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45 : 환경책 읽기

 지난 2007년 봄, 인천 배다리에 ‘사진책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내 마음을, “나중에 내가 읽은 책들로 아기자기하게 펼쳐 보이는 작은 도서관을 열고 싶다”는 꿈으로 이었습니다. 나라나 지자체 도움 없이 오로지 내 손으로 앙증맞을 책쉼터 하나 일구고 싶었습니다.

 이제 이 도서관은 도시를 떠나 시골 멧기슭 한켠으로 옮겼습니다. 집식구 몸을 생각하고 내 몸을 한결 사랑하며 아끼고픈 마음에, 시골자락 품에 안깁니다. 시골‘구석’에 도서관을 열면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들다거나 누가 찾아오겠느냐 하지만, 참말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이라면, 시끌벅적 어수선한 도시에서가 아닌 시골자락에서 조용히 책을 즐기러 마실을 오리라 생각합니다. 인천에 사진책 도서관을 열 때에도 적잖은 분들은 “어차피 열려면 서울에 열어야 사람들이 더 쉽게 자주 찾아오지 않겠느냐”고 말씀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왜 자꾸 서울로만, 다시 서울로만, 또 서울로만 가야 하나 아리송해요. 인천에도 좋은 사진책 도서관 하나 누군가 열고, 부산이랑 제주랑 목포랑 춘천이랑 진천이랑 문경이랑 옥천이랑 …… 우리네 터전 골골샅샅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책쉼터 하나씩 있으면 더 아름다우며 재미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사진책으로 도서관을 열었으니, 누군가는 만화책으로, 그림책으로, 인문책으로, 철학책으로, 역사책으로, 문학책으로, 어린이책으로, 수필책으로, 잡지책으로, 청소년책으로, 과학책으로 …… 온갖 갈래 살가운 도서관을 열면 더 기쁘리라 생각해요. 자동차 아닌 시골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슬금슬금 찾아가서 책을 즐기다가는 “어어, 이 책들도 좋은데, 이 둘레 멧길과 숲과 논밭 또한 참으로 좋은걸.” 하고 느낀다면 책을 내려놓고 사뿐사뿐 숲마실이나 시골마실을 맛봅니다.

 책이란 삶이고, 삶을 담은 이야기가 책이며, 책이란 다시금 사람이요, 사람이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책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책이란 사랑이며, 사랑 나누는 사람들 삶을 책으로 여미어 놓습니다.

 온누리에는 수많은 책이 있습니다. 제가 꾸민 도서관에도 숱한 책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가며 읽을 책을 그러모으는 도서관인데, 이 도서관에 깃든 책을 모든 사람이 모조리 읽을 수 없을 뿐더러, 어느 한 사람이든 이 책을 제 것으로 삼지 못합니다. 책이란, 이 책을 써낸 사람 슬기와 얼과 마음을 담으면서 누구나 이 슬기와 얼과 마음을 받아먹도록 하니까 섣불리 한 사람이 혼자 차지할 수 없는 가운데, 고맙게 받아먹은 슬기와 얼과 마음에 새삼스레 내 슬기와 얼과 마음을 담아 뒷사람한테 이어줍니다. 돌고 돌며, 잇고 잇는 책이에요.

 이들 책이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살찌우며 사람을 살피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모든 책은 새로운 책이면서 헌책이고, 어느 책이든 내 삶을 담는 책, 곧 환경책입니다. 자연사랑 환경사랑을 외쳐야 환경책이 아닙니다. 《수달 타카의 일생》도 빛나는 환경책이고 《아톰의 철학》도 예쁜 환경책이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도 멋스런 환경책이에요. 남녘나라에서는 참 안 읽히는 환경책인데, 우리 스스로 우리 누리를 바르며 착하고 참다이 바라볼 때 고이 읽히리라 생각하며 기다립니다. (4343.1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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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가을날 골목집 꽃그릇에는 마지막 푸성귀가 자란다.

 - 2010.11.26. 인천 동구 송림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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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앞서까지 모자라면 안 쓰겠다고 우기던 아이가 웬일로 이 모자를 쓴다. 이 모자를 두 번째 선물받는데 처음에는 아주 끔찍히 싫어하더니, 이번에는 안 벗는다며 떼를 쓴다. 그래 보았자 한 시간 갔나... 한 시간이 지나니 또 다시 안 쓴다. -_-;;;

 - 20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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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글 읽기


 나는 ‘서평글’을 쓰지 않는다. 나는 ‘느낌글’만 쓴다. 책을 읽은 뒤에 글을 쓴다면 ‘책느낌글’을 쓴다.

 내가 읽은 책 하나를 놓고 느낌글을 쓰기 앞서, 또는 쓰고 난 다음 다른 사람들이 썼을는지 모를 느낌글을 찾아보곤 한다. 그러나 거의 언제나 ‘느낌글’을 만나지 못하기 일쑤이다. 거의 언제나 내가 마주하는 글이란 ‘서평글’투성이일 뿐이다.

 사람들은 서평글을 신나게 쓴다. 느낌글을 쓰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본다만, 참말, 책을 읽은 느낌 그대로 조곤조곤 적바림하는 사람은 왜 이렇게 안 보일까. 책을 읽었으니 ‘책 읽은 느낌 담은 글’을 쓰면 되지 않나. 왜 자꾸 ‘서평글’에 옭매여 버리는가.

 누가 책을 선물해 주었든, 무슨무슨 행사가 있어 책을 거저로 받든, 책을 읽었으면 내 느낌을 적으면 된다. 구태여 줄줄줄 칭찬만 늘어놓는다든지, 책을 제대로 못 읽은 티를 내면서 어줍잖게 겉훑기 얘기를 늘어놓을 까닭이 없다. 이럴 바에는 아예 글을 안 써야 낫다. 품과 겨를이 아깝다. 더욱이, 느낌글을 써내지 못한다면, 이렇게 읽은 책은 그 사람한테 도움이 안 된다. 나 스스로 읽어서 내 삶을 일구도록 이끄는 좋은 책이라 한다면 느낌글을 쓰도록 절로 이끌기 마련이다. 좋은 책 하나를 읽은 사람은 쓰지 말라 해도 느낌글을 쓸밖에 없다.

 느낌글이란 눈으로 읽을 수 있도록 적바림한 글인 가운데, 몸으로 느끼거나 헤아릴 만한 몸짓이곤 하다. 글을 모르거나 글쓰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좋은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삶이 바뀐다. 스스로 삶을 바꾸며 거듭난다.

 참말이지, 서평글은 척 보아도 알아챈다. 서평글을 쓰는 사람은 제아무리 좋은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삶을 바꾸지 못하고, 삶을 바꾸어야 하는 줄 깨닫지 못하며, 삶을 바꿀 생각을 처음부터 안 품는다.

 책은 지식이 아니다. 책을 읽는다고 지식을 쌓지 못한다. 더 많은 책을 읽는다고 더 똑똑해지거나 더 훌륭해지지 않는다. 리영희 님 책을 읽었다 해서 우리 삶터를 굽어살피거나 꿰뚫는 눈이 한결 깊어지지 않는다. 리영희 님이 읽어낸 ‘우리 삶터 속내’를 조금은 엿볼 뿐이다.

 책은 삶이다. 내가 꾸리는 삶이 내가 읽는 책이다. 내가 꾸리는 삶만큼 나 스스로 책을 알아보고 집어들며 읽는다. 내가 꾸리는 삶을 나 스스로 어떻게 다스리거나 추스르느냐에 따라, 내가 읽고자 하는 책을 고르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서평글 아닌 느낌글을 쓸 수 있다면, 이 나라 이 터전이 이 모양 이 꼴은 아닐 테지만, 이 나라 이 터전이 이 모양 이 꼴인 채 그예 흐르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느낌글 아닌 서평글만 잔뜩 쏟아내는 틀에서 허우적거린다는 소리라고 여긴다. (4343.1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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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평글과 느낌글
    from 훌륭한 소년이 될 거에요? 2010-12-08 12:56 
    어렸을 때 독후감이나 일기를 써서 가끔 상을 받았다. 방학 숙제로 써야하는 독후감을 여러 편 써서 친구들 숙제를 대신 해 준 적도 있었다. 댓가를..
 
 
hnine 2010-12-08 12:34   좋아요 0 | URL
책을 중간에 읽다 말지 않고 어쨌든 끝까지 다 읽었다면 어떤 느낌이든 그 느낌이 남기 마련이겠지요. 그 느낌을 여기 서재라는 공간에 남겨 놓습니다. '마이 리뷰' 라는 카테고리가 있어서 거기에 올립니다. '서평'이라고 생각하며 쓰고 올린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평'을 할 자격도 안되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저는 다른 분의 서재에서 보는 많은 리뷰들도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읽고 있거든요. 제가 가는 서재들이 비슷한 경향을 띠어서 그런지는 몰라도요.

파란놀 2010-12-08 12:26   좋아요 0 | URL
님과 같은 느낌과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즐겁게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너무 많은 글들이... 서평글 형식으로 아무렇게나 대롱대롱 매달린 채, 정작 책 하나가 태어나기까지 어떠한 보람과 웃음과 눈물이 서렸는가를 보지 못하도록 물을 흐리는구나 싶어요.

좋은 독자 한 사람이라면 좋은 책 하나는 기쁘다는 말처럼, 어쩌면, 좋은 느낌글 하나 바라기란 더없이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제가 지나치게 바라는지 모르지요... ㅠㅜ

ㅇi 2010-12-08 10:54   좋아요 0 | URL
옳으신 말씀입니다... 느낌을 표현해내기 힘드니 자꾸 어줍잖은 흉내만 내려는지도 모르겠네요. 부끄럽게 읽고 갑니다. 올려주신 글에는 늘 그 느낌이라는게 있어서 차분해지는 것 같네요.

파란놀 2010-12-08 12:26   좋아요 0 | URL
그냥,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쓰고, 없으면 없는 대로 나눌 수 있으면 좋은 삶이랍니다...

파란놀 2010-12-08 15:18   좋아요 0 | URL
[훌륭한 소년이 될 거에요?] 님...
다음 편지를 거의 안 쓰느라 먼댓글로 답글을 못 남기고 ^^;;;;

책을 지식으로 여기든, 삶을 바꾸려 하면서 읽지 못하든, 책을 그저 읽기만 하면 그예 책에 파묻혀 버리고 말아, 정작 '내가 책을 왜 읽었더라?' 하는 마음을 잊는답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삶을 바꾸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 내 삶을 잃고 말아요.

책을 읽은 다음 쓰는 느낌글에서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냥 좋으니 쓰는 글이어야 하고, 속에서 샘솟으며 터져나오는 글이 아닐 때에는, 이런 글을 쓰는 내 삶이 하나도 아름다워지지 못한답니다...

(나중에라도 이 댓글도 함께 읽어 주소서~)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내 삶은 내가 사랑해야 아름답다
 [책읽기 삶읽기 29] 유미리,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일본책 이름은 “私語辭典”이었으나 한국책 이름은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인 유미리 님 산문책을 읽다. “내 말 사전”이랑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는 하늘과 땅처럼 다른 느낌이요 흐름이요 이야기일 텐데, 왜 한국책에는 이런 이름이 붙을까. 누가 이런 이름을 붙였으려나. 문학을 하는 유미리 님은 ‘국어사전(일본에서 살아가니 일본어사전이라 하겠지)에 풀이된 말뜻으로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지 못한다’고 여겨, 당신이 살아온 나날을 곱씹으면서 “내 말 사전”이라는 책이름을 붙였을 텐데, 한국책에서 책이름을 좀 고쳐서 멋스러이 보인다든지 눈에 뜨이게 한다든지 책 좀 팔아 보겠다든지 한달지라도, 작은이름으로 “내 말 사전”으로 나왔던 책임을 알아보도록 해 주어야 옳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옅은 빛 잔 글씨로 “The Private Glossary”라 적히기는 했구나. 그런데 일본책에는 이런 영어가 아닌 한자로 책이름이 적었잖은가.


.. 사랑이란 “피를 흘릴 만큼 타자에게 관여하는 일”이란 정의도 있을 수 있다. 사전에는 인생이 없다 … 진상을 폭로해 버릴까 싶기도 하지만, 진상 따윈 들을 귀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 모두들 진상보다는 소문을 좋아하는 것이다 … 남의 편지(마음)를 훔쳐보다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서 얼마 후 그와 헤어졌다 ..  (8, 40, 56쪽)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책이름을 놓고 궁시렁거려 본다. 왜냐하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에는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라는 말마디하고 유미리 님 삶하고는 그닥 이어졌다고는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미리 님은 당신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즐긴다. 더도 덜도 아닌 당신 고운 삶임을 헤아리며 받아들인다. 싫든 좋든 고맙든 달갑잖든 하루하루 목숨줄을 잇는다. 그렇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프던 나날이 길었던 만큼, 또 이런 나날이 있었던 만큼, 이와 같은 나날 이야기를 조곤조곤 적바림한다.

 누구한테 드러내 보이려고 적바림하는 글이 아니다. 그예 쏟아지는 글이다. 누구한테 알린다거나 참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하고 밝히는 글이 아니다. 그예 살아가는 하루하루 틈틈이 솟아오른 글이다.

 조그마한 사람으로서 조그맣게 살아가는 유미리 님이라고 느낀다. 수수한 사람으로서 수수한 삶을 보듬는 유미리 님이라고 여긴다. 당신한테 글쟁이나 문학꾼이라는 이름표를 붙이지 않는다면, 어디에서나 흔히 보는 여느 ‘애 엄마(이 책을 내놓을 때에는 아가씨)’이다. 잘날 구석이 없으나 못날 구석도 없는 소담스러운 목숨이며 삶이다.

 문득 궁금하기는 하지만, 또 앞으로는 어떠할는지 모르는데, 유미리 님이 도시 한복판 사람이 아니라 시골 한구석 사람이라면 어떠한 글을 쓰려나. 아이와 둘이서 꾸리는 삶은 어떠한 결 어떠한 무늬 어떠한 빛깔일는지 궁금하다. 이제 아이가 제법 컸을 텐데, 아이하고 어떤 이야기를 어떤 살림살이로 주고받는지 궁금하다.

 당신이 배를 앓으며 낳은 아이를 젖이 아프도록 물리고 몸이 고되도록 돌보면서 키우는 나날을 어찌 돌아보는가 궁금하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유미리 님 다른 산문책 《생명》에 잘 나왔으리라 본다. 《생명》도 곧 읽을 생각인데, 2000년에 나온 작품 《생명》이 아니라, 2010년이나 2011년 삶자락 목소리를 듣고 싶다.


.. 나는 여자를 싫어한다. 초등학교 시절에 나를 괴롭힌 사람들이 모두 여자였던 탓일까 … 내가 처음으로 성욕을 느낀 것은 몇 살 때였을까. 성교가 아니라, 사람과 몸을 나누고 싶다, 누군가 나를 만져 주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이라면 아주 오랜 옛날부터 품고 있었다 … 나는 여자와 작가를 양립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그런 데다 엄마나 아내 역할까지 하라고 하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  (18, 34, 99∼100쪽)


 아이하고 하루 스물네 시간을 한 주 이레, 한 달 서른 날을 꼬박 붙어 지내는 동안, 웃고 떠들며 안고 어르기도 하지만, 이맛살 찌푸리며 꾸중을 하기도 한다. 아이 엄마 말마따나 아이 아빠는 아이 눈높이하고 똑같거나 어쩌면 아이 눈높이보다 낮기 때문에 아이한테 토라지기까지 한다. 하기는, 아이한테 골을 부리는 아빠란 어디에 있을까. 아빠가 아이를 달래기도 하지만, 아이가 아빠를 달래기도 한다. 아이랑 아빠가 다르다면, 아빠는 아이가 먹을 밥을 차리고 아이가 입을 옷을 빨며 아이가 잠들 잠자리를 추스른다. 아빠는 아이를 수레에 태워 자전거를 달리고, 아이가 먹을 밥거리를 벌어서 값을 치르며, 아이가 누릴 물건을 가방에 짊어지고 다닌다.

 아빠라는 자리는 어떤 삶일까. 엄마라는 자리는 어떤 삶이려나. 아이라는 자리는 또 어떠한 삶인가.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내가 아이였을 적을 늘 돌이킨다. 아이와 복닥이면서 내가 아이하고 복닥이는 이 느낌이, 내가 아이만 한 나이였을 때에 내 아버지와 어머니한테는 어떠했고, 우리 옆지기는 당신 어머니와 아버지한테는 어떠했으려나 하고 곱씹는다. 나는 나대로 내 삶을 읽지만, 아이는 아이대로 아이 삶을 읽을 텐데,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서로 제 삶을 여민다. 유미리 님 산문책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를 읽으며 유미리 님 삶을 돌아보는 가운데 내 삶을 돌아본다. 유미리 님은 유미리 님대로 일본땅에서 ,나는 나대로 한국땅에서, 저마다 슬기로우며 즐거운 하루하루를 맞이할 노릇이라고 느낀다.


.. 여성은 어디서든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눈썹, 복사뼈, 엉덩이 사이에서도 … 성은 환상에 지배되기가 예사인데, 여자들이 남자들의 환상을 받아들여 악전고투하는 꼴은 어째 좀 이상하다 … 나 자신은 욕망이 강한지 약한지 잘 모른다. 내 방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청소기도 없다. 전기밥솥도 없다. 일반적인 집에는 흔히 있는 것이 없는 셈인데, 별로 갖고 싶은 생각도 없다. ..  (48, 71, 118쪽)


 번역은 영 마땅하지 않다. 첫머리부터 “말을 사용(使用)한다(7쪽)”라 적바림하더니, 마지막까지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感謝)를 드립니다(182쪽)”라 적바림한다. 이렇게 번역을 해도 될까. 이런 번역도 번역이라 할 만한가. 이 책을 옮긴 한 사람을 깎아내리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왜 우리네 번역은 이러한 말굴레에서 허덕이는지 슬프다. 왜 우리네 창작꾼이나 번역꾼은 우리 말글을 조금 더 사랑하거나 아끼지 못하는지 서글프다. 왜 우리네 문학은 더욱 넉넉하며 푸진 말잔치가 아니라, 더욱 쪼그라들거나 짓눌린 말다툼으로 그치는지 서운하다.

 “섹스는 의사(擬似)적인 죽음이며(23쪽)”는 번역이 아니다. 일본글을 우리 말이 아닌 한글로만 적은 글이다. “실제와 비슷하다”는 뜻이라는 ‘擬似’인데, 일본사람이 쓰는 일본말 ‘의사적’을 굳이 고스란히 살려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홍세화 님은 우리 말로 ‘너그러움’이라 하지 않을 뿐더러, 한자말로 ‘관용’이라고도 않고 프랑스말 ‘똘레랑스’를 쓰고 말았다. 번역쟁이이든 지식꾼이든 이런 말은 섣불리 쓰면 안 된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눌 말을 써야 옳다. 여느 사람들과 수수하며 수월하게 주고받을 말을 깨달아야 아름답다. “화제(話題)의 대상(對象)으로 삼는다(73쪽)” 같은 말마디는 “이야깃거리로 삼는다”라 하면 넉넉하고, “(죽고 만 고양이) 검둥이의 존재감(存在感)을 불식(拂拭)할 수 없을 것 같다(42쪽)”는 “(죽고 만 고양이) 검둥이를 내 마음에서 지울 수 없을 듯하다”로 다듬어야 알맞다고 느낀다. “우리 부모님”이라 했다가 “나의 어머니(153쪽)”라고 적바림한 번역은 귀엽다고 해야 할까나. 그나마 “나의 부모님”이라 하지 않았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려나. 창작이든 번역이든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다스리지 못하면, 이렇게 책으로 엮은 문학을 읽는 사람한테 얄궂은 말버릇이 퍼진다. 얄궂은 말버릇은 아주 더디 차근차근 스민다. 어느 하루 갑작스레 확 바꾸지 않는다. 차츰차츰 젖어들도록 이끈다.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라는 산문책이 유미리 님한테는 “내 말 사전”임을 헤아린다면, 이러한 산문책을 우리 말로 옮길 때에 ‘어떤 우리 말’로 옮겨야 하고, 얼마나 글을 더 가다듬거나 손보아야 하는가를 한결 깊이 살피며 돌아보아야 한다고 느낀다. 글 한 줄과 낱말 하나 더욱 마음을 쏟아 바로잡거나 어루만져야 한다고 느낀다.


.. 한국에서 온 유학생 A가 다니는 대학교에 놀러 갔을 때, A의 친구와 함께 전철을 타게 되었다. 그 친구가 이름을 묻기에, “유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럼 한국사람?” “네.” “한국사람치고는 일본말 굉장히 잘하네요.” “일본에서 태어났으니까.” “그럼 일본사람이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재일한국인 2세인데요.” “그게 무슨 소리죠?” 나와 A는 어리둥절하여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녀는 재일한국인이란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67쪽)


 유미리 님이 재일한국인(또는 재일조선인, 또는 그냥 한겨레)이 아니었다면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같은 책을 쓸 수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일본사람으로 살았어도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같은 책을 쓸는지 모르는데, 그때에는 이 책에 실을 이야기가 아주 다르겠지. 아니, 재일한국인이 아닌 ‘일본사람’ 눈으로 ‘한국에서 온 유학생 아무개’가 참 바보스럽거나 어리숙한 줄을 깨닫는다면 어떤 목소리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한국 역사를 아는 일본사람이 한국 역사를 모르는 한국사람을 마주할 때에는 어떤 느낌일까. 아무래도, 일본 역사를 아는 한국사람이 일본 역사를 모르는 일본사람을 마주할 때하고 엇비슷한 느낌일까. 꼭 같지는 않을 터이나 살짝이나마 닮은 구석이 있다고 느낄까.

 “자기 과거의 비참한 사건을 재산이라고 여기는 감각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151쪽).”라는 대목에 마지막으로 밑줄을 긋는다. 책은 세 번째 읽으며 꼭 덮는다. 이제 이 책은 오래오래 가슴에 묻자. 유미리 님 다음 산문책을 읽자.

 우리 집 딸아이는 앞으로 열 해쯤 제 엄마 아빠랑 함께 살아가고 나서 이 책을 들출 수 있겠지. 아쉽게 판이 끊어졌으나 아버지가 이 책을 고이 장만해서 예쁘게 읽은 다음 잘 건사해 놓을 테니까, 새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아보기 힘들 2020년에도 반갑게 마주할 만하리라 본다. 그나저나, 2020년이나 2030년에는 유미리 님 산문문학을 한국땅 사람들이 어떻게 돌아볼까 궁금하다. 유미리 님이 환갑 나이를 넘어선 뒤에는 한국땅 사람들은 이녁 문학을 어떻게 살피며 곱씹을는지 궁금하다. (4343.12.8.물.ㅎㄲㅅㄱ)


―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유미리 글,김난주 옮김,민음사 펴냄,2000.4.24./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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