈을 들여 만드는 소식지라 할 텐데, 올 2012년 3월 15일부터 한미자유무역협정이 펼쳐진다지. 그러니까, 3월 15일에 발맞추어 만든 뜻깊은(?) 소식지라 할 만하다.


  〈FTA 소식〉 59호를 보면, 자유무역협정을 기다리는 사람들 애타는 목소리가 실린다. 이 목소리 가운데 “우리 농업의 미래는 현재 고령화된 노동력이 자연 도태되는 향후 5년이 결정할 것이다” 같은 이야기에 눈발이 퍼뜩 선다. 교육부 아닌 교육‘인적자원’부라 하는 만큼,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일꾼을 두고도 ‘고령화된 노동력’이라 하는구나. 그런데, 이들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가리켜 ‘노동력’이라 하든 말든, 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연 도태’된다고 한다니, 더구나 앞으로 ‘향후 5년’이면 다들 숨을 거둘 듯 이야기를 한다니, 그래 시골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빨리빨리 죽어야 한다는 소리일까.


  같은 2012년 3월 5일에 나온 〈한국농어민신문〉 2414호를 보면, 첫 쪽에 “이마트 물류단지 때문에 산지유통센터 벼랑에 몰려 존폐 걱정”이 나돈다는 이야기가 실린다. 3쪽에는 한중자유무역협정에 농업을 때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는 이야기가 실린다. 더없이 마땅할 테지만, 〈한국농어민신문〉 사설은 두 가지 모두 이명박 정부 농업정책이 아주 나쁘며 슬프다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명박 씨가 대통령으로 있대서 오늘날만 농업정책이 아주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예전 다른 대통령일 때에도 농업정책이 좋았던 적은 하루조차 없었다고 느낀다.

 

 


  〈FTA 소식〉 59호에는 〈조선일보〉에 ‘광수생각’이라는 만화를 싣던 박광수 씨 만화가 맨 뒤쪽에 큼지막하게 실린다. 이 만화는 “한미FTA! 멀리 보고, 따져 보면 우리 마을, 우리 가족 경제에 큰 힘이 됩니다” 하는 말로 맺는다. 만화에 적은 몇 가지 말을 옮기면,


ㄱ. 레몬, 오렌지, 체리 등을 착한 가격으로. 피부 좋아지고, 다이어트 하고∼♪
ㄴ. 미국산 의류, 화장품, 가방 등을 저렴하게. 마음껏 멋내고∼♪
ㄷ. 외국인 투자증대로 일자리가 늘어. 취업에 성공하고∼♪


  이렇게 나온다. 아마 이 세 가지가 달라질 수 있겠지. 그런데 도시 아닌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시골 할머니들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은 여느 아이들은 여느 푸름이와 젊은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레몬과 오렌지와 체리를 ‘착한’ 값으로 사서 먹는다지만,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안 친 레몬과 오렌지와 체리를 ‘얼마나 착한’ 값으로 사서 먹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 아니, 그리 궁금하지는 않다. 한국에서 만드는 화장품도 안 쓰고, 멋내는 가방이나 옷도 안 사 입는 우리 집에서는 ‘미국 옷·가방·화장품’ 어느 하나 부럽지 않고 바란 적조차 없다.

 

 


  바람이 분다. 봄바람이 따숩게 분다. 봄바람은 시골마을 논자락마다 푸르게 잎줄기 올리는 마늘 사이로 분다. 따스한 남녘땅에서는 감귤도 잘 되고 유자도 잘 되며 참다래나 블루베리도 잘 된다. 석류도 잘 되고, 아마 올리브를 심어도 잘 되리라 생각한다. 오렌지나 레몬 또한 얼마든지 심어서 거둘 수 있을 테지. 이곳 시골마을은 해마다 차츰차츰 농약이든 비료이든 항생제이든 아무것 안 쓰는 흙일로 바뀐다. 이 나라에서 심고 거두어 이 나라에서 먹을 수 있는 곡식이랑 푸성귀랑 열매가 될 때에는, 멀리멀리 배로 실어 나를 일이 없다. 그날그날 실어 나를 수 있다. 굳이 방부제를 뿌릴 까닭마저 없다.


  농약도 항생제도 방부제도 안 쓰고 유기농으로 지은 오렌지와 레몬과 체리가 아니어도 ‘살빼기’ 하는 데에 도움이 될는지 잘 모르겠다.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외국 곡식이랑 열매 값이 더 떨어진다면, 사람들은 농약이랑 항생제랑 방부제를 더 많이 먹는 셈일 텐데, 그러면 앞으로는 외국계 병원이 생겨서 외국 화학약품을 잔뜩 먹으면 되려나. (4345.3.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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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3-16 09:59   좋아요 2 | URL
글쎄 한미 FTA가 정부 말처럼 가족 경제에 큰 힘이 되면 좋겠지만 과연 그럴지는..^^;;;

파란놀 2012-03-16 16:11   좋아요 2 | URL
자유무역협정으로
이제 시골사람 삶은 더 나빠지고
도시사람도 도시사람대로 더 끔찍해질밖에 없으리라 느껴요.
 


 얼결에 물든 미국말
 (665) 세일(sale)

 

며칠 전 슈퍼마켓에 가니까 먹음직한 딸기를 벌써 세일하고 있었다. 옥사나는 깜짝 놀랐다. 이 한겨울에 우크라이나 생각이 난다며 한 박스를 샀고
《한대수-뚜껑 열린 한대수》(선,2011) 132쪽

 

  “며칠 전(前)”은 “며칠 앞서”로 다듬고, “-하고 있었다”는 “-한다”로 다듬습니다. “한 박스(box)”는 “한 상자”로 손질합니다. 그나저나, 가게에서 일하며 파는 사람이나 가게를 찾아가서 사는 사람이나 모두 ‘박스’라 말하는 오늘날입니다. 이제 어느 가게에서는 ‘상자’라 말하면 못 알아듣는 일꾼이 있기도 합니다. 내가 입으로 ‘상자’를 말해도, 듣는 쪽에서는 “네, 박스요?” 하고 되묻기 일쑤예요.


  국어사전에서 영어 ‘세일(sale)’을 찾아봅니다. 워낙 널리 쓰는 낱말이 되다 보니, 이제 ‘세일’을 영어로 느끼는 도시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시골사람마저 이 영어를 흔히 쓸 테고요. 굳이 영어사전을 안 뒤지고 국어사전만 뒤져도 나오는 ‘세일’로, 낱말뜻은 “(1) 고객을 찾아다니며 상품을 파는 일. (2) 할인하여 판매함”이라고 해요.

 

 딸기를 벌써 세일하고 있었다
→ 딸기를 벌써 싸게 판다
→ 딸기를 벌써 값싸게 판다
→ 딸기를 벌써 싼값에 내놓는다
 …

 

  국어사전 뜻풀이를 더 헤아려 ‘할인(割引)’도 찾아봅니다. 이 한자말 뜻풀이는 “일정한 값에서 얼마를 뺌”이라고 해요. 이리하여, 한국말로 하면 ‘에누리’이고, 한자말로 하면 ‘割引’이요, 영어로 하면 ‘sale’입니다.

 

 그는 자동차 세일에 나섰다
→ 그는 자동차를 판다
→ 그는 자동차 파는 일에 나섰다
 봄맞이 세일
→ 봄맞이 에누리
 세일을 단행하다
→ 값을 내리다
 백화점 세일 기간에는 주변의 교통이 혼잡하다
→ 백화점 에누리 철에는 둘레 길이 어지럽다
→ 백화점에서 에누리하는 철에는 둘레 길이 어수선하다

 

  ‘버스’나 ‘택시’를 가리켜 영어라 생각하는 한국사람은 아마 없지 싶습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어려운 영어로 느끼는 한국사람 또한 아무래도 없으리라 봅니다. ‘세일’ 같은 낱말은 이러한 낱말과 한동아리로 여길 만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세일’ 같은 낱말을 굳이 써야 하는지 궁금해요.


  왜냐하면, ‘버스’나 ‘라디오’를 갈음할 만한 토박이말은 없어요. 이와 달리 예부터 ‘에누리’나 ‘깎다’ 같은 낱말로 우리 넋을 나타내고 서로서로 장사를 했어요.


  즐거이 쓸 만하다면 즐거이 쓰면 됩니다. 넉넉히 쓰고 싶다면 넉넉히 쓰면 됩니다. 우리가 곁에 두며 예쁘게 쓸 만한 낱말인가 아닌가를 곰곰이 살필 수 있으면 됩니다. 서로서로 언제나 예쁘게 주고받으면서 말꽃을 피우고 말열매를 맺을 만하다고 느끼면 알차게 일구고 곱게 보듬을 말이요 글입니다. (4345.3.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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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 1
김진 지음 / 시공사(만화) / 1998년 6월
평점 :
품절



 네가 다치면 내 마음 아프지
 [만화책 즐겨읽기 114] 김진, 《바람의 나라 (1)》

 


  아이가 다치면 생채기가 아물도록 함께 아픕니다. 아이가 울면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눈물이 납니다. 내 살붙이가 아프거나 힘겨울 때이든, 내 이웃이나 동무가 아프거나 힘겨울 때이든, 언제나 더없이 아프며 힘겹습니다. 거꾸로, 내가 아프거나 힘겨울 때에는 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가 함께 아프며 힘겨울 테지요.


- “그 애가 천민 출신이라, 늘 마음 걸려 하시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일을 문제삼아 수시로 아이를 창피 주시니 어째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16쪽)
- “형님, 사람의 마음이란 풀씨 같은 건가 봐. 이렇게 수없이 떠다니고 옆에 가득한데도 잡을 수가 없지. 하지만 형님은 내가 잡지 못하는 민들레씨를 잡듯이 사람의 마음도 그리 잡을 수 있을 거야.” (90쪽)


  아이들이 웃으면 곁에 있는 어른도 웃습니다. 아이들이 웃으면 함께 노는 어린 동무들도 웃습니다. 어른들이 웃으면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도 웃습니다. 어른들이 웃으면 어른들 둘레 다른 어른도 웃습니다.


  좋은 일은 좋은 넋에 따라 좋은 흐름을 타고 널리널리 퍼집니다. 슬프거나 궂은 일은 슬프거나 궂은 얼에 따라 슬프거나 궂은 물결을 타고 두루두루 퍼집니다.


  서로 좋은 꿈을 품으며 살아갈 때에는 참말 좋은 꿈을 이룹니다. 서로 슬프거나 궂은 꼼수를 부린다거나 못난 꿍꿍이를 키울 때에는 그야말로 슬프거나 궂은 일이 잇달거나 못난 일이 자꾸 터집니다.


  따사로이 보듬는 손길로 따사로이 싹을 트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 푸나무입니다. 따사로이 쓰다듬는 손길로 따사로이 자라고 크며 튼튼해지는 아이들입니다.


  밥 한 그릇에 사랑을 담습니다. 옷 한 벌에 사랑을 싣습니다. 잠자리 이불깃을 여미며 사랑을 나눕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고운 사랑으로 고운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 ‘내 아이가 태어나면 절대로 내 아버님처럼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사랑하면서 화를 내고 미워하면서 자상하다. 후회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 죽음을 대가로 하는 마음의 감정, 의심하여 살피는 마음, 그건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다. (18∼19쪽)
- “꿈이 뒤숭숭하여 몹시 무서워요. 밤이 이렇게 흉흉하니 잡귀가 시샘하면 어쩌지요. 아버지가 지켜 주어야 아기가 안심하고 세상에 나올 텐데요.” (20쪽)
- ‘아니, 네가 이긴 게 아니다, 검은 요물아. 단지 목숨 하나와 다른 목숨 하나를 슬픈 마음으로 맞바꾼 것뿐. 지금은 네가 이 작은 목숨 앗은 듯 보이지만, 너는 천기를 거스르는 자이니, 필히 지금의 대가를 과하게 치를 것이다.’ (210쪽)


  김진 님 만화책 《바람의 나라》(시공사,1998) 첫째 권을 읽으며 가만히 헤아립니다. 만화책 《바람의 나라》는 고구려 적 이야기를 담았을까요. 고구려 적 궁중 둘레 이야기를 보여줄까요.


  아마 만화 무대는 한겨레 퍽 옛날 옛적 이야기라 할 만합니다. 즈믄 해쯤, 또는 즈믄 해에 오백 해를 더한 옛날쯤, 또는 즈믄 해에 즈믄 해가 더 흐른 옛날쯤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세 즈믄이나 네 즈믄이라 해도 됩니다. 아득히 먼 옛날이면서 그리 멀잖은 어제 일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나 이제나 어버이가 있고 아이가 있어요. 어른이 있고 어린이가 있습니다. 사랑을 먹으며 자라 어른이 됩니다. 사랑을 먹으며 자란 어른이 새롭게 사랑을 꽃피울 짝꿍을 만나 아이를 낳습니다. 이 아이를 사랑으로 돌볼 때에는 이 아이 또한 사랑을 먹으며 자라고, 이윽고 씩씩하면서 튼튼한 어른으로 우뚝 서며 또다시 새롭게 사랑을 꽃피울 짝꿍을 만나 아이를 낳아요.


  사랑스러운 삶은 곧게 이어집니다. 사랑스러운 삶 못지않게 슬프거나 아프거나 밉거나 고단한 삶도 곧게 이어져요. 사랑은 사랑을 먹으며 자랍니다. 슬픔은 슬픔을 먹으며 자랍니다. 사랑은 새로운 사랑한테 거름이 됩니다. 슬픔 또한 새로운 슬픔한테 거름이 돼요.


  좋은 마음으로 좋은 나날을 누리며 나와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좋은 꿈을 빚는 누리를 북돋울 수 있습니다. 짓궂은 마음으로 짓궂은 싸움을 일으켜 나와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고단한 굴레에 사로잡히며 눈물짓거나 아파하는 누리로 휘저을 수 있습니다.

 

 


- ‘어른이 되는 건 싫어. 언제까지고 아이였으면, 그러면.’ (76쪽)
- ‘그런 냄새는 정말 싫어. 씻어도 씻어도 어디엔가 남아 있는 것 같아. 싸움터 냄새, 피비린내, 난 그런 내가 나는 곳에 가는 게 정말 싫어. 하지만 가야만 하는 거지? 왜냐하면 내가 왕이 될 테니까. 내가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 그 싫은 냄새를 맡아야 하니까. 난, 연아, 세상에 왜 꽃이 피고, 왜 사람들이 그 향기 속에서 행복한지를 알아. 꽃은 마음을 안아 주는 누군가의 품 속 같은 거야. 내가 지치고 울적할 때, 또는 슬플 때, 꽃은 따뜻하고 다정하고 행복해. 그러니, 나, 절대로 그걸 잃으면 안 되겠지?’ (100쪽)


  꽃내음이 좋으면, 꽃들이 좋은 내음 물씬 풍길 수 있게끔 좋은 흙을 살리고 좋은 햇살을 비추도록 하며 좋은 바람이 부는 한편 좋은 물이 흐르는 터전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꽃내음보다 돈내음이 좋거나 애틋하다면, 어쩌는 수 없이 꽃터를 뒤엎어 아스팔트를 깔고 높은 건물을 세우며 돈벌이에 나서야 할 테지요.


  곧, 누구나 꿈꾸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누구라도 살아가는 결이 고스란히 꿈으로 바뀝니다.


  서로서로 아리땁게 이야기를 엮을 수 있지만, 서로서로 툭탁툭탁 다투거나 겨루면서 돈이든 이름이든 힘이든 더 차지하거나 홀로 차지한다며 아옹다옹할 수 있어요.

 

 


- ‘나도 모르겠어. 사람은 생각대로 간다는데, 왜, 난, 늘, 그에 대해 그런 슬픈 생각만 하는 걸까.’ (98쪽)
- “내가 다치면 마음이 아프니?” (201쪽)
- ‘이제 나 죽으면 나 죽어 기다리면, 그가 와 곁에 누워 줄까요? 여태 그랬듯이 이후로도 줄곧 달빛 찬 밤을 노래 불러 위안해 줄까요? 아니, 아니요, 나 죽으면 그는 남의 사람 될 터인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아니 오시겠지요.’ (213쪽)


  만화책 《바람의 나라》에 나오는 어른들은 무슨 꿈을 꾸나요. 만화책 《바람의 나라》에 나오는 아이들은 어떤 모습을 지켜보며 어른이 되나요. 만화책 《바람의 나라》에 나오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어떤 넋과 어떤 사랑으로 어떤 삶을 일구고 싶을까요.


  나는 오늘 이곳 내 좋은 보금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는 어떤 사람으로 아이들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나날을 누리려 하나요.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어른인가요.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인가요. 슬픔을 나누는 어버이인가요. 즐거움을 어깨동무하는 목숨인가요. (4345.3.15.나무.ㅎㄲㅅㄱ)


― 바람의 나라 1 (김진 글·그림,시공사 펴냄,199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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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책들을

 


 좋아하는 책들을 가까이 두고 자주 바라볼 수 있고, 언제나 꺼내어 펼칠 수 있는 일은 즐겁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집에서 날마다 얼굴을 마주 바라보며 지낼 수 있는 삶은 즐겁습니다. 좋아하는 밥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날마다 먹은 다음, 좋아하는 숲 곁에 마련한 좋은 보금자리에 모로 누워서 좋아하는 책을 펼치며 한숨 쉬고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봄햇살 맞아들일 수 있는 하루는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습니다. (4345.3.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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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단골가게 - 서울의 열여섯 동네, 그곳에서 찾은 보물 같은 가게 이야기
박진주 글 사진 / 라이카미(부즈펌)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참 좋고 매우 기뻐 찍는 사진인가요
 [찾아 읽는 사진책 83] 박진주, 《서울, 단골 가게》(부즈펌,2011)

 


  서울 곳곳에 깃든 예쁘며 사랑스레 여길 만하다는 가게를 찾아다닌 이야기를 간추려 그러모은 《서울, 단골 가게》(부즈펌,2011)를 읽습니다. 《서울, 단골 가게》를 내놓은 박진주 님은 여행작가라 합니다. 서울이 좋고 서울 가운데 홍대가 좋아 홍대 언저리에 살림집을 얻어 지낸다고 합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일상처럼 누릴 수 있는 홍대 주민이 되고픈 마음에 이사까지 감행했으며, 모든 만남의 장소를 무조건 홍대로 정했다(10쪽).” 하는 말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참말, 누구나, 스스로 가장 좋아할 수 있는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살아가야 즐겁습니다. 스스로 가장 좋아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살기 힘들어요. 살아가는 재미를 맛보지 못해요.


  나는 1995년 봄부터 2003년 가을까지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서울에서 살림집 마련해서 살아갈 때에 내가 생각한 대목은 ‘서울 곳곳에 아름다이 뿌리내린 헌책방을 두 다리로 걸어서 가뿐히 오갈 만한 한복판이 어디인가’였습니다. 날마다 슬슬 걸어서 찾아갈 만한 헌책방이 몇 군데쯤 있는데다가 헌책방이 많이 몰린 신촌이나 청계천까지 걸어갈 만한 데라면, 때때로 홍제동이나 불광동이나 연신내까지, 용산이나 노량진이나 숙대앞이나 성북구청이나 길음동까지 걸어서 오갈 만한 데는 어디인가 하고 헤아릴 때에 ‘헌책방 마실 좋아하는 사람이 살기에 좋은 데’는 종로구 평동이나 서대문구 냉천동 또는 현저동’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이 세 군데를 두 발바닥 닳도록 걸어서 돌아다니며 빈집이나 빈방을 알아보았고, 이 가운데 종로구 평동에 살림집을 얻었어요. 내 마음으로는 멧비탈에 자리해 서울 시내 두루 돌아볼 수 있던 서대문구 냉천동 달동네 집이 더 좋았지만, 내 살림 모두를 차지하는 꽤나 많은 책을 실은 짐차가 달동네 집으로 올라갈 수 없더군요. 비알이 대단해 걸어서 올라가기에도 숨이 찼습니다. 그런데 종로구 평동 적산가옥 집으로도 짐차는 들어가지 못해 골목 바깥에 짐차를 부리고는 등짐으로 골목을 지나 2층까지 지고 날랐어요. 무거운 책꽂이도 혼자서 낑낑거리며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가며 올렸습니다.

 


  박진주 님은 “실제로 여행작가가 된 후 그 로망을 비로소 실현했지만, 막상 현실 속의 그것은 생각했던 것처럼 멋있는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마감에 쫓기고 적절한 글이 떠오르지 않아 오만상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었다(80쪽).” 하고 말합니다. 글쎄, 꿈이 얼마나 멋스러웠는지 모를 노릇이나, 꿈을 이루는 일이란 ‘한 번 하고 그치’지 않아요. 꿈을 이루었다 할 때에는 이제부터 날마다 누립니다. 곧, 날마다 누리며 날마다 스스로 멋진 삶이 돼요. 박진주 님은 틀림없이 멋진 꿈을 이루었다 할 테지만, 꿈과 달리 삶은 ‘하루하루 쫓기는 모양새’였기에 멋진 이야기를 스스로 빚으면서도 얼마나 멋진가를 더 살 속 깊이 받아들이지 못했구나 싶습니다.


  이 아쉬운 대목은 박진주 님 사진 곳곳에 시나브로 드러납니다. 박진주 님은 스스로 좋아하며 즐겨 찾아다녔다 하는 서울 시내 온갖 예쁘장하다는 가게를 골고루 보여주지만, 이 가게들마다 어떠한 모습과 어떠한 느낌이 더없이 사랑스럽다고 느꼈는가 하는 대목을 사진으로 알뜰히 보여주지 못합니다. 가게 간판을 보여주거나 실내장식을 보여주는 사진이 너무 많습니다.


  간판만 예쁘게 보인대서 이 가게에 들어가지는 않잖아요. 이름만 예쁘장하다거나 실내장식만 예쁘장하대서 이 가게를 사랑스레 여기지는 않아요. 가게마다 다 다른 빛깔이란 무엇일까요. 가게마다 다 달리 즐길 아름다운 꿈과 사랑과 이야기란 무엇인가요. 사진으로 보여주고 글로 풀어낼 때에는 바로 이 대목을 짚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파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진열장 앞에 서면 오늘은 어떤 걸 먹어야 할지 행복한 망설임에 한참을 서성이게 된다(165쪽).”는 말처럼, 박진주 님이 찾아다닌 가게들마다 ‘다 달리 겪고 다 달리 느꼈으며 다 달리 받아들인 이야기’를 풀어내야 《서울, 단골 가게》를 즐거이 읽을 만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한다면 ‘이 가게는 나도 알아’라 말한다든지 ‘이 가게는 모르던 곳이네’ 하고 지나치면 끝입니다. 이 책에 실린 가게가 앞으로 사라진다면, 또는 어디로 옮긴다면, 그때에 이 책 값어치는 어떻게 될까요. 이 책에 실린 가게가 사라지든 오래오래 이어지든, 가게마다 느낀 내 좋은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에 비로소 ‘여느 가게’ 아닌 ‘단골 가게’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 단골 가게》 꾸밈새로 볼 때에는, 아무래도 ‘단골’이라는 이름은 걸맞지 않고 ‘들른 적 있는’밖에 안 되는구나 싶어요.


  “서울에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가장 예쁜 가을을 볼 수 있는 곳이라 믿을 만큼 단풍이 든 삼청동은 정말 아름답다. 빨갛고 노란 단풍,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과 돌담이 어우러져 어느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엽서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담긴다(180쪽).”는 대목에 밑줄을 긋고 생각합니다. 참말 아름답다고 말할 만한 모습이란, 사진기를 들이대며 어떤 모습을 담더라도 아름답다고 느낄 만한 모습이란, 사람들이 가게를 꾸미거나 짓거나 다듬는 모습이 아닙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찬찬히 흐르는 자연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할 만한 모습입니다. 새싹이 돋고 푸른 빛깔 잎사귀가 빛나며 사르르 물들다가는 앙상하게 잎이 진 모습이 오래오래 바라보며 두고두고 사귈 모습입니다.

 


  숱하디숱한 가게들 또한 바로 이 자연을 한껏 받아들일 때에 더욱 빛납니다. 은행잎이 가게 앞에 점점이 박힐 때에, 단풍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가게 앞을 거닐 때에, 흰눈 소복소복 내린 깊은 밤 가게에서 창밖을 내다볼 때에, 사뭇 다른 이야기 사뭇 다른 사랑을 깨닫습니다.


  “무엇보다 효자동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만약 이 동네에 산다면 내가 원하는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을 동네 안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232쪽).” 하는 말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그래요. 우리한테 좋은 삶이란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삶일 테지요. “언제나 누리는 가장 작은 일”이 즐겁겠지요. 늘 하는 작디작은 일이 아름답고, 날마다 부대끼는 밥하기·설거지·청소·빨래야말로 내 삶을 북돋우는 가장 좋은 일이 될 테지요. 단골로 삼으려는 가게마다 느끼거나 받아들이는 즐거움이란 대단하거나 커다란 데에 있지 않아요. 작은 한 가지 때문에 즐거워요. 작은 한 가지가 있어 즐거워요. 작은 한 가지를 찾아 밥집이든 찻집이든 옷집이든 술집이든 책집이든 찾아갑니다. 작은 한 가지를 함께 누리는 좋은 짝꿍이거나 동무이거나 옆지기입니다. 작은 한 가지를 놓고 오래도록 이야기꽃 피우는 내 동무들이요 이웃들입니다. 작은 한 가지를 선물하고, 작은 한 가지를 선물받습니다. 글이란, 작은 한 가지를 적바림하는 글입니다. 사진이란, 작은 한 가지를 아로새기는 사진입니다.


  박진주 님은 “집에서 독립하게 되었을 때 가장 기뻤던 것 중 하나가 이제 나만의 찬장에 예쁜 그릇을 모아 놓고 원없이 쓸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339쪽).” 하고 말합니다. 가장 기쁜 일, 가장 즐기는 일, 가장 사랑스러운 일, 가장 좋아하는 일, 가장 무엇무엇하는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란, 참말 작고 또 작다고 느낍니다. 가장 바라며 가장 기다리고 가장 손꼽는 일이란, 더없이 작고 그지없이 작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사진을 찍을 때에 기쁠까요. 우리들이 저마다 참 좋아할 만하고 매우 기뻐할 만한 글이나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참 좋고 매우 기쁠 때에는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사진을 찍나요. 오늘 찍은 사진은 참 좋고 매우 기뻐 찍은 사진인가요. 오늘 쓴 글은 참 좋고 매우 기뻐 쓴 글인가요.


  부디, 마감이나 돈이나 무엇무엇에 쫓기며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디, 참 좋아할 때에 글을 쓰고 매우 기쁠 때에 사진을 찍기를 바랍니다.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쓰는 글이란 슬픕니다. 누구한테 자랑하려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란 없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좋고 스스로 즐거웁자고 여행을 다닙니다. 스스로 좋고 스스로 즐거웁자며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살림을 합니다. 스스로 좋고 스스로 즐거웁자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사랑을 꽃피웁니다. (4345.3.15.나무.ㅎㄲㅅㄱ)


― 서울, 단골 가게 (박진주 글·사진,부즈펌 펴냄,2011.7.11./1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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