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만화영화 보는 책읽기

 


  일본사람 후지코 후미오 님 만화책 《도라에몽》은 천 번이 아니라 만 번을 보아도 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느낀다. 한국사람 이진주 님 만화책 ‘하니’ 연작 가운데 널리 알려진 《달려라 하니》와 《천방지축 하니》 또한 천 번이 아닌 만 번을 보아도 늘 새롭구나 하고 느낀다.


  오늘도 두 아이와 함께 《도라에몽》 만화영화 두 꼭지를 보았고, 다음으로 《천방지축 하니》 만화영화를 보는데, 이 만화영화를 한두 번 아닌 참 숱하게 많이 보았는 데에도 다른 일을 할 수 없도록 이야기가 나를 사로잡으면서 눈물을 쏟게 한다. 아마, 어른들한테 《토지》나 《혼불》 같은 작품이 아이들한테는 《도라에몽》이나 《하니》나 《둘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도라에몽》은 배경그림 하나까지 놀랍도록 훌륭하고, 《하니》와 《둘리》는 밑그림이 여러모로 어설프지만, 마음을 잡아끄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서로 같다.


  1970년대나 1980년대 아닌 2010년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담으면서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나누려는 만화로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 한국에서는. 4346.7.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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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짝물

 


  한여름 무더위 내리쬐는 한낮, 아이들과 더위 식히러 어디를 다닐까 생각하다가, 마을에서 천등산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골짜기가 떠오른다. 발포 바닷가에는 사람이 많아 아이들이 느긋하게 놀기 어려울 테고, 짠물에서는 모래알 씻기느라 번거롭다. 올해에는 아직 골짝물에서 놀지 않았구나 싶기도 해서,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에 두 아이 태우고 달린다. 저번에 이곳으로 올 적에는 걸어서 왔다. 오늘은 자전거로 달리는데, 생각보다 비탈이 가파르다. 아니, 맨몸 자전거라면 이만 한 비탈이야 거뜬히 올라갈 테지만, 수레에 샛자전거를 달았으니 비탈에서 낑낑댄다.


  무거운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로는 벅차다 싶은 데는 내려서 자전거를 끌어당긴다. 비탈이 끝나면 다시 자전거를 달린다. 비탈이 또 높으면 내려서 자전거를 끌어당긴다. 이때에 큰아이가 샛자전거에서 내리며 “나도 내려서 달릴래.” 하고 말해 준다.


  이윽고 골짜기에 닿는다. 골짜기는 지난해 가을에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달리 끔찍하게 파헤쳐졌다. 우거진 나무와 자연스럽던 고불고불한 물줄기가 사라졌다. 억지로 시멘트 둘러치고 억지로 땅 파헤치고 억지로 나무 베어 치운 티가 또렷하다.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이럭저럭 물놀이를 할 만하다. 군 행정이 이렇게 망가뜨렸어도, 열 해 지나고 스무 해 지나면 물살에 따라 모난 돌멩이 다시 동글동글해질 테고, 우리 아이들 커서 어른 되고 저희 아이들 새로 낳으면 그때에는 새삼스럽게 달라지는 아름다운 골짝물로 돌아오리라 생각한다.


  얘들아, 들어 보렴. 이렇게 관청 사람들이 망가뜨리고 나무를 베어 넘겼지만, 나무는 아직 많이 남았고, 이 나무마다 매미가 신나게 운단다. 매미소리와 함께 골짝물소리 한껏 누리자. 4346.7.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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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농약 항공방제

 


친환경농약 항공방제 헬기
우리 집 파란 대문 위로
포록 치솟더니
마당으로 농약 쫘악 뿌려
햇볕에 말리던 이불 옷가지를
마당에서 놀던 아이들 머리를
옴팡 적신다.

 

바로 대문 박차고 나가
헬기농약 뿌리는 농협직원더러
뭐 하는 짓이냐 따지니,
“인체에 무해합니다.” 한다.

 

헬기농약 뿌리기 멈추지 않는
농협직원한테 대고
꽥꽥 소리지르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농약헬기 찍은 사진을
시골 인터넷신문에 올린다.

 

한 시간이 안 되어
항의전화 빗발친다.
친환경농약인데 왜 그러느냐,
시골 할배 대신 농약 쳐 주니 좋은 일이다,
귀촌한 젊은 사람이 뭘 모르는갑다,
이 소리 저 소리 듣는다.

 

나는
조용히 암말 않는다.

 

하루 지나서
농협 도화면 지부장과 수행원들이
이장 어른 이끌고 찾아와
시골 인터넷신문 기사 내려라 한말씀.

 

어느 누구도
아이들이 농약 뒤집어쓴 일
사과하지 않는다.

 

나는
시골 인터넷신문 조그마한 기사
내리지 않는다.

 

기사제목 슬쩍 바꾼다.
처음에는 “죽고 싶으면 고흥쌀 먹어라?”,
이제는 “아이들한테 농약 뿌리는 항공방제”.

 

항공방제 사흘 내리 들이부은 뒤부터
마을에 논개구리 몽땅 죽고
제비 나비 잠자리 크게 준다.

 

그래,
사람은 아직 안 죽었네.

 


4346.7.2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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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30 09:26   좋아요 0 | URL
헬기로 뿌려댄 농약이 마당에서 놀던 아이들 머리를 옴팡 적신다,는 귀절에
아이구,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네요..

그래,
사람은 아직 안 죽었네.-
뭐라 할 말이 없군요...ㅠㅠ

파란놀 2013-07-30 11:07   좋아요 0 | URL
할 말 없던 일이지만,
돌이켜보니
이렇게 시 하나 쓸 수 있게 해 주었어요......
 

다시 '어른시'를 쓰기로 한다.

한 해에는 동시를 쓰고

다음 한 해에는 어른시를 쓸 생각이었는데,

굳이 갈마들며 쓰지 말고,

그때그때 쓰자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어느 출판사에서

아직 시집을 한 권도 안 냈으나,

앞으로 시집을 내겠다며

'기존 출판사와 문단'에서

받아들여 주지 않는 '숨은 작가'

시집을 먼저 20권 내고

앞으로 꾸준히 낸다고 한다.

 

옳거니,

바로 '나를 두고 하는 기획'인가,

하고 혼자서 생각한다.

 

시골에서 아이와 함께 살며

자전거 타는 아저씨 이야기를

시집 하나로 영글고 싶다.

 

어제부터 새로 '어른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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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쓰는 재미

 


  ‘읽을 만한 국어사전이 없다’고 느껴, ‘언젠가는 내가 스스로 국어사전을 만들어야겠어’ 하고 생각한 때가 1994년이다. 이때부터 어느덧 스무 해 흐른다. 2013년 한여름, 올 한글날에 내놓을 ‘어린이 우리 말 이야기책’에 넣을 ‘낱말풀이’를 한참 달다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는다. 벌써 이렇게 흘렀나 싶어 부랴부랴 일을 마무리짓는다. 옆지기가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기에 홀로 집일 건사하면서 아이들과 놀며 지내야 하는데, 밤을 지새우고 새벽까지 잠들지 않으면, 아침이 힘들다. 낮에 더 일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려 한다. 그런데, ‘낱말풀이 새롭게 붙여서 쓰는’ 일이 아주 재미있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아주 빠르게 흐른다. 쓰고 싶은 글을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일 테지. 스무 해 동안 벼르면서 꿈꾸던 일을 비로소 붙잡기 때문일 테지. 내 스무 살 적에 내 마흔 살 언제 다가오는가 하고 손꼽으면서, 마흔이 되는 날까지 씩씩하게 한길 달리자고 생각한 대로 스무 해를 살았다. 지난 스무 해에 걸쳐 한국말을 익히고 가다듬은 결을 살려 2014년에는 ‘어린이 첫 국어사전’ 한 권을 기쁜 웃음꽃 피우면서 신나게 쓰자. 4346.7.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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