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베개 작은 베개



  일곱 살 큰아이가 제 베개를 안 쓰겠다고 한다. 큰아이는 어른들이 베는 큰 베개를 쓴다. 누나가 큰 베개를 쓰니 네 살 작은아이도 작은 베개를 안 쓰겠다고 한다. 이리하여 두 작은 어린이가 큰 베개를 쓴다. 작은 베개는? 작은 베개는 어른인 내가 쓴다. 4347.4.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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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이웃님이 선물한 책



  고운 이웃님이 책을 한 권 선보였다. 《처음 손바느질》(겨리 펴냄,2014)이라는 책이다. 손으로 조물조물 만져서 여러 가지를 빚는 이웃님은 이녁이 그동안 손빛을 뽐내어 누린 이야기를 책으로 갈무리했다. 고운 눈빛처럼 곱게 나온 책은 가만히 바라보아도 예쁘고 펼쳐서 읽어도 예쁘다. 아이들한테 물려줄 책을 나 스스로 쓰기도 하지만, 이웃님이 쓴 고운 책을 아이들한테 함께 물려줄 수 있을 때에 얼마나 즐거운가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내 이웃님이 쓴 책이기에 자꾸 들추거나 읽지 않는다. 눈길을 사로잡거나 이끄는 빛과 이야기가 있기에 찬찬히 되읽거나 다시 들춘다. 짧고 가볍게 느낌글을 하나 쓰고, 살짝 들여다보는 느낌글을 하나 쓴다. 깊이 들여다보는 긴 느낌글을 곧 쓸 생각이다.


  돌이켜보면, 마음을 사로잡는 책은 느낌글을 여럿 써도 재미있다. 느낌글을 쓸 적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는다. 그러니까, 새로 이 책 하나를 손에 쥐어 넘길 적마다 새로운 느낌이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새삼스러운 노래가 흐른다.


  한 번 읽고 나서 덮어도 책은 책이리라. 그런데, 한 번 읽고 다시 들출 일이 없으면 어떤 책이라고 할 만할까. 책이라 할 때에는 두고두고 되읽거나 다시 들추면서 환한 웃음빛을 짓도록 이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책꽂이에 모셔 놓고 ‘장서 자랑’이 되도록 한다면 책이 책다울 수 없다고 느낀다. 책이 책다울 때에는 손때를 타고 손길이 묻으며 손내음이 물씬 풍겨야 한다고 느낀다. 고운 이웃님은 우리 식구한테 이야기밥을 선물했다. 이 고운 이야기밥은 우리 식구뿐 아니라 이 나라 수많은 ‘아직 낯선 다른 이웃’한테도 즐거운 선물이 되겠지. 4347.4.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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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4-24 06:03   좋아요 0 | URL
작년에 도서관지원으로 구입한 책들이 책꽂이에서 '장서 자랑'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부지런히 읽고 이웃들과도 나누렵니다.^^
<처음 손바느질> 책은 클릭하여 살펴봅니다~

파란놀 2014-04-24 07:32   좋아요 0 | URL
요 책이 참 잘 나오고
보기에도 즐겁고
재미있어요.

아이들과 바느질놀이를 할 만하도록
잘 이끌기도 하고요.

순오기 님은 알뜰살뜰 잘 하시리라 생각해요~ ^^

appletreeje 2014-04-24 08:24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의 꽃밥상과 책이 왠지 잘 어울립니다~
손에 마음을 담아 짓는 예쁜 삶이요~
'처음'이라는 말도 '손바느질'이라는 말도 참 좋구요.^^
바느질을 잘 못하는데 이 책을 보며, 한땀 한땀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ㅎㅎ
감사히 담아갑니다~*^^*

파란놀 2014-04-24 08:39   좋아요 0 | URL
아이들과 함께 즐기도록 엮었더라구요.
이 책을 쓰신 분이
다시 혼자 손바느질 하시기 앞서
이오덕자유학교와 산촌유학센터에서
아이들과 지내면서
여러모로 '아이와 함께 하는 바느질 삶'을
많이 느끼셨구나 싶어요.

보름쯤 이 책을 곁에 두면서
날마다 즐거웠습니다 ^^

그렇게혜윰 2014-04-24 10:10   좋아요 0 | URL
밥상이 더 눈길을 끌어요^^ 건강한 삶이 물씬 느껴집니다. 책도 아기자기 예쁘네요^^

파란놀 2014-04-24 22:31   좋아요 0 | URL
그냥 늘 먹는 밥이랍니다.
저도 처음부터 이렇게 먹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이렇게 안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힘들어요 ^^
 

[말이랑 놀자 22] 자리끼



  나는 언제부터 ‘자리끼’라는 말을 들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아주 어렸을 적이지 싶습니다. 아버지가 자리끼를 찾으시기에 밤에 물을 가져다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릴 적에 외가에 놀러갔을 적에도 머리맡에 스텐그릇으로 자리끼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자리끼’라는 낱말은 어릴 적부터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습니다. 우리 두 아이와 살아가며 밤에 재우다가 아이가 “물 마시고 싶어.” 하면 아주 어릴 적에는 물을 떠서 건네다가 이제는 아이 스스로 물을 마시도록 합니다. 가끔 큰아이한테 ‘자리끼’라는 낱말을 들려준 적 있지만 자주 쓰지는 않습니다. 큰아이가 갓난쟁이였을 적에 곁님 손이 닿는 가까운 데에 늘 자리끼를 두었습니다. 자다가 잠자리에서 마시는 물을 왜 자리끼라 했을까 늘 궁금한데, 그냥 ‘물’이라 하지 않는 까닭은 마시는 물과 천에 적셔서 아기들 땀을 훔치는 데에 쓰는 물과 다른 여러 가지 말을 잘 나누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문득 느끼곤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열 살쯤 넘어가면 그때부터 밤에 ‘물’이 아닌 ‘자리끼’를 찾을 수 있겠지요. 4347.4.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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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69. 2014.4.23.



  후박나무 그늘이 드리우는 평상으로 밥상을 내놓는다. 후박꽃에 벌이 잔뜩 달라붙어 웅웅거린다. 큰아이가 벌에 한 차례 쏘이고서는 벌 소리만 들어도 가까이 가려 하지 않으나, 함께 앉으면 어떠할까 생각하며 마당에서 밥을 먹는다. 작은아이는 벌에 안 쏘이기도 했지만 벌을 손으로 만지기도 하면서 아무렇지 않다. 큰아이가 맛나게 먹기를 바라며 아침부터 쑥국에 라면을 풀어서 넣고, 밥에 봄까지꽃을 하나 얹는데, 한 술만 뜨고 집으로 들어간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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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4-24 05:59   좋아요 0 | URL
저도 어려서 벌에 쏘인 경험이 있어 벌을 무서워 합니다.
엄마가 된장을 발라주었던 기억도~ ㅋㅋ

내일 저녁모임에 비빔밥 하면서 화단에서 자란 제비꽃을 올려야지 생각했는데,
봄까지꽃을 올려도 이쁘네요.^^

파란놀 2014-04-24 07:48   좋아요 0 | URL
봄에 피는 꽃은 무엇이든
밥에 얹어 꽃밥이 되어
환하고 더 싱그러운 빛이 감돌지 싶어요~ ^^

appletreeje 2014-04-24 08:36   좋아요 0 | URL
보기만 해도, 절로 마음이 깨끗해지고 싱그러운 꽃밥상입니다~
다 좋지만 마지막 사진이 '꽃밥'을 먹는 삶을 정갈히 이야기해주는 듯
참 좋네요~*^^*

파란놀 2014-04-24 09:16   좋아요 0 | URL
꽃을 먹으면서
몸에도 마음에도
고운 꽃내음이 깃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요.
 

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손길을 타며 환한 꽃


  시골에서 살아간다고 언제나 새와 벌레와 개구리한테 둘러싸여 아름다운 노래를 듣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더라도 텔레비전을 켜거나 라디오를 틀면 새노래도 벌레노래도 개구리노래도 못 듣습니다. 시골에서 산다지만 으레 자가용이나 짐차나 경운기를 몰면 들과 숲에서 들려주는 노래를 못 듣습니다.

  시골에서 일할 적에 농약을 뿌리느라 부산할 적에도 노래를 못 듣습니다. 농약을 뿌리려고 경운기나 기계를 돌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퍼집니다. 촤아아 농약 흩날리는 소리가 어지럽게 퍼집니다. 농약을 맨몸으로 뿌리는 시골 할매와 할배도 있지만, 농약을 뿌릴 적에는 으레 수건과 긴옷으로 친친 감쌉니다. 둘레에서 흐르는 소리를 모두 닫습니다. 게다가 농약을 치면 이 둘레로 어떤 새도 벌레도 개구리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레이철 카슨 님이 “조용한 봄”을 부르짖은 지 예순 해가 훨씬 지났습니다. 곧 일흔 해가 되는군요. 참말 오늘날 시골은 “조용한 봄”입니다. 아니, “고요한 봄”입니다. 아니, “쥐 죽은 봄”입니다. 아니, “소리와 노래가 사라진 무섭고 끔찍한 봄”입니다.

  요즈음은 숲정이가 남지 않습니다. ‘숲정이’는 마을 가까이에 있는 숲을 가리킵니다. 이제 이런 낱말은 쓰임새를 잃습니다. 참말 마을 가까이에 숲이 사라지니까요. 마을 가까이 빈터나 수풀을 그대로 두지 않으니까요. 마을 할배는 마을과 맞닿거나 가까운 빈터나 수풀에 신나게 농약을 뿌립니다. 풀씨가 날린다며 몹시 싫어합니다.

  그런데 말입지요, 끝겨울과 첫봄이 되면 다들 나물을 캐러 들로 숲으로 가요. 이제 시골 할매도 예전처럼 나물캐기를 안 하지만, 냉이와 쑥을 캐러 들로 숲으로 갑니다. 생각해 보셔요. 여느 때에는 엄청나게 농약을 뿌려대고서 냉이랑 쑥은 캐려고 들과 숲으로 간단 말이에요. 우리는 이 땅에 대고 무슨 짓을 하는 셈일까요. 우리는 이 땅에다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는 셈인가요.

  학교에서 숲을 가르치는 일이 없습니다. 시골학교에서조차 숲을 안 가르칩니다. 어제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를 다녀오는데, 면소재지 고등학교 머스마 넷이 빈 깡통을 아무 데나 휙 던집디다. 너무 어이없어서 자전거를 세우고 네 아이를 불렀습니다. 깡통 주으라고 했습니다. 어른이 보는 앞이니 깡통을 줍더군요. 그러나, 내가 다시 자전거를 몰고 옆을 지나가니 곧바로 깡통을 길에다가, 아니 시골 면소재지 작은 밭뙈기에다 버립니다. 나는 자전거를 다시 멈추어 이 아이한테 뭐 하는 짓이냐고, 네가 깡통 버린 데는 ‘바로 네 마을이요 네 고향’이라고 얘기하지만, 아이들은 들은 척조차 안 합니다.

  송민혜 님이 쓴 《처음 손바느질》(겨리,2014)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마음이 아파 책을 읽습니다. “제 쓰임이 있는 소품들이라면 아이가 늘 곁에 두고 쓰면서 엄마 사랑을 담뿍 받을 수 있어요(12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저밉니다. 시골 면소재지 고등학교 아이는 어머니 사랑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을까요. 저희 집 마당에다가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릴까요. 저희 집 밭이나 논에다 빈 깡통이나 병을 함부로 던질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는 ‘쓰레기 버리지 마라’ 하고 가르치거나 얘기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쓰레기를 왜 버리지 말아야 하고, 쓰레기가 무엇이며, 쓰레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거나 얘기하지는 못한다고 느낍니다. 더 나아가, 시골에서조차 시골아이가 흙을 느끼거나 알도록 가르치거나 얘기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는 무엇을 할까요? 요즈음 몇몇 학교에서는 ‘학교 텃밭’을 일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몇몇 학교일 뿐입니다. 모든 학교가 텃밭을 일구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학교도 모내기로 바쁜 철에 모내기를 거들지 않습니다. 피사리나 가을걷이로 바쁜 철에 피사리나 가을걷이를 거들지 않습니다.

  “느리게 / 한 땀 두 땀 // 빛깔 고르고 / 바늘땀 더하는 재미 // 손꽃 핀다(17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쓸쓸합니다.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도 손으로 모내기를 하고 손으로 풀을 뽑으며 손으로 낫을 들어 나락을 베지 않고서야 흙도 풀도 나무도 숲도 들도 알 수 없습니다. 뙤약볕을 받으며 밭에서 땀을 흘리지 않고서야 햇볕이 얼마나 고마우면서 대단한가를 알 수 없습니다. 비를 맞으며 나물을 뜯지 않고서야 비와 풀이 얼마나 고마우면서 대단한가를 알 수 없습니다.

  이 땅 아이들은 가을에 대입시험을 치러야 하니 너무 바쁜가요. 이 땅 대학생은 가을에 학교잔치를 하거나 취직시험을 치러야 하니 너무 벅찬가요. 가을에 가을빛을 누리면서 흙내음 맡을 줄 아는 어른(교사·부모)과 아이(학생)가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봄에 봄빛을 즐기면서 풀내음 맡을 줄 아는 사람이 늘면 좋겠습니다.

  손바느질 이야기를 들려주는 송민혜 님은 “청 자투리를 밑으로 덧대고 위쪽으로는 해진 올을 그대로 살려 수를 놓았더니 꽃 한 송이 곱게 피었답니다(31쪽).” 하고 손꽃을 노래합니다. “아이는 자르고 엄마는 바느질, 사이좋게 뚝딱. 안 입는 옷과 자투리 천으로 만든 장식줄(70쪽).” 하면서 손빛으로 춤춥니다. 말 그대로 손길을 타면서 환한 꽃입니다. 꽃 한 송이는 우리 손길을 따사롭게 받으면서 사랑스럽게 피어납니다. 풀 한 포기는 우리 손길을 넉넉하게 받으면서 푸르게 자랍니다. 나무 한 그루는 우리 손길을 살가이 받으면서 싱그러이 큽니다.

  손으로 밥을 짓습니다. 손으로 빨래를 합니다. 손으로 걸레질을 하고, 손으로 설거지를 합니다. 손으로 쓰다듬고, 손으로 머리를 감기며, 손으로 아이들 발을 씻깁니다. 손으로 집을 짓지요. 손으로 옷을 깁지요. 손으로 물레를 잣고, 손으로 절구를 빻아요. 손으로 부침개를 부치고, 손으로 닭둥지에서 달걀을 주으며, 손으로 제비한테 인사합니다.

  “작은 종이 하나에도 내 이야기 곱다시 담고 싶다(113쪽).”와 같은 이야기처럼, 우리 삶은 작은 눈빛 하나로 밝습니다. 우리 사랑은 작은 손빛 하나로 포근합니다. 우리 꿈은 작은 말빛 하나로 그윽합니다.

  면소재지 머스마는 ‘잘못했습니다’ 하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니, 면소재지 초등학교 아이한테도 과자봉지 아무 데나 버리지 말라 얘기할 적에도 이와 똑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어른이 알려주어도 코앞에서만 줍는 척하고 이내 손을 뒤로 가져가서 슬쩍 떨어뜨리더니 모른 척하더군요. 우리 손은 서로 사랑하려는 손이요, 우리 손은 아름다운 꿈을 지으려는 손입니다. 4347.4.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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