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파스 먹기

 


  세 살이라지만 아직 서른 달째 함께 살아가는 작은아이가 오늘 아침에 또 크레파스를 몰래 씹어먹는다. 얘야, 크레파스에서 단물이 나오니. 크레파스 알록달록한 빛깔이 야금야금 씹어먹기에 맛나 보이니.


  작은아이 자그마한 이에 낀 크레파스를 손가락으로 빼낼 수 없다. 잇솔을 써서 살살 비벼 빼낸다. 잇솔로 안 되는 굵직한 조각은 포크를 써서 살살 바수어서 잇솔로 비벼 빼낸다. 이렇게 해도 다 빠지지 않으니, 잇솔에 잇약을 발라 이를 헹구면서 크레파스가 녹도록 한다. 한참 잇솔질을 하고 물을 입으로 가르르 하고 뱉으라 한 끝에 비로소 크레파스 기운을 다 빼낸다. 작은아이는 입을 앙 벌리느라 고되고, 아버지는 작은 입을 벌려 잇솔로 크레파스 조각 헹구느라 고단하다.


  배고프니? 배고플 적에는 배고프다고 말하렴. 밥을 차려서 먹자고 할 적에 배부르게 잘 먹으렴. 크레파스는 입에 넣지 않고, 손에 쥐어 그림을 곱게 그릴 때에 쓴단다. 4346.9.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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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9-22 13:44   좋아요 0 | URL
귀여운 작은아이 덕분에 크레파스 이름을 간만에 여기서 보네요.^^
크레파스 안 본직도 참 오래 되었고요..
크레파스는 절대로 먹으면 안 되는데...
작은아이는 괜찮지요?

파란놀 2013-09-23 08:29   좋아요 0 | URL
네, 하도 자주 먹다 보니까... @.@
그리고, 크레파스는 고스란히 똥으로 나와요.
똥에 크레파스 조각이 촘촘히 박힌 채 나와요 @.@
 

여름비

 


달포 남짓 가물던 땅에
늦여름 빗줄기 듣는다.

 

고들빼기꽃 하얗게 빛난다.
부추꽃 흰 다발 눈부시다.
까마중꽃 하얀 무늬 곱다.

빗물 먹으며 이삭이 굵고
빗물 받으며 열매가 익는다.

 

빗소리는 처마를 흐르고
빗노래는 개구리와 싱그러이 잔치.

 

달과 해와 별과 무지개는
이 비에 함께 젖을까.
이 비를 기쁘게 바라볼까.

 

어린 아이들 맨발로 비를 밟는다.
어린 아이들 맨손으로 비를 받는다.
어린 아이들 맨몸으로 빗놀이 누린다.

 

빗물은 땅속으로 스며
우물물 냇물 되고,
빗물은 숲 들 지나
너른 바다 된다.

 

지난해 내린 빗물 먹고 자란 쌀
그러께 내린 빗물 스민 샘물 길어
오늘 아침 지어 먹는다.

 


4346.8.2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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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9-22 13:44   좋아요 0 | URL
<여름비> 시가 참 좋습니다~!!^^

파란놀 2013-09-23 08:2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긴 여름 내내 가물다가
비가 오던 날 마루에 앉아서
이 시를 썼어요~

appletreeje 2013-09-22 23:11   좋아요 0 | URL
어쩜 이렇게 '여름비'에 딱 맞는 시를 쓰셨을까요~!!
거듭 읽고 또 읽어 볼수록...여름비가...스르르, 몸과 마음에 스며드네요~*^^*

파란놀 2013-09-23 08:25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비 올 적에 맨발로 노는 모습을 보며
저도 어릴 적에 우리 아이들처럼 놀았구나 하고
떠올리니
저절로 이 글이 태어났어요~
 

어른이 쓰는 ‘동시’와 어린이가 쓰는 ‘어린이시’를 제대로 나누면서 둘을 살피고, 아이들이 즐겁게 누리면서 맞아들일 ‘시 문학’이란 무엇이며, 아이들은 도시와 시골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가를 찬찬히 들여다본 첫 ‘어린이문학 평론’은 바로 《아동시론》(세종문화사,1973)이라 할 수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집에서는 아이들을 보살피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아이들이 누릴 삶과 문학과 사랑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어른이 몹시 드물다. 교사나 어버이가 되려는 어른이라면, 교육이론서나 육아지침서 같은 책에 앞서, 어른으로 살아가는 이녁 넋과 얼을 가꾸는 이야기를 살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누런종이에 한자 그득 깃든 1973년 판 《아동시론》은 진작에 읽었기에 2006년에 정갈하게 갈무리해서 엮은 《아동시론》(굴렁쇠)은 다시 읽지 않았는데, 우리 집 큰아이가 여섯 살로 접어들면서 문득 무언가 느껴 새롭게 읽어 본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은 언제나 ‘시인’이 되어 아이한테 들려주는 말이 모두 시요 노래요 사랑이 되도록 삶을 일굴 수 있어야 하는구나 하고 다시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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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시론- 굴렁쇠 생각 3
이오덕 지음 / 도서출판 굴렁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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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날 책읽기

 


  명절에 모인 살붙이들이 도란도란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면 종이책을 굳이 꺼내어 펼치지 않습니다. 누군가 텔레비전을 켜고, 하나둘 텔레비전으로 눈길을 모으면, 따로 종이책을 슬그머니 꺼내어 천천히 읽습니다. 아이들이 이곳저곳 신나게 뛰고 달리면서 논다면, 명절날 구태여 종이책을 꺼내거나 들추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른들한테 텔레비전 만화영화를 조르며 그예 한참 만화영화에 빠져들면, 이것 참 너무 재미없는 노릇이로구나 싶어 조용히 종이책을 꺼내어 혼자 읽습니다.


  명절날에는 책을 쉬고 싶습니다. 아니, 명절날에는 책을 쉬어야 한결 즐겁지 싶습니다. 명절날에는 이야기꽃이 반갑고, 명절날에는 사람책을 읽을 때에 한껏 홀가분하게 놀 수 있습니다. 4346.9.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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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꽃잔치 책읽기

 


  올해에는 우리 집 마당에서 돋는 쑥풀을 잘 건사한다. 쑥쑥 자라 밑줄기는 나무처럼 두껍고 단단한 쑥풀이다. 늦여름까지 넓고 크게 퍼지던 잎사귀는 가을로 접어들어 거의 사라지면서 조그맣게 홑잎만 남더니, 어느새 꽃잔치를 벌인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몇 군데에만 꽃대와 꽃봉오리 나오지만, 이내 모든 줄기가 꽃대가 되고 모든 꽃잎이 홑잎으로 바뀌면서 꽃망울 터뜨리는 데에 기운을 그러모은다.


  꽃이 피고 씨앗을 맺어야 이듬해에 새로 자랄 수 있다. 꽃이 생기고 열매를 떨구어야 어린 풀 새로 돋아 흙을 살찌운다. 쑥풀은 쑥풀내음을 퍼뜨려 마을에 푸른 기운 베푼다. 쑥꽃은 쑥꽃내음을 흩뿌려 마을에 옅붉은 노래를 들려준다. 노을빛 닮은 쑥꽃이 올망졸망 흔들리며 따사롭다. 4346.9.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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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22 23:14   좋아요 0 | URL
정말 신기해요...!
저도 보슬비님 말씀처럼 쑥에도 꽃이 핀다는 것을 잊고 있었네요..^^;;
정말 하느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귀한 사진을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파란놀 2013-09-23 08:28   좋아요 0 | URL
쑥꽃이 흐드러질 적에는
이 사진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잎사귀조차 모조리 사라진답니다~
가까이에서 한참 들여다보아야
이 꽃 모습 즐길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