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고다씨 이야기 2
오자와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1



아픔을 먹고 눈물을 마시는 어여쁜 삶

― 이치고다 씨 이야기 2

 오자와 마리 글·그림

 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10.12.25.



  일본을 다녀온 이들이 늘 똑같이 느끼며 말하지는 않습니다만, 일본을 이룬 옛 역사를 돌아보면서 옛 일본 삶자락 가운데 한겨레 옛 삶자락이 스며든 자국이 참 많다고 느끼는 이들이 제법 있습니다. 절집이라든지 불상이라든지 무엇무엇이라든지 옛 한겨레 삶자락이 꽤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오늘날 삶자락을 돌아보면, 한국에는 가운데 일본에서 흘러든 삶자락이 아주 넓게 퍼졌습니다. 그야말로 작은 삶자락 하나부터 작은 물건 하나까지, 일본에서 들어오거나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투성이입니다.


  생각해 보면, 옛 일본으로 스며들었다는 한겨레 삶자락은 ‘여느 사람 삶자락’은 아닙니다. ‘지배 계급 삶자락’이 ‘문화’라는 이름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옛 일본 지배 계급은 한겨레 지배 계급 삶자락을 받아들였을 테지만, 옛 일본 여느 사람들까지 옛 한겨레 여느 사람 삶자락을 받아들였다고는 여길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1900년대를 거쳐 2000년대를 살아갑니다. 2000년이 지나 태어난 어린이가 있고, 1990년대 한복판에서 태어난 푸름이가 있으며, 1980년대 한복판에서 태어난 젊은이가 있습니다. 이들이나 이들을 낳아 키우는 어버이는 ‘현대 한국 역사와 사회와 문화’를 들여다봅니다. 먼 앞날이나 까마득히 오래된 지난날 역사와 사회와 문화를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오늘을 살아갈 뿐 어제나 글피를 살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2100년이나 2200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터질는지를 하나도 모릅니다. 1800년대에 살던 사람이 2000년대를 알 수 없거나 헤아리지 못하던 일하고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생각을 기울이면, 다가올 2100년이나 2200년을 살아갈 뒷사람들이 ‘한국 역사’나 ‘일본 역사’를 갈무리할 때에 무슨 이야기를 적바림할는지 어렵지 않게 깨달을 만합니다. 2200년대나 2500년대를 살아가는 한겨레나 일본겨레는 저희들 1900∼2000년대 역사와 사회와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거나 느낄까요. 그무렵 일본겨레라면 한겨레 사회와 문화 가운데 일본에서 보내지 않은 것이 없다 말할 테고, 한겨레는 ‘우리 땅 옛사람들은 무엇 하나라도 스스로 즐기며 살아가지 않으면서 죄다 일본에서 들여왔구나’ 하고 느끼겠지요. 한글이 온누리에서 가장 훌륭한 글이라 말하면서도, 정작 한글과 겨레말을 알뜰살뜰 보듬지조차 않고 일본말을 함부로 받아들여서 쓸 뿐 아니라, 한손으로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말투를 털자 하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이런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말투를 고스란히 쓰는 바보스러운 모습을 그예 보여준다고 여기겠지요.



- “그때는 나도 같이 살았는데, 여름방학 때 집에 가다가, 지로네 아저씨한테서 들어서 알게 됐지. 가족인데, 나만 몰랐다니.” (16∼17쪽)

- “너도 혼자 도쿄로 가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니까,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싶더라. 일이랑 집안일, 그리고 널 돌보느라, 20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엄마가 된 기분이었지만, 이번 기회에 널 독립시켜 주자 싶었어.” (20쪽)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 둘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은 곱다고 여기면서 읽는 책입니다. 만화책이기 앞서 ‘곱다고 느끼는’ 책입니다. 이 만화는 일본 만화입니다. 일본 만화이기 앞서 ‘곱다고 느끼는’ 만화입니다.


  어떤 이는 《이치고다 씨 이야기》를 순정만화에 넣겠지요. 그러나 이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는 순정만화이기 앞서 ‘곱다고 느끼는’ 만화입니다.


  순정만화를 좋아하건 아니건, 다른 만화를 좋아하건 아니건, 그닥 눈여겨볼 까닭이 없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동무들(다 남자들)이 ‘순정만화’를 보면 계집애라고 놀리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명랑만화’이든 ‘로봇만화’이든 ‘전쟁만화’이든 ‘공상과학만화’이든 굳이 더 좋아해야 할 까닭이 있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내가 곱다고 느낄’ 만화여야 내가 읽지, 내가 곱다고 느끼지 않는데, 내가 사내아이라서 순정만화를 보면 안 되고, 계집아이들만 순정만화를 보라는 법이 없습니다. 계집아이이건 말건 ‘스스로 곱다고 느끼’면 명랑만화이든 로봇만화이든 즐기면 됩니다.



- ‘떨어진 물방울은 따뜻했다.’ (35쪽)

- ‘하지만 그렇게 예쁘다면 또 한 번 봐 줘야지. 와아, 진짜 예쁘다.’ (61쪽)

- ‘내가 사랑하는 이온의 주머니.’ (146쪽)



  제가 곱다고 여기며 즐기는 만화는 ‘이야기가 있는’ 만화입니다. 이야기가 ‘만화쟁이 삶에서 길어올린 따사롭고 착하며 아름다운’ 만화를 곱다고 여기면서 즐깁니다.


  나 스스로 곱다고 여길 만화를 찾아서 읽는 만큼, 이 만화 하나가 ‘일본 만화이건 한국 만화이건’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중국 만화면 어떻고 미국 만화면 어떻습니까. 미국사람이라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이니 끔찍한 전쟁무기를 만드니 하면서 다 나쁘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내가 한국사람이니 한국사람이라면 다 좋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한국사람 가운데에도 ‘사람됨으로 보기에 모자라거나 안타깝거나 슬픈’ 이들이 많습니다. 지난날 일제강점기에도 ‘제국주의 일본’을 나무라면서 착하며 아름다이 살던 일본사람이 많습니다.


  나부터 착한 사람됨을 볼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부터 착하게 살아갈 일이라고 여깁니다. 나부터 착한 넋을 건사하면서, 내 이웃들 착한 마음씨를 곱게 껴안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 ‘이치고다 씨라면 분명 집으로 돌아올 거야. 그래, 벌써 집에서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73쪽)

- ‘그야, 이치고다 씨가 돌아왔을 때 내가 없으면 집안에 못 들어오니까.’ (82쪽)

- ‘가끔 있잖아.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오면 외로운 나머지 요정이다 뭐다 하는 망상 친구를 만들어 버리는 그런 거. 서글픈 이야기. 아니야. 이런 바보. 이치고다 씨가 없었을 리 없잖아.’ (88∼89쪽)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는 참으로 착한 사람들 착한 삶 착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1권이 나왔을 때에 얼른 장만해서 여러 차례 읽고, 2권이 나왔기에 기쁘게 맞아들이며 숱하게 읽습니다. 어느새 3권이 나왔는데, 1권과 2권을 조금 더 오래 삭이면서 즐기고 싶어서 아직 장만하지 않습니다. 3권을 장만하면 이때부터는 3권에 푹 빠져서 여러 차례 읽고 또 읽겠지요.


  줄거리로 읽어치우는 만화가 아니기 때문에, 한 번 보고 나서 가만히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넘기고, 며칠 뒤에 또 보며, 얼마쯤 지나서 다시금 넘깁니다.


  볼 때마다 새롭습니다. 볼 때마다 새롭기에 장만해서 아끼고 사랑할 만합니다. 볼 때마다 새롭고 읽으면서 늘 사랑스러우니까, 내가 이곳 내 삶터에서 내 살붙이들하고 복닥이는 하루하루를 더 알차고 싱그러이 돌보도록 힘을 내자고 다짐합니다.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돕고, 살아내는 사랑스러움을 깨닫도록 이끌며, 살아숨쉬는 아름다움을 둘레에 나누도록 북돋웁니다.


  고운 만화이기 앞서 고운 책입니다. 고운 책이기 앞서 고운 넋입니다. 고운 넋이기 앞서 고운 사람입니다. 고운 사람으로서 고운 삶을 일굽니다.



- ‘이 어둠 기억나. 그래, 이건 타미의 상자. 나가야 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기 전에. 마음이 체념으로 가득 차기 전에.’ (95쪽)

- ‘안녕, 아야. 목욕시켜 줘서 고마워. 다른 장난감들은 아껴 줘.’ (112쪽)

- “내가 와 버렸으니, 유미의 혼잣말은 누가 들어 줄까?” (148쪽)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를 읽든 다른 만화를 읽든 노상 느낍니다. 이야기가 곱다고 느낄 만한 만화는 그림을 아주 빼어나게 잘 그려내야만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림을 엉터리로 그려서는 안 됩니다. 곱다고 느낄 책이란 글솜씨가 빼어나도록 가다듬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글솜씨를 엉망인 채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만화학과를 나와 만화쟁이가 되어도 만화를 잘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화쟁이는 만화학과 있는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다녀야 태어나지 않습니다. 만화는 붓놀림이나 셈틀놀림이 아니니까요. 만화에 담는 이야기는 만화쟁이 삶이니까요.


  만화쟁이 스스로 살아내는 목소리와 숨결과 손길과 살결과 몸내음을 고스란히 담는 만화입니다. 글쟁이들은 글쟁이들 목소리와 숨결과 손길과 살결과 몸내음을 글에 고스란히 싣습니다. 사진쟁이들은 사진쟁이들 목소리와 숨결과 손길과 살결과 몸내음을 사진에 담뿍 담습니다.


  기자라면 기자로서 쓰는 글(기사)에 기자 목소리와 숨결과 손길과 살결과 몸내음을 통째로 얹어야겠지요. 교사라면 교사로서 아이들 앞에 서면서 교사다운 목소리와 숨결과 손길과 살결과 몸내음을 송두리째 바쳐야겠지요.



- “괜찮을까? 한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아무도 가지러 안 왔으니까, 괜찮, 겠지?” ‘안 괜찮아!!’ (119쪽)



  고운 만화를 읽는 마음은 아름다운 ‘교육책’을 읽어 아름다운 교사가 되려는 마음하고 한동아리입니다. 고운 책을 읽는 마음은 아름다운 ‘사진 솜씨’를 익혀 훌륭한 사진쟁이가 되려는 매무새하고 한솥밥입니다. 고운 삶을 읽는 마음은 어여쁜 살림살이를 꾸리면서 사랑스러운 밥과 옷과 집을 가꾸는 살림꾼 한삶하고 한몸입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돌보고 싶으니 ‘곱다고 느끼는’ 책을 찾아야 합니다. 마음이 차가워지면서 힘든 나날이니까 ‘곱다고 느끼는’ 만화를 가까이해야 합니다.


  나 스스로 이 땅에 두 다리를 튼튼하게 딛고 서면서 동무들 두 다리도 이 땅에 튼튼히 딛고 서도록 어깨동무를 할 삶이라고 느낍니다.



- “그랬더니, 엄마가 착한 아이가 되면 생일 때 사 준대. 아직도 안 사 줬지만. 우리 엄마는 자주 깜빡깜빡 해. 아니면, 내가 착한 아이가 아니라서 그런가? 어떡해. 몸이 식겠다. 잘 자, 리나. 다음에 내가 잠옷 만들어 줄게.” ‘유미. 넌 착해. 유미는 착한 아이야.’ (132∼136쪽)

- “하룻밤이었지만 즐거웠어.” “네가 주워 준 거니? 고맙다. 다음에 꼭 보답할게.” ‘와, 왕자님이다.’ ‘안녕, 유미. 다정한 소녀. 그리고’ “어서 와.” “다녀왔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응, 미안해.” (143∼145쪽)



  너무 많다 싶은 책을 읽지 않아도 됩니다. 너무 모자라지 않도록 책을 읽으면 됩니다. 너무 많다 싶은 돈을 벌지 않으면 됩니다. 꼭 알맞춤하게 돈을 벌어 나누면서 웃고 울 수 있으면 됩니다.


  한 달 100만 원 벌이로 흐뭇한 삶을 일구고, 한 달 50만 원 벌이로 즐거울 삶을 보듬으면 됩니다. ‘88만 원 세대’ 같은 이름은 그야말로 허울입니다. 880만 원을 벌어야 아름답겠습니까. 8만 8천 원을 벌면 바보나 멍텅구리가 되겠습니까. 한 달에 돈을 얼마 버느냐는 아무것 아닙니다. 흙을 짓는 사람한테 쌀금이 얼마가 되느냐는 그리 대댄하지 않습니다. 살림하는 사람한테 살림돈이 얼마나 있느냐는 썩 큰 일이 아닙니다.


  흙을 지을 땅, 곧 흙이랑 햇볕이랑 물이랑 바람이랑 소담스럽습니다. 살림할 집안, 곧 부엌과 방과 마루와 살림살이가 알뜰합니다.


  값비싼 농기구가 있어야 흙을 잘 짓지 않습니다. 값진 시설을 갖추어야 밥을 맛나게 짓지 않습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탄대서 내 삶자락과 보금자리와 마을을 알뜰히 건사할 수 있지는 않습니다만, 자동차만 타고 다닌다면, 또 커다란 자동차를 끌고 다닌다면, 더욱이 대중교통이라 하지만 스스로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는 매무새를 잃는다면, 내 삶은커녕 내 몸을 들여다보기 힘듭니다.


  다리가 아파야 하고, 허리가 쑤셔야 하며, 팔이 저려야 합니다.



- “솔직히 난 이해가 안 돼. 3학년은 다들 취직 때문에 난린데, 아주 행복한 고민이잖아.” “하지만 테라노 선배는 할아버지의 원조를 전혀 안 받는다면서. 이런 낡은 아파트에 살면서 술집이다, 비디오 가게다, 알바도 열심히 하고.” “그건 그렇지만.” “그런 거 싫지 않을까. 전부 처음부터 준비된 듯한 미적지근한 환경.” “아아, 그렇구나. 그럴지도 모르겠네.” (162∼163쪽)

- “생각해 보면 그 그늘에서 벗어나서 평가를 받은 적이 없더라고. 이제 그런 거 다 귀찮아.”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테라노 선배는 가방 만드는 걸 좋아해서 만드는 거 아니었어요? 저, 선배의 가방 좋아해요.” “그건 네가 이상한 녀석이라 그런 거고. 아, 메시지다. 나 간다. 잘 마셨어.” “선배! 저보다 선배가 더 이상한 사람이에요. 그 말만큼은 그냥 넘길 수 없어요.” “뭐?” “이상한 사람이랄까, 굉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여러 의미로. 솔직히 테라노 가방인지 뭔지는 전혀 모르지만, 그러니 이제 가방이 싫어졌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테라노 가방이든 다른 곳에서든, 혼자든 아니든, 가방이야 어디서든지 만들 수 있잖아요.” (180∼183쪽)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 둘째 권에서는 ‘아픔’ 가운데 한 갈래 이야기를 살포시 다룹니다. 아픔이란 참 아픕니다. 말 그대로 아픕니다. 아프니 눈물이 나고, 눈물이 나면서 거듭 아픕니다.


  아픈 자리이기에 아뭅니다. 아프지 않은 자리는 아물지 않습니다. 다친 자리는 생채기가 납니다. 생채기가 난 자리이기에 고름이 흐르다가는 딱지가 앉고, 딱지가 떨어지면서 새살이 돋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자그마한 일본 만화책 하나’에서 ‘아픈 삶 아픈 이야기를 아프게 그리’면서, 서로 나눌 애틋하며 고마운 사랑을 즐거이 보듬는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맞아들일 수 있으면 얼마나 예쁠까 하고 꿈을 꿉니다. 다들 너무 바쁘지 않기를 빌고, 모두들 지나치게 배부르지 않기를 빕니다. 4344.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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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쟁이 손가락 사진쟁이 손바닥


 새벽녘 쉬를 하러 일어서는 옆지기가 엉덩이가 몹시 아프다고 한다. 옆지기 발바닥부터 등뼈까지 천천히 주무른다. 발바닥과 종아리와 허벅지와 엉덩이와 등과 등뼈를 하나하나 주무르면서 생각한다. 집일에 치이고 아이하고 복닥인다면서 옆지기 몸을 주무른 지 퍽 오래되었다고 느낀다. 틀림없이 내 몸이 힘들거나 고되기 때문에 옆사람 몸을 찬찬히 돌아보지 못한다 할 수 있다. 옆지기 아픈 몸을 주무르면서 내 손가락이나 손목이나 팔이 제대로 힘을 내지는 못한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여린 손으로도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고, 힘없는 손으로도 아픈 사람을 보듬을 수 있다. 힘들 때에는 힘든 만큼 조금씩 주무를 노릇 아니겠는가. 아무리 힘들어도 일기를 쓰자면서, ‘책일기’하고 ‘사진일기’하고 ‘아이돌봄일기’ 세 가지를 날마다 한 줄이나마 공책에 끄적이면서, 막상 옆지기 팔다리와 등허리 주무르기는 하루에 오 분도 못한다면 집식구로서 할 말이 없다.

 찌개나 국에 마늘을 빻아 넣는 데에 1∼2분만 더 쓰면 된다. 팔다리를 주무를 때에 즈믄까지 숫자를 세어도 된다. 한 번 주무를 때에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을 주무를 일이 아니라, 틈틈이 조금씩 보살필 수 있으면 된다.

 손가락으로 힘을 쓰기 벅차 손바닥을 쓰고, 손가락을 안으로 곱아 손가락 등으로도 눌러 본다. 문득, 내 손가락이 꽤나 뻣뻣하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손가락 그림이 모조리 지워진 사람도 아니다. 사람이 눈을 감고 흙으로 돌아갈 무렵이 되면 온몸이 뻣뻣해진다는데, 핏기가 사라지며 뻣뻣해지는 가운데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이러한 내 손가락은 슬픈 손가락이라 해야 할까, 여태껏 온갖 일을 수없이 치러내 주었으니 고이 쉴 수 있는 기쁜 손가락이라 해야 할까.

 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은 그닥 많지 않고, 한 사람이 손가락을 놀려 할 수 있는 일 또한 그다지 많지 않다고 깨닫는다. 나는 내 삶에 어떠한 책을 곁에 놓는가. 나는 내 삶을 어떠한 손가락으로 돌보는가. 지쳐 나가떨어질 듯한 하루하루이다 보니, 글 한 줄을 쓰면서도 이 글 한 줄에 들이는 품이 몹시 애틋하다.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는 삶이었다면, 틀림없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싶을 책을 그야말로 대단히 많도록 사고 읽으며 건사했을 테고, 이렇게나 많은 책을 사들이며 읽는 사람은 나라 안팎에 거의 없을 테지. 그렇지만, 아이를 함께 낳아 키우는 삶을 보내면서, 책을 읽는 다른 길을 들여다본다. 곧 둘째를 함께 낳아 키울 때가 되면, 책을 읽는 새삼스레 다른 작은 길을 들여다보겠지.

 어느새 내 손가락은 글쟁이 손가락하고 멀어진다. 차츰차츰 내 손바닥은 사진쟁이 손바닥하고 동떨어진다. 어쩌면 비로소 글쟁이 손가락이 되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이제서야 사진쟁이 손바닥이 된다 할는지 모른다. 천천히 동이 튼다. 이제 곧 쌀을 씻고 불려 아침을 차려야 한다. (4344.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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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하는 삶과 공부하는 아이
― 현진건, 《B舍監과 러브레터》



- 책이름 : B舍監과 러브레터
- 글 : 현진건
- 펴낸곳 : 동서문화사 (1977.9.1.)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입시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현대소설을 읽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대학입시를 잘 치러 이름난 대학교에 더 많이 들어가도록 채찍질을 하고자 현대소설을 가르칩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서던 1988년 3월, 학교에서는 갱지에 등사한 종이를 나누어 줍니다. 1991년 3월에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에도 갱지에 등사한 종이를 나누어 줍니다. 이 갱지에는 ‘중학생이 읽을 권장도서’라든지 ‘고등학생이 읽을 필독도서’가 깨알같이 적힙니다.

 중학교에 들어서거나 고등학교에 들어서며 받는 ‘꼭 읽으라 하는 책’을 살피면, 그즈음에 나온 새로운 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즈음뿐 아니라 ‘오늘날 두루 읽히거나 읽을 만한 책’ 또한 하나도 없습니다. 문학이라 하면 모두 현대소설로 쏠리고, 김동인이니 이광수이니 현진건이니 김유정이니 이효석이니 황순원이니 하는 분들 작품 가운데에서도 일제강점기에 쓴 작품에 쏠립니다. 해방 뒤에 문학을 한 사람들 작품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을 뿐더러 입시에서도 다루지 않습니다. 더러 한두 작품 한두 대목이 나오기는 하지만 일제강점기 작품에 견주면 아무것 아닙니다. 문학이란 철지난 문학이고, 문학하는 사람은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빛을 보는 셈입니다.


.. “그래 음악회에 가기 싫단 말인가?” “자네 혼자서 다녀오게.” “여보게 음악은 모른다 하더래도, 여학생 구경이라도 가세그려. 주최가 여학교 측이고 보니, 그 학교 학생은 물론이겠고, 서울 안의 하이칼라 여학생은 다 끌어올 것일쎄.” 하고 매우 초조한 듯이, “입장권은 내가 삼세. 음악이 싫거든 여학생 구경이라도 가세.” “왜?” “왜라니, 여학생 구경이라도 가자는밖에.” “여학생은 보아 쓸데가 무엇이란 말인가?” ..  (216쪽/까막잡기)


 학교에서 나누어 주는 갱지를 훑으며 ‘들어 본’ 이름과 ‘처음 듣는’ 이름을 헤아립니다. 들어 본 사람 작품이건 처음 듣는 사람 작품이건 하나하나 찾아서 읽기로 합니다. 어찌 되었든, 이 갱지에 적힌 사람들 작품을 ‘학교에 책을 가져가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에 읽는다’면 무어라 따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학교에서 읽으라 한 책인 만큼 이러한 책을 읽는다 할 때에 책을 빼앗는다든지 무어라 꾸중할 핑계거리가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현진건 님 작품 〈빈처〉와 〈운수 좋은 날〉을 읽으라 했지, 〈불〉이나 〈그립은 흘긴 눈〉은 읽으라 하지 않습니다. 〈술 권하는 사회〉나 〈피아노〉 같은 작품이 ㅅㄱㅇ 같은 대학교 논술시험에 나오기도 하니, 학교 모의시험에 이들 작품 지문이 나오기는 하지만, ㅅㄱㅇ 논술시험 지문하고 똑같이 나올 뿐입니다. 〈우편국에서〉나 〈할머니의 죽음〉이라든지 〈사립정신병원장〉이라든지 〈고향〉이라든지 다루거나 이야기하는 국어 교사는 없습니다.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 가운데 이들 작품을 읽은 분이 있을는지 모르나, 어쩌면 이들 작품은 안 읽거나 못 읽은 분이 더 많을는지 모릅니다. 교대나 사범대에 다닐 때뿐 아니라, 막상 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일하면서도 ‘당신들이 학생 적에 못 읽은 한국 현대문학’을 뒤늦게 읽는다든지, 이때부터 바지런히 읽는다든지 할 겨를을 못 내는지 모릅니다.

 헌책방을 다니며 책을 하나둘 그러모읍니다. 현진건 문학을 읽으려고 생각한 때에는 현진건 님 문학책을 펴낸 갖가지 판본을 모두 살펴서, 겹치지 않은 작품이 하나라도 실렸으면 냉큼 사들여서 읽습니다. 이무영 소설이든 안수길 소설이든 박태원 소설이건 마음껏 읽습니다. 장용학 소설이건 이청준 소설이건 즐거이 읽습니다.

 현대소설을 읽으면서, 또 현대를 지난 오늘날 소설을 읽으면서, 오늘날과 가까울수록 문학하는 사람들 말이 재미없다고 느낍니다.

 일제강점기에 한글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면서 적어 내려간 작품에는 ‘깰락졸락’이라느니 ‘큰심부름 잔심부름’이라느니 ‘꾸중받이’라느니 ‘맞방망이’라느니 ‘염통이 파득파득’이라느니 ‘신트림’이라느니 ‘여기 오는 맡’이라느니 ‘퉁을 주었다’라느니 ‘까막잡기’라느니 ‘멋질린’이라느니 ‘뭇주룩하게’라느니 ‘겅성드뭇’이라느니 ‘무안새김’이라느니 ‘치훑고 내리훑고’라느니 ‘샐닢’이라느니 하는 말마디를 마주합니다. 따로 살려쓴다는 토박이말이 아니라,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주고받는 말마디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마디 가운데에도 “만족의 미소” 같은 일본 말투가 끼어들곤 합니다.


.. “저를 모르시겠읍니까. 제가 ××이 아닙니까.” “응, 네가 ××이냐…….” 우는 듯이 이런 말을 하고 그윽하나마 내가 잡은 손에 힘을 주는 듯하였다. 그 개개 풀린 눈동자 가운데도 반기는 빛이 역력히 움직였다. 할머니의 병환이 어젯밤에는 매우 위증해서 모두 밤새움을 한 일, 누구누구 자손을 찾던 일, 그 중에 내 이름도 부르던 일, 지금은 한결 돌린 일 …… 온갖 일을 중모는 나에게 아르켜 주었다. 나는 그날 밤을 누울락앉을락, 깰락졸락 할머니 곁에서 밝혔다. 모였던 자손들이 제각기 돌아간 뒤에도 중모만은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불교의 독신자인 그는 잠오는 눈을 비비기도 하고 기침으로 목청을 가다듬기도 하면서 밤새도록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  (130∼131쪽/할머니의 죽음)


 오늘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아이들한테 ‘권장도서목록’이나 ‘필독도서목록’을 내어주며 이러한 책을 안 읽으면 두들겨 팬다든지 몽둥이찜질을 한다든지 할까 궁금합니다. 문학이란 대학입시를 치르며 살필 시험문제로만 여기면 그만이라고 다루는지 궁금합니다. 삶을 다루는 문학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학교에는 아이들 삶이 있는지 궁금하고, 집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사랑하며 일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지 궁금합니다. (4344.1.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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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습니까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5] 공병우, 《백도》



 집에서 아이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든, 좋아하는 헌책방을 찾아가서 책을 살피며 사진을 찍든, 제가 나고 자란 터전인 인천 골목동네에서 마실을 하며 사진을 즐기든, 늘 되새기거나 생각합니다. 첫재, “어디에서 무슨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까.”를 되새깁니다. 둘재, “얼마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사진이나 글로 엮습니까.”를 생각합니다.

 사진찍기 아닌 살림하기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오늘 하루 이 시골집에서 우리 옆지기하고 아이랑 어떠한 삶을 일구는가를 되새깁니다. 우리 살붙이를 저부터 얼마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껴안으려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책을 읽을 때에도 똑같습니다. 오늘 하루 제가 쥐어드는 이 책을 줄거리로 살피려 하느냐, 가슴으로 받아안으려 하느냐를 되새깁니다. 꼭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이 책보다 아이와 옆지기 얼굴을 한 번 더 들여다보면서 꼬옥 껴안으면 어떤가 하고 생각합니다.

 한국땅에서 사진책은 따순 손길을 기다립니다. 한국땅 숱한 사진쟁이한테 사진을 찍히는 사람들 또한 따순 손길을 기다립니다. 마구 찍어대는 손길이 아니라, 따순 이웃으로 찾아와 너른 품을 내미는 따순 손길을 기다립니다. 이런저런 작품이나 요런그런 상품을 빚는 사진찍기가 아닌, 이웃으로서 밥 한 끼니 같이 먹는다든지 막걸리잔 부딪힌다든지 하는 삶나누기를 기다립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공병우 사진책’을 드문드문 만납니다. 공병우 님은 당신 일터인 ‘공안과’에 사진부를 두었고, 사진부에는 당신이 사진마실을 다닐 때에 곁에서 심부름을 해 주던 젊은이가 함께 있었구나 싶습니다.


- 우리가 탄 배는 통통 울리면서 계속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절경은 순식간에 형형색색으로 변하였다. 연속 나타나는 절경의 모습을 광각, 표준, 망원, 줌 렌즈들이 달린 4대의 카메라로 번갈아 바쁘게 찍었다. 필름을 갈아끼워 주는 조수는 더욱 바빴었다. 이런 경우는 250장박이 필름과 와인다나, 모터드라이버가 달린 카메라를 사용한다면, 한층 더 좋은 앵글을 잡았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백도》에 실은 이야기)》


 공병우 님(1906∼1995) 같은 분한테는 심부름꾼이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이는 나이대로 많이 자셨고, 기운은 기운대로 많이 떨어졌으며, 보고픈 모습과 담고픈 모습이 아주 많으니, 당신 스스로 필름을 갈아끼운다든지 이런저런 장비를 홀로 챙겨 들 수 없습니다. 씩씩하고 튼튼하며 손빠른 심부름꾼 젊은이가 꼭 곁에 있어야 해요.

 얼마 앞서 사진찍는 윤주영 님을 뵈었습니다. 윤주영 님은 1928년에 태어났습니다. 2011년 나이로 여든셋입니다. 당신은 걸음조차 제대로 걷기 힘듭니다. 곁에서 어깨를 잡아 주는 젊은이가 한 사람 있으며, 당신을 자동차에 싣고 움직여 주는 운전수가 한 사람 있습니다. 짧은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헤어지는 자리에서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제가 여든셋 나이까지 살아갈 수 있을는지 모르나, 그무렵까지 사진길을 사랑한다면 저 또한 틀림없이 곁에서 제 어깨를 붙잡아 줄 젊은이가 있어야 할는지 모르겠구나 싶습니다.

 먼 앞날을 곰곰이 짚으니, 제 곁에서 제 잔일을 해 주어야 할 사람한테 참 고마우며 미안합니다. 그러나 잔일을 거드는 이는 잔일을 거들면서 꾸리는 삶이 있고, 이렇게 꾸리는 삶에 따라 무엇인가를 배웁니다. 홀로 마음껏 어디이든 나다니면서 사진마실을 할 때에도 틀림없이 이 나름대로 삶을 꾸리고 배우면서 사진을 얻겠지요. 내 사진기는 쥘 겨를 없이 누군가가 쥐어야 할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서 바지런히 필름을 갈아끼운다든지 세발이를 세운다든지 한다면, 이 일만으로도 진땀 구슬땀 빼야 할 테지요.

 우리 나라에 ‘도제 기사’ 틀이 아직 있는지 이제 사라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날에는 이름깨나 힘깨나 돈깨나 있는 사진쟁이들이 도제를 거느리면서 젊은 풋내기 사진쟁이를 때리기도 하고 함부로 부려먹는데다가 돈은 안 챙겨 주고 사진기 단추는 만지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뒹굴면서 겨우 홀로서서 사진길을 걸을 때에 ‘나는 이렇게 도제는 안 한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내가 받은 대로 나도 한다’고 되뇌는 사람도 있습니다. 군대에서 폭력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군대가 워낙 사람 죽이는 솜씨를 길들이는 곳이기도 한데다가 주먹다짐이 되물림되는데, 얻어맞은 사람으로서는 마음풀이를 할 곳이 똑같은 새내기 병사한테 손찌검하는 데밖에 없습니다. 또는 사회로 돌아와서 여자나 어린이한테 폭력을 휘두릅니다.

 마음이 깊거나 너르거나 따스한 사람은 슬픈 곳에서 구르더라도 깊거나 너르거나 따스한 삶을 이으면서 깊거나 너르거나 따스한 사진을 이룹니다. 마음이 얕거나 좁거나 차가운 사람은 좋은 곳에서 어울리더라도 얕거나 좁거나 차가운 사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 지난 (1980년) 9월 15일에 나는 임석제 님을 모시고, 서울을 떠나서 여수에서 1박 하고, 16일에 배로 거문도에 도착하여 1박 하고, 17일에 똑딱선으로 약 2시간만에 백도에 도착하여, 배를 타고 섬을 돌면서 4시간 동안 백도의 사진을 찍었다. 그날 거문도로 돌아와서 다시 1박 하고, 이튿날 아침에 떠나, 도합 4박 5일의 왕복여행을 끝냈다. (《백도》에 실은 이야기)》


 공병우 님 사진책 《백도》를 봅니다. 제가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살핀 《백도》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무지개빛 사진으로 된 얇은 책자입니다. 다른 하나는 까망하양 사진으로 된 얇은 책자인데 무지개빛 사진보다는 조금 도톰합니다. 두 가지 《백도》는 사진책이라기보다 ‘사진 안내책자’라 할 수 있으나, 제가 보기로는 두 가지 모두 사진책입니다. 작으면서 얇은 사진책입니다.

 사진책이란 100쪽이든 200쪽이든 300쪽이든 부피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진책은 500쪽짜리 1000쪽짜리로 이루어질 수 있고, 어느 사진책은 8쪽이나 12쪽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쪽수로 따지는 사진책이 아니라, 담은 사진에 서린 삶에 어떤 이야기가 깃들었는가로 살필 사진책입니다. 누구하고 나누려 하는 사진이요 사진책인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떠한 넋과 얼로 사진기를 쥐었느냐를 보여줄 사진책입니다. 어떠한 삶을 사랑하고 꾸리면서 사람들과 마주했는가를 나타낼 사진책입니다. 내 하루 삶은 어떠했고, 내 하루 삶을 보내는 동안 사귄 사람들 이야기를 드러낼 사진책입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다. 골목은 골목으로 보아야 합니다. 헌책방은 헌책방으로 보아야 합니다. 아이는 아이로 보아야 합니다. 시골은 시골로 보고, 도시는 도시로 보아야 합니다. 서울은 서울로 보아야 비로소 서울 사진책입니다. 백도는 백도로 볼 때에 바야흐로 백도 사진책입니다. (4344.1.27.나무.ㅎㄲㅅㄱ)


― 백도 (공병우 글·사진,돈화문 공안과 사진부,19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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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가 나를 키웠어요 - 여자 축구 MVP 여민지의 꿈과 도전 이야기 명진 어린이책 18
여민지 지음, 이지후 그림, 이혜경 구성.정리 / 명진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축구스타 성공스토리’일 수 없는 ‘여민지 일기’
 [책읽기 삶읽기 37] 여민지,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


 축구선수 여민지 님은 발등으로 공을 톡톡 차는 훈련이 있는지조차 모르면서 그저 공차기를 좋아하며 무럭무럭 컸습니다. 공차기를 하도 좋아하다 보니 축구선수가 되는 길을 걷고, 초등학생 때부터 ‘합숙 훈련’을 하면서 지냅니다. 공을 차는 선수는 하루라도 공 느낌을 잃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날마다 삼천 번쯤 ‘발등으로 공 튕기기’를 한다는데, 여민지 님은 이를 악물며 오천 번을 했다고 합니다. 성장통에다가 경기를 하다가 다치는 바람에 수술을 여러 차례 했으나,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면서 오늘날처럼 한국에서 널리 이름난 선수로 우뚝 섭니다.

 이제 여민지 선수 움직임은 마치 연예인 움직임마냥 ‘실시간 인터넷 중계’가 되는 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된 여민지 님인데, ‘고향 방문 기사’가 뜨고, ‘연예인과 커플댄스 추는 방송’에 나오며, ‘청와대에서 불러 여러 운동선수와 함께 대통령을 만나’는 한편, 요즈막에 새로 펴낸 책 ‘출판기념 사인회’를 하기까지 합니다.


.. 일 주일 동안 훈련하면서 느낀 점 : 먼저 이론 공부. 많은 지식. 경게 대한 것을 많이 알게 되었고,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패스의 질과 테크닉 등 모든 훈련이 머리와 몸에 조금씩 터득한 것 같고, 원래 하던 운동과 달리, 다른 새로운 운동을 해서 재미있었고, 새로운 것도 많이 배웠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앞으로 하루하루가 아주 소중할 것이다. 감독 선생님께서 계속 계속 훈련시킬 것을 연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많이 배워서 하나하나씩 더 알고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겠다. 지적해 주시는 점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야 되겠다. 그리고 운동 시간에 집중력을 갖고 집중해야겠다 ..  (20쪽)


 여민지 님은 퍽 일찍부터 ‘축구일기’를 썼다고 합니다. 여민지 님한테 축구를 제대로 가르친 초등학교 축구감독이 그날그날 훈련하며 익힌 여러 가지를 ‘잘 한 대목과 잘 못한 대목’을 살피어 일기로 적어 보라고 시켰다고 합니다.

 축구를 하는 사람이니 아주 마땅히 축구일기를 써야 합니다. 야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야구일기를 써야 할 테지요.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일기를 씁니다. 운동선수 아닌 여느 초등학생이라면 ‘생활일기’를 씁니다. 곧,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는 일기예요. 운동선수로서는 날마다 운동 경기나 훈련을 하니까 ‘운동일기’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아 일기를 안 씁니다. 일기를 안 쓰더라도 머리와 손과 몸과 마음으로 잘 갈무리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머리와 손과 몸과 마음으로 잘 갈무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글과 종이를 빌어 일기를 씁니다.

 지난날부터 이 땅에서 집살림을 도맡던 어머님들 가운데 ‘살림일기’를 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자한테 글을 가르치지 않았을 뿐더러, 글을 배운 여자는 살림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예나 이제나 온갖 집살림은 몸에서 몸으로 고이 이어집니다. 어디 종이나 책에 적어 놓은 이야기는 없는데, 손맛에서 손맛으로 손길에서 손길로 손품에서 손품으로 고스란히 이어옵니다.

 밥을 할 때에 쌀 몇 그램에 물 몇 그램을 넣어 불을 얼마만 한 크기가 되도록 장작을 얼마만큼 넣어 몇 분 동안 끓여서 뜸은 몇 분을 들이는가 같은 잣대가 적힌 일은 한 차례도 없습니다. 밥솥은 크기가 어떠해야 하고, 밭솥은 어떻게 닦아서 건사해야 한다는 이야기 또한 한 차례조차 적힌 일이 없습니다. 걸레질은 어떻게 하고, 힘은 어떻게 주며, 바닥에 어떻게 꿇어앉아 어디부터 어디를 닦아야 하느냐 또한 ‘살림일기’ 같은 데에 적힌 적이 없고, 양반이나 지식인이 살림살이를 눈여겨보며 적바림해 준 적 또한 없어요.

 생각해 보면, 가장 훌륭한 일기란 ‘글일기’ 아닌 ‘몸일기’라 할 만합니다. 몸에 아로새겨서 몸으로 곧장 움직이도록 이끄는 일기야말로 가장 아름답다 할 만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까지 축구만 생각하는 선수라면, 아주 마땅히, 모든 축구 훈련과 경기를 머리와 몸에 아로새기겠지요. 꼭 축구일기를 써야 축구를 잘하는 선수가 되지 않고, 축구일기를 안 쓰면 축구를 못하는 바보가 되지 않습니다.

 여느 자리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어린이나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기를 꼬박꼬박 쓴대서 하루를 슬기롭게 돌아보거나 가만히 뉘우치지 않습니다. 일기를 건너뛰거나 거른다 해서 하루를 엉터리로 보내거나 하나도 못 떠올리지 않습니다.

 삶을 읽을 줄 아는 눈매가 맨 먼저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매무새를 가다듬고, 내 삶을 아끼듯 내 이웃 삶을 아끼는 몸가짐으로 이어가도록 되새기자며 일기를 씁니다.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여민지 님이 이름난 선수가 되었기에 이 일기책이 사랑받을 만하지 않습니다. 여민지 님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든지 그닥 이름없는 선수로 마무리했다면, 이 일기책을 누가 눈여겨보거나 값있거나 뜻있다 했으려나요.

 되레, 여민지 선수한테는, 치르는 경기마다 족족 잘못투성이에다가 골은 못 넣으며 지기만 했다면, 이러는 가운데 일기를 참으로 꼬박꼬박 쓰면서 스물을 넘기고 서른을 맞이하며 마흔까지 나아갔다면, 한결 값있으면서 멋있는데다가 뜻있다 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일기는 자서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기는 성공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기는 자랑이나 광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기는 그저 일기입니다.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가 아니라, “나 스스로 내 삶을 돌아보면서 사랑하도록 가르치고 돌본 어버이와 동무와 선생님들이 나를 키웠어요”라 말해야 올바릅니다.


- 낙하지점 찾아가서 점프헤딩으로 높게 멀리 클리어하고, 그 동작까지 연결한다. 킥타이밍에 물러났다가 볼이 짧으니깐 다시 올라서면서 heading 클리어. (29쪽)
- pude up 후 발목을 이용해서 in side, out side로 강약을 조절하면서 tuch. pude up 후 v자 형식으로 방향 바꿔 가면서 sole 으로 drak back. (32쪽)
- 오늘 내 play는 전혀 마음에 드는 play를 하지 못했다. 볼소유도 못하고 자꾸 뺏기고, 상대에게 걸리고 잘 풀리지 못했다. (34쪽)


 여민지 님 일기를 보면, 온통 영어투성이입니다. 나중에 나라밖 여자축구단에서 뛰고픈 꿈으로 영어를 배우려고 영어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낱말만 영어로 적는다 해서 영어 공부가 되지 않아요. 참말 영어 공부를 하자면 ‘문장을 송두리째 영어로 적어야’ 합니다. 영어 공부 아닌 ‘축구일기’ 쓰기라 한다면, 일기에 섣불리 영어를 드러내어 적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기야, 남한테 보여주는 글이 아니라 혼자서 돌아보는 글이니, 이렇게 쓰든 저렇게 쓰든 여민지 님 마음입니다. 그런데, 축구란 어떻게 하는 경기인가요. 이 일기책에도 나오지만, 축구는 혼자서 펼치는 운동일까요, 운동장에서 뛰는 열한 사람과 뒤쪽에 물러나 앉은 감독들하고 후보선수가 함께 펼치는 운동일까요. 일기를 어떠한 글로 적어야 아름다운가를 여민지 선수 스스로 슬기롭게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다시금 생각하면, 여민지 선수 둘레에서 축구를 가르치거나 삶을 나누는 어른들이 모조리 영어를 아무 데에서나 함부로 쓰니까, 여민지 선수처럼 어린 사람은 이런 어른들 말투를 그대로 받아들일밖에 없습니다. 어른들이 ‘play’를 말하니까, 여민지 선수도 따라서 익숙해집니다.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를 덮으며 한 가지를 더 생각합니다. 이 일기책은 여민지 선수가 쓴 일기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앞쪽에는 여민지 선수 일기 가운데 몇 쪽을 통째로 옮겨서 사진으로 붙였고, 뒤쪽 5/6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와 신춘문예에 소설이 뽑힌’ 분이 ‘구성·정리’를 했습니다. 뒤쪽 5/6 또한 여민지 선수가 쓴 일기에 담긴 줄거리라 하지만, 뒤쪽 이야기는 여민지 선수 목소리나 숨결이 아닙니다. 뒤쪽 5/6은 ‘일기 아닌 성공담’을 보여주는 위인전이 되고 맙니다.

 여민지 선수 일기를 책으로 묶은 명진출판사는 “제2의 반기문, 제2의 오바마를 키웁니다”라는 목표를 내걸며 어린이책과 청소년책을 만든다고 책 앞머리에서 밝힙니다. 곧, 이 일기책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는 “제2의 박지성” 뜻을 이룬 ‘축구스타 여민지’를 다룬 책이요, “제2의 여민지”가 태어나도록 하겠다는 책이라 하겠습니다.

 앞으로 여민지 님처럼 공을 잘 차면서, 공차기 하나로 좋은 뜻을 이루는 어린이와 푸름이가 하나둘 태어나는 일은 반갑습니다. 그런데 하나 궁금합니다. 여민지 님을 축구선수로 키워 온 감독님이나 코치님들은 여민지 님한테 ‘공만 잘 차면 된다’고 했던가요. 김은정 코치님이 여민지 선수한테 했던 이야기(110∼111쪽)를 떠올린다면,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라는 책은 짜임새나 얼거리나 만듦새 모두 슬프며 안타깝습니다. 여민지 선수는 ‘잘난’ 축구선수가 아니라 ‘씩씩한’ 축구선수요, ‘이름난’ 대표선수가 아니라 ‘축구를 하며 즐겁게 놀 줄 아는’ 푸름이입니다. (4344.1.27.나무.ㅎㄲㅅㄱ)


―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 (여민지 글,이혜경 구성,이지후 그림,명진출판 펴냄,2011.1.15./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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