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달걀 까기 힘들어

 


  달걀을 삶은 뒤 처음부터 주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밥을 어느 만큼 먹고 나서 주기도 한다. 달걀부침이나 달걀말이도 가끔 하지만, 달걀삶이를 더 자주 한다. 달걀을 삶아 놓고 깜빡 잊은 뒤, 밥을 한창 먹이다가, 아하 달걀도 삶았지, 떠올리고 보면, 이때에는 아이들이 깔 만큼 알맞게 식는다. 접시에 받쳐 아이마다 하나씩 건네면, 큰아이는 척척 잘 벗긴다. 작은아이는 울퉁불퉁 많이 어설프다. 그래도 가만히 지켜본다. 작은아이가 못 까겠다고 도로 내밀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본다. 4346.1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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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밥 먹는다

 


  볶음을 해서 밥과 반씩 갈라 접시에 담는다. 까마중 열매를 올린다. 그러고는 가을민들레 잎사귀 하나 얹는다. 즐겁고 맛나게 먹으렴. 냠냠짭짭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렴. 국물도 후루룩 밑바닥까지 삭삭 긁어 먹으렴. 4346.1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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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31. 2013.10.25.

 


  밥상을 차릴 적에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서로 마주보도록 밥그릇과 국그릇을 놓는다. 그런데, 곧잘 큰아이가 작은아이 밥그릇이랑 국그릇을 제 옆에 붙여 놓는다. “나는 보라랑 같이 앉을 거예요.” 하고 말한다.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하렴. 놀면서 자주 툭탁거리는데, 곧 서로 앙금을 풀고, 밥을 먹거나 마실을 다니거나 둘이 서로 챙겨 주곤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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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87) 시험 1 : 시험해 볼까

 

다시 한 번 시험해 볼까 … 얼마나 늘어나는지 시험해 보아야겠다
《이상교·심은숙-빨간 부채 파란 부채》(시공주니어,2006) 8, 20쪽

 

  국어사전을 들추면, 세 가지 ‘시험’이 나옵니다. 모두 한자말입니다. 첫째, ‘恃險’이라는 한자말이 나오고, 말뜻은 “험한 지형에 의지함”입니다. 둘째, ‘猜險’이라는 한자말이 있고, 말뜻은 “시기심이 많고 엉큼하다”입니다. 셋째, ‘試驗’이라는 한자말이 실리고, 말뜻은 “(1) 재능이나 실력 따위를 일정한 절차에 따라 검사하고 평가하는 일 (2) 사물의 성질이나 기능을 실지로 증험(證驗)하여 보는 일 (3( 사람의 됨됨이를 알기 위하여 떠보는 일”입니다.

 

  이 가운데 첫째와 둘째 한자말은 쓸 일이나 쓰일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한자말이 국어사전에 나옵니다. 이 한자말은 왜 국어사전에 실었을까요. 누가 이런 한자말을 쓴다고 국어사전에 버젓이 실었을까요.


  우리 국어사전은 한국말 담는 사전이라기보다, 지난날 권력자와 지식인이 중국 사대주의로 지내며 쓰던 중국한자말하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제국주의에 기대어 쓰던 일본한자말을 잔뜩 담는 사전입니다. 한국사람이 읽고 살필 만한 한국어사전이 못 됩니다. 생각해 보면 ‘국어사전’이라는 이름부터 옳지 않아요. ‘국어’라는 한자말은 일본강점기부터 일본제국주의가 ‘일본말’을 ‘國語’라고 가리키며 썼어요. 지난날 중국은 ‘중국어’라 했고, 우리 나라는 ‘조선말’이나 ‘조선어’라 했습니다. 일본은 마땅히 ‘일본어’라 해야 했는데, 태평양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으려던 제국주의 권력자와 지식인은 ‘일본어’ 아닌 ‘국어’라는 말을 썼어요. 그러니, 오늘날 이 나라에서 아직도 ‘국어’라는 낱말과 ‘국어사전’이라는 낱말 쓰는 일이란, 식민지 찌꺼기를 못 턴 모습일 뿐 아니라, 속속들이 식민지 물결을 뒤집어쓴 모습입니다. 얄궂은 찌꺼끼도 못난 속모습도 하나도 털지 못했으니 ‘국어사전에 실은 낱말’도 알량할밖에 없구나 싶어요.

 

 다시 한 번 시험해 볼까
→ 다시 한 번 해 볼까
→ 다시 한 번 볼까
 …

 

  국어사전에 나오는 한자말 ‘시험’ 가운데 셋째 것을 사람들이 씁니다. 학교에서 으레 시험을 치르고, 회사에서도 늘 시험을 치지요. 이런 자리에서 쓰는 ‘시험’은 다른 말로 고치기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중간시험’이나 ‘기말시험’이나 ‘면접시험’ 같은 이름도 얼마든지 고칠 수 있어요. 다만, 이런 이름을 고치자면 입시지옥을 뜯어고쳐야 합니다. 입시지옥을 뜯어고쳐 초·중·고등학교가 시험지옥에서 풀려나면, 그때부터는 시험 때문에 목을 매달 일이 없어요. 시험지옥과 입시지옥이 사라지면, 저절로 새 이름으로 ‘시험’을 가리킬 텐데, 아마 ‘시험’이 아주 없어지고,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겠지요.

 

 얼마나 늘어나는지 시험해 보아야겠다
→ 얼마나 늘어나는지 보아야겠다
→ 얼마나 늘어나는지 해 보아야겠다
 …

 

  삶에 따라 말을 지어서 씁니다. 삶이 사랑스러우면 말이 사랑스럽습니다. 삶이 쳇바퀴 구르듯 얽매이면 말도 쳇바퀴 구르듯 얽매이는 모습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가꾸며 살찌우려고 애쓸 적에, 말을 아름답게 가꾸며 살찌우려고 애씁니다. 삶과 말이 함께 흐르는 결과 무늬를 느끼면서, 내 마음 곱고 맑으며 착하게 가꾸는 말을 돌볼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1.8.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다시 한 번 해 볼까 … 얼마나 늘어나는지 보아야겠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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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86) 시작 39 : 부채질을 시작

 

김 서방은 부채질을 시작했어 … 다시 부채질을 시작했지 … 한번 궁금해지기 시작하자, 어디 견딜 수가 있어야지
《이상교·심은숙-빨간 부채 파란 부채》(시공주니어,2006) 4, 6, 20쪽

 

  예부터 한겨레가 쓴 일이 없던 한자말 가운데 하나인 ‘시작’이지만, 이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준비, 시작!” 같은 자리에서는 일본말 “요이, 땅!”이 “준비, 땅!”을 거쳐 잘못된 꼴로 뿌리내리는 모습이지만, 이를 바로잡는 교사와 어버이가 매우 드뭅니다. 한국말은 “하나, 둘, 셋!”이라고 말하거나 가르치는 어른을 찾아보기 아주 어려워요.


  교육대학교에서도 한국말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교사가 되는 젊은이 또한 스스로 한국말을 배우려 하지 못합니다. 이런 흐름을 바로잡지 않으면 한국말은 앞으로 어찌 될까요. 잘못된 정치 흐름이나 사회 흐름만 바로잡으려 애쓸 노릇이 아니라, 잘못된 말버릇과 말투 또한 바로잡으려 애쓸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올바로 배우며 슬기롭게 쓰도록 이끌 수 있어야지 싶어요.

 

 김 서방은 부채질을 시작했어 → 김 서방은 부채질을 했어
 다시 부채질을 시작했지 → 다시 부채질을 했지
 한번 궁금해지기 시작하자 → 한번 궁금해지자

 

  한자말 ‘시작’을 한 번 써 버릇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다른 한자말도 자꾸 쓰다 보면 손과 입에 익숙하게 달라붙습니다. 그러니까, 아름답고 알맞으며 올바른 한국말도 한 번 쓰고 두 번 쓰면서 차츰 익숙하게 다스릴 수 있습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 한국말을 차근차근 새로 배운다는 마음이 되어야지 싶어요. 4346.11.7.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김 서방은 부채질을 했어 … 다시 부채질을 했지 … 한번 궁금해지자, 어디 견딜 수가 있어야지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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