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말(인터넷말) 2] 아이러브그린

 누리집이라는 곳을 만들자면 알파벳으로 주소를 적어야 합니다. 이러다 보니 ‘ilovegreen’ 같은 이름을 쓸밖에 없을 텐데, 누리집 주소는 알파벳이라 하지만, 누리장터 이름은 사랑스러우면서 고운 말로 붙이면 즐거웁지 않으려나요. 저는 제 누리집 이름으로 ‘hbooks’나 ‘hbooklove’를 즐겨씁니다. ‘헌책’과 ‘헌책사랑’을 이냥저냥 옮겨 본 이름입니다. (4344.1.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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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홀림길에서>(텍스트,2009)에 실은 글. 

 

90. Audubon's Birds of America (Audubon 그림/Artabrasm,1981)

 인천상륙작전을 했다는 날, 하루 내내 집에만 있던 아기와 자유공원으로 밤마실을 다녀온다. 마침 맥아더동상 옆을 스쳐 지나간다. 동상 앞에는 온갖 군부대 별들이 보내 온 꽃들이 놓여 있다. 나이든 아저씨들이 동상을 한참 올려다보며 ‘나라를 지켜 주었다’는 미국 장군을 기린다. 젊은 짝꿍도 꽃이 놓인 동상 앞에 한동안 서며 코 큰 흰둥이 장군을 기린다. 아기는 이러거나 저러거나 아랑곳 않고 둘레 꽃밭 앞에 쭈그려앉아 꽃잎에 살며시 손을 대면서 놀다가 쉬를 한다. “그래, 녀석아, 아빠가 여기에 쉬를 할 수 없으니 네가 아빠 몫으로 해 주는구나.” 해마다 이맘때에는 무슨무슨 관변단체에서 ‘베낭 3000개 선착순 선물 증정’을 한다면서 ‘맥아더동산 수호 궐기대회’를 연다. 지난 2008년에 이어 올 2009년에도 김동길 씨가 강연자로 나와서 ‘빨갱이 때려잡자’는 목소리로 핏대를 세웠다고 한다. 맥아더동상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얼추 열 해 앞서부터 나오지 않았나 싶은데(훨씬 더 앞서에도 있었겠지), 인천에는 한국전쟁 때 미국을 우러르는 동상이 여럿 있고 기념관도 있으며 미국이 개화기 때 군함으로 밀고 들어오며 맺은 한미수호통상을 기리는 높은 탑마저 있다. 개화기 때 일본집 또한 많이 남아 있으니, ‘다른 나라한테 짓밟힌 자취로 가득한’ 도시라 할 만하다. 고은 시인 같은 이는 ‘이제 와서 맥아더동상 허물어 무엇하느냐, 이 동상에도 역사가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옳은 소리이다. 김영삼 씨가 허문 총독부 건물에도 역사가 깃들어 있었겠지. 그런데 총독부 건물은 헐어도 되고 맥아더동상은 허물지 않아도 될까? 맥아더동상은 그대로 두면서 인천땅 수수하고 가난한 사람이 살아가는 골목동네는 깡그리 헐어도 될까? 목소리를 내려면 고르게 내야 하지 않을까? 장님한테 빛줄기가 된 한글 점글을 만든 박두성 님 집은 교회에서 주차장으로 쓴다며 허물렸고, 박두성 님 따님이 살며 수채화집으로 가꾸는 오랜 벽돌집(예전에는 병원이었고 예전에 쓰이든 병원기구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하다)은 재개발구역에 들어가 있다. 인천뿐 아니라 나라를 빛낸 큰별이라는 이름을 뒤늦게 받은 박두성 님이라지만, 또 미국에 ‘모세 할머니’가 있다면 한국에 ‘수채화 할머니 박정희’가 있는데, 이런 분들 삶자락 또한 함께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함께 내야 하지 않을까? 맥아더만 지키자고 목소리를 내면 그만인가? 미국에서는 ‘오두본’ 새 그림을 거룩하게 여기며 크고 멋진 책으로 꾸준히 새로 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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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홀림길에서>(텍스트,2009)에 실은 글. 

 

91. 까마귀의 죽음 (김석범 씀,김석희 옮김/소나무,1988)

 국민학교를 다닌 여섯 해에 걸쳐 학교에 갖다 내야 하는 돈이 참으로 많았다. 무어를 짓는다며 돈을 모으고, 교실에 ‘시청각교육’을 하겠다며 텔레비전을 놓는다고 할 때에도 돈을 모았다. 대놓고 돈을 모으는 일이 너무 잦아 때로는 ‘국화 화분을 사라’고 우리들한테 몇 그릇씩 몫을 나누어 주었고, 폐품수집은 학급과 학년마다 끝없이 싸움을 붙여 서로 옆 반 빈병과 신문지와 책을 훔쳐 오게까지 내몰았다. 다달이 방위성금을 내고 저축통장에 돈을 내라 했으며 전투기성금이 있었다. 동무들 가운데에는 ‘불량식품’이라는 문방구 먹을거리를 사먹느라 돈이 없는 녀석이 있기도 했지만, 주마다 한두 가지씩 있는 모금과 성금에 돈을 내기가 빠듯한 살림인 집안이 훨씬 많았다. 너무나 많은 성금이요 모금이었기 때문에 한 번에 500원을 내는 동무란 드물었다. 어쩌다 한둘이 500원을 성금으로 내거나 저축으로 내면 “우와!” 하면서 놀라 했고, 1000원을 내면 “이야!” 하며 기가 죽었으며, 부잣집 동무가 5천 원이나 1만 원을 내기까지 하면 끽소리를 하지 못했다. 명절을 치러 친척 어른한테서 돈을 얻은 다음에는 천 원짜리 한 장을 저축에 내기도 했는데, 이렇게 돈을 낼라치면 “바보야, 곧 또 돈을 내야 하는데, 500원씩 나눠서 내면 두 번을 채우고 300원씩 나눠도 세 번이 되는데!” 하면서 옆 짝꿍이 나무랐다. 그런데 이런 성금과 모금은 담임교사한테 매를 맞으면서 겨우겨우 메꾸고 채우고 했지만, 1986∼87년에 냈던 ‘평화의 댐 모금’은 죽을맛이었다. 나와 동무들은 텔레비전 소식을 들으며 홀랑 넘어가 “엄마 엄마 우리가 돈을 안 내어 평화의댐을 못 지으면 다 물에 잠겨 버린대요!” 하면서 졸라댔다. 그렇지만, 다른 성금은 ‘기본 300원 넘게’ 내도록 했고 전투기성금도 500원 넘게 내도록 했으나, 평화의댐 성금은 5천 원이었다. 5천 원이라니! 바나나 한 송이 아닌 한 가닥이 500원을 하던 때요, 짜장면 한 그릇이 150∼200원을 하던 때였는데. 이무렵 대통령은 퍽 자주 ‘카 퍼레이드’를 했고, 경인고속도로 들머리인 우리 학교는 틈나는 대로 길에 나란히 서서 대머리 대통령한테 손을 흔들어야 했다. 시위나 데모라는 말을 모르던 국민학생 때, 남동공단이나 만석동 쪽을 버스 타고 지나갈 때 으레 최루탄 냄새로 재채기를 했고, 동인천역 앞에 버스가 뚝 끊기고 고갯마루에 돌이 어마어마하게 깔린 모습에 등골이 오싹했다. 학교와 집과 신문방송에는 한 마디도 안 나온 ‘민주찾기 싸움’이 벌어지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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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글쓰기 삶쓰기 ㉤ 내 마음과 삶이 좋아서


 《동경괴동》이라는 만화책하고 《이치고다 씨 이야기》라는 만화책이 있습니다. 말사랑벗들이 만화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이름은 들었을는지 모르고, 만화를 좋아하지 않으면 이름이 낯설 수 있어요. 만화를 좋아하지만 《동경괴동》이나 《이치고다 씨 이야기》는 들추지 않을 수 있으며, 이 만화들을 읽었을지라도 이 만화가 말사랑벗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지를 헤아리지 못할 수 있어요.

 《동경괴동》은 ‘일본 도쿄’에서 정신병 치료를 받는 ‘괴물 같은 아이’ 넷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이치고다 씨 이야기》는 ‘인형 몸에 깃든 외계인’이 착하지만 외로움을 타는 아이(대학생)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동경괴동》은 일본이든 한국이든 매한가지인데, 도시에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복닥거리면서 사랑이나 믿음을 잃은 슬픈 마음밭으로 살아가는 아이들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이 아이들은 이 아이들이기 때문에 마음앓이를 하면서 힘겨운지, 이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도 마음앓이를 하지만 느끼지 못하거나 티를 내지 않는지를 가만히 짚습니다. 《이치고다 씨 이야기》는 숱한 사람이 복닥이는 가운데에도 착한 넋과 매무새를 예쁘게 건사하면서 조그마한 들꽃처럼 조그마한 꽃내음을 나누는 아름다운 삶자락을 보여줍니다. 이 착하고 외로운 아이를 알아채거나 헤아리는 둘레 어른은 드물지만, 이 아이는 홀로 꿋꿋하며서 씩씩하게 살아가요.

 누구나 한 번 선물받는 목숨이고, 누구나 한 번 선물하는 목숨입니다. 말사랑벗들은 말사랑벗 어버이한테서 목숨을 선물받았어요. 나중에 말사랑벗들이 말사랑벗 어버이들 나이 즈음 된다면, 말사랑벗 또한 좋은 어버이가 되어 내 살과 피와 뼈를 나누어 새로운 목숨붙이한테 선물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온 발자취는 이처럼 내 삶을 선물받는 가운데 내 삶을 선물하면서 고이 이어왔습니다. 앞으로도 사람이 살아갈 발자취는 이렇게 내가 선물받은 삶을 내 뒷사람한테 선물하면서 이어져요.

 우리가 ‘우리말 우리글’을 살피는 까닭은 바로 이 고마운 삶을 누리는 동안 어떠한 넋을 어떠한 말그릇과 글그릇에 담으면 즐겁고 좋을까를 헤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무렇게나 살아가며 내 고운 목숨을 망가뜨릴 수 있을까요. 아무렇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서 내 고운 삶을 일그러뜨릴 수 있을까요. 착하게 살아가며 착한 말을 쓰면 좋을 텐데요. 예쁘게 살아가며 예쁜 꿈을 북돋우면 기쁠 텐데요.

 말 한 마디이든 글 한 줄이든 내 마음을 담아요. 말 두 마디이든 글 두 줄이든 내 삶을 실어요. 아프고 힘들 때에는 아프고 힘든 티가 말이랑 글에 묻어납니다. 기쁘고 신날 때에는 기쁘며 신나는 느낌이 말이랑 글에 스며듭니다. 애써 슬프지 않은 척하지 않아도 되고, 부러 기쁘다고 우쭐거리지 않아도 돼요. 느끼는 만큼 글로 담고, 생각하는 만큼 말로 나누면 좋습니다. 살아가는 결대로 서로를 마주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무늬대로 서로 오붓하게 나눌 이야기를 엮으면 돼요.

 말은 누군가 듣고, 글은 누군가 읽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듣는다 해서 ‘예쁘게 들어 주기를 바라며’ 하는 말은 아니에요. 누군가 읽기 때문에 ‘예쁘게 읽어 주기를 바라며’ 쓰는 글은 아니에요. 들어 주는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한결같이 예쁘게 살아가면서 하는 말입니다. 읽어 주는 사람이 많든 적든 꾸준히 어여삐 살림을 북돋우면서 쓰는 글이에요.

 이번에는 말사랑벗이 쓰는 글을 또 다른 갈래에서 살며시 들여다봅니다.


- 일기 쓰기
 저는 국민학교라는 데를 다닐 때부터 늘 학교에서 얻어터지며 일기를 썼다고 했잖습니까. 일기란 누구한테 보여준다든지 검사를 받으려고 쓰는 글이 아닌데,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이러한 틀이 깨지지 않아요. 하루를 돌아보며 내 삶을 얼마나 사랑하고 좋아했는가를 담는 글이 일기인데, 일기를 이렇게 쓰도록 이끄는 어른은 잘 안 보여요.
 그러나 어른들이 일기 쓰기를 숙제 검사 하듯 한다든지, 내 일기를 몰래 훔쳐본다든지 하더라도 주눅 들지는 마셔요. 내 일기는 내 하루 삶을 곱다시 적바림하는 사랑열매이니까요. 내 사랑열매를 알뜰히 일군다는 마음가짐을 살뜰히 이어 주셔요.
 일기는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앞서 쓸 수 있고, 꼭 공책(일기장)이 아니더라도 작은 수첩을 주머니에 늘 넣어 다니면서 틈틈이 내 삶자락을 적바림할 수 있어요. 하루하루 그때그때 일과 삶과 생각을 담으면 일기 쓰기입니다.


- 느낌글(독후감) 쓰기
 책을 읽고 쓰는 글이 느낌글이에요. 요사이는 영화를 보고 나서 쓰는 느낌글이 있고, 연극이나 공연을 보고 쓴다든지, 노래를 듣고 쓸 수 있으며, 춤을 보거나 나 스스로 춤을 추고 나서 느낌을 적을 수 있어요. 큰 테두리에서 ‘책을 읽으며 받은 느낌을 꾸밈없이 적은 글’을 느낌글이라고만 할게요.
 그런데 이 느낌글이란, 책에 어떤 줄거리가 담겼는가 하는 이야기를 적는 글은 아닙니다. 줄거리를 줄줄이 밝혀도 나쁘지는 않아요. 다만, 줄거리를 밝히든 안 밝히든, 책을 읽고 느낌을 글로 옮긴다 할 때에는, 책을 읽는 동안 내 넋과 삶이 어떻게 달라졌거나 거듭났거나 새로워졌는가를 밝혀야 알맞습니다.
 앞서 다른 글쓰기 이야기를 할 때에도 적었는데, 일기이든 산문이든 시이든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쓰는 글이 아니라고 했어요. 남 앞에서 자랑하는 글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돌아보면서 내 하루를 가다듬는 글이에요. 이렇게 나 스스로를 돌아본 글을 이웃이나 동무하고 함께 읽으면서 서로서로 생각이나 느낌이 사뭇 다르다고 깨우치는 한편, 즐거우며 고맙게 선물받은 삶을 다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힘차게 걸어가자는 뜻을 바로 이 느낌글에 담는다고 하겠어요.
 책을 읽으며 좋은 넋을 얻거나 느꼈으면, 이렇게 얻거나 느낀 좋은 넋이 나로서는 다시 태어나는 좋은 삶이 되는 가운데 저절로 샘솟는 글이 느낌글입니다.


- 생각글(논설문) 쓰기
 느낌글은 느끼는 그대로 쓰지만, 생각글은 생각하는 그대로 씁니다. 흔히 한자말로 ‘논설문’이라 하는데요, 어떠한 일이나 사람을 놓고,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 하고 밝히는 글입니다. 다른 한자말로는 ‘주장’이라고도 하는데, ‘논설’이든 ‘주장’이든 “내 생각”이에요. 다른 사람 생각을 빌지 않고, 내 줏대와 깜냥대로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밝혀서, 우리가 서로 어울리는 이 자리에서 한결 슬기로우면서 올바르거나 착하거나 참다운 길을 찾자고 하는 글입니다.
 일기나 느낌글은 처음부터 남한테 읽힐 마음이 없이 쓰는 글인데, 생각글은 처음부터 남한테 읽힐 마음으로 쓰는 글입니다. 생각글은 남들이 함께 읽어 주면서, 또 그냥 읽기만 할 뿐 아니라 속알맹이를 제대로 파헤쳐 읽어 주기를 바라면서, 우리가 다 함께 마주하는 일이나 사람을 한결 깊고 널리 살피자는 글입니다.
 일기라든지 느낌글을 쓸 때에는 ‘굳이 남한테 읽힐 글이 아니’니까 글씨를 삐뚤빼뚤 쓴다든지, 또는 글멋을 부리며 쓴다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생각글은 달라요. 생각글은 손으로 글씨를 적을 때에는 아주 또박또박 써야 합니다. 까다롭거나 알쏭달쏭하거나 여러 뜻으로 읽힐 만한 글을 쓰면 안 돼요. 아주 똑부러지게 써야 하고, 단출하게 써야 하며,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든지 어영부영 늘어지게 쓰면 안 돼요. 내 생각을 환히 밝히면서, 내 생각을 맞느냐 틀리느냐 하고 따지는 얼거리가 아니라, 나로서는 내 슬기와 깜냥으로 이렇게 생각하니까, 당신들은 당신들 슬기와 깜냥에 따라 이야기를 나누자면서 말문을 여는 글이 생각글입니다.


 

 일기하고 느낌글하고 생각글을 밝혔습니다. 이 세 가지 글을 쓰는 바탕은 꼭 한 가지입니다. 내 마음과 삶이 좋아서 쓴다는 바탕 한 가지입니다. 스스로 좋아하며 쓰는 글이요, 스스로 내 삶을 좋아하도록 일구면서 쓰는 글입니다. 겉치레나 겉발림으로는 글을 쓸 수 없어요. 좋은 동무를 사귄다든지 좋은 이웃을 둔다든지 할 때에도 겉치레나 겉발림으로는 만날 수 없어요. 속을 가꾸면서 속을 채우는 사랑 어린 따스함으로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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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멧새와 글쓰기


 새벽나절 살짝 흩뿌리다 그친 눈이 아침이 되며 솔솔 내린다. 뒷간으로 똥을 누러 다녀온다. 똥을 누며 생각한다. 서울에서 살다 시골로 옮겨 살다가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서 살던 때에는 눈을 바라보면서 ‘헌책방과 눈이 만나는 이 날씨를 사진으로 담아야지.’ 하고 생각했고, 인천에서 지내다가 시골로 거듭 옮겨 온 오늘은 ‘골목길과 눈이 마주하는 이 날씨를 이제는 사진으로 못 담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 어느 날엔가 꼼짝없이 드러누우면서 지내야 한다면 ‘멧골집과 눈이 어우러지는 이 날씨를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겠다고 느낀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내 살가운 사람들하고 복닥이는 나날과 날씨와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야 한다.

 콧물을 줄줄 흘리는 아이한테 이불을 뒤집어씌운다. 사진기를 목에 건다. 아이를 한팔로 안는다. 마당으로 나와 함께 눈을 맞는다. 조금 걷는다. 눈이 소리없이 내린다고 아이한테 말을 하다가는, 이내 말을 고친다. “음, 눈은 눈이 오는 소리를 내면서 오겠구나.”

 눈발이 날리는데 멧새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바지런히 난다. 멧새는 먹이를 얼마나 찾을 수 있을까. 멧새는 깃털로 따스하다지만 자그마한 몸둥이를 덥히자면 가만 있을 수 없겠지. 날이 더 차고 얼음겨울이 풀리지 않는다면 작은 멧새는 모조리 얼어죽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4344.1.1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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