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와 책읽기


 애 아빠 혼자 서울로 볼일을 보러 가던 어느 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시골버스 타는 데까지 헐레벌떡 달려간다. 때 맞추어 겨우 시골버스를 잡아탔고, 면에 있는 시외버스 타는 데에 닿아 서울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겨울을 앞두었으나 따사롭게 햇살이 내리쬔다. 논둑길을 달리느라 흠뻑 젖은 등판은 아직 마르지 않는다. 버스에 탄다. 햇살이 잘 비치는 자리에 앉는다. 여느 날 시골에서 시외버스를 타면 거의 다 빈자리. 시골에는 사람이 참 적다.

 햇살을 마음껏 느끼며 버스에서 책을 읽는다. 여름에는 이 창문을 열며 햇살을 더 듬뿍 받아들이고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름날 시외버스에서는 에어컨 바람만 쐬어야 한다. 시골버스에서도 들판이나 멧등성이를 타는 바람이 아닌 에어컨 바람을 쐬어야 하기 일쑤이고.

 한참 신나게 책을 읽는다. 아이랑 복닥이지 않으며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호젓한가. 이 얼마나 한갓진가. 새삼스레 홀가분하다고 느끼면서, 집에서 아이랑 홀로 복닥일 애 엄마가 걱정스럽다. 어린이들이란 얼마나 기운이 넘치는가. 엄마랑 아빠 둘이 애 하나 보듬기에 벅차다. 아이한테 동생이나 언니가 많다면 그럭저럭 수월하려나. 서로서로 함께 놀 테니까. 빨랫감은 잔뜩 나올 테고, 밥거리 장만하자면 죽어날 테지만, 다른 때에는 좀 느긋하려나.

 시외버스가 서울하고 가까워질수록 속이 메스껍다. 이제는 시외버스를 타고 삼십 분쯤 지나면 메스껍고 더부룩하며 고단하다. 머리가 핑핑 돈다. 책을 덮고 한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숨을 고른다. 딱히 나아지지 않는다.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책을 가방에 넣는다. 머리끈을 풀고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댄다. 눈을 감고 잠을 부른다. 흔들흔들 시외버스는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하고 누가 더 빨리 달리나 내기를 한다. 잠은 들지 못하고, 속은 더 메스꺼우며, 머리는 더욱 핑핑 돈다. 처음 버스를 타는 십 분이나 이십 분 동안 겨우 책을 읽을 수 있는가. (4343.11.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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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감는 마음


 아침에 빨래를 할 때에 머리를 감는다. 겨울이니 따순 물이 나오도록 튼 다음, 찬물이 나오는 동안 머리를 감는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다가 아침을 맞이했으면 이대로 잠이 들지 않기를 바라며 찬물로 머리를 감고, 아침에 조금 눈을 붙인 다음 일어나서 빨래를 할 때에는 얼른 잠이 깨라며 찬물로 머리를 감는다.

 아이 머리를 감길 때에 지난달 즈음부터 아이를 세운 채 감길 수 있다. 아이가 머리를 푹 숙이도록 하며 머리를 감기면 애 아빠로서는 몹시 수월하다. 그러나 아이는 이런 머리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애 아빠가 쪼그려앉은 다음 허벅지에 아이를 살며시 눕힌 다음 아이 고개를 왼손으로 잘 받치면서 감겨야 좋아한다. 아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따땃한 물이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려가는 느낌을 맛보지 않나 싶다. 눈을 지그시 감은 아이 머리에 물을 끼얹고 비누를 살짝 발라 비비면서 이마에 쪽 뽀뽀를 한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일은 거의 떠오르지 않으나, 어머니가 나를 이렇게 허벅지에 눕힌 채 머리를 감겼던 일은 떠오른다. 지난날 내 어머니는 내 머리를 감겼고, 이제 나는 내 아이 머리를 감긴다. (4343.11.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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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의 사진엽서를 통해 본 시선의 권력과 조선의 이미지
권혁희 지음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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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에 박힌 채 문화읽기
 [책읽기 삶읽기 26] 권혁희,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의 사진엽서를 통해 본 시선의 권력과 조선의 이미지’라는 이름이 붙은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라는 책을 읽는다. 겉에 적힌 이 글월 한 줄은 284쪽에 이르는 내내 되풀이된다. 사진엽서를 처음 만든 유럽사람들은 언제나 제국주의 눈길에 따라 엽서에 사진을 넣었고, 이 엽서는 제국주의 나라에서 끝없이 교재로 쓰이면서 식민지로 짓눌린 나라들이 얼마나 덜 떨어지거나 엉성했는가를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 서구인들은 카메라로 식민지의 지형과 원주민들의 인종, 풍속 등을 기록해 갔으며 그것을 통치 자료로 활용했다 ..  (35∼36쪽)


 생각해 보면, 19세기 끝무렵과 20세기 첫무렵 사진엽서에 나타나는 모습만 ‘식민지 지형’과 ‘원주민 풍속’을 적바림하지 않는다. 20세기 끝무렵과 21세기 첫무렵 사진이나 사진책이나 사진잡지에도 온통 ‘우리네 삶터 모습’과 ‘우리 겨레 문화’를 적바림한다. 지난날에는 제국주의 눈길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상업주의나 자본주의 눈길이라 할 테지. 남들이 우리 겨레를 사진으로 담든 우리가 내 손으로 이 겨레를 담든, 누구나 ‘문화’를 사진으로 옮기기 마련이다.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를 쓴 권혁희 님은 책을 마무리하면서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식민지 시기에 생산되었던 이미지들과 그 이후의 시각 문화가 가진 연관성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274쪽).”고 밝힌다. 글쓴이는 사진이란 무엇이고 사진으로 담아서 나누는 매체(엽서이든 책이든 잡지이든 무엇이든)란 무엇이며, 사진과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옳게 살피지 못했다. 아니, 처음부터 사진이란 무엇인지 살피지 않았을 뿐더러, 사진을 담은 매체가 어떠한 빛깔이요 어떤 이야기를 담는지 돌아보지 않았다. 이 같은 눈길이라면 《ELLE》나 《VOGUE》 같은 잡지를 보면서 무슨 이야기를 쏟아내려나. 이런 잡지에 나오는 여자 모델은 어떤 사람인가. 이런 잡지에 나오는 사람들 삶은 오늘날 이 땅에서 어떤 계층 어느 자리 문화를 보여준다고 할 만한가.

 식민지 조선 여성이 ‘일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두고 ‘전근대적’이라느니 ‘열학한 사회적 지위’라느니 이야기하는데, 오늘날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살림살이를 담은 사진이나 오늘날 돈이 넘치게 살아가는 사람들 살림살이를 담은 사진을 바라볼 때에는 무슨 이야기가 터져나오려나 궁금하다 못해 아찔하다.


.. 이렇게 여성이 옷감을 짜거나 곡식을 찧는 모습은 식민지 여성의 전근대적이고 열악한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표상으로서 여러 매체에서 재현되었던 것들이다  ..  (42쪽)


 지난날,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에 옷감을 짜거나 곡식을 찧는 모습은 조금도 ‘전근대적’일 수 없다. 더구나 ‘열악한 사회적 지위’일 수조차 없다. 누구나 옷감을 짜고 곡식을 찧는다. 누구나 농사를 짓는다. 누구나 길쌈을 하고 물레를 잣고 실을 뽑으며 바느질을 한다. 누구나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장작을 팬다. 누구나 아이를 업고 아이한테 젖을 물린다. 누구나 물동이를 이고 누구나 지게를 멘다. 아이한테는 아이 몸에 맞는 지게를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준다. 어른은 어른한테 맞는 지게를 어른이 손수 만들어 쓴다. 지난날 이 나라 사람들을 돌아본다면, 몇몇 권력자하고 돈과 힘 있는 사람 빼고는 ‘가난하면서 수수하게 어깨 맞닿으며’ 살아가던 여느 사람이라 할 만하다. 이들 여느 사람들 삶이 어떠한가를 구경꾼 눈길이 아니라 살림꾼 눈길로 읽어야 한다. 2000년대 학자 눈길이 아닌 2000년대 여느 살림꾼 눈길로 살피고, 내 어머니와 아버지, 또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낳아 기르던 어머니와 아버지 들이 1900년대에 어떤 살림 어떤 삶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는가를 톺아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하루하루 꾸리는 삶을 옳게 바라보지 못할 때에는 1900년대이든 1800년대이든 2000년대이든, 이런 때 저런 때 사람들 살림살이라든지 삶이라든지 문화라든지 잘못 읽을밖에 없다. 잘못 읽기만 한다면 그나마 낫지만, 뒤틀린 이야기를 뽑아내어 퍼뜨리기까지 한다. 《여성조선》이나 《여성동아》를 여느 아줌마들이 많이 읽는다고 하지만, 여느 아줌마들 삶이 《여성조선》이나 《여성동아》에 차근차근 실린다고 할 만하겠는가. 2100년이나 2200년을 살아가는 뒷날 학자들이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를 내놓은 학자하고 똑같은 눈길로 바라본다면, 먼 뒷날 사람들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2010년 이 하루를 《여성조선》이나 《여성동아》 같은 ‘여성잡지’를 들먹이면서 얼마나 비틀리거나 비비 꼬인 채 바라보는 셈이 될까 두렵다.

 사진을 읽든 그림을 읽든 ‘이 사람이 찍은 이 사진은 이런 생각에 젖어 이런 이야기를 쏟아내려고만 할 뿐이야’ 하는 눈길로 읽으면 너무 부질없다. 못난 마음으로 찍은 사진이라면, 사진쟁이가 얼마나 못난 마음인가를 한 줄로 밝히면 넉넉하다. 첫 한 줄은 이런 슬픈 모습을 밝히고, 다음 줄부터는 ‘못난 마음으로 얄궂게 찍은 사진’인데, 이 사진 하나를 돌아보며 오늘날 우리들로서는 새롭거나 새삼스럽거나 남달리 살필 만한 우리 발자취를 엿보는 ‘내 이야기’를 일굴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읽기는 틀에 박힌 생각으로 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삶읽기는 판에 박힌 넋으로 해서는 뒤틀리고 만다. 사진읽기나 그림읽기나 책읽기일 때에도 매한가지이다. 한국사람이 “아름다운 한국”이나 “한겨레 전통”을 사진으로 이야기한다 할 때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 한국사람 스스로 보여주는 모습이 ‘식민지 다스리던 일본 제국주의자’ 눈길에 사로잡힌 채 벗어나지 못하기에 “아름다운 한국”을 그지없이 틀에 박히게 보여주는가. 사진을 찍는 사람뿐 아니라 사진을 읽는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를 내놓은 글쓴이부터 틀에 박힌 사람이 아닌가 궁금하다.


.. 최근까지도 생산되고 있는 ‘한국의 미’나 ‘한국의 전통’ 등의 이미지 가운데 상당수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식민지 시기에 생산된 ‘조선 풍속’ 유의 이미지와 상당히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현재 관광지 기념품점에서 팔리고 있는 사진엽서들을 살펴보면, 일제 시기 조선의 풍속으로 소개되었던 사진엽서 속에서와 같이 여성들은 대개 어린아이를 업고 있거나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 혹은 개천에서 빨래를 하거나 다듬이질이나 물레질 등 가사노동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출연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향토적 정서의 이미지로 복제되고 있다 ..  (264쪽)


 일하는 사람이 있고, 노는 사람이 있다. 고단하게 일하는 사람이 있고, 나긋나긋 노는 사람이 있다. 이쁘장하게 차려입고 길을 걷는 아가씨가 있을 테며, 주름살 깊이 패인 채 길바닥에서 장사를 하는 할머니가 있겠지. 부산시립박물관과 서울시 문화재과 학예연구사로 일한 글쓴이는 《HUMAN》(최민식 사진) 같은 사진책을 어떻게 이야기하려나. 《Unfinished Portrait》(오형근 사진) 같은 사진책은 또 어떻게 말하려나.

 학자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다. 학문이란 좁은 우물에 풍덩 뛰어들어 좁은 자료를 좁은 눈길로 바라보는 일이 아니다. 학문이란 너른 바다를 너른 품으로 받아안으며 너른 눈길로 톺아보는 일이다. 너른 사람들 너른 삶을 너른 가슴으로 어루만질 수 있을 때에 비로소 학문이 꽃을 피운다. 여느 사람들로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몹시 드물며 소담스러운 사진엽서를 수없이 만지작거린 학자 한 사람이 내놓은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는 누가 어떤 마음으로 읽어 어떻게 살아가도록 돕는 이야기책이라 할 만한지 글쓴이한테 되묻고 싶다. 여느 한국사람은 틀림없이 식민지 때에 피해자였으면서, 식민지 때를 꿋꿋하고 야무지게 살아낸 살림꾼이다. (4343.11.19.쇠.ㅎㄲㅅㄱ)


―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권혁희 글,민음사 펴냄,2005.5.25./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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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Human) 14 최민식 사진집 휴먼(Human) 14
최민식 지음 / 눈빛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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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사진도 아름답다
 [찾아 읽는 사진책 8] 최민식, 《HUMAN·14》(눈빛,2010)



 쉰두 해째 사진 한길을 걷는 최민식 님 새 사진책 《HUMAN·14》을 장만해서 읽습니다. 쉰두 해에 걸쳐 사진 한길을 걷기란 만만하지 않을 뿐더러 수월하지 않습니다. 쉰두 해 내내 사진 한길을 걸어온 발자국이란 얼마나 길디길으며 굵디굵을까요.

 잠자리에서 사진책을 펼칩니다. 이불을 무릎에 덮고 옆에 나란히 앉은 아이가 흘끔 사진책을 돌아봅니다. 사진책에 ‘어린이’ 모습 담은 사진이 나오니 가까이 다가오며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아이는 이내 책을 뺏아 듭니다. 조그마한 손으로 제법 큰 책을 휘릭휘릭 넘깁니다. 아이한테 언니나 동무나 동생 되는 모습이 나오면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를 아이가 아는 대로 말합니다.

 아이가 여러 번 보고 나서 사진책을 받아듭니다.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넘깁니다. 첫머리 즈음 2010년 부산 골목동네를 담은 사진이 새삼스럽습니다. 2010년이라는 숫자를 옆에 달아 놓았으니 2010년 모습인지 알 만할 뿐, 숫자를 달아 놓지 않는다면 1957년으로 볼 수 있고, 1977년이나 1967년이나 1987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빛살을 잘 살렸고 빛느낌이 고이 내려앉은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이 사진들을 흑백으로 곱게 여민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한편, 이 사진들에 빛깔을 넣으면 어떠한 아름다움일까 궁금합니다. 1957년이나 1967년이나 1977년에는 빛깔 담은 사진을 찍기 어려웠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1987년이나 1997년이나 2007년이라면, 또 2010년이라면 빛깔 넣은 사진을 일구어 볼 만하겠지요. 또한, 2010년 오늘 빛깔 넣은 사진으로 담고, 다가올 2020년과 2030년에도 빛깔 있는 사진으로 담는다면 어떠한 멋과 맛일는지 궁금합니다. 흑백으로 담은 2010년 부산 골목동네 모습은 ‘흑백이라는 빛느낌’하고 맞물리며 마치 2010년이 아니라는 느낌이요, 지난 쉰두 해에 걸쳐 언제나 똑같은 삶터라는 느낌입니다.


.. 다큐멘터리 사진은 인간의 삶을 포착하는 작업이며, 대중에게 진정한 삶의 경험을 전달합니다. 저는 사진에서 인간적인 접근과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오랜 사진작업을 통해 배웠습니다. 사진은 제게 ‘삶이 무엇이냐’는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함과 동시에 인생 전체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  (머리말)


 사진쟁이 최민식 님은 지난 쉰두 해에 걸쳐 다 다른 사람들을 다 다른 삶자리에서 다 다른 모습으로 담아 왔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삶은 다 다른 사진마다 돋보입니다. 그러나 사진에 담긴 사람들은 다 다르지만, 다 다른 사람을 찍은 최민식 님은 늘 같은 마음과 매무새입니다. ‘삶이 무엇이냐’와 ‘사람은 무엇이냐’를 생각하는 최민식 님 마음과 매무새를 고스란히 담은 《HUMAN·14》입니다. 《HUMAN·14》뿐 아니라 《HUMAN·1》도 최민식 님 마음과 매무새를 고스란히 담습니다. 《HUMAN·1》 이야기는 《HUMAN·14》 이야기하고 맞물립니다. 《HUMAN·14》 모양새는 《HUMAN·14》에서도 곱게 이어집니다. 《HUMAN·1》을 이루는 넋은 《HUMAN·14》를 이루는 넋하고 같습니다.

 한결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한결같은 눈매로 바라보아 사진으로 옮깁니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한결같이 살고, 가난하면서도 사랑스러우며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난하면서도 사랑스러우며 즐거운 모습대로 한결같이 사진으로 옮깁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이란 최민식 님 말마따나 “사람 삶을 잡아채어 담아 놓는 사진”입니다. “살가이 다가서며 따사롭게 껴안는 사진”일 때에 비로소 다큐멘터리 사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 하나로 사람들한테 따스함과 아름다움과 슬픔과 고마움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들려줍니다.

 그런데, 가난하면서 가난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한테는 다큐멘터리 사진이란 부질없습니다. 가멸찬 살림이면서 가멸찬 살림을 넉넉히 나누지 못하는 사람한테도 다큐멘터리 사진이란 덧없습니다. 스스로 사람다이 살아가는 사람한테 바야흐로 따사로우며 너그러이 스며드는 다큐멘터리 사진입니다. 내 삶을 단단히 붙잡거나 여미는 사진쟁이들이 붙잡는 다큐멘터리 사진이면서, 내 삶을 튼튼히 가다듬거나 다스리는 살림꾼들이 즐기는 다큐멘터리 사진입니다. 여느 대중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 제 삶은 이 사진 컬렉션을 통해 재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저의 열정, 사상, 우리 삶의 비판적인 관찰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사진은 농사를 짓는 것과 유사합니다. 새싹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돋아나지 않듯이 사진도 갑작스레 창조되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가 땀과 고된 노동 끝에 낟알을 수확하듯이 사진도 사진가의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머리말)


 최민식 님은 ‘사람들 얼굴을 담은 사진’으로, 이 얼굴마다 깃든 다 다른 삶결을 보여줍니다. ‘사람들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이 모습에 밴 다 다른 삶무늬를 알려줍니다. 어디 먼 나라 사람들 얼굴이 아닙니다. 어느 딴 나라 사람들 모습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최민식 님하고 이웃하는 사람들 삶이 드러나는 얼굴입니다. 사진기를 쥔 최민식 님 둘레에서 올망졸망 부대끼는 사람들 몸짓이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최민식 님은 스스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다고 말씀하지만, 깊이 따지고 보면 최민식 님 사진은 딱히 다큐멘터리 사진이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사진’이라 하면 되고, 사진 하나로 ‘삶읽기’를 한다고 말하면 됩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내 이웃 삶 모습에서 느끼고, 내가 살아낸 자국이 배인 얼굴 모습을 내 이웃 얼굴 모습에서 깨닫는 셈이니까요.

 다큐멘터리 사진이기에 더 대단하거나 훌륭하거나 놀랍거나 좋거나 거룩한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이기 때문에 더 빼어나거나 아름답거나 멋지거나 괜찮은 문화나 예술이 아닙니다. 사진은 사진 그대로 좋고, 삶은 삶 그대로 즐겁습니다. 가난하다고 더 나은 삶이 아니요, 가멸차다고 더 못난 삶이 아닙니다. 사진 하나 즐기는 마음하고 농사짓기 즐기는 마음은 곱게 맞닿습니다. 사진 하나 나누는 마음하고 곡식 한 알 나누는 마음은 살뜰히 이어집니다.

 새싹은 어디에서나 스스로 돋습니다. 사진 또한 누구나 스스로 얻습니다. 풀싹은 어느 곳에서나 스스로 뿌리를 내립니다. 사진쟁이 또한 누구나 스스로 깨우쳐서 사진밭을 이룩합니다.

 농사꾼이 논밭에서 씨앗을 심거나 뿌려 곡식을 일구기도 하지만, 갖은 풀과 나무는 처음부터 스스로 씨앗을 내어 흙으로 녹아듭니다. 이 씨앗은 스스로 온힘을 내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줄기를 올리려고 애씁니다. 사진쟁이들 누구나 사진을 누구한테서 배운다 할 수 있지만, 누가 가르쳐 준대서 깨닫거나 깨우치는 사진이 아닙니다. 스스로 온힘을 짜내어 뿌리를 내리려 할 때에 오랜 나날에 걸쳐 차츰차츰 이룩하는 사진이에요.

 최민식 님은 최민식 님이 살아온 대로 사람들과 사귀며 사진을 찍습니다. 최민식 님은 최민식 님이 살아가는 대로 사진밭을 일구면서 사진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삶 이야기가 사진 이야기로 마무리되고, 삶 무늬가 사진 무늬로 아로새겨집니다. 최민식 님이 사진으로 담은 사람들 얼굴이나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으면, 최민식 님이 하루하루 꾸리는 삶이 아름답다고 느낄 만하다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HUMAN·14》을 읽으며 어느 모로 보면 아쉽다 할 만한 사진이 있을 때에는 최민식 님 삶 한자락이 어느 모로 보면 아쉽다 할 만하다는 소리라고 봅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는 분들이 흑백사진을 즐기는 까닭은 여럿일 텐데, 흑백사진으로 삶을 담을 때에는 눈길이 흩어지지 않습니다. 이 구석 저 구석 찬찬히 차분히 바라보도록 이끕니다. 빛깔사진을 찍을 때에는 더욱 마음을 쏟지 않으면 눈길이 이리저리 흩어집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나 사진을 보는 사람이나 속알을 살피지 못하고 맙니다. 그러나, 흑백사진이든 빛깔사진이든 때와 곳과 날씨와 철과 삶에 알맞게 다룰 수 있다면, 어느 사진으로 다큐멘터리를 엮든 사람 살아가는 내음을 아리땁게 엮어 냅니다. 빛깔사진이기 때문에 1957년과 1977년과 1997년이 서로 다른 삶자락을 읽도록 이끌지는 않습니다. 흑백사진으로도 얼마든지 다 다른 나날을 읽도록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스스로 이 사진은 언제 적 누구 이야기를 풀어낸 사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때에는 사진 한 장으로 삶과 나날과 누리와 넋을 읽도록 이끕니다.

 흑백사진도 아름답고, 빛깔사진도 아름답습니다. 다만,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는 분 가운데에는 빛깔사진 또한 아름다운 다큐멘터리 사진임을 보여주는 분은 좀처럼 태어나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빛깔 다큐멘터리 사진으로는 도무지 다가서지 못합니다. 삶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진을 하는 분 가운데 흑백사진으로도 아름답겠지만 빛깔사진으로도 아름다운 삶을 나누어 주는 분은 무척 드뭅니다. 빛깔 있는 삶을 빛깔 있는 이야기에 따라 빛깔 있는 사진으로 일구기란 너무 힘든 노릇인지 모릅니다.

 이이한테는 이 빛깔이 있고, 저이한테는 저 빛깔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삶을 사진으로 영글어 놓고자 할 때에는 빛깔사진을 함께 찍을밖에 없습니다. 삶 사진을 일구려 하면서 흑백사진으로만 이야기를 엮는다면 사진 한 장에는 내 이야기 한 자락만 깊이 배어듭니다. 최민식 님 목소리를 듣는 《HUMAN·14》도 즐겁지만, 《HUMAN·14》에 담긴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목소리도 조곤조곤 즐겁게 듣고 싶습니다. (4343.11.18.나무.ㅎㄲㅅㄱ)


― HUMAN·14 (최민식 사진,눈빛 펴냄,2010.10.27./4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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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햇살 곱다시 받는 골목집. 안쪽으로 돌담이 보입니다.

 - 2010.11.16. 제주시 이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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