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얼마가 흘렀든지 다시 돌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기에 헌책방 헌책입니다. 겉이 낡고 더러워졌어도, 판권에 적힌 책값보다 훨씬 많은 돈을 치러야 해도 살 만한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헌책방 헌책입니다. 때때로 500원이나 1000원밖에 안 하는 헐값에 살 수도 있는 책이 뜻하지 않게 놀라움과 반가움을 선사하기도 하는 헌책방 헌책입니다. 사람은 늘 새로 나고 죽지만, 책에 담긴 이야기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유행 따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바로 유행이 되는 밑거름을 건네주는 헌책방 헌책이라고도 하겠네요.


 그러나 모든 헌책방 헌책이 볼 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책은 버려지지요. 뭐, 백 해나 이백 해가 지나면 모든 헌책은 옛책 구실이나 값어치를 하긴 하지만, 더구나 돈이 많고 헛간도 널찍해서 간수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조그마한 자리에서 살림을 꾸리는 헌책방으로서는, 책방 임자부터 ‘다시 볼 만한(팔 만한) 값어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곤 합니다. 그래, 다시 팔 만한 값어치가 없는 헌책은 거리낌없이 버려요. 버려지지요. 버려야 해요.


 우리 나라 방송풀그림은 어떨까요. 며칠 지난 풀그림은, 한두 달 지난 풀그림은, 한두 해 지난 풀그림은, 대여섯 해 지난 풀그림은, 열 해쯤 지난 풀그림은, 스무 해나 서른 해쯤 지난 풀그림은, 백 해쯤 지난 풀그림은 어떠하지요? 볼 만할까요? 볼 만한 재미나 보람이 있을까요? 다만, 방송풀그림도 아주 오래되거나 묵었다면, 자료로 값어치 구실을 합니다. 어떤 풀그림도 그렇습니다. 어떤 책이라도 무척 오래되었으면 지난날 자료가 되니까요.


 제가 방송풀그림을 그다지 안 좋아하기도 하지만, 텔레비전을 즐겨보는 분들 가운데 몇 달 지난 ‘재방송’을 재미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몇 해 묵은 ‘재방송’은 더더구나. 열 해쯤 지난 연속극이나 익살이야기는 어떻지요? 1991년 프로야구 어느 경기 하나를 세 시간 동안 앉아서 볼 수 있을까요? 1994년 어느 연속극을 한 시간 동안 앉아서 볼 수 있을까요? 인기를 많이 얻었다는 한국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볼 때면, ‘지금 와서 다시 보니 참 재미없네.’ 하는 느낌이 퍽 짙게 듭니다. 〈친구〉라는 영화를,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를 다섯 해나 열 해쯤 뒤에도 텔레비전에서 틀어 줄까요? 틀어 줄 때 볼 사람이 있을까요?


 지금 우리 나라 방송풀그림 눈높이는 ‘재방송으로 보여줄 값어치나 재미나 보람’이 없는 테두리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재방송으로 보여줘도 한 해도 못 넘길 만한’ 테두리에 머물고 있다고 느낍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즐겨 찾아서 보는 책들 가운데에도 ‘한 해 지난 뒤’에도 읽고픈 생각이 안 드는 책이 참 많습니다. 지금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아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들이지만, 그 책들이 얼마나 그 좋은 자리에 버틸 수 있을까요?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책들이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머무를까요? 열 해 앞선 때 베스트셀러를 오늘날 읽을 만할까요? 스무 해 앞선 때 베스트셀러나 서른 해 앞선 때 베스트셀러는 어떻지요? 요즘 베스트셀러를 열 해 뒤에도, 아니 다섯 해 뒤에도 읽을 만하다고 느낄까요? 그래서 신문에서 ‘아무개 책방 이주 베스트셀러 목록’을 붙이는 일은 참 쓸데없는 일인 한편, 폭력이라고 느껴요. 정작 우리한테 쓸모가 있고 재미도 있으며 즐거움과 보람이 있는 책목록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니까요.

 
 책이든 방송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다른 공연이든 문화든 예술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어느 무엇이든, 지금 곧바로뿐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즐길 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밥을 좋아합니다. 밥 한 그릇은 지금 곧바로도 제 배를 넉넉히 채워 주고 기운을 북돋워 줍니다. 새힘을 선사해요. 이 밥은 몇 번을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여태껏 얼마나 많은 밥그릇을 비웠을는지. 몇 만 그릇도 넘겠지요. 앞으로도 10만 그릇, 또는 20만 그릇, 또는 30만 그릇을 비울지 모릅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그릇이요, 지금 이때에도 낮밥이나 저녁밥으로 제게 기쁨을 선사할 밥그릇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도, 영화도, 방송풀그림도, 사진도,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곧바로 즐거울 수 있는 한편, 앞으로도 꾸준히 즐길 수 있는 책을, 영화를, 방송풀그림을, 사진을, 그림을 좋아합니다. 지금 곧바로만 재미있는 책은 싫습니다. 앞으로 좋아질 책도 썩 달갑지 않습니다. 한결같은 책, 꾸준한 방송풀그림, 곧게 이어가는 사진이 좋습니다. (4339.10.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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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 지음, 노익상·박여선 사진 / 월간말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마흔에 길을 떠나다
- 글 : 공선옥
- 사진 : 노익상ㆍ박여선
- 펴낸곳 : 월간 말(2003.7.5.)
- 책값 : 8500원



 이 책 하나 23 ― 우리는 모두 길 떠나는 사람
 : 공선옥, 《마흔에 길을 떠나다》를 읽고


 

 〈1〉 우리 살림살이가 우리 세상 모습


 오늘 아침은 조금 포근합니다. 어제 아침만 해도, 그제 아침만 해도 햇볕이 맑게 비추었으나 날은 쌀쌀했어요. 햇볕이 괜찮구나 싶어서 이불을 담벼락에 널었지만, 잘 안 마른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을 아닌 가을이라서, 가을을 잊은 가을이라서, 가을이 이제 우리네 땅에 “한국사람들아, 나는 이제 한국땅에서 못 살겠다. 너네들이 돈벌이에 이름날리기에 무리짓기에 매달리면서 내가 깃들 조그마한 땅뙈기 안 남겨 놓는구나!” 하고 마지막말을 남기고 떠나는 즈음이라서 날씨 변덕이 대단합니다.


.. 그러나 배달호 씨가 다니던 회사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공기업이던 한국중공업이 두산이라는 민간기업으로 넘어갔을 때도 정부는 공기업의 실질적 주인이랄 수 있는 국민들의 의사는 묻지 않았다. 그리고 두산중공업으로 이름이 바뀌고 나자마자 한국중공업 노동자 천 여 명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한 사람의 노동자가 해고된다는 것은 그 노동자의 가정이 흔들릴 수도 있는 일이다. 가정이 깨지고 그 가정의 아이들이 버려지고…… ..  〈233쪽〉


 왜 변덕스러운 날씨가 되었을까요. 올봄에는 왜 이리 하늘이 뿌연 채 무더웠으며, 올여름에는 왜 이리 벼락비가 쉴 새 없이 오래오래 쏟아졌을까요. 올가을에는 왜 이리 더웠다가 확 추워졌다가 오락가락일까요. 올겨울은 어떻게 될까요. 올겨울은 무시무시한 강추위가 몰아닥칠는지, 아니면 파리와 모기가 알을 깔 만큼 텁텁한 날이 될는지.


.. “요새는 마트라는 게 생겨 가지고 장사 안 돼요. 자가용 타고 마트 가서 싣고 가면 그만인데, 이런 데 누가 옵니까?” 그는 하루 종일 연탄난로 끼고 앉아, 오지 않는 손님 기다리며 ‘테레비’ 보는 것도 중노동이라고 했다 ..  〈205쪽〉


 엊저녁, 집 앞에 있는 헌책방에 잠깐 들렀습니다. 헌책방 아주머니는 목요일에 진도에 다녀왔다면서, “이제 헌책방도 도시를 떠나야 할 때가 되었나 봐.” 하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들 생각이 ‘거기 낙후되었잖아요? 거기 지저분하잖아요? 거기 그래서는 안 되잖아요?’ 하면서 책을 있는 그대로 못 보고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새 것 기준이 무엇이고 어디에 두는지 모르겠어. 기준도 없을 거야.” 하는 말을 붙입니다.

 책이면 그냥 책이지 헌책과 새책이 따로 없습니다. 공장에서 막 찍어서 잉크 냄새 폴폴 나는 책이 새책일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원고를 묶어서 펴낸 책이라고 새책일 수 없습니다. 절판되었던 책을 새로 찍으면 새책일까요. 서른 해 동안 꾸준히 사랑받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교보문고에서 사면 새책일까요? 이 책을 헌책방에서 옛날 문학과지성사 판으로 사서 읽으면 헌책일까요? 따끈따끈한 책을 교보문고에서 샀다고 해도, 책값을 치른 그때부터는 헌책인가요? 껍데기에 먼지 하나 안 묻히고 살며시 읽은 뒤 책꽂이에 얌전히 꽂아 놓으면 새책 대접을 받을 수 있나요? 우리한테 새 것이란 무엇이고, 헌 것이란 무엇일까요.


.. 안동 하회마을이 좋았던 것은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살지 않고 전시용으로 지어 놓은 ‘전통마을’이라면 정말로 끔찍할 것 같았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곳에 삶을 위한 거래가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닌가. 갈수록 오는 사람은 없고 떠나는 사람만 있는 다른 농촌 마을에 비하면 하회마을은 그 얼마나 복받은 마을인가. 좀 뜬금없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사람을, 이웃을 반기지마는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진 사람들은 그 누구도 얼씬하지 못하도록 담도 성벽같이 에워싸고 자물쇠도 철통같이 닫아 거는 것일까 ..  〈201쪽〉


 헌책방 아주머니는 말을 잇습니다. “기후변화도 다 사람이 만들어 가고 있잖아. 난데없이 폭포수처럼 비가 쏟아붓는다든지…….”

 전국 곳곳에 새 길을 닦는다고 부산합니다. 전국 구석구석에 새 아파트 올린다며 법석입니다. 도시 변두리고 시골구석이고 공장을 끌어들여서 물건을 팔 수 있어야 지자체 벌이가 늘어나고 우리 살림이 나아지기라도 하는 듯 이야기가 나옵니다. 수백 억이나 수천 억 원이 손해라고 하면서도 지하철 공사는 그치지 않습니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 인천, …… 지역 지하철역은 큼직큼직 지어 놓습니다. 교통분담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하는데, 자동차는 마냥 늘어나야 하고 버스도 하냥 늘어나야 하며 지하철도 끝없이 늘어나야 합니다. 지구 한쪽에서는 머잖아 석유가 동이 난다고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만큼은 기름먹는 자동차 생산을 자꾸 늘리려 하고, 자동차만 다닐 수 있는 찻길을 더 많이 더 넓게 늘리려고 합니다.


.. 그 노동, 그 땀, 그 눈물이 들어간 터전이라는 것이 그곳에 사는 사람한테 어떤 의미인지를 시골살이를 해 본 경험이 있는 나는 조금은 알고 있다. 그 노동과 그 땀과 그 눈물이 들어간 터전의 의미란, 말하자면 수 틀리면 돈으로 맞바꾸어 쉽게 손 털고 나갈 수도 있는 그런 종류가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  〈172쪽〉


 우리들 사는 집에서 일터까지 오가는 거리는 얼마쯤 될까요. 집에서 일터까지 걸어서 오가자면 얼마쯤 걸릴까요. 자전거를 타고 오가면 얼마쯤 되지요? 한 시간 걷기를, 삼십 분 자전거 타기를 꺼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가게나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사지 않고, 꼭 자가용을 몰고 ○○마트에서 쇼핑수레 한 가득 물건을 사들여서 차 짐칸에 그득그득 싣고 돌아오지 않습니까. ○○마트에서는 비닐봉지 값을 얼마 받는다고 하며 비닐봉지 덜 쓰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이곳에서 파는 물건을 보면 낱낱으로 비닐포장을 하고 있으며, 끼워팔기하는 물건마다 비닐이며 랩이며 테이프며 덕지덕지입니다.


.. 인사동에 딱 들어서는데, 받은 첫 느낌은 새로 단장하는 데 돈 꽤나 들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인사동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  〈153쪽〉


 요일에 맞추어 쓰레기를 나누어 내놓는다고 해서 쓰레기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도시사람들 집과 길거리는 조금 깨끗해 보일 뿐입니다.

 우리들이 날마다 내놓고 있는 쓰레기는 참말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그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서 꾸역꾸역 쓰레기산을 이루어 놓는다고 해서 쓰레기가 제대로 삭을까요. 차에서 내뿜는 배기가스가, 우리들 집과 일터에서 때는 기름과 돌리는 에어컨에 들어가는 온갖 자원이, 냉장고며 가습기며 정수기며 텔레비전이며 전자레인지며 오븐이며 세탁기며 비데며…… 우리는 얼마나 알맞게 물건을 갖추어서 쓰고 있을까요. 꼭 써야 할 물건을 알맞는 자리에 두고 있는가요. 몇 해 쓰지 않고 내다 버리거나 ‘새 것’으로 갈아치울 물건을 유행 따라 돈푼 내며 주워모으고 있지는 않나요.


 〈2〉 우리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살겠지


 가까운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가든, 서울에 있는 책마을 사람이나 동무를 만나러 가든, 가방에는 사진기 두 대를 챙기고 커다란 가방을 등에 메고, 앞에는 작은 가방 하나와 사진기기방을 멥니다. 꼭 행군을 앞둔 군인 차림새입니다. 늘 마주치는 이웃사람들도 “어디 여행 가셔요?” 하고 묻습니다. “늘 이런 차림인걸요.” 하고 대꾸하며 웃습니다. 동네에서도, 서울에서도, 또 다른 곳에서도, 긴머리에 깎지 않은 수염 얼굴을 보고는 “외국사람인 줄 알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산 같은 가방에 한쪽 손에는 늘 사진기가 들려 있고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을 보면 그렇게 느낄 수 있겠지요.

 그렇게 보거나 말거나 저는 저대로 자전거를 몰며 길을 나서고, 때때로 자전거를 집에서 쉬게 한 다음 두 다리로 길을 나섭니다. 자전거를 몰 때면 한결 먼거리를 네 시간이고 여섯 시간이고 달립니다. 두 다리로 걸을 때에도 다섯 시간이고 일곱 시간이고 걷습니다. 양말을 신지 않는 맨발 고무신 걸음이니, 남들은 한 해 남짓 신을 수 있다던 고무신도 여덟 달이나 열 달만 되어도 뒷축이며 바닥이며 다 닳아서 구멍이 나고, 발가락이며 발바닥이며 굳은살로 딱딱합니다. 늘 무거운 짐과 사진기를 짊어지거나 자전거 손잡이를 잡아야 하는 손아귀는 굳은살이 깊게 박힙니다.

 땀이 물줄기 되어 볼을 타고 흐르거나 방울이 져서 똑똑 떨어지더라도 걷거나 자전거를 몹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 땅을 밟고, 내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나는 냄새를 맡습니다. 비록 나날이 답답해지는 바람이고 코가 매운 냄새로 비위가 거슬리고 속이 울렁거립니다만, 이 모습 이 삶 이 터전 이 사람이 우리들 이웃이요 우리 자신이며 우리 겨레이고 우리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 방 안으로 들어섰다. 냄새가 난다. 좋다. 그 방에서 나는 냄새는 바로 ‘옛날 엄마’ 냄새다. 신식이 아닌, 고생 많이 한 구식 엄마들만이 낼 수 있는 냄새가 바로 그 방에서 나고 있다. 나는 숨을 흠씬 들이킨다. 밖에서는 내린 눈이 녹아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  〈28쪽〉


 골목길에서도 무서운 빠르기로 내달리는 저 시커먼 자가용 모는 양복쟁이 아저씨도 우리 한겨레입니다. 담배꽁초나 빈 과자봉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길바닥에 휙휙 던지는 젊은이도 이 나라 한겨레입니다.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하고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읋는 예닐곱 살짜리 꼬마아이들도 이 나라 한겨레입니다. 차방귀 고스란히 들이마시는 길바닥에 좌판을 깔고 1000원짜리 김밥과 가래떡을 파는 아주머니 할머니도 우리 이웃이요 한겨레입니다. 편의점 알바를 하며 날로 무뚝뚝해져 가는 어린 학생들도 우리 동생이며 한겨레입니다.

 사천만이 사는 남녘이라면 사천만 가지 얼굴이 있고 사천만 가지 목소리가 있으며 사천만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사천칠백만이 사는 남녘이라면 사천칠백만 가지 모습에 사천칠백만 가지 꿈에 사천칠백만 가지 이야기가 있겠지요. 그러나 꾸준하게 늘어나는 이 나라 사람들 숫자처럼 우리 삶이나 일이나 놀이나 이야기나 책이나 생각이나 몸짓이나 모양새들이 저마다 다르며 알콩달콩 어울린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모두 똑같은 한 가지로 틀에 맞춰지는 사천만, 또는 사천칠백만이 아닌지요.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텔레비전을 보면 볼수록, 인터넷을 즐기면 즐길수록 판에 박힌 길을 그예 달려가는 허수아비로 바뀌어 가지 않는가요.


.. “옥수수는 돈이 좀 되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묻기 싫은 질문을, 그러나 해야만 할 것 같은 약간의 의무감으로 묻고야 말았다. 돌아온 할머니 대답이, “돈이 되나 마나, 씨 뿌릴 때 됐으니 씨 뿌리고 거둘 때 되면 거두는 거지 뭐.” ..  〈76쪽〉


 살림집 앞으로 문구 도매상이 죽 이어져 있습니다. 어제 낮에는, 아스테이지를 사러 이 문구 도매상을 하나하나 들어가 보는데, 어느 가게에서도 아스테이지를 팔지 않습니다. 문구 도매상은 말 그대로 ‘도매상’일 뿐일까요. 아니, 이름은 도매상을 내걸지만, 이곳에서 다루는 물건은 몇몇 가지로만 못박혀 있지 않을까요. 가만히 헤아려 보니, 문구 도매상과 가까운 거리에 초등학교가 세 군데 있고 고등학교도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구 도매상 골목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문방구붙이를 살피거나 찾는 아이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기는 내가 살았던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그래도 집집이 부엌문 겸 현관문을 열어 놓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성냥갑 같은 붉은 벽돌 다세대주택들에 사람들은 갇혀 버린 듯이 느껴진다 ..  〈106쪽〉


 지지난주에 부산 나들이를 하면서, ‘부산에 왔기에 맛볼 수 있는 밥은 무엇이 있고, 부산에 왔기에 느낄 수 있는 골목은 어디가 있으며, 부산에 왔기에 함께할 수 있는 삶터며 놀이며 무엇일까’ 생각하며 부지런히 걸어다녔습니다. 자갈치시장이 있고 국제시장이 있고 광안리니 해운대니 있는 부산이고, 부민동이니 광복동이니 오랜 이야기와 역사가 있는 골목은 많기는 하나, ‘부산다움’이 무엇인가는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따지고 보면, 제가 사는 인천에서도, 가까운 수원에서도, 평택에서도, 천안에서도, 청주에서도, 대전에서도, 아산에서도, 홍성에서도, 익산에서도, 전주에서도, 그곳에 머무르기에, 또 그곳을 찾아갔기에 느낄 만한 삶터란 무엇일까 모르겠습니다.

 살고 있는 땅이름만 다른 우리 나라일까요. 우리들이 저마다 살고 있는 땅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가 다르며 흐르는 물과 바람이 다릅니다만, ‘그래 이것이군’ 하면서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이야기를 못 찾겠습니다.


.. 자신은 외국에서 살았지만 한국사람으로 자부심이 있고, 그래서 한국에 오면 더욱더 우리 말을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단다. 그런데 왜 공사판에서 전부 일본말을 쓰냐, 언어가 있는 민족으로서 자존심도 없느냐, 대통령도 국민들에게 힘내자고 하지 않고 화이팅이라고 하더라, 말은 얼인데 이렇게 자기 말 천대하면 생김새만 한국사람이지, 다 외국계 민족이 될 것이다. 한국을 떠나기 앞서 최씨가 맨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의 ‘배운 자’들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라고 했다 ..  〈114쪽〉


 우리네 구석구석 모두들 ‘먹고살기 어렵다’고 느껴서 그러할까요. 먹고살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지구자원을 얼마나 헤프게 쓰는지 돌아볼 겨를이 없어서 그러할까요. 어떻게든 돈만 더 벌면 되지만, 돈을 더 벌어도 나보다 더 많이 버는 남이 있어서 벌고 벌고 또 벌어도 마음이 차지 않을까요.

 우리는 얼마만큼 벌어야 비로소 ‘먹고살 만’하다고 느낄까요. 내 살림살이가 이웃 살림살이보다 얼마만큼 높거나 많아야 마음을 놓을까요. 내 차는 얼마나 커야 하고 내 집은 얼마나 넓어야 하나요. 차도 없고 집도 없이 살면 사람다움을 잃은 삶인가요. 자전거를 타거나 두 다리로 걸으면 바보인가요. 전세집이나 월세집에 살더라도 집옮길 걱정이 없이 오래오래 지내려는 마음이라면 너무 어리석은가요.


..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하는 이유는 그들의 배를 채우기 위함일 뿐이다. 그들은 이 땅에 주둔하는 게 아니고 점령을 하고 있는 것이며, 그들이 이 땅을 점령하고 있는 한에는 이 땅의 민중들은 그들의 ‘Meal’이 되고 있을 뿐이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 이 땅은 삶의 터전이지만 이 땅을 점령하고 있는 미군들에게 이 땅은 다만 작전지역 중의 한 곳일 뿐이다 ..  〈146쪽〉


 벼를 겨만 벗겨서 누런쌀로 먹으면, 깎는 데 들어가는 자원이나 품이나 시간이 덜 듭니다. 누런쌀은 흰쌀보다 우리 몸에 훨씬 좋습니다. 그러나 누런쌀이 몸에 좋다는 지식은 머리속에 있어도 누런쌀을 먹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저잣거리나 쌀집에서 누런쌀을 찾으려 해도 찾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덜 깎아 품이 적게 드는’ 누런쌀이 ‘더 깎으며 품과 자원이 더 많이 쓰게 되는’ 흰쌀보다 비쌉니다.


 〈3〉 길사람


 아침 빨래를 하면서 머리를 감습니다. 해바라기를 하며 기찻길로 전철이 오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물끄러미 기찻길을 바라봅니다. 오늘 햇살은 제법 따사롭네요. 이불 널어 놓은 담벼락에 기대어 봅니다. 배추흰나비 한 마리 팔랑거리며 눈앞을 지나갑니다. 요 앞, 조그마한 텃밭에서 알을 깬 나비인 듯하네요.

 도심지 골목길이기에 길바닥은 모두 시멘트바닥이지만, 골목집 사람들은 흙을 조금씩 퍼 와서 작은 꽃그릇을 마련하고, 돌을 쌓아 텃밭까지 일구곤 합니다. 옥상에 텃밭을 마련해 나무를 심는 분도 있습니다. 메마르고 팍팍하기만 하던 도심지 한켠은, 골목집 사람들이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 때로는 예순 해 동안 한 자리를 고이 지키면서 가꾸어 온 풀과 나무로 작디작은 숨구멍이 생깁니다. 이 작디작은 숨구멍에는 애벌레도 꼬물꼬물 기어다니며 잎사귀를 뜯어먹었을 테고, 이 애벌레가 자라 흰나비도 되고 노랑나비도 되겠지요.


.. 그래, 아들아, 받아쓰기 좀 못해도 좋다, 영어 같은 거 안 해도 좋다, 그러나 풀빛 향기 가득한 오월의 저문 강가에서 어미와 함께 들었던 저 소쩍새 소리를 너는 기억하려무나. 눈물로 기억하려무나. 악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 악이다. 무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마음이 무기가 되고 흉기가 된다 ..  〈246쪽〉


 마흔에 길을 나섰던 공선옥 님은 어느덧 마흔다섯 나이로 달려가고, 머잖아 쉰 살 나이가 되겠지요. 그 쉰 살에도 지금과 같이 길을 나서면서 살아가실까요.

 생각해 보면, 공선옥 님은 마흔일 때만이 아닌 서른에도 길을 나섰습니다. 스물에도 길을 나섰고 열에도 길을 나섰겠지요. 다만 공선옥 님 스스로 그 나이에는 당신이 길을 나섰다는 생각을, 느낌을, 마음을, 넋을 부대끼지는 못했으리라 봅니다.

 저도 그래요. 곰곰이 돌이키면, 헌책방 나들이를 하든 골목길 나들이를 하든 저잣거리 장보기 나들이를 하든, 날마다 ‘길을 나서며’ 살고 있습니다. 집에서 살고 있는 집사람이면서, 길에서 사는 길사람입니다.

 내 이웃과 내 동무 모두 집사람이며 길사람입니다. 아직까지 자기 꿈을 펼치지 못하며 돈벌이에 매여 있는 동무들도 ‘멀고 먼 자기 꿈을 이루기까지 힘들고 고달픈 길을 돌고 돌아’ 길을 떠난 셈입니다. 인천 배다리 골목에 뿌리를 내려 쉰 해나 일흔 해를 살아온 아주머니 할머니도 ‘어디 먼 구경 다녀 본 적’은 없다고 해도, 바로 이 뿌리내린 동네 한켠에서 늘 길을 나서면서 살아온 셈이에요.

 사람마다 자기 길이 있고, 사람마다 제 깜냥과 주제대로 길을 나섭니다. 어떤 이는 몇 천 킬로미터 바깥까지 길을 나서고, 어떤 이는 몇 백 미터 테두리에서만 길을 나섭니다. 더 먼 데까지 나간다고 더 홀가분하거나 즐겁게 길을 나서는 셈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가까운 테두리까지만 길을 나선다고 해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길나섬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백 살까지 살아야 잘사는 삶이 아니고, 스물밖에 못 산다고 못사는 삶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한 달에 천만 원을 벌어야 잘사는 삶이 아니고, 한 달에 십오만 원 가까스로 번다고 못사는 삶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자기가 길사람을 느끼고 언제나 길나섬을 한다고 느낄 수 있다면, 어느 곳 어떤 자리에서 누구와 부대끼더라도 아름다운 자기 삶터를 두 발로 튼튼하게 디디며 걸어가고 있는 멋있는 사람, 곧 멋사람이라고 느낍니다. (4340.10.1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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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 가을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젯밤, 그리고 오늘낮, 집에 있는 온도계를 보니 16∼17도입니다. 햇살이 내리쬐는 바깥은 20도를 넘길까요? 오늘은 며칠 만에 해가 얼굴을 내밀고 있어서 부랴부랴 이불을 걷어서 담벼락에 널어 놓습니다. 그러고는 머리를 감고 웃도리와 수건 빨래를 합니다. 온도계로는 가을이라 그런지 이른새벽이나 이른아침에는 머리감기 힘듭니다. 이제 막 가을 문턱을 넘어서서 그럴 텐데, 조금 지나면 익숙해지겠지요. 한겨울에도 찬물로 머리를 잘만 감아 왔으니까요.

 빨래는 집안에 널어 놓은 다음, 머리카락 물기를 조금 털어내고 마당으로 나와 해바라기를 합니다. 갈비뼈처럼 보이는 양털구름이 좋아 보여서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앞집 하나 건너에 있는 기찻길로 전철이 오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요새는 전철길을 따라 길게 울타리가 놓여서 시끄러운 소리를 조금이나마 막아 줍니다. 이 울타리조차 없던 지난날에는 기찻길 옆 사람들은 우예 살았을까요. 아니, 지난날에는 기찻길 옆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소리 공해’에 시달린다는 생각을 아예 안 했겠지요. 생각해 보면, 기찻길이든 넓은 찻길이든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을 밀어내고 죽 밀어붙였어요.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 모여살던 마을은 그예 두 동강이 나서 얼결에 남북, 또는 동서로 갈린 채 서로 만날 수 없는 사이처럼 되고 맙니다. 때때로 고속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이 고속도로 왼편과 오른편으로 갈린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오갈 수 있을까 싶어 가슴이 짠합니다. 어쩌면, 두 마을 분들은 서로 오갈 일이 없을지 모르겠고, 고속도로로 나뉜 지 오래되어서 서로 오갈 일도 사라졌는지 모르겠어요.

 잠깐 동안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데에도 머리카락 물기가 거의 다 마릅니다. 웃도리를 들고 도서관으로 내려옵니다. 물 한 잔 마시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4340.10.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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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신문>에 주마다 한 번씩 싣는 글. 어느덧 스물한 번째 글이 되었네.

그나저나, 글에서 이야기하는 <민족통일을 위하여>는 미처 겉그림을 긁어 놓지 못했다 ^^;;;








 책으로 보는 눈 21 : 어떤 책을 선물받고 싶나



 2001년 세상을 떠난 송건호 님이 1986년에 써낸 책 《민족통일을 위하여》(한길사)가 있습니다. 227쪽자리 조그마한 판으로, 이 나라 민족지성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현대 역사는 어떻게 연구해야 좋은가, 식민사관은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는가, 일본과 우리 나라는 어떻게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가, 오늘날(1980년대)을 살아가는 젊은이들한테 바라는 일, 통일 이야기로 무엇을 주고받으면 좋을까, 남북이 나뉘어 있는 이 땅에서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들을 차근차근 짚어 나갑니다.

 지난 2004년, 전교조 ㄷ지부를 찾아가서 학교 선생님들 앞에서 우리 말 이야기를 들려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 나이 또래 선생님도 계셨겠지만, 저보다 한참 나이든 선생님들이 많았습니다. 모두들 나어린 사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습니다. 배워야 할 일이 있으면 자기보다 한참 젊거나 어린 사람들 말도 귀담아들어야 좋음을 살갗으로 느꼈습니다. 이날, ㄷ역에서 모임터까지 차로 실어다 준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분한테 “오늘 ㅇ동 헌책방거리에서 송건호 님 책을 한 권 우연하게 만났어요(전집이 나오기 앞서까지 송건호 님 책은 거의 모두 절판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또 찾을 수 있으니, 선생님이 한번 읽어 보셔요.” 하고 말하며 《민족통일을 위하여》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께서는 “송건호요? 어떤 분이지요?” 하고 물으십니다. “……. 1975년에 동아일보를 그만두시고, 1988년에 한겨레신문을 만드셨던 분인데, 모르시겠어요?” “하하, 제가 책을 잘 안 읽어서요.” “책 읽을 틈은 없으셔도 신문 읽으실 틈은 있으실 텐데.” “저는 그 책을 받아도 읽을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최 선생님께서 그냥 읽으시지요.” “저는 예전에 읽은 책입니다. 오늘 모임에서 만나는 분한테 선물로 드리려고 일부러 한 권 샀어요. 우리 삶을 밝힌 훌륭한 어른 가운데 한 분인 송건호 님이에요. 바쁘시더라도 한번 살펴보시고, 학교에서 아이들한테도 이런 분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읽어 보시고 괜찮으면 다른 선생님을 드리셔도 좋고, 그다지 마음에 안 드시면 헌책방으로 가지고 가 파셔도 좋고요.”

 그 뒤로 세 해가 지난 2007년 가을, 아직까지 송건호 님 《민족통일을 위하여》라는 책을 다시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분은 책 읽을 틈도 없고 송건호 님도 모른다고 했으니 그 책을 드리지 말았어야 했나 모르겠습니다. 송건호 이름 석 자만 알고 이분 삶과 생각을 잘 모르는 분한테 드리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송건호 님 이름과 삶을 조금은 알지만, 이분 생각과 발자취를 잘 모르는 분한테 드리는 편이 한결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민족통일을 위하여》는 거의 눈에 뜨이지 않지만, 《민족지성의 탐구》나 《한국현대사론》이나 《한국현대인물사론》 같은 책은 헌책방에서 곧잘 보입니다. 다만, 이 책들은 책이름을 한자로 적어 놓고 있어서 알아채는 분이 갈수록 줄어듭니다. ‘송건호 언론상’을 받는 분들한테 송건호 님 책을 드리면 반가이 받아들며 읽어 주실까요. (4340.10.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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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이노리티 시선 19
정은호 지음 / 갈무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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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만에 다시 읽고, 다시 쓰는 소개글입니다 ^^;;;; 예전 글은 너무 부끄러워서~~)


- 책이름 : 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 글 : 정은호
- 펴낸곳 : 갈무리(2003.10.30.)
- 책값 : 6000원



 ― 우리 삶을 옥죄는 비바람은 무엇일까
 [말을 붙잡는 시 5] 《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1〉 어떤 끝을 볼 수 있을까


 엊저녁, 잠깐 밤마실을 나옵니다. 언제 사 두었는지 알 길이 없는 김빠진 맥주 하나가 냉장고에 있더군요. 날이 차츰 쌀쌀해지고 있기 때문에, 머잖아 냉장고 돼지코를 뽑을 생각입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어쩔 수 없이 냉장고를 돌렸지만, 추운 겨울에는 냉장고를 쓰지 않아도 먹을거리가 다치지 않아요. 마음 같아서는 여름에도 냉장고를 끄고 싶으나,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더군요.

 아무튼, 냉장고에 들어 있던 맥주를 치워내야 하기에, 안주거리 될 만한 과자부스러기라도 살 생각으로 동네 구멍가게로 찾아갑니다. 여덟 시만 되어도 가게문은 거의 다 내리고 조용해지는 배다리 골목길을 걸으면서.


 오랜만에 쉬는 날
 저녁시장에 갔던
 아내가 내온 방울토마토
 웬 방울토마토?
 퉁명한 내 말에
 요즘 시장에서 제일 싼 게
 방울토마토라 한다
 …  〈방울토마토〉



  사람도 뜸하고 차도 뜸한 길을 설렁설렁 걸어갑니다. 얼마 앞서 다시 연 ‘24시간 불가마 찜질방’을 왼쪽으로 끼고 걷습니다. 저 찜질방은 이 동네에서 얼마나 장사가 되려나. 예전에 장사가 안 되어서 문을 닫았을 텐데.

 사람들 살림집을 밀어내고 산업도로를 닦는다며 파헤쳐 놓은 길 옆을 지납니다. 그나마 마을 분들이 힘을 모아서 이 공사를 멈추게 했지만, 개발업자는 언제 다시 삽날을 들이밀지 모릅니다.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서 살아가는 동네 한복판에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라니……. 참으로 터무니없는 소리요, 어처구니없는 막공사입니다. 동네사람들도 참 어리석었지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개발업자와 인천시 담당공무원 들은 ‘여느 길 하나 닦는다’는 거짓말로 동네사람들을 속였더군요. 아무렴. 컨테이너차나 덤프가 씽씽 내달리는 산업도로를 닦는다고 처음부터 말했으면 어느 누가 도장을 찍어 주었을까요.


 양손에 수갑차고
 끌려가지 않아도
 감방에 갇혀 있지 않아도
 우리들 생존의 벌판
 깊숙이 파고든 손길

 노동자 관리리스트
 A, B, C 등급
  A : 특별 관리대상
  B : 잡무 우선배치
  C : 특근 잔업 전혀 없음
 … 〈구속 2〉



 할배와 할매가 번갈아 지키는 구멍가게로 들어갑니다. “안녕하셔요” 하고 고개숙여 꾸벅 인사를 합니다. “어!” 하고 인사를 받는 할배는 가게 불을 켭니다. 손님이 들어올 때에만 가게 안쪽 불을 켭니다. 할배는 텔레비전 역사연속극을 보고 있습니다.

 과자부스러기 몇 점을 집다가, 막걸리도 한 병 집습니다. 늘 마시던 소성막걸리는 다 떨어졌습니다. 하는 수 없이 누룽지막걸리를 집습니다.

 우리가 고른 물건이 셈대 위에 놓이니, 할배는 뒤쪽에서 주판을 꺼내어 톡톡톡 알을 놓습니다. 속으로, ‘아이고, 사진기 가지고 나올걸. 잠깐 나온다며 사진기를 괜히 놓고 왔구나’ 하고 생각할 즈음, 할배가 한 마디 건넵니다. “옥상에 있는 꽃 사진으로 찍지 않을래?”


 일요일 한 번 쉬어 보는
 절실한 노동자들
 다 버려 두고

 통념도 상식도 다 무시하고

 공공부문
 몇 천 명 사업장
 먼저 쉬어야 하는가

 공익 위해서라도
 공공부문 사업장보다
 선방공 용접공 쉬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노동강도를 따져 보아도
 근무조건 열악한
 작은 공장 노동자들
 먼저 쉬어야 하는 것이 순리다

 몇 천 명 쉬는 것보다
 몇 명 쉬는 게 더 쉬울 것이다  〈주 5일 근무 2〉



 할배는, 셈을 마친 뒤 가게문을 잠깐 내리고 우리를 이끌며 가게 옥상이 올려다보이는 골목 안쪽으로 갑니다. “저기 하얀 꽃 보이지? 희귀한 꽃이라는데 참 예쁘게 잘 피었어.” “그러네요. 지금은 어두워서 찍을 수 없고, 내일 아침이나 낮에 다시 올게요.” “그래, 아침에는 내가 없을지 모르지만, (할머니한테) 얘기하고 사진으로 찍어.”

 가지고 온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길에 생각합니다. ‘할배네 옥상에 온갖 꽃이 가득하던데. 석류도 있고. 그 꽃들을 혼자서만 즐기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하셨을까. 보기 좋은 꽃이라면 이웃들한테도 내보이면서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으셨을까. 골목길 바깥쪽에 크고작은 꽃그릇을 내놓고 키우는 모든 살림집 어르신들 마음도 이와 같을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도화동 어느 집 감나무를 구경하면서 나무가 참 좋다고 말하니 그곳 집임자가 웃으면서 좋아했는데.’


 …
 담배 한 갑에도
 소주 한 잔에도
 온갖 세금들이 다 떨어지고
 의무만 존재할 뿐
 …  〈이민을 꿈꾸는 것은〉



 집에 닿아 먹자판을 벌여 놓고 창밖을 잠깐 내다봅니다. 영화를 찍는다는 대학교 아이들이 헌책방거리에 찾아와서 어제부터 무언가를 찍고 있습니다. 어제는 이른저녁부터 동틀녘까지 퍽 시끄러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오늘은 좀 일찍 끝내 주려나? 동네길에서 밤늦게까지 영화를 찍는다고 부산을 떠니, 그 소리가 집안까지 들려옵니다. 그나저나 저 젊은 아이들이 찍는 영화는 무엇을 주제로 삼고 있을까. 무슨 줄거리를 찍기에, 꼭 헌책방에 와서 찍어야만 했을까. 저 젊은 아이들한테 헌책방이란 어떤 곳일까. 저 젊은 아이들은 영화를 찍기 앞서, 그리고 영화를 찍은 다음에, 이 헌책방거리에 찾아와서 자기 마음밭을 일굴 책을 차분히 즐길 수 있을까.


 아이들 학원비며
 집장만하며 낸 대출금이자
 각종 공과금
 들어갈 건 많고
 손에 묻은 밥풀 같은 월급 쪼개어도
 생활비는 늘 모자란다
 …  〈금 닷돈〉



 남쪽 바다에는 태풍이 찾아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사는 동네에도 거센 바람이 씽씽 붑니다. 아직 비바람으로 몰아치지는 않습니다. 낮에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더니, 매지구름도 보이고 먹구름도 드문드문 보이던데. 문득, 볕드는 날이 줄고 비가 잦은 올해 날씨는, 하늘에 짙게 드리운 먼지띠를 많이 씻어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먼지띠는 고스란히 바다로, 땅속 깊이 스며들었을 테지요. 덕분에 올해는 지난해와는 달리 햇볕 맑게 내리쬐는 날, 가끔이나마 눈이 살짝 부실 만큼 빛살이 좋고 하늘이 파랗기도 했어요.


 정규직은
 아예 모집하지 않는다

 정규직을 모집한다 해도
 젊은 사람 오지 않는 공장

 비정규직 라인에 붙이건만
 점심시간 되기도 전
 말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만
 남아서 일하고 있는 공장  〈3D 공장〉



 막걸리를 마시다가 다 마시지 못하고 1/3쯤 남깁니다. 늘 마시던 막걸리가 아니라서 그런지 속에서 잘 안 받습니다. 마개를 꾹 닫고 자리를 치웁니다. 셈틀을 잠깐 켜고 버마사람들 소식을 살핍니다. 이제서야 이 나라 적지 않은 사람들도 ‘미얀마’가 아닌 ‘버마’임을 조금씩 느끼고 있으며, ‘이주노동자’로 이 땅을 찾아온 사람이 아니라, 고향나라에서 민주주의 되찾는 싸움을 하다가 쫓겨나고 내팽개쳐진 ‘망명가’임을 차츰 깨닫고 있을까요. 글쎄, 글쎄. 글쎄, 모르겠습니다.


 …
 축배를 들며
 아이엠에프를 극복했다
 야단이면 무엇 하나

 늘 우리는
 하루 해가 길기만 하다  〈땜방〉



 어제는 도원역 건너편에 있는 닭집에 들렀습니다. 닭집에 앉아서 옆지기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 닭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을 뽑아야 하는데, 아직 못 뽑아서 이렇게 힘들어요.” 하고 말하는 두 분. 아주머니는 쉴 틈 없이 닭을 굽고, 아저씨는 숨돌릴 겨를이 없이 배달을 나가고.

 사람들이 집에 앉아 전화기 단추만 꾹꾹 눌러서 시켜먹기만 하는구나 싶은 한편으로, 이런 밥집이나 술집 일거리조차 안 찾는구나 싶은 생각.

 낮에는 헌책방 아주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머리에 지식만 쌓아 놓고 있는 사람들은 헌책방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무식한 사람들이나 헌책방 장사를 하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니라고. 가슴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네들은 헌책방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큰놈 작은놈 데리고
 집 앞 놀이터에 갔다가
 체육공원 잔디밭 간다

 아이들은 신이 났고
 나는 일요일도
 공장에 일하러 간 날들을 헤아려본다
 …  〈일요일 2〉



 저녁 열한 시 넘어까지 다니는 버스. 열두 시 넘어까지 오가는 전철. 버스 소리와 전철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 눕습니다. 때때로 짐기차가 지나갈 때면 건물이 웅웅웅 소리를 내며 조금씩 흔들립니다. 우리가 깃든 이 집은 1958년에 지은 집. 어느덧 쉰 해 동안 온갖 소리를 받아들이고 온갖 흔들림에 익숙해졌군요. 앞으로 얼마나 더 긴 세월을 온갖 소리와 흔들림을 껴안으며 이 자리에서 꼿꼿이 제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 영화 찍는 젊은이들은 아직도 부산한가 봅니다. 오늘까지만 찍고 내일은 안 올까. 내일도 영화를 찍으러 올까.


 〈2〉 시집 하나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가
 갑자기, 직책이 뭐냐
 직장생활 십 년 넘도록 했으모
 무슨 직책이 있을 거 아니냐고 묻는다

 평생을 다녀도
 직책 같은 것 없이
 급수만 올라간다고 했건만

 직책이 없다는 말에
 마냥 섭섭해 하신다  〈직책〉



 시집 하나를 다 읽어냅니다. 네 해 앞서 한 번 읽고, 사이에 한 번 잠깐 들추었다가 책꽂이에 꽂아 두고는 잊었는데, 보름께 앞서부터 다시 생각이 나더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읽어냅니다.

 시집에 담긴 이야기는 그대로이고, 시집을 써낸 사람도 그대로일 테며, 시집에 나오는 사람들도 그대로일까요. 지난주에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까지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묵은 잡지, 1990년대 첫머리에 나온 어느 잡지를 보니, ‘미술경매 문제 있다’는 특집 꼭지가 있습니다. 특집 꼭지는 ‘1990년대 첫머리 그때뿐 아니라 열 해 앞서도 마찬가지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그 뒤로 열 몇 해가 흐른 요즈음은 어떠할까요.

 노동자 전태일 님이 죽은 1970년과, 노동자 배달호 님이 죽은 2003년은, 이 땅에서 노동자들한테 어떤 해였을까요.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정부단체 광고로 곳곳에 나부끼고 있는 2007년 오늘날, ‘경제에 도움이 되는 협정’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쓰는 정책’을 바라기는,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많이 쓰면서 살 수 있는 세상보다는 적게 벌어도 걱정없이 살 수 있고 푸대접을 안 받으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일이란 헛꿈이나 헛생각일까요.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도 일자리를 넉넉히 얻을 수 있는 한편 따돌림을 안 받을 수 있고, 몸과 마음이 고달픈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조금 더 일삯을 받을 수 있으며, 주5일 노동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먼저 하면서 이 사업장 살림이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경제 움직임이란 바랄 수 없는 일인지. 그치지 않는 먹구름뿐이고, 쉴 사이 없이 찾아드는 비바람뿐인지. (4340.10.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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