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378 : 있음이 감사한 시간들


곁에 두고 지낼 수 있음이 더없이 감사한 시간들

→ 곁에 두고 지낼 수 있어서 더없이 고마운 하루

→ 곁에 두고 지낼 수 있으니 더없이 기쁜 오늘

《료의 생각 없는 생각》(료, 열림원, 2025) 24쪽


옮김말씨인 “- 수 있음이 + 감사한 시간들”입니다. 이런 옮김말씨는 멋부릴 적에 나타납니다. 우리말씨로는 “- 수 있어서 + 고마운 하루”나 “- 수 있으니 + 기쁜 오늘”로 손볼 만합니다. “- 수 있기에 + 반가운 나날”이나 “- 수 있으니까 + 즐거운 한때”로 손보아도 됩니다. 우리는 ‘시간’에 ‘-들’을 안 붙입니다. 무늬한글인 ‘시간들’은 ‘하루’나 ‘오늘’이나 ‘날·나날’로 고쳐씁니다. ㅍㄹㄴ


감사(感謝) : 1.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 2. 고맙게 여김. 또는 그런 마음

시간(時間) : 1.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 2. = 시각(時刻) 3. 어떤 행동을 할 틈 4. 어떤 일을 하기로 정하여진 동안 5. 때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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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377 : 혹시 주변


혹시 누가 본 사람이 있나 주변을 돌아봤습니다

→ 설마 누가 보나 돌아봅니다

→ 누가 보려나 두리번댑니다

《거짓말》(고대영·김영진, 길벗어린이, 2009) 6쪽


한자말 ‘혹시’는 으레 군말입니다. 이 보기글처럼 “누가 있나” 하고 밝힐 적에는 덜어낼 만합니다. 또는 ‘설마’나 ‘얼핏’이나 ‘문득’으로 손봅니다.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돌아보다 : 두루 살피다’처럼 풀이를 하지만 ‘살피다 = 두루 보다’라서 겹말풀이입니다. ‘돌아보다 = 두루·둘레를 보다’인 얼거리입니다. “주변을 돌아봤습니다”는 겹말이니 ‘주변을’을 덜어냅니다. 또는 ‘두러번댑니다·두리번거립니다·두리번두리번합니다’로 손봅니다. ㅍㄹㄴ


혹시(或是) : 1. 그러할 리는 없지만 만일에 ≒ 혹(或)·혹야(或也)·혹여(或如)·혹자(或者) 2. 어쩌다가 우연히 3. 짐작대로 어쩌면 4.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다소 미심쩍은 데가 있어 말하기를 주저할 때 쓰는 말

주변(周邊) : 1. 어떤 대상의 둘레 2. = 전두리

돌아보다 : 1. 고개를 돌려 보다 2. 지난 일을 다시 생각하여 보다 3. 돌아다니면서 두루 살피다 4.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다 = 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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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370 : -로부터 것


아이는 어른으로부터 말을 배우는 것일까

→ 아이는 어른한테서 말을 배우나

→ 아이는 어른 곁에서 말을 배울까

《말을 낳는 아이, 애지니》(애지니아빠, PAROLE&, 2021) 4쪽


누가 누구를 가르칩니다. 누구는 누구‘한테서’ 배웁니다. 우리는 ‘누구로부터’가 아니라 ‘누구한테서’ 배웁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말을 배웁니다. 묻는 말씨로 마칠 적에는 “배우는 것일까”가 아니라 “배울까”나 “배우나”나 “배우는가”로 맺습니다.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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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64. 우리빛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책도 많지만, 날마다 버림받는 책도 많습니다. 어쩌면, 날마다 버림받는 만큼 새책이 태어난다고도 여길 수 있습니다. 저는 1992년부터 헌책집에서 ‘도서관에서 버린 책’을 만났는데, 헌책집지기님한테 여쭈니 “허허, 젊은이는 몰랐는가? 도서관은 책을 들이는 만큼 버려. 그런데 다시 찍지 않는 아까운 책을 엄청나게 버리지. 그럴 수밖에 없잖은가? 도서관을 세운 뒤에는 책을 둘 자리는 늘리지 않으니, 도서관에 새책을 놓으려면 옛책이나 헌책은 버려야 해. 그래서 우리 같은 헌책집 사람들이 ‘버림받은 책’ 가운데 되살릴 책을 캐내려고 하지.” 하고 말씀하더군요. 작은 헌책집 몇 곳에서 ‘버림치’를 되살리더라도 얼마 안 됩니다. 오래오래 사랑받으려고 태어난 책이지만, 그만 파묻히거나 사라져야 합니다. 올해에 갓 나온 책이라야 더 읽힐 만하지 않습니다. 지난해에 나왔거나 대여섯 해 앞서 나왔기에 해묵지 않습니다. 모든 책은 한두 달이나 몇 해만 읽히고 버리도록 마련하지 않습니다. 모든 책은 종이가 바스라지고 낡더라도 두고두고 속으로 새기려고 빚습니다. ‘우리’는 누구이고, 너와 나는 어떤 숨빛일까 하고 늘 곱씹습니다. 되살려서 되읽고 싶은 책을 쓰다듬다가, 이 작은 종이꾸러미하고 나는 남남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인 빛일 텐데 하고 느낍니다. 책이 되어 준 나무를 떠올립니다. 나무를 지켜보는 별을 그립니다. 나무 곁에 있던 꽃과 돌을 되새깁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서로 새롭게 어울리려고 이곳에 태어났을 테지요.


ㅍㄹㄴ


우리빛


나만 덩그러니 있는 듯한데

아무도 나를 안 쳐다보는데

내가 서성여도 못 알아보고

울고 싶은 마음을 누르는데


별이 나를 보면서 속삭인다

“네가 혼자 있던 날은 없어.”

꽃이 나한테 다가와 말한다

“너는 여태 외롭던 적 없어.”


나무가 빙긋 웃더니 외친다

“너랑 내가 있어 우리 뜰이야.”

돌이 도르르 굴러 노래한다

“우리는 늘 네 곁에서 살았어.”


나비하고 내가 있어도 우리란다

빗방울과 내가 놀아도 우리이고

바람이랑 내가 나란하게 우리에

멀리 있는 너하고도 늘 우리래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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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위로하지 않는다



  2007∼08년 즈음 내 얼굴을 찍은 어느 분이 사진책을 내며 ‘인천사진작가’ 가운데 하나로 실어도 되겠느냐 묻는다. 없던 일로 하시라고, 빼라고 하려다가 그만둔다. 한참 그분 말을 들어보고서 끊었다. 그분은 내가 쓴 글이나 책을 읽어 보았을까? 앞으로는 읽을까? 속빛을 못 읽으면서 겉빛만 좇는다면, 사진이 아니라 ‘사진시늉’일 뿐인데. “부디 ‘사진시늉’이 아니라 ‘사진’을 하십시오.” 하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몸앓이를 하며 곧 저승길에 갈 듯하다고 하시기에, 이제는 어떤 도움말도 안 들을 듯하다고 느낀다. 그동안 그분을 뵐 적에 들려준 말 가운데 하나도 받아들인 바가 없으셨으니 그러려니 할밖에 없다.


  나무는 사람을 달래주지 않는다. 사람은 나무를 달래줄 수 없다. 꽃은 사람을 달래주지 않고, 사람이 꽃을 달래주지 않는다. 바람은 사람을 안 달래준다. 사람도 바람을 못 달랜다. 바다는 사람을 달래주지 않고, 사람은 바다를 달래주지 않는다. 흙도 모래도 별도 샘도 갯벌도 씨앗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스스로 그곳에 고스란히 있다.


  나는 누구도 달래주지 않는다. 남이 나를 달래줄 수 없다. 내가 너를 달래지 못할 뿐 아니라, 네가 나를 달랠 수 없다. 이 대목을 제대로 보고 받아들여서 배울 적에, 비로소 너랑 나랑 사근사근 만난다. 우리는 “달랠 사이”가 아닌 “만날 사이”이다. 우리는 “달래주는 손끝”이 아니라 “저마다 지으면서 함께 나누는 손길”이다.


  나는 나를 달래지 않는다. 너도 너를 달래지 않는다. 그저 보고 바라보고 들여다보다가 스스로 문득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본다. 구름 사이로 새 두어 마리 볼 테지, 네 마음과 내 마음을 잇는 눈빛이 밝은 줄 알아챌 테지. 새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런 자국이 안 남는 줄 느낄 테지. 아무런 자국은 없지만 바람길이 있고, 바람길은 늘 바뀌는 빛줄기인 줄 헤아릴 테지.


  아무도 누구를 달래지 않는다. 언제나 스스로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길꾼(철학자나 도인) 같은 소리가 아니다. 나는 나로서 살고 너는 너로서 살기에, 나는 내 삶길을 너한테 말하고, 너는 네 삶꽃을 나한테 들려준다. 우리는 서로 누구이든 달랠 까닭이 없다. 우리는 서로 스스로 하루를 짓는다. 달래주기를 바라지 말자. 달래려고 나서지 말자. 언제나 오늘 이곳에 가만히 서서 바람을 쐬고 해를 쬐고 풀내음에 꽃내음을 맡으면서 숨을 느긋이 쉬자.


  숨을 쉬면 된다. 숨을 고르면 된다. 숨을 가누면 된다. 나무가 내쉰 바람을 내가 마신다. 내가 내쉰 바람을 나무가 마신다. 누구도 누구를 ‘위로(慰勞)’하지 않는다. ‘위로’한다고 내세우거나 밝히거나 앞세우거나 떠드는 ‘놈’이 있다면, 모두 거짓말쟁이일 수밖에 없다. ‘위로(慰勞)’와 ‘위안(慰安)’이 거의 같은 한자말인 줄 아는가? ‘일제강점기 종군위안부’뿐 아니라 ‘중국사대주의 조선위안부’를 벌써 잊었는가? ‘위로·위안’은 고이 내려놓고서, ‘달래기’도 그저 놓으면서, ‘짓기·빚기·일구기·가꾸기·꾸리기·심기·돌보기·보살피기·나누기·펴기·노래하기’로 가면 된다.


  누구나 누구하고라도 이야기를 하면서 말소리를 거쳐서 마음을 나눌 뿐이다. 마음을 나누는 말소리와 눈길과 숨결이 흐르기에, 모든 멍울과 생채기와 고름이 스르르 녹고 풀린다. 해주지 않고 해줄 수 없다. 그냥 하고서 또 하고 새로 한다. 다시 하다가 새삼 하고 거듭거듭 한다. 늘 하고 노상 하고 한결같이 한다.


  묵은책 한 자락을 읽는다. 쉰 해라는 나날이 넘어가는 책자락에 감도는 지난날 삶빛을 새로 느낀다. 갓 나와서 오늘 막 들어왔다는 그림책을 장만해서 읽는다. 서울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에 천천히 넘긴다. 어느 책도 우리를 달래주지 않는다. 어느 책이든 읽는 동안에 우리 마음에 씨앗 한 톨씩 건넨다. 나도 너도 책을 읽으면서 슬며시 받은 씨앗을 서로 마음밭에 가만히 심는다. 오늘 받은 씨를 오늘 심기도 하고, 이튿날이나 이듬해에 심기도 하고, 때로는 스무 해나 쉰 해를 건사하다가 드디어 심기도 한다.


  우리는 스스로 심은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싹틑 적에 스르르 녹고 풀린다. 남한테서 달램말을 들어야 하지 않아. 남한테 달램말을 들려주어야 하지 않아. 넌 이미 너 그대로 사랑이기에, 넌 너 그대로 빛나. 나는 나 그대로 사랑이어서 난 늘 나 그대로 밝아.


  붐비는 전철길에 섞인다. 읽고 쓰고 듣고 새기면서 낮빛을 본다. 고흥에 제비가 돌아와서 노래한다고 우리집 두 아이가 웃으며 알려준다. 고맙다. 2025.3.2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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