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11 : 책 하나를 이야기하려면

 십이 킬로그램 안팎을 오락가락 하는 열아홉 달 아기를 한 팔로 안고 걸어다니면 팔뚝이 끊어질 듯합니다. 처음 십 분이나 이십 분은 그럭저럭 걷습니다. 삼십 분이나 한 시간이 넘어서면 고달픕니다. 아직 혼자서는 어른처럼 오래 걸을 수 없기 때문에 팔에 안든 등에 업든 합니다. 아기수레 없이 오로지 안거나 업으며 들일 산일 집일을 맡아 하던 지난날 어머님들 몸뚱이는 무쇠로 만들어졌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하루를 접고 잠자리에 들 무렵이면 온몸이 쑤시고 저리고 결렸겠지요. 그러나 옛 어머님들 삶을 알알이 담은 이야기나 문학이나 영화나 방송을 만나기란 더없이 어렵습니다. 흙냄새뿐 아니라 땀냄새 묻어나는 작품이란 드물고, 살냄새를 비롯해 비누냄새 배어나는 작품 또한 드물며, 밥냄새를 아우르며 똥냄새 녹아 있는 작품은 퍽 드뭅니다. 이른아침부터 열아홉 달 아기 똥과 오줌을 치우면서, 지난 열아홉 달 동안 제 손과 몸에 아기 똥오줌 내음이 짙게 배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번역이 너무 엉망이라 읽다가 접어두었던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지난달에 겨우 끝마쳤습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나라밖 문학이라 할지라도 번역이 뒤틀려 있으면, 이 나라에서는 이냥저냥 읽을거리조차 되기 힘들겠구나 싶습니다. 〈알베르 카뮈 전집〉을 읽으면서도 이다지 이름높은 분 번역조차 왜 이렇게 얄딱구리한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고, 한문이 함께 달린 《골목길 나의 집》을 읽으면서는 ‘바로 밑에 한문이 달려 있는데 이렇게 우리 말 번역을 엉망진창으로 해도 되는가? 안 부끄럽나?’ 하는 생각을 지울 길 없었습니다. 먹고살기 바빠 ‘창작한 사람이 수십 해에 걸쳐 이룬 알맹이’를 ‘고작 몇 달이나 한두 해만에 끝마치고 책으로 내야 하는’ 우리 터전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나라 안팎 좋은 작품을 흐리멍텅하게 깎아내려도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고 난 다음 어줍잖은 글솜씨로 느낌글을 적바림할 때마다 ‘나로서는 반갑고 고마운 책이라 느끼든, 나한테는 아쉽고 모자란 책이라 느끼든, 이 책 하나를 다루는 글을 쓰려 할 때에는 창작하는 사람이 이 책 하나에 들인 땀 못지않게, 때로는 이분들이 흘린 땀보다 더 땀을 흘리면서 느낌글을 적바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 더 땀을 흘렸다 할지라도 제대로 못 읽거나 엉터리로 잘못 읽는 대목은 틀림없이 있으리라 봅니다.

 그제 서울마실을 하는 전철길에서 《환경가계부》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다 읽었습니다. 두 가지 책 모두 술술 읽혔습니다. 그런데 《환경가계부》에는 곳곳에 밑줄을 그으며 별을 그리기까지 했으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는 별을 하나도 그리지 못했고 밑줄은 몇 군데 긋지 못했습니다. 술술 잘 읽힌다고 해서 그리 좋은 책이 되지는 못한다고 느낍니다. 이는 저한테 똑같이 해야 하는 말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아무리 옳고 바르다 할지라도 가장 좋거나 아름다운 일이 못 될 수 있는 만큼, 더 바지런히 갈고닦아야 하며 더 고개숙여 귀와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환경가계부》에는 “아버지들은 환경가계부는 부인이나 아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길 바랍니다(194쪽).”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우리 어른들, 더욱이 남자 어른들은 참사랑이 무엇인지 참말로 너무 모르며 살고 있습니다. (4343.1.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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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14 : 우리에 갇힌 책

 그젯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골목길 사진을 찍으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눈 내리는 밤길을 조용히 거닐며 이곳저곳에 깃든 모습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새벽부터 밤까지 아이하고 어울리고 씨름을 하면서 기운이 다 빠진 터라 마음은 있어도 몸이 따르지 않습니다. 한동안 누워서 허리를 편 다음 두어 시쯤에 일어나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네 시 반에 똥을 누면서 깨어났기에 똥 치우고 기저귀 빨며 씻기느라 함께 깰 때까지 그예 곯아떨어집니다. 하루하루 고되고 벅차구나 하고 새삼 헤아리면서, 아이가 없던 때에는 밤 두 시이건 새벽 네 시이건 홀로 바지런히 밤골목 마실을 하던 일을 떠올립니다. 그렇지만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는 동안 아이 모습을 벌써 여러 만 장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웃고 울고 까불고 놀고 책을 읽고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숱한 모습을 사진으로 하나둘 담는 동안, 나와 옆지기가 어릴 때에 어떠했을까를 돌아보고, 그무렵 우리들 어버이 되는 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되새깁니다.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틀림없이 여러 가지를 잃는 삶이면서 어김없이 여러 가지를 새롭게 얻는 삶입니다.

 프랑스사람 조슬린 포르셰 님과 크리스틴 트리봉도 님이 함께 쓴 《우리 안에 돼지》(숲속여우비,2010)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고작 112쪽짜리 책이니 금세 덮을 수 있었지만, 이야기가 쏙쏙 와닿으면서 가슴으로 잘 스며들은 까닭에 금세 덮고 다시금 찬찬히 돌아보고 있습니다. “쥘리앙 말이 돼지가 움직이지 못해야 몸집이 빨리 크고, 그럴수록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거라고 하더군요(30쪽).” 같은 대목은 요즈음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축사에서 놀라운 건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루 종일 동물들과 몸을 부대끼며 일을 하면서도 마치 동물이 기계인 듯 대한다는 점입니다. 돼지의 기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86쪽).” 같은 대목은 어느 만큼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헤아릴 만한 이야기라고 봅니다. 그러면 “사실 돼지 축사 건물 전체가 자연과 차단된 구조랍니다(55쪽).” 같은 대목을 살갗 깊숙하게 느끼는 분은 얼마쯤 될까요. 돼지우리에 갇힌 돼지만 자연이 사라진 곳에서 살집만 하루 빨리 불리도록 내몰리고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일하거나 살아가는 곳에서도 더 빨리 돈만 벌도록 내몰리고 있는 ‘자연이 자취를 감춘’ 곳임을 깨닫는 분은 얼마나 되려나요. 우리는 우리가 즐겨먹는 고기와 푸성귀를 키우는 곳에서만 짐승과 푸나무를 기계처럼 다룰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목숨이 깃든 사람이 아닌 돈벌이 기계로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며칠 앞서 헌책방에서 김수미 님 산문모음을 두 권 보았습니다. 이 가운데 《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겠다》(샘터,1987)를 먼저 읽고 있습니다. 김수미 님이 책을 낸 줄은 진작 알았으나 이제까지 이분 책을 읽은 적이 없다가 몹시 새삼스럽다고 느끼며 쥐어들어 읽는데, 당신 나이 마흔을 앞두고 처음으로 책을 쓰셨더군요. 세월과 삶과 눈물콧물과 웃음이 고이 스민 책을 펼치면서 김수미 님 지난날 마음하고 오늘 제 나이를 곰곰이 짚어 봅니다. 스물세 해 앞서가 아닌 오늘 읽기에 비로소 내 마음밭으로 스미는 이 책을 곱게 쓰다듬으면서, 우리에 갇히는 삶이 아닌 보금자리를 일구는 삶이란 무엇인지 가만히 되뇌어 봅니다. (4343.2.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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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의 요람
유미리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8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39 ― 아픈 삶, 아픈 사람, 아픈 집
 : 유미리, 《물가의 요람》


- 책이름 : 물가의 요람
- 글 : 유미리
- 옮긴이 : 김난주
- 펴낸곳 : 고려원 (1998.4.10.)
- 판이 끊어져 헌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음.



 (1) 아프면서 꾸리는 삶이란


 엊그제 낮, 헌책방에서 《戶部けいこ-光とともに》(秋田書店)라는 만화책 5권(2004년 나옴)을 만났습니다. 책 겉에 ‘자폐증 아이’라는 말이 적혀 있어 덥석 집어들었습니다. 책에 담긴 그림결은 순정만화인데 저로서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 투입니다. 그러나 장애 있는 아이를 다룬 만화책은 모조리 사들이고 있는 터라 이 만화책도 함께 셈을 했습니다. 줄거리를 읽을 수는 없으나 그림만 넘겨 보면서도 ‘일본은 우리와 견주어 문화며 사회 얼거리이며 몹시 앞서 있지만, 사람들 하나하나를 놓고 들여다보면 우리하고 매한가지로 엉터리인 사람도 많음’을 새삼 느낍니다. 이는 일본이 아닌 미국이나 독일이나 프랑스라고 할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이날 저녁, 터덜터덜 홍대 앞 만화가게에 들렀을 때에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자음과모음) 1권(2003년에 옮김)을 장만합니다. 이날은 다른 볼일 때문에 서울 마실을 했습니다만 이모저모 일이 틀리면서 하루가 어긋나 버렸습니다. 굳이 서울로 나오지 않아도 되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모두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를 부른 분이 당신 형편만 헤아리느라 저로서는 온 하루를 잃었는데 그분은 당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릅니다. 씁쓸하고 허전하여 만화가게에 들렀는데, 뜻밖에도 《光とともに》가 우리 말로 나와 있음을 알았습니다. 게다가 2003년에 나와 있었군요.

 집으로 돌아와 두 가지 책을 쓰다듬으면서 너털웃음을 웃습니다. 이날 얄궂게 약속을 잡은 그분이 아니었다면 시간죽이기를 하느라 헌책방 나들이를 하지 않았을 터이고, 저녁에 다시 만화가게를 찾지 않았겠지요. 아이와 함께 씨름할 하루를 빼앗아 준 그분이 아니었다면 씁쓸하거나 허전한 마음이 아니었을 터이며, 씁쓸하거나 허전한 마음이 아니었다면 일부러 만화가게 구석구석을 살피며 아쉬움을 달래지 않았을 터입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제 삶을 고단하게 하는 매무새를 고치지 않는다면 그분하고 어울리거나 엮일 일은 만들지 않을 생각인데, 앞날이 어찌 되든 저로서는 제 삶을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고 새삼 깨닫습니다. 만화책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1권 246쪽을 보면, ‘장애 아이를 따뜻하게 반기며 슬기롭고 사랑스레 잘 가르치는 일반 초등학교 여자 교장 선생님’이 ‘자폐 아이를 어느 초등학교로 보내야 할지를 놓고 몹시 걱정하고 힘들어 하는 주인공 엄마’한테 기운을 북돋워 주면서 ‘아이 엄마 당신을 괴롭히는 몹쓸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까지 설득을 해서 당신 아이를 이 학교로 넣을 수 있도록 정식 서류를 받아내도록 하십시오’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 아이가 제 옆에서 아빠 따라 책을 보고 있는 동안 아빠는 만화책을 보며 이 대목에서 눈물이 글썽했습니다. 이 대목 하나에서 조용히 피어오르는 숨결을 느끼면서, 아픈 삶은 아픈 삶대로 아름다울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아프기 때문에 더는 아프지 않으려고 용을 쓰고, 아프기 때문에 생채기를 어루만질 수 있으며, 아프기 때문에 내 생채기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 생채기를 느끼고 돌아보고 어루만질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성경이든 불경이든 가난만큼 우리한테 좋은 벗님이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한테 주어진 가난만큼 우리를 일으키거나 일깨우는 고마운 스승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숱한 예배당과 목회자들은 가난하고 동떨어져 있기 일쑤입니다. 좋은 벗님인 가난을 곁에 두지 못합니다. 고마운 스승인 가난을 옆에서 섬기지 못합니다.

 가난뿐 아니라 아픔을 벗님으로 사귀거나 스승으로 모시지도 못합니다. 돌아가신 권정생 할아버지나 이오덕 할아버지는 가난이든 아픔이든 힘겨움이든 고단함이든 모두 좋은 벗님으로 사귀었고 고마운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권정생 할아버지는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 누구한테나 “제발 내 대신 아파해 달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했습니다만, 이 말마디를 옳게 받아들이거나 삭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할배가 나이들고 많이 아프니까 투정부리듯 되뇌는 말이라 여기며 한귀로 흘리기 일쑤였어요. 당신은 온삶을 가난과 아픔을 곁에 두면서, 아니 온몸으로 살아내면서 참으로 버겁고 힘들었지만 이렇게 버겁고 힘든 까닭에 좋은 사람도 알게 되고 글쪼가리도 끄적이며 아이들하고도 가까이 지낼 수 있었으며 좋은 곳도 구경하고 맛난 밥도 먹어 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굳이 먼 나라로 찾아가야만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삶이 아니요, 애써 나라밖 이야기를 찾아 읽어야만 아름다운 마음씨를 기를 수 있는 삶이 아닌데, 우리들이 머리나 눈이나 손을 모두 바깥으로만 돌리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부터 제 삶을 살찌우는 이야기를 먼 데에서 찾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하루하루 걸어가는 이 길만큼 저한테 아름다울 길이 없다고 느낍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픈 옆지기를 만나 아웅다웅 툭탁툭탁 지내면서 날마다 새롭게 배우며 깨닫습니다. 집삯과 도서관삯으로 달삯을 다달이 칠십만 원 내야 하는 팍팍한 살림을 꾸리며 한 달 벌이가 백만 원이 채 되지 않으니 모이는 돈은커녕 나가는 돈 맞추기에 힘들지만, 이러면서 하루하루 골치아픈 모든 삶자락이 꽤나 재미있고 보람찹니다. 아이가 나중에 무럭무럭 크고 난 다음에는 우리들(저와 옆지기)하고는 안 놀고 다른 좋은 동무나 세상을 찾아 떠나겠습니다만, 아직까지는(앞으로 열 살 때까지는) 엄마나 아빠 곁에 찰싹 붙어 함께 놀고 싶고 안기고 싶으며 노래를 부르거나 장난질을 하거나 책을 읽고 싶어합니다. 아이하고 함께 지내는 동안 그야말로 아무 짓도 못합니다. 지금은 옆지기가 바느질을 하면서 노래를 불러 주니 아이가 엄마 곁에서 옹알옹알거리면서 놀아 주기에, 저는 고마운 말미를 얻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그렇지만 이렇게 놀기는 잠깐, 아이는 아빠 둘레에서 안기고 뛰고 어지르며 놀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따가 손빨래를 하면서 아이하고 함께 물놀이를 하고 아이를 씻기고 머리를 감기면서 옆지기가 느긋하게 쉴 말미를 마련해 주어야지요. 딱히 서로 일을 나누거나 시간을 쪼개어 아이를 보기로 하지 않고, 늘 복닥이면서 알맞게 맞추어 줍니다. 집에서 아이를 함께 돌보지 않는 수많은 아빠들은 잘 몰라서 그렇지, 집에서 하루 내내 아이하고 복닥이고 씨름하며 얼크러지는 나날이란 우리한테 더없는 아름다움이며 기쁨이 됩니다. 아이하고 복닥이며 아무 일을 못하지만, 아무 일을 못하도록 할 만큼 아이는 쉴새없이 나댈 뿐 아니라 귀엽습니다. 아이하고 씨름하며 팔다리 쑤시고 결리고 저리지만, 쑤시고 결리고 저리는 만큼 아이와 어버이는 살갗과 살갗을 거쳐 따스함을 몸에 새기며 사랑을 나눕니다. 아이하고 얼크러지며 이제까지 이루어 온 모든 삶고리가 흐트러지지만, 이렇게 이제까지 이루어 온 모든 삶고리가 흐트러지면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깊이 들여다보며 널리 헤아리는 눈썰미를 얻습니다. 아이하고 지내는 만큼 책방마실이든 골목마실이든 덜 할 수밖에 없는데, 바깥마실을 덜 하면서 그동안 장만하여 읽던 책이란 지식조각만 담긴 책이 많았음을 새롭게 알아채고, 굳이 더 많은 사진을 찍지 않아도 내 보금자리가 깃든 골목동네가 얼마나 고운가를 보여줄 수 있음을 익힙니다.

 누군가는 아이를 두고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 하고, 누군가는 아이를 가리켜 세상에 둘도 없는 보배라고 합니다. 아이키우기만큼 나를 키우는 일이 더 없다 할 터이고, 아이키우기를 하는 집만큼 나를 가르치는 배움터가 더 없다 할 터입니다. 세상 숱한 어머니들은 아이키우기를 거의 도맡으면서 ‘책을 못 읽’고 ‘학교도 못 다니’며 ‘일터도 못 나간’달지라도 아이키우기를 조그마한 집에서 하는 동안 누구보다 크고 깊고 거룩한 사랑과 앎과 슬기와 믿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하겠습니다. 세상 숱한 아버지들은 아이키우기를 어머니한테만 맡기고 바깥으로 나돌면서 이름을 얻고 돈을 벌고 힘을 키운다지만, 정작 한 사람으로서 나를 북돋우며 옳고 바르고 맑고 싱그럽게 이끌어 가는 참다운 길은 만나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제아무리 수많은 책을 읽으면 무엇하겠습니까. 바로 우리 식구한테 쏟을 사랑이 어디에서 어떻게 샘솟는지를 모르는데요. 제아무리 크나큰 돈을 벌면 무엇하겠습니까. 내 식구와 이웃 식구를 두루 껴안고 아끼는 씀씀이를 기르며 주머니를 기쁘게 열어젖히는 나눔을 펼치지 못하는데요. 제아무리 팔뚝힘이 세고 두루두루 안 다닌 곳이 없다 할 만큼 골골샅샅 누벼 보았다 한들 무엇하겠습니까. 정작 우리 식구들 뿌리내리고 있는 동네가 어떠한 곳인지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데요.

 누구나 죽는 삶이요, 누구나 새로 얻은 삶입니다. 누구나 흙으로 돌아가는 삶이요, 누구나 흙에서 목숨을 얻는 삶입니다. 다른 목숨을 먹으며 내 목숨을 지키고, 내 목숨을 다른 목숨한테 내어주면서 세상은 차근차근 돌아갑니다. 아프면서 크고, 크면서 아프며, 아프면서 손을 잡고, 손을 잡으며 아픕니다. 아픈 가난이면서 가난한 아픔이요, 아픈 가난이기에 하루하루 더 살뜰히 붙잡으며 보듬고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합니다.


 (2) 아픈 사람 유미리


 유미리 님 산문을 모은 책 《물가의 요람》을 읽었습니다. 재일조선인으로 글을 쓰는 손꼽히는 한 사람인 유미리 님인데, 이분이 쓴 책은 여태껏 한 권도 읽지 않았습니다. 이름 널리 난 글쟁이 작품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일본에서 무슨 문학상을 받았다는 이름값을 겉에 큼직하게 내세우는 작품 또한 그리 좋아하지 않는 탓입니다. 그런데 《물가의 요람》은 읽었습니다. 이 작품은 소설이 아닌 수필이었기에 눈길이 갔고, 이제는 저 멀리 사라지고 만 출판사 고려원에서 일찌감치 옮긴 작품이기에 손길이 갔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쫓겨난 유미리 님이 들어간 연극단을 맡고 있던 분은 유미리 님한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의 가족, 지금까지 있었던 일 전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이너스적 요소라고 생각하겠지만 연극을 하게 되면 그 모든 것이 플러스 요인으로 뒤바뀔 겁니다. 그것을 당신의 재능이요, 자랑으로 여기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199쪽).”

 문득 궁금해서 유미리 님과 얽힌 이야기를 찾아보니, 요즈음은 우리 나라에 옮겨지는 책이 거의 없으며 그다지 읽히지 않습니다. 여러 해 앞서 유미리 님 이야기를 다룬 취재 기사 하나가 뜨기에 주욱 읽어 보니, 유미리 님은 당신한테 새 삶을 보여준 연극단장 히가시 씨를 곁에서 돌보며 죽는 날까지 지키 주었고, 애 있는 남자와 사귀어 아이를 낳아 고양이 열한 마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답니다. 취재 기사에서 “아기를 낳고 그랬지요. 그때까지는 ‘관념’이었지요. 10대 때 자살을 시도하고,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고, 막다른 길을 걸어갈 때, 삶과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기분은 들었지만 관념적이었지요. 하지만 히가시씨를 죽음으로 보내고, 젖먹이를 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했을 땐 관념이 아니었지요.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결국 글을 쓰지 못했을 거예요. 다케하루를 낳지 않고 히가시가 죽지 않았다면.” 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취재 기사를 읽으며 고개를 절로 끄덕였습니다. 제 몸으로 아이를 낳지 않았으나, 옆지기가 아이를 낳는 날부터 내내 함께 지내 오고 있는 동안 ‘아이를 낳아 기르기 앞서까지는 오로지 생각’이었고 ‘아이를 낳아 함께 돌보며 살아가는 오늘은 바로 삶’이라고 느낍니다.

 일본에서 당신 작품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실제 한 사람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해서 재판을 받았고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는 유미리 님입니다. 세상 어느 작품이 ‘누군가 살아온 이야기를 안 다루’고 있겠습니까마는, 유미리 님은 사랑 잃은 법으로 생채기를 받았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밟고 상처를 입히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해요. 곱고 예쁜 일은 아니지요. 쓴다는 것은 ‘쓰는 사람’과 ‘쓰여지는 사람’이 모두 일어설 수 없을 만큼 상처를 입는다고 할까, 상처를 입히지 않으면 쓸 수 없고, 밟지 않으면 쓸 수 없어요. 자신을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쓰고 싶다는 원망(願望)이 아니라 쓰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을 때, 그땐 쓸 수밖에 없지요. 누구를 상처 입히든….”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물가의 요람》이라는 책을 읽었을 당신 아버지나 어머니나 동생들이나 예전 초중고등학교 적 동무나 교사 들이나 유미리 님을 성폭행했던 이웃집 아저씨는 어떤 얼굴이요 마음일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한 사람 삶에 생채기를 남긴 이들은 당신들 삶 발자국이 책 하나에 고스란히 담기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는지 궁금합니다.

 《물가의 요람》이라는 책에서 유미리 님이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를 쓴 대목을 옆지기한테 소리내어 읽어 줍니다. 어떻게 유미리 님 아버지나 어머니는 이렇게 생각이 없이 살아가며 아이한테 생채기를 줄 수 있을까 하고 물었더니, 옆지기는 유미리 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외롭고 아픈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유미리 님이 아닌 유미리 님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외로운 사람? 아픈 사람?

 옆지기하고 곰곰이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합니다. 유미리 님뿐 아니라 유미리 님을 둘러싸고 당신을 괴롭히고 따돌린 숱한 또래 동무나 이웃이나 집식구 모두 ‘마음을 살뜰히 터놓으며 어우러지지 못하는 굴레’에 갇혀 있구나 싶습니다. 이네들 모두 마음 한 자락에 생채기가 있는데 이 생채기를 살가이 어루만져 주는 벗님이 없습니다. 아니, 스스로 제 생채기를 보듬을 수 있으며 처음부터 생채기가 나지 않게끔 삶을 다스릴 수 있었으나, 이와 같은 길을 걷지 않습니다. 걷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요. 좋은 벗님 가난을 내치기만 할 뿐이요 고마운 스승 아픔을 손사래치기만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길은 나한테 있는데 엉뚱한 데만 찾고 있습니다. 나를 아끼는 길은 나한테 있으나 얄궂은 곳만 쑤석이고 있습니다.

 유미리 님은 아프디아프면서 ‘아프다’ 하고 말하며 당신 삶을 보듬으며 사랑하는 길을 차근차근 찾아나서는데, 유미리 님 둘레에서 시끌벅적 왁자지껄인 사람들은 당신들 스스로를 사랑하고 보듬으며 아끼는 ‘내 길’을 잃거나 잊고 있습니다.


 (3) 아픈 이야기 되새겨 읽기


 판이 끊어졌고 다시 나올 낌새가 없는 《물가의 요람》을 차근차근 되읽어 봅니다. 스스로 겪어 온 아픔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적바림했다고 볼 수 있지만, 유미리 님이 당신 삶을 글로 옮겨낼 때에 틀림없이 무척 아팠겠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이 아픔을 숨기거나 감추거나 지우려 하지 않고 꾸밈없이 적바림했기에 아픈 글이요 아픈 삶이요 아픈 발자국이지만, 아프면서 아름답고 아프면서 맑으며 아프면서 싱그럽다고 느낍니다.

 아픔을 아픔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에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에 삶을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픔이 가득한 집에서 살고 있는 유미리 님 다른 한손에는, 사랑이 한 가득 놓여 있습니다. (4343.2.23.불.ㅎㄲㅅㄱ)


[12쪽] 한국 국적을 갖고 있으면서 일본 이름처럼 유미리라는 이름을 얻어, 재일 한국인이 겪어야 하는 곤란한 문제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를 받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내가 김○○처럼 한국인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이름이었다면, 내 의식의 흐름은 지금과 아주 달랐을 것이다.

[38∼39, 55∼56, 69, 179쪽] 실수를 하면 선생님은 옆구리를 꼬집었다. 점차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것이 고통스러워져 빠지는 날이 많아졌다 … 어느 날 뒤꿈치를 들고 종종걸음을 걷고 있는데 선생님이 학원 앞에 팔짱을 끼고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선생님이 싫으니?” 나는 할 수 없이 학원으로 들어가 가방에서 바이엘을 꺼내 들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선생님은 혹 꾸중을 듣지 않을까 쭈뼛거리며 피아노를 치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 고즈에한테 선생님이 아기 낳으면 그 아기가 불쌍하다고 그랬다면서?” … 선생님은 내 옆구리를 힘껏 꼬집었다. 여느 때보다 두 배는 세게 … “또 미리구나!” 선생님은 고양이 새끼 잡듯 내 목덜미를 잡고 단상 앞으로 데리고 나갔다. 2학년과 3학년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얘가 그 1학년 3반의 미리야?” “네, 그 문제아예요.” …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내 독후감을 형편없는 감상문의 전형으로 모두들 앞에서 읽었는데, 오노 선생님은 내 국어 실력을 ‘아주 좋음’이라 평가해 주었고, 빨간 펜으로 ‘독해력과 문장력이 뛰어남’이라고 덧붙여 쓰기까지 했다 … 아버지는 바닥에 이마를 대었다. 교장은 한참이나 어이없다는 듯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아버님의 심정은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따님은 다른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상자 속에 썩은 사과가 하나 있으면 상하지 않은 다른 사과까지 썩기 시작하죠.”

[42쪽] 그(친구 고즈에네 아버지)는 자기 무릎 위로 나를 안아올렸다. 위 속에서 시큼한 예감이 끓어올라, 나는 사탕을 우물거리던 입놀림을 멈췄다. 여자 손처럼 창백하고 가느다란 손가락, 그 손가락이 내 치마를 걷어올리고 팬티 위로 음부를 더듬었다. 그러고 다른 손으로는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편평한 가슴을 간지럽혔다 … “저기에 눕자.” 그가 가리킨 곳에는 카펫처럼 풀이 돋아 있었다. 나는 새로 판 무덤 같은 흙 냄새를, 물기를 머금은 풀잎 냄새를 맡았다. “지금부터 아저씨가 하는 거, 엄마나 아빠한테 말하면 절대 안 돼. 아저씨하고 미리하고만의 비밀이다. 약속할 수 있지?” 나는 보지 않으려 애썼던 그의 눈을 직시했다. 검은 눈동자에 내가 조그맣게 비춰 있었다.

[48, 49, 97∼98쪽] 딱 한 명 혼자 남아 있는 비참한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하여 국어책을 펼쳤다. 처음에는 억지로 페이지를 넘겼지만, 아직 배우지 않은 〈꼬마 여우, 곤〉을 읽는 사이에 마음이 진정되었다. 책을 읽으면 현실 세계에서 도피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경험이었다 … 다른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강렬했고 그런 마음이 간절하면 할수록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누군가 말을 걸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책을 읽었던 것이다 … 내 탓에 우리 반은 꼴찌가 되었다. 자살을 생각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러나 죽어서는 기짱과 반 아이들한테 복수를 할 수 없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기짱과 그 패거리들의 짓거리를 극명하게 기록했다. 내 공책은 친구들의 괴롭힘 때문에 자살하는 아이들의 유서와도 달랐고, 일기도 아니었다. 내 ‘이야기’였다. 조심하지 않으면 현실로부터 버림받고 세계와 어긋나고 만다. 그 골을 메우기 위해서는 쓰는 길밖에 없었다.

[103, 110쪽] 엄마는 내 일기장을 읽은 일이 없다. 내가 얼마나 아버지를 증오했는지……. 나는 내가 밖에서 놀고 있는 동안 엄마가 일기장을 훔쳐 읽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그러길 애타게 바랐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내게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내가 숨기고 있는 마음을, 내 일기를 읽고 소중하게 엄마의 가슴에 간직해 두고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내 피비린내 나는 마음의 아픔 따위는 눈꼽만큼도 염두에 었었다 … ‘부모’라는 자신의 역할에 전혀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여 뭘 어찌해야 좋은지 몰랐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자식을 학대하는 부분은 필경 그의 아버지를 모델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역시 어렸을 적에는 할아버지한테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하고, 용서받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148∼249쪽] 나는 어째서 자전 비슷한 에세이를 이리도 빨리 쓴 것일까. 물론 과거를 매장하고 싶다는 동기도 있었다. 내가 쓴 희곡의 주제는 ‘가족’이었으며, 그 후에 쓰기 시작한 소설도 역시 ‘가족’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이 에세이를 씀으로써, 나 자신으로부터 멀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것이야말로 이렇게 긴 에세이를 쓴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과거에 비석을 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비록 지나치게 이르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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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사기사와 메구무 / 자유포럼 / 1998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38 ― 고운 꽃, 고운 사람, 고운 책
 : 사기사와 메구무,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 책이름 :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 글 : 사기사와 메구무
- 옮긴이 : 최원호
- 펴낸곳 : 자유포럼 (1998.1.20.)
- 책값 : 6500원 (판 끊어짐)


 (1) 딸을 바란 마음


 지난 2008년 8월 16일, 우리 집 아이가 딸로 태어나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아이 엄마와 저는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기에 태어나는 날까지 아이가 딸일는지 아들일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집에서 낳으려고 여러모로 마련하고 애썼지만, 한여름이었음에도 간밤에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붙이는 바람에 옆지기가 배앓이를 하고 아이를 낳으려 할 때에는 집안 온도가 뚝 떨어졌고, 힘이 빠진 옆지기는 거의 쓰러졌습니다. 어쩌는 수 없이 구급차를 불러 산부인과로 가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빠 된 사람으로서 좀더 제대로 알아보고 살펴보고 다스렸으면 집에서 낳을 수 있었을 텐데, 더없이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아이가 딸로 태어난 지 어느새 스무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헤아립니다. 아이를 낳을 무렵이든 아이를 낳아서 함께 키우는 요즈음이든, 내가 아빠 된 사람으로서 얼마나 집살림을 알뜰히 가꾸고 있는가 하고.

 딱 어디에서 어디까지 금을 그어 놓고 일을 하지 않는 터라 집에서 들여다보는 책들이 여기에 쌓이고 저기에 쌓여 있습니다. 어느 만큼 일하고 어느 만큼 쉬며 어느 만큼 어느 때에 집일을 하는지도 틀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아빠 된 사람으로서는 오늘 해야 할 만큼 일을 하지 못했다고 느끼기 마련이고, 엄마 된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어디에서 어디까지 손을 잡아야 하는가를 느끼기 힘들기 일쑤입니다. 아빠는 아니라고 말할지라도 집살림 흐름은 아빠한테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런 판에 아이가 아들이었으면 더 아빠 흐름으로 쏠리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아빠 된 사람은 제 삶이나 식구들 삶을 알맞고 따스하게 추스르는 데에 익숙하지 못하고 슬기롭지 못합니다. 세상 모든 아빠들이 익숙하지 못하거나 슬기롭지 못하지 않을 테지요. 알뜰한 어버이와 함께 살아오면서 몸에 아름다움을 깃들인 아들이었다면, 이들이 아빠가 된 다음에도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집살림을 꾸리리라 봅니다. 아름다움을 모르거나 사랑스러움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온 터전이었다면, 이러한 느낌이 옆지기와 아이한테 고스란히 이어간다고 봅니다.

 옆지기가 묻습니다. 제 이빨이 언제부터 안 좋았느냐고. 저는 망설이지 않고 말합니다. 군대에 있을 때 망가졌다고. 왜 그때에 망가졌느냐고 다시 묻습니다. 그때 군대에서 이를 닦을 수 없어 망가졌다고 이야기합니다.

 한참 뒤, 틀림없이 군대에서 이빨이 망가졌으나 군대를 마친 다음 내 망가진 이빨을 알뜰히 되살리고자 애쓴 적이 있는가 돌아봅니다. 이태 남짓 망가진 이빨이라 할지라도 차근차근 되살리려 애썼다면 더 망가지지 않거나 조금이나마 살아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너무 손쉽게 군대 탓으로 돌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더 헤아려 보니, 군대라는 곳에 있을 때에도 더 애썼다면 이빨이 그예 망가지지 않도록 다스릴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스스로 더 부딪히지 않았으면서, 몸소 더 힘쓰지 않았으면서 무슨무슨 탓이라고 핑계를 늘어놓지 않느냐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이가 아들이 아니고 딸이기를 바란 데에는 아들이면 ‘학교를 아예 안 가야 군대도 안 간다’는 까닭 때문입니다. 아이를 군대에는 도무지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군대에 있는 동안 몇 가지 군대 말투를 일본제국주의 군대 말투가 아닌 우리 말투로 돌려놓는 데에 살짝 이바지를 했습니다. 그러나 고작 이런 일만 깨작거렸습니다. 더 밑바탕에 있는 고름을 짜지 못했고, 더 밑바닥에 있는 생채기를 건드리거나 감싸지 못했습니다. 나는 내가 앞사람한테 얻어맞거나 욕을 먹었어도 내 뒷사람한테는 주먹질이나 욕질을 안 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상병 6호봉 때에 이 다짐이 무너졌습니다.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고, 내 마음밭을 내가 더 알차고 사랑스레 지킬 길이 있었으나 고스란히 무너지는 길을 걸었습니다. 비무장지대 안쪽에 있었건, 강릉에 잠수함이 넘어왔대서 다시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한 달 반쯤 다시 살아야 했건, 훈련을 뛴다며 허구헌날 바깥에서 맴돌았건, 나한테는 내 삶을 돌아볼 겨를이 없이 뺑이를 쳐야 했건, 하루에 1분을 못 쓸 노릇이었을까 하고 곰곰이 되씹어 보면, ‘하루에 1분이 없어 하루에 꼭 한 번이라도 이빨을 못 닦을 일은 없었겠지’입니다. 아마, 아이가 아들로 태어나고 군대로 끌려간다 할지라도 어버이 된 저와 아이 된 아들내미가 제 마음을 튼튼하고 맑게 건사한다면 외려 군대라는 곳을 거친 삶이 더욱 튼튼하고 한결 해맑을 수 있습니다. 가난이란 하느님이 내려준 선물이거든요. 가시밭길이란 우리한테 주어진 고마운 지름길이고요.

 우리 아이가 딸로 태어나 주기를 빌던 아빠 마음은, 아빠 스스로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다른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조금 더 알맞고 싱그럽고 튼튼하고 믿음직한 곳으로 이끌고자 하지 않고, 그저 이대로 내멋대로 살아가겠다는 어리석은 배짱이었다고 느낍니다. 함께 식구를 이루는 고운 사람을 앞으로도 곱게 목숨줄 잇도록 한손을 따숩게 내미는 일은 굳이 안 하겠다는 등돌림이었다고 느낍니다.


 (2) 글쟁이를 바란 삶


 1993년에 우리 나라에 처음 옮겨진 《진짜 여름》(작가정신)부터 《거리로 나가자 키스를 하자》(문학사상사,1994), 《레토르트 러브》(문학사상사,1994),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문학사상사,1995),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자유포럼,1999), 《뷰티풀 네임》(북폴리오,2006), 《웰컴 홈》(북폴리오,2006) 모두 새책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기사와 메구무 님 작품입니다. 1998년에 우리 나라에 옮겨진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또한 새책방에는 없고 헌책방에만 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헌책방이라고 이 책을 늘 갖추어 놓고 있지 않습니다. 새책으로 팔린 만큼 남아 있으며, 새책으로 팔린 책 가운데 책임자가 기꺼이 헌책방에 내놓은 만큼 만날 수 있습니다. 책을 더 안 찍은 지 제법 되었고 아예 판이 끊어진 지 한참 된 만큼, 이 책들을 우리가 헌책방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한다면 대단히 고마운 노릇이요 몹시 반가운 일입니다.

 저는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을 2004년 12월에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그무렵에 처음 만나 1/3쯤 읽다가 덮어 놓았는데, 요즈음 유미리 님 판끊어진 산문모음을 찾아 읽으며 새삼 떠올라 이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사기사와 메구무 님 발자취를 더듬어 보니, 2004년 4월 11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세상을 떠났더군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남자와 여자’라는 나눔과 ‘조선사람(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이라는 나눔이 없는 세상을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1968년에 태어나 2004년에 숨을 거두었으니 고작 서른 몇 해를 보낸 삶입니다. 고등학생 2학년인 1987년에 글쟁이 문턱에 들어섰으니 당신 삶 반나절은 글쓰기로 보냈다 할 수 있습니다. 짧다면 그지없이 짧은 삶이요 길다면 제법 긴 삶일 텐데,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에 우리한테는 작품으로 오래오래 남아 언제까지나 숱한 이야기를 아로새겨 주겠지요.

 모르는 노릇이지만,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글을 쓰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당신 할머니가 평안도 사람임을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신 아버지한테는 한쪽에 한국사람 피가 흐르고 있었는 줄 생각할 수 없었으며, 당신한테 한국사람 피가 1/4 섞여 있음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글을 안 쓰고 살았다면 서른다섯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일이 없었다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안 쓴다고 세상을 덜 생각하는 삶은 아니요 글을 쓰는 삶이라 하여 세상을 더 생각하는 삶은 아니나, 사기사와 메구무 님이 쓰는 글 매무새로 볼 때에는 날마다 마음앓이가 깊은 삶이었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이런 매무새로 글을 안 쓰는 ‘수수하다는 삶’을 꾸렸을 때에도 어지럽고 어수선한 세상이 슬프고 괴로워 새삼스레 스스로 목숨을 놓았을 수 있겠지요.


.. “재미있잖아요?” 혜자의 말이다. 모처럼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희생까지 치르고 한국에 와서 생긴 것이 고작 원형탈모란다면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야 당신은 지문날인을 하지 않아도 되고, 외국인등록증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며, 결혼과 취직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니 바보처럼 그 따위를 따져서 무엇에 쓰겠어? 나는 당신의 친구니까 당신이 하는 말이나 괴로운 심정도 알아줄 수 있지만, 아마도 앞으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야 되고 온갖 소리를 다 들어야 할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그 따위야 우리 교포들 모두가 겪어 온 ‘가슴앓이’라고 제쳐두면 그뿐이야. 지금에 와서야 우리 역시 그렇게 힘겨웠다고 여기지도 않아. 그러므로 그때 ‘그만둬 버릴걸’ 하는 마음을 먹었더라도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잖아? 뭐니뭐니 해도 당신은 작가니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전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 내버려 둬! ..  (175쪽)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은 뜻하지 않게 당신 뿌리를 알고 만 사기사와 메구무 님이 남녘땅 연세어학당에서 여섯 달 동안 한국말을 배우면서 살던 이야기를 갈무리한 글모음입니다. 당신 할머니는 ‘국적을 밝히지’ 않았고 당신 아버지는 ‘국적을 몰랐’으며 당신은 ‘국적을 따지지’ 않아도 좋을 나날을 보냈습니다. 뿌리를 알고 난 다음에도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일본사람으로 살아가’지 조선사람으로든 한국사람으로든 바뀔 몸이 아닙니다. 한국말을 배우고 한겨레 문화를 익힌다 할지라도 ‘살아가는 곳’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외국인등록증을 따로 만들어 재일조선인을 푸대접하고 따돌리거든요. 한국이라는 나라에는 외국인등록증이 따로 없습니다만, 이주노동자가 받는 대접은 아주 모집니다. 이주노동자한테는 당신들 땀방울을 바칠 의무만 있을 뿐, 땀을 바치는 동안 누릴 권리란 없습니다. 게다가 이주노동자가 아닌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나누며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는 이들한테도 사람다운 대접을 누릴 권리가 많이 억눌려 있습니다. 이 나라 학교는 사람이 사람답도록 가르치는 터전이 아닌 시험점수 높이는 입시지옥입니다. 이 나라 일터는 사람이 사람다이 어울리며 일하는 보람을 맛보는 터전이 아니라 그저 더 많은 돈을 벌도록 내몰리는 사육장입니다.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마음앓이를 견디지 못해, 아니 마음앓이를 풀어낼 길을 찾고자 스스로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당신으로서는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무언가를 밝히고 따지고 말하고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말할 수 있는 사람’이요 ‘남길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여느 회사원이 목매달아 죽는다고 이이가 남긴 쪽글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거나 읽힐까요? 여느 농사꾼이 농약 마시고 죽는다고 이이가 남긴 외침이 세상에 두루 퍼지거나 들릴까요? 사기사와 메구무 님이기 때문에 당신이 목매달아 죽으며 남긴 외마디소리가 여러 해 지난 오늘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없는 자리이지만, 당신이 몸부림을 치면서 종이에 아로새긴 이야기는 우리 가슴으로 스며들 수 있습니다. 당신이 가고 난 빈 자리이지만, 당신이 발버둥을 치면서 종이장에 꾹꾹 눌러 적은 글줄이 우리 마음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떠나는 사람은 남아야 할 사람한테 짐만 잔뜩 안긴다고 하는데, 남아서 살아가는 사람이란 늘 짐을 지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짐이 없이 살고자 한다면 떠나야 할 노릇입니다. 살아가면서 내 몸에 얹힌 짐이 너무 고달프고 무거우면 떠날밖에 없습니다. 떠나는 길은 여럿이라, 깊은밤에 보따리 싸들고 몸뚱이만 내빼는 떠남이 있습니다. 모든 연락을 끊고 조용히 고속버스나 기차에 몸을 싣고 멀리멀리 돌아다니는 떠남이 있습니다. 나라밖으로 떠날 수 있고, 내 목숨줄을 놓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떠나고 말면 떠난 사람 자리에 누군가 들어와서 먼지를 털고 흐트러진 물건을 갈무리하면서 이이가 남겨 놓은 짐을 짊어집니다. 살아가고 싶기 때문에.

 그런데 이래저래 떠난 길은 다시 돌아올 길이 있다지만, 목숨줄을 내려놓는 떠남은 다시 돌아올 길이 없습니다. 그리워도 이쪽에서 찾아가서 만날 수 없고, 애닲아 울어도 내 울음소리를 들어 줄 수 없습니다. 그저 책 몇 권 종이 몇 장 더듬으면서 손자국을 헤아려 봅니다. 그나마 글쟁이였기에 작품 여럿 남아 있어 이 작품을 하나하나 쓰다듬으면서 말없이 말하고 말있이 말한 이야기를 짚을 뿐입니다.


 (3) 아껴 읽는 글


 돌아가신 권정생 할아버지 책을 다 갖고 있습니다. 맨 처음 낸 《강아지똥》부터 맨 마지막으로 나온 《랑랑별 때때롱》까지 갖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랑랑별 때때롱》만 아직 안 읽었습니다. 이제 권정생 할아버지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이 하나를 펼치면 모두 읽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끼고 아끼면서 읽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원수 님 문학을 읽을 때에도 매한가지입니다. 저로서는 문익환 님 시와 편지를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이고, 묵은 잡지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창기 님 글을 찾아 읽을 때에도 비슷합니다. 세상일은 모르는 터라, 제가 앞으로 얼마나 목숨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니, 읽을 수 있을 때에 읽어야 하는데, 그래도 아쉬워서 좀처럼 더 손을 대지 못합니다.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을 금세 읽어치우면서 가슴이 짠했습니다. 다시금 넘겨 읽으면서 서운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책 일본판 《ケナリも花, サクラも花》(新潮文庫,1994)를 서울 동묘앞에 있는 헌책방에서 보았습니다. 일본글은 읽을 줄 모르지만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하고 맞대어 놓고 한 줄씩 새겨 보곤 합니다. 그러다가 한글판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에는 군데군데 ‘한 줄씩 번역을 안 하고 빠뜨린 대목’이 있음을 알아챕니다. 책을 읽으며 때때로 어딘가 아귀가 안 맞는다거나 끝맺음이 아리송하다고 느끼곤 했는데, 군데군데 번역을 빼먹은 데가 있는 탓이었습니다. 다시 올 수 없는 사람이요 다시 나오기 힘든 책인데, 애써 묶였던 책 하나를 일군 번역이 이러하다니 ……. 우리 나라에서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 스스로 바깥말을 익혀서 아예 처음부터 번역책이 아닌 외국책으로 읽어야 하는가요? 쓴 입맛을 다시며 책을 덮습니다. (4343.2.21.해.ㅎㄲㅅㄱ)


[26∼27, 29쪽] 일본인은 지독한 외국어 콤플렉스를 가진 인종이다. 패전 후 모두가 녹초가 되어서 의지할 곳이 없는 상태에서, 너무나도 강하게 보인 ‘미국’의 환상을 아직도 좇고 있는 것이다. 먹을것이 없어 굶주리던 당시의 일본인에게 미국은 너무나도 멋지고 강력한 존재로 보였다. 그래서 일본인이 영어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일반적인 인식도 멋지고 강대한 미국의 부속물과 같았다. 이것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일관된 관점이므로 일본에서는 영어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국제인의 면허를 받을 수 있다는 착각에 너도나도 영어를 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지금도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 미국인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영어를 해야 한다는 매우 오만한 의식을 품고 있으므로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영어도 할 줄 모르는 역무원’에 대해서 안달한다. 이런 광경을 보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는 일본이야. 누구나 영어를 할 수 있다고 여겨서는 안 돼!” 하는 분노를 가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많은 일본인이 그 ‘어휴, 어쩔 수 없다’고 하는 몸짓을 도리어 부럽게 여기지나 않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 ‘외국에 나가면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을 미국인은 깨닫지 못했지만, 앞으로 점점 확실하게 형성될 ‘세계의 아시아’ 속에서 일본인이 그것을 답습하지 않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미국의 미니어처’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빈다.

[48쪽] “서교동!” “서울역!” “이대 후문!” 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대는 길가로 튀어나와 모두 목청껏 외쳐댄다. 나도 외친다. 게다가 손님이 타지 않은 빈 차도 행선지에 따라 승차거부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차에 올라타기 전에 반드시 행선지를 말해야만 된다. 그래서 거리가 언제나 소란스럽다 … 재일동포인 혜자와 같은 사람들은 오사카에 돌아가서 택시를 타려고 할 때 무심코 조수석 문을 자신이 직접 열고서 “통천각!” 하고 외친다고 한다. 게다가 이어서 나오는 말이 “안 가요?”라니.

[56, 58∼59쪽] 얼토당토않은 이상한 영어로 인터뷰를 시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만약 내가 거기에 응했을 경우, 도대체 그들은 어떤 식으로 기사를 쓸 셈인지, 그것이 나에게는 수수께끼였다 … 단지 내 감각으로는 그 여기자가 내가 3개월 만에 돌아가려고 한다는 점, 일본은 나의 조국이 아니고 바로 여기가 나의 조국이라고 당당히 말하지 않는 점에 ‘불만’을 느꼈으리라는 기분이 들 뿐이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재일동포 3세를 주인공으로 쓴 《진짜 여름》이라는 내 소설에 대해서 언급했다. “어떤 내용인지 알려주십시오.” 그녀는 아무런 의문이나 주저함 없이 분명하게 이렇게 물었다.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 ‘내용’을 알려 달라는 질문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이 사실만으로도 상당히 놀랐다(더구나 그녀는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60∼61, 64쪽] 그들(한국사람)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사정은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말로 한다면 끝도 한도 없으며, 또 누구인들 다른 사람의 슬픔과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이해해 주려고 들지는 않는 법이다 … ‘민족’, ‘조국’이라는 대단히 크고 추상적인 말과 연관지어 판단하기 전에, 우선 인간은 매일매일을 살아가야 되는 사회적 동물인 것이다 … 남의 ‘아픔’, 남의 ‘사정’을 상상하는 힘만 있다면 조금이라도 거리를 좁힐 수 있다 … “아, 알았다. 메구무 씨의 이야기가 어쩐지 생소하지 않더니, 우리가 일본에 있으면 일본인과 다르고, 한국에 있으면 한국인과 다르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 아닌가요?”

[70, 82쪽] 그러나 그 순간, 행인지 불행인지 대경 씨의 귀는 형들의 입에서 나온 ‘쪽발이’라는 말을 놓치지 않았다. “알잖아? 교포들이 그런 말에 민감하다는 사실 말이야.” 그래서 울컥 치밀어오른 대경 씨는 형들에게 대들게 되었는데, 그때 대경 씨가 한 말이 걸작이다. “이 멍청한 자식들아! 교포에게 함부로 싸움을 걸어도 되는 거야? 재일 대한민국 거류민단에서 가만 있지 않을 거라구!” ‘뭐라고……? 그래, 아마 가만히 있을 거야.’ 역시 어딘지 모르게 장난감 로봇을 닮은 동작으로 어젯밤의 일을 재현해 보이는 대경 씨의 그 말을 들으며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는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 “그렇지만 좀 알아 달라고 매달릴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 알아 달라고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대목이 필시 꽤 오래 전부터 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 원인의 하나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 거친 말을 받아서 대경 씨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조로 말했다. “그래, 알아 달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렇지만 적어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아 주었으면 좋겠네요.”

[97쪽] “한국에서는 말이야, 모두가 잘났어.”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의 이런 말씀을 어렴풋이 기억해 내곤 한다.

[115쪽] 한국은 스스로의 ‘사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다. 도대체 흘러가 버린 시간의 저 너머에 고통스런 추억과 슬픈 과거, 그렇지 않으면 수치와 잘못을 저지른 수많은 ‘마이너스’의 역사가 없는 민족이나 국가가 있을 수 있겠는가?

[143쪽] 하지만 역시 일반적인 일본인은 재일 한국인이라는 문제에 흥미가 없다. 상대에게 흥미가 없는 이야기를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미묘한 ‘아아, 역시 알아주지 않는군.’ 하는 느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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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구 삼촌 산하작은아이들 18
권정생 지음, 허구 그림 / 산하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착한 사람하고 함께 살아가니 좋다
 [그림책이 좋다 72] 권정생(글)+허구(그림), 《용구 삼촌》



- 책이름 : 용구 삼촌
- 글 : 권정생
- 그림 : 허구
- 펴낸곳 : 산하 (2009.6.15.)
- 책값 : 9500원


 (1) 바보스러운 삶


 그림책 《용구 삼촌》에 나오는 용구 삼촌은 바보입니다. 바보란 덜 떨어진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얼음과자를 사먹을 줄 모르는 용구 삼촌이니 바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그림책 《용구 삼촌》을 함께 보던 옆지기는 ‘용구 삼촌은 얼음과자를 안 좋아할 수 있잖아?’ 하고 이야기합니다. ‘뭐야?’ 하고 대꾸했지만, 바보 소리를 듣는 용구 삼촌은 얼음과자를 안 좋아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조용조용 살아가기를 좋아하는 용구 삼촌일 수 있고, 남들이 바보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아도 그저 헤헤 웃으면서 사람 좋이 살아가기를 기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들이 용구 삼촌을 두고 무어라 무어라 떠들든 말든 용구 삼촌은 용구 삼촌이 좋아하는 대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용구 삼촌한테 가장 좋은 길을 찾고, 용구 삼촌한테 가장 알맞을 길을 찾으며, 용구 삼촌한테 가장 고운 길을 찾고자 합니다. 용구 삼촌한테 주어진 먹을거리를 스스럼없이 이웃 아이한테 나누어 주기도 하고, 제 몫은 조금만 먹어도 되며, 여느 어른들처럼 몸을 깨끗하게 씻고 옷을 예쁘게 차려입지 않아도 되는 삶을 좋아합니다.

 오늘날에는 따로 ‘가난하게 살자’고 외치는 사람이 있고, 일부러 헙수룩한 옷을 챙겨입는 사람이 있으며, 환경사랑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바보처럼 살아가자는 사람은 드뭅니다. 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가난하든 말든 기꺼이 나누며, 딱히 환경사랑인지 아닌지 모르나 조용히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 서른 살이 넘었는데도 용구 삼촌은 이렇게 모든 게 서툴렀습니다. 언제나 집안 사람들은 삼촌 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건넛집 다섯 살배기 영미보다도 용구 삼촌은 더 어린애 같은 바보였습니다. 한 가지 비교를 하면 영미는 마을 들머리 구멍가게에서 백 원짜리 동전으로 얼음과자도 사 먹을 줄 아는데, 용구 삼촌은 그렇게도 못하니까요. 겨우 밥을 먹고 뒷간에 가서 똥 누고 고양이처럼 입언저리밖에 씻을 줄 모르는 용구 삼촌은, 언제나 야단만 맞으며 자라서인지 벙어리에 가깝게 말이 없었습니다 ..  (13쪽)
 





 그림책에 나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용구 삼촌 삶자락이 어떠한가를 짚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다만, 용구 삼촌한테는 옷이 여러 벌 있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늘 한 벌만 입는지 모르며, 두 벌을 갖춘 채 한 벌을 빨아야 하면 다른 옷을 입고, 이 옷을 빨아야 하면 지난번에 빨아 둔 옷을 입으며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생각해 보면, 지난날 시골에서 땅을 부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옷 가짓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꼭 한 벌만 있기도 했고, 언니나 형한테서 물려받는 옷 아니고는 없기도 했으며, 집과 일터(논밭)에서 입는 똑같은 옷 하나에 나들이를 갈 때 챙기는 옷이 겨우 하나 있곤 했습니다. 영화 〈로빙화〉를 보면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입는 옷을 집에서도 고스란히 입습니다. 찻잎에 붙는 벌레를 잡아서 죽이는 일을 거들 때에도 학교에서 입는 옷을 똑같이 입습니다. 어쩌면 이 아이들한테는 옷이 꼭 한 벌만 있는지 모르며, 빨아 입는 옷까지 해서 다문 두 벌만 있는지 모릅니다. 이 아이들뿐 아니라 이웃 아이들도 비슷했을 터이니 옷 투정을 한달지 옷을 사 달라고 조른달지 하는 일이란 생기지 않습니다. 흔한 말로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챙겨 입어야 할 옷 가짓수는 그리 안 많습니다. 한 벌로도 괜찮고 두 벌로 넉넉하며 세 벌이라면 넘칩니다.

 옷은 이렇다 한다면, 신은 어떨까요? 아마 신은 꼭 한 켤레만 있겠지요. 짚신이라면 틈틈이 삼아 놓을 테고, 고무신이라면 남는 켤레는 없겠지요. 아이들이라면 언니나 형한테서 물려받아 신을 텐데 뒤축이 다 닳은 고무신이라 하여도 고맙게 물려받으리라 봅니다. 용구 삼촌이라면 뒤축이 다 닳고 없어도 발가락에 잘 꿴 채 돌아다니지 않으랴 싶고, 고무신을 양말 없이 신는 사람이라면 흙길을 맨발로 다녀도 발이 아프거나 따갑지 않습니다.


.. 삼촌이 언제부터인지 누렁이를 데리고 못골 산으로 풀을 뜯기러 다니게 된 것입니다. 삼촌이 소를 데리고 간다기보다 누렁이가 삼촌을 데리고 간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삼촌이 누렁이의 고삐를 잡고 있으면 누렁이가 앞장서서 가고 삼촌은 그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  (14쪽)


 사람들이 저를 보며 으레 묻습니다. 왜 고무신을 신느냐고. 고무신을 신어도 어찌하여 검정고무신을 신느냐고.

 까닭이 달리 있지 않습니다. 2003년 가을부터 충북 충주에 있는 이오덕 님 댁에서 일을 하면서 신은 고무신인데, 시골에서 농사짓는 일을 하지는 않았으나 시골에서 흙길을 밟으며 살아갈 때에는 다른 어느 신보다 고무신이 좋습니다. 시골이라 고무신이 어울린다기보다 시골이기에 고무신이 가장 알맞았습니다. 검정고무신은 한 켤레에 3000원이요 흰고무신이나 보라고무신은 5000원입니다. 질기기로는 검정고무신이 훨씬 질기며 오래 신습니다. 값싸고 질기니 마땅히 검정고무신을 신습니다. 처음에는 발가락이나 뒤꿈치가 아팠지만 한 주쯤 지나니 발가락과 발바닥과 뒤꿈치에 꾸덕살이 차츰 늘면서 하나도 아프지 않고, 여름날에는 쉽게 벗고 쉽게 빨아 쉽게 말려서 신을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여느 운동신이라면 이렇게 하지 못합니다. 빨 때에도 번거롭고 말릴 때에도 오래 걸리며 값이 비쌉니다. 웬만한 운동신 한 켤레 값이라면 고무신 열 켤레 남짓 살 수 있고, 고무신 열 켤레라 한다면 열 해 남짓 신습니다. 조금 비싼 운동신이라 한다면, 이 신 한 켤레 값으로 ‘죽는 날까지 신고도 남을 만한 고무신’을 장만할 수 있어요.

 논일이든 밭일이든 해 본 분이라면 운동신이건 가죽신이건 신을 수 없음을 잘 압니다. 신으려면 고무신을 신고, 아예 맨발로 일할 때가 가장 낫습니다. 굳이 머나먼 옛날을 거슬러 헤아리지 않더라도, 사람들 발은 흙을 밟고 살아가기에 가장 알맞게 발돋움해 왔습니다. 고무신은 이런 사람 삶에 가장 걸맞는 신발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골에서도 신고 도시에서도 신으며 땅을 가장 가까이 느끼도록 하는 신이요, 가장 적은 돈을 들이고 가장 적은 쓰레기가 나오며, 다 닳아 못 신는 고무신짝은 흙을 담아 꽃그릇을 삼을 수 있고, 그냥 책시렁에 얹거나 벽에 걸어 놓아도 좋은 ‘장식품’이 되곤 합니다.


.. 아아! 삼촌은 죽지 않았습니다. 다복솔 나무 밑에 웅크리고 고이 잠든 용구 삼촌 가슴에 회갈색 산토끼 한 마리가 삼촌처럼 쪼그리고 함께 잠들어 있었습니다 ..  (35쪽)


 그림책에 나오는 《용구 삼촌》은 ‘여느 사람 눈길로 바라볼 때에 일다운 일을 하는 한 가지’로 ‘소몰이’를 합니다. 그림책을 읽어 보면 용구 삼촌이 하는 소몰이란 고작 ‘누렁소가 앞장서 걸어가면 그저 고삐를 잡고 뒤에서 쫄래쫄래 따라가는 모양새’입니다. 소한테 풀을 뜯기러 산에 간다기보다 누렁소가 혼자 풀을 뜯으러 가는 길에 심심할까 싶어 동무가 된다고 할 테고, 어쩌면 누렁소가 혼자 풀을 뜯으러 가면서 심심하다고 느끼어 용구 삼촌을 불러 ‘어이, 그렇게 있지 말고 나랑 함께 산에 가서 놀자!’ 하고 꼬드겼다 할 터입니다.

 여느 어른들은 다른 할 일이 많아 하지 못하는 소몰이입니다. 여느 아이들은 다른 놀이를 하고 싶어 안 하는 소몰이입니다. 그렇지만 용구 삼촌한테는 더없이 즐거운 산마실입니다. 누렁소를 비롯하여 산에서 자라는 갖가지 풀과 꽃과 나무와 짐승을 만나는 어울림인 소몰이입니다. 참 바보스러운 삶을 누리는 용구 삼촌이요, 참 바보스러워서 즐거운 용구 삼촌입니다.
 





 (2) 착한 사람, 착한 삶, 착한 이야기, 착한 그림


 누렁소를 몰고 산마실을 가는 용구 삼촌한테 마을 할배는 “용구도 이제 소를 다 뜯길 줄 알고, 색싯감만 있으면 장가도 가겠구나(15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감나무집 할배는 우스갯말로 이렇게 이야기했다는데, 아마 바보 용구 삼촌을 지아비감으로 삼으려고 하는 색시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보이니까요. 바보스레 살아가니까요. 욕심이나 노림수나 속셈 하나 없이 살아가는 용구 삼촌이니까요.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수수하게 살아가며 남김없이 살아가는 용구 삼촌이니까요.

 요새 사람들로서는 대학교 졸업장이 없는 용구 삼촌입니다. 아니, 고등학교 졸업장조차 없다 할 용구 삼촌입니다. 시험을 치면 거의 0점을 받을 만한 용구 삼촌입니다. 운전면허증은커녕 아무런 자격증이 없습니다. 아파트는커녕 작은 집 한 채 없을 뿐더러 전세집이나 달삯집조차 없습니다. 빈손입니다. 빈몸입니다. 두 손에 가진 물건과 이름과 돈과 힘이 없는 용구 삼촌입니다. 어느 어버이가 이와 같은 용구 삼촌한테 당신 딸아이를 시집보내려 하겠습니까.

 큰회사 일꾼으로 들어갈 수 없는 용구 삼촌을, 공무원이 될 수 없는 용구 삼촌을, 이름 날리는 글쟁이가 될 수 없는 용구 삼촌을, 교수님이든 선생님이든 될 수 없는 용구 삼촌을, 하다못해 구멍가게 하나 차릴 깜냥조차 못 되는 용구 삼촌을 누가 좋다며 달려들어 품에 안겠습니까.


.. “삼초온…….” 경희 누나가 찔끔찔끔 울기 시작했습니다. 내 눈에도 갑자기 눈물방울이 맺혀 떨어지며 콧등이 찡해졌습니다. 바보 삼촌은 그래도 우리 집에 없어서는 안 되는 너무도 따뜻한 식구인 것입니다. 바보여서 그런지, 삼촌은 새처럼 깨끗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  (22쪽) 






 용구 삼촌한테는 딱 한 가지만 있습니다. 용구 삼촌한테는 새처럼 깨끗하고 착한 마음씨 하나만 있습니다. 깨끗하고 맑고 정갈한 마음결 하나만 있습니다. 착하고 참되고 얌전한 마음밭 하나만 있습니다.

 용구 삼촌 스스로 보기에 당신 마음이 깨끗하거나 착한지는 모르리라 봅니다. 용구 삼촌은 당신 마음이 어떠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삶이요, 당신이 누렁소하고 동무가 되어 산마실을 하는 매무새가 어떠한 줄을 돌아보지 못하는 삶이며, 멧토끼를 가슴에 안고 새근새근 잠든 마음녘이 어떠한 그릇인가를 살피지 못하는 삶입니다. 스스로 남 앞에서 내세우겠다고 하는 착한 마음이 아니니까요. 스스로 ‘난 참 착한 사람이야.’ 하고 생각하지 않는 용구 삼촌이니까요. 그저 여느 사람들이 용구 삼촌을 바라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바보 삼촌’이라고 하다가 ‘착한 삼촌’이라고 할 뿐이니까요.

 그지없이 바보스러우며 착한 용구 삼촌이요, 더없이 바보스러우며 착한 이야기를 글로 남긴 권정생 님이며, 가없이 바보스러우며 착한 그림을 어우러 놓은 허구 님입니다. 바보스러운 글과 그림이 책으로 묶일 수 있으니 우리 나라는 ‘아주 조금은’ 바보스러운 나라가 아닌가 싶고, 아주 조금은 바보스러운 이 나라라 한다면, 아주 조금은 착한 마음이 남아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4343.2.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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