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아이 90. 저기 달팽이 있어 (2014.8.29.)



  대문 앞 마을길에 시멘트를 새로 깔았다. 시골마을까지 수돗물을 댄다며 도청과 군청에서 벌이는 일이다. 한쪽은 수돗물이 흐르도록 하고, 다른 한쪽은 개숫물이 흐르도록 하는구나 싶은데, 개숫물이 흐르는 쪽으로 구멍을 내어 뚜껑을 덮었다. 아이들은 이 뚜껑을 올라타고 앉아 밑을 내려다보며 놀곤 한다. 작은아이는 개숫물 흐르는 곳에서 달팽이를 보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달팽이 아닌 우렁이이다. 아무튼, 작은아이가 구멍 밑을 들여다보면서 누나를 부르면, 누나도 옆에 나란히 쪼그려앉아서 한참 들여다보며 논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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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주파수 창비시선 327
김태형 지음 / 창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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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6



아이들을 태운 자전거

― 코끼리 주파수

 김태형 글

 창비 펴냄, 2011.2.10.



  내가 마흔 살이 아니고 스무 살이라면, 아이 둘을 자전거에 태우고 골짝마실을 다녀온 뒤에 어떠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스무 살 몸이라면 자전거를 몰아 골짝마실을 다녀왔어도 기운이 넘칠까요. 스무 살 몸이라면 달게 한숨 자고 나면 고단함이 모두 사라질까요.


  마흔 살인 내 몸은 일곱 살과 네 살인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골짝마실을 다녀오고 나서 도무지 새 힘을 되찾지 못합니다. 어찌저찌 밥 한 끼니 차려서 먹인 뒤 등허리를 펴려고 잠자리에 눕습니다. 한 시간쯤 눕지만 뻑적지근한 어깨가 안 풀립니다. 한 시간을 더 누우면 등허리를 말끔히 펼 수 있을까요.



.. 한 발짝 새똥 눌어붙은 자리까지 다가가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 등 뒤에서 또 제비 한 마리 휘이익 날아드는 게 아닌가 / 문간을 넘어서다 저도 놀랐는지 / 비좁은 부엌을 한 바퀴 돌고는 황급히 안대문 쪽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  (유목―제비)



  스무 살 적에 신문배달 하던 일을 떠올립니다. 열여섯 살 무렵에 신문배달 하던 일을 되새깁니다. 열여섯 살 무렵에는 신문 백 부를 옆구리에 끼고 두 다리로 달리면서 돌렸습니다. 신문꾸러미를 이제 막 옆구리에 끼고 달리자면 몸이 기우뚱합니다. 한 집 두 집 돌리면서 신문꾸러미가 줄어듭니다. 열 집 스무 집을 돌리면 신문꾸러미를 옆구리에 끼고 달려도 이럭저럭 몸이 덜 기우뚱합니다. 서른 집을 지나 마흔 집을 돌릴 즈음 온몸은 땀으로 젖습니다. 이때부터 신문에 땀이 묻지 않게끔 마음을 기울입니다. 보자기나 비닐을 옆구리에 대고 신문을 움켜쥡니다. 일흔 집을 돌리고 여든 집을 돌릴 즈음에는 숨이 턱에 닿습니다. 아흔 집을 돌리면 비로소 옆구리가 가벼워 달리기도 수월합니다. 그러나 이제껏 쉬잖고 달렸으니 다리가 살짝 후들거립니다. 마지막 집까지 모두 돌리면 두 손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지개를 켜고 땀을 훔칩니다.


  새벽에 신문을 돌릴 적에는 쳐다보는 사람이 길거리에 없습니다. 낮에 신문을 돌릴 적에는 다들 쳐다봅니다. 왜냐하면, 두 다리로 달려서 신문을 돌리고 나면 웃옷도 아랫옷도 땀으로 흠뻑 젖어요. 머리카락에도 땀방울이 맺힙니다. 한낮에 온몸이 땀으로 젖은 아이가 돌아다니니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쳐다보지요.


  이러거나 말거나 일을 다 마쳤으니, 집까지 달려서 돌아갑니다. 신문을 돌릴 적에도 달리고, 신문사지국에 신문을 받으러 갈 적에도 달리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달립니다.



.. 방문을 꾹 눌러닫고 한구석에 두 아이를 눕힌다 / 아이들 이마 위에 / 가만히 얹어보던 굳은 손으로 / 새파랗게 죄 지은 손으로 바닥을 쓸어본다 ..  (흰 고래를 찾아서)



  열여섯 살 즈음에는 두 다리로 달리면서 신문을 돌렸어도 찬물로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고단한 줄 몰랐습니다.


  스무 살에는 자전거를 달려 신문을 돌렸습니다. 이때에는 더 많이 돌립니다. 자전거는 맨몸으로 타기만 했을 뿐, 앞뒤로 신문을 싣고 달리기는 처음입니다. 신문 한 부는 가볍지만, 백 부가 되고 이백 부가 되면 자전거가 휘청거립니다. 제대로 무게를 맞추어 자전거 발판을 구르지 않으면 한쪽으로 기우뚱하다가 와장창 하고 넘어집니다.


  넘어져서 무릎이나 이마가 팔꿈치가 깨지면 며칠 지나면 아뭅니다. 그렇지만, 자전거는 찌그러집니다. 무엇보다 신문이 다쳐요. 배달 자전거에 아직 익숙하지 않던 때에 신문꾸러미를 앞뒤에 실은 채 달리다가 넘어지면, 지국장이든 누구이든 ‘배달원’ 몸을 살피지 않습니다. 신문 귀퉁이가 깨졌나 안 깨졌나 살피고, 자전거가 괜찮은가 살핍니다. 배달원 몸은 맨 나중입니다.


  곰곰이 돌이켜니, 스무 살 적에도 신문배달을 마친 뒤 한 차례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몸이 멀쩡했습니다.



.. 세살 갓 지난 딸아이가 / 화장실에서 빼온 두루마리 화장지 / 죄다 풀어내어 바다를 만들었다 / 바다를 처음 보고 와서는 늘 바다 바다를 외치더니 / 아빠 바다 아빠 바다 하고 / 제가 만든 두루마리 바다를 보여준다 / 작은 사내놈은 덩달아 ..  (마지막 상상)



  군대에 다녀오고 스물네 살 적에도 신문배달을 합니다. 신문배달로 밥벌이를 하던 때라, 군대에 다녀오기 앞서보다 곱절로 신문을 돌립니다. 신문은 더 무겁습니다. 해가 가면 갈수록 신문이 더 무겁습니다. 신문사마다 쪽수를 늘릴 뿐 아니라, 광고종이도 늘어납니다. 돌릴 구역에 맞추어 신문을 한 번에 실어서 나를 수 없어, 두 차례로 나눕니다. 한 차례 다 돌리고 돌아와도 다시 그만큼 돌려야 합니다.


  모두 잠든 새벽 두 시 무렵부터 자전거를 몰아 신문을 돌립니다. 한여름 장마철에는 비를 맞으면서 신문을 안 적시려고 용을 쓰며 돌립니다. 한겨울 눈이 오는 날에는 눈을 맞으면서 눈길에 안 넘어지려고, 또 눈을 안 맞히려고 애를 쓰며 돌립니다. 한여름에는 으레 물에 젖은 몸으로 신문을 돌리고, 한겨울에는 언제나 온몸이 꽁꽁 얼어붙은 몸으로 신문을 돌립니다.


  가만히 돌아보니, 마흔 살이 넘었지 싶은 지국장 아저씨는 신문배달을 마치고 으레 한 시간 남짓 방바닥에 드러누워 허리를 폈습니다. 그때에 서른 살이 넘은 형들도 일을 마치고는 한 시간쯤은 방바닥에 누워서 허리를 펴고야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요, 나도 예전에 신문사지국에서 보던 지국장 아저씨나 나이든 형들과 같은 나이를 맞이했습니다. 아이 둘을 자전거에 태워 골짜기를 오르내리자니 온몸이 결리거나 쑤실밖에 없지 싶습니다.



.. 집 안에서 텔레비전을 치워버리고 나자 / 또다른 화면들이 내 앞에 몰려든다 / 이른 아침부터 몰래 들어와 재잘거리는 참새들 ..  (공유지의 비극)



  김태형 님 시집 《코끼리 주파수》(창비,2011)를 읽습니다. 김태형 님이 시에 쓴 아이들 이야기는 이녁 아이들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마음속으로 지어낸 아이들 이야기일까요. 아마 김태형 님과 함께 삶을 꾸리는 아이들 이야기일 테지요.


  시를 쓰는 아저씨가 바라본 아이들은 어떤 모습이요 어떤 눈빛이며 어떤 놀이로 하루를 즐겼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시를 읽는 아저씨가 늘 마주하는 우리 아이들은 어떤 모습이요 어떤 눈빛이며 어떤 놀이로 하루를 즐기는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 새벽마다 오줌 싸는 아이가 / 몰래 새 구름 한 벌 갈아입는다 / 아침이면 햇빛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아이들 / 내 아름에도 벅찬 구름이 두 팔에 매달린다 ..  (구름 일가)



  아이들은 날마다 자랍니다. 키도 몸도 자라고, 말도 생각도 자랍니다. 어른들은 날마다 어떠할까요. 어른들은 날마다 나이만 먹으면서 늙을까요? 어른들도 아이와 마찬가지로 씩씩하게 자랄까요?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 집 아이들을 처음 자전거에 태운 날에도 고단하기는 똑같았습니다. 온몸이 쑤셨습니다. 홀몸으로 자전거를 달릴 적하고 아이를 태워 자전거를 달릴 적은 사뭇 다릅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살집이 붙습니다. 아이들은 찬찬히 키가 자랍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려고 수레랑 샛자전거를 붙이니, 늘 매다는 무게가 꽤 묵직합니다.


  그런데, 큰아이가 꽤 어릴 적에 처음 자전거에 태우면서 느낀 무게나 두 아이를 요즈음에 자전거에 태우면서 느끼는 무게는 엇비슷해요. 그러니까, 나도 아이들과 함께 자랍니다. 내 몸도 아이들이랑 나란히 자랍니다. 내 마음과 내 넋과 내 꿈과 내 사랑까지 언제나 자랍니다.



.. 유리창 밖에 떨어져 죽어 있는 산새 한 마리 / 퍼포먼스였으면 좋았겠지만 / 나뭇가지가 기를 쓰고 붙들고 있는 허공으로 아무것도 날아가지 않았다 / 청소부 아줌마가 그 딱딱한 것을 거두어갔다 ..  (백남준아트쎈터)



  코끼리는 아무리 멀리 떨어졌어도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고래 또한 참으로 멀리 떨어졌어도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해요.


  사람은 어떤가요. 사람은 손전화가 있어야 이야기를 주고받을까요. 사람은 인터넷을 켜야 비로소 이야기를 나누는가요.


  사람은 마음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까요. 사람은 서로서로 따사로운 마음이 되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 기러기 한 마리씩 뜯어먹는 대신 / 뭔가 그리워하는 얼굴로 / 안타까워하는 모습들로 앉아 있으면 안되나 ..  (외로운 식당)



  내가 마음을 열어야 네 마음을 읽습니다. 네가 마음을 열어야 내가 마음을 읽습니다. 서로 마음을 열어야 서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야기는 입을 열어야 나누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손으로 글을 써야 나눌 수 있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서로 마음을 열고 사랑을 가꾸려 할 때에 나눌 수 있습니다. 서로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넉넉하고 따사로운 마음일 때에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시 한 줄을 쓸 수 있으려면, 글솜씨가 글재주가 아닌,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시 두 줄을 쓸 수 있으려면, 대학교를 마치거나 문학강좌를 듣기보다, 사랑을 가꾸는 삶을 누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시 석 줄을 쓸 수 있으려면, 언제나 맑게 눈을 뜨고 밝게 귀를 열며 즐겁게 온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버지가 모는 자전거를 타고 골짝마실을 다녀온 아이들은 기운이 넘칩니다. 기운이 넘치는 아이들은 저희끼리 툭탁거리면서 잘 놉니다. 참으로 대견하며 씩씩하고 아름답습니다.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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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박 님 만화책 《빨간 풍선》을 읽고 나서 생각해 본다. 책이름은 왜 ‘빨간 풍선’일까? 글쎄, 나는 모른다. 만화를 그린 분 스스로 이렇게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파란 풍선이라 이름을 붙이거나 푸른 풍선이라 이름을 붙여도, 만화를 그린 분이 이렇게 이름을 붙일 뿐이다. ‘빨간 나비’라든지 ‘빨간 구름’ 같은 이름을 붙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름은 대수로우면서 대수롭지 않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누리는 삶은 대수로우면서 대수롭지 않다. 우리가 누리는 삶은 만화에 담길 만큼 대수로우면서 굳이 만화로 안 담아도 될 만큼 대수롭지 않다. 또한, 만화에 담기는 삶이라 해서 더 대수롭거나 덜 대수롭지 않다. 그저 우리 삶이고 우리 이야기이며 우리 노래이다. 김수박 님 만화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오롯이 김수박 님이 겪고 누린 삶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김수박 님이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해서 꿈을 가꾸었는가 하는 대목을 엿볼 수 있다. 앞으로도 김수박 님 스스로 즐겁게 꿈을 키우기를 바랄 뿐이고, 언제나 한결같이 김수박 님 사랑을 곱게 여밀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삶과 꿈과 사랑이 어우러지면, 만화는 언제나 따스할 테니까.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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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풍선
김수박 지음 / 수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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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책꽂이



  헌책방 책꽂이를 바라보면 우리 둘레 이웃들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책을 안 읽는지 헤아릴 수 있다. 헌책방 책꽂이를 들여다보면 오늘날 사람들이 책을 어떻게 마주하는가를 짚을 수 있다. 머나먼 옛날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 아니다. 예전에 이 나라에서 사람들이 책을 아끼고 알뜰히 돌보았을 때에는 ‘헌책방 책꽂이 앞에 책이 쌓일 틈’이 없었다고 한다. 누구라도 책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읽으려 했단다. 지식인만 읽는 책이 아니고, 대학생만 읽는 책이 아니며, 학자만 읽는 책이 아니었다고 한다. 누구나 즐겁게 책을 손에 쥐면서 삶을 되새기고 생각을 가꾸며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책이 아니어도 볼거리가 많다. 영화가 참으로 많이 나온다. 온 나라 극장이 얼마나 많은가. 집에서 컴퓨터나 텔레비전을 켜면 수많은 영화가 흐른다. 굳이 극장을 안 가더라도, 느긋하게 드러누워 술이나 콜라를 홀짝이면서 영화를 쳐다보기만 해도 된다.


  애써 머리를 굴리면서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 오늘날이 된다. 우리는 머리(뇌)를 제대로 쓰지 않는데, 머리(뇌)를 제대로 쓰지도 않으면서 그나마 이런 머리조차 더 안 쓰려 한다. 생각을 놓고 영상에 사로잡힌다. 텔레비전에 영화에 그저 휩쓸린다.


  영화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영화를 보면서 생각을 기울이거나 가다듬는 일이 드물다는 뜻이다. 그냥 보고 그냥 잊는다. 재미로 삼아 본 뒤, 다른 재미를 찾아 움직인다.


  그런데, 재미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아 갈 수 있을까. 이쪽에서 재미를 보다가 저쪽으로 가서 다른 재미를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옮겨 다니면서 재미 꽁무니만 좇을 적에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남이 나한테 차려 주지 않는다.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언제나 스스로 빚는다. 스스로 놀이를 생각해 내어 즐길 때에 가장 재미있다. 스스로 놀이를 빚어 내어 함께 누릴 적에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다.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왜 재미있을까? ‘재미있는 줄거리’가 있기 때문일까? 아니다. 줄거리 때문에 책이 재미있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뇌)를 자꾸 쓰고, 그동안 잠자던 머리를 깨워 생각을 자꾸 새로 짓기 때문에 재미있다. 내가 나아갈 길을 스스로 밝히니 재미있고, 내가 누릴 삶을 스스로 캐거나 짓거나 일구기에 재미있다.


  헌책방 책꽂이마다 책이 쌓이는 모습을 곰곰이 지켜본다. 오늘날 사람들은 참말 재미없게 사는구나 싶다. 그런데, 영화를 보든 어디 놀러갔다 오든,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다녀오든, 재미가 넘치는 얼굴이 되지 않는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다시 재미없는 얼굴이 된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재미없는 얼굴이 된다.


  책을 즐겁게 읽어서 스스로 재미를 찾는 사람만 ‘늘 재미있게 밝은 얼굴’이 된다고 말할 뜻은 없다. 책을 읽더라도 스스로 생각을 열어 머리(뇌)를 신나게 쓰지 않는다면 그저 부질없다.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무슨 일을 하든, 내 둘레 이웃들이 머리(뇌)를 신나게 쓸 수 있기를 빈다. 스스로 재미를 실컷 지어서 아름다운 삶을 사랑스레 누리는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빈다.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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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다



  책방에 책이 있다. 책에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에 넋이 있다. 넋에 사랑이 있다. 사랑에 삶이 있다. 삶에 하루가 있다. 하루에 모든 숨결이 있다. 문득 책을 덮는다. 한창 책을 읽다가 덮는다. 책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책을 골라서 읽다가, 차근차근 흐름을 살피다가, 조용히 책을 덮는다.


  책에 깃든 이야기는 어떤 숨결인지 곰곰이 되새긴다. 내 가슴속에서 늘 싱그럽게 살아서 움직이는 숨결을 찾으려고 수많은 책을 살피거나 읽은 셈일까. 내 가슴속에서 펄떡펄떡 뛰는 숨결이 내 삶이 맞는지 알아보려고 다른 사람들이 적은 책을 그토록 찾거나 살핀 셈일까.


  책이 보여주는 길인 ‘이 책에 적힌 대로 따라오시오’가 아니다. 곧잘 ‘이 책에 적힌 대로 따라오시오’ 하고 외치는 책이 있지만, 이런 책은 한 번 훑은 뒤에 다시 펼칠 일이 드물다. 내가 여러 차례 되읽는 책은 언제나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아무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나 스스로 내 가슴속을 들여다보라고 넌지시 고갯짓을 할 뿐이다. ‘네 가슴속에 다 있는데 뭘 그리 먼길을 나서면서 기웃기웃 구경하니?’ 하고 한 마디 한다.


  우리는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우리는 죽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살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참말 언제나 모든 것을 다 하면서 이곳에 있다. 저마다 가슴속에 어떤 이야기가 있고 어떤 숨결이 피어나는가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기에 ‘다른 책’, 그러니까 ‘다른 나’를 찾으려고 했는가 보다.


  책이 있는 책방에 선다. 책마다 수많은 ‘내’가 있다. 저마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다르게 꿈꾸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내’가 있다. 나는 어떤 길을 책에서 보려 하는가. 나는 어떤 길을 익혀 내 길을 걸어가려는가. 실마리를 여는 열쇠를 가슴속에서 끄집어 내려고 이웃한테 말을 건다. 책을 펼쳐서 읽고, 책을 조용히 덮은 뒤, 한손으로 가슴 언저리를 쓰다듬는다.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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