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 (양장) - 왜 미국의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없을까?
이지훈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골프장이 있는 까닭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33] 이지훈,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제주 삼다수’ 먹는샘물 회사는 한 해에 31만 톤쯤 땅속물을 길어서 쓴다고 합니다. 제주섬에 있는 골프장들은 한 해에 1812만 톤쯤 땅속물을 퍼내어 쓴다고 하고요. 제주 삼다수 먹는샘물 회사에서 쓰는 물보다 제주섬 골프장 한 곳이 쓰는 땅속물이 훨씬 많다는군요. 그렇지만 이런 물씀씀이를 제대로 살필 줄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매우 드뭅니다.

 어제 낮에 헌책방마실을 하려고 동인천역에서 빠른전철을 타고 용산역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우리 식구 옆에 나란히 앉은 젊은 두 사람이 ‘지구온난화’와 ‘물 부족 국가’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더군요. 칭얼대는 아이를 보느라 바쁘면서도 용케 옆자리 젊은이들 목소리가 귀에 하나하나 들렸습니다. 젊은이들은 물이 그렇게 모자라다는데 제주 삼다수는 그렇게 물을 퍼올리면 어떡하느냐고 걱정을 합니다. 이런 이야기 다음으로 골프장에 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젊은 당신들이 가는 골프장에서 물을 어느 만큼 쓰는지, 또 농약이나 풀약을 얼마나 많이 쓰는지를 하나도 모를까요. 아마 하나도 모르니 이런 이야기를 조곤조곤 주고받지 않느냐 싶습니다.

 물 이야기를 좀더 살피고 싶다면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그물코,2009)이라는 훌륭한 책이 하나 있고, 《주식회사 물》(달팽이,2007) 같은 속깊은 책이 하나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살짝살짝 나오는 겉핥기 이야기로는 우리를 둘러싼 물 이야기를 찬찬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지구가 차츰 뜨거워지는 까닭이 어디에 있고, 우리 나라에 물이 모자라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를 옳게 살피고 바르게 읽으며 슬기롭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 요세미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는 국립공원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려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애써 설치해 놓은 공원의 자동차 도로를 뜯어내고 숲속에 그림처럼 지어 놓은 숙박시설을 공원 밖으로 이전했다 … 국립공원의 존재 의미가 ‘국민이용 편의’에서 ‘자연보전 중심’으로 분명하게 옮겨간 것이다 … 국립공원청의 책무가 “손상되지 않은 자연/문화자원의 ‘보존’”이기에 그들은 이를 훼손하는 어떠한 인공시설물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중 보존해야 할 대상에는 생태계도 있지만 ‘경관’도 있다. 그렇기에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  (14, 19쪽)


 우리 집 아이는 고기를 안 먹습니다. 엄마나 아빠가 아주 잘게 씹어서 주면 때때로 받아먹기는 하지만, 아이는 김치를 가장 좋아합니다. 애 엄마와 애 아빠가 따로 고기를 즐겨먹지 않을 뿐더러 고기를 마련하여 밥을 차리는 일이 없기도 하지만, 어쩌다 바깥에서 고기를 먹어야 하는 자리에서조차 아이는 고기는 아예 쳐다보지 않습니다.

 둘레 어른들은 아이가 튼튼히 자라려면 고기도 먹어야 할 뿐 아니라 많이 먹어야 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고기다운 고기가 있는지를 살피는 어른은 없습니다. 뭍고기들이 얼마나 많은 항생제를 먹으면서 좁아터지고 지저분한 시멘트 우리에서 끔찍하게 길러지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항생제 중독》(시금치,2005)이나 《우리 안에 돼지》(숲속여우비,2010) 같은 책들을 찾아서 읽으면 좋으련만, 이런 책을 읽은 분들이라 할지라도 우리 입맛을 달짝지근하게 꼬드기는 먹을거리가 얼마나 몹쓸 먹을거리인지를 느끼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엠에스지’를 안 넣는다고 다들 크게 써붙이고 있으나, 이런 딱지를 써붙이기 앞서는 모두들 엠에스지를 써 왔으며 갖가지 첨가물과 화학색소를 잔뜩 집어넣고 있습니다.

 자연 그대로인 먹을거리란 가게에 없고, 자연 그대로를 받아먹을 터전이란 도시에 없습니다. 이리하여 자연스러울 수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며 이것저것 꼬치꼬치 어떻게 따지느냐면서 항생제이든 농약이든 사료이든 첨가물이든 화학색소이든 무어든 혀끝에 따라 낼름낼름 사먹거나 사먹이는 우리들 살림살이입니다. 옳게 마련하여 내다 파는 생협 물건이 비싸다고 하지만 이제는 여느 공산품 물건하고 거의 같은 값일 뿐더러 우리 스스로 옳게 마련하여 내다 파는 생협 물건을 사랑하고 아낄 때에 비로소 여느 공산품 물건 또한 허투루 아무렇게나 만들지 않음을 살피지 않는 우리들 생각밭이요 매무새입니다.


.. (우리 나라는) 1986년 12월 ‘자연공원법’이 개정되면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설립 근거가 마련됐으나 관리공단은 ‘건설부’ 산하에 마련됐다. 정말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이다.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주무부서가 ‘건설부’라니. 1991년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주무부서가 ‘건설부’에서 ‘내무부’로 바뀌었다가 1998년 들어서야 비로소 ‘환경부’로 이관됐다 ..  (28쪽)


 ‘왜 미국의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없을까?’라는 작은이름을 달고 나온 책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를 읽습니다. 글쓴이 이지훈 님은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 방문연구원으로 한 해 다녀온 나날을 밑거름 삼아 미국땅 국립공원을 요모조모 살펴보았고, 그동안 한국땅 국립공원을 돌아본 나날을 견주면서 우리네 국립공원이 나아갈 올바른 길을 밝히고자 애씁니다.

 책에 붙인 큰이름과 작은이름을 읽는다면 이 책 고갱이는 한 줄로 또렷하게 나타납니다. 첫째, 한국 국립공원은 미국 국립공원을 보며 배워야 합니다. 둘째, 한국이 우러러 마지않는 미국은 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하나도 없으나 우리 나라에는 많이 있고 많이 새로 놓으려고 아둥바둥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미국과 한국은 이토록 다를까요. 미국을 섬기고 받든다고 하는 한국사람들은 왜 미국이 훌륭히 잘하는 모습만큼은 터럭만큼이나 배울 생각을 안 할까요. 왜 한국사람들은 한국에 도움이 되는 미국사람 정책은 돌아보지 않으면서, 한국에 도움이 안 되는 미국사람 정책만을 두 손 받들어 모시려고 할까요.

 정치하는 사람과 공무원이라는 사람들 탓인지요? 배운 사람들 탓인지요? 기자들과 광고지 같은 몇몇 신문들 탓인지요? 썩어문드러진 기득권과 수구 무리들 탓인지요?

 케이블카를 놓을지라도 아무도 안 탄다면, 한국땅 공무원이나 개발업자나 국립공원관리공단이나 건설부나 ‘있던 케이블카도 없앱’니다. 그런데, 한국땅에서 생각있는 사람이나 생각없는 사람이나 케이블카가 ‘짠!’ 하고 놓이면 ‘입으로는 나무라지만 몸으로는 케이블카를 탑’니다. 여느 사람이든 지식인이든 운동가이든 활동가이든, 입과 몸이 따로 놉니다.

 정치를 배우든 경제를 배우든 문화나 예술을 배우든 미국으로 비행기 타고 날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국립공원을 배우고자 미국으로 날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서 애써 배운 좋은 이야기들을 우리 땅 우리 이웃하고 알뜰살뜰 나누고자 힘쓰는 분은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무라야 할 미국이라면 옳게 나무라고 배워야 할 미국이라면 옳게 배울 일입니다.


.. 현재 이 골프장은 공인된 ‘오듀본 협력 조수 보호구역 프로그램’에 가입되어 있으며, 미국의 몇 안 되는(1% 미만의) ‘유기농 골프 코스’ 중 한 곳이다. 여기서는 재활용 물만을 사용하며 어떤 종류의 비료와 농약, 제초제도 사용하지 않는다. 잡초는 순전히 제초기와 맨손만을 사용하여 제거한다. 업자가 18홀로 확대시키려 했으나 공원 당국은 허가해 주지 않았다. 이 정도면 어떠한 생태적 위험도 없는 골프장인 셈이다. 이러한 역사를 모른 채 국립공원에 골프장이 있는 모습만 보고 이것이 보존과 이용의 조화라는 실용주의적 보존정책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한다면 요세미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로서는 여간 황당한 일이 아닐 것이다 ..  (48쪽)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를 쓴 이지훈 님은 2008년 3월에 교육방송에서 보여준 ‘세계의 자연 : 미국의 국립공원’이라는 ‘특집 다큐프라임’을 보았다고 합니다. 국립공원 공부를 할 뿐 아니라 미국에 찾아가서 미국 국립공원을 배우고 있던 글쓴이로서는 아주 반기면서 기쁜 마음으로 이 ‘특집 다큐프라임’을 보았다는데, 참으로 대단한 품과 돈과 사람을 들인 놀라운 작품인 이 방송이 외려 사람들한테 엉뚱한 생각을 불러일으킬까 걱정스럽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교육방송 풀그림은 ‘이용과 보존’이라는 두 가지를 들먹이면서 그릇된 정보와 어설픈 취재로 뚱딴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골프장은 요세미티가 국립공원이 되기 앞서부터 있던 골프장이요, 더욱이 우리 나라 골프장들처럼 갖가지 농약과 풀약을 잔뜩 치는 골프장이 아닌 ‘유기농 골프장’임을 헤아리지 않았거든요.

 우리 지식사회를 보여주는 모습이라 할 텐데, 올바르고 알맞게 좋은 길을 함께하자고 나서는 자리에서조차 좀더 속깊이 파고들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다큐멘터리이든 다큐프라임이든 그럴싸한 그림으로 그럴싸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에 눈길을 둘 노릇이 아니라, 올바른 그림으로 올바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에 눈길을 둘 노릇입니다. 시청자가 10만이 되어야 보람이 있는 방송이 아닙니다. 시청자가 9만이어도 되고 5만이나 1만이어도 됩니다. 아니 1천이나 1백이어도 괜찮습니다. 시청자가 100만일지라도 100만 가운데 내 삶을 바꾸며 거듭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부질없습니다. 시청자가 1천 사람일지라도 이 가운데 열 사람이나 백 사람이 스스로 내 삶을 바꾸며 거듭나려 했다면 더없이 보람있습니다.

 많이 팔리거나 잘 팔리는 책이 뜻있는 책이 아니라 제대로 읽히거나 잘 읽히는 책이 뜻있습니다. 이름난 사람이 좋은 삶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이 좋은 삶입니다. 크고 많은 돈이 즐거운 삶이 아니라 살갑고 넉넉하며 따뜻하여 사랑스러울 때에 즐거운 삶입니다.

 국립공원이란 ‘여기만 지키자’는 다짐이 아닙니다. 국립공원이란 ‘여기부터 건사하자’는 다짐입니다. 국립공원부터 올바로 건사하여 우리 둘레 모든 삶터를 슬기롭고 아름다이 건사하자는 첫머리 다짐입니다.


.. 특정 지역이나 공간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은 그곳이 마치 ‘자신의 소유지’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주인 의식을 갖고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책임의식의 발로에서 비롯됐으리라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것도 ‘지나칠 경우’ 문제가 된다. 국립공원만 하더라도 국민들의 공적 자산인데, 그곳을 관리하는 기관의 직원들이 스스로가 마치 회사 주인이자 주주인 양 행세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이러다 보니 국립공원의 ‘주인’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나 사무소(직원)가 되고, 탐방객은 ‘객’으로 취급되어 버린다. 이 ‘주인’은 객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지, 소중한 자연환경을 훼손하지는 않는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데 주력한다 ..  (149∼150쪽)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를 한 번 읽고 나서 차근차근 한 번 더 되새겨 봅니다. 처음 읽을 때에 밑줄을 그은 대목을 살피니 몇 군데 없습니다. 밑줄을 그은 대목을 찬찬히 거듭 되읽으니 책 한 권을 통틀어 똑같은 이야기를 두어 차례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글 첫머리부터 맺음말이 다 나와 있기 때문에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구나 싶습니다. 좀더 많은 자료와 정보를 보여주고자 애쓴 땀이 엿보이지만, 국립공원 이야기는 더 많은 자료와 정보가 없이도 얼마든지 알차고 훌륭히 선보일 수 있을 텐데, 글쓴이는 이 대목을 놓치고 있습니다.

 글쓴이 이지훈 님이 미국땅 모든 국립공원을 좀더 오래 두루 돌아다녔다고 해서 책이 더 알찰 수 있지는 않습니다. 딱 한 군데 국립공원만 찾아보았다 할지라도 이 한 곳에서 당신 가슴을 싸하게 적신 모습을 적바림할 수 있으면, 당신 마음밭을 넉넉히 북돋운 모습을 조곤조곤 들려줄 수 있으면, 국립공원이 있기에 당신 넋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었음을 지식조각이 아닌 삶으로 보여줄 수 있으면 됩니다.

 꼭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을 때에만 지켜야 할 아름다운 터전이 아닙니다. 반드시 국립공원만 알뜰히 지켜야 할 자연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터전 어디나 아름다이 건사해야 합니다. 우리 삶터 어디나 알차게 가꾸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아름다운 목숨빛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푸나무 모두, 자연 터전 어디나, 제 결을 고이 보듬을 때에 살기 좋은 이 나라로 다시 태어납니다. (4343.5.6.나무.ㅎㄲㅅㄱ)


 ┌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한울,2010)
 ├ 글 : 이지훈
 └ 책값 :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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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05-06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덕분에 책 2권이 보관함에 추가되네요.
 
환경 가계부 -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습관
혼마 미야코 지음, 환경운동연합 환경교육센터 옮김 / 시금치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48 ― ‘가정주부’란 가장 아름다운 ‘직업’
 : 혼마 미야코, 《환경 가계부》


- 책이름 : 환경 가계부
- 글 : 혼마 미야코
- 옮긴이 : 환경운동연합 환경교육센터
- 펴낸곳 : 시금치 (2004.12.10.)
- 책값 : 9000원



 (1) 집일 하는 사람 책읽기


 새벽 세 시 삼십사 분부터 깨어난 아이는 아침 열한 시 삼십오 분까지 칭얼거리다가 잠이 듭니다. 요 며칠 바깥마실을 하는 동안 바깥사람들하고 신나게 어울리며 졸음을 잊은 채 뛰어놀던 아이였는데, 몸이 고단하면서도 새벽 일찍 어김없이 일어납니다. 새벽에 일어난다고 걱정이라거나 힘들다기보다, 아이는 도무지 낮잠을 안 자려 하면서 투정과 짜증이 더해 가기 때문에, 아이한테나 어버이한테나 부디 아침에 늦잠을 자면 얼마나 기쁘랴 생각합니다. 잠은 자면서 놀고, 밥도 먹으면서 놀면 오죽 좋을까요.

 칭얼거리는 아이와 함께 방을 쓸고 닦고 치운 다음에 빨래를 하면서 씻깁니다. 빨래를 하는 동안 밥을 안쳤고, 다 된 밥을 먼저 아이한테 먹이면서 다른 찬거리를 마련합니다. 새벽바람으로 청소하고 빨래하고 씻기고 밥하고 밥 먹이고 하기까지 꼭 네 시간이 걸립니다. 아이와 살아온 스물한 달 동안 날마다 으레 하는 일이라 새삼스럽지 않지만, 하루라도 느긋하게 숨을 돌린다거나 마음을 놓을 수 없으니 집일을 빼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에 맡기는 마음을 알 만합니다. 그러나 이토록 닦달하고 들볶던 아이가 잠든 모습을 바라볼 때에는 이 얄미운 녀석이 달디달며 곱게 그릉그릉거리고 있어, 내가 너한테 무엇을 더 바라며 똑같이 짜증을 부리고 큰소리를 치며 힘들다고 한숨을 푹푹 내쉬느냐 싶습니다.

 엊그제 동네 헌책방에 마실을 가서 소설쟁이 오정희 님 산문모음을 하나 장만했습니다. 1994년에 나온 《허리굽혀 절하는 뜻은》(창)이라는 책인데, 오정희 님은 머리말에 “이 책은 가정이라는 울 안에서 밥짓고 빨래하고 아이들 때문에 애태우고 사는 재미, 사는 걱정으로 나이들어 가는 평범한 한 여자로서의 입장에서 쓴 작은 글모음이다. 가정주부로, 아이들의 어미로 삶의 결과 세상살이를 바라보기, 내 속에서 끓어넘치는 열정과 넋두리가 들어 있어 내가 쓴 어느 소설보다도 자신의 모습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자잘한 근심걱정으로 한숨 쉬고 답답해 하고, 기뻐하기도 하는 …… 그러나 그러한 일상사가 또한 구원이 됨을 모르지 않기에 이런 글모음으로 책을 펴낼 용기를 내어 본다”고 밝힙니다. 여느 글쟁이 여느 글모음은 넘쳐도, 여느 살림꾼 여느 글모음은 드문 우리 나라입니다. 이 땅에서 한 어버이한테서 한 아이로 자라지 않은 사람이 없건만 이 땅 글쟁이 가운데 ‘한 어버이한테서 한 아이로 자라 온’ 이야기를 글로 만나기란 몹시 힘들고, ‘한 어버이로서 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이야기를 글로 만나기란 더욱 힘듭니다. 그나마 오정희 님은 소설을 쓰는 분이었으니 글을 쓸 겨를을 내거나 글을 써 달라고 바라는 곳이 있어 당신 살림살이 이야기를 글로 여밉니다. 그렇지만 숱한 어머니들 이야기는 글로 여미어지지 않습니다. 숱한 어머니와 세월을 함께 보내는 숱한 아버지들 이야기 또한 글로 묶이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혼인을 해서 복닥복닥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꽤 있습니다. 아이와 어우러지는 고단한 아름다움을 밝히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제법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여느 살림꾼 삶자락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몇 없습니다. 글로 쓸 만한 이야기가 못 된다 여길 수 있겠으나, 글로 쓸 만한 틈을 못 낸다 할 테고, 애써 글로 썼다 하더라도 실어 주는 자리가 없습니다. 맛깔스럽다는 온갖 요리를 다루는 책은 있으나, 날마다 먹는 밥이나 국이나 찌개나 김치나 반찬을 다루는 책이 한 가지라도 있습니까. 궁중요리라느니 무슨무슨 요리라느니 하는 책은 넘치지만, 여느 사람이 여느 자리에서 살아가며 늘 먹는 가장 밑바탕이 되는 밥하기와 얽힌 ‘살림책’은 없습니다. 예쁘장하게 지어 입는 옷이나 사서 입는 옷 이야기를 다루는 책과 잡지는 넘칩니다. 그러나 바쁘고 고단한 살림에 수수하게 지어 입히거나 마련해 입히는 옷 이야기를 다루는 책과 잡지는 없어요.

 아마 돈이 안 되는 살림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제아무리 남녀평등이니 여남평등이니 소리높여 외쳐도 정작 ‘집안일(가사노동)’을 돈셈으로 치는 사람은 없잖아요. 나라에서 돈을 줍니까, 회사에서 돈을 줍니까. 동사무소에서 돈을 줍니까, 누가 돈을 줍니까. 그런데 돈셈으로 치지 않는 집안일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요, 예부터 집일을 ‘살림’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살림하는 사람으로서 날마다 느끼지만, 저는 제가 하는 일을 ‘가사노동’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냥 ‘살림’입니다. 많이 어수룩하고 모자라고 어줍잖은 살림이기는 하나, 저는 살림살이를 하는 살림꾼입니다. ‘가사노동’을 하는 ‘가정주부’는 아니에요. 그래서 제 살림살이를 돈셈으로 치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으니 다달이 50만 원쯤 아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엄마젖을 먹였고 천기저귀를 제가 손빨래로 갈아 채웠으니 이래저래 돈을 얼마쯤 아겼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안 몰고 아기수레를 장만하지 않았고 옷은 모두 얻어서 입으니 또 돈을 어느 만큼 줄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픈 옆지기를 잘 보살피지 못해 언제나 미안한데, 넘치는 집일을 짐지지 못해 누구한테 맡긴다면 돈을 얼마 내야 하니까, 이만큼 또 돈을 안 쓰고 있다고 느끼지 않아요.

 치고 볶아도 내 사랑이고 내 살림이니까요. 부딪히고 쓰러져도 내 삶이고 내 살붙이이니까요.

 다만, 하루하루 눈알 돌아가도록 어지럽고 손이 떨리도록 힘겨우며 코피가 터지도록 일이 넘치는 삶이기 때문에 여느 책 하나 손에 쥐지 못합니다. 웬만큼 곰삭이거나 되씹는 가운데 풀어낸 이야기책이 아니라면 지루해서 졸음이 쏟아집니다. 아무래도 아이 키우고 살림 하느라 머리가 굳어 돌이 된 까닭인지 모르겠는데, 지식만 넘치는 책은 저한테는 참 재미없습니다. 실용책이든 처세책이든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사타구니 부여잡는 문학이나 머리 굴리는 예술이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고단하고 힘겨우며 바쁜 살림꾼이 졸리고 떨리는 손으로 애써 붙잡아 펼칠 만한 눈이 번쩍 뜨이는 책이 아닐 때에는 하나같이 책상에서 멀찌감치 내팽개치곤 합니다. 사람이 옹근 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참사랑과 착한 믿음과 고운 손길을 추스르도록 돕는 책이 아닐 때에는 눈길이 가지 않습니다.

 지난 스물한 달에 걸쳐 날마다 되씹고 곱씹습니다만, 아이를 낳아 키우던 날부터 ‘이제까지 해 오던 책읽기는 할 수 없다’고 느꼈는데, ‘이제까지 해 오던 책읽기를 그대로 하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해 오던 책읽기는 그예 배부른 책읽기였다고 느낍니다. 속속들이 살림꾼이 되지 못한 채 저부터 지식조각을 주워섬기는 책읽기를 했다고 느낍니다. 오늘까지는 스물한 달째이고, 앞으로는 더 기나긴 달수와 햇수에 걸쳐 살림꾼다운 책읽기를 새롭게 익힐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2) 여느 가계부로는 살찌울 수 없는 살림


 여느 가계부로는 살찌울 수 없는 살림을 이야기하는 책 《환경가계부》를 읽습니다. 2004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은 거의 사랑받거나 눈길받지 못한 채 사라진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온누리에 사랑받지 못하는 책이 한두 가지이겠습니까만, 이 나라에 손꼽히는 환경운동 시민단체 회원 숫자를 생각한다면 씁쓸한 일입니다. 이 땅에서 눈길받지 못한 채 스러지는 책이 한둘이겠습니까만, 생태와 환경과 웰빙과 그린 따위를 외치는 목소리를 헤아린다면 다른 책이 아닌 《환경가계부》가 이토록 막대접을 받고 조용히 묻혀 버린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슬픕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저부터 2004년에 이 책이 나온 줄 몰랐습니다. 2004년부터 여섯 해가 지난 201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책이 예전에 나왔음을 알았고, 책을 다 읽은 다음 둘레에 소개하려고 알아보니 판이 끊어져 더는 장만할 수 없는 책이 되어 있더군요.

 책을 덮고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환경책을 좀더 샅샅이 살피고 꼼꼼히 읽는다고 밝히는 사람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책이었다니 부끄럽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나라 도서관에 이 책이 몇 권쯤 남아 있을는지 궁금하고,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책은 헌책방에 거의 나오지 않는데 이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볼 길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진책이 참 안 팔리지만 사진책보다 더 안 팔리는 책이 환경책입니다. 앞서 여느 살림꾼 이야기는 책으로 나오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는데, 환경책이나 여느 살림꾼 이야기책이나 어슷비슷합니다. 두 가지 모두 한 번 책으로 묶이기 힘들고, 애써 책으로 묶여도 사랑받기 어렵습니다. 어려운 책이 아니고 딱딱한 책이 아닌데, 참 안 읽힙니다. 바른 사람으로 살아가자면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새롭게 돌아볼 이야기입니다만, 참 뒤로 처지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자가용을 버리자’라는 외침은 꿈도 꾸지 못하는 우리들인 탓이기 때문이겠지요. ‘자가용을 버리자’는 못하겠다면 ‘자가용 홀짝수 타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이마저도 못할 테지요. 아니, 한 주에 한 번 자가용을 쉰다거나 열흘에 한 번 자가용을 쉬기조차 못하고 있는 우리들 아닌가요. 대중교통을 타지 말고 자전거나 두 다리를 쓰자고 한다면, 이를 받아들여 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촐퇴근하는 거리가 너무 길다고 하지만, 스스로 일자리를 집과 가까운 데에서 얻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합니다. 영어로는 ‘로컬푸드’라고 하지만, 내가 사는 마을에서 얻는 먹을거리를 나 스스로 찾아 먹어야 내 몸과 내 마을이 튼튼합니다. 내가 내 마을에서 내가 즐거이 몸담을 일자리를 얻어서 일해야 나와 내 마을과 내 일터가 튼튼합니다.

 서울이 고향이라면 서울을 사랑하여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고, 안성이 고향이면 안성을 사랑하며 안성에서 일자리를 마련할 노릇입니다. 대구사람은 대구에서 슬기로운 길을 찾고, 나주사람은 나주에서 아름다운 길을 찾아야겠지요.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옛말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제 뿌리내린 고향에서 커야 할 노릇이요, 말이건 다른 짐승이건 제 삶터에서 튼튼하게 살아야 할 노릇입니다. 강릉은 강릉다움을 건사하고 인천은 인천다움을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야 나와 내 집안과 내 마을과 내 겨레와 내 나라와 내 누리가 튼튼할 길이란 없습니다.

 일본사람 혼마 미야코 님이 쓴 《환경가계부》라고 하는 책은 바로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람들과 중앙정부와 기득권과 정치꾼과 지식인과 운동가들 모두 가장 얕보거나 낮잡는 여느 ‘살림꾼’이 여느 마을에서 여느 모습으로 여느 삶을 꾸리는 이야기야말로 가장 작은 집안부터 가장 큰 온누리까지 살릴 수 있음을 조용히 밝히고 보여줍니다. 돈을 더 버는 삶에도 남다른 뜻이 있겠으나 아름다운 뜻이란 없음을 찬찬히 알려주고 일깨웁니다. 착하고 참되며 고운 삶이야말로 나와 내 동무와 살붙이 누구한테나 도움이 되며 사랑스러운 길임을 또렷이 드러내고 가르칩니다.

 한꺼번에 정권을 뒤집자는 책이 아닌, 차근차근 내 집안을 바꾸고 내 집안에 앞서 내 삶을 바꾸자고 하는 《환경가계부》입니다. 내가 내 삶을 슬기롭게 바꾸지 못하는데 썩어빠진 정권을 갈아치울 수 없음을 온몸으로 깨우치는 《환경가계부》입니다. 대학교에 간들 배울 수 없고, 대학원뿐 아니라 로스쿨이건 대기업이건 가르쳐 주지 않는 이야기를 담은 《환경가계부》입니다. 나라밖으로 배우러 나간다 한들 배울 수 없는 깊은 이야기를 실은 《환경가계부》입니다. 바로 이 땅 이 자리에서 이 사람들, 그러니까 나와 내 살붙이와 내 이웃과 내 동무하고 살가이 얼크러지는 눈물과 웃음이 얼마나 빛나고 애틋한가를 적바림해 놓은 《환경가계부》입니다.

 우리 나라가 아름답지 못해서 아름다운 책이 제대로 태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제대로 읽히지 못하니 《환경가계부》라는 책 또한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졌는데, 사라진 책을 되살리기는 어렵고, 이 나라에서 아름다운 삶을 건사하며 아름다운 넋을 가꾸는 이들이 새로운 아름다운 책 하나 선보이며 다 함께 기쁘게 어깨동무할 새로운 환경책 하나 빚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꿈을 꿉니다.


 (3) 아쉬우나마 곱새겨 읽기


 오늘날 도시 사회에서는 터무니없는 소리라 하지만, 냉장고 없이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세탁기 없이 얼마든지 깨끗하고 보송보송한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청소기가 있어야 할 만큼 지나치게 커다란 집에 살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는 자가용을 왜 몰고 있을까요.

 툭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냉장고며 세탁기며 전기밥솥이며 머리말리개며 텔레비전이며 전기를 아주 많이 먹습니다. 이런저런 녀석을 집에 들이지 않는다면 ‘원시인’이 되라는 소리냐고 따지는 분이 많은데, 그리 멀지 않은 1980년대까지 이런 전기제품을 집에 갖춘 사람은 그리 안 많았습니다. 1970년대에는 훨씬 적었고 1960년대에는 거의 어느 누구도 이런 전기제품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환경가계부》는 우리들한테 원시인이 되자고 말하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놓친 대목이 무엇인지 느끼자고 하는 책입니다. 우리가 깨닫고 느끼며 되새겨야 할 이야기가 무엇인가 생각하자고 하는 책입니다.

 비록 이 책을 여느 책방에서 만나기란 몹시 힘들지라도, 다문 몇 줄이나마 함께 읽고 곱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저한테 새롭게 가르치고 일깨우는 대목을 여러 차례 거듭 읽으며 한 글자 두 글자 천천히 옮겨적어 봅니다. (4343.5.5.물.ㅎㄲㅅㄱ)


[22, 47, 136∼137쪽] 아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소비했는가, 이것 또한 귀중한 데이터가 됩니다. 일본의 아기들이 아프리카 아기들보다 약 80배나 많은 에너지를 쓴다니 말입니다 … 전기밥솥 안의 남은 밥은 보통 보온 상태로 두는데 의외로 보온은 전기가 많이 듭니다. 6시간 보온할 경우 밥을 새로 한 번 짓는 만큼 전기를 소비합니다 식사 때마다 그때그때 지어먹는 밥이 맛도 좋고 경제적이며 친환경적입니다 … 아이들의 옷을 항상 바자회에서 사서 입힌다는 젊은 여성도 있습니다. 자신 역시 30엔에 산 티셔츠와 100엔에 산 청바지를 입고 발랄하게 유치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뿌리를 내린 지역에서 옷이나 일용잡화를 재활용하고 물건과 정보를 교환하는 사이에 언젠가는 전체 쓰레기의 양은 줄어들어 있을 것입니다.

[24, 44, 131, 132쪽] 절전은 처음부터 100퍼센트 완전하고 빈틈없이 실행되지 않습니다. 너무 꼼꼼히 하려다 보면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단 하나라도 좋으니 일 년 365일 계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에어컨보다 선풍기를 쓰면 전기사용량은 훨씬 더 줄어듭니다. 최근에 선풍기가 다시 잘 팔린다고 하더군요. 또 선풍기보다 부채를 쓰면 당연히 훨씬 더 절전이 됩니다 … 포장을 거절해서 오히려 좋은 소리도 듣고 이익을 가져올 뿐 아니라, 인력과 쓰레기를 줄이는 이점이 있습니다. “포장 필요 없어요.” “봉투 필요 없어요.” “책 안 싸 주셔도 됩니다.” 이런 단 한 마디로 말입니다. 이 말 한 마디를 하기 어려운 사람도 계십니까? … 포장용기를 받아 오지 않으면 쓰레기는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걸 처리하느라 수고를 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42∼43, 89쪽] 카탈로그를 면밀히 훑어보는 습관을 익히다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소비자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를 왜 이렇게 읽기 어려운 작은 글씨로 적어 놓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 겉모습과 가격만 선전하게 된 현실은 지금까지 소비자가 그것을 기준으로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일본 전국에서 계획되고 있는 댐이 모두 불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정말로 필요한 댐이 있을지 모릅니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므로 일반 주민이 판단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51, 53, 54쪽] 화력발전에서 전기가 되는 열은 40퍼센트 정도에 불과합니다. 60퍼센트의 열은 버려지고 있습니다. 또 원자력발전은 35퍼센트가 전기가 되고 65퍼센트를 버립니다 … 지금 가장 에너지 절약 노력을 하지 않고 전기 사용량은 날로 늘어가는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석유와 석탄을 쓰는 화력발전을 우리는 언제까지 의지해야 할까요. 또 먼 곳에 화력발전소를 세우고 길고 긴 송전선을 통해 생산한 전기를 버리는 것이 이치에 맞는 걸까요. 전기를 쓰는 생활을 당연히 여기는 우리들로서 지금까지 상상하지 않았던 것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전기가 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전기 없는 채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125∼126쪽] 유기 농산물을 재배하려면 쌓아 놓은 풀과 똥을 몇 번씩이나 뒤섞어 퇴비를 만들고 농약을 치지 않는 밭에서 잡초와 씨름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굉장히 힘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소비자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벌레 먹은 흔적이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벌레가 먹어도 아무런 독이 없다는 증거가 됩니다. 가게에 진열된 채소는 맛이나 질과 관계없이 그저 겉모습만으로 선택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에서 자란 채소는 크기가 큰 것도 있는가 하면 작은 것도 있고 똑바로 자란 것도 있고 구부러진 것도 있고 가지각색입니다. 크기나 형태로 선택을 하면, 선택되지 않는 것들은 버려지거나 아주 싼 값의 떨이로 팔립니다 … 식탁에 오르는 채소에서 소비자는 여러 가지를 보게 됩니다. 채소를 생산한 사람들의 얼굴들, 그 가족의 얼굴들, ‘그 사람이 먹고 있다’는 생각으로 생산자는 재배를 하고, ‘그 사람이 기른 것’이라는 생각으로 소비자는 채소를 먹습니다.

[139쪽] 인구가 집중되고 대량으로 소비하며 대량의 쓰레기를 발생시키는 대도시야말로 리사이클의 효과가 가장 크지만, 바로 그 대도시가 가장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인간관계’가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140쪽] 쇼핑한 물건은 언젠가는 모두 쓰레기가 됩니다.

[141쪽] 자연식품 위주로 식사를 하지 않는 몸은, 영양의 균형이 깨져서 생리적으로 욕구 불만이 되기 쉽습니다. 인스턴트 가공식품에 포함된 화학첨가물은 그러한 욕구불만과 초조함을 더해 줍니다.

[195쪽] 젊은 시절은 한 번 지나가고 마는 것이므로 너무 잔소리하지 말고 따뜻하게 대해 주세요. 아이들이 진학과 취직 때문에 집을 나가는 순간 전기요금이 반으로 줄어든 예도 있습니다. 혼자서 자취생활을 시작한 아들과 딸이 곧바로 에너지 절약, 자원 절약 도사가 되었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만들어 주는 요리의 가치를 깨닫고 ‘맛있다’를 연발합니다. 친구들과는 인스턴트 식품만 사먹고 저녁은 자주 걸러 왔다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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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마음


 잘난 사람이 쓴 잘난 책을 읽으면 잘난 마음이 어떤 모양새인가를 느낀다. 못난 사람이 쓴 못난 책을 읽으면 못난 마음으로 어줍잖게 우쭐거리는 얼굴이 어떤 빛인가를 느낀다. 고운 사람이 쓴 고운 책을 읽으면 고운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가를 느낀다. 착한 사람이 쓴 착한 책을 읽으면 내 낯이 붉어지기보다 내가 걸어갈 착한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느낀다. 큰소리치는 겉치레 사람이 쓴 큰소리에 물든 겉치레 책을 읽으면 이런 겉치레와 큰소리가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느낀다. 수수하고 투박하게 살아가며 수수하고 투박하게 엮은 책을 읽으면 내 삶이 어느 만큼 수수하거나 투박한가를 돌아보며 내가 가꿀 내 삶이 어떤 결일 때에 즐거울까 하고 곱새긴다.

 이름있는 아무개가 쓴 책이라 해서 더 잘나거나 더 못나지 않다. 이름없는 저무개가 쓴 책이라 해서 덜 떨어지거나 덜 여물지 않다. 이름있는 출판사 책보다는 뜻있는 출판사 책을 고를 때가 한결 아름답지만, 오늘날 사람들한테는 뜻있는 출판사가 품는 뜻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읽는 눈이 퍽 얕다. 스스로 뜻있게 살림을 꾸리지 않는다면 겉껍데기 뜻인지 속차림 뜻인지를 읽어내지 못한다. 나부터 뜻있게 살아가고 있어야 뜻있는 출판사에서 땀으로 일군 뜻있는 책을 알아보며 기쁘게 장만하지 않겠는가.

 언제나 그렇지만 내가 살아가는 결대로 사람을 만나고 동무를 사귀고 옆지기와 짝을 짓는다. 내가 살아가는 결대로 온누리를 살피고 책을 알아보며 고갱이를 받아먹는다. 내가 살아가는 결이 한껏 깊다면 한껏 깊은 책에 서린 넋을 읽는다. 내가 살아가는 결이 몹시 얕다면 몹시 얕은 책에 덧발라 놓은 사탕발림에 속아넘어간다.

 우리는 신영복 님 책을 읽을 노릇이 아니라 신영복 님 삶을 받아들일 노릇이다. 법정 스님 책을 찾아 읽으려고 아둥바둥거릴 노릇이 아니라 법정 스님 삶을 살펴 받아안을 노릇이다. 이 땅에는 신영복 님이나 법정 스님과 같은 아름다움이 있는 한편, 이분들처럼 이름이 높지 않으면서 거룩하고 훌륭하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답도록 조용히 살아가는 어르신들이 많다. 다만, 우리들은 이름을 스스로 낮추어 사람들 앞에 잘 뜨이지 않으면서 당신 둘레 삶자리를 아름다이 여미는 몸짓을 제대로 읽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조용한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찾자면 우리부터 조용하고 아름다이 살아야 하는데, 우리들은 조금도 조용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자가용 제발 버리라고 그토록 외친 권정생 할아버지인데, 권정생 할아버지를 찾아갈 때에 시외버스나 기차로 안동역에 내려서 걸어걸어 고개를 넘어간 이는 몇 사람이었을까. 당신하고 마음벗이었던 이오덕 할아버지를 빼고 꾸준하게 낮은걸음으로 찾아와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을 북돋운 사람은 누가 있을까. 자가용을 단단히 붙잡을 뿐 아니라 크고 빠르고 비싼 차에다가 아파트 열쇠까지 주렁주렁 매달면서 권정생 할아버지 책, 이를테면 《몽실 언니》이든 《하느님의 눈물》이든 《우리들의 하느님》이든 떠받든다 한들 무슨 쓸모가 있으랴. 덧없는 몸부림이고 돌아오지 않는 산울림이다.

 반 고흐 책을 읽으면 반 고흐가 되어야 할 노릇이다. 미우라 아야코 책을 읽으면 미우라 아야코가 되어야 할 노릇이다. 류영모를 읽으면 류영모가 되어야 할 노릇이다. 반 고흐와 미우라 아야코와 류영모를 지식조각으로 머리에 집어넣는다고 내 삶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신영복 님 책이든 법정 스님 책이든 그토록 많이 팔리고 많이 읽힌다 하지만 이 나라에 아름다운 사람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책을 읽는 마음이 처음부터 그릇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마음을 참되고 착하고 곱게 추스르지 않고, 너무 일찍 책을 장만해서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소쿠리 영감은 네 주제를 알라고 했다는데,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 가운데 당신들 주제를 알고 당신들 주제를 빛낼 길을 걸으며 책을 삼키는 사람은 더없이 드물다. 책을 읽으려면 가난해야 하고, 가난해지면 내 이웃이 보이며, 내 이웃이 보인 다음에는 내가 서 있는 터전과 자연을 알아챈다. (4343.5.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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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05-03 20:57   좋아요 0 | URL
찬찬한 글, 찬찬히 읽고 싶어 별찜하고 갑니다.

파란놀 2010-05-04 14:4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빨래하는 마음


 이 옷을 누가 입는가 헤아리며 손빨래를 한다. 이 옷을 입는 사람이 사는 터전은 어떠해야 좋을까 곱씹으며 비빔질을 한다. 빨래할 때뿐 아니라 밥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밥을 누가 먹는가 생각한다. 이 밥을 먹는 사람은 어떻게 기운을 얻으며 살아가면 좋은가 돌아본다. 내가 쓰는 글은 누가 읽으라고 쓰는 글인가를 되뇌어 본다. 내 어줍잖은 글 하나를 읽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무슨 일을 어떤 생각으로 펼쳐 나가면 좋은가를 가만히 톺아본다. 빨래하는 마음은 밥하는 마음이고, 밥하는 마음은 걸레질하는 마음이며, 걸레질하는 마음은 아이를 안고 동네마실을 하는 마음이요, 아기수레 아닌 어버이 품으로 아이를 보듬는 마음은 좋은 책 하나 찾아서 읽으려는 마음이다. 좋은 책 하나 찾아서 읽으려는 마음은 애써 글 한 줄 쓰려는 마음이고, 애써 글 한 줄 쓰려는 마음은 호미질 하는 마음이다. 호미질 하는 마음은 바느질 하는 마음이고, 바느질 하는 마음은 설거지를 하고 내 어버이 등과 허리를 부드러이 주무르는 마음이다. (4343.5.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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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야기 - 사진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
전민조 엮음 / 눈빛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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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꾸몄다고 다 책이 되지 않는다
 [다들 잘 모르는 사진책 1] 전민조 엮음, 《사진 이야기》(눈빛,2007)



 사진쟁이 전민조 님이 올 2010년 5월 19일부터 새로운 사진잔치를 엽니다. 이번 사진잔치는 〈담배 피우는 사연〉이라는 이름을 내겁니다. 나이가 들어 저절로 신문사 사진기자 일을 그만둔 뒤로 해마다 다른 사진감을 선보이며 사진잔치를 열고 있으신데, 여섯 해째 꾸준히 마련하는 새로운 사진잔치를 하나씩 들여다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놀랍고 반갑습니다. 전민조 님은 ‘새 사진감을 찾아 사진을 만드는’ 분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바쁜 틈을 쪼개어 ‘당신한테 가장 아름답고 좋을 사진을 찍어서 갈무리한’ 끝에 이렇게 해마다 당신 사진곳간에서 알찬 보배를 하나씩 꺼내어 우리들한테 선물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진쟁이들은 ‘무언가 톡톡 튀거나 남다르거나 뜻깊을 사진감’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괜찮다 싶은 사진감이 나오면 몇 해에 걸쳐 신나게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고는 사진잔치를 한 번 열거나 사진책을 하나 내놓고는 이 사진감 또한 슬며시 내려놓습니다. 꾸준히 이어가며 당신 마음밭을 일구는 사진찍기가 아니라 ‘작품 만들기’에 지나지 않는 사진찍기입니다.

 전민조 님은 지난 2007년에 엮은 책 《사진 이야기》에서 “셔터만 누른다고 모두 작품사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는 정직하다. 벽에 걸어 놓기 좋은 아름다운 사진만 찾는 사람들, 또 그런 사진만 찍는 사람들이 많으면 사진의 발전은 어둡다(머리말).”고 이야기합니다. 사진기 단추를 누른다고 모두 사진이 되지 않으나,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모두 사진이 됩니다. 찍은 사진을 그러모아 책을 묶는다고 모두 사진책이라 할 수 없으나, 찍은 사진을 그러모으면 모두 사진책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쏟아 아끼는 사이가 모두 사랑하는 사이라 할 수 없으나, 마음을 쏟아 아끼는 사이란 모두 사랑하는 사이일 때하고 매한가지인데, 이 대목을 곱다시 헤아리는 사진쟁이는 퍽 드뭅니다. 전민조 님이 “카메라는 정직하다”고 읊은 이야기를 속깊이 읽어내는 사진쟁이란 몇 안 됩니다. 사진을 찍는다고 모두 사진쟁이는 아니나 사진을 찍으니 모두 사진쟁이요, 사진기는 있는 그대로 우리 삶을 종이에 담아내기는 하나 사진기는 있는 그대로 우리 삶을 종이에 담아내지 않기도 한데, 이를 우리들 가운데 몇몇이나 곱씹고 있으려나요.

 《사진 이야기》라는 사진책은 사진일을 하거나 사진밭에 몸담은 사람들이 쓴 글에서 ‘사진을 읽는’ 고갱이가 되는 넋을 담은 글을 간추려서 묶었습니다. 1994년에 중앙일보 사진기자였던 오동명 님은 대낮에 술에 절어 있는 전두환 씨를 사진으로 찍던 일을 되돌아보며, 전두환 씨가 당신을 바라보며 “필름 아껴 쓰라우” 하고 큰소리를 쳤다는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남겨 놓습니다. 월간조선에서 사진팀장을 하던 이오봉 님은 당신 후배들한테 “취재현장에서 예의를 갖춘 사진기자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전몽각 님은 “아이들은 우리 부부에게 자랑이요, 기쁨이었다”고 말하면서 당신 아이를 사진으로 담은 까닭을 밝히고, 구와바라 시세이 님은 “만일 한국이 남태평양의 산호초로 둘러싸인 평화로운 섬나라였다면 굳이 내가 취재하고자 마음먹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얼마 앞서 《황천의 개》라는 사진책이 옮겨진 후지와라 신야 님 1993년판 《인도방랑》이라는 사진책에는 “보잘것없는 여행을 하고 있을 때는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말마디가 적혀 있고, 1926년에 태어나 1967년에 《포토그라피》라는 잡지에 글을 쓴 조중 님은 “사진이 예술이냐 하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왜 찍었느냐에 따라 분간될 성질의 것이며, 한 장의 사진이 예술사진이냐 하는 것은 그 사진에 담겨 있는 내용이 문제될 것이다” 하는 생각을 펼칩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꾸리며 다 다른 사진을 찍는 한편 다 다르게 사진을 바라봅니다. 《사진 이야기》라는 책에서는 백 사람이면 백 가지 사진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보여주고, 백 사람으로 백 가지뿐 아니라 즈믄 가지 이야기를 엮을 수 있음을 일깨웁니다. 사람에 따라 다른 삶이니 사람에 따라 다른 사진이거든요. 사람에 따라 다른 눈길이니 사람에 따라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리하여,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모양으로 사진뿐 아니라 글이나 그림을 일굽니다. 다 다른 이야기가 다 다른 아름다움과 눈물웃음을 자아내면서 다 다른 문화나 예술로 자리매깁니다.

 다 다른 자리에 있으면서 다 다른 내 목숨이요 넋임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어슷비슷하거나 그냥저냥 ‘벽에 걸어 둘 만한’ 작품만 태어납니다. 이래저래 ‘꽤 볼 만한 사진책’이 태어나거나 ‘세계 사진 역사’에 이름 하나 걸칠 작품이 나타날 뿐입니다. 그렇지만 정작 아름다운 사진이 되지는 않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진이란 참으로 아름다운 삶에서 비롯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란 참으로 아름다운 넋을 보듬는 가운데 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이란 사진기 단추를 누르며 일구는 문화이며 예술입니다. 글이란 연필을 들어 일구는 문화이며 예술입니다. 그림이란 붓을 들어 일구는 문화이며 예술입니다. 그러니까, 살림이란 걸레 칼 도마 비누 따위를 들어 일구는 문화이며 예술이겠지요. 아이 하나란 어버이 손길과 마음길로 보듬으며 일구는 고운 목숨이면서 스스로 문화이며 예술일 테지요. 자연이란 풀과 나무와 짐승들이 골고루 어우러지면서 스스로 이루는 문화이며 예술이고요.

 사진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바로 우리 살림과 우리 목숨과 우리 자연을 어루만지는 가운데 샘솟는 문화이자 예술입니다. 《사진 이야기》는 우리들 누구나 다 알고 있으나 제대로 알려 하지 않는 대목을 건드리는 작은 사진책입니다. (4343.4.30.쇠.ㅎㄲㅅㄱ)


― 사진 이야기 (전민조 엮음,눈빛 펴냄,2007.8.20 /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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