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엄마·글쟁이


 애 아빠인 나는 늘 생각한다.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집에서 아이랑 어머니랑 둘이 어울려 놀라 한 다음 혼자서 볼일을 보러 다닐 수 있다고. 그러나,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어머니가 집에서 조용히 쉬면서 둘째가 무럭무럭 제자리를 잡으며 차분히 설 수 있게끔 돕고, 아버지 되는 사람이 아이랑 마실을 다니며 볼일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내가 애 엄마이면서 글쓰는 사람이라면, 내가 시골집을 떠나 서울로 볼일을 보러 다닌다 할 때에 마땅히 아이를 데리고 다니지 않겠느냐 하고 생각한다. 언제나 아이를 곁에 두어야 하고, 늘 아이를 보살펴야 하며, 노상 아이가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도록 마음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거의 모든 남자들과 아빠들은 아이가 갓난쟁이일 때부터 도맡아 돌본다거나 아이를 데리고 다닌다거나 살림을 꾸린다거나 하지를 못하거나 않는다고 느낀다. 아이랑 함께 살아가는 고단함과 즐거움에다가 힘겨움과 아름다움을 마음으로도 살피지 못할 뿐 아니라, 몸으로도 느끼지 못하는구나 싶다.

 모든 애 아빠는 애 엄마와 같은 마음이요 삶이며 이야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애 엄마는 애 아빠와 같은 마음이나 삶이나 이야기일 까닭은 없다고 본다. 서울마실을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오는 날, 새벽에 조용히 먼저 일어난다. 아이는 고요히 잠잔다.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켜 본다. 영화 〈푸른 산호초〉가 흐른다. 꽤 여러 번 흘깃 보았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적은 없다. 언제였나, 옆지기랑 이 영화를 보다가, ‘바닷물 속에서 벌거벗고 헤엄치는 두 젊은이’가 나오는 대목에서 자지랑 보지를 뿌옇게 해 놓은 모습을 보며 짜증스럽다고 말했던 일이 떠오른다. 왜 가려야 하지? 왜 부끄럽다 여기지? 열아홉 살부터 볼 수 있다는 영화라고 한다면, 자지랑 보지를 가릴 까닭이 있나? 이 영화 〈푸른 산호초〉는 너그러우며 너른 자연 품에 안긴 채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들 삶을 보여주는데, 왜 자지랑 보지를 가리나? 이네들한테는 젖꼭지이든 자지이든 보지이든 머리털이든 복숭아뼈이든 똑같다. 이처럼 억지스레 뿌옇게 가리면서 외려 아름다운 삶과 사람과 삶터와 자연을 놓친다.‘뿌연 자리’에 엉뚱하게 더 눈길이 가고야 만다. 자지털이나 보지털이나 겨드랑이털이나 콧털이나 머리털이나 다를 구석이 없다.

 한창 글쓰기를 할 생각이었으나, 그만 영화 〈푸른 산호초〉에 빠져들고 만다. 영화 〈푸른 산호초〉에 나오는 젊은 남자는 섬에서 떠나고 싶어 안달을 한다. 젊은 여자는 애써 섬에서 떠날 마음이 없다. 젊은 남자는 여자한테 골을 부릴 뿐 아니라 뺨을 때리기까지 한다. 여자는 뺨을 맞았는데에도 손찌검을 하지 않는다. 가만히 기다리고 지켜본다. 이윽고 둘은 사랑놀이 열매로 아이를 낳는다. 아이를 배어 낳는 줄 하나도 모르던 두 사람, 아이한테 젖을 물려야 하는 줄조차 모르던 두 사람, 차츰차츰 아이하고 살아가는 나날이 길어지면서 비로소 젊은 여자가 왜 섬을 떠나려 하지 않는가를 젊은 남자도 깨닫는다. 큰 배가 섬 둘레로 다가오며 이 둘을 밖으로 나가도록 도와주려 하지만, 일부러 섬 안쪽 깊이 들어가며 숨는다.

 텔레비전도 예방접종도 라면도 자가용도 비행기도 여행도 연속극도 책도 사진기도 일기장도 볼펜도 침대도 옷가지도 옷장도 신발도 모자도 돈도 은행계좌도 …… 아무것 하나 없다 할 만한 외로운 섬인데, 둘을 넘어 셋은 섬에서 즐겁다. 섬에서 아름답다. 섬에는 바로 바다가 있고 나무와 풀이 있으며 먹을거리가 있는데다가 파란하늘과 맞닿은 파란바다에 물고기랑 뭇목숨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서로서로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사람이 무엇인가를 깊이 깨달으며 ‘살결이 누렇게 익은 흰둥이’로서 예쁘게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애 아빠로서 생각한다. 여느 남자들은 글을 쓰고 싶다면 애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남자들은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고프다면, 집살림을 도맡거나 거의 다 하면서 아이를 보살피거나 가르치면서 글을 쓰든 사진을 찍든 그림을 그리든 해야 한다고. 남자들은 젊거나 늙거나 어리거나 하나같이 어리석고 어리숙하며 어리벙벙하다. 아이를 낳고 뼈와 살을 바쳐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는 그예 바보일 뿐이다. (4343.12.1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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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히유, 사흘에 걸쳐 아이랑 둘이서 서울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안고 다니느라 팔다리와 허리가 쑤시고 결려 쓰러질 판이다. 몇 가지 글조각 끄적이고 얼른 곯아떨어져야겠다. 아무튼, 소식이나마, 인사나마 남기고 쓰러져야지... @.@ 

 

ㄱ.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ㄴ. 책 헌책방 삶 

ㄷ. 사진책 읽는 즐거움 

 만세...를 불러야 할까. 이 세 가지 책을 바탕으로, 또다른 세 가지 책이 가지를 치고, 이 여섯 가지 책을 발판 삼아 해마다 새로운 책을 꾸준하게 내놓을 밑틀을 얻는다. 책을 내주려 하는 분들은 한결같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참말, 신나게 책을 쓸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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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보는 마음


 예뻐 보이는 그림을 보여주려고 영화를 찍지 않으며, 이렇게 하려고 영화를 찍는다면 부질없습니다. 재미나 보이는 줄거리를 들려주려고 영화를 찍지 않으며, 이렇게 한다면 영화를 찍는 일이 덧없습니다. 확 잡아당기는 짜임새를 뽐내려고 영화를 찍지 않으며, 이러한 영화라면 영화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습니다. 이름난 배우를 수두룩히 받아들여 돈을 벌려고 영화를 찍지 않으며, 이리 한다면 영화는 아주 형편없이 되고 맙니다. 빼어난 감독이라든지 넉넉한 감독이 있다든지 해서 영화가 아름다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영화 하나 찍어 살뜰히 나누는 길이란, 영화 촬영기를 손에 쥔 사람들 마음밭에 땀이라는 씨앗과 사랑이라는 손길을 바쳐 맛나고 싱그러울 푸성귀나 곡식을 일구는 길입니다. 영화를 보는 사람은 재미 삼거나 시간 죽이기를 하거나 이름난 작품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애써 짬을 내어 영화를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영화를 본다고 한다면, 이 영화 하나로 내 마음이 살찌면서 아름답게 거듭나도록 이끌고 싶기 때문입니다. 영화 보는 마음이 고스란히 살아숨쉰다면, 책을 보는 마음 또한 가지런히 살아숨쉽니다. (4343.12.1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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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책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구석구석 아주 천천히 살피며 읽습니다. 오자와 마리 님 새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 2권이 막 나와, 출판사에 볼일이 있어 서울마실을 하는 길에 홍대 앞 〈한양문고〉에 들러 이 만화책을 두 권 삽니다. 한 권은 저랑 옆지기랑 읽을 책이고, 한 권은 서울마실을 와서 만날 고운 분한테 선물로 드릴 책입니다.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일부러 두 권씩 장만합니다.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을 선물로 받을 분이 얼마나 사랑해 줄까 하고 헤아리기만 해도 한결 즐겁습니다. 이 책을 선물로 받아 주는 분이 사랑해 주지 않더라도, 제 마음 깊은 사랑을 담아 드렸기 때문에 그예 즐겁습니다. (4343.12.1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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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8] 눈밭

 시골집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시골아이인 우리 사랑스러운 딸아이 손을 맞잡으며 서울 마실을 나오는 길입니다. 시골버스가 천천히 달리는 시골길까지 눈이 쌓이지는 않으나, 온 시골 멧자락에는 눈이 하얗게 덮입니다. 그리 높지는 않으나 끝없이 이어진 봉우리마다 눈구름이 걸쳤고, 눈구름 걸친 둘레는 마치 딴 나라인 듯한 모습, 아니 그예 눈나라로구나 싶은 모습입니다. 스위스 눈나라도 이런 모습일 테고 일본 맨 위쪽 섬나라 또한 이런 모습이겠지요. 설악산이나 지리산이나 금강산이나 백두산도 매한가지일 모습이 아니랴 생각합니다. 아주 높거나 깊은 멧자락만 눈나라는 아닙니다. 조그마한 멧기슭과 야트막한 멧부리야말로 아기자기하면서 어여쁜 멧길 멧숲 멧터일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아이도 아빠도 시골버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눈밭을 바라봅니다. 문득, 서울 마실을 하지 말고 잿고개 이 예쁜 터에서 내려 도로 집으로 눈길을 밟으며 눈밭을 누리며 눈꿈을 꾸면서 천천히 한 발 두 발 씩씩하게 거닐며 온몸이 꽁꽁 얼어붙더라도 호호 입김을 불며 돌아가면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닿으니 눈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4343.1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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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2010-12-09 19:52   좋아요 0 | URL
눈밭만 없다 뿐입니까..
풍경 살벌하죠, 공기도 나쁘죠..-_-

저는 볕도 안들고 공기도 안좋은 동네 살다가
외곽지로 나와서 공기도 전보다 좋고 안방에 볕이 잘드니
기분이 저절로 좋아져요.
집은 전보다 더 늙은 집이지만 주변환경 덕에 전보다 기분 좋게 지내요.

파란놀 2010-12-10 12:22   좋아요 0 | URL
네, 좋은 삶터 좋은 이야기로 좋은 책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