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초상 1969-2007 - 전민조 사진집
전민조 지음 / 눈빛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한국인의 초상 1969-2007
- 사진 : 전민조
- 펴낸곳 : 눈빛(2007.10.6.)
- 책값 : 2만 원







 이 책 하나 26 ― ‘기다림’으로 담아낸 한국사람 ‘얼굴 사진’
 : 전민조 사진, 《한국인의 초상 1969-2007》



 〈1〉 우리 동네 사람들


 아침에 뒷간에서 《잘 먹겠습니다》라는 작은 책을 읽었습니다. 오늘 펼친 책에는, “의사는 병 치료에 많은 전문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생명력이 강한 농작물을 키우는 흙 만들기나 건강한 사람이 자라기 위하여 뱃속 밭 관리방법까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69쪽)”라는 이야기가 보여서 밑줄을 긋습니다. 의사들은 병원에서 ‘병을 고치는 법’을 알아서 아픈 이를 다스립니다. 아픈 사람들한테 무엇무엇은 먹으면 안 되고 무엇무엇을 먹으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픈 사람들이 먹으면 좋을 무엇무엇이 어디에서 어떻게 길러지는지, 아픈 사람들이 안 먹어야 할 무엇무엇은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길러서 얻을 수 있는지는 모릅니다.


― 인부, 시청앞, 서울, 1972.4.19.


 어젯밤, 동네 구멍가게에서 보리술 두 병과 우유 한 통과 라면 두 봉지를 삽니다. 구멍가게 아저씨는 척척 물건셈을 해냅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까만 비닐봉지에 담으려 하십니다.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아, 비닐봉지에 안 담으셔도 돼요. 가방에 넣어서 들고 가면 돼요.” “다 들어갈까?” “그럼요, 안 들어가면 안고 가면 되고요.”


― 해군 장교, 해군 대구함, 경남 진해, 1971.10.7.


 지난 토요일부터 날마다 도서관에 놀러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셋이 어울려서 이곳으로 옵니다. 아이들 사는 집은 도원역 뒤쪽 숭의동. 아버지 어머니는 맞벌이를 하고, 집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만 계신다고 합니다. 동네에 함께 뛰어놀 또래 동무가 드뭅니다. 여태까지는 셋이서 어떻게 지내 왔을는지. 도서관 전기세 고지서를 살짝 넘겨다보더니, “우와, 어떻게 이렇게 조금밖에 안 나와요? 우리 집에는 삼만 원도 넘게 나오는데.” “우리 집은 오만 원.” “우리 집은 칠만 원.” “우리들(도서관에서는)은 세탁기도 안 쓰고 냉장고도 안 쓰고 텔레비전도 안 써서 그래요.”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두 대인데.” “우리 집은 세 대.”


― 농부, 전북 남원군 대산면 풍촌리, 1982.7.14.


 저녁나절 찾아오는 동네 동무가 있으면, 가끔 도원역 맞은편 2층에 자리한 닭집에 놀러갑니다. 예전에 피시방을 하던 자리에 들어오셨는데, 피시방 시설을 거의 그대로 두었습니다. 아주머니는 혼자서 부엌일을, 아저씨는 배달일을 합니다. 배달은 늘 밀립니다. 배달이 밀리는 까닭은 하나. 아저씨가 길눈이 많이 어두워, 한 번 배달을 나갔다 하면 소식이 영……. 그래도 주문은 끊이지 않습니다. 늦쟁이 닭집이지만, 동네 사람들은 맛있게 즐깁니다.


― 농촌운동가, 서경원, 전남 함평, 1986.6.13.


 한때 은퇴를 했다가 올여름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신 헌책방 할아버지 한 분 나이는 일흔아홉. 곧 여든입니다. 할아버지는 해방 또는 한국전쟁 즈음부터 헌책을 만져 오셨지 싶습니다. 당신 지난날을 아직 여쭙지 않고 책 구경만 했는데, 다음에는 당신 살아온 이야기도 여쭐까 합니다. 이웃한 헌책방 할아버지는 일흔일곱. 두 분은 일을 마칠 저녁나절이면 소주잔을 부딪히며 지나온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해주에서 나고 자란 일흔일곱 헌책방 할아버지는 당신 옛 고향을 아직도 또렷하게 떠올리면서 술잔을 기울입니다.


― 귀순자, 이웅평, 광화문, 서울, 1983.4.10.


 헌책방 할아버지와 견주면 앳된 아가씨였던 ㅇ서점 아주머니도 스물을 얼마 안 넘긴 나이부터 헌책을 만졌습니다. 그때는 앳된 아가씨였겠지만, 몇 해만 더 지나면 벌써 예순 할머니 나이가 됩니다. 배다리 골목집을 뚫으려는 산업도로 막는 일을 하랴, 책방 살림 돌보랴, 동네 사람들한테 ‘우리 삶이 바로 고운 문화예요’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랴, 하루 한때도 몸 가붓이 돌볼 겨를이 없습니다. “사람을 볼 때는 가슴을 봐야지요. 가슴이 살아 있는지 봐야지요.” 하는 헌책방 아주머니는 우리 도서관 바로 앞에 있는 좋은 이웃.


― 전경, 신민당 개헌대회, 전주, 1986.6.1.


 조금 앞서 무슨 검사실이라면서 전화가 옵니다. 말끝에 ‘-요’를 붙이기는 하지만, 저기 높디높은 하늘 끝자락에서 낮디낮은 땅 밑바닥을 내리깔면서 읊어대는 목소리입니다. ㅈ일보 기자가 저를 명예훼손이라며 고소했는데, 그 건 때문에 출석을 해야겠다는 연락입니다. 히유, 이 사람들이 어쩌고저쩌고 해도 좋지만, 어쩌고저쩌고를 하더라도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는지. 사람을 깔보는 목소리를 전화기 너머로 들으면서, 이 아저씨는 아침점심저녁으로 어떤 밥을 먹고, 누가 차려 주는 밥상을 받으며, 자기 밥상에 차려진 먹을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나오는가를 한 번이라도 느낀 적이 있는가 궁금해집니다.


― 법조인, 이회창, 이마빌딩, 서울 종로구, 1996.4.13.


 ㅅ시장에 순대집이 있습니다. 저잣거리마다 한두 군데쯤은 꼭 있는데, 꽤 괜찮구나 싶어서 틈틈이 찾아가는데, 엊그제는 이곳에서 순대국을 한 번 먹어 보았습니다. 순대는 괜찮았으나 순대국은 으으으. 다른 집 순대국보다는 덜 맵고 짰지만(위에 얹은 고추장범벅을 많이 덜어내기도 했으나), 혀와 위에 몹시 자극이 되어 탈이 나는 바람에, 저녁나절 물똥을 누느라 똥구멍이 지지리도 아픕디다. 집에서 우리끼리 해 먹을 때는 혀며 위며 자극이 하나도 안 되는 부드러운 국이나 찌개를 즐기지만, 밖에서 사먹어야 하는 국이나 찌개는 도무지 손을 못 대겠어요. 두렵습니다.


― 수녀, 복선수녀, 샤미나드의 집, 인천 부평구, 2007.7.8.


 서울에서 지낼 때 찾아가던 동네 자전거집 아저씨는 ‘자전거 손질 삯’을 안 받았습니다. 손님 뜸하거나 가게문 닫을 즈음 찾아가면, 혼자 소주 한 잔 드시다가, ‘어, 잘 왔어요!’ 하면서 옆 구멍가게에서 삶은달걀 하나 사 와서 건네면서 ‘한 잔 받으셔요’ 하고 내밀어 주십니다. 자전거집 아저씨는 당신 아버지가 하던 일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자전거 연장과 새 연장이 함께 있었는데, “같은 연장인데도 옛날 게 더 쓰기 좋고 잘 들어요.” 하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인천으로 살림을 옮긴 뒤 찾아가는 이 동네 자전거집 아저씨도 ‘자전거 손질 삯’을 안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씀, “오늘은 내가 손질해 주지만, 잘 지켜보세요. 그리고 다음에는 집에서 혼자 해 보세요.”


― 정육점 주인, 김영기, 서울 금천구 독산동, 2006.2.11.


 배다리에서 동인천으로 가는 길목에 과일장수가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틈틈이 이곳에서 능금이며 배며 땅감이며 사서 먹었는데, 어느 날, 떨이라며 한 바구니에 2000원에 내놓은 능금을 살 때 보니까, 젊은 일꾼이 곯은 능금 몇 알을 슬그머니 끼워넣더군요. 겉으로 보기에는 맨들맨들 좋아 보이지만, 속에는 곯은 능금을 숨겨 놓다니! 어차피 이 능금을 사 가는 사람이 집에 가면 뻔히 볼 텐데, 이렇게 눈가림을 하면 그 집에 다시 찾아가고 싶을까나.


― 청소부, 정진석, 남구로역 앞, 서울, 2006.2.18.


 동네에서 옷집을 꾸려 온 ㅂ아주머니는 몸이 아파서 일을 오래도록 쉬었습니다. 거의 죽는 줄 알았다가 살아나셨습니다. 살아난 지금은 예전 같지는 않아, 머리카락이 곱슬이 되고 몸 이곳저곳 많이 달라졌다는데, 그래도 새 목숨을 얻은 듯이 즐겁다며, 한동안 놓고 있던 옷짓기를 다시 하고픈 꿈을 꾸십니다. 어느 날엔가, 우리를 부르시더니, “우리 집에 나팔꽃이 참 예쁘게 피었어요. 아침에 한 번 놀러오세요. 저기 개코막걸리 옆집 알지요? 문 똑똑 두드리면 되니까, 와서 꽃도 구경하고 차도 한 잔 해요.” 하고 말씀합니다.


― 위안부 출신 할머니, 길원옥, 주한일본대사관 앞, 서울, 2007.8.29.


 지난 일요일, 사진찍는 전민조 님이 도서관에 찾아왔습니다. 전민조 님은 골목길 나들이를 함께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도 사진기 한 대 들고 도원역 뒤편, 숭의동 달동네를 천천히 거닙니다. 빛빛이 고운 담벽과 빨래와 길에 내놓아 앉는 걸상 들을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담습니다. 그러다가 감 따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만납니다. 옆에서 사진을 찍어도 아랑곳하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미안하니까 “감 따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사진 몇 장 찍었어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쭈그렁 늙은이는 안 찍었지? 찍지 마.” 하면서 웃던 아주머니는(할머니였다고 할까. 손주를 보셨을 테니), 당신들이 따던 감을 몇 알 나누어 주십니다.

 











 〈2〉 사진을 찍는 전민조 님


 사진책 《한국인의 초상》을 가만히 넘기며, 제가 사는 동네 사람들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려봅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어떤 얼굴일는지,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웃한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는지 헤아립니다. 저도 이 동네 분들한테는 살가운 이웃으로 느껴질는지, 그냥 머리 길고 고무신 꿰는 젊은 양반으로만 느껴질는지 모릅니다만, 지난주 성당 나들이를 하던 날(입교자 신고), 수녀님이 손을 내밀며 “골목길 다니며 사진 많이 찍으시더니, 드디어 우리 성당에도 찾아오셨네. 반가워요.” 하고 활짝 웃으십니다. 언제 제 모습을 지켜보셨는지, 또 그 모습을 잊지 않고 계시는지. “내 이름은 예쁜데 내 얼굴은 못생겼다고들 해요. 하지만 이름은 예쁘니까 잘 기억해 주세요.” 하고 당신을 소개하는 수녀님은 얼굴 주름으로 미루어보건데, 예순은 훌쩍 넘은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글서글하며 시원시원한 이 수녀님을 보고 누가 ‘못생겼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동네 마실을 하면서 수녀님을 볼 때마다 느끼건데, 이분 가슴을 들여다볼 줄 안다면, ‘예쁜 이름이 그냥 예쁜 이름이 아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텐데.


.. 대상 인물이 자기 안에서 소화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  〈추천글 - 한정식〉


 수녀님은 저 같은 사람들이 성당 문을 두드려 주기를 기다리셨을까요. ‘이곳에 오면 좋은 이야기와 생각을 많이 얻을 수 있으니 어서 와요’ 하고 잡아당기지 않고, 지긋이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우리들이 손수 찾아가면, ‘그동안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고 웃으면서 맞아들이실까요.

 기다림이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합니다. 기다림이란, 지켜봄하고 한 동아리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켜봄이란 언제나 곁에 있는 일, 곁에 머무르기만 하지 않고 감싸거나 보듬거나 돌보는 일, 마음으로 사랑해 주고 걱정해 주고 애틋하게 손길을 내밀어 주는 일하고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나이를 먹었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변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직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은 것은 먹고사는 문제보다 사진 찍는 일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사진을 찍고 있다가 문득, 문학ㆍ그림ㆍ음악ㆍ연극 등과 사진을 사회적 성과물로 비교해 봤을 때, 사진이 세상을 이미지와 콘텐츠로서 한 그릇에 담는 데에 무엇인가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사진을 화랑 벽에 걸기 위한 아름다운 작업에만 치중하지 않았는가 ..  〈책 뒤에 - 전민조〉


 길을 걷다가 걸음이 느린 사람이 있을 때는 살며시 옆으로 돌아가서 걷기.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걷는이를 만나면 딸랑이를 울리지 않고 조용히 빠르기를 늦추었다가 옆으로 비껴가기. 자가용을 몰고 골목길을 가다가 사람이나 자전거가 보이면 빠르기를 늦추고 먼저 가라고 손짓하기. 이런 일들도 기다림일까요.

 세탁기를 안 쓰고 손빨래 하기. 자가용도 대중교통도 안 타고 걷거나 자전거 타기. 내가 읽었던 좋은 책을 이웃사람한테 선물해 주기. 집에서 손수 지지고 볶고 삶거나 무치거나 마련한 먹을거리를 옆집에 찾아가서 맛보라고 한 접시 내밀기. 이런 일들도 기다림일까요.

 학교 시험성적이 높거나 낮거나, 고등학교만 마쳤거나 대학교를 마쳤거나, 얼굴이 예쁘다고 할 만하거나 못생겼다고 할 만하거나, 돈많아 떵떵거리거나 돈없어 쩔쩔매거나, 힘이 세거나 여리거나, 곱고 깨끗하게 차려입거나 대충 아무렇게나 차려입거나, 모두모두 똑같은 사람으로 바라보고 마주하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일들도 기다림일까요. (4340.1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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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일터인 동네 도서관에 놀러오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묻습니다. “남자가 왜 머리를 길러?” 어제는 한 아이가 묻습니다. “아저씨는 면도 왜 안 해요? 면도 좀 해요.”

 우리 나라를 빼고 ‘남자인데 왜 머리를 길러?’ 하고 묻는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요. 어린아이들이 ‘남자는 머리가 짧게, 여자는 머리가 길게’로 생각하도록 하는 나라는 어디에 또 있을까요. ‘남자는 수염을 싹 밀어서 턱과 코 밑이 맨들맨들해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나라는 어디에 더 있을까요.

 이제 아이들한테 제가 묻습니다. “머리가 길면 남자가 아닌가? 여자는 왜 머리를 기르지? 수염은 왜 깎아야 할까? 수염을 안 깎으면 안 될까?”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로 나선 이들은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어떤 정책을 내놓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여론몰이와 얼굴밀기 말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신문 구석자리에 조그맣게 실린 기사를 찾고, 인터넷으로 끄적이며 훑습니다. ‘여성 정책’이라고 적힌 자리를 들여다봅니다. 어느 후보나 여성 정책은 ‘아이 돌보기’ 이야기에서 맴돕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여성 몫일까요? 교육이나 문화 몫이, 남자와 여자가 아닌 모든 사람이 마음 기울일 몫이 아닐는지요. 정책이나 공약을 곰곰이 살펴보노라면, 문화를 말하는 후보는 보이지 않습니다. 문화 가운데에서도 ‘여느 사람들이 여느 살림집에서 꾸려 가는 여느 문화’를 말하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예전에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나는야 서민 대통령’이라고 외치기는 하지만, 정작 서민으로 이 땅에서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서민으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까요. 서민으로 살 생각이 없기 때문일까요. 신동엽 시인은 1968년 11월에 쓴 〈산문시 1〉에서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하고 노래했습니다. 막걸리병을 자전거 꽁무니에 싣고 시인네 집에 놀러갈 수 있는 대통령, 소주병을 자전거 짐받이에 묶고 저잣거리 좌판을 하는 할머니네 집에 놀러갈 수 있는 공무원, 줄넘기와 축구공을 자전거 바구니에 담고 골목길 아이들 놀이터에 놀러갈 수 있는 교사, 이런 사람을 바라는 사람은 현대 사회를 거스르는 바보일는지.

 《여성○○》, 《레이디○○》, 《우먼○○》를 비롯해 책방 잡지칸을 울긋불긋 수놓고 있는 여성잡지는 대통령선거를 앞둔 요즈음 어떤 이야기로 기사를 채우고 있을까요. 여성잡지를 보는 분들한테는 아무나 대통령이 되어도 괜찮을까요. 어차피 여성들이 마음둘 곳은 몸치레 얼굴치레 집치레 밥치레 밤놀이 들이니, 나라일과 동네일은 바깥양반한테 맡겨 두면 넉넉할까요. 아이들은 어머니를 따라 머리집에 놀러갈 때 어머니들 보는 여성잡지를 함께 넘겨다봅니다. (4340.11.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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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든지 ‘서울로! 서울로!’ 가는 세상입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랐어도 지역에서 문화밭을 일구며 가꾸려는 사람보다는, ‘서울에 가서 이름을 날린다’든지, ‘서울에서 큰돈을 번다’든지, ‘서울에 사람이 많으니 이 무리에 섞이면 힘(권력)을 얻을 수 있다’든지 하면서, 자기 고향땅을 등집니다. 젊었을 때에는 더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며 서울에서 복닥복닥 부대끼며 세상을 배운다고도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풋풋한 이십 대 젊은 날을 서울에서 살았군요. 참으로 서울에는 젊은이가 많습니다. 서울과 제법 먼 부산이나 대구나 대전쯤만 해도 젊은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인천에는 젊은이가 적습니다. 젊은 나이에 인천에 머물러 있으면, ‘머리가 나쁘다’든지, ‘어딘가 문제 있다’든지, ‘사고라도 쳤다’고 바라보기 일쑤입니다. 꼭 이래서만은 아니지만, 인천에서 산타는자전거로만이 아니라, 동네에서 생활자전거 문화를 조촐하고 조용하게 나누려는 모임이 터를 잡기 어려워요. 하지만, 누가 나서서 이런 모임을 만들어 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자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 만들자고 하면서 세 사람이 뭉쳐서 작은 모임을 열었고, 이제는 제법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어제, 쌀쌀해지는 날씨에 자전거는 집에 놓고 모임사람들을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처음에는 삼겹살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두 번째로는 보리술을 마시러 갑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찾아간 보리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다가 모두들 ‘윽, 이게 뭐야?’ 하고 술잔에서 입을 뗍니다. 보리술에 물을 타도 장난이 아니게 탔고, 김이 빠져도 보통이 아니게 빠졌기 때문입니다. 술집 일꾼을 불러다가 따져도 ‘새 술인데요?’ 할 뿐. 그렇다면, 서른 마흔 쉰 나이까지 살아온 모임 분들이 여태껏 술을 마셔 오면서 보리술 맛도 모른다는 소리일는지.

 즐거웠던 모임이 확 나빠지려고 합니다. 지역에서 지역사람한테 장사하면서 어째 이럴 수 있는지. 그러나 ‘술은 알맞게 마시라’는 하늘 뜻인지 모를 일. 이제 그만 마시고 집으로 가라는.

 한 해 두 해 세 해, 이렇게 술을 마시는 가운데 술맛이 혀에 달라붙어, 냄새만 맡아도, 눈으로만 보아도 술맛이 어떻겠구나 하고 헤아리게 됩니다. 자전거를 한 해 두 해 세 해, 이렇게 타는 가운데 모두들 손떨림이 줄고 안전하게 즐기게 됩니다. 요즈막에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백 가지 친구 이야기》, 《해와 같이 달과 같이》, 《황새울 편지》 들을 꼭 세 번 되읽었습니다. 앞으로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까지 거듭 읽으면, 줄거리며 글쓴이 뜻이며 더 짙게 내 마음에 아로새겨지며 그려지겠지요.

 책을 다 읽고 나서 소개글을 쓸 때, ‘한 번 더 읽어 보고 쓸까?’ 싶어 한 번 더 읽고, ‘두 번 더 읽으면 좀더 나으려나?’ 싶어 두 번 더 읽고, ‘내 안에서 조금 더 삭이자’ 싶어 세 번 더 읽습니다. 이야기문이 솔솔솔 열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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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낮, 제법 따뜻했습니다. 아니, 더웠습니다. 그래서 긴팔 웃도리를 벗고 가방에 끼워둔 채 돌아다녔습니다. 반소매 차림으로.

 오늘 낮, 어제만큼 덥지는 않지만 햇볕이 따사롭습니다. 도서관에서 손 비비며 글을 쓰다가 옥상에 올라가 해바라기를 하면서 파리 구경을 합니다. 얼어죽거나 겨울잠을 자야 할 파리들이 한두 마리 날아다닙니다.

 그제 담가 놓았던 긴바지 두 벌을 빱니다. 찬물 빨래라 손이 시리지만, 얼어붙지는 않습니다. 다만, 영차영차 빨아서 햇볕에 널어 둔 다음 도서관으로 내려와서 글쓰기를 다시 하는데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습니다.

 언제부터 보일러를 돌리면 좋을는지, 아니, 고장난 보일러를 고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 망설입니다. 올겨울은 영 도 아래로 떨어질 날이 있을까요? 뒷간에서 《잘 먹겠습니다》(그물코,2007)라는 책을 읽다가 “흙이 건강하면 벌레나 해충이 끼지 않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병에 안 걸리듯 건강하지 못한 흙에 병충해가 붙는 것입니다.(57쪽)”라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지금 우리 삶터는 얼마나 튼튼할까요. 우리 나라 날씨는 얼마나 날씨다울까요. 이런 날씨를 느끼면서(또는 아예 안 느끼면서) 살아가는 우리들 몸과 마음은 얼마나 튼튼할 수 있을까요. (4340.1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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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물


 속이 쓰리다. 졸립지는 않은데 눕고 싶다. 잠깐 숨을 멎고 그대로 누운 채로 눈을 뜨고 있어 본다. 내가 이대로 숨을 거두고 죽는다면? 내 삶은?

 몇 분이었을까, 아니 일 분쯤이었겠지. 이러고 있자니, 죽음이란 참 부질없는 노릇이라고, 이대로 숨을 거둔들 무엇이 아깝겠으며, 여기에서 더 산다 한들 무엇이 더 넉넉하겠느냐 싶다. 나는 나대로 내 깜냥껏 하는 만큼 살면 되지 않겠느냐. 무엇을 더 바라고, 무엇을 덜 바라느냐. 무엇이 더 있으면 좋고 무엇이 더 없으면 나으냐.

 얼마쯤 잠자리에서 뒤척이다가 일어난다. 옷을 하나씩 벗는다. 알몸뚱이가 되어 씻는방으로 들어간다. 빨래를 한다. 빨래 하나 마친 뒤 몸을 씻어야겠다고 느낀다. 몸을 씻는다. 찬물이 말 그대로 차갑게 살갗으로 와닿는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진다. 아직 날씨도 영상 십오륙 도쯤 되지 않는가? 십일월이 코앞인데 이런 날씨이다. 아직 보일러는 돌리지 않는다. 아니, 보일러는 고장이 나서 돌릴 수 없다. 올겨울은 보일러 없이 날 수 있을까? 보일러를 돌린다 해도 기름값이 걱정이다. 올겨울은 옷 두툼하게 껴입고, 바닥에는 깔개를 잔뜩 깔아 놓은 채 버틸 수 있을까?

 어쩌면, 어쩌면 버티리라. 해가 다르게 날이 따뜻해진다. 아니, 더워진다. 가게에서 사 온 비름나물에 곰팡이가 피었다. 부랴부랴 냉장고에 다시 돼지코를 꼽는다. 잠들 뻔하던 모기가 다시 깨어났다. 아직도 잠잘 때 모기장에서 자야 한다. 모기는 모기장 바깥이 온통 제 세상이다. 사람은 조그마한 모기장이 자기 집이다. 이제는 여름만이 아니라 봄가을도, 겨울마저도 사람이 모기장 신세를 져야 할 판이다.

 겨울이 따뜻하면 겨울이라는 이름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겨우나기를 하며 기름을 안 쓸 수 있겠지. 빨래를 할 때 조금 손이 차지만, 겨울 빨래처럼 손이 시리거나 얼어붙지 않는다. 한두 가지 빨래를 하고 나면 손에도 피가 몰려서 따뜻하다. 찬물이 따순 물처럼 느껴진다.

 빨래를 셋, 넷까지 하고 다섯까지 한 다음 하나를 남긴다. 저녁에 걸레를 빨거나 내일 아침에 씻을 때 빨려고. 씻을 때 빨아야 물을 덜 쓴다.

 빨래 두 가지는 빨래집게에 집어 마당으로 가지고 나와 널어 놓는다. 햇볕이 괜찮다. 이불 둘 들고 나와서 담벼락에 널어 놓는다. 저 멀리, 담벼락에 이불 널어 놓은 집, 빨래를 빨랫줄에 줄맞춰 널어 놓은 집이 보인다. 아파트라면 빨래 구경도 못할 테지.

 마당이 있어(옥상 마당이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을 느끼고 햇볕을 쬘 수 있어 좋다. 이웃집 옥상과 마당을 바라다볼 수 있어 좋다. 이웃집 창문으로 살림살이를 살며시 들여다보기도 하고, 우리 집 살림살이가 우리 집 창문을 거쳐 이웃집에 들여다보여지기도 한다.

 기차가 지나간다. 전철도 지나간다. 집이 옹옹옹 울린다. 옆지기가 예전에 말했다. 그렇게 옹옹옹거려도 이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긴, 그렇겠지. 올해로 쉰 살을 먹은 이 집은 여태껏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는데. 이 집이 무너지면 이웃집들은 오죽하겠는가. (4340.10.2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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