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92. 2014.9.10. 감자잡채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잡채를 하자고 생각한다. 집에 고기는 없으니 고기가 아닌 다른 것을 넣자고 생각한다. 무엇이 좋을까. 고구마가 있으면 한결 나을 텐데, 감자가 있으니 감자를 썰어 당근이랑 양파랑 버섯이랑 함께 볶는다. 갓 지은 따끈따끈 김이 나는 밥을 꽃접시에 먼저 넓게 펴서 담는다. 잘 볶고 버무린 잡채를 밥에 얹는다. 옆에 미역국을 놓는다. 다른 찬거리는 거의 없지만, 단출하게 잡채밥으로 아침을 열자.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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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91. 2014.9.9. 음성 할머니 굴비



  한가위를 앞두고 음성마실을 다녀올 적에 어머니가 굴비를 한 꾸러미 챙겨 주셨다. 아이들 먹이라고 잔뜩 주셨다. 고흥집으로 돌아와서 몇 끼니를 굴비를 쪄서 먹는다. 할머니 굴비, 즐겁게 먹자.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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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48. 노래해 노래해 노래해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기를 손에 쥐고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연필을 손에 쥐고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살림을 꾸리는 사람은 부엌칼로 밥을 짓거나 비누로 빨래를 하거나 비와 걸레로 쓸고닦거나 따순 손길로 아이를 돌보면서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시골사람은 낫과 호미로 흙을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고기잡이는 배를 몰아 바다를 마주하며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노래하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저마다 어떤 하루를 새롭게 맞이하면서 노래하는 사람일까요? 내 노래는 어디에서 샘솟을까요?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이야기가 흐르면서 사랑이 피어나거나 꿈이 자랄까요?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기 앞서 가만히 생각해요. 오늘 하루 어떤 일을 하고 누구를 만나며 어떻게 지내고 싶은가를 생각해요.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마음으로 그리고, 내가 꿈꾸는 길은 어디로 흐르는가를 차근차근 짚어요.


  이것이거나 저것인 사진은 없습니다. 이렇게 찍어야 하거나 저렇게만 다루어야 하는 사진은 없습니다. 내가 너하고 다르듯이, 나는 내 사진을 찍고 너는 네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기에 우리는 모두 다른 사진을 찍습니다. 이를테면, 사진감이 똑같다 하더라도 우리는 참말 모두 다르게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다 다른 우리들이 똑같다 싶은 사진을 찍는다면? 이때에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일 테지요. 서로 마음이 꼭 맞았다는 뜻이거나, 서로 생각이 틀에 박혔다는 뜻입니다.


  노래를 하고 싶은 사람은 노래를 하고, 노래를 하고 싶어 노래를 하는 사람은 늘 노래에 안겨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르고 싶은 노래를 생각합니다. 부르려는 노래를 곱게 가다듬습니다. 꿈을 꾸고 싶은 사람은 꿈을 꾸고, 꿈을 꾸고 싶어 꿈꾸는 사람은 늘 꿈누리를 가꾸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가슴에 담고 싶은 꿈을 생각합니다. 가슴에 담고 싶은 꿈을 날마다 정갈히 가다듬습니다.


  노래해요. 노래하고 또 노래해요. 즐겁게 노래해요. 활짝 웃으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노래해요. 사진기를 손에 쥐기 앞서 노래를 해요. 사진기를 손에 쥐고 나서 노래를 해요. 사진기 단추에 손가락을 얹기 앞서 노래를 해요. 사진기 단추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누르면서 노래를 해요. 4347.9.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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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47. 무엇을 찍고 싶은가



  사진을 찍으려는 분들이 잘 알아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는 무엇을 찍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은 ‘소재 아닌 주제’를 찍습니다. 다른 갈래에서도 이와 같아요. 글을 쓸 때에도 ‘글감이 아닌 이야기’를 씁니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 적에도 ‘소재 아닌 주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림을 그릴 적에는 어떠할까요? 정물을 그린다고 하면 그저 정물을 그립니다. 배를 그리든 딸기를 그리든 나무를 그리든 풀이나 꽃을 그리든 대수롭지 않아요. ‘내가 그리려 하는 정물’을 즐겁게 잘 그리면 됩니다. 사람을 그릴 적에도 그렇지요.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를 그리든, 내 짝꿍이나 동무를 그리든, 길에서 마주친 사람을 그리든, 시골 흙지기나 고기잡이를 그리든, 공장 일꾼이나 버스 일꾼을 그리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누구를 그리든 ‘사람을 그리는 내 마음’이 오롯이 깃들도록 그려야 합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 무엇을 찍어야 할까요? 사진감(소재)에 매이지 않으면서 내가 담아서 나타내고 싶은 이야기를 찍으면 됩니다. 성노예 할머니를 찾아뵙고 사진을 찍을 수 있을 테고, 청소부를 찍을 수 있을 테며, 시골 할아버지를 찍을 수 있을 테지요. 이름난 시인이나 연예인을 찍을 수도 있어요. 누구를 찍든 참말 대수롭지 않습니다. 찍힌 사람 숨결이 드러나면서 찍는 사람 숨소리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어야 사진다운 사진이 됩니다.


  사람을 찍을 적에는 무엇보다 한 가지를 잘 헤아려야 합니다. 내가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나와 얼마나 가깝거나 살갑거나 반갑거나 고맙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러운 님인지 헤아려야 합니다. 사진으로 찍으려는 사람을 제대로 모르는 채 찍는다면 어떤 사진이 될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사진으로 찍으려는 사람을 ‘안다’면 얼마나 알고 어떻게 아는가를 짚어야 합니다.


  ‘난 저 사람을 잘 알지’ 하는 마음일 때에 어떤 사진이 나올까 생각해요. ‘나는 저 사람을 얼마나 알까’ 하는 마음일 때에는 어떤 사진이 나올는지 생각해요. ‘내가 저 사람한테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를까’ 하는 마음이라면 어떤 사진이 나오겠는가 하고 생각해요. ‘내가 아직 모르거나 못 느끼는 저 사람 숨결은 무엇일까’ 하는 마음이라면 어떤 사진이 나올 만한지 생각해요. ‘내가 더 알고 싶으며 더 만나고 싶은 저 사람 숨소리는 무엇일까’ 하는 마음이 되면 어떤 사진이 될는지 생각해요.


  사진을 찍는 우리들은 빈틈없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들은 남보다 더 낫거나 덜떨어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들은 뛰어나지도 허술하지도 않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들은 그저 사진기를 손에 쥐고 이웃과 동무를 만납니다. 이웃과 노래하는 사진이고, 동무와 꿈을 꾸는 사진입니다. 무엇을 찍어야 할까요? 내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이야기를 찍고, 내 동무와 사랑을 속삭이는 이야기를 찍습니다. 4347.9.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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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의 대화 - 돈만 외치는 망가진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나’로 사는 법
톰 새디악, 추미란 / 샨티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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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83



삶을 보아야 삶을 읽는다

― 두려움과의 대화

 톰 새디악 글

 추미란 옮김

 샨티 펴냄, 2014.3.20.



  삶을 보는 사람만 삶을 읽습니다. 삶을 보지 않는다면 삶을 읽지 못합니다. 숲을 보는 사람이 숲을 읽습니다. 숲을 보지 않으면서 숲을 읽지 못합니다. 야구를 보거나 축구를 보아야 야구나 축구를 읽습니다. 영화나 연극을 보아야 영화나 연극을 읽어요.


  사랑을 읽고 싶다면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제대로 읽고 싶다면 사랑을 나누거나 누려야 하며, 사랑을 참다이 읽고 싶으면 사랑을 일구거나 가꾸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읽을 수 없습니다. 바라보지 않거나 들여다보지 않거나 살펴보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읽을 수 없어요.


  보는 일이란 눈으로 헤아리는 일이 아닙니다. 보는 일이란 몸으로 겪는 일입니다. 내가 바로 그곳에 있으면서 스스로 삶을 누릴 때에 비로소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눈으로 흘깃 헤아리는 일이란 ‘구경’입니다. 냇물 너머로 불 구경을 할 수도 있습니다만, 불 구경을 하듯 ‘흘깃 헤아리’기만 해서는 알 수 없고 읽을 수 없어요.



.. 집단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 세상에 대한 하나의 비전을 보기 시작했고,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깨달아 가던 중이었다 … 나는 그런 물질 과잉 문화 속에서 자랐고 그것의 공허한 매력에 현혹되어 제멋대로 행동했었다 … 사실 진짜 문제는 전쟁, 기아, 집단 학살, 환경 문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그것들은, 밝혀지고 조명을 받으면 ‘해결될 수 있는’, 더 깊고 고질적인 문제의 ‘징후들’일 뿐이라고 ..  (10, 11, 12쪽)



  삶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알고 싶다면, 삶을 보아야 합니다. 삶을 보지 않고서야 삶이 이루어지는 얼거리를 알 수 없어요. 사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알고 싶으면, 사랑을 보아야 할 텐데, 온몸과 온마음으로 사랑을 따사롭게 껴안을 때에 비로소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책을 보아서는 삶도 사랑도 알 수 없습니다. 학교를 다녀서는 삶도 사랑도 알 길이 없습니다. 말만 들어서도 삶이나 사랑을 알 턱이 없어요.


  길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제대로 보면 됩니다. 제대로 바라보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삶으로 오롯이 들어오도록 가누면 돼요.



.. 현재의 문명을 뒷받침하는 인류의 사고방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 문명과 함께 인류는 사라지고 말 거야 … 대통령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건 아니야. 사랑과 감사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도 힘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아 … 세상은 완벽하게 정당해. 사람들이 지금 걱정하는 것을 계속 걱정한다면, 경쟁과 다툼 속에서 서로 대항한다면, 세상은 그런 행동의 완벽한 반영이 될 거야. 세상은 사람들이 창조해 낸 그대로야 ..  (24, 25, 35쪽)



  톰 새디악 님이 쓴 《두려움과의 대화》(샨티,2014)를 읽습니다. 영화감독이기도 했던 톰 새디악은 스스로 이녁 삶을 새롭게 읽으려고 합니다. 그동안 이녁 마음에 깃든 빛이 ‘두려움’이었구나 하고 느끼면서, 앞으로는 이녁 마음에 ‘새로움’이라는 숨결이 깃들 수 있기를 바라요. 그래서, 톰 새디악 님 스스로 마음속에 있는 두 가지 넋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한 가지 넋은 ‘두려움’이고 다른 한 가지 넋은 ‘진리’라고 합니다.



.. 나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단지 잠자고 있었던 거지 …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걸 … 사회는 개인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집단적 에너지일 뿐이야. 개인들이 각자의 목소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해 … 천국이 우리 안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심란해 해 … 아들딸을 대상으로, 특히 그 아이들이 아플 때 돌봐 주고 그걸로 이익을 낸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인 거야, 그렇지? 그럼 친척들은 어떨까? 삼촌이나 사촌 같은? ..  (50, 51, 58, 59, 74쪽)



  한몸에 깃든 두 가지 넋 가운데 하나가 ‘두려움’이라면, 다른 하나는 ‘새로움’이 되리라 느낍니다. 한몸에 깃든 두 가지 넋 가운데 하나가 ‘진리(참)’라면, 다른 하나는 ‘거짓’이 되리라 느껴요. 그렇겠지요. 마음속에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함께 있습니다. 마음속에 어두움이 있는 사람은 빛도 함께 있습니다. 빛이 있기에 어두움을 알 수 있고, 어두움이 있기에 빛을 알 수 있어요. 거짓이 있기에 참을 알고, 참이 있기에 거짓을 압니다.


  이쪽과 저쪽이라고 할까요. 서로 비추면서 한몸을 이루는 거울이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거짓을 보고 또 보면 참을 읽을 수 있기도 합니다. 참을 보고 다시 보면 거짓을 읽을 수 있기도 해요. 둘은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은 종이 앞뒷장처럼 한몸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 두려움이 나쁜 것도, 진리가 좋은 것도 아니다. 두려움은 단순히 존재할 뿐이고 … ‘나는 누구이고, 내가 소중하게 지키는 가치들은 무엇인가?’ 같은 진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 시스템에 복종하는 것은 그 시스템이 지지하는 부당함에 복종하는 거야 … 열심히 하는 게 해답이라면 왜 그렇게 많은 학교 교육이 실패하고 있지? … 생각지도 않게 학교를 쉬게 되는 일만큼 즐거운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  (15, 135, 148, 179, 180쪽)



  우리는 어떤 길로 나아갈 때에 즐거울까 생각해 봅니다. 두려움이 아닌 새로움으로 나아갈 때에 즐거울까요? 두려움을 잊고 참다움으로 나아가야 즐거울까요?


  그러나, 새로움이나 참다움은 즐거움이 아닙니다. 새로움을 찾으려 하면 새로움으로 갑니다. 참다움으로 가면 참다움으로 가지요. 즐거운 삶이 되고 싶다면 즐거움으로 가야 합니다. 즐거움은 즐거움일 뿐, 새로움이나 참다움이 아닙니다. 참다움 또한 참다움일 뿐, 새로움이나 즐거움이 아니에요.


  이야기책 《두려움과의 대화》는 스스로 두려움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은 ‘두려움’과 ‘진리’가 맞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얼거리이지만, 두려움이 무엇인가를 밝혀서 두려움이 아닌 길로 가려고 하는 톰 새디악 님 삶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톰 새디악 님은 ‘두려움을 넘어서는’ 일을 ‘진리’라고 느낄 뿐이에요.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그렇게 느낄 수 있어요. 삶도 사랑도 안 가르치는 학교는 두려움만 낳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하고 동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을 가르치고 사랑을 보여줄 때에 비로소 학교가 학교답다고 할 만해요. 이러한 모습이 참다움이라고 할 만합니다. 경제나 군대로 치면 지구별에서 1위라고 하는 미국이라는데, 이런 미국이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닙니다. 살기 좋을 수 없는 나라인 미국입니다. 왜냐하면, 살기 좋은 터전은 경제나 군대로 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숲은 경제나 군대로 만들지 못해요. 따사로운 사랑은 철학이나 과학으로 만들지 못해요. 즐거운 어깨동무나 두레는 이론이나 지식으로 만들지 못해요. 아기를 낳아 돌보는 삶은 문학이나 정치로 만들지 못해요.


  살기 좋은 나라가 되려면 군대가 없어야 할 테지요. 아니, 군대가 있을 까닭이 없어야겠지요. 즐거운 나라가 되려면 경제개발이 없어야 할 테지요. 아니, 경제개발을 해야 할 까닭이 없어야겠지요. 살기 좋은 나라가 되려면 누구나 마음껏 배우거나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학교를 돈을 내고 다녀야 한다면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에요. 졸업장 때문에 하고픈 일을 못한다면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에요. 아이들이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되기를 바란다거나 돈만 많이 벌기를 바라는 나라는 즐겁지 못한 나라예요.



.. 미국은 경제적·군사적 규모가 세계 1위이지만,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되는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 아이들이 창밖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떡갈나무가 올라오라고 손짓하고, 쌓여 있는 나뭇잎들이 어서 와서 놀라고 부르니까 말이다 … 아무도 그들에게 아주 기본적인 질문, ‘무엇이 너를 살아 있게 하니?’라고 묻지 않는다. 현재 우리의 학교는 유치원 때부터 한 가지 결과만 추구하며 직업 교육만 시킨다 …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다 … 사랑으로 한 발 자국씩 걸을 때마다 치유가 이루어질 것이다 … 사랑이 당신이고 당신이 사랑이다. 그것은 늘 그래 왔다. 사랑이 모든 것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  (185, 197, 198, 253, 264쪽)



  삶을 보아야 삶을 읽습니다. 사랑을 보아야 사랑을 읽습니다. 삶을 생각해야 삶을 가꿉니다. 사랑을 생각해야 사랑을 가꾸어요.


  두려움을 생각하니 두려움이 태어납니다. 두려움을 품으면서 걱정을 하니까 두려움이 크게 부풀면서 걱정이 커집니다.


  꽃을 보아야 꽃이 떠오르면서 꽃내음이 온몸으로 퍼집니다. 숲을 보면서 숲에 들어서야 숲을 알고 느끼면서 숲내음이 온몸을 감쌉니다. 살아가고 싶은 길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하고 싶은 삶을 마음속에 그려야 합니다. 즐겁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둘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 모두 아름다운 숨결로 다시 태어나서 환하게 웃고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요. 4347.9.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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