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건축 4 - 칠궁
임응식 지음 / 광장 / 1977년 10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올렸던 글을 '리뷰'로 옮겨 새로 올린다 ㅠ.ㅜ 이 책은 절판된 지 오래되어 없는 줄 알고, 처음부터 '판 끊어져 검색 안 되는 책' 자리인 페이퍼쓰기를 했는데... 임응식 님 책을 검색해 보다가, 덜컥 뜨는 모습을 보거는 허거덕 @.@ 아웅... 힘들어라... 그러나 고마운 일이다. 다시 살 수는 없어도 이렇게 '책 검색'이 되는데다가 표지라도 뜨니까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예술이기 앞서 삶인 사진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9] 임응식, 《韓國의 古建築 ④ 七宮》(광장,1977)



 사진찍기를 처음 배우려 하는 분들한테나, 사진찍기를 제법 해 왔으나 ‘식구들 사진 아니고는 찍어 보지 못했다’고 하는 분들한테나 으레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진기는 다 똑같은 사진기이니, 더 값나가는 값진 사진기를 굳이 장만하려고 하지 마시라고. 덧붙여, 더 값나가는 사진기 한 대 장만할 돈만큼 사진책을 먼저 장만하여 죽 들여다본 다음에 사진기를 새로 사도 늦지 않다고. 이리하여, 하루아침에 사진책을 한꺼번에 장만하지 말고 틈틈이 책방마실을 다리품 팔며 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책으로만 한두 권씩 장만하며 사진기 값만큼 썼다 싶을 때에 비로소 사진기를 장만한다면 굳이 사진강의나 사진교실을 다니지 않아도 스스로 마음에 들 뿐 아니라 스스로 바라는 사진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우리 나라는 사진책이 아주 안 팔립니다. 책마을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책이 안 팔린다’면서 우는 소리를 내지만, 사진책을 만들어 온 책마을 일꾼은 예나 이제나 ‘책 팔기 힘들어’ 골골거리면서도 사진책 하나를 힘써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안 팔리는 책을 꼽자면 사진책과 함께 환경책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을 올바르고 아름다이 일구자는 뜻을 담은 환경책은 아주 뜻밖에 아주 안 팔립니다. 이름난 출판사에서 광고돈 제법 들여 알리지 않고서야 거의 안 팔립니다. 이는 사진책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름난 출판사에서 광고돈 들여 널리 알리면 곧잘 팔립니다.

 문학책이 문학쟁이 한 사람이 일군 문학이라는 열매 하나를 담은 책이라면 사진책은 사진쟁이 한 사람이 일군 사진이라는 열매 하나를 담은 책입니다. 그런데, 문학책을 즐거이 사 읽으며 문학맛을 보려는 사람은 있되, 사진책을 기쁘게 사 넘기며 사진맛을 보려는 사람은 좀처럼 드뭅니다. 이러는 가운데 몇 가지 사진책은 아주 불티나게 팔립니다. 잘 안 팔릴 뿐 아니라 거의 안 팔린다는 사진책이라 하지만, ‘사진 더 잘 찍는 솜씨를 말하는 책’이라든지 ‘사랑받는 연예인 화보를 담은 책’이라든지 ‘곱상한 사진으로 멋을 부리는 포토에세이’라든지 ‘대학교 사진학과에서 교재로 쓰는 책’만큼은 제법 팔립니다.

 사진책을 즐겨 장만하는 저부터 늘 느끼지만, 사진책은 값이 좀 세긴 셉니다. 흔한 말로 휘리릭 넘기면 다 보는 사진책인데 책값이 꽤 비싸다 할 만합니다. 굳이 양장에 책 껍데기에 날개에 뭔가를 덕지덕지 달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돈을 더 들여 더 빛나게 엮으려는 사진책이 퍽 많습니다. 글책은 그예 글책이고 사진책은 그예 사진책이기에, 글책이 글로 책을 받아들이고 글로 삶을 읽도록 돕는다면, 사진책은 사진으로 책을 맞아들이며 사진으로 삶을 헤아리도록 도울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겉을 어느 만큼 꾸밀 수 있습니다만, 애써 더 겉꾸밈에 마음쓸 까닭이 없는 책들입니다. 이런 테두리에서 사진책 엮는 분들은 생각을 좀 고쳐야 합니다. ‘어차피 만드는 데에 비싼 돈이 치이니 몇 가지 더 꾸민다’고 하는 생각이 아니라, ‘사진 품질을 살리면서 좀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장만할 수 있는 눅은 값’을 맞추는 데에 생각을 모두어야지 싶어요.

 1970년대 끝무렵에 ‘도서출판 광장’에서 펴낸 “韓國의 古建築”이라는 사진책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자꾸자꾸 할밖에 없습니다. 광장이라는 출판사는 건축책을 내는 곳인데, 이곳에서는 건축을 사진으로 말하는 사진책을 꽤 큰 판짜임으로 여럿 내놓았습니다. 광장 출판사에서는 모두 50권쯤은 내놓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는데 모두 몇 권까지 내놓았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韓國의 古建築”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 가운데 제가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찾아본 책들 가운데 다섯 권은 임응식 님 사진으로 나왔고(비원, 경복궁, 종묘, 칠궁, 소쇄원), 한 권은 강운구 님 사진으로 나왔습니다(내설악 너와집). 주명덕 님 사진으로 《수원성》이 나왔다고 하지만 이 책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 《제주 민가》를 담으려 했다는 사진책을 세 권 내려 했다는데 누구 사진으로 내려 했고, 나오기는 했는지조차 알 길은 까마득합니다.

 곰곰이 생각한다면, “韓國의 古建築”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는 사진책은 1970년대 끝무렵뿐 아니라 2010년대 첫무렵에 내놓는다 할지라도 널리 사랑받기에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옛집”이든 “우리 나라 오늘날 집”이든, 여느 사람들은 당신 살림집을 알뜰히 눈여겨보면서 우리 삶터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이 오순도순 모여 있는 한국 삶터 골목길을 스스럼없이 바라보거나 껴안거나 살피지 못합니다. 나라밖 일본이든 중국이든 티벳이든 인도이든 프랑스이든 미국이든 독일이든 스페인이든 하는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나가서 그 나라들 골목길을 눈여겨보거나 헤아리거나 바라보거나 살필 뿐입니다. 제주섬 올레길을 찾는 사람이 무척 많다고 합니다만, 관광길인 올레길은 찾아다닐지라도 스스로 ‘관광길이 아닌 여느 사람 살림집하고 맞닿은 골목과 고샅’을 즐겁게 찾아다니며 마을사람 눈높이와 삶결대로 거닐면서 ‘내 이웃 삶을 받아들이려는 몸짓’을 보여주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더욱이, 관광여행으로 많이 찾는 제주섬이 아닌 여느 우리 동네라 할 때에, 우리 동네 골목길 구석구석 골골샅샅 누비며 내 이웃집은 어디요 내 동무가 사는 집은 어디이고 내 단골집은 어디메인가 하고 곱씹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터조차 모르는 가운데 멀리멀리 비행기 타고 다닙니다. 우리는 우리 삶터 이웃집을 잘 알려 하지 않으면서 진보와 평화와 평등과 통일과 자유와 민주를 외치고 있습니다.

 임응식 님이 “韓國의 古建築”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은 사진책 《비원》과 《경복궁》과 《종묘》와 《칠궁》과 《소쇄원》을 하나하나 넘겨 보노라면, 임응식 님은 이무렵 쉰 해 남짓 이어온 당신 사진삶을 한결 가다듬고 추스르면서 당신으로서는 거의 마지막 불꽃이라 할 만한 사진길을 새롭게 걸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 나라 사진누리를 맨 처음으로 다스리거나 갈고닦았다고 할 분 가운데 하나로서, 당신 뒷사람한테 보이거나 남기거나 물려주고픈 이야기와 넋을 사진마다 알알이 아로새겼구나 하고 느낍니다.

 “韓國의 古建築”이 나올 무렵은 한국 사진쟁이도 “우리 나라 옛집과 옛궁”을 어떤 흐름과 줄기를 좇으며 어떤 이야기를 담도록 사진을 해야 하는가를 곧잘 살피던 때인 한편, 일본 사진쟁이 또한 “일본 이웃에 있는 아름다운 옛집과 옛궁이 살아숨쉬는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밝히고자 바지런히 찾아와서 알뜰살뜰 사진을 찍던 때입니다. 한 자리에 놓고 견주기에는 마땅하지 않으나, 1981년에 ‘村井修’라는 일본사람 사진으로 《李朝の建築》(求龍堂)이라는 두툼한 사진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면, 일본 사진쟁이는 ‘조선 무렵 옛 궁궐과 기와집’ 사진을 빛깔사진과 흑백사진 두 가지로 나누어 담았습니다. 빛깔사진으로 해야 할 자리와 때에는 빛깔사진으로 담고, 흑백사진으로 해야 할 곳과 때에는 흑백사진으로 담습니다. 놀랍도록 또렷하면서 밝고 아리땁게 ‘조선 무렵 옛 궁궐과 기와집’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고운 사진책인 《李朝の建築》입니다. 이 일본 사진책하고 임응식 님 《비원》과 《경복궁》과 《종묘》와 《칠궁》과 《소쇄원》을 나란히 놓고 생각한다면, 임응식 님 사진은 어느 모로 답답하다 여길 수 있습니다. 빛을 좀더 맑고 밝게 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임응식 님은 굳이 흑백사진으로만 “조선 무렵 옛 궁궐과 기와집”을 담습니다. 어느 사진은 선명도가 깨지고 어느 사진은 살짝 흔들리고 어느 사진은 빛이 잘 맞지 않아 아쉽지만, 이 땅에서 이만 한 집을 이루어 살아가던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즐기며 무엇을 아끼려 했는가 하는 생각을 사진마다 골고루 담아 놓습니다. 사진길을 오랫동안 걸어온 ‘임응식이라는 손꼽히는 사진쟁이’ 이름이나 얼룩을 느낄 수 없는 사진을 선보이는 “韓國의 古建築”입니다. 임응식이라는 사진쟁이가 내놓은 작품을 보라는 “韓國의 古建築”이 아니라, 이 나라 옛 궁궐과 기와집을 처음 지은 일꾼들 땀냄새하고 이 궁궐과 기와집에서 하느작거리며 노닐던 사람들 삶결을 읽으라 하는 이야기가 서린 “韓國의 古建築”입니다. 그래서, 사진 작품으로 치자면, 또 이 나라 옛 궁궐과 기와집 매무새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사진으로 보자면, 일본 사진쟁이가 이룬 《李朝の建築》이라는 책이 더할 나위 없이 멋있습니다. 이와 달리, 사진하는 넋과 사진기를 쥔 손길에다가 사진으로 이루어 사진으로 나누려는 눈물과 땀내로 돌아보자면, 여러모로 어수룩한 구석이 남아 있으면서 “이 나라 옛 궁궐과 기와집”을 읽는 새로우며 남다른 생각과 밑눈을 베풀어 준 “韓國의 古建築” 다섯 권이 그지없이 고맙습니다. 저는 이 다섯 권 가운데 4번 《七宮》 사진책을 몹시 아낍니다.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저 좋아 웃습니다. 기와집이란 풀집과 달리 권력과 이름과 학문과 돈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집인데, 이러한 기와집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사람 기운이 똑같이 어려 있’음을 사진으로 아기자기하게 엮어 냅니다.

 1979년에 나온 《현대한국사진작가선 : 임응식》(시각)이라는 사진책을 펼치면 이경성 님이 임응식 님 사진을 읽어낸 글이 한 꼭지 실려 있는데, 마지막을 다음처럼 맺습니다. “사실 그(임응식)의 말대로 오늘의 평면 예술에는 사진술을 이용한 많은 회화와 판화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사진술을 썼다손 치더라도 그들의 궁극의 목적이 회화이므로 사진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진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하여 사진작가 임응식은 ‘사진은 기록성과 진실성을 담은 평면예술이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4343.8.6.쇠.ㅎㄲㅅㄱ)


― 韓國의 古建築 ④ 七宮 (임응식,광장,1977/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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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의 민들레
윤주영 / 호영출판사 / 1993년 3월
평점 :
절판



 촉촉한 가슴에서 저절로 샘솟는 고운 사진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3] 윤주영, 《동토의 민들레》(호영,1993)


 잘 찍는 사진, 또는 잘 찍은 사진하고는 동떨어졌을 뿐더러, 훌륭한 사진이나 놀라운 사진이나 대단한 사진이나 좋은 사진하고도 멀거니 떨어진 윤주영 님 사진을 읽습니다. 1928년에 태어나 여태껏 사진기를 힘차게 쥐는 당신은 1928년에 태어나 이제껏 사진기를 당차게 쥐는 최민식 님하고 동갑내기입니다. 윤주영 님은 당신이 예순다섯이던 1993년에 내놓은 사진책 《동토의 민들레》에서 “사실 내가 2∼3년만 일찍 태어나 국민학교만 마치고 집에서 농사일이나 거들고 있었다면 나도 영락없이 이곳에 끌려와 그들이 살아온 세월처럼 형용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을지도 모를 일(126쪽)”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윤주영 님이 러시아에서 쭈그렁 할아버지로 지내는 가운데 최민식 님이 러시아로 사진 취재를 떠나 만나는 사이가 되었을 수 있어요. 그러나저러나, 얼어붙은 땅 러시아 사할린에서 겪는 한겨레붙이 아픔과 슬픔이란 ‘강제이주’ 하나뿐 아니라 ‘강제이주에 재이주에 재재이주’까지 덧달립니다. 이루 말로 담아내기 힘들고, 이루 사진으로 실어내기 벅찬 눈물입니다.

 그러나 이 얼어붙었다는 땅에서도 한겨레붙이는 서로 믿고 기대어 사랑을 나눕니다. 다 함께 손잡고 어깨동무하며 따순 품을 나눕니다. 끔찍한 나날을 겪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가운데에는 ‘러시아 녀석하고 내 손주가 시집장가 가는 꼴을 못 본다’고 외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한겨레붙이하고 똑같이 한겨레붙이라 할 만한 남녘땅 한겨레붙이는 러시아에서 살아가는 러시아사람하고 맞대 놓을 때에 얼마나 한겨레붙이답다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재일조선인 소설쟁이 유미리 님은 한국에서 온 유학생 아무개가 다니는 대학교에 놀러갔을 때 이야기를 당신 수필책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2000)에 적바림합니다. 당신을 “유입니다.” 하고 말했더니 한국사람이냐고 묻기에 한국사람이라 하니까, 한국사람치고 일본말을 참 잘한다고 하기에 일본에서 태어났으니 그렇다 했는데, 한국 유학생은 “그럼 일본사람이잖아요?” 하고 물었고, 유미리 님은 “아니, 그러니까 재일한국인 2세인데요.” 하고 대꾸했는데, 막상 돌아온 말이란 “그게 무슨 소리죠?”였다고 적바림합니다.

 윤주영 님은 다큐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인물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사진이나 상업사진을 찍지도 않습니다. 이른바 프로사진이 아닌 윤주영 님 사진이라 할 텐데, 윤주영 님은 당신이 좋아하는 결대로 다리품을 팔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이런 이름도 어울리지 않고 저런 갈래도 걸맞지 않습니다. 그예 사람들 살아가는 품새를 다루고, 그저 사람들 복닥이는 매무새를 들여다봅니다.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는 ‘저마다 아는 만큼’ 찍는다 여길 수 있습니다만, 저마다 아는 만큼 사진을 찍는 일이란 없습니다. 언제나 ‘저마다 살아가는 만큼’ 사진을 찍습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만큼 사람과 삶터를 바라보고, 저마다 살아가는 만큼 사진기를 장만해서 단추를 눌러 사진 하나 일굽니다.

 이리하여, 윤주영 님 사진하고 견주면 솜씨 빼어나거나 틀이 괜찮거나 생각이 좀 깊거나 한달지라도 윤주영 님 사진만큼 이야기가 넉넉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윤주영 님처럼 살아내지 못하면서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을 섣불리 붙인다든지, 윤주영 님처럼 다리품과 손품을 팔지 않으면서 사진쟁이라는 허울을 우쭐거리면서 쓴다든지 한다면, 보잘것없는 사진 작품만 잔뜩 쏟아냅니다. 가만히 보면, 스스로 ‘다큐’라 이름 붙일 때에는 다큐사진이 아니고, 제 입으로 ‘인물’이라 이름 달면 인물사진이 아닙니다. 이때에는 문화이고 예술이고조차 아닌 겉멋이나 겉치레에 머물고 맙니다.

 윤주영 님만큼이라도 다리품을 팔거나 손품을 들이면서 사진길을 걷는다면 이 나라 사진쟁이들은 얼마나 크게 발돋움할까요. 돈이 있고 겨를이 많아 윤주영 님이 이렇게 다리품과 손품을 팔았겠습니까. 나한테 돈이 아주 많거나 겨를이 참말 넉넉하다면 윤주영 님은 저리 가라 하도록 멋진 사진을 내놓을 수 있는가요.

 사진책 《동토의 민들레》를 들여다보면, 윤주영 님이 사할린 한겨레붙이를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결 살가이 보듬지 못했구나 하고 느낄 만합니다. 윤주영 님 스스로 밝히기도 하는데, “그러나 이 사진집을 통해 사할린 교포들의 삶을 담아낸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한 욕심이었던 듯싶다. 그들이 50년 동안 겪고 살아온 그 엄청난 수난의 세월을 짧은 시간에 담아내는 데는 어차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127쪽/윤주영).”는 말이 아니더라도 몇 차례 사진여행을 떠나 수십 또는 수백 통 필름을 썼달지라도 ‘러시아 사할린땅 한겨레붙이’ 삶을 오롯이 담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작 한 차례 나들이를 했으면서도 얼마든지 러시아 사할린땅 한겨레붙이 삶을 알뜰살뜰 여밀 수 있어요. 윤주영 님은 아직 이 대목을 깨닫지 못하시는데, ‘미리 촬영 대상을 공부하고 살피거나 알아본다’고 하든 ‘사람들하고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사진을 담는다’고 하든 이야기사진이나 다큐사진 하나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떠한 사진이든, 우리들은 바로 이 자리에서 내 삶을 곰삭이며 내 깜냥과 주제와 그릇에 걸맞게 내 삶을 사진 하나에 실어내려고 할 때에 이야기 한 자락을 사진 하나에 살포시 얹으며 삶꽃 어여삐 일굽니다.

 잘 찍을 까닭이란 없습니다. 깊거나 놀랍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줄 까닭이란 없습니다. 곧거나 옳은 목소리를 외칠 까닭이란 없습니다. 멋지거나 그윽한 그림을 보여줄 까닭이란 없습니다. 사진은 사진이지 ‘글’도 ‘그림’도 아닙니다. 사진을 글인 듯 여기면서 줄줄줄 꼬리말을 달아 놓는다면 부질없습니다. 사진을 그림처럼 받아들이면서 그럴싸한 모습을 달달달 늘어 놓는다면 덧없습니다.

 더 많은 필름이나 더 좋은 장비나 더 기나긴 겨를로는 사진을 이루지 못합니다. 더 너른 사랑과 더 따순 믿음과 더 깊은 마음으로 사진을 이룹니다. 내 삶부터 따뜻하게 여미어 주셔요. 내 가슴을 촉촉히 적셔 주셔요. 내 눈망울을 맑게 빛내어 주셔요. 사진은 저절로 우러납니다. (4343.12.1.달.ㅎㄲㅅㄱ)


―  (윤주영 사진,호영 펴냄,1993.3.20./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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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5] 쪽지가 왔습니다

 손전화로 쪽지가 왔을 때에는 언제나 “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라는 소리가 울립니다. 손전화로 전화가 온다든지 단추를 누른다든지 할 때에 노래나 소리를 따로 담을 수 있다지만, 쪽지가 왔을 때에는 어쩌는 수 없이 손전화에 딸린 소리가 나도록 할밖에 없습니다. 한자말 ‘도착’을 영어로 하면 뭐가 되는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만, 그나마 ‘메세지’ 아닌 ‘문자’라 해 주어도 좋겠으나, 이마저 바라기는 참 어렵습니다. ‘쪽지’ 아닌 ‘쪽글’까지 바라지조차 못합니다. 고작 “쪽지가 왔습니다”라는 말소리 하나라도 좋으니, 제발 손전화에 살가운 말마디를 담아 준다면, 인터넷도 하고 텔레비전도 하며 영화를 보는 한편 뭣도 하고 뭣도 한다는 손전화 귀퉁이에 쪽글 알림말을 알뜰살뜰 여미어 마련해 놓는다면 얼마나 고마울까요. 할매 할배이며 어머니 아버지이며 차츰 눈이 가물어 가는 분들이 보기 좋도록 큰 글월판 손전화를 내놓기도 하는데, 아주 어린 아이들도 함께 쓰는 손전화라 한다면,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두루 곱고 바르며 사랑스러운 말과 글을 들으며 전화기를 쓸 수 있게끔 마음을 기울이면 얼마나 반가울까요. (4343.8.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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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7] 씨앗콩

 올 칠월에 멧기슭에 깃든 시골집으로 들어오면서 늦깎이 텃밭 일구기를 했습니다. 칠월에야 씨앗을 심어 무엇을 언제 거두느냐는 소리를 들었지만, 조그마한 옥수수랑 아욱이랑 갓이랑 무랑 요모조모 얻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콩을 거두는데, 조금 더 일찍 따야 했으나 이래저래 다른 일 때문에 젖히거나 잊은 채 지냈습니다. 거름 한 번 제대로 내지 않고 텃밭을 일구었으니 참말 엉터리 텃밭농사였습니다. 그러나 땅이랑 햇볕이랑 비랑 바람은 이 어처구니없는 사람들 엉망진창 텃밭에도 고운 손길을 내밀어 콩알이 제법 열렸고, 이듬해 다시 심을 씨앗콩을 어느 만큼 갈무리하도록 선물을 베풉니다. 콩밥을 한다면 고작 두어 끼니 먹으면 그만인 콩알이지만, 씨앗콩으로 삼는다면 텃밭 두어 고랑쯤 알뜰히 심을 만큼 됩니다. 얼마 안 되는 콩이기에 다른 농삿집처럼 콩줄기를 뽑아 마당에 죽 펼쳐 놓고 도리깨로 두들겨 콩알을 얻지는 못합니다. 그냥 밭도랑에 쪼그려앉아 콩꼬투리를 하나하나 따서 두 손으로 톡톡 열어 한 알 두 알 꺼냅니다. 처음에는 이 일을 혼자서 다 하다가는, 아빠 곁에 나란히 쪼그려앉은 아이한테 ‘아빠가 벌려 놓은 꼬투리’에서 알 꺼내는 몫을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아이는 스물여덟 달에 첫 씨콩 갈무리를 함께합니다. (4343.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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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쥐는 마음


 책을 아끼는 마음은 사람을 아끼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아끼는 마음은 곧 책을 아끼는 마음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책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책을 돌보는 마음은 사람을 돌보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돌보는 마음은 곧바로 책을 돌보는 마음입니다.

 나는 헌책방을 다닐 때에 비로소 책을 아끼는 마음과 책을 사랑하는 마음과 책을 돌보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새책방을 다닐 때에는 그때그때 잘 팔리는 책이라든지 눈에 뜨이는 책이라든지 읽을 만한 책이라든지 찾을 뿐이었습니다. 잘 팔리는 책을 사서 읽든 눈에 뜨이는 책을 장만하여 읽든 읽을 만한 책을 살펴 읽든 하나도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책읽기는 그저 책읽기입니다. 책을 읽고 그치는 책읽기요 또다른 책읽기로 뻗는 책읽기입니다.

 나는 책읽기만 되풀이하는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책읽기는 즐겼지만 또다른 책읽기로 뻗기만 하는 책읽기는 즐기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한 줄이 가슴에 와닿으면 이 한 줄 때문에 책을 샀고, 책을 읽다가 마지막 줄에 이르러 뒤통수를 쿵 내려치듯 엉터리 모습을 본다면 이 아까운 책을 아깝다 여기지 않고 내다 버렸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참말을 하는 책이어야 읽을 만하다 여겼지만, 참말만 있고 참삶이 없다면 그리 내키지 않습니다. 참말만 가득하고 참삶은 한 가지조차 없다면, 제아무리 참말이 훌륭하거나 거룩하달지라도 못마땅합니다.

 나 스스로 참삶을 일구며 길어올린 참말일 때 가장 반갑고 즐겁습니다. 나부터 참삶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가운데 얻은 참말일 때 가장 고맙고 벅찹니다.

 책을 쥘 겨를이 없이 아이하고 부대낍니다. 아이가 낮잠 없이 늦게까지 안 자려고 버둥거리다가는 이듬날 아침이나 새벽에 아주 일찍 깨어나면 그지없이 죽을맛입니다. 아이 아빠는 하루 내내 아이한테 시달리면서 몸이 지쳤는데, 그나마 아침나절에 글조각 좀 붙든다든지 책귀퉁이 집어들 무렵부터 또다시 아이하고 복닥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습니다. 내가 내 아이만 한 나이였을 적에 틀림없이 나 또한 우리 어머니를 이렇게 힘들도록 했을 테니까요. 나는 내 아주 어린 나날은 떠올리지 못하는데, 나도 내 아이처럼 아침잠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2∼1987년에 으레 새벽 여섯 시나 다섯 시 반쯤 일어나 아버지와 함께, 또는 아버지 뒤에 아침을 먹고 나서 일찌감치 학교길에 올랐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 때에는 조금 늦게 갔으나 2학년 즈음부터는 학교에 닿은 때가 으레 아침 일곱 시 안팎이었습니다. 학교 지킴이 아저씨조차 아직 나오지 않은 때, 학교문이 잠겨 있어 으레 담을 타고 학교로 들어와서 조용히 내 자리에 앉아 하루를 열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내 아이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며 어머니가 하루일을 열기 번거롭도록 했는지 모릅니다.

 글조각 하나 건사하지 못하며 이맛살을 찌푸리다가 이맛살을 가만히 문지릅니다. 히유 한숨을 쉽니다. 아이를 무릎에 눕히다가는 아이 사진을 몇 장 찍다가는, 그래 이렇게 일찍 깨어났으니 일찍부터 배고프겠다고 생각합니다. 얼른 아침을 차려 주어야겠습니다. 어제도 못 쓰고 오늘도 못 쓰는 글은? 글쎄, 언젠가는 쓸 수 있겠지요. 아이가 아침을 참말 일찍 먹고 나서 혼자 책을 읽는다든지 인형하고 놀아 주면서 제 아빠가 일하도록 도와준다면 그때에는 쓸는지 모르지요. (4343.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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