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 책을 읽는다


 다가오는 주말에 옆지기 아버님이랑 어머님이 충주 산골집으로 찾아오시기로 했다. 아이가 날마다 어지르는 집꼴이라 하지만, 아이 아빠가 책을 여기저기 늘어놓으며 어지르는 집꼴이기도 하다. 나부터 집을 치워 놓아야 한다. 오늘은 그림책 한 덩어리를 걸레로 먼지를 닦아내어 비로소 치운다. 지난주에 제주마실을 하며 사들인 그림책 가운데 2/3쯤 되는 큰 덩어리이다. 아직 1/3을 더 닦아야 한다. 저녁 열 시 조금 넘어 잠들었다가 새벽 두 시에 깬다. 아이가 기저귀에 오줌을 누고 나서 끙끙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벌떡 깨어 기저귀를 갈았다. 다시 자리에 누우려 하다가 일어선다. 문을 열고 멧기슭으로 나와 도랑에 쉬를 눈다. 보름달이 무척 밝다. 보름달이 무척 밝아 마당이 아주 환한데, 이렇게 밝은 달빛인데에도 별이 꽤 많이 보인다. 그렇구나. 보름달에도 시골에서는 뭇별을 올려다볼 수 있구나.

 다시 자리에 누울까 말까 망설이다가 벽을 갉는 쥐 소리를 듣는다. 엊그제 쥐를 네 마리 잡았는데 또 새로운 쥐가 기어들었나. 참말 끔찍하구나. 너희들은 왜 이렇게 사람 사는 집으로 들어오려고 하니. 흙땅에 굴을 파며 따스히 지내면 되잖니.

 쥐가 벽을 갉는 자리를 툭툭 두들긴다. 꿈쩍을 않고 자꾸 갉는다. 히유 한숨을 쉬며 머리를 벽에 기댄다. 이내 갉는 소리가 뚝 끊긴다. 응? 뭐니? 한참을 그대로 있는다. 쥐 소리가 사라진다. 뭘까? 한참을 더 이렇게 있으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벽을 아무리 두들긴들 쥐한테는 조금도 무서울 노릇이 없다. 두들긴다고 내가 이 벽을 뚫을 수 없으며, 이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그러나 벽에 머리를 기대어 숨소리를 낸다면, 이 쥐로서는 벽을 갉아 구멍을 내어 뾰롱 하고 튀어나오고 싶어도 바로 코앞에서 무시무시한 사람이 저(쥐)를 잡으려고 눈을 부라리고 있다고 여기며 얼른 내뺄 노릇일 수 있겠다 싶다. 그러나 이는 오로지 내 바보스러운 생각이다.

 큰방 등불을 켠다. 조그마한 불을 켠다. 지난주 제주마실을 하며 샀던 책 가운데 1/10쯤을 책상맡에 꺼내어 놓는다. 하나하나 넘기면서 생각에 잠긴다. 차근차근 읽는다. 새벽 두 시 남짓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새벽 다섯 시 오십 분. 어느새 새벽을 꼴딱 새운 꼴이다. 이러다가 잠자리에 들면 아침 여덟아홉 시까지 곯아떨어진 채 못 일어나지는 않을까 근심스럽다. 애 아빠 주제에 또 바보스러운 짓을 했다. 이러면 아침에 아이가 깨어나서 얼마나 힘들거나 심심해 하겠는가. 애 엄마는 또 얼마나 고되겠는가.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덜 읽고,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떠올린다. 새벽내 다시 들추었던 〈공씨책방〉 공진석 님 책 《옛책, 그 언저리에서》를 곱씹는다. 쉰 나이에 안타깝게 숨을 거둔 공진석 님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여느 헌책방 일꾼이라면 다 어슷비슷한데, 쉰 줄 나이는 ‘한창 일할 때’라고 여겨 버릇한다. 아무리 많은 책짐이라 하더라도 거뜬히 들어 나를 만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공진석 님은 당신 몸이 아주 튼튼하다고, 또는 꽤 씩씩하다고 보다가 그만 어느 결에 고꾸라지지는 않았을까. 가끔은 느긋하게 몸을 눕히기도 하고, 때로는 택시도 타고 다른 사람 자가용도 가볍게 얻어타면서 몸을 쉬기도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남 얘기라기보다 내 얘기로 되씹는다. 나부터 글을 쓴다느니 책을 읽는다느니 하면서 새벽을 지새우다가는 서른여섯밖에 안 되는 이 나이에 골로 갈 수 있다. 할 일이 많다고 하더라도 몸을 눕혀야 한다. 밥벌이가 걱정되어 이 일 저 일 붙잡으며 잘 팔리지 않는 글을 끄적이거나 책을 엮는다며 글을 갈무리하는 일도 좀 쉬어야 한다. 그래, 내가 내놓는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면 뭐 하러 그렇게 아득바득 용을 쓰면서 책 하나 더 내놓으려고, 글 한 줄 더 쓰려고 하는가. 잘 팔린다 한들 이를 악물면서 글을 쓰거나 책을 낼 까닭이란 없다. 내 밥그릇만큼 살아가자. 내 밥그릇만큼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살자. 나중이 아닌 오늘을 생각하자. 나중에 뜻을 이루거나 꿈을 꽃피운다는 생각이 아니라, 오늘 내 살붙이를 헤아리고, 머잖아 태어날 새 목숨붙이를 살피자. 나 혼자 나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두 식구뿐 아니라 세 식구를 고달프게 한다면, 내가 좋아한다는 내 일이란 무슨 보람이 있는가. (4343.11.2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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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글쓰기 2


 아름다운 문학을 읽을 때면 으레 나 또한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 아니, 아름다운 문학을 읽었기 때문에 내 어줍잖은 글에 아름다운 결 하나 살포시 내려앉는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결은 이내 사그라든다. 내 삶이 온통 아름다운 빛깔로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야 내 손으로 아름답다 느낄 글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문학을 빚은 사람은 당신 삶을 온통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웠을 뿐 아니라, 언제나 아름다운 삶으로 하루하루를 알뜰히 일구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삶일 때에 아름다운 문학을 온사랑 쏟으며 일구는데, 이 아름다운 문학을 몇 가지 읽었다고 내가 섣불리 아름답다 싶은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다만, 아름다운 문학을 읽은 뒤끝이 남아 한두 줄 엉성하게 끄적이며 멋을 낼 뿐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문학을 읽고 난 뒤에는 이런 엉성한 멋내기를 해 보아도 즐겁다. 아름다움이란 참 아름다운 선물을 베푼다. (4343.11.2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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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1.20.
 : 달리는 자동차는 빠르기를 늦추지 않는다



- 토요일 무극 장날에 맞추어 읍내 마실을 다녀오기로 한다. 이른겨울을 눈앞에 두었기에 한낮에 길을 떠나 일찍 돌아오자고 생각한다. 12시 27분에 집에서 나서다.

- 집에서 길을 나서기 앞서 읍내 마실은 좀 머니까 체인이며 자전거며 꼼꼼히 살피고 손질한다. 날이 추운 탓인지 수레를 달고 시골 오르막을 낑낑대며 오르다 보면 기어가 잘 안 먹곤 한다. 가는 길은 괜찮아도 돌아오는 길에 꼭 말썽이 생기곤 한다.

- 조금 쌀쌀하지만 반바지를 입고 길을 나선다. 긴바지를 입고 바지 아래쪽을 끈으로 묶곤 했는데, 한창 달리다 보면 땀이 차며 덥다.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말든 수레를 더 잘 끌며 오갈 수 있도록 차려입어야 한다. 예순터 고개를 오를 즈음, 처음 길을 나설 때 생각했듯이 등이며 다리이며 후끈후끈하면서 땀이 흐른다.

- 멧기슭 우리 집에서 무극 읍내(금왕읍)로 가는 길은 네찻길. 이 네찻길을 오가는 차는 그리 안 많지만 우리 시골마을에서는 차가 가장 많이 오가는 길이다. 그래 보았자 도시로 치면 아주 한갓진 길이라 할 텐데, 신호에 따라 한 차례 차가 씽 지나가고 나면 귀가 먹먹하다. 아이도 아빠하고 마찬가지인가 보다. 차들이 씽 하고 지나간 뒤에 “빠방이 시끄러워.” 하고 한 마디 한다.

- 자동차 흐름이 끊어지고 아주 조용히 시골길을 달릴 때면, 길가 풀숲과 안쪽 산골짝에 깃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잘 들린다. 그런데 풀숲에 있던 자그마한 새들은 자전거가 달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깜짝깜짝 놀라는지,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내뺀다.

- 예순터 고개를 다 오르고 내리며 바야흐로 무극에 들어선다. 읍내에 들어설 즈음, 고등학생 둘이 길가를 나란히 거닐며 수다를 떨다가 문득 과자봉지를 휙 내던지는 모습을 본다. 참으로 아무렇지 않게 휙 내던진다. 갑작스런 일이라 멍하고 얼떨떨하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이 어린 나이에 이렇게 손쉽게 과자봉지를 길에 함부로 버릴 수 있는가.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지? 이 아이들은 집에서 어떻게 지내지?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이 아이들을 낳아 기른 어버이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 무극 읍내 하나로마트에 들러 보리술 한 병을 산다. 무극은 장날이어도 하나로마트에 사람이 드글드글하다. 음성 읍내 하나로마트는 장날이면 하나로마트에 사람이 거의 없는데. 무극 읍내는 하나로마트 코앞에 높직한 아파트가 숲을 이루었으니, 이 아파트숲 사람들이 장마당까지 걸어가기 귀찮거나 자동차를 타고 가도 대 놓기 마땅하지 않아 하나로마트로만 가려나. 그러나 무극 읍내 개천가에는 차 댈 자리가 아주 넓다. 시골 읍내에 살아도 아파트가 살림집이라면 마트에 다니기가 수월하고, 장마당 둘러보기는 익숙하지 않으려나.

- 도토리묵을 사고 두부를 한 모 사며 찐빵을 이천 원어치 산다. 오늘은 찐빵이 하나도 따뜻하지 않다. 아이는 찐빵을 두 입 베어물다가 더는 안 먹고 아빠 먹으라고 자꾸 내민다. 따뜻하지 않은 찐빵은 아이가 먹기에도 맛이 없구나. 아빠가 다 먹어 준다.

- 짐차에 과일을 잔뜩 실은 아저씨가 파는 능금보따리를 하나 고른다. 오천 원짜리를 고르는데 능금 몇 알에다가 감하고 귤을 덤으로 얹어 준다. 고작 오천 원어치를 살 뿐인데 이삼천 원어치를 더 얹어 주는 셈. 고마우면서 미안하다.

- 아이 엄마가 사 오라 한 밤을 한 봉지에 사천 원을 주고 장만한다. 약국에 들러 쥐끈끈이 두 봉지 천 원에 산다. 저잣거리에서 그때그때 빚어서 파는 물고기묵을 오천 원어치 산다. 양파 작은 묶음을 삼천 원에 산다. 양파하고 능금은 수레 뒷칸에 싣는다. 가방이 묵직하다.

- 집으로 돌아오는 예순터 고개는 한결 힘겹다. 그렇지만 읍내로 올 때에는 제법 수월했으니 마땅한 노릇이지. 생각해 보면, 집에서 읍내로 나올 때에는 빈 가방이니까 조금 더 힘겨워도 괜찮고, 읍내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가방이 꽉 차니까 길이 한결 수월하면 좋으련만. 이쪽 읍내로 가든 저쪽 읍내로 가든, 언제나 집에서 나설 때에는 길이 수월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더 비알진 고개를 더욱 힘겹게 올라야 한다.

- 읍내를 벗어나 예순터 고개 두 번째 고비를 오를 무렵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었다. 읍내 장마당부터 퍽 졸렸는가 보구나. 그래도 과일장수 아저씨가 건넨 작은 귤 두 알을 두 손에 하나씩 꼬옥 쥔 채로 잠들었다. 얼굴과 등판으로는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싱긋 웃는다. 고갯마루에 닿아 자전거를 세운다. 아이가 덮는 담요하고 두툼한 겉옷을 잘 여미어 놓는다. 수레 덮개를 내린다. 긴소매 웃옷 한 벌을 벗는다. 반소매 차림으로 달린다. 마지막 고빗사위 오르막을 지나 내리막을 씽 달리는데 퍼더덕 소리가 나면서 덮개가 말려 올라간다. 덮개를 제대로 안 덮었구나. 이제 막 잠든 아이가 춥겠다. 내리막에서는 좀 신나게 달리며 땀을 식히고 싶었으나 빠르기를 줄여 천천히 내려온다.

- 마을 어귀에 있는 보리밥집에 들른다. 땀도 식히고, 아이 엄마가 먹을 김치를 얻으며, 아이 까까를 하나 사기로 한다. 아이 까까는 보리건빵 한 봉지. 매운 밥을 못 먹는 나는 김치를 손대지 못하지만, 아이 엄마랑 아이는 김치를 무척 잘 먹고 좋아한다. 오늘도 김치를 고맙게 얻는다. 내가 김치를 못 먹다 보니, 집식구 둘이 김치를 좋아하는 데에도 김치를 담글 생각을 못한다. 매운 것은 건드리기조차 힘들다. 그렇다고 몸이 아픈 아이 엄마가 김치를 담글 수도 없고.

- 논둑길로 접어든다. 논둑길로 접어들어 달리면 좋다. 마주 달리는 차가 아주 드물게 있는데, 이때만 빼고는 이 논둑길은 언제나 자전거 차지라서 호젓하다. 호젓한 길을 달리며 생각에 잠긴다. 읍내를 다녀오며 달린 네찻길 국도에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기 힘들었다. 자동차가 그리 많이 오가지는 않아도 이 자동차들이 오가며 내는 소리 때문에 몹시 시끄러우니까 생각이고 뭐고 없다. 조용하고 호젓한 시골길이나 논둑길을 달릴 때 비로소 무언가 생각을 할 수 있다. 자동차로 시끄럽거나 바쁜 국도라든지 도심지에서는 차소리 때문에 고단하기도 하지만, 자전거가 차에 치일까, 또는 신호라든지 길가에 마구 대 놓은 자동차 때문에 다른 데에는 마음을 쓰지 못한다. 도시에서는 나 스스로 차분히 자전거를 즐기지 못하고, 조금 더 느긋하게 자전거를 달릴 수 없다. 더군다나 어디에선가 불쑥 튀어나오는 오토바이가 좀 많은가. 자동차는 자동차대로 자전거를 고달프게 하고, 오토바이는 오토바이대로 자전거를 고단하게 한다.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은 더 빨리 달릴 생각에 매여 있다고 느낀다. 더 빠르고 더 곧은 길을 바란다고 느낀다. 더 느긋하며 더 호젓한 찻길을 바라는 자동차꾼이나 오토바이꾼은 없겠지. 자전거꾼하고 나란히 느긋하며 호젓하게 달리기를 바라거나 꿈꾸는 자동차꾼이나 오토바이꾼이 있을까.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자전거꾼이라든지 두 다리로 걷는 사람한테 착하게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을 만나기 참 어렵다. 게다가 시골에서는 짐승한테까지 곱게 마음을 쏟는 자동차꾼이란 아예 없다시피 한다.

- 달리는 자동차는 빠르기를 늦추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싶다. 네찻길에서 앞지르기를 하려고 빠르기를 높이던 자동차는 길가 한켠에 자전거가 아이를 태운 수레를 살살 끌면서 지나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참말 아슬아슬 스쳐 지나가며 매캐한 차방귀를 뿜는다. 빠르기를 살짝 늦추면서 옆 차 뒤에 서서 여느 자전거이든 수레를 단 자전거이든 걱정없이 달리도록 도와주는 자동차를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고작 1초, 또는 2초, 아니면 3초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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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1.22.
 : 정작 추운 사람은 아빠



- 겨울을 앞둔 시골에서 읍내이든 큰길가 보리밥집이든 다녀올 때면, 아이는 수레에 앉아 꼼짝을 않는다. 처음 달릴 때에만 말 몇 마디를 하지, 이내 조용하다. 두 손을 담요나 아빠 겉옷 사이에 넣고 가만히 있는다. 오늘도 보리밥집으로 달걀이랑 아이 까까를 사러 다녀오는 길에 아이는 아무 소리를 않으며 얌전히 있기만 한다. 보리밥집에 닿아 수레에서 내리니 보리밥집 안팎을 신나게 뛰고 달리며 놀던데, 물건을 다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조용하며 얌전하다. 마을길 오르막을 끙끙거리며 오르다가는 논둑길을 달려 집에 닿아 다시 수레에서 내리니 “엄마 엄마” 하고 부르며 집으로 달려 들어간다. 아빠는 수레와 자전거를 도서관 한쪽에 집어넣고 담요와 겉옷을 잘 개 놓은 다음 집으로 들어간다. 아빠가 아이하고 보리밥집에 다녀오는 사이 저녁은 거의 다 되었고, 아이 엄마가 모처럼 마련한 ‘집 된장 볶음 짜장면’을 먹는다. 아빠는 손발을 씻고 밥자리에 함께 앉아 밥을 먹는데, 얼굴이 얼얼하며 슬슬 썰렁하다고 느낀다. 어쩌면 아이는 담요 여러 겹과 아빠 두툼한 겉옷을 포근히 덮으며 제법 따뜻하고, 아빠는 시골길 오르내리막을 달리며 땀을 뻘뻘 흘리지만 외려 더 추운 셈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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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녹색세대
린다 실베르센 외 지음, 김재민 옮김 / 맥스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좋은 넋으로 맞이할 좋은 삶
 [환경책 읽기 21] 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녹색세대



- 책이름 : 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녹색세대
- 글 : 린다 실베르센, 토시 실베르센
- 옮긴이 : 김재민
- 펴낸곳 : 맥스미디어 (2009.7.30.)
- 책값 : 12000원



 (1) 나무한테 붙이는 이름


 환경책 《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녹색세대》를 읽다가 눈물이 핑 돕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이 나라 이 땅에서는 도무지 이루어지지 않겠다 싶은 이야기를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233쪽에 이르니,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공공 도로의 일부분과 결연을 맺어서 깨끗이 관리하는 ‘고속도로 결연 맺기’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과 결연을 맺은 고속도로롤 쾌적하고 넓게 만들려는 노력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의 이름이 기록된 길 위의 쓰레기를 줍는 노력은 하고 싶어질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 나라에서 우리네 길에 이름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면 무언가 달라질 수 있으려나요. 관청에서 길마다 이름을 붙여 이 길을 알뜰히 사랑하자고 외친달지라도 이 길마저 마음쓰지 않을 사람이 훨씬 많지 않을는지요. 삶이 바쁘고 살림이 팍팍한 가운데 사랑을 잊거나 믿음을 잃는 오늘날 이 나라가 아닌지요.

 굳이 김춘수 시인 작품 〈꽃〉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느 꽃이든 풀이든 나무이든 짐승이든, 내가 내 사랑과 믿음을 담아 이름 하나 붙여서 부를 때에는 사뭇 다르게 다가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음대로 붙인 이름이라지만 달개비, 물봉숭아, 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꾀꼬리, 부엉이, 뻐꾹새, 멧돼지, 생쥐, 미루나무, 오동나무, 무화과나무 …… 같은 이름을 하나하나 되뇔 때에는 “저 꽃”이나 “이 나무”라 읊을 때하고 사뭇 다르기 마련입니다.

 골목길에서 자동차를 씽씽 모는 ‘어른’들이 참말 어른이 맞다면, 골목길을 거니는 할매 이름이 어떻게 되고 골목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 이름이 어떻게 되는 줄 알 때에도 섣불리 자동차를 씽씽 몰거나 빵빵거리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름을 알 때에는 빵빵 울리더라도 인사를 하려고 울립니다. 이름을 알거나 한식구이거나 이웃이라 할 때에는 빠르기를 늦추고 창문을 내려 몇 마디 인사말을 건네거나 차에 함께 타자는 말이라고 하기 마련입니다.

 고속도로이든 국도를 달릴 때이든 매한가지라고 느낍니다. 내 옆이나 앞을 달리는 차가 내 아버지나 어머니가 모는 자동차라고 할 때에, 또는 내 살가운 벗님이나 이웃이 모는 자동차라고 할 때에, 이때에도 서로 빠르기를 겨루거나 윽박지르듯 휘저으며 앞지르려고 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해요.


.. 어쩌면 가장 친환경적인 행동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안 하느냐일 수도 있다. 가까운 거리는 차를 이용하지 말고 불필요한 물건은 사지 않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지붕에 태양열판을 설치하는 것만큼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 친환경 삶을 사는 것은 사실 알고 보면 간단하다. 줄이기, 재사용하기, 재활용하기, 한 번 더 생각하기, 사지 않기. 이 다섯 가지 약속만 기억하면 여러분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  (33, 52쪽)


 정치를 하는 분들이나 행정을 하는 분들은 으레 ‘실업 대책’을 세운다 말하고 ‘서민 대책’을 내놓는다 이야기합니다. 대단히 커다란 돈을 들여 ‘일자리 만들기’를 한다고 외칩니다. 일자리를 한두 가지 아닌 수십만 수백만 가지를 만든다고들 떠벌이는데, 수십만 일자리이든 수백만 일자리이든, 이 일자리를 얻어 돈을 벌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무슨 일을 할는지는 거의 살피지 않습니다.

 이집트사람 하산 화티 님은 《이집트 구르나 마을 이야기》라는 책에서 ‘맹장수술을 하는 의사가 모든 사람 배를 똑같은 자리 똑같은 크기 똑같은 손놀림으로 갈라 맹장을 다스리는 수술을 할 수 없듯이, 모든 사람은 다 다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함께 모이는 공동주택이나 아파트를 지을 때에도 모든 사람 살림살이와 생각과 삶을 다 다르게 헤아리며 다 다른 집을 지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애써 이러한 말을 빌지 않더라도 정치나 행정을 하는 분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나와 네가 다르고, 너와 나는 다른 사람입니다.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서로 다른 삶을 꾸리며, 서로 다른 살림살이를 일구어요. 서로서로 배움이 다릅니다. 서로서로 생각이 다릅니다. 그런데 이 다 다른 사람들한테 오직 똑같은 일자리를 수십만이나 수백만을 만들어 선물하듯이 내려준다고 하는 일은 무슨 뜻이나 보람이 있으려나요. 참다운 일자리라 할 만한가요.


..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농장을 버리고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 20세기에는 다양한 곡물을 번갈아 재배했다. 이는 다른 종류의 곡식으로 땅속 영양분을 높여 토양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 이제 인간은 완전히 새로운 먹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음식을 섭취하고 있다. 먹이 피라미드 아랫부분에는 가스, 기름, 석탄, 비료, 농약, 유전자 변형 식품, 수많은 기계 그리고 자연에 대한 무관심 등이 구성하고 있다 ..  (64, 81쪽)


 자전거를 타고 읍내로 마실을 다닐 때마다 자동차에 치여 죽은 짐승을 마주해야 합니다. 큰 짐승과 작은 짐승이 골고루 차에 치여 죽고, 훨씬 많은 풀벌레가 어마어마하게 차에 치여 죽습니다.

 자전거수레에 아이를 태우고 함께 읍내 장마당을 다녀오던 어느 날, 옆을 스치는 자동차들 소리가 하도 시끄러운 나머지, 수레에 타던 아이가 “빠방 시끄러!” 하고 소리질렀습니다. 조용하며 호젓한 시골길을 자전거수레에 타고 함께 달릴 때에는 “좋아! 좋아!” 하고 외치는 아이인데, 읍내에 가자며 국도를 달려야 할 때에는 퍽 괴로운가 봅니다.

 아니, 괴로울밖에요.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누구나 괴롭습니다. 고달픕니다. 자동차를 모는 분들은 누구나 괴롭다고 느끼지 않을 뿐더러, 사람과 자전거가 괴로운 줄 깨닫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이 자동차가 수많은 짐승과 벌레를 치거나 받거나 깔아뭉개 죽이는 줄을 느끼지 못해요. 자동차는 움직이기만 해도 숱한 목숨을 죽입니다.

 이런 판에 고속도로이든 국도이든 시골길이든 골목길이든, 이 길마다 이름을 붙인다 해서 무언가 나아질 낌새가 없는 한국땅입니다. 아마, 길에 이름을 붙이며 아끼거나 사랑하자 한다면, 한국사람들은 ‘이 길은 내 차만 대야 하니까 다른 차는 얼씬도 말라구!’ 하는 소리만 지르지 않겠느냐 싶어요.


..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부터 재활용할 종이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자, 눈을 감고 1억 그루의 나무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을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 나무들이 베어져 우리들의 우편함을 채우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실제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편함에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온갖 전단, 광고지, 상품 안내 책자를 찍기 위해 (미국에서 2000년대 첫머리에 해마다) 1억 그루의 나무를 베고 있다 ..  (101쪽)


 사랑이 무엇인지 차츰 잊고 맙니다. 믿음이 어떠한 줄을 나날이 잃고 맙니다. 사랑을 잊은 채 너무 바빠맞게 살아가는 오늘날 이 나라 사람들입니다. 믿음을 잃은 채 더없이 많은 돈을 꼬옥 움켜쥐면서 한결 돈에 목말라 하는 요즈음 이 땅 이 겨레입니다.

 사랑으로 낳은 아이한테 이름을 붙이지만, 정작 내 아이가 사랑스레 꿈을 꾸며 무럭무럭 자라도록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가 되지 못합니다. 내 아이한테 붙인 이름에 걸맞도록 아름다이 꾸리는 삶이 아니라, 대학바라기에 목매다는 삶입니다. 대학바라기에 목매다는 삶을 들여다보면, 나중에 ‘내 아이가 어른이 될 때’에 도시에서 어버이보다 돈 많이 버는 큰회사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대학바라기 아닌 사랑바라기는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큰회사바라기 아닌 믿음바라기는 이슬처럼 흩어집니다. 꿈바라기는 어디에도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2) 사람한테 붙이는 이름


 우리 아이가 세 살 나이를 열한 달째 보냅니다. 이제 한 달만 있으면 아이는 세 살을 마감하고 네 살로 접어듭니다. 세 살 나이 아이하고 열한 달째 함께 살아가는 요즈음 비로소 느끼는데, 예부터 사람들은 익히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어버이들은 당신 아이가 세 살 무렵이면 벌써 어린이집에 맡깁니다. 세 살이든 두 살이든 한 살이든 똑같습니다만, 이 아이한테 첫 버릇이 붙어 여든 나이까지 곱게 이어가도록 마음과 몸을 쓰지 못합니다.

 아이가 더 좋은 보금자리에서 더 좋은 여러 가지를 누리도록 하겠다면서 애 아빠나 애 엄마 모두 돈버는 일자리에 붙잡힙니다. 돈을 벌어야 아이 옷도 장만하고 집삯도 치르며 먹을거리를 장만한다지요. 돈을 벌어야 맛난 바깥밥도 사먹고 아이 학원삯을 내며 자동차 굴릴 기름값을 마련한다지요. 돈을 벌어야 뭐도 하고 뭐도 하며 뭐도 한다지요.

 그러니까, 어버이들은 어버이 노릇이 아닌 돈벌이 노릇만 합니다. 돈벌이 노릇은 썩 잘 한다 여길는지 모르나 어버이 노릇은 거의 못한다 할 만합니다.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보여주는 모습이란 ‘우리 엄마랑 아빠는 돈을 버느라 나하고 함께 있을 겨를이 없어’입니다. 아이가 세 살일 때부터, 아니 아이가 두 살이고 한 살일 때부터 애 엄마랑 애 아빠는 집 바깥을 떠들면서 아이 또한 제 집을 살가운 보금자리로 여기지 못하게끔 내몰고 맙니다.


.. 미국에서는 매년 1만 5천 개의 식품이 개발되고 있는데, 그중 75%가 가공된 사탕, 조미료, 시리얼, 빵, 음료수, 유제품 같은 것이다 … 중요한 것은 건강한 유기농 음식의 섭취량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것이지, 갑자기 모든 것을 바꾸는 게 아니다. 올바른 식단을 선택하고 유기농 음식을 구입해서 조리하는 것에 익숙해질수록 여러분의 식습관은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또 음식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 주변 환경도 따라서 변할 것이다. 바쁜 일에 치여 패스트푸드만 고집하거나 무조건 값싼 음식을 찾는다면, 여러분은 결국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탄소발자국을 남기게 될 것이다 ..  (61, 69쪽)


 애 엄마랑 애 아빠가 집에 붙어서 세 살 아이를 보듬자면 퍽 힘듭니다. 살림살이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다른 집은 어떠한지 모르나, 우리 집은 애 아빠가 온갖 집일을 도맡아야 해서 언제나 머리가 핑핑 돕니다. 그러나 애 엄마가 몸과 마음이 튼튼하지 못한 사람인 까닭에, 애 아빠는 집 바깥을 섣불리 나다니지 못합니다. 애 엄마가 튼튼한 사람이었다면 애 아빠는 책방을 다니느니 책을 더 많이 사서 읽는다느니 골목마실을 더 오래 즐긴다느니 사진을 훨씬 신나게 찍으러 다닌다든지 하면서 집안에 머물 겨를이 퍽 줄어들겠다고 느낍니다. 애 엄마가 여린 사람이다 보니 아이뿐 아니라 엄마까지 함께 보듬어야 하고, 이러다 보니 내내 집안에 붙어서 집일을 하며 아이랑 복닥입니다. 아주 마땅히 하루 끼니는 다 집에서 손수 장만합니다. 올여름 드디어 우리 식구 모두 시골집으로 살림을 옮긴 뒤 처음으로 해 본 텃밭 일구기는 엉터리로 마감했는데, 이듬해부터는 텃밭을 조금이나마 알뜰히 일굴 수 있으면, 우리 집 밥차림은 차츰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애 아빠가 이 일도 더 마음을 기울여 잘 해내야겠지요.

 참 힘겹고 참 벅차며 참 괴롭다 할 만한 하루 살림입니다. 그렇지만 밤이 되면 잠을 잘 잡니다. 하도 지치니까요. 다만, 밤이 되어 잠자리에 누울 때에 ‘난 오늘 밥벌이가 될 만한 일을 얼마나 했나’ 돌아보면서 적이 슬픕니다. 그렇지만 ‘이런 가운데에도 글조각 몇 끄적였다’면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오늘 하루 ‘아이 사진 몇 장 찍었다’면 고맙게 헤아립니다. 돈이 될 글이나 사진은 아니지만, 우리 살붙이 이야기를 적바림한 글과 사진을 하나하나 갈무리할 수 있는 삶이면 고맙습니다. 산골집 우리 아이가 꽃순이 하루를 보내고, 찍새 흉내 하루를 보내며, 빗자루질 따라하기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바라보며 즐겁습니다. 작은 담요를 둘둘 말고 논다든지, 인형을 품에 꼬옥 안고 논다든지, 그림종이에 아메바(작은 동그라미)를 잔뜩 그리며 노는 모습을 쳐다보며 재미납니다. 아이가 세 살을 마음껏 보내는 이 하루하루를 이 자그마한 산골집에서 복닥복닥 북적북적 부대끼는 삶이 조촐합니다.

 웃고 울고 찡그리고 노래하는 온갖 모습을 어버이로서 가슴으로 맞아들일 수 있는 나날이란 하늘이 내려준 고마운 보배요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 여러분이 건강하고 깨끗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더 푸르른 세상이 여러분 앞에 펼쳐질 것이다. 여러분의 모든 행동은, 심지어 그것이 무관심이나 부정적 생각으로 인한 것이라 해도 반드시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 물론 친환경적인 식습관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인스턴트식품의 유혹을 뿌리쳐야 하고 비싼 유기농 제품을 구입해야 하며, 될 수 있는 대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한다. 하지만 그 결과 여러분은 건강한 몸과 행복한 마음을 갖게 된다 ..  (82, 83쪽)


 이듬해 봄에 둘째가 태어난다면 첫째 아이는 제 어버이랑 둘째 아이한테 어떻게 마주할는지 퍽 궁금하지만, 궁금해 하지 않아도 환히 알 만하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첫째 아이한테 마주하는 내 삶 그대로 이 아이는 세 살 나이에 고스란히 생각과 마음과 믿음과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제 동생한테 베풀 테니까요. 아이 어버이가 골을 자주 부리거나 찌푸린 낯으로 아이랑 잘 안 놀아 준다면, 이 아이는 제 동생한테 똑같은 모습을 보여줄밖에 없습니다. 아이 어버이가 활짝 웃고 떠들면서 아이 손을 맞잡고 춤추며 노래하는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함께 산을 타고 들을 거닐며 자전거를 탄다면, 이 아이는 제 동생한테 제 모든 사랑과 믿음을 물려줄밖에 없어요.

 아이는 누구나 제 밥그릇을 갖고 태어난다는데, 아이가 가진 밥그릇에 밥을 담는 몫은 어버이입니다. 밥그릇은 있으나 밥그릇에 밥을 담아 주지 않으면 아이는 목숨줄일 잇지 못합니다. 어버이 된 우리들은, 그러니까 내 배가 아프며 낳은 아이가 있어야만 어버이가 아니요, 아이 있는 집하고 이웃하거나 동무하면 모두 어버이인데요, 이렇게 어버이 된 우리들은 아이 밥그릇에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와 고기를 비롯해 고운 사랑과 따순 사랑과 맑은 사랑과 빛나는 사랑을 담아 주어야 합니다. 착한 믿음과 참된 믿음과 너른 믿음과 씩씩한 믿음 또한 담아 주어야 해요.


.. 유기농 제품을 생산하고는 있지만 다른 일반 제품에는 석유나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고 동물 실험까지 하는 회사는 과연 친환경 회사일까? ..  (126쪽)


 하루에도 아이 이름을 수백 번쯤 부릅니다. 날마다 수백 번쯤 부르는 아이 이름이기에 아이한테 아무 이름이나 섣불리 붙이지 못합니다.

 날마다 수없이 생각하고 떠올리는 아이요 집식구입니다. 날마다 수없이 생각하고 떠올리는 아이요 집식구인데, 내 아이와 집식구를 아무렇게나 마주할 수 없습니다.

 자연사랑이라 한다면 날마다 수없이 마주하고 부대끼는 자연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환경사랑이라 한다면 내내 붙어 보듬으며 껴안는 환경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자연사랑이 아닙니다. 나라에서 돈과 힘으로 밀어붙이는 어마어마한 토목건설(4대강 사업)이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토목건설을 가로막겠다는 외침 또한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일 수 없어요.

 아주 마땅한 노릇이에요. 어마어마한 토목건설을 막아내야 한다고 외치면서, 정작 다른 크고작은 자리에서는 슬픈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토목건설 하나 막아낸달지라도 환경사랑을 못 이룬 셈입니다. 토목건설을 막아내는 사람으로서 생협운동을 하지 않거나 텃밭 일구기에 마음 쏟지 못하거나 ‘무언가 제대로 이 나라 삶터를 옳고 바르게 건사하는 길’을 함께 걷지 못한다면 부질없습니다.

 토목건설을 끝장내자고 외치는 목소리를 높이기 앞서, 내 옷과 내 식구들 빨래를 어떻게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나와 내 식구 하루 끼니는 어떻게 마련하고 치우는지 헤아려야 합니다. 내 보금자리에는 어떤 살림살이를 갖추었으며, 이 살림살이는 어떻게 쓰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자동차를 버려야 이라크에 군대를 안 보낼 수 있다고 말한 권정생 할배 이야기를 어느 만큼 알아들었는지 곱씹어야 합니다.


.. 가까운 도서관에 가서 친환경 작가들의 낭독회와 강연을 더 많이 주최하고 환경에 대한 서적을 폭넓게 구비하도록 부탁해 보자 ..  (227쪽)


 책 하나를 읽더라도 환경책 하나를 더 읽는다면 한결 나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환경책 하나를 더 읽기는 읽었으나 참다이 환경사랑을 하지 못한다면 환경책을 더 읽었다 한들 덧없습니다. 환경책 하나 읽은 적이 없다지만, 내 어머니와 아버지,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 또 옛날과 머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지난날 사람들이 환경사랑을 어떻게 했는가를 찬찬히 톺아보는 가운데 내 하루를 아름답게 여밀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입이 아닌 몸으로 살아낼 하루이고, 책이 아닌 가슴으로 얼싸안을 나날입니다. 거룩한 이름이 아닌 가장 수수한 이름으로 사랑을 하고 믿음을 나눌 내 삶입니다.


 (3) 좋은 삶이 되어 책을 읽는다면


 환경책 《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녹색세대》를 읽습니다. 이 책은 두 사람이 함께 쓴 책인데, 글쓴이 둘은 어머니와 아들 사이입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당신 스스로 환경사랑을 삶으로 받아들여 보내는 하루하루를 책으로 고스란히 옮깁니다.

 이 책 《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녹색세대》는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이 보내는 하루를 찬찬히 보여주면서 환경사랑이란 아주 대단한 운동이 아니요 거룩한 삶이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누구나 내 삶을 더 좋게 일구고픈 마음일 때에 저절로 환경사랑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내 아이한테 더 좋은 밥을 먹이고플 뿐 아니라 나 스스로 더 좋은 밥을 먹고 싶은데 아무 밥이나 함부로 차릴 수 없습니다. 내 아이가 더 착한 삶을 일구며 더 곱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 아니라 나 스스로 더 착하게 살아가며 더 고운 마음을 품고 싶은데, 아무 일감이나 덜컥 붙잡아 돈만 많이 벌 수 없습니다.

 바라기에 더 제대로 알아봅니다. 더 제대로 알아보았기에 이렇게 알아본 그대로 살아냅니다. 꾸밈없이 살아내니까 저절로 환경사랑입니다.


.. 과거를 돌이켜보자. 과거를 돌아보면 큰 깨달음을 얻는 법이다. 과거에 음식은 인간의 간섭 없이 있었다. 나무에는 과일이 열리고, 들판과 숲에는 짐승들이 있고, 물속에는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쳤다. 그러나 오늘날의 음식은 인간의 손에 생산되고 운송되고 가공되고 보존된다 ..  (61쪽)


 지난 삶을 돌이키고 오늘 삶을 돌아보며 다가올 삶을 기다립니다. 지난 삶에서 아쉬웠던 대목을 오늘 삶에서 가다듬고, 오늘 삶에서 못 이룬 일을 다가올 삶에서 이루고자 꿈꾸며 기다립니다.

 무슨 목표를 따로 세우지 않습니다. 산을 탄다고 할 때에 반드시 꼭대기까지 올라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거나 벗님과 함께 지내거나 이웃과 함께 어울리는 하루가 그예 즐겁습니다. 산길을 10미터만 걷든 1킬로미터를 걷든 늘 즐겁습니다.

 날마다 좋은 마음으로 잠든 다음, 좋은 마음으로 일어나자고 다짐합니다. 날마다 좋은 말로 아이랑 살붙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날마다 좋은 넋으로 쌀을 씻어 밥을 안치자고 생각합니다. 날마다 좋은 느낌으로 손빨래를 하고, 날마다 좋은 몸으로 자전거수레를 끌어 아이하고 마을 한 바퀴 스윽 돌자고 여깁니다.

 좋은 말을 하면서 살고플 뿐이고, 좋은 얼을 북돋우는 좋은 책을 읽고플 뿐입니다. 값지지 않아도 되고 값있지 않아도 돼요. 오붓하게 나누면 즐겁고, 호젓하게 함께하면 기쁩니다.


.. 연어는 지금과는 달리 댐이나 오염물질 같은 장애물 없이 바다에서 강으로 자유롭게 헤엄쳐 올라갈 수 있었다. 곰, 독수리, 늑대 같은 동물들은 이동하는 연어를 잡아 맛있는 부분은 베어 먹고 나머지 부분은 땅에 버렸는데, 이것이 썩어 천연 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바다의 풍부한 미네랄과 영양분이 연어를 통해 곰에게 전달괴거나 거름이 되어 식물을 자라게 했다. 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토양의 영양분이 이동했다. 빗물과 함께 토양 깊숙이 스며든 영양분은 식물 뿌리를 통해 다시 흡수되고, 곤충과 미생물은 이 영양분을 먹고 배설하면서 영양분을 퍼뜨렸다 ..  (62쪽)


 《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녹색세대》를 쓴 두 사람은 말합니다. “늘 물 절약을 실천해 온 어머니 덕분에 나는 언제나 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살았다. 더욱이 숲에서 살면서 몇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피부로 실감하게 되었다. 물이 없으면 식물이 시들고 나무가 죽고 땅이 마르고 동물들이 고통을 받는다. 인디언들이 물을 ‘생명수’라고 부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92쪽).” 하고. 이 말은 아들이 어머니를 떠올리며 한 말일 수 있으나, 어머니가 당신 어머니(할머니)를 돌아보며 한 말일 수 있어요. 아들은 어머니한테서 배우고, 어머니는 당신 어머니한테서 배웠으며, 당신 어머니는 또 당신 어머니를 낳아 기른 어머니한테서 배웠겠지요.

 좋은 뜻은 고이고이 이어갑니다. 좋은 삶을 차근차근 물려줍니다. 좋은 책 하나란 좋은 뜻을 품고 조용히 살아가는 예쁜 어른들이 자그맣게 일군 땀방울을 받아먹은 아이들이 빚어냅니다. 좋은 책 하나를 맞이해서 즐겁게 읽어 즐겁게 살아갈 기운을 얻자면, 나부터 내 어버이한테서 좋은 넋을 좋은 매무새와 몸가짐으로 이어받을 노릇입니다. (4343.11.2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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