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에서

 


  세 살(이라지만 아직 스물아홉 달)인 작은아이는 보름쯤 앞서까지만 해도, 서재도서관 가는 길목 풀밭을 혼자 안 걷겠다고 앙앙 울어댔다. 그런데 이제는 풀밭길 거닐며 넘어져도 씩씩하게 일어날 뿐 아니라, 때로는 일부러 풀밭길에서 넘어지며 까르르 웃기까지 한다. 처음에는 아직 낯익지 않았겠지만, 아버지와 누나하고 거의 날마다 이 풀밭길 오가면서 비로소 느꼈겠지. 누나는 이 풀밭길을 아주 씩씩하게 다니며 재미나게 노는데, 아버지 품에 안겨 풀밭길을 가로지르면 어쩐지 재미없잖아.


  나도 어릴 적에 이를 또렷하게 느꼈다. 국민학교 적에 흙운동장에서 넘어지면 무릎이나 이마나 팔꿈치까 까지거나 긁히며 조금 피가 나기도 하지만, 피가 안 나고 긁히기만 하기 일쑤이다. 이와 달리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땅바닥에 넘어지거나 자빠지면 되게 아플 뿐 아니라 곧바로 피가 철철 솟는다. 자전거를 달리다가 흙길에서 넘어지면 거의 안 다치지만, 자전거를 달리다가 아스팔트길에서 넘어지면 몹시 크게 다칠 뿐 아니라, 자동차한테 받칠 수도 있다.


  풀을 잊은 사람들은 풀내음이 우리 목숨을 어떻게 살리는가를 함께 잊는다. 풀과 등을 진 사람들은 풀빛이 우리 넋을 어떻게 살찌우는가를 함께 등지고 만다.


  사람들 누구나 풀밭에서 일하고 놀며 어울릴 수 있기를 빈다. 사람들 누구나 풀밭에 드러누워 낮잠을 즐기고 등허리를 펴면서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면서 마음결을 파랗고 푸르게 가꿀 수 있기를 빈다. 4346.10.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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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냄새·나무냄새·풀냄새 (도서관일기 2013.10.5.)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곰팡이가 핀 책꽂이에 니스를 바르고 보름이 더 지난다. 이 책꽂이가 어떻게 되나 한참 지켜보았는데 다시 곰팡이가 오르지는 않는구나 싶다. 잘 되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니스를 발라서 말리고, 곰팡이가 핀 책꽂이는 책과 자료를 모두 들어내어 곰팡이를 닦고는 며칠 말린 뒤 다시 니스를 발라서 또 며칠을 말리고, 이렇게 하나하나 손질하고 니스를 바르고 닦고 말리고 하면서 달포쯤 지나면, 도서관 책꽂이 갈무리는 올해에 이럭저럭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듯하다.


  아이들과 도서관에 가서 책꽂이를 닦고 니스를 바르면, 책꽂이 하나 반쯤 겨우 닦고 니스를 바른다. 책꽂이 칸마다 꼼꼼히 발라야 하기에 일이 더디다. 니스 냄새에 머리가 어지럽다. 그러니 더 많이 닦거나 바르지 못한다. 아이들도 두 시간쯤 놀다 보면 배가 고프다고 아버지를 부른다.


  나도 요 몇 해 사이에 비로소 깨달았는데, 아마 여느 사람들도 잘 모르리라. 책방 일 오래 한 분들 아니고는 잘 모르리라. 나무로 제대로 짠 책꽂이에는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 합판으로 짠 책꽂이에는 곰팡이가 쉬 오른다. 나무로 탄탄히 짠 책꽂이는 휘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한 해 두 해 열 해 스무 해 지날수록 책꽂이 냄새가 고즈넉하게 감돈다. 합판으로 짠 책꽂이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조금도 안 난다. 오히려, 합성수지 냄새를 빼내야 하니 골이 아프다.


  정갈하게 잘 빚은 책에서는 고운 책내음이 흐른다. 책내음이란 종이와 잉크가 섞인 냄새이다. 종이란 숲에서 자라던 나무이다. 곧, 책내음이란 나무내음이면서 숲내음이요, 햇볕을 받고 바람을 쐬며 빗물을 마시던 숨결이 사람들한테 새로운 빛으로 다가와 들려주는 이야기라 할 만하다.


  책내음이 오래오래 알뜰살뜰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니스를 발랐다. 니스가 책한테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 느끼지만, 앞으로 돈을 넉넉히 벌어 도서관 건물을 사들이고 좋은 나무로 책꽂이를 모두 다시 짜는 날까지 아쉬운 대로 ‘합판 책꽂이’들이 책을 잘 보듬어 주기를 빌고 또 빈다. 작은아이가 도서관 드나드는 풀밭길을 처음에는 싫어하더니 이제는 잘 걷는다. 재미를 붙인 듯하다. 왜 여기 풀을 안 베느냐 묻는 분이 있지만, 아이들이 풀밭길 밟고 다니는 재미와 즐거움 누리도록 하고 싶어서 조금만 베고 더 안 벤다. 너무 웃자라면 조금 벨 뿐, 아이들 무릎만큼 자라는 풀은 그대로 두어도 한결 낫다. 시골에서도 농약냄새 없는 풀을 밟을 만한 땅이 너무 없어, 우리 도서관에서만큼은 아이들도 손님들도 이 풀밭길 밟으면서 도서관 드나들기를 바라기도 한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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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0-0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너무 귀여워요 > <

책냄새, 풀냄새, 나무냄새 다 좋아합니다.^^

파란놀 2013-10-06 17:14   좋아요 0 | URL
책도 풀도 나무도 모두
아름다운 숲내음이지 싶어요~
 

사름벼리는 폴짝 어린이

 


  여섯 살 사름벼리는 그냥 걷거나 달리지 않는다. 걷다가 폴짝 뛰고, 달리다가 펄쩍 뛴다. 여섯 살 사름벼리는 그냥 말하지 않는다. 노래하듯이 말하고, 춤을 추면서 말한다. 이 아이들이 이렇게 폴짝거리고 노래하며 살아갈 수 있으니 기쁘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폴짝펄쩍 뛰고 놀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하루를 빚어야겠다. 4346.10.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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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0-06 12:31   좋아요 0 | URL
정말 사름벼리는 폴짝 폴짝 잘 뒤어요.ㅎㅎ
벼가 누렇게 잘 익었네요.^^

파란놀 2013-10-06 12:36   좋아요 0 | URL
네, 사진으로는 이렇게만 보이게 찍었지만...
올해는 고흥과 남도에 비가 거의 안 와서
멸구로 많이 쓰러졌답니다.

아무튼, 잘 뛰는 아이예요~

hnine 2013-10-06 17:43   좋아요 0 | URL
문득 궁금해서 여쭤보아요. '폴짝'이라는 말이 '어린이'라는 말 앞에서 꾸미는 말로 쓰일수 있는지요. 폴짝 뛰다, 폴짝거리다, 등, 움직임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이른바 '동사'라고 하지요) 말 앞에서 꾸미거나 자세하게 하는 말로 쓰이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파란놀 2013-10-06 17:17   좋아요 0 | URL
한국 말법에서는 그런 경계나 한계가 따로 없어요.
한국 말법에서는 주어나 서술어 없는 문장도 얼마든지 쓰지요.
그런데, 이는 다른 나라 말법에서도 똑같아요.

"폴짝 뛰는 어린이"에서 '뛰는'을 줄여도 얼마든지 말이 되니까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훌라우프 놀이 1

 


  마당에서 나무막대기로 놀던 아이들은 으레 훌라우프로도 논다. 큰아이는 한 달 두 달 나이를 더 먹으면서 허리에 훌라우프를 꿰고 돌리려 제법 용을 쓴다. 앞으로 일곱 살 여덟 살 되면 거뜬히 허리로도 돌릴 테지. 그러나, 두 아이는 허리에 꿰고 돌리기보다는 허리가 끼우고 마당을 달린다든지 서로 몸에 씌운다든지, 잡기놀이를 한다든지, 그저 커다랗게 동그란 훌라우프를 끼고 들며 달리는 놀이가 아직 더 즐겁고 재미나다. 4346.10.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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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0-06 12:32   좋아요 0 | URL
저도 훌라우프 잘 하는데 함께 놀고 싶네요.ㅎㅎ

파란놀 2013-10-06 12:37   좋아요 0 | URL
오... 후애 님한테 아이들이 배워야겠는걸요!
 

시골아이 21. 대문 앞에서 (2013.10.5.)

 


  자전거마실 나가기 앞서 대문을 연다. 대문을 열어야 샛자전거와 수레 붙인 긴 자전거를 밖으로 내놓을 수 있다. 대문을 열면 아이들이 먼저 대문 밖으로 나온다. 큰아이는 집부터 마당을 거쳐 대문 앞으로 나오기까지 춤을 춘다. 춤을 멈추지 않으면서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고, 작은아이는 누나 곁에서 누나가 하는 양을 따라하거나 꽁무니를 좇는다. 우리 집 앞 논은 아직 더 익어야 벨 수 있겠네. 가을바람 듬뿍 마시며 나들이를 가자.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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