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골

 


  새책방이나 도서관에는 ‘책골’이 생기지 않습니다. 새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책골을 만들 까닭이 없겠지요. 책꽂이에 꽂을 책이 넘치는 바람에 바닥에 책탑을 쌓는 헌책방에는 으레 책골이 생깁니다. 새책방에서는 책꽂이가 넘치면 반품을 해서 책꽂이를 비웁니다. 도서관에서는 책꽂이가 다 차면 대출실적 적은 책부터 폐기 도장 찍어 버리며 책꽂이를 홀가분하게 합니다. 헌책방에서는 이 책도 저 책도 섣불리 버리거나 치우거나 반품하지 못합니다. 어느 책이건 언젠가 아름다운 책손 하나 찾아와서 아름다운 손길로 거두어 가리라 여겨, 고이 건사합니다.


  책 하나 고이 건사하는 손길이 책탑을 쌓고, 책탑과 책탑은 서로 어깨를 기대어 책골이 생깁니다. 책골은 반듯하기도 하지만 기우뚱하기도 합니다. 어느 책손은 책골이 무너지지 않게끔 다독여 줍니다. 어느 책손은 책골이 무너지거나 말거나 엉덩이로 툭 치든 가방으로 퍽 치든 합니다.


  책골 사이로 책이 보입니다. 책탑이 가린 뒤쪽 책들이 책골 사이로 고개를 내밉니다. 이 책골이 사라지도록 누군가 책꾸러미 잔뜩 사들일까요. 이 책골이 낮아지도록 누군가 책보따리 잔뜩 장만할까요.


  다 다른 책들이 다 다른 모양새로 꽂혀 다 다른 책손을 기다립니다. 4346.3.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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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나비

 


  종이에 연필로 나비를 그린다. 가위를 든다. 슥슥삭삭 하고는 종이나비를 빚는다. “예쁜 나비예요.” 하고 말한다. 그래, 나비도 예쁘고 네 손도 예쁘며 네 모습도 예쁘구나. 우리는 잠자리를 그려 종이잠자리를 빚을 수 있고, 해를 그려 종이해를 빚을 수 있단다. 무지개를 빚을 수 있고, 꽃을 빚을 수 있어. 종이로 빚고, 마음에 빚으며,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마주할 수 있어. 어느새 겨울이 저물고 봄이 찾아들면서 마당을 가로지르는 나비를 본다. 나비를 바라는 네 마음이 나비들 겨울잠을 깨우는구나. 4346.3.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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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36 : 붉게 충혈된

 


토마토의 눈들이 붉게 충혈됐다 토마토들처럼 그의 머리칼에서도 상한 냄새가 흘러내렸다
《이경임-부드러운 감옥》(문학과지성사,1998) 79쪽

 

  “토마토의 눈들이”는 “토마토 눈들이”로 다듬고, “그의 머리칼에서도”는 “그이 머리칼에서도”나 “그 사람 머리칼에서도”나 “이녁 머리칼에서도”로 다듬습니다. 토씨 ‘-의’는 굳이 안 붙여도 됩니다. 문학에서건 여느 자리에서건 쓸 일이 거의 없습니다. ‘상(傷)한’은 ‘썩은’으로 손봅니다.


  한자말 ‘충혈(充血)’은 “몸의 일정한 부분에 동맥피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모임”을 뜻한다고 합니다. 쉽게 적바림한다면 “피가 몰림”, 또는 “피 몰림”이라 적을 만한데, “피몰리다” 같은 한국말을 새로 지어서 써도 어울리겠구나 싶어요.

 

 눈들이 붉게 충혈됐다
→ 눈들이 붉게 피가 몰렸다 (?)
→ 눈들이 붉어졌다
→ 눈들이 붉다
 …

 

  그런데, 이 보기글에서 “붉게 충혈됐다”를 뜻에 알맞게 “붉게 피가 몰렸다”로 손질하고 보면, 어딘가 얄궂습니다. 어설퍼요. 왜 그럴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니, 피는 붉은 빛이고, 피가 몰린다고 하면 더 붉은 빛깔이 되기 때문이로구나 싶습니다. 곧, “피가 몰렸다”이든 “충혈됐다”이든 “붉어진다”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눈들이 붉어졌다”라든지 “눈들이 붉다”라고만 적어야 올바릅니다. 4346.3.10.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토마토 눈들이 붉다 토마토들처럼 그이 머리칼에서도 썩은 냄새가 흘러내렸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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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12. 책을 읽는 자리 - 헌책방 공씨책방 2013.3.5.

 


  마음을 사로잡는 책은 마음을 살찌웁니다.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은 마음을 북돋웁니다. 마음을 사로잡는 숲은 마음을 일으킵니다. 마음을 사로잡는 빛은 마음밭에 씨앗 하나 뿌립니다.


  책방에서 책을 읽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습니다. 집에서 책을 읽고, 길에서 책을 읽습니다. 책방에 선 채 책을 읽으며, 책방 바닥에 앉아 책을 읽습니다. 잠자리에 드러누워 눈을 붙이기 앞서 책을 읽다가, 밥을 끓이면서 책을 읽습니다.


  책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아름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깃듭니다. 책에는 사람과 이웃한 벌레와 풀과 새와 물고기와 짐승과 나무가 푸른 숨결 나누는 이야기가 감돕니다. 책에는 사람들이 따사로운 넋으로 일구는 하루하루 삶자락이 스밉니다. 책에는 사람이 마시는 바람과 물과 하늘과 흙이 어우러지는 따스한 기운이 뱁니다.


  사람이 있어 책이 태어나고, 책이 있어 사람들 스스로 오늘을 되짚으며 생각을 추스릅니다. 생각을 열어 꿈을 여는 날갯짓 펼치는 사람들 자라고, 책이 있어 사람들 슬기와 깜냥을 차근차근 갈고닦으면서 알뜰살뜰 엮습니다.


  책 하나 읽을 수 있는 자리 있기에, 책방이 서고, 마을이 흐르며, 보금자리가 넉넉합니다. 4346.3.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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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집게 꼭 물고

 


  다 마친 빨래를 마당 평상에 내려놓는다. 이제 하나씩 옷걸이에 꿰어 널거나 빨래집게로 집어 빨래대에 널려 하는데, 큰아이가 쪼르르 다가와서 “나도 해야지.” 하고 말한다. 큰아이는 입술로 빨래집게를 하나씩 물고 찬찬히 빨래를 꽂는다. 제법 잘 하네. 언제나 아버지 어머니 빨래널기를 지켜보았을 테니, 곧 손에 익으며 멋스레 잘 할 만하겠지. 하나씩 둘씩 넌다. 셋씩 넷씩 넌다. 그러다가, 제 동생이 두발자전거를 슬슬 밀며 놀라 하니, 어느새 알아보고는 “안 돼! 내가 탈 거야!” 하고 외치고는 빨래널기를 그만둔다. 콩콩 달리며 자전거를 붙잡고 서로 씨름하며 타겠거니 밀겠거니 한다. 4346.3.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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